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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읽는 명상록

문학을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독특한 책장 디자인들

 

문학을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나는 갓 젊은 청소년 시절에는<인생의 진리는 무엇이냐?>하는 것을 열심히 생각하고 지내던 말하자면

사상소년(思想少年)이어서, 동서양의 이것을 공부하기 위해 학교도 이것들의 대강을 요약해 가르치는 곳을 찾어

동국대학교 철학과(중앙불교전문학교 철학문학고)에 들어갔던 것인데, 거기에서 글쓰는 걸 연습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사상은 그 진리라고 머리로 생각한 것을 이론으로 쓰면 되겠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그 정서(情緖)라는 것들은 시나 산문문학으로 표현할밖에는 딴 수가 없겠다.



시나 산문문학이면 사상도 아울러서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 깨달아져서, 시나 수필로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느끼는 것을 표현해 보기 시작한 것이 어느 사인지 길이 들어 문학적 문장의 표현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것은 내게는 참 다행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뒤에 깨달아 안 일이지만 <니체>만 하더라도 그의 사상의 표현을 실감 있게 하기 위해 그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에서는 서사시적인 문학적 구성과 표현을 했었으며, 20세기에 와서는 평론들까지도 딱딱한 이론전개를

 피해 <에세이>라는 것으로 문학적 표현의 효력을 노리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먼 과거로 눈을 돌려보면 불교나 기독교, 유교의 경전들 역시 문학적 표현으로서 그 중요한 것들이 나타나

있음을 누구나 보게 되는 것이니, 이거야말로 인류가 발견한 정신 표현의 가장 정수라고 아니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시인이나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써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즉 정신의 완전한 자유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강제에도 얽매이는 일이 없이, 또 사상사 속의 어떤 유파나 개인에게도 편승하는 일이 없이,

먼저 하늘만큼 훤출한 자기 자유의 능동적인 관찰력과 자기류의 독자적인 느낌을 가지고 사상의 선택과 그 수립을

 전달하라는 것이다.


나는 1929년과 1930년의 두 해 동안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 (현재의 중앙중고등학교를 합친 것)의 한 학생으로

 1950년대에는 광주학생사건 2차년도의 중앙학교 주모자의 하나이기도 했었는데, 이때의 내 사상은 덜 익은

사회주의였다.

 

이때의 내 정신의 실상을 회고해 보자면 <가난하고 비참한 동포들을 서러워하는 감상적인 인도주의 감정> 그것이었는데, 이때는 그 사회주의라는 것이 이 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많이 유행하고 있던 때인만치 그런 군중운동 속에 나도

 흡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뒤 도서관에 파묻혀 문학작품들을 탐독하면서 한 문학소년으로 변화하고 있던 때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자니,

톨스토이 말씀마따나 <경제적 균등 한 가지의 해결로 어떻게 인생의그 넓고도 미묘하게 복잡한 불행이나 행복이

 두루 잘 해결될 수가 있겠느냐?>

하는 새로운 이해가 생겨서, 여기에서 재출발해 문학작품들의 탐독과 아울러 종교와 철학을 주로 한 사상들의공부에도

열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보니 또 이때는 우리나라의 정지용(鄭芝溶), 김영랑(金永郞), 박용철(朴龍喆)등의 시인들이 《시문학》(詩文學)이라는 시동인지를 내면서 순수시 운동을 하며〈사회주의 정치사상에서 시정신의 자유를 먼저 해방해야 한다〉는

걸 주장하고 있는 것이 눈에 번쩍 뜨여서 이런 선배동지들이 여간 반갑고 고마운게 아니었다.


이 점, 젊은 여러분에게도 크게 짚이는 데가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한동안 구소련을 비롯해서 온 세계에 유행하고 있었던 그 사회주의의 <빈부격차의 해소운동〉이라는 경제정치 중심의

 사상이 실효 없이 끝나면서, 인제야 인류는 다시 그 반성기에 들어서지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잘 명심해 생각해서 말이다.


이 나라에서 새로 시인이나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또 먼저 마음을 써야 할 것은 첫째 영어나 불어 같은 서양말이나

중국의 한문에도 길드는 일이다.

 

 우리 이웃나라인 일본만 하더라도 세계의 문학을 비롯한 학문들의 번역출판이 구체적으로 빈틈 없어서 일본말의 번역만

가지고도 문학이나 기타 학문의 기본교양을 마련하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2차대전 뒤 민족분열

과 6.25의 남북전쟁과 생활난과 여러가지 혼란을 겪느라고 번역문화 그것도 아직도 형편없는 실정에 놓여 있으니

 

여기에선 서양말이라도 하나 둘 유창해야만이 보충이 되겠고, 중국의 한문은 또 별도로 공부해 내야만 이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중국과 동양과 우리나라의 고전들을 읽어 알 수가 있으니 말씀이다. 힘드는 일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그 팔자라는 것이니 할 수 있는가?


문학작품을 습작하고 지내는 어떤 젊은이들은 생각하기를 〈시인이나 작가가 되려면 그 소질이 첫째 문제다.

