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시사

故 장자연 性상납 사건 10년···충격의 ‘판도라 상자’ 열렸다

도토리 깍지 2019. 3. 9. 10:48










ⓒ KSB '연예가 중계'






장자연씨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7일 민주평화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장자연 사건 실체를 밝히고 관련자을 단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 데일리중앙






'장자연 리스트' 유일 목격자 윤지오 얼굴 내놓고 대폭로


수사기관·유력인사 부조리 고발…

죽은 장자연이 ‘산 가해자’ 잡을까?




술자리 추행 목격한 동료 윤씨, “장자연 사건 수사 부실했다

장자연 유서 원래 없고 문건만 남겼다그 문건은 투쟁수단

     

‘죽은 장자연’이 10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평소 고인의 동료였던 탤런트 윤지오(32)씨가 고(故) 장자연의 10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3월5일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언론 앞에 나타나 “장자연 사건 수사는 부실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장자연은 지난 2009년 3월7일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글과 “배우 장자연의 피해 사례입니다”라는 문건을 남긴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해 대한민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생전의 장자연을 두고 “언니는 맑고 여린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는 윤씨는 책까지 펴냈다.


장자연 사건과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그는, 경찰과 검찰에 12번이나 불려다녔지만 진실이 거짓 속에 묻히자

장자연이 숨진 3월7일자에 맞춰 <13번째 증언>(가연)이란 제목의 책을 통해 수사 당국과 가해자들의 부조리를 세상에 고발하고 나섰다.


‘죽은 장자연’이 10년 만에 ‘산 가해자’들을 잡을 수 있을까. 윤씨가 밝히는 10년의 기록과 언론 인터뷰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 장자연 사건과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탤런트 윤지오씨가 ‘자연 언니’

사망을 이틀 앞두고 ‘마지막 증언’을 하고 나서 파장이 일고 있다.   


 ©KBS 뉴스 화면 갈무리 



 




장자연 사건과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탤런트 윤지오씨가 ‘자연 언니’ 사망을 이틀 앞두고 ‘마지막 증언’을 하고

 나서 파장이 일고 있다.

 장자연의 소속사 동료였지만 그동안 A씨 또는 ㅇ씨란 익명으로 언론에 등장했던 윤씨가 지난 3월5일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마이크 앞에 앉아 지난 10년간 거짓 속에 묻혀 버린 진실들을 조곤조곤 털어놓았다. 


장자연은 2009년 3월7일 유력 인사들의 술자리와 성접대를 강요받고 욕설, 구타를 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이 남긴 명단에는 재벌그룹 총수, 방송사 프로듀서, 언론사 경영진 등이 들어 있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바 있다. 


장자연 사건은 지난해 2월 국민 청원으로 인해 다시 주목 받았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하면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사건의 전모를 조사 중이다.

 

“피해자가 숨는 현실 한탄스러워” 
윤씨는 유력인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장자연이 당한 추행을 직접 목격했고, 자신이 보고 겪은 것을 수사기관에 진술하고 법정에 나가서 증언까지 했던 주인공. 지난해 장자연 사건이 다시 불거진 후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했으며 가명인 채로 JTBC, MBC <PD수첩>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윤씨는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지난 10여 년간 이름과 얼굴을 감춰 온 것에 대해 “부득이하게도 그렇게 살아왔다”면서 “솔직히 10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그동안)숨어 살기 급급했었다”면서 “솔직히 잘못된 것인데, 당연시 되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해외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가해자가 움츠러들고 본인의 죄에 대한 죄의식 속에 살아야 되는데, 피해자가 오히려 책임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사는 그런 현실이 한탄스러웠다”면서 “이제는 조금은 바뀌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고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윤씨는 원래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에 살고 있었다.

