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경제가 희망이다]로봇산업 매년 두자릿수 성장...2020년엔 210兆시장

[新경제가 희망이다]로봇산업 매년 두자릿수 성장...2020년엔 210兆시장
로봇시장 규모 2016년 915억달러서 2020년 1880억달러 예상
산업용 로봇, 車 산업에서 전기·전자 등 다른 산업계로도 확대
글로벌 기업들, 물류·의료 등 전문 서비스 로봇 시장 개척 박차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다.
하지만 미국 경제를 정작 훨훨 날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은 다른 MAGA(Microsoft, Amazone, Google, Apple)에 있다는 게 미국 경제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른바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고속 성장을 이끌고 있는 실리콘
밸리형 혁신기업들이 주인공이라는 설명이다.
오픈이노베이션, 제조업과 서비스의 결합,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의 활용, 바이오기술 혁명, 최첨단 IT기술의 오프라인
진출을 통한 유통혁신으로 대표되는 최신의 흐름들은 이들 기업들이 전개하는 시장선점 전략 과정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트렌드다. 한마디로 MAGA 기업들은 기존의 제조업 기반 경제에서 서비스가 중심된 신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며 새로운 가치사슬과 산업 생태계를 일으키고 있다.
주력 산업의 대부분이 중국에 따라잡히고, 신성장동력은 찾지 못해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도 결국 '신경제(New Economy)'에서 찾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뉴시스는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를 맞이해 '新경제가 희망이다'라는 기획을 통해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봤다.
새로운 산업과 경제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신기술 11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동향 탐색과 국내 현황 진단을 통해 우리나라의 신경제 발전 가능성을 짚었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김종민 기자 = 의학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유독 골절제의 경우 대부분 수술 전문의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의 톱을 사용한다.
뼈 절제시 흘러나온 골조직이 환부에 스며들어 회복이 더뎌질 수도 있기 때문에 외과 수술의들의 세밀하고 숙달된
손기술이 필요하다.
로봇 기술은 이 같은 골절술(骨折術, osteotomy)에 접목돼 전례없는 정밀도로 뼈 수술을 가능하게 했다.
스위스 AOT사는 세계 최초로 냉간 레이저 기술로 뼈를 절단할 수 있는 골절술 의료용 로봇 CARLO(Cold Ablation
Robot-guided Laser Ostotome)를 개발했다.
CARLO는 레이저 인터페이스의 다관절 로봇을 통해 뼈의 계측, 절단 등을 진행해 골표면 손상없이 뼈를 접합할 수
있게 한다.
수술의 편의성뿐 아니라 환자의 회복기간까지 단축시켰다.
로봇은 주로 산업용으로 사용되면서 노동인력을 대체하며 기업들의 인건비를 절감하는 역할에 그쳤지만, 의료,
엔터테인먼트 등 일상생활의 여러 분야에서의 쓰임새가 다양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글로벌 로봇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전세계 로봇시장 규모가 지난 2016년 915억달러(약 102조원)에서 오는 2020년 1880억달러(약
210조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세계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2019년 100조원 예상), 우리나라 온라인쇼핑 시장 규모(2018년 기준 약 100조원)를 넘어선다.
국제로봇연맹(IFR. 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에 따르면, 로봇 시장은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 시장으로
구분된다.
서비스 로봇시장은 가정용 로봇 청소기, 교육용 로봇 등 '일반 서비스 로봇' 시장과 물류·의료·국방·필드 로봇 등의
'전문 서비스 로봇시장'으로 나눠진다.
현재 로봇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업용 로봇은 자동차 산업 외 다른 전기·전자, 금속, 식음료 등 다른 산업계
전반에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또 물류 로봇, 의료 로봇 등 전문 서비스 로봇시장의 성장세도 주목된다.
현재 로봇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업용 로봇의 수요는 계속 늘어 2020년 55만3000대, 2021년에는 63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료=IFR '월드 로보틱스 리포트 2018') |
산업용 로봇의 경우 예전부터 주로 자동차 제조 현장의 자동화와 함께 지속 발전해왔다.
