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주음악( Newage* )

Kenny G-Song Bird

 

 

 

 

 

 

 

 

 

 

 

 

 

 

 

 

 

 

 

 

[Kenny G(케니 지)]는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와 함께 푸근하면서도서정적인 감성과 모던한 연주기법으로 색소폰의     

연금술사라 불린다
1957년위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Kenneth Gorelick(케네스 고얼릭)]으로[Kenny G]의 [G]는
본명에서 딴 이니셜이다. [Kenny G]는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배우다가 10세때 우연히 TV를 보던중 색소폰 연주에
매력을 느껴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1974년 고교에 들어가서는 프랭클린 하이스쿨 밴드에 들어가 유럽 순회 연주를 하게되고 흑인 음악계의 거장인
[Barry White(배리 화이트)]의 공연에 게스트로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게 된다. 워싱턴 대학에 입학한 [Kenny G]는 대학 재즈 밴드와 [Gold Bold & Together]라는흑인 펑크 밴드에서 소울의 세계를 맛보게 된다.
 
[Kenny G]는 [Sammy Davis Jr(새미 데이비스 주니어)],[Johnny Mathis(조니 마티스)]등 리듬앤 블루스
아티스트들의세션으로 활동했는데 그 활동을 통해 그의 음악적인 능력은 많은 사람들의이목을 끌게 된다.
 대학 졸업 후 그는 [Jeff Lorber(제프 로버)] 퓨전 밴드와 함께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그 후 [Arista(아리스타)]
레코드사의 사장인 [Clive Davis(클리브 데이비스)]의 눈에 띄어 데뷔 앨범 [Kenny G]를 발표한다.

1986년에 발표한그의 네 번째 앨범인 [Duotones]에 [Songbird]가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는 인기를 누리게 되고 [Aretha Franklin(아레사 프랭클린)], [Whitney Houston(휘트니 휴스턴)], [Natalie Cole
(나탈리 콜)]등 유명한 아티스트들이[Kenny G]와 함께 앨범 작업을 하길 원하기 시작한다.
 특히 그가 1992년에 발표한 앨범 [Bathless]는 미국에서만8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미국에서나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누리게 되는데 이 앨범으로 그는 통산 3천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한다.
 1994년에 발매한 [Miracles]과 1996년의 [Moment]에서도 그의 인기는 여지없이증명되어 그를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된다.
 
1999년 7월 발매한[Classics In The Key Of G]에서는 [George Benson(조지 밴슨)]의 기타 연주와함께 연주되는
[George Gershwin(조지 거쉬인)]의 [Summertime]을 비롯하여[Monk(몽크)]의 [Round Midnight]와
[Harold Arlen(해럴드 알렌)]의[Over The Rainbow]등의 스탠다드 재즈 명곡들을 연주하고 있다.  
 
 

Kenny G (케니 지)

 


 

 

 

 

 

 

 

 

 

 

 

 

 

 

 

 

 

 

 

 

 

 

 

 

 

 

쉬운 음악을 통해 대중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에 대한 시각은 언제나 양극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부드럽고 낭만적인 선율로 세계 시민권을 획득한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Kenny G)는 최고의 인기를 누림과 동시에 경멸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버린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정통 재즈 아티스트들과 평단에서는 연주자의 영혼과 정열이 담겨있는 '고급 음악' 재즈를 팝화시켜 '천한 음악'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독설을 퍼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대중들에게 케니 지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힘들고 접하기 어려운 재즈라는 장르를 친숙하게 만들어준 가치있는 아티스트였다.

 

특히 2,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그는 잘 생긴 외모와 더불어 '멋지고 달콤한' 음악을 들려주는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1956년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난 케니 지(본명:Kenneth Gorelick)는 10살 때 TV 쇼 프로그램인 The Ed Sullivan

Show에서 어느 색소폰 주자의 연주를 듣고 감동을 받아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트럼페터 Gerald Pfister에게서 사사받은 케니 지는 글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 등의 레코드를

들으며 연주를 익혔다.

그는 1976년 20세의 어린 나이에 소울, 디스코 음악의 거장 배리 화이트(Barry White)의 40인조 밴드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Love Unlimited Orchestra) 일원이 되면서 화려한 음악 캐리어의 막을 올렸다. 그의 초기 음악은 펑키(funky) 스타일이었던 듯 하다.

