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아래) 과 청년층의 지지율 하락을 지적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 [뉴스1]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추세. 강준구 기자
문 대통령 경제위기 해결할 실력 있나, 민심이 묻는다
[지지율 53%로 추락, 전문가 진단] 소득주도성장 부작용 대비 부족에, 민심과 동떨어진 메시지까지 영남ㆍ20대ㆍ자영업자 이탈… 포용국가 수혜 기대 저소득층 돌아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며 50% 초반대로 추락했다.
3년차를 앞둔 역대 정권의 지지율과 단순 비교하면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닐 수 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가는, 정권 출범 이후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50% 지지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실제 한국갤럽의 분기별 집계로 보면 지금 지지율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의 지지율에 맞먹는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높은 81%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18개월 만에 지지율이 53%(갤럽
11월 넷째 주 조사)까지 속절없이 밀리는 과정과 내용을 전문가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촛불정부’라는 성격상 역대 어느 정권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대를 받고 탄생했다.
연초부터 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경고가 쏟아졌지만, 정부ㆍ여당이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지지율 추락 상황을 맞았다는 것부터 좋지 않다.
위기를 해결할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여론을 귀담아 듣지 않는 ‘불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에도 정작 개혁을 제도화 하는 성과가 미진한 점도 핵심 지지층 이탈의 원인으로 꼽힌다.
◇“경제 문제에서 보이지 않는 대통령... 돌아서는 민심”
전문가들은 경제를 중심으로 민생이 흔들리면서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정철학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견된 부작용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진단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25일 “시민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FGI)를 해보면, 새해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캄캄하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며 “결국은 경제 문제”라고 여론을 전했다.
지역별로 조선ㆍ자동차 산업 위기로 직격탄을 맞게 된 부산ㆍ울산ㆍ경남(PK)을 중심으로 한 영남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빠지는 현상이 전체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직업별로는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 세대별로는 아직 안정된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취업준비
생ㆍ비정규직으로 머물고 있는 20대층의 이탈이 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틀로 하는 ‘포용국가 전략’을 앞세우고 있음에도 정작
포용국가의 최대 수혜자로 기대된 계층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뼈아픈 대목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문 대통령 지지율은 주부나 은퇴자 등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을 것으로 추산되는 층에서 40%대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난다”며 “결국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지율 추락속도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북 정책과 경제 정책의 불균형도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경제 문제와 관련해선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국민들은 북한 문제를 다루는 것 이상으로 경제에 관심을 둬 달라고 하는데 오히려 경제는 소홀히 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며 “문 대통령은 유독 경제 문제와 관련해 부정적 이미지가 더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보다, 부작용 예견하고도 대비 못한 게 잘못”
전문가들은 지금의 경제 상황 못지 않게, 향후 경제 상황에 ‘희망’이 사라져가는 분위기가 지지율 하락에 반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정책 능력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이 같은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자영업 계층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자 청와대에 자영업비서관직을 신설한 것이 역설적으로 소득주도
정책을 끌어갈 정책적 역량이 부족함을 드러낸 대목으로 비춰졌다.
구체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기에 앞서 경영계로부터는 프랜차이즈ㆍ대기업이 자영업자를 상대로 독점 이윤을 누리는 구조를 깨도록 동의를 구하고, 노동계로부터는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양보를 얻어 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공정경제와 혁신성장이라는 디딤판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배 본부장은 “최저임금을 올리는 과정에서 우리경제가 버팀목이 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조율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여론”이라고 밝혔다. 홍 소장도 “소득주도성장은 국정운영의 철학이지 정책이 아닌데, 정작 구호만 요란하고 정책의 구체성은 떨어졌다”며 “정부가 ‘레토릭(수사학) 경제’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나쁜 경제 못지않게, 대통령의 메시지가 번지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치평론가 이종훈 박사는 “문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제조업 실적이 개선됐다며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라’라고 민심과는
한참 동떨어진, 공감하기 힘들 발언을 했다”며 “참모들에게 겹겹이 쌓여 세상과 멀어지는 게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경질하는 과정도 오히려 정책적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내용을 놓고 보면 ‘경질’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공식 반응은 경질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나오면서 혼선만 부추겼단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경제라인 교체는 일반회사로 보면 내부승진으로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겠다는 것
아니겠냐”며 “문제는 여론을 반영해 교체했으니 앞으로는 이렇게 저렇게 좀 더 하겠다는 내용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대북 정책과 관련한 대통령의 메시지는 일관되면서도 구체적인 반면 경제와 관련해서는 방향성도 없고 단일하지도 않다”며 “국민들 입장에서는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해결할 의지와 능력 모두 없는 것처럼 보여질 경우 부정적 여론을 겉잡을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 철학을 지켜가는 것도 성과, 실리에 쫓기기보다 균형 필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개혁 의제가 실종된 것도 지지율 하락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등에서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면서 전통적 지지층에서도 결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개혁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나 재벌개혁을 위한 경제민주화 법에 대해서도 앞장서야 할 여당이 소극적인 데는
“지금 이대로만 가면 21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부터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밝혀왔는데, 이와 관련정부가 내세우는 개혁 과제가 뭔지는 분명치 않은 상황이 되면서 동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 중반기로 접어드는 만큼 큰 폭의 지지율 반등을 끌어내긴 쉽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다만 안정적인 국정운영 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지지율이 안정세를 찾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정운영의 균형을 되찾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배 본부장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집권 초 하나회 척결 등 개혁을 주도했지만, 경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개혁 동력을 상실한 반면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적절히 속도조절을 하며 국정개혁의 모멘텀으로 삼으
내 집 마련과 결혼은 한 발짝 더 멀어졌고, 공정하지 않은 경쟁과 그에 따른 결과도 여전하다.