IFR이 발표한 '월드 로보틱스 리포트 2018'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전세계 산업용 로봇 판매량은 2016년 29만4300대에서 29% 증가한 38만550대에 달했다. 산업용 로봇의 수요는 계속 늘어 2020년 55만3000대, 2021년에는 63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역별로는 제조업과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중국, 일본, 한국, 미국, 독일 등 5개 국가가 지난 2017년 세계 산업용 로봇 도입량의 73%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선 2017년 한해 13만8000대의 로봇이 판매됐다.
중국은 전세계 산업용 로봇 전체의 36%를 소비하는 산업용 로봇의 가장 큰 시장이다.
산업 분야별로는 도장, 용접 작업 등의 자동화를 구축한 자동차 산업에서 전체 산업용 로봇의 33%인 12만5700대가 2017년 한해 동안 판매됐다.
또 전기·전자 분야에서도 전체 판매량의 32%인 12만1300대가 팔렸다.
전기·전자 산업에서의 산업용 로봇 판매량은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30%의 성장률을 보이며 자동차 산업에 이어 산업용 로봇의 새로운 수요처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 [EPA = 연합뉴스] |
IFR은 "전세계 산업용 로봇의 56%를 공급하는 일본 로봇업체들이 중국시장 선점에 공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중국기업과의 기술 격차가 커 일본 산업용 로봇의 중국시장에서의 입지는 한동안 계속 강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산업용 로봇의 트렌드는 지능형 시스템 구축과 플랫폼 선점으로 요약된다. 기존의 산업용 로봇에 인공지능(AI)와 사물인터넷(IoT)이 접목되며 고도화된 지능형 로봇 시스템에 의한 스마트 팩토리 구현을 목표로 하고있다.
기존 시장을 선점한 일본 로봇 업체들과의 힘겨운 경쟁이 예상되지만, 이 같은 트렌드의 변화는 산업용 로봇시장에
뒤늦게 도전하려는 우리나라 기업에겐 기회요인이 되고 있다.
산업용 로봇 외 서비스 로봇 시장 중 '전문 서비스 로봇' 시장도 크게 주목되고 있다.
전체 로봇 시장에 차지하는 비중은 금액기준으로 10% 수준에 그치지만 성장성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전세계 전문 서비스 로봇 판매대수는 전년 5만9269대 대비 85% 증가한 10만9543로, 판매액은 39% 늘어난 66억달러(약 7조4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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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에 사용되고 있는 의료용 로봇 (사진=AOT Carlo) |
전문 서비스 로봇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물류 로봇이다.
무인운반차(AGV:Automated Guided Vehicle) 등 2017년 한해 전 세계적으로 도입된 물류 로봇은 전년 대비 162%
증가한 6만9000대에 달했다.
물류 로봇에 이어 의료용 로봇도 큰 성장세를 보였다. 2017년 의료 로봇의 판매량은 전년대비 73% 증가한 2931대에
그쳤지만, 대당 판매가가 높아 판매액은 19억달러로 전체 전문 서비스 로봇 시장의 29%를 차지했다.
산업용에만 국한되던 로봇산업은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 발전과 궤를 같이 하며 물류뿐 아니라 의료 등 다양한 개인 생활용 서비스 분야로 확대·발전하고 있으며,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는 이미 현실이 됐다.
해외 기업뿐 아니라 현대차,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미래 핵심 신성장 동력으로 지목하며 사업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중국의 막대한 자금력 동원, 첨단 기술 개발에 총력
- 첨단 기술의 군사용으로의 전환용이, 방위산업의 극대화
- AI이용한 사이버 공격 등 북한의 사이버 무기도 위협적
최근 들어 무척이나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모르면 시대에 뒤쳐진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도대체 4차 산업혁명시대는 지금과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우리는 무엇을 더 배워야 하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교육방법은 개발되고 있는지 등 수많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는 경제를 발목 잡는 데는 이골이 난 것처럼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은 정치인들의 공약집과 공약을
이렇게 급변하는 신기술 시대에 한국이 부분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저해요인
한반도 내부 문제에만 매달리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다.