 

배리 화이트 밑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이후에 가담한 밴드 역시 로컬 펑키 그룹인 콜드, 볼드 앤 투게더(Cold, Bold &

Together)였다. 재즈 악기로 통하는 색소폰으로 단순한 형태를 가진 팝 음악을 연주한 셈이다.

 

워싱턴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면서 잠시 연주 활동을 접기도 했으나, 대학을 졸업할 무렵 케니 지의 음악관은 다소 \

바뀌어 있었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자로 역시 펑크색 강한 음악을 들려준 제프 로버의 재즈 록 퓨전 밴드 제프 로버스 퓨전(Jeff Lorber's Fusion)을 거치며 진정한 재즈 뮤지션으로서 성장해 나갔다. 제프 로버스 퓨전에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은 그는 1982년 아리스타(Arista)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고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 [Kenny G]를 발표했다.

 

제프 로버가 프로듀서 및 작곡, 편곡을 맡은 이 앨범은 펑크(funk)적인 색채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재즈 차트에서 톱 텐에 랭크되는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한 재즈 시장에서 그다지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케니 지는 데뷔 앨범에서 색소폰은 물론 신서사이저 등 다양한 연주 실력을 과시하며 주목을 끌게 된다.

하지만 솔로 데뷔와 함께 그의 음악이 대중들의 귀를 확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데뷔작은 물론이고, 펑크적인 음악 색깔을 지니고 지 포스(G-Force)라는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한 1983년 [G Force],

1985년 [Gravity]을 내놓을 때까지도 케니 지는 팝계에 충격을 줄 만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케니 지의 대중적 성공은 월터 아파나시에프(Walter Afanasieff)가 작곡자로 모습을 나타내는 1986년 작품 [Duotones]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드럽고 고급스럽게 흐르는 소프라노 색소폰의 유려한 선율이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고, 수록곡인 "Songbird"는

연주곡임에도 불구 차트 톱 텐에 진입하는 힘을 과시했다. 앨범은 전세계적으로 500만장 이상 팔려 나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상업적인 성공의 가도를 달리게 되었고, 이후 그의 활동은 승승장구였다.

 

팝 앨범 차트 8위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한 1988년 음반 [Silhouette]에서는 동명 타이틀인 "Silhouette"이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으며, 1989년 발표한 [Kenny G Live]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어 1989년엔 시애틀에서의 라이브 실황 앨범 [Live]를 발매하는데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 마이클 볼튼이 찬조 출연한 이 앨범은 역시 미국 내 판매량 400만 장을 기록하는 인기를 이어가며 1990년, [The Collection]과 [Montage]E라는 베스트 앨범을 각각 유럽과 영국에서 발매했댜.

 

 

케니 지는 자신의 음반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lanklin), 휘트니 휴스턴

(Whitney Houston), 나탈리 콜(Natalie Cole) 등 흑인 디바들의 앨범에 참여하였으며, 1989년 마이클 볼튼

(Michael Bolton)의 [Soul Provider]에도 가세하여 볼튼의 때늦은 성공에 한 몫 거들었다.

 

그는 또한 1991년 걸프전 참전 군인들에 대한 걱정을 담은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의 프로젝트 앨범 [Voices

That Care]에도 이름을 올려놨으며,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Dying Young> 사운드 트랙에도 참여하여

"Theme from Dying Young", "Hillary's theme" 등의 낭만적인 곡들을 히트시켰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 연속 그래미 최우수 연주인상을 수상하면서 음악 관계자들에게도 음악성을 인정받은

케니 지는 1992년 히트곡 모음집 [Best]를 발표한다.

 

케니 지는 [Voices That Care]의 인연으로 데이빗 포스터가 프로듀서를 맡은 1992년 앨범[Breathless]로 이전까지의 성공을 훨씬 뛰어넘는 대박 행진을 펼쳤다. 음반은 컨템포러리 재즈 차트에서 100주간이나 넘버원의 자리를 고수하였고 빌보드 앨범 차트에 무려 4년여 동안 머물며 미국 시장에서만 1,200만 장 이상 판매된 '다이아몬드 앨범'을

기록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는 판매 기록을 세우며 기네스 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수록곡 중 국내 토크쇼 등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사용되어 친숙한 "Forever in love"이 히트했고, 걸출한 흑인 뮤지션 아론 네빌(Aaron Neville), 피보 브라이슨(Peabo Bryson)의 보컬이 담긴 "Even if my heart would break", "By the time this night is over" 등도 사랑 받았다.

