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 27∼28일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 14년 전 약속’으로 엿보는 미국의 ‘北비핵화 선물’은? -2005년 9ㆍ19 공동성명이 2차 북미정상회담 기본틀 -“北 체제보장ㆍ경제지원” 명시ㆍ‘행동 대 행동’ 원칙도 유효
[헤럴드경제=윤현종 기자] 예상은 다양하지만, 아직 오리무중이다. 오는 27~28일 열릴 2차 베트남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뤄낼 ‘합의 수준’의 보따리 크기가 어느정도 될지 주목된다. 미국의 상응조치 ‘레벨’에 따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속도 또한 결정될 것으로 보여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북한이 ‘진전된 비핵화’를 약속할때 미국은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까. 이는 과거 북한과 주변 당사국들이 비핵화를
대가로 맺은 합의 내용과 그 원칙을 보면 미국이 제안할 ‘당근’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8일 미국의 ‘무게감 있는 상응조치’를 묻는 질문에 “(14년 전 6자회담서 체결된) 9ㆍ19 공동성명에 있던 조치를 참고하라”고 했다.
▶북미관계 정상화ㆍ주민 생활 개선=2005년 북한과 주변 5개국(한국ㆍ미국ㆍ중국ㆍ일본ㆍ러시아)은 4차 6자회담 결과로 ‘9ㆍ19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외교부 당국자는 이를 두고 “(이 성명 도출에) 2년 반 걸렸다”며 “구체적 액션플랜이 아니라 원칙”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총 6개 항목으로 구성된 9ㆍ19 공동성명에서 우선 주목할 부분은 2항이다. 2항 두번째 문장은 “북미 양국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였다”고 명시했다. 이는 작년 6월 북한과 미국이 1차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센토사 공동합의문’ 1항에도 녹아있다. 양국은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이 상응조치로 만지작 거리는 북미관계 정상화 카드에 대해 “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의 ‘입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를 위해 “양국은 북한 비핵화 진행 점검ㆍ상응조치 논의를 위해 북미 연락사무소 평양 설치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김 교수는 전망했다. 양자 또는 다자 차원의 북한 경제 지원 원칙을 언급했던 9ㆍ19 공동성명 3항도 눈여겨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3항 첫 문장은 “6자는 에너지ㆍ교역ㆍ투자 분야 경제 협력을 양자 및 다자적증진시킬 것을 약속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북한은 핵 포기 대가로 체제 보장 뿐 아니라 ‘인민 생활 수준 향상’이라는 성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한 외교 당국자의 최근 언급과 맥이 닿는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3일 CBS와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핵을 안 갖는다면,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대국 중 하나가 될 기회가 있다”고 한 바 있다.
▶2005년 ‘행동 대 행동’ 원칙 지금도 유효=9ㆍ19 공동성명 세부항목(체제보장ㆍ경제지원 등)을 아우르는 ‘룰’도 주목해야 한다는 평가다. 공약 대 공약ㆍ행동 대 행동이라는 동시 병행 원칙이다.
이 원칙의 작동여부가 북한의 전향적 태도에 달렸다는 명제는 지금도 미국의 대북정책을 떠받치고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지난 1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우리는 ‘당신(북한)이 모든 걸 다 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말한 적 없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 수준만큼 미국도 협조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면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며 대북 ‘경제 패키지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9ㆍ19 공동선언에 평화체제 관련 논의도 있었다는 것도 시사점을 갖는다.4항에선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고 명시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건은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외교 당국자는 “북한이 원하는 두 가지(체제보장ㆍ주민생활 개선) 모두 평화체제가 있어야 (실질적으로) 가능해질것”이라고 했다.
물론 ‘논의’만 될 뿐 성과가 나오는 건 시기상조라는 전문가들 의견도 만만찮다.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평화협정엔 협정문안 뿐 아니라 이에 걸맞은 보장조치ㆍ위협감소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평화협정 논의를)시작은 할 수 있지만 완료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이번 정상회담서 종전선언보다 더 나아간 ‘평화체제’라는 결과의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종전선언하고 제재도 완화” vs “비핵화 없이 동맹만 약화 우려
한반도 전문가들, 트럼프·김정은 2차 핵 담판 놓고 전망 엇갈려 카지아니스 “베트남에 文대통령·시주석 초청해 4자 종전선언해야” 힐 “트럼프는 모호한 결과 자랑하고 북한은 핵무기 계속 개발할 것"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에 대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만남 자체가 의미 있었던 1차 정상회담을 넘어 실질적 성과를 끌어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었으나, 종전선언과 제재완화 등을 주고받을 비핵화 협상의 내용을 두고는 다른 의견을 보였다.