청년층의 지지는 질책으로 돌아섰다.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 것.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대학생위원회 발대식’에서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올해 초만 해도 문 대통령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82.9%에 달했으나 11월
둘째 주는 54.5%로 28.4%p 하락했다(그래프 참조).
다른 연령층의 지지율 하락도 굉장히 아파해야 하지만, 미래를 책임질 20대가 실망하고 있다면 그 부분은 더 크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문재인 정권 3년 차를 앞둔 지금, 20대는 정부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20대를 만나 현 정권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징검다리 일자리가 사라졌다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취업난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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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최고 관심사는 역시 취업이다.
통계상 취업문은 여전히 좁다.
11월 20일자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3분기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4%로 지난해 기간에 비해 0.1%p 상승했다.
3분기만 봤을 때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이후 최고치다.
취업준비생까지 포함한 청년층 확장 실업률을 따지면 결과는 더 암담하다.
22.8%. 청년 4명 중 1명꼴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취업이 어려워지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 최정윤(24·여) 씨는 “매년 대기업 공채 횟수는 확실히 느는 것 같다.
동시에 공무원 채용도 늘었으니, 흔히 말하는 좋은 일자리는 소폭이긴 하지만 증가하고 있다.
청년들이 현 정권 들어 더 힘들어졌다는 보도가 많지만, 모든 청년의 사정이 다 나빠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9월 한국경제연구소(한경연)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를 통해 종업원 수 300인 이상, 매출액 상위
500개 기업의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설문에 응답한 122개사 중 51.6%가 ‘올해 예정 채용 규모가 작년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작년보다 많다’고 응답한 곳의 비율은 23.8%로 대다수 대기업이 채용을 유지하거나 늘렸다.
취업준비생 조모(27) 씨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었다고 하지만 정작 아르바이트생의 삶은 나아진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임금체불 등을 걱정해야 했는데 지금은 아르바이트 자리만 구하면 돈 못 받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밝혔다.
주52시간 근무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일부 직장인은 여전히 늦은 밤에도
사무실을 떠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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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체감 실업률도 2016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당시 현대경제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은 34%로 올해보다 10%p가량 높았다.
하지만 체감 실업률이 아닌 확장 실업률은 23%로 올해와 거의 비슷했다.
중소기업이 채용을 줄여 여전히 실업률이 호전되지 않았던 것.
중소기업중앙회는 11월 6일 전국 중소기업 2010곳을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일자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채용 계획이 있다’고 밝힌 기업은 전체의 17.1%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상반기 채용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응답 기업 중 26.4%만 상반기 채용을 진행했다.
기업들은 경기 불안(32.3%·복수 응답)과 인건비 부담 가중(31.9%)을 가장 큰 채용 부담 요소로 지적했다.
취업준비생 주모(28) 씨는 “징검다리 일자리가 없다.
대기업에 지원할 스펙은 안 되고, 그렇다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할 것도 아니니 중소기업에서 이직을 노릴까 싶었지만, 최근에는 괜찮은 중소기업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다.
물론 일자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4인 미만 초소규모 업장에만 일거리가 있다.
이런 곳에서는 경력을 쌓기 어렵고, 임금체불 등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두려워 선뜻 지원하기 겁난다.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중견기업 공채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공학도는 현 정권이 답답하다
9월 전국 9개 대학교 원자력학과 학생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탈원전 정책
‘공론화’ 없는 졸속 행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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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보면 대기업에 지원할 만한 서울 주요 대학 학생들은 현 정권에 우호적일 것 같다. 하지만 이공계 학생들은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공계 학생들의 주 취업처인 제조업 등 산업계가 불황을 겪고 있기 때문. 11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광업·제조업 조사 잠정결과’를 보면 2017년 광업·제조업 출하액과 부가가치는 각각 1516조4000억 원,
547조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0조 원, 41조 원이 늘었다.
하지만 이는 반도체, 스마트폰 등이 포함된 전자 분야의 활약 덕분이다.
제조업의 주력 산업인 조선·자동차업계는 불황의 불이 켜졌다.
조선업은 지난해 출하액과 부가가치가 전년 대비 각각16조7000억 원, 4조2000억 원 감소했다.