케니 지는 1994년에 "Forever in love"로 그래미에서 Best Instrumental Composition부문을 수상하였다.

 

한 번 점화된 열기는 이후에도 식을 줄 몰랐다. 1994년 발표된 크리스마스 캐롤과 전통 민요 등을 리메이크한 크리스마스 앨범 [Miracles: The Holiday Album]은 캐롤 음반임에도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았고, 현재까지도

시즌마다 사랑 받으며 꾸준히 팔려 나가 미국에서만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1996년 발표한 [The Moment]는 당시 흑인 팝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었던 두 명의 아티스트 토니 블랙스턴

(Toni Braxton)과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각각 "That somebody was you", "Every time I close my eyes"

에 참여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동명타이틀의 연주곡 "The Moment", 이국적 느낌의 "Havana" 등도 인기를 누렸다.

1997년 첫 공식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를 낸데 이어 1999년 내놓은 [Classics In The Key Of G]는 재즈 뮤지션의 자세로 돌아가 재즈 명곡들과 팝의 클래식들을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 스탠다드 팝 "Stranger on the shore",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의 곡으로 영화 <접속>에 삽입되기도 했었던 "The look of love", 조지 벤슨(George Benson)이 함께 한 재즈 최고의 고전 "Summertime" 등이 수록되었고, 특히 컴퓨터 기술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보컬에 케니 지의 연주를 덧입힌 "What a wonderful world"가 실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앨범 역시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힛트를 했다.

 

케니 지는 1994년의 [Miracles]에 이어 발표한 두 번째 시즌 앨범으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한 [Faith](1999)로 20세기를 마무리했다.

솔로 20주년을 맞이하는 2002년 케니 지는 1996년 [The Moment] 이후 6년만에 정규 앨범 [Paradise]를 발표하였다. 오랜만에 창작곡 위주로 이루어진 이 앨범에는 샹데 무어(Chante Moore)와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가 참여했다. 2002년 세 번째 시즌 앨범 [Wishes]에 이어 2004년 데이빗 포스터가 프로듀싱한 앨범

[At Last...The Duets Album]을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서 케니 지는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 리앤 라임즈(Leann Rimes), 리차드 막스(Richard

Marx),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바브라 스트라이잰드(Barbra Streisand), 욜란다 아담스

(Yolanda Adams), 샤카 칸(Chaka Khan) 등 세계 최정상 보컬리스트들과의 협연뿐 아니라 데이빗 샌본

(David Sanborn), 아르투로 산도발(Arturo Sandoval), 데이빗 베누아(David Benoit) 등의 재즈 뮤지션들과도 함께

앨범을 꾸몄다.

 

 

2005년 네 번째 시즌 앨범 [The Greatest Holiday Classics]에 이어 2006년 [I'm In The Mood For Love…

The Most Romantic Melodies of All Time]에서는 영국 출신 포크 뮤지션 제임스 블런트(James Blunt)의

"You're Beautiful" 이나 앨리샤 키스(Alicia Keys)의 "If I Ain’t Got You" 같은 비교적 최신 팝 히트곡들은 물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The Way We Were" 같은 추억의 영화 음악 등 다양한 히트곡이 그의 호흡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아시아판에 등려군의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이 "The Moon Represents My Heart"로 리메이크되어 있는 것은 아시아 팬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그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음악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둥지를 옮겨 유니버설 뮤직에서 발표하는 2008년 새 앨범 [Rhythm & Romance]는 살사에서 탱고, 차차차 등 다양한 라틴 리듬을 받아들여 전에 없이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며 특히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조수미가 피처링한 "Mirame Bailar"가 수록되어 한국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또한 앨범 발매와 때맞춰 케니 지의 내한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1995년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역사적인 한국 공연을 통해 1만 2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기록했던 케니 지는 그 후 여러번의 성공적인 내한 공연을 가진 바 있다.

글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영향을 받은 만큼 케니 지의 음악은 멜로디에 크게 의존해 왔다.