 연예계 일을 하고 싶어 하던 차에 캐나다에서 캐스팅이 되어 한국으로 건너왔으나 ‘장자연 사건’을 겪는 등 혼자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 다시 캐나다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윤씨는 “솔직히 내가 계속 국내에서 거주를 했다면 이런 결정(공개 인터뷰)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거주하면서 본) 캐나다 같은 경우는 피해자나 가해자의 이름과 얼굴이 다 공개가 된다”고 전하면서


 “그런 것이 당연시 여겨지고, 피해자가 숨어서 사는 세상이 아니라 존중을 받는 것을 보면서 어찌 보면 한국도 그래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가해자들이 너무 떳떳하게 사는 걸 보면서 좀 억울하다는 심정이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유서는 없고 문건은 있다” 
윤씨는 이날 ‘장자연 문건’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며 “유서는 없고 문건이 있었다”는 새로운 증언을 내놨다. 

이른바 ‘장자연 문건’은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세상에 남긴 유서로 알려져 있다.

이 문건은 유가족과 해당 문건을 가지고 있던 기획사 측 등이 모여 소각했다.

그러나 장자연 사망 일주일 후 KBS가 “쓰레기통을 뒤져 찾았다”며 문건 내용을 보도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윤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유서가 단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만약

 싸우기 위해서 작성된 문건이었다면 유서를 남기면서 ‘이런 문건이 있다’고 명시를 한다든지 그 문건 자체를 더 쓸 텐데 그러지 않았다”고 설명해 장자연이 소속사를 나오기 위해 문건을 작성한 후 싸우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임을 암시했다. 


윤씨는 “언니가 가고 싶어 했던 기획사 대표를 장례식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 문건에 대해 듣게 됐다”면서 “(장자연이 가고자 했던)기획사의 대표도 그 문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혼자 보려고 문건을 작성한 게 아니라 그 당시 소속되어 있던 기획사를 벗어나 새로운 기획사로 가려고 했지만 기존

소속사에서 놓아주지 않자 ‘당신들이 나에게 이런 일까지 시키지 않았냐’며 정리한 문건을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해당 문건의 존재는 기존 소속사도, 새로운 기획사도 알고 있었으며, “누가 유서를 쭉 나열하고 지장을 찍고

 그러겠느냐” “살기 위해, 법적으로 싸우기 위해 만든 문건이며 그 문건은 다른 누군가가 갖고 있고, 공개를 다른

 분이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진행자가 ‘죽음에 관한 새로운 정황인 것 같은데 이 내용을 혹시 조사위에서도 이야기했느냐’고 묻자 “(문건에

 대한)생각을 말하는 건 처음”이라면서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장자연이 문건을)왜 작성한 것 같으냐라든지 그런 질문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문건을 왜 작성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그 질문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윤씨는 이어 “리스트 자체에 거론된 인물들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므로 그 문건을 세상에

알린 분도 걷잡을 수 없이 (파문이 커지자) 혼자 감당하기 버거워서 ‘지오 네가 이걸 갖고 있다 공개했다고 이야기를

해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고 밝히면서 “그 당시 녹음을 한 것도 경찰·검찰에 넘겼다”고 말했다. 

 

 

소각 전 장자연 리스트봤다동일한 의 언론인 3명 등장

장자연이 옮기려던 기획사 대표도 장자연 문건은 유서 아닐 것


 




▲ 장자연은 지난 2009년 3월7일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글과 “배우 장자연의 피해 사례입니다”라는 문건을 남긴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해 대한민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SBS 뉴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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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姓 언론인 3명 이름 봤다” 
윤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소각되기 전 ‘장자연 명단’을 본 적이 있다”고 증언하면서 “당시 (소속사) 대표가 유가족에게 문건을 전달하기 전에 먼저 보여줬다.

현재 거론되는 언론사 관계자들의 이름이 있었다. 동일한 성을 가진 세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증언했다. 


윤씨는 ‘소각됐다고 알려진 장자연 문건을 직접 보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당시 문건을 공개한 소속사 대표가 유가족과 원활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중간에서 전달자 역할을 했다”면서 “(소속사 대표가)‘자연이가 남긴 글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서 가게 됐고, 유가족들이 보기 직전에 내가 먼저 확인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사회자가 ‘명단에 거론되는 이름들이 아주 많은데 그중 대표적으로 언론사 관계자들 이름이 계속 거론되지 않는가, 그분들 이름도 거기서 봤느냐’고 묻자 “봤다”고 짧게 답한 뒤  “딱 한 차례 봤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 나는 이름도 물론 있고 아닌 이름도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언론사의 동일한 성을 가진 세 명이 거론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윤씨는 경찰과 검찰, 과거사 조사위 등 13번의 조사를 받는 동안 소각되기 전 문건에서 한 언론사의 세 사람의 같은