특히 출하액은 전년 대비 24.7% 줄어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업계는 상황이 조금 낫지만 내리막인 것은 마찬가지. 지난해 출하액은 전년(196조6340억 원) 대비 1.8% 감소해 193조1490억 원을 기록했다.
부가가치도 2.2% 줄어 55조3100억 원에 그쳤다. 당연히 고용 역시 전년 대비 1000명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대학생 김주현(24) 씨는 “소득주도성장이든 뭐든 다 좋지만, 일단 국가 경제기반인 제조업에 신경 썼으면 한다.
뉴스를 볼 때마다 제조업이 힘들다는 소식이 나오는데, 당장 2년 뒤 취업시장에 뛰어들 때쯤이면 공대는 취업이 잘된다는 이야기도 다 옛말이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직장인 박진호(28) 씨는 “일단 취업은 했지만, 산업계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나쁘다 보니 이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40대에 명예퇴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데, 우리 세대는 더 일찍 회사에서 밀려날 것 같아 불안하다”고 밝혔다.
더구나 원자력 관련 전공자들은 정부의 ‘탈(脫)원자력발전’ 정책으로 찬밥 신세가 됐다.
대학원생 박모(26) 씨는 “전공자들은 원전 관련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외에도, 관련 연구에 대한 예산 감소 등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
정부는 계속 원자력 자체를 폐기물 취급하면서 관련 인력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정책 혜택이 중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20대와 50대의 세대 간 상대임금 격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2
007년에는 20대 평균임금이 100이라면 50대 평균임금은 134.5 정도였다.
하지만 2017년에는 이 격차가 100 대 149.5로 벌어졌다. 10년간 20대의 평균임금 증가 속도보다 50대의 평균임금
증가 속도가 더 빨랐던 것.
직장인 백모(29) 씨는 “최근 대기업은 대부분 직급이 높을수록 연봉 인상률을 낮추고, 직급이 낮은 사원들의 연봉 인상률을 높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전혀 후한 것이 아니다.
최근 입사한 신입사원은 퇴직할 때까지 현재 관리자의 연봉을 따라잡을 수 없다.
물론 중년층은 가정이라는 짐이 있지만, 젊은 세대도 집을 구하고 결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의 안정성 부문에서도 50대는 20대를 한참 앞질렀다.
같은 조사에서 20대 근로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2007년 31.2%에서 2017년 32.8%로 10년 새 1.6%p 증가했다.
반면 50대 근로자는 비정규직 비율이 2007년 42.6%에서 2017년 33.8%로 8.8%p 줄었다.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많이 펴는 정부라지만 정작 혜택은 중장년층이 보고 있는 셈.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본부장은 “연공형 임금체계 수혜, 기존 근로자 고용 보호 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세대 간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직장인 오모(29) 씨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회사는 새 사람을 뽑을 생각이 없다. 결국 해야 하는 일의 양은 그대로이니 집까지 일을 가져간다.
1년 전만 해도 야근수당은 챙길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먼 나라 이야기다.
공정한 세상이 되리라는 생각에 현 정권을 지지했는데, 공정에도 장유유서가 있나 보다”고 말했다.
신산업 관련 규제도 청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경기 성남시의 유모(28) 씨는 “블록체인, 차량공유, 핀테크 등 다양한 정보기술(IT) 기반의 신산업이 규제 때문에
제대로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블록체인이야 올해 초 암호화폐 대란을 겪었으니 심정적으로 이해가 된다지만, 기타 신산업은 유사 업종과 관련 이익
단체들의 반대로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안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정부라면 산업 분야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생 이강준(26) 씨는 “정부가 정의에 집중하다 보니 실리를 놓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 정부가 가진 적폐 등 문제점이 있으나, 이를 먼저 처리하려다 보니 야당과 갈등이 불거지고, 그 때문에 민생 법안이 뒤로 밀린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20대 국회의 입법 통과율은 최악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7월 기준 20대 국회 법안 가결률은 26.8%. 발의된 법안의 3분의 1도 채 국회를 넘지
못한다.
직전의 19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이 40.2%로 역대 가장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20대 국회도 식물국회의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젊은 남자들이 돌아섰다
11월 5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아래).
극심해지는 성별 갈등도 현 정권의 지지율을 낮추는 원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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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에서도 여성보다 남성의 지지율 하락폭이 컸다.
병역 문제와 성별 갈등이 분수령이 됐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6월까지 20대 남성의 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81%, 여성은 84%로 고공행진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6월 28일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7월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64%로 하락했다. 11월에는 서울 이수역 폭행사건과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이어지면서 지지율이
51%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면 20대 여성층의 지지율은 70%로 상대적으로 굳건했다.
대학생 이석훈(25) 씨는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대체복무에 관해 이야기하며 군 복무보다 힘들다면 대체복무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를 하더라도 일반 군 복무자들이 손해 봤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힘든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교정시설(교도소) 근무였다. 소수자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인권이 공정이라는
가치보다 앞선다고 생각지는 않는다”며 현 정부의 대체복무 정책을 비판했다.
대학생 홍모(26) 씨는 “성별 갈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이수역 사건과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을 보고 크게
놀랐다.