미국 외교안보전문지인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2차 북미정상회담 전망에 대해 미국 한반도 전문가 76명에게 의견을
묻고 그 결과를 6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미국 국익연구소(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소장은“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앞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낡은 각본(old playbook)을 태우길 바란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단순명료한 평화선언과 함께 종전선언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카지아니스 소장은 나아가 “시 주석이 베트남에 올 수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초청해 (4자) 모두 서명하게 하는 게 어떠냐”며 “나아가 미국은 제재완화 패키지의 대가로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엔 1차 정상회담이 ‘리얼리티 TV쇼’에 그칠 것이라고 혹평했으나 “내가 틀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지아니스 소장은 “북한의 새로운 시작을 찾는 데 대해서 낙관론으로 옮겼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미 해군연구소(CNA)의 켄 가우스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긍정적 조치이지만 김 위원장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혜택은 제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우스 박사는 이어 “김 위원장의 핵심적 희망은 제재 완화”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일종의 양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울러 “김 위원장은 장기적 생존을 위해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있을 것”이라며 “만일 외교를 통해 제재완화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는 2017년보다 더 심각한 벼랑 끝 국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가우스 박사는 “미국의 대북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시점”이라며 “비핵화에 대한 초점을 평화체제에 대한 강조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2차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호혜를 바탕으로 이 같은 프로세스를 시작할 기회”라고 역설했다.
프랭크 엄 미국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미 실무협상에서 미국 측을 대표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달 31일 스탠퍼드 대학에서 한 연설을 거론하며 “비건 특별대표의 언급들에 기초할 때 1차 정상회담에 비해
이번 2차 정상회담에 대해 보다 낙관적”이라고 전망했다.
영변을 비롯한 플루토늄 및 우라늄 시설 전체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폐기 약속, ‘동시적·병행적’ 협상 원칙, 2차 정상회담 전 북미 실무협상을 통한 로드맵 마련, 제재해제 관련 유연한 입장 표명, 주한미군 철수 논의엔 선긋기
등이 엄 연구원 주장의 근거다.
엄 연구원은 “물론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면서도 “지난 7개월간의 협상 교착 끝에 징후들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으로 여전히 상당수의 전문가는 이번 회담이 성과를 낼 것인지에 의구심을 표했다. 북한의 핵시설 신고 및 검증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 없이 종전선언이나 주한미군 감축만 이뤄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이 경우 비핵화 성과는 없이 한미동맹만 약화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북 강경론자인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평화선언에 서명할 수
있지만, 이는 의미 없이 기분만 좋은 제스처”라며 “가시적 혜택은 얻지 못하고 한미동맹에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제거하는 딜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한국과 일본에 동맹이 괴리될 수 있다는 공포를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혹은 방위비 분담 협상 교착상황과 맞물려 홧김에
주한미군을 감축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비핵화의 대가로 북한에 ‘에스크로 계좌’ 형식의 경제 지원을 비건 특별대표가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북한은 이미 어떤 경제적 지원도 미국으로부터의 안보적 우려를 보상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내놨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1차 정상회담에서 모호한 내용의 공동성명을 한 것과 한미의 일방적 합동훈련 취소, 김 위원장에 대한 칭찬 등 세 가지 실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2차 정상회담이 “위험은 크지만 기대치는 낮다”고
내다봤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도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 본토에 대한 ICBM 위협을 제거하는 대가로
비핵화 압박을 완화하려는 신호를 주려고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은 북한을 기쁘게 하지만 한국을 위협하는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담이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북한이 국제사회 검증을 받으며 영변 핵시설을 해체하는 데 동의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북미 관계 정상화나 대북제재 완화 등이 주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향후 약속 이행을 위해
실무급 협의가 계속 이어지는 데 양국이 합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수미 테리CSIS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더 큰 양보를 얻어내려고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약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한국과 일본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1차 회담이 실속 없는 회담이었다며 이번 회담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도 있었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다음 정상회담이 북한의 핵무기 프로
그램의 종식에 더 가까워지도록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낮추라고 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목표는 비핵화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2차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실제로 비핵화는
하지 않으면서 이런 환상만 부풀리는 양보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클 그린 CSIS 부소장은 ‘속 빈 강정’(nothing-burger)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한반도의 비핵화만 약속했는데도 1차 정상회담을 북핵 위협의 종말로 예고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시나리오에서 좋은 뉴스는 북한이 더이상 도발적인 미사일과 핵 실험을 자제하리라는 것이지만, 나쁜 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주의(triumphalism)가 북한을 억제하기 위해 필요한 국제적인 제재 시스템과 군사 훈련을 약화
하는 동안 북한의 역량은 계속 확대되리라는 것”이라고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북핵 6자회담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다가오는 정상회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모두 짐작만 할 뿐”이라면서도 “지난 정상회담 이후 진전이 결여됐던 점에 비춰볼 때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은 제재완화,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모호한
진전의 결과를 들고 나타나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확고히 했다고 자랑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북한은 핵무기를 계속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확산 전문가인 비핀 나랑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정치학 교수도 “외견상으로는 향상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1차 회담과 마찬가지로 김정은은 무장을 해제하는 시늉을 하고, 트럼프는 계속 믿는 척하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봤다.