성씨를 가진 언론인들의 이름을 본 것에 대해 “사실에 근거해서 항상 성실하게 대답을 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진행자가 ‘같은 성씨를 가진 세 명의 언론인과 같은 언론사에 근무한 적이 있던 전직기자가 술자리에서 장자연을 성추행하는 것을 직접 봤다는 내용을 (수사기관에서)진술했느냐’고 묻자 “그렇다”면서 “내 기억 속 인물은 단 한 번도 번복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21살인 내가 느끼기에도 수사가 굉장히 부실하게 이루어졌고, 당시 나에게 건네준 사진 속에는 조씨(전 조선일보 기자 조모씨 지칭)가 없어서 지목을 하지 못했다”면서 수사당국 조사과정에서 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본인도 그 자리에서는 이름을 들은 게 아니기 때문에 조금 헷갈렸는데 머릿속에 있는 인물은 “항상 동일한 인물

이었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2009년부터 10년간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13차례나 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보고 겪은 것을 수사기관에 진술하고 법정 증언에 나섰던 대가는 혹독했다.

윤씨는 “매번 밤 10시 이후, 새벽에 경찰과 검찰로부터 불려갔다.


당시 21세인 내가 느끼기에도 수사가 부실했다”며 “조사가 끝나고 경찰 측에서 집에 데려다 줄 때 항상 미행이

 붙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이사도 여러 차례 했다”며 "“장자연 사건을 증언했다는 이유로 캐스팅에서 제외됐다는

 이야기를 감독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도 했다. 


이날 윤씨는 진행자가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언론사 관계자 이름 때문에 언론사가 뒤를 쫓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지자 “수사가 몇 달이 진행되고 나서는 아예 미행처럼 따라붙었다”고 답했다.

한편 윤씨는 2009년 장자연씨가 출연한 KBS 2TV <꽃보다 남자>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이후 MBC <선덕여왕>, KBS 2TV <드라마 스페셜-사백년의 꿈>, 영화 <회초리> <너는 펫> 등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중학생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윤씨는 귀국해 한양대 대학원 국제경영 ‘최연소 MBA 석사’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연기를 펼치던 윤씨는 2012년 연극 <뉴보잉보잉>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윤씨는 현재 모델테이너로 라이브 스트리머, 플로리스트, 플랜테리어 디자이너 강사로 활동 중이며, 오마벨(Omabell) 대표를 맡고 있다.  
    
“장자연 문건은 유서 아닐 것” 
윤씨가 인터뷰를 한 다음날인 3월6일 오전 장자연이 기존의 소속사를 떠나 옮기려고 했던 새로운 기획사의 대표 김남형씨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장자연 문건이 유서가 아닐 것”이라는 주장을 펴며 장자연 리스트는 유서가 아니라 투쟁의 수단이었음을 암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도 연예기획 일에 종사 중인 김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어제 방송에서 장자연씨 문건이 왜

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 진실을,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을 말하기 위해 출연했다”면서 “떳떳하기에 실명

공개 등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지인이 ‘괜찮은 연기자가 있다’는 말을 했고, (장자연씨를) 만나게 됐다. 지인과 함께 만난 날엔 드라마를 하던 중이었다.

현재 소속된 기획사와 잘 끝내기로 했다”며 “그 자리에서는 이야기만 좋게 오가고 헤어졌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이어 “이후 전화에서는 당시 소속사와 위약금으로 계약 해지 관련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고 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 위약금이 높아졌다고 하여 (분쟁을 피하기 위해) 완전히 잘 끝내고 오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장자연)문건의 성격이 유서가 아닌 걸로 알고 있어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라며 “본인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문건을 쓴 날 장자연이 전화를 걸어 왔다.

그래서 ‘남겨두면 배우 인생에 문제가 되니 도로 받아 오라’고 했다”면서 그리고 일주일 후, 장자연씨가 사망한 날

“해당 문건을 보았다”고 털어놨다. 