처음에는 나도 여성들이 억울하게 맞은 사건이라 생각해 남성 처벌 청원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막상 실상을 들여다보니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여성들의 글이 대부분 거짓이었다.
물론 이것이 정부 지지를 철회할 사안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온라인상에서 성별 갈등을 현 정부의 문제로 끌어올리는 커뮤니티들이 있는데, 이곳의 영향을 받은 친구들은 확실히 정부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청년층의 삶은 한층 더 팍팍해졌지만, 여전히 20대의 과반(54.5%)은 현 정권을 지지하고 있었다. 특히 외교 및 대북
정책에 관한 평가가 좋았다. 대학생 이수연(23·여) 씨는 “모두가 회의적이던 평창동계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렀고,
대북관계도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다.
당장 내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나, 먼 미래를 생각하면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지상파 3사가 9월 18일 3차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사 전부 대북정책에 대한 긍정평가가 80%를 웃돌았다.
그래도 당분간은 믿어볼 생각
소통 관련 정책에 대한 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직장인 최진수(28) 씨는 “지난 정권들에서는 국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국민이 잘 몰랐다면, 현 정권은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 등을 통해 소통의 폭을 넓히고 있다.
소통이 아니라 ‘쇼통’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때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밝혔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옛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이 9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1%가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90.7%에 달했다.
서울 광진구의 정수연(25·여) 씨는 “현 정부에 대해 적폐청산, 대북정책 등에 집중하다 보니 민생에 소홀하다는 평가가 많다. 여러 가지 지표로 보면 이러한 주장의 일부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20대의 과반이 정부 지지를 거두지 않는 이유는 당장 취업보다 사회의 정의 구현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단 반칙한 선수들을 경기장에서 내보내야 공정한 경쟁을 시작할 수 있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경쟁, 정의로운 결과를 위해 아직은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6호에 실렸습니다>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칸정공에서 한 근로자가 선박 의장품을 제작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경남 창원 성산구 상남동은 경남지역 최대 유흥거리로 손꼽히는 동네다.
‘기계산업의 요람’으로 불리는 창원국가산업단지(창원산단)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어, 한국의 기간산업인 조선·자동차산업의 후광을 누려왔다.
고인돌사거리를 중심으로 가득 들어찬 고층 상가건물 외관에는 식당, 술집, 노래방 간판이 어지러울 정도로 빽빽하게 설치돼 있다. 하지만 문을 닫거나 비어 있는 가게가 더러 눈에 띄었다.
3~4년 지속된 조선업 불황과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자동차산업의 위기, 그리고 부동산값 하락이 ‘천하의 상남동’을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
9월 기준 경남지역 미분양 아파트(1만4847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6807가구가 창원에 몰려 있다.
창원 아파트값은 1년 새 30%가량 하락했다고 한다.
‘2차’ 없는 유흥거리
경남 창원의 대표적 번화가인 상남동 고인돌사거리.
[박해윤 기자]
“젊은 사람은 그래도 좀 보이는데 40, 50대는 싹 사라졌습니다.
‘2차’는 아예 없어졌다고 보면 돼요. 외환위기도 모르고 지나갔던 동네인데….” 11월 26일 오전 상남동 유흥거리에서 만난 김봉준(44) 씨의 말이다.
20년 넘게 주류총판 일을 해온 그는 “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고 했다.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업소에선 테이크아웃 커피점 관련 전화가 오갔다.
권리금을 더 낮춰달라는 매수인과 더는 낮출 수 없다는 매도인 간 줄다리기다.
이 부동산공인중개업소 김모 대표의 말이다.
“권리금 2000만 원에 인테리어 비용 4000만~5000만 원을 들였는데, 장사가 통 안 되니까 6개월 만에 가게를 접으려는 겁니다.
500만 원 손해를 감수하고 권리금 1500만 원에 내놨는데, 들어오려는 사람은 1000만 원까지 깎자고 해요.
요즘 같은 때 장사가 잘될 거라 확신할 수 없으니까.
1억5000만 원 하던 식당 권리금도 60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별도리가 없습니다.
이 일대에 노래방이 1000여 개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고요.”
같은 날 저녁 경남 거제 중심가인 고현동의 식당거리.
한창 저녁식사를 할 시간임에도 한 닭갈비식당은 휑했다.
두 팀이 식사 중이었는데, 그마저도 한 팀은 식당 주인 빈영조(59) 씨의 친구들이었다. 바로 마주한 곱창집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 빈씨는 “이 식당을 16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면서 “그간 벌어놓은 돈을 까먹으며 버티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거제가 조선업으로 먹고사는 곳 아닙니까. 조선업에 불황이 닥친 뒤 다들 밖으로 빠져나가니까 인구가 계속 줄고,
유동인구는 더 줄고 있습니다.
요새 선박 발주를 많이 받았다는 뉴스가 나오던데,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하나도 안 들어요.
그렇다고 삼성(삼성중공업)이나 대우(대우조선해양)가 직원을 더 뽑는 건 아니니까. 주52시간 근무제?