중국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미국의 동북아 전문가 고든 창 변호사는 “중국은 북한을 지원하는, 수십 년 간 지속한 정책을 갑자기 뒤집을 것 같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는 “중국은 영향력을 원하고 트럼프를 위협하기를 원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날 때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말라”고도 했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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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팰러디노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이 7일(현지시각) 오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비핵화 우선, 김정은 숨통 트일 제재 완화는 그 이후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는 비핵화 이후”라고 재차 못박았다. 이달 말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지만 김정은 국무
위원장이 갈망하는 선물을 섣불리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이룰 때
까지 유엔의 제재를 이행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지속적으로 공조하고 있다”면서 “제재 완화가 비핵화에 뒤따를 것
이라는 점을 매우 명확히 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북한의 FFVD가 여전히 미국의 목표이고 여기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FFVD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약속”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달 31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는 물론 북한이 포괄적으로 신고한 핵 시설을 해외 전문가들이 사찰하고 검증하는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한바 있다.
단순히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하거나 핵 동결에 그치는 수준으로는 어림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에 제공할 상응조치로 북미간 신뢰구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적정 시점에서의 대북투자 지원 등을 거론
했다. 2차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동시에 논의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되더라도 FFVD라고 부를 정도의 진전이 없는 한 대북제재의 고삐는 꼭 쥐고 있겠다는 의미다.
비핵화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대가로 제재를 완화해달라고 일관되게 요구해온 북한의 입장과는 차이가 크다.
정작 중요한 대북제재를 맨 뒤로 돌려놓고 북한을 애타게 만드는 건 협상을 앞둔 미국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지난해 12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내년 1월 초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우면서도 “대북제재는 변함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달 워싱턴DC를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즉각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이와 관련, 조윤제 주미대사는 “북한의 과감한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미국 측에서도 과감한 상응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 대사는 이날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27~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그에 앞서 현재 평양에서 진행되는 북미 실무협상 등과 관련해 북한의 과감한 비핵화 조치 견인을 위한 미국의 과감한 상응 조치 검토 필요성을 미국 측에 자주
설명해왔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채찍보다는 큼지막한 당근을 먼저 집어줘야 북한이 움직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다만 미국이 대북제재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앞장서 제재 완화를 요구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
이에 구체적인 상응조치로 북미 간 연락사무소 개설 등이 줄곧 거론돼 왔다. 물론 북한이 제재 완화가 쏙 빠진 내용에 선뜻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관건적 시기'라는 어느 당국자 표현처럼 앞으로 남은 기간은 향후 한반도 정세의 방향타를 결정할 중요한 시간이다. 특히 북한과 미국 협상팀이 사전에 벌이고 있는 핵심 의제 조율 결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회담의 성패를 가를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방북해 북측과 협상중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귀환 보따리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아직 협상 상황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는 등 모든 게 안갯속이다.
그러나 의제와 관련된 논의가 이번 한 번에 마무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앞으로 2차 정상회담까지 남은 기간 양측 간 후속 협상은 이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다면 정상회담 성공은 담보할 수 없다.
양측은 작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관계정상화, 평화체제 구축 등에 의견을 모았지만 이후 8개월에 가깝게 시간을 허비했다.