진행자가 ‘장자연씨가 당시 어떤 의지를 갖고 있었는지는 거론된 바가 없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이게 중요

하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데 대한 이야기가 없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하자 김씨는 “딱 한 마디만 더 하고 싶다”며 “장자연씨가 문건을 쓴 과정보다는 문건 내용에만 관심이 쏠려 있어 유가족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술접대 등에만 초점을 맞추면 고인과 유가족이 두 번 죽는 상황이 된다”고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gracelotus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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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윤지오 SNS 갈무리)



 


윤지오가 책에서 밝힌 나와 장자연 




“언니를 외면할 수 없어 다시 진실 밝히기로 했다” 

-“가해자 분명 존재하는데…이제는 잘못 저지른 이들 단죄할 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간혹 예상치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고는 한다.

가장 큰 고비는 스무 살 무렵에 찾아왔다. 단단하게 여물지도, 사리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던 때도 아니었다.

 장자연 언니의 죽음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슬픔이었다.

 언니의 죽음이 남긴 숱한 의문은 나를 오랜 시간 옥죄었다.


 사실이 규명된 것은 별로 없었고, 내 진술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유야무야 덮이고 말았다.

죽음으로 항변했던 언니의 억울함을 그 누구도 시원히 밝혀주지 않았다. 


○…나는 경찰과 검찰에 나가 열두 번이나 진술했다.

또한 피의자들과 대질 신문도 했다.

당시는 아르바이트와 학업 그리고 일을 병행해야 하는 때였지만, 내가 당연히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니면 진실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받는 동안에 겪었던 마음고생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조사 후에도 아주 오랜 기간 고통스러웠다.

정신과 입원 치료까지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9년의 세월이 흘렀다.

 많은 국민들의 청원에 힘입어 재수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다시 증언대에 서야 했다.

나의 고통을 알 리 없는 누군가는 내가 유명세를 얻기 위해 증언대에 선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고 그보다 더 심한 말로 나를 모욕했다.


가족은 나의 고통을 생생히 지켜봐 왔기에 이번에는 증언을 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죽음으로 항변했던 자연 언니에 비한다면 나의 고통은 감내해야 했다.

나는 언니를 외면할 수도 잊을 수도 없다. 그래서 다시 진실을 증언하러 한국으로 돌아왔고, 진실을 밝혀야만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미 훌쩍 시간이 지나버린, 10년 전 그때의 일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묻는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제일 처음 경험한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의 나는 그저 꿈이 좌절될까 두려워하던 연예인 초년생이었다.


 사회에 나와 생경하기만 했던 첫 경험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 기억 속에는 그때의 모든 일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 일 이후 연예계에서 퇴출 아닌 퇴출을 당했고 힘든 세월을 겪어내며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숨어 살듯

 숨죽여 지내야만 했다.

나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되었고, 계속되는 트라우마로 힘겹게 살아왔다.


다리가 없는데 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목소리를 내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려 해도 아무런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그런 기분.

설사 그렇게 소리를 내지른다 해도 그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는 그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나는 억울했다.

하지만 언니의 죽음 뒤에 서 있던 그들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시간이 흘러 다시 증언대에 올랐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가해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가해자 없는 피해자가 있을 수 있을까? 시간이 피해자의 고통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해자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두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단죄해야 할 때다.


○…올해는 자연 언니의 사망 10주기다.

 늘 나를 “애기라고” 불렀던 사람….

자연 언니가 이제는 진정한 안식에 들길 바라면서 글을 썼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이 무거운 짐을 내 삶에서, 내 어깨에서, 내 머릿속에서 털어내고 싶다.

 그간 나를 따라다니던 ‘장자연 사건의 목격자’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은 법정에 설 이유가 없기를 바란다. 