그거 때문에 지금 조선소에 다니는 사람들도 밥 사 먹거나 술 마시러 오지 않아요.
아파트 가격도 집마다 최소 1억 원씩 내렸으니 누가 돈을 쓰겠습니까. 이 시간에 식당마다 빈자리가 없던 것도 이제
다 옛날얘기죠.”
고현동과 이웃한 장평동에 들어선 주상복합아파트는 입주가 시작된 지 1년이 넘도록 상가를 채우지 못해 여전히 썰렁한 모습이다.
2층 상가는 한낮에도 어둑할 정도고, 목 좋은 1층에도 빈 점포가 여럿이다.
바로 옆 비즈니스호텔 건물도 1층의 빈 점포 유리창에 ‘임대 문의’를 크게 써 붙여놨다.
이 호텔의 한 직원은 “호텔을 오픈하고 1년 10개월이 지나도록 1층 상가가 비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현동에서 아웃도어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윤상찬(61) 씨는 기자에게 “조선업에 봄이 온다고 누가 그캅니까”라고
되물었다.
“수주량 증가? 낙관 일러”
[박해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근 제조업 분야에서 반가운 소식이 있다”며 “조선업
수주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 늘어 세계시장 점유율 44%로 세계 1위를 탈환했다”고 언급했다.
이틀 뒤인 22일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조선산업 활력제고 방안’을 발표했다(표 참조).
그간 정부의 조선업 정책이 중·대형 조선사에 초점을 맞췄다면(‘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2016년 10월, ‘조선산업 발전전략’??·??2018년 4월) 이번 방안은 중소 조선사와 ‘조선 부품업’이라 할 기자재업체에 대한 지원 대책이다.
1조 원 규모의 LNG연료추진선(LNG추진선)을 중소 조선소에 발주하고, 1조 원 규모의 대출 만기 연장, 7000억 원 규모의 신규 금융 지원 등을 제공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러나 조선업 밀집지역인 창원과 거제에서 만난 조선업 관계자들은 ‘일감도 주고 돈줄도 뚫어주겠다’는 정부 대책에
별다른 기대를 나타내지 않는 분위기였다. LNG추진선 발주가 중소업체들에게 ‘가뭄의 단비’가 될지에 대해 반신반의
했고, 금융 지원과 관련해서는 “은행이 복지부동이라 별 기대를 안 한다”고들 했다.
문 대통령의 ‘반가운 소식’ 발언에 대해서도 한 기자재업체 임원은 “올해 수주 실적은 조선업이 불황에 접어들기 전인
2013년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최악의 시절을 벗어난 것인지, 잠깐 반짝하고 마는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해 벌써부터 상황을 낙관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선박 수요가 회복됐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이유에서다(그래프 참조).
거제가 빅3 조선사 가운데 두 곳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중심으로 조선업 생태계가 구성돼 있다면, 창원은
중형 조선사인 STX조선해양을 필두로 중소형 조선사 및 기자재업체가 창원산단에 모여 있다.
최근 반등하는 선박 수주가 대형 조선사 위주인 탓에 창원산단에는 아직 훈풍이 불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로 창원산단을 차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곳곳에서 ‘공장 매매’ 현수막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지역 부동산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공장 매물은 쏟아지는데, 사려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경남 거제 장평동에 자리한 삼성중공업.
[박해윤 기자]
봄이 온다고 누가 그캅니까?”…위기의 한국 제조업, 대책은?
● 선박 수주 크게 늘었다? 2013년 대비 절반도 회복 못 해 ● 대형 조선사 低價 수주 탓에 하청업체는 적자 납품 ● 일자리亂 여전 … “고급 인력 유출로 조선산업 붕괴할라” ● 정부가 지원 권해도 은행이 복지부동 … “선수금환급보증(RG) 등 금융 애로 해소해야”
창원산단의 맥박이 약해지고 있음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창원산단의 7월 가동률은 84%로 전국 국가산업단지 평균(80.8%)을 상회하는 수준이지만, 종업원 50인 이하 소형 업체의 가동률은 71.7%에 불과하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적정 가동률이 80%인데, 그 밑으로 한참 떨어진 것이다.
이 지역 조선업 관계자는 “체감 가동률은 그보다 더 낮다”며 “자동차까지 업황이 좋지 않아 요즘 창원산단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산단의 한 조선 기자재업체 대표 A씨는 “대형 조선사의 사내 협력사도 부도 직전이다.
대형 조선사는 당연히 사내 협력사부터 살리고자 한다.
최근 나아진 수주 실적이 외부 협력사에게까지 활력을 가져다주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창원산단 조선업의 맏형이라 할 STX조선해양의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4월 노사가 합의해 제출한 자구계획안을 채권단 대표인 KDB산업은행이 수용함으로써 법정관리는 막았지만, 대형 조선사들과 달리 선박 수주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탓이다.