우리는 과거 중국을 중공(중국 공산당)이라 불렀다.
* 인공태양, 핵융합 ;
중국 중부지역의 안후이성(安徽省 : 안휘성)의 성도인 허페이시(合肥市 : 합비시) 교외에 있는 수산(蜀山 : 촉산)호반에는 지난 1998년 장쩌민 주석 시절 면적 2.6㎢의 작은 반도에 높이 3m 정도의 과학섬(科学島)이라는 글귀를 새겨 넣은 큰 돌 판이 있다. 정쩌민 주석이 당시 쓴 휘호로 알려져 있다.
이 과학섬의 대부분은 중국의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 중국과학원합비물질과학연구원(中国科学院合肥物質科学研究院)의 부지로, 2018년 11월 이 연구원의 핵융합장치에서 중국 최초의 인공태양이 완성됐다는 소식이 크게 보도되면서 이
인공태양 완성이란 원자핵과 전자가 날아다니는 플라스마의 전자 온도를 태양의 중심(약 1500만 도)의 약 7배 가까운
이 연구를 주도한 리젠강(李建剛 : 이건강)박사는 중국 언론에 핵융합에 필요한 원료인 중수소는 해수 중에 무한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론상으로는 한 컵의 바닷물이 300리터의 휘발유와 같은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꿈같은 미래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핵융합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때는 2000년 이후였다.
일본의 경우, 자연과학연구기구 핵융합과학연구소(自然科学研究機構核融合科学研究所(岐阜県土岐市) : 기후현
일본은 유럽연합(EU) 등과 에너지의 발생 실험을 실시하는 국제핵융합 실험로 “ITER" 건설도 진행하고 있다.
* 인공지능(AI), 3D프린터, 우주개발 등 ;
중국은 위에서 말한 인공태양, 핵융합기술 이외에도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입체조형기기인 3D프린터,
특히 중국 정부가 최근 공을 들이는 분야는 화약, 핵무기 제조에 이은 제 3의혁명이라 할 인공지능기술이다.
중국의 이 같은 일사천리식의 첨단 미래과학기술 연구 체계는 민간 투자를 중심으로 기술 혁신을 이루어 온 미국 등에 큰 위협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018년 5월 아마존, 구글 등 40개 기업의 간부들이 미 백악관에 모여 개최한 ‘인공지능정상회의(AI Summit)'에서 “미국 정부가 개발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왔다.
* 첨단 기술은 언제든지 군사용으로 전환 가능 ;
미국의 경제전문 잡지인 ‘포브스(Forbes)'는 201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42위에 오른 사람이 스티븐
‘인공지능에 대한 거액 투자’는 미국이 주도적 발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슈워츠먼의 발언이 트럼프 정권의 뜻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AI개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우주개발 분야도 미국과 중국이 우주패권 다툼을 하고 있다.
이에 미국이 중국에 뒤쳐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같이 미국과 중국의 과학기술 경쟁은 갈수록 점점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관 협력이든 미간 주도이든 언제든지 그러한 기술이 군사용으로 전용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미국, 서유럽, 중국, 일본 등의 치열한 미래 기술 확보 전쟁에 한국은 걸음마도 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전 세계 위협하는 러시아와 북한 ;
일반적인 사이버 공격은 물론 인공지능을 이용한 사이버 공격은 인간의 해커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자동적으로 알아서 척척 공격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I 의 활용은 성력화(省力化 : 노동력을 대폭으로 줄이는 일)에 이어 해킹 효율을 극대화시킨다는 것이다.
2017년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학생들에게 “AI 분야 지도자가 되는 사람이 세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강력히 호소하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군사장비의 30%를 AI를 탑재시킨 로봇으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총을
또 북한의 사이버 공격 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정찰총국 산하의 해커 집단의 해킹 기술도
또 북한과 미국 사이에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가운데 트럼프 정권은 유엔 등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출처 : 뉴스타운(http://www.newstow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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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김경협 의원 |
1963년 100달러를 넘어선 이래 국민소득은 55년 만에 300배로 성장했다.