○…거짓 속에 묻혀있던 진실이 내 마지막 증언으로 세상 속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것은 언니와 나를 위한 진실의 기록이다. 또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의 기록이며, 언니도 나도 맘껏

꿈을 펼치며 나아갈 수 없었던 그 길에 대해 아쉬움과 미련을 담은 기록이다

 

 











사진 : 방송캡쳐





   
故 장자연 性상납 사건 10년···충격의 ‘판도라 상자’ 열렸다


우일한 증인 유지오가 거론한 국회의원은 누구?
사건 이후 13차례 참고인 조사 받은 윤 씨 “캐스팅 제외됐다는 얘기 들어”
‘부실 수사’, ‘진실공방’ 재점화···문건에 등장한 ‘동생’, 윤 씨 “내 얘기일 것”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장자연(1980~2009)씨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다.
아직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최근 탤런트 윤지오(32)씨가 동료 장 씨의 죽음에의문을 제기해 사건을 환기했다.
윤 씨가 10년 만에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장자연 사건 수사는 부실했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이했다.


윤지오 씨는 지난 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피해자는 숨고 가해자는 떳떳한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면서 “언니의 진정한 안식을 바란다”고 말했다.

윤 씨는 10년 전 고인이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때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각되기 전 ‘장자연 명단’ 일명 ‘장자연 리스트’를 본 적이 있다며 “당시 대표가 유가족에게 문건을 전달하기 전에
먼저 보여줬다.
현재 거론되는 언론사 관계자들의 이름이 있었다. 동일한 성을 가진 세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언급했다.

윤 씨, 참고인 조사 후“항상 미행 붙었다”

장자연 씨는 지난 2009년 유력 인사들의 술자리와 성접대를 강요받고 욕설, 구타를 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 씨의 유서에는 31명에게 100여 차례 이상 술접대와 성상납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인이 남긴 명단에는 재벌그룹 총수, 방송사 프로듀서, 언론사 경영진 등이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당시 장 씨의 전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만 재판으로 넘겨지고, 의혹을 받았던 유력인사 10여 명은 무혐의 처분을 받아 의혹의 여지를 남겼다.

지난해 공소시효 종료 두 달을 남기고 장 씨 죽음의 진실을 밝혀 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20만 건 이상의 동의를 받아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공소시효를 떠나 과거 수사에 미진한 부분은 없었는지 법무부 과거사위원회와 검찰 진상조사단에서 의혹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변했다.
이에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재수사를 권고해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종결 9년 만에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여러 언론사에서 장 씨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보도됐으나 언급된 인물들은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입을
모았다.
진실공방이 진행되는 가운데 윤 씨의 등장으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이했다.

윤 씨는 ‘장자연 명단’을 두고 고인이 소속사를 나오기 위해 작성한 문서라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도 유서 한 장이 없었다.
 누가 유서에 명단을 나열하고 지장을 찍겠는가. 살기 위해, 법적으로 싸우기 위해 만든 문건”이라고 강조했다.

윤 씨는 장 씨 사건과 관련해 13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매번 밤 10시 이후, 새벽에 경찰과 검찰로
부터 불려갔다.
 당시 21세인 내가 느끼기에도 수사가 부실했다”면서 “조사가 끝나고 경찰 측에서 집에 데려다 줄 때 항상 미행이
붙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후)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이사도 수차례 했다”며 “‘장자연 사건을 증언했다는 이유로 캐스팅에서
제외됐다’는 이야기를 감독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원‘실명 공개’ 집중

윤 씨는 지난 7일에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자신이 목격한 장 씨의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은 장 씨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윤 씨는 “한 번도 (장 씨의 피해 상황 진술을)회피해 본 적이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저에게는 소중한 언니였기 때문에 함부로 언니 이름을 입에 담는다는 것 자체도 굉장히 죄송스러운 일이었다”고 울먹였다.

이날 윤 씨는 지난 2008년 8월 5일 장 씨와 함께 참석한 소속사 사장의 생일 파티 자리에서 목격한 일들을 전했다.
 장 씨는 “회사 직원과 동생이 빤히 바라보고 함께하는 접대 자리에서 나에게 얼마나 X같은 XX짓을 했는지 정말 생각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는 내용의 친필 문서를 남긴 바 있다.
윤 씨는 해당 문건에 나오는 ‘동생’을 자신으로 추측했다.