거기 필요한 교양이라 는 거야 시인이나 작가노릇을 하면서 두고두고 공부해서 쌓아나가면 되는 것이지 어떻게 미리

 다 쌓아 가지고 나갈 수가 있나?〉하는 것 같지만 언뜻 보기엔 지당해 보이는 이런 이해 속에도 간과해서는 안될 하자가

들어 있으니, 그것은〈자기 혼자나 주의의 몇사람이 인중한 것뿐인 그 소질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도 애매할 뿐이라〉

는 하자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 하자의 불안을 메꾸고 자기에 대한 확신을 만들어 나갈 수가 있을까? 그 확신을 만들어 가지는 길은 물론 내 나라의 문학과 세계문학의 공부를 통해서일밖에 없다.

 

 먼저 우리나라의 현대문학과 고전문학 속에서 100사람의 대표적인 실력 있는 시인 작가들의 대표 작품들을 골라 정독하며 그 속에서 귀군의 실력은 어느 만큼의 것인가를 이해해 내고, 또 세계문학의 현대 시인 작가들과 고전 시인 작가들 200명을 골라 그 작품들을 정독하면서 자기의 실력은 어느 만큼한 것인가를 마음속으로 이해해 내라.

그러면서 내 나라의 문학의 역사를 비롯해 세계의 유력한 문화국가들의 그것들도 꼼꼼이 공부해 알아보며 그 문학사들 속의 각 시대를 통한 유파들의 사조(思潮) 내용과 거기 속한 대표적인 시인 작가들의 작품 특질이 무엇인가도 판독해 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대가 한 문인으로 이유 있게 출발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기본교양은 겨우 성립할 것이다.


그러나 자네의 그 소질 있다는 습작이 어느 정도 수준의 것인가를 식별하고 확인하기 위해서는 내 나라 문학사와

세계 문학사 속의 유력한 시인 작가들의 좋다는 작품들의 표현과 자네의 작품들의 표현을 면밀하게 대조해 고찰해

 보고 〈그들보다 한술 더 뜰 확신이 있는가? 없는가?〉자신의 양심에 물을 일이다.

 

 그래서 자네 마음속의 대답이〈있다〉거든 비로소 자네의 좋은 소질이라는 것은 자네 자신의 확신을 얻어 나가는

단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늘 마음 써야 할 것은 이런 초벌의 확신 이것도 변화 없이 계속되어 가는 것만도 아닌 점인, 자네의 공부와 교양이

 점점 늘어 넓어져 가고 깊어져 가는 동안에는 전일의 확신이라는 그것도 한낱 유치한 것이 되고 마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한 문학인의 교양이란 꼭 문학 그것만의 한계 안에서만 멎을 수 없는 것이고, 종교와 철학, 역사, 지리, 그 밖에 필요한

 여러 학문에 걸쳐야만 하는 것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여기에서 유치한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늘 명심해야만 된다.


일생 동안 문학공부를 하고 글쓰고 살려는 사람들이 또 늘 이어서 마음을 써야 할 것은
1. 어떻게 사회에서 사람노릇을 제대로 하며 살아갈 것인가?
2. 사회의 모태인 자연과의 관계는 어떻게 잘 이어갈 것인가?
3. 역사 속의 자기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서 세워 나갈 것인가?하는 세 가지 문제다.


이 첫번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아래와 같이 생각한다.
한 민족사회를 지배하는 정치권력이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나치스 시절이나 2차대전 말기의 일본의〈도죠히데끼〉의

군국주의 시절이나 스탈린을 비롯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시절같이 개인의 자유와 평화와 가족적 번영을 못 견디게

억압하는 때에 놓이어서 어떤 항거도 성취할 가능성이 없거든 어떻게라도 해서 여기서 탈출하거나 그것도 안되건

 

 침묵하는 수풀의 나무들처럼 침묵하는 속에서 그 강압 정권이 자연의 섭리를 따라 무너질 날을 기다리며 살아 남아

갈밖에 없겠다.


그리고 둘째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또 아래와 같다.
자연을 마치 오랫동안 버려운 고향집같이 생각해서 어쩌다가 한번씩 찾아들면 되는 것으로 간주하지 말고,

우리가 늘 이어서 숨쉬며 살고 있는 이 숨결의 모태로서 느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그 예부터의 느낌과 사고방식을

회복해 사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복잡하고 바쁜 일터에서라도 때때로 허리를 피고 하늘 쪽을 보며 거기가 우리들의 숨결의 본고장임을

 실감해 살도록 해라.

그래 이 실감이 더 간절해지면 더 간절해질수록 그대의 목숨의 계속에도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짬을 얻어 맑은 수풀 속도 거닐고, 바닷가의 한때씩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뭇 생명들의 본 고향과의 교류를 점점 더 두터이 해가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에서
생기는 온갖 협소함을 완화하고 키워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번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또 아래와 같다.
문학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무얼하는 누구거나 다 그래야만 할 것이지만, 우리는 늘 역사 속에서 무얼하고 있다는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문학작품을 쓰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문학사가 이룬 문학업적들을 현대문학의 관점에서 취사선택해 발전시키는

각도에서 작품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니, 또한 여기에서 미래의 문학을 위한 좋은 유산이 되어야 할 것도 자연히 의도하며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문학작품을 쓰는 이가 안 가져서는 안될 역사의식이라고 한다.
이것이 없으면 그것은 그걸 쓰는 본인들에게도 그저 불확실한 것이 될 뿐일 것이다.


未堂산문 중에서
신세계 책장/책꽂이

When I was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