▶1954년 한국전쟁 직후 1인당 국민소득 약 70달러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시가지 모습 [중앙포토, 도서 한국전쟁]](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8744ff1d-0934-4862-9af7-e850ea1e7ce2.jpg)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시가지 모습
[중앙포토, 도서 한국전쟁]
![한국전쟁 폐허속 서울 수복후 남대문시장. [중앙포토, 도서 한국전쟁]](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8b561937-b175-476c-a2fe-11631fa7dd0c.jpg)
한국전쟁 폐허속 서울 수복후 남대문시장.
[중앙포토, 도서 한국전쟁]
![1954년 남대문. '휴가장병 우슴쏙에(웃음 속에) 실지강토 밝어(아)진다'고 써 있다.[중앙포토, 사진 임인식]](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3dcc3513-0451-43ce-a63d-28c02dd234a0.jpg)
1954년 남대문. '휴가장병 우슴쏙에(웃음 속에) 실지강토 밝어(아)진다'고 써 있다.
[중앙포토, 사진 임인식]
한국전쟁으로 전국은 폐허가 됐다.
![한국전쟁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이 1954년 뉴욕에서 한국에 1000만 달러의 구호물자를 보내자고 호소하고 있다. 왼쪽에 한국 고아들의 모습을 담아 원조를 호소한 포스터가 보인다. [중앙포토, 도서 한국전쟁]](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2cad8d6f-2721-4951-a5cc-eec5b2755129.jpg)
한국전쟁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이 1954년 뉴욕에서 한국에 1000만 달러의 구호물자를 보내자고 호소하고 있다. 왼쪽에 한국 고아들의 모습을 담아
원조를 호소한 포스터가 보인다.
[중앙포토, 도서 한국전쟁]
한국전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은 1954년 미국에서 한국에 1000만 달러의 구호물자를
![LG의 전신인 락희화학공업사가 1954년 최초로 개발한 튜브형 치약. 럭키치약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25596617-7650-49c5-9711-5cacf1271d00.jpg)
LG의 전신인 락희화학공업사가 1954년 최초로 개발한 튜브형 치약. 럭키치약
[중앙포토]
![국산 1호 '부활'호. 1953년 개발을 마치고 1954년 4월 3일 김해 공군기지에서 '부활'호 명명식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cd6bcaf2-4b95-4226-9424-3fe5c5675102.jpg)
국산 1호 '부활'호. 1953년 개발을 마치고 1954년 4월 3일 김해 공군기지에서 '부활'호
명명식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 축구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해 한국이란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힘겨웠던 국민의 어깨에 힘을 보탰다.
▶1963년 국민소득 100불 돌파
1963년 숭례문. 1961년부터 2년간 해체 보수를 해 1954년 사진보다 반듯한 모습이다.[중앙포토]
전후 10년 만인 1963년 국민소득 100달러를 돌파했다.
![1960~70년대는 우리 경제의 기반이 된 중화학 공업의 키틀을 다진 시기이다. 사진은 1966년 경제개발 5개년 종합 전시관 개관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a42493db-75d1-44c1-8528-be714f48f241.jpg)
1960~70년대는 우리 경제의 기반이 된 중화학 공업의 키틀을 다진 시기이다. 사진은
1966년 경제개발 5개년 종합 전시관 개관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
[중앙포토]
1960~70년대는 한강의 기적을 탄생시킨 시기다.
국산 자동차가 양산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전화교환원. 초창기 자석식 전화기는 송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해주는 전화교환원이 필요했다.[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13e8f41d-8384-432d-b6f5-ea02b74cdc69.jpg)
1960년대 전화교환원. 초창기 자석식 전화기는 송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해주는 전화교환원이 필요했다.
[중앙포토]
1960년대 초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전경이다.
▶1977년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
![1977년 정부 시무식. 지금은 사라진 경복궁 뜰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청에서 열렸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74529520-8a2d-4b9b-b3ba-da9dbbbc4af9.jpg)
1977년 정부 시무식. 지금은 사라진 경복궁 뜰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청에서 열렸다.