8월 STX조선해양은 대만, 홍콩, 그리스 선사 등으로부터 총 2억400만 달러(약 23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선박 6척
수주를 따냈으나, 산업은행이 선수금환급보증(RG?·?Tip 참조)을 거부해 이 계약을 포기하고 말았다.
무급휴직도 이곳 직원들의 큰 근심거리다.
4월 임직원 1000여 명은 2개 조로 나눠 향후 5년간 6개월씩 번갈아 무급휴직하기로 채권단과 약속했다.
올해 첫 휴직 기간에는 정부의 무급휴직 지원금(월 최고액 180만 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내년 두 번째 휴직 때는
이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윤종옥 STX조선해양노조 교육선전부장은 “무급휴직 지원금마저 없으면 많은 직원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창원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무급휴직 기간을 줄이는 방안 등을 회사와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조선사 중심인 거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박 수주가 증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삼성중공업은 구조조정 마무리 단계에 있고, 대우조선해양은 아직 구조조정 및 매각 과제를 안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채권 은행들에게 올해 안으로 인원을 9000명 미만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는데, 현재 임직원이 9900여 명이다.
서둘러 1000명 가까운 인원을 감축해야 한다.
삼성중공업에서 가까운 한 주유소의 직원은 “조선 경기가 살아난다는얘기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며 “이 동네 가게들의 간판 네온사인으로 밤에도 환했는데, 보다시피 지금은 컴컴하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玉石 잘 가려내야 하는데…
중소형 조선사들과 조선 기자재업체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다.
원청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그리고 은행의 ‘돈줄 죄기’다.
거제의 선박 의장품업체 칸정공의 박기태 대표는 이러한 처지를 “뒤에서 호랑이가 쫓아오는데, 앞은 낭떠러지인 격”
이라고 표현했다(인터뷰① 참조).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납품가 때문에 납품할수록 적자가 불어난다는 것.
최근 계약한 선박 수주 중 상당수가 저가(低價)인 데다,
대형 조선사들의 자금 형편도 녹록지 않아 협력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적자 납품’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이 대다수 조선 협력업체의 입장이다.
시설투자 등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어느 정도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은행이 자금 회수에 나서기 때문이다.
조선업 경력만 30년이 넘는 B씨는 주요 조선 관련 부품을 국산화하고, 유럽·중동 등 새로운 수출처를 개척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바 있다. 그런 그조차도 “요즘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여기저기 자금 융통을 알아보러 다니느라 바쁘다.
조선업종에 불황이 닥치자 은행들이 서로 대출금을 회수하려고 달려들어 최근 2년간 250억 원을 거둬갔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신규 투자도 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투자자가 투자 조건으로 ‘신규 투자금을 회수해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은행으로부터 받아올 것을 요구하는데, 은행 측이 그러한 확약서를 써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STX조선해양 사례에서 보듯, 은행이 RG 발급에 깐깐한 것도 큰 걸림돌이다.
은행이 수세적으로 나오는 데는 선박 건조대금 지급 방식이 헤비테일(Heavy Tail)로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즉 과거에는 선수금으로 10%를 주고 공정에 따라 잔금을 몇 차례 나눠 지급했는데, 최근에는 10%의 선수금만 지급하고 완공한 선박을 인도할 때 나머지 90%를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은행 입장에선 그만큼 리스크가 커진 셈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기존 중소형 조선사 RG
프로그램 규모를 1000억 원에서 2000억 원으로 확대하고, 70억 원 이상 중형 선박에도 RG 발급이 가능하도록 조
정하겠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공장 매매’ 현수막을 붙여놓은 한 공장(왼쪽). 2년 가까이
비어 있는 거제 장평동 한 호텔 건물의 1층 상가.
[박해윤 기자]
나영우 경남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 이사장은 “경쟁력 없는 업체는 도태되는 것이 맞지만, 살아남아야 할 업체도 낮은 납품단가와 금융권의 몸 사리기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라고 전했다.
창원시 창원경제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재관 경남대 기계자동화공학부 교수는 “조선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 부정적인 것이 걱정”이라며 “조선업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는 이때야말로 옥석을 잘 가려 RG 등 금융 지원을
투입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영영 조선산업 재기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산중공업과 STX엔진 출신인 문영대 경남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일부 선박 종류를 제외하고 현 선가(船價)는 경기가 한창 좋을 때와 비교해 절반 값도 안 되는 수준이다.
경기가 좋을 때 쌓아올린 유보자금으로 이 시기를 버텨야 하는데, 대형 조선사조차 자금이 말라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고 진단하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협력업체들을 살려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조선업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 부품(기자재) 공급라인이 해체되면 중국이나 동남아 등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이 경우 물류나 품질, 납기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또한 처음에는 물류비를 감안하더라도 더 저렴할 수 있지만, 국내에 대체할 공급라인이 없을
경우 값이 비싸도 사 올 수밖에 없게 된다. 조선 협력업체들도 ‘한국 조선업’이란 배에 탄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조선업 일자리는 여전히 ‘꽁꽁’
경남 거제지역 실업자들이 거제 조선업희망센터에서 실업급여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박해윤 기자]
“물량팀은 사라졌습니다.