윤 씨는 “언니가 그 당시 흰색 미니 드레스를 입었고 굉장히 짧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당시 기자였던 조모씨가
강제로 언니를 무릎에 앉히고 추행했다”고 설명했다.
 ‘방송에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성추행이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장 씨의 유서에 대한 목격담도 또 한 번 전했다. 그는 “유서가 4장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며 “(언론에) 공개
되지 않은 것들까지 봤다”고 말했다.
유서에는 장 씨가 받았던 부당한 대우에 대한 호소와 한 페이지 넘는 분량의 이름들이 나열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윤 씨는 또한 ‘장자연 명단’에 국회의원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고 밝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윤 씨는 자신이 본 국회의원 이름에 대해 “좀 특이한 이름이었다.
 일반적인 이름은 아니었다”면서 “경찰, 검찰 쪽에서 먼저 공개를 해 주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현재 누리꾼의 상당수가 ‘실명 공개’로 반응이 모아져 결과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들은 “특이한 이름 국회의원의
이름을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하라”, “18대 국회의원 명단을 살펴봐야 한다” 등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윤 씨는 지난 5일 ‘13번째 증언’을 출간하기도 했다. 소개글에서 “(13번째 증언에 담긴) 잔혹동화 같은 이 이야기가
 바로 지난 내 삶이다.
자연 언니와 함께했던 시간은 기껏해야 1년 남짓, 하지만 나는 그보다 10배가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언니를 잊지
못했다”면서 “내가 알던 자연 언니는 맑고 여린 사람이었다.

그런 언니가 남몰래 받았던 상처, 그리고 쓸쓸히 자신의 손으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그 고통까지는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고 적었다.

이어 “올해로 언니의 사망 10주기가 됐다. 한때는 같은 길을 걷는 친구였고, 어린 나를 세심히 챙겨주며 웃던 언니였다. 나이 사십이 되고, 오십이 돼도, 그보다 더 많이 나이를 먹어도 배우이고 싶었던 사람, 장자연. 미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자연 언니 앞에 흰 장미 한 송이를 바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고 했다.

한편 법무부 산하 과거사위원회는 지난해 장 씨 사건을 검찰에 재수사하라고 권고해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이번 윤 씨의 폭로로 명단에 있었다는 국회의원의 실명이 거론될지, 새 국면을 맞이한 사건이 이번에는 낱낱이 파헤쳐져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

출처 :
일요서울(http://www.ilyoseoul.co.kr)













고 장자연(좌) 사진=연합뉴스 







13번째의 증언 - 2009년 3월 7일, 그 후 10년
윤지오 지음/가연/1만3800




         

장자연 사건’ 목격자가 밝힌 10년의 기록



“올해로 언니의 사망 10주기가 되었다. 잔혹동화 같은 이 이야기가 지나간 내 삶이다.

 자연 언니와 함께했던 시간은 기껏해야 1년 남짓, 하지만 나는 그보다 10배가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언니를 잊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라고 들었다.

 지금도 나는 언니의 죽음을 견뎌내고 있다.

나를 ‘애기야’ 하며 다정하게 부르던 그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언니의 내민 손을 미처 깨닫지 못해 못 본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과 회한으로 나는 13번의 증언을 했다.

 그것이 살아남은 내가 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알던 자연 언니는 맑고 여린 사람이었다.

그런 언니가 남몰래 받았던 상처, 쓸쓸히 자신의 손으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그 고통까지는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사건이 일어난 후 한국을 떠나오고부터는 정작 단 한 번도 언니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지 못했다.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그동안의 침묵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그리고 이제는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

장자연 사건과 리스트의 목격자인 윤지오가 밝히는 10년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성접대 의혹 사건 속 세상을 떠난 배우 장자연의 동료배우 윤지오 씨가 본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면서 이 책을 냈다. 윤씨는 한 방송에 출연해 고인 유서에서 동일 성씨를 지닌 언론인 3명의 이름을 봤다고 했다.          


윤씨는 “그 당시 21살이었던 제가 느끼기에도 수사가 부실하게 진행되었다”며 “조사도 늘 늦은 시간(빨라야 밤 10시)에 시작되었으며 수사관들은 다 남자였다.

그들은 내가 진술할 때 비웃기까지 했다”고 했다.