이제는 1차 회담 합의의 구체적인 이행 방법이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상세한 로드맵이 도출돼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북한이 취할 핵신고, 핵시설 및 핵물질 폐기·반출 등 단계별 주요 조치들의 순서와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를 조합하고 분명한 이행 시간표에 합의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질적 출발의 길이다.
큰 틀의 비핵화 로드맵 합의를 바탕으로 1단계로 양측이 취할 구체적 조치도 합의돼야 한다.
이번 실무협상에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와 이에 따른 상응조치 등이 집중 논의될 것으로 관측돼 왔다.
영변 핵시설의 폐기는 의미 있는 초기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시설 중 일부만 폐기되는 등의 조치에 그친다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실질적 의미가 큰 조치를 취한다면 미국은 인도적 지원, 연락사무소 개설은 물론 종전선언 등 상응조치를
더 과감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정상회담이 싱가포르 회담 때처럼 추상적인 결과만 내놓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한 분명한 액션플랜이 도출돼야 한다. 어중간하게 이견을 봉합하는 것은 시간을 끌뿐이다. 이를 위해 양측 협상팀은 정상회담 때까지 반드시 큰 그림을 정리한다는 목표로 '끝장 협상'을 계속 벌여나가야 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위해 만나고 있다. /싱가포르 통신정보부
트럼프 약점과 ‘부분적 비핵화’ 위험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TV로 시청한 직후 마음 한구석엔 안도감보다 우려감이 밀려왔다.
그는 미국 경제 호황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미국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불법 이민 근절을 위한 미국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을 ‘국가 위기’로 규정하고 초당적 행동을 촉구하는 모습에서 초조감이 드러났다.
러시아 스캔들 조사 결과가 서서히 옥죄고 있고, 경기도 하강 국면으로 진입할 태세이며, 지지율도 40%를 밑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적 한 방’이 없으면 올 하반기부터 시작되는 재선 캠페인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국제 환경도 만만찮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해 놓은 트럼프 대통령은 마냥 중국을 몰아
붙일 수만은 없다.
미국도 출혈을 감수해야 하므로 조만간 미·중 무역 협상에서 잠정 타협을 시도해야 할 상황이다.
안보 분야 국정연설에서도 그는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미국은 중동에서 서서히 발을 빼고
사우디와 함께 이란을 봉쇄하는 데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김정은과 2차 정상회담을 갖는다.
국정연설에서 “우리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위한 역사적 노력을 지속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상황이 계속 불리해지는 상황에서 그는 한반도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할 것이다. 좋은 일이다.
우리가 언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을 받았었던가. 역사적인 기회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북핵 문제의 ‘스몰딜’이 아닌 ‘빅딜’로 나타날 수 있는 기회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연장 선상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맞바꾸는 형태가 아니라, 북한이 가진 핵 능력을 국제 기준에 따라 신고하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적절한 보상을 통해 비핵화에 이르는 로드맵에 합의하고 6·25전쟁을 끝낼 기회다.
북한 비핵화가 첫발을 떼기도 전에 6·25전쟁이 끝났다고 성급하게 선언하는 ‘종전선언’보다,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와 함께 6·25전쟁을 제대로 끝낼 수 있는 제반 절차와 행동이 포함된 ‘종전을 위한 선언’에 합의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미국은 1차 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실무협상을 통해 타협 가능성이 보일 때 정상회담 날짜를 잡는 게 아니라, 날짜를 잡아놓고 북한과 실무협상을 벌이고 있다.
외교적 성공이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약점을 드러낸 채 북한과 협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차 정상회담 때 (북한 전역의 모든 핵 폐기 절차가 아닌)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미국이
경제 제재 완화나 종전선언이라는 선물을 준다면 북핵 문제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된다. 남북 경협이 시작되고 전쟁이 끝났는데 북한이 뭐가 아쉬워 핵 능력 리스트를 신고하겠는가. 후속 협상은 별 의미가 없다.
2018년 초에 시작된 북한 ‘평화 공세’의 전략적 의도는 미국이 감내할 정도의 ‘부분적 비핵화’를 통해 경제 제재를 해제시키고 김정은 정권에 대한 위협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정권안보를 위협하는 게 주한미군이고 한·미 동맹이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북한의 ‘조건부 비핵화’를 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