올해 들어 거제지역 조선업 종사자가 더는 줄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신규 채용이 늘어날 것 같진 않아요.
”(윤철민 거제 조선업희망센터 소장·인터뷰2 참조)
조선산업은 고용 창출 능력이 우수한 업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조선업은 매출 10억 원당 6.6명을 고용한다.
제조업 평균 6.3명보다 조금 많다.
여기에 더해 조선업은 ‘서민 일자리’다. 조선업 근로자의 88%가 기능직이고 대출이상 비중이 10.8%, 연구개발(R&D) 직군에 종사하는 석·박사급 인력은 1.2%에 그친다.
하지만 3년 전 조선산업 위기로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2015년 20만3300명이던 전국 조선업 종사자 수가 올해 3월 기준 10만3000명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10명 중 7명은 조선업에 종사한다는 거제의 경우 고용보험에 가입된 조선업 피보험자 수가 2016년 1월 10만여 명에서 올해 7월 7만3000여 명으로 27%가량 줄었다.
‘물량팀’이란 조선업 분야 일용직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로, 윤철민 소장에 따르면 요즘 거제에서 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물량팀을 고용할 만큼 일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선박 수주 증가세는 다시금 조선업 일자리 훈풍을 가져올까.
이를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견해다. 추가 구조조정을 앞두고 대우조선해양 노사가 씨름하고 있는 데다, 대형 조선사들의 형편이 고용을 확대할 정도로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제 고현동에서 만난, 남편이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에서 일하는 오모(29) 씨는 “남편이 지난 5년간 직장을 서너
차례 옮겼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의 상사들도 ‘좋은 자리가 나면 얼른 옮겨가라’고 조언한다”며 “나도 남편도 고향이
거제지만, 이제는 기회가 된다면 고향을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국, 싱가포르 등 타국으로 ‘조선업 일자리’를 찾아 떠난 사람도 꽤 많다고 한다.
문영대 교수는 “한국 조선산업을 되살리려면 여러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우수 인력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며 “구조조정 압박에도 우수 인력을 잡아둘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어렵다고 조선업 분야 우수 인력을 해외 등으로 유출하면 산업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항만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는 데 사용하는 대형 크레인을 예로 들었다. 중국에서 저가에 대형 크레인을 공급하자 국내 중공업계는 관련 부서와 인력을 줄였고, 현재는 이 분야 산업이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문 교수는 “이제 항만용 대형 크레인은 중국 업체가 부르는 게 값이 됐다”고 전했다.
거제 사람들은 거제가 나라를 세 번 구했다고 말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현재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옥포 앞바다에서 벌인 옥포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뒀고,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로 내려온 북한 피란민들을 포함해 15만 명의 피란민이 거제에서 전쟁을 버텨냈다.
“그리고 외환위기 때 거제의 조선산업이 나라를 구했다”고, 거제 유람선업체에서 일하는 김성현 씨는 말했다. 그는
“하지만 앞으로 한 번 더 거제가 나라를 구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만큼 거제 사람들의 의욕이 많이 꺾여
있다”고 덧붙였다.
나영우 이사장은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늦은 감은 있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며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시행하고 업계가 노력한다면 2020년부터는 어느 정도 조선업이 회복되지 않겠느냐”고 희망을 내비쳤다. 조선산업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언제, 어떤 형태로 찾아오게 할 것인지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박해윤 기자]
인터뷰① | 박기태 ㈜칸정공 대표이사
“돈줄 죄기 나선 은행 좀 말려달라”
원청 조선사가 요구하는 납품단가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최근 꼼꼼히 분석해봤다. 원재료비, 가공비, 소모품, 관리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원가가 100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익률을 3%로 잡는다면 원청으로부터 103원을 받아야 하는데, 96원만 준다고 한다.
납품할수록 적자가 불어나는 구조다.”
원청의 횡포인가.
“저가에 선박 수주 계약을 체결한 탓이다.
또 자신들도 자금 여력이 없고. 협력업체들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지만 자기들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거다.”
저가 계약을 지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제적으로 선가(船價)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선박 건조 노하우가 쌓일수록 선박 제작비용도 낮아지는 것
이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오히려 그 비용이 높아져버렸다. 비단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월급을 더 줘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원자재 등을 납품받는데, 그 비용이 전체적으로 다 올랐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가 굉장히 크다.”
정부가 최근 중소 조선사와 조선 기자재업체들에 대한 금융 지원 계획을 밝혔다.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본다.
그간 정부의 금융 지원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은행이 복지부동이니까 아무런 효과도 나지 않았다.
조선업황이 안 좋다고 하니까, 옥석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자금을 회수하려 든다.
자금 회수를 당하지 않으려면 적자를 보더라도 일정 매출 수준을 유지해야 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납품해야 한다.
뒤에서 호랑이가 쫓아오는데, 앞은 낭떠러지인 격이다.”