 윤씨는 “피해자가 오히려 책임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사는 그런 현실이 한탄스러워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며

“(장자연)문건이 왜 작성됐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책 출간과 동시에 실명과 얼굴이 알려져 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겠다고 저자는 두려워했다.

 장자연 성접대 의혹 사건은 2009년 경찰이 수사했지만 부실 수사 의혹이 불거져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재조사 중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故 배우 장자연의 동료 윤지오가 SNS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겨 이목이 쏠리고 있다.


[SBS 방송화면 캡처]



장자연, 테이블 올라가" 목격자 윤지오, 그날 뭘 봤나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언니가 테이블 위에 올라간 것도 처음 보았고, 그렇게 테이블에 올라간 언니를 누구도

 만류하거나 안전하게 내려오는 조치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강압적으로

 언니를 끌어당겨 무릎에 앉혔고 성추행까지 이어졌었습니다”


성접대 강요 등을 폭로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장자연 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 씨가 7일 오후 ‘KBS’ 스튜디오에 출연해 장 씨가 성추행을 당하던 순간을 증언했다.

이날은 장 씨가 세상을 떠난 10번째 기일이다.


그는 2009년 3월7일 성접대 강요 등을 폭로한 문건을 남기고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경찰 수사 결과 처벌받은 사람은 소속사 대표와 전 매니저 둘뿐이었고, 성접대와는 관련 없는 폭행 등 혐의만 적용

됐다.


성접대 대상으로 거론된 인물들은 현재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 가운데 윤 씨의 증언에 세상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윤 씨는 이른바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다.





배우 윤지오 인터뷰.사진=KBS뉴스 캡처


배우 윤지오 인터뷰.


사진=KBS뉴스 캡처          



“장자연 문건, 연예 언론 재계 인사들 나열”

윤 씨는 ‘KBS’에 출연, 장 씨와 동료 배우 관계였다면서 소속사를 들어가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소속사에서 신인 배우는 자신과 장 씨가 유일했다며 이런 이유로 각별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장 씨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문건을 보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대표의 지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님께서 자연이가 너희에게 쓴 말이었다,

네가 와서 확인을 해야 한다 라고 말씀을 해주셔서 그 자리에 가게 됐습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문건 내용에 대해서는 “이름들이 쭉 나열된 한 장이 넘는 리스트가 있었고 고인이 된 언니가 심적으로 겪어야만 했던

 고통을 토로한 문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7일 CBS 라디오 에 출연해 장씨가 남긴 문서 7장 중 소각된 것으로 알려진 3장에 연예계, 언론계, 재계 인사들이 나열돼 있었다며 “특이한 이름의 국회의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건 중 ‘조선일보 사장의 이름도 있었습니까’라는 앵커 질문에 “저는 현재 어떠한 신변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태여서 말씀을 섣불리 드릴 수 없다는 점을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답변을 하지 못했다.


“테이블 위 장자연 강압적으로 무릎에 앉혀”

윤 씨는 장 씨가 성추행을 당하던 상황에 대해 “가해자를 본 것도 그 날이 처음이었고 저에겐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뚜렷하고 명확하게 기억을 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언니가 테이블 위에 올라간 것도 처음 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게 테이블에 올라간 언니를 누구도 만류하지 않았다”면서 강압적으로 언니를 끌어당겨 무릎에 앉혔고 성추행까지 이어졌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윤 씨는 당시 경찰 조사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우선 제가 수사를 이뤄가는 시간 자체도 굉장히 늦은 저녁

 밤부터 이어졌고, 질문 또한 본질적인 질문, 핵심적인 질문 요지가 아닌 전혀 관련되지 않은 여러 가지 질문이 오가고 있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인터뷰 말미 윤씨는 “무엇보다 재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사건을 재조명해주신 23만5796명의 국민청원을 해주신 분들과 지금까지도 이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여성단체들이 고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월 여성단체들이 고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음주 대검 진상조사 결과 나와

당시 경찰은 문건에 등장한 20여 명 중 소속사 대표 등 7명을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소속사 대표와 전 매니저만 기소했다. 특히 술자리 강요와 성접대 등 핵심 의혹에 대한 혐의는 인정하지 않은 채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만 적용했다. 결국 두 사람만 법원에서 집행유예형을 받고 사건이 종결됐다.