 

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임프로바이제이션, 즉 즉흥연주를 최소화하고 멜로디를 중요시 해 온 그의 스타일은 재즈

매니아들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재즈 매니아들은 케니 지의 음악을 재즈적 향취 없이 상업성에만 물들어 있는 것으로 간주했고, 그의 음악을 재즈로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재즈적 깊이가 어찌되었건 케니 지가 이루어 낸 기념비적 성공과 전 세계 대중에게 선사한 따스한 음악들은

'케니 지'라는 이름을 음악사에 길이 남겨 놓을 것이다.

 
 
 

'케니 지(Kenny G)'의 본명은 케니스 브루스 고어릭(Kenmeth Bruce Gorelick)으로 1956년 6월 5일 미국 '워싱턴

(Washington)' 주, '시애틀(Seattle)'에서 태어 났으며, 워신턴 대학 회계학과를 졸업하였답니다.

'데뷔(Debut)' 앨범으로는 제1집 앨범명〔 Kenny G / 1982년 〕으로 첫선을 보였으며, '케니 지(Kenny G)'의 음악

'장르(Genre)'는〔 Adult Contemporary, 〕〔 Smooth Jazz, 〕〔 Easy Listening 〕와 제36회 '그래미 어워드

(Grammy Award)' 최우수 연주 작곡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색소폰(Saxophone)' 하나로 전세계 7천 5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케니 지(Kenny G)' ... 한국에서만 무려

4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답니다

'케니 지는(Kenny G)'는 미국의 색소폰 연주자로서 5,000만장으로 추정되는 앨범을 팔아 이 부문에서 대기록을 세웠으며, 
'케니지(Kenny G)'의 지금 여기에 올려 드린 〔 BREATHLESS 〕는 1,300만 장으로 추정되는 앨범을 팔아 이 부문에 

기록을 세웠습니다.

1966년 10살 때부터 색소폰 연주를 시작하였고~ 얼마 안가서 , 미국 TV '버라이어티 쇼(Variety show)와 '에드

설리반 쇼(The Ed Sullivan Show)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첫 연주를 하여 자신의 이름을 알렸답니다.

'케니 지(Kenny G)'는 1973년 ~ 1982년 까지'베리 화이트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Barry White's Love

Unlimited Orchestra)' 단원으로 활약하며 , 색소폰 연주자 경력을 시작하였답니다, 이때 그의 나이 17살 때였다 .

[이하생략]

자료출쳐 : 엡사이트(Web site)




 


유대인 끼의 결정체, 첫 음반 1200만 장 ‘폭풍 인기’

 

 
 

 

 

재즈는 미국 대중음악의 샘물과 같다. 목화밭 노동력 공급을 위해 잡혀온 아프리카 흑인노예의 애환이 담긴 재즈는 1835년께 뉴올리언스시 콩고광장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즈가 미국 대중음악으로 자리잡은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 초기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재즈가 출현했다.

 

베니  굿맨의 스윙, 듀크 엘링턴의 블루스, 마일스 데이비스의 쿨재즈와 퓨전재즈, 자비에르 쿠갓의 라틴재즈, 루이 암스트롱의 딕시랜드 등이다.

앨 자로, 조지 벤슨 그리고 프랑스 재즈 피아니스트 클로드 볼링은 크로스오버 재즈(Crossover Jazz)의 선구자들이다.

 

크로스오버의 사전적 의미는 교차, 융합이다. 이 단어가 음악에서 사용될 때는 주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문 음악 또는 한 가지 조류에 여러 장르를 섞은

혼합형을 말한다.
크로스오버 재즈는 대체로 부담 없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스무스 재즈(Smooth Jazz) 성향도 갖고 있다. 이 두 가지 장르를 합친 재즈아티스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6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고, 수차례 내한공연을 한 유대인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

(Kenny G:본명은 Kenneth Gorelick)다. 케니 지 외에도 근대 재즈의 발전에는 많은 유대인 대가의 참여가 있었다.

 

베니 굿맨, 아트 호데스, 아티 쇼, 지기 엘먼, 해리 제임스, 버디 리치, 마이크 블룸필드, 앨 코헨, 허비 맨, 스탄 게츠 등은

미국 재즈 역사와 맥을 같이한 유대인 재즈아티스트들이다.