정부가 1조 원 규모로 LNG연료추진선을 발주하기로 했다. “별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본다. 엔진 등 주요 장비와 강재 구매에 제작비의 60%가 들어간다.
엔진은 GE(제너럴일렉트릭) 등에서 수입하고, 강재는 포스코 등 철강회사에서 사 오는데, 이들이 갑이다.”
타개책은 없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회사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알루미늄 선박 제작에 뛰어들었다. 기존 철강 선박보다 가벼워 운송비가 덜 들고, 100% 재활용이나 재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알루미늄 제작 기술과 관련한 국책 연구과제에 참여해 기술을 개발하고 싶지만 그게 어려워 답답하다.”
왜 참여할 수 없나.
“지원 자격이 ‘유동비율 50% 이상’이다. 유동비율은 유동부채 대비 유동자산으로 산출하는데, 조선업에 위기가 닥치자 은행이 대출을 몽땅 단기대출(유동부채)로 바꿔버렸다. 우리 같은 조선 협력업체들은 유동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정부에 바라는 바는.
“납품단가 현실화를 도와줬으면 한다. 또 금융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란다.
일례로 ‘조선 펀드’도 투자 기준으로 높은 유동비율을 제시한다.
앞서 말했듯, 조선업종은 유동비율이 높을 수가 없다. 또 유동비율이 높으면 뭐 하러 펀드 투자를 받겠나.
은행 가서 돈을 빌리지. 기술력이 있음에도 돈줄이 말라 불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기업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
[박해윤 기자]
인터뷰② | 윤철민 거제 조선업희망센터 소장
“기간제, 최저임금 일자리도 마다 않는 분위기”
조선업 실직 현황은.
“거제 조선업희망센터에 하루 평균 300여 명이 찾아오는데, 그중 80%가 조선업에 종사하다 실직한 분들이다.
2016년 1월부터 조선업 쪽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그나마 올봄부터 7만3000명 규모로 매달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다만 앞으로 고용이 크게 늘어날 것 같진 않다. 대형 조선사들이 채용을 늘리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조선업 실직자의 재취업 현황은 어떤가.
“전국적으로 실업급여를 받는 와중에 재취업에 성공하는 비율이 30%가량인데, 거제지역은 40%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재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거제 가정의 전형은 이렇다. 남편은 조선소에서 밤낮 없이 일하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전업주부 아내가 살림과 육아를 맡는다.
이 때문에 거제의 합계출산율은 조선업 불황 전에는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남성들의 재취업 욕구가 상당히 높다. 당장 먹고살 돈을 벌어야 하니까.
원청업체에 있던 사람들이 하청업체에 들어가기도 하고 기간제, 비정규직 등 예전보다 여건이 좋지 않은 일자리도
수용한다.”
(2015년 거제 합계출산율은 전국적으로 출산율 높기로 유명한 세종특별자치시보다도 높았다.
그러나 조선업 위기가 가시화된 2016년부터 역전됐다.
그래프 참조.)
취업에 나서는 주부도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 하지만 거제는 여성이 주로 취업하는 서비스 일자리 비중이 22%에 불과하다는 점이 애로사항이다
(전국 평균은 34%). 10월 거제에 새로 오픈한 한화리조트가 객실 청소를 할 직원 70명을 채용하기 위해 우리 센터에서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최저임금에 가까운 일자리인데도 700여 명이 몰렸다.”
직업훈련 욕구도 크다고.
“올해 들어 직업훈련에 사용하는 내일배움카드 발급이 지난해 대비 60% 증가했다.
하지만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한정적인 점이 아쉽다. 특히 남성들이 중장비 운전 기술을 배우길 원하는데, 거제에서는 배울 데가 없어 부산이나 통영으로 가서 배우고 있다.”
한시적 조직인 조선업희망센터가 내년 상반기까지 또 연장될 예정이다. “연말에 고용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되면 내년 상반기까지 만 3년간 운영되게 된다.
고용노동부 고용복지센터에 지방자치단체 등 여러 기관이 협조하는 조선업희망센터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특히 실업으로 자신감을 잃은 분들에게 일대일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많은 분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최근 선박 수주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일자리가 늘어날 것 같은가.
“거제의 조선업 일자리는 대형 조선사가 창출하는데, 이들이 고용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다만 단기 일자리는 약간 늘어날 것도 같다. 최근 삼성중공업 협력사 몇 군데가 합동으로 선박 건조 선행 작업을
맡아줄, 300명 규모의 기간제 일자리 채용설명회를 열었는데 400명 넘는 사람이 찾아왔다. 여전히 구직(求職)이
구인(求人)보다 많다. 일자리 훈풍은 좀 더 기다려볼 일이다.”
Tip 선수금환급보증(Refund Guarantee·RG)이란
선주가 선박 제작을 의뢰한 조선사에 선수금을 줄 때 은행, 보험 등 금융회사로부터 받는 보증서. 선박 제작 중에 조선사가 부도났을 경우 선수금을 금융회사가 대신 물어주겠다는 보증이다. 조선사는 금융회사가 RG를 발급해야만 선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