[중앙포토]
국민소득 1000달러를 돌파한 1977년 정부 시무식은 지금은 사라진 구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 중앙계단 앞에서
![1977년 7월 1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3만여평 건설부지에 지상 22층, 지하 3층으로 들어설 호텔 신라 상량식이 열렸다.[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288c3bf8-e31b-46a5-9d81-552beb5c24b7.jpg)
1977년 7월 1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3만여평 건설부지에 지상 22층, 지하 3층으로 들어설 호텔 신라 상량식이 열렸다.
[중앙포토]
서울의 대표적 호텔인 신라호텔 상량식은 1977년 7월 장충동 건설현장에서 열렸다.
![1977년 대구 산격동에 문을 연 반상회 전용 공간 ‘반상회의 집’.[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69adb0ed-ce78-40ed-a506-6361aede43c3.jpg)
1977년 대구 산격동에 문을 연 반상회 전용 공간 ‘반상회의 집’.
[중앙포토]
위 사진은 1970년대 반상회 모습이다. 반상회는 주민 상호 간 친목을 도모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매월
![1977년 2월.20 년만의 강추위가 학교문을 닫게 했다. 휴교조치를 모르고 등교한 어린이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000c9639-525b-42d2-90d9-68be30184ade.jpg)
1977년 2월.20 년만의 강추위가 학교문을 닫게 했다. 휴교조치를 모르고 등교한 어린이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중앙포토]
![1977년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건설 부지에서 차력 시범이 열리고 있다.[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ed5d65cc-4329-42e4-9046-8ae6d6d5fd51.jpg)
1977년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건설 부지에서 차력 시범이 열리고 있다.
[중앙포토]
'이 약 한번 잡솨바~', '애들은 가라~' 약장수들은 차력시범 등으로 행인의 눈길을 끌어모아 만병통치(?)약을 팔기도
▶1995년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1995년은 광복 5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그 해 우리는 경복궁 뜰에 자리잡고 있던 구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29705668-ef0c-42a3-937f-a1279ab6e834.jpg)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1995년은 광복 5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그 해 우리는 경복궁 뜰에 자리잡고 있던 구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
[중앙포토]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1995년 구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6a0cbf34-03db-4921-ad5d-0948cae1fd1c.jpg)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1995년 구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
[중앙포토]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1995년은 광복 5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에서 벗어나면서 주변 환경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1970-80년대가 지나고 1995년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사진은 1995년 한강 모습. 오른쪽 위에 강변북로 일산방향의 공사가 한창이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40cd6719-ad7a-434e-bf19-da969bdca931.jpg)
한강의 기적을 일군 1970-80년대가 지나고 1995년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사진은 1995년 한강 모습. 오른쪽 위에 강변북로 일산방향의 공사가 한창이다.
[중앙포토]
위 사진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1970~80년대가 지나고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한 1995년 어느 맑은 날 여의도 너머로 보이는 한강 모습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1만 달러 돌파 후 승승장구할 것 같던 한국 경제는 1998년 IMF 외환위기로 휘청했다.
![임창열 당시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이 1997년 11월 21일 저녁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정부의 국제통화기금(IMF)자금지원 요청 결정을 공식발표하고 있다.[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3/0d2fe9c2-2961-46ad-8641-8602b3f70403.jpg)
임창열 당시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이 1997년 11월 21일 저녁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정부의 국제통화기금(IMF)자금지원 요청 결정을 공식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7년 11월 21일.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면이 연출된 날이다.
그해 12월 우리 국민은 장롱 속의 금을 모아 나랏빚을 갚는 데 힘을 보탰다.
▶2006년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한 2006년엔 수출 3000억 달러도 달성했다.
2만 달러를 넘고 2년 만인 2008년 전 세계 경제는 금융위기로 출렁거렸고 한국 경제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12년 당시 우리나라 무역은 2년 연속 1조 달러를 달성하면서 당시 이탈리아를 제치고 무역 규모로 세계 8강에
강정현 기자
[출처: 중앙일보] [서소문사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