 

 

 

 

 

 

 

 

 

몇 차례 내한 공연, 한국 판매 총 600만 장

 

 


케니 지는 1956년 워싱턴주 시애틀 교외에서 태어났으며 동유럽 유대인 가계 출신이다

 

 

 

관악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열 살 때부터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에는 흑인 작곡가이며 가수, 음반제작자인 배리 와이트가 73년 조직한 40인조 악단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Love Unlimited Orchestra)’의 단원으로 합류해 연주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워싱턴 주립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에는 전공을 버리고 아예 직업연주자로 나선다.

82년 솔로주자로 독립한 그는 유대인 연예흥행사 클리브 데이비스가 74년 설립한 아리스타 레코드사와 전속계약을 맺는다. 케니 지는 주로 소프라노 색소폰을 불지만 다른 두 가지 색소폰

(알토·테너)과 함께 플루트와 클라리넷도 연주한다.

82년 첫 앨범 발매와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앨범 ‘브레스리스(Breathless)’는 무려 1200만 장이나 팔린 다이아몬드앨범이다. 판매고 100만 장급은 골든디스크,

1000만 장급은 다이아몬드 디스크로 각각 부른다.

94년 앨범 ‘미러클(Miracle)’도 미국 대중음악 인기순위를 정하는 빌보드 차트에서 수주간 1위를 차지했다.

케니 지는 음악의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전통재즈, 모던재즈, 흑인영가, 클래식소품, 록 발라드, 소울, 리듬 앤드 블루스,

라틴리듬, 아일랜드 민요, 크리스마스 캐럴 등을 망라한다.

우리는 ‘색소폰’ 하면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어두컴컴한 카바레에서 불어대는 느끼한 음색의 알토 색소폰을 연상한다. 그러나 케니 지는 피리와 모양이 비슷한 소프라노 색소폰을 주로 연주하면서 청아한 음색과 밝은 분위기의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의류광고 삽입곡인 고잉 홈(Going Home)과 송버드(Songbird) 등 두 곡으로 케니 지는 무드음악을 좋아하는 한국

 팬들과 특히 친숙해졌다.

 

또한 그는 고교 시절부터 골프광이었다.

프로선수에 버금가는 골프 실력으로 많은 대회에 참여하면서 몇몇 한국 프로골퍼들과도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있다고 한다.

청중에게 최선 다하는 겸손함 돋보여유대인들이 엔터테인먼트 전 부문에서 강점을 보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연예산업계에 종사하는 유대인들은 대중의 감성을 잘 간파한다. 또 탈무드 교육의 영향으로 창의력도 남달라 항상 새로운 조류를 창조해 낸다.

 

이들은 특히 문화·예술인의 재능을 효과적으로 흥행에 연결시킨다. 영화와 TV는 물론 클래식뮤직, 뮤지컬,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인재를 길러내고 부를 창출한다.

특히 장래성 있는 유대인 신인을 발굴하는 혜안을 갖고 있다. 재능만으로는 성공을 기약하기 어려운 이들 신인들을 훈련시키고 지원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려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서 투자한다.

유대인 작곡가와 연예흥행사도 동원된다. 유대인 소유의 음반사와 아울러 유대인이 주류를 이루는 각종 미디어도 활용한다.

 

미국 3대 지상파TV 방송인 ABC, CBS, NBC는 유대인이 설립했고, 지금도 이들의 영향력이 강하다.

역시 유대인이 설립한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양대 유력지를 비롯한 유대계 활자매체도 많다.

케니 지의 공연을 보면 그는 분명 재능 있는 음악인임을 알 수 있다.

발군의 연주 기량과 함께 대중에 대한 친밀감 또한돋보인다.

정상의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에게 흔히 느낄 수 있는 오만함도 없다.

 

항상 청중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최선의 자세를 보인다.

시대도 잘 타고나야 한다.

케니 지의 출현은 펑크, 하드록, 디스코, 헤비메탈 등 귀 따가운 음악에 피로감을 느낀 대중을 이지 리스닝 뮤직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시대조류의 변화를 읽고 케니 지 같은 탁월한 대안을 찾아낸 것은 미국 대중음악계를 선도하는 유대인 고수들의 숨은

조직적인 힘이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케니 지와 같은 히트상품을 만들어낸 유대인의 특기 중 하나를 압축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크로스오버 재즈의 명인 케니



 

乙在儀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