이런 가운데 장씨 사건은 문재인 정부 들어 출범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와 그 조사기구인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이하 조사단)의 조사대상에 올랐다.

조사단에 따르면 장 씨 사건 부실 수사 의혹은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경찰이 장씨 사망 1주일 장씨 주거지와 차량을 압수수색했지만 그의 옷방과 핸드백은 수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는 과정에서 장씨 휴대전화 3대의 통화기록 원본과 디지털 포렌식 결과 등 핵심 증거들이 빠졌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조사단은 장씨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의심받은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에 대해 지난해 말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과거사위는 이르면 다음주 조사단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사단의 발표 보고서에는 장 씨 사건에 대한 △증거 누락, △조사 미흡 등 검·경 부실수사에 대한 지적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 대법원 전경

 ⓒ뉴시스




장자연 사건과 특권사회




검찰 과거사위 이달 내 조사 결과 발표 예정...

 '법관 비리 사건' 은폐한 법원 진실 밝힐 수 있을까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꿈 많던 20대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권력을 가진 특권층 남성들에 의해 꿈과 희망이 짓밟힌 배우는 죽어서도 구천을 맴돌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눈물로

하소연하고 있는 것 같다.


고 장자연 씨는 29살이던 2009년 성접대 대상 명단인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의혹만 남기고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장자연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고인의 동료배우인 윤지오 씨는 최근 자신의 실명까지 밝히며 수사기관의

부실수사를 비판했다.


윤 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 리스트에는 국회의원과 언론사 고위층이 등장하고, 전직 <조선일보> 기자가 성추행을 했다는 목격담도 나온다.

수사기관은 왜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을까. 부실수사 의혹을 받은 이 사건은 검찰 과거사위원회로 넘어가 이달 말 진상조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과연 이번에는 진실이 밝혀져 장 씨의 원혼이나마 달래줄 수 있을까.


법치사회를 유지하는 중추기관, 수사기관이 특권층에 휘둘리면 진실은 사라지고 의혹만 남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에서 이미 배웠다.

진실의 희생은 일반 시민의 인권 유린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장자연 사건에 일반시민이 분노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법원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했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후진국은 법원의 법관들마저 타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우크라이나와 함께 사법부 신뢰도가 최하위권을 기록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대법원이 별도의 테스크포스팀(TFT)까지 만들어 타락한 부장판사의 범죄 사실을 축소하기 위해 운영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한겨레> 등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를 통해 2016년 당시 ‘정운호 게이트’ 사건에서 정수현 부장판사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자 ‘법관 비리 사건’의 은폐‧축소를 시도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검찰 수사 정보를 공유하면서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판사와 접촉해 영장전담판사에게 들어오는 수사 정보를 빼내도록 지시했다.


이런 부당한 지시를 판사들이 10차례나 수사 관련 기밀을 빼내 법원행정처에 전달했고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주요 피의자인 김 판사는 뇌물공여자를 찾아가 허위진술을 부탁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불법으로 수집된 관련 정보를 영장전담 판사에게 보내 영장심사 가이드라인으로 활용까지 했다는 것이 보도의 주요 내용이다.


판사가 뇌물사건에 연루되자 대법원이 나서서 법정의를 스스로 훼손한 놀라운 사건이다. 일반 국민에게는 ‘법 앞의

평등’ ‘법집행의 공정성’을 주장하며 강력한 법의 파괴력을 추상같이 해내는 법원이 자기식구가 연루되자 내부적으로

 이반법치주의 행태를 벌이는 데,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앞장섰다는 것은 사법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사건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법관 한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법적 지위를 갖고 오직 법률과 양심에 의해서만 재판을 하도록 신분을 보장하고 있는데, 소수의 양심적인 판사들 외에는 대다수는 부당한 지시에 승복했다는 점이다.

힘없는 일반 시민에게는 무시무시한 판사들이 동료판사의 비리나 대법관의 부당한 지시에는 법정의나 양심을 저버렸다는 점이다. 이들의 부도덕한 직업관은 판사직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재판 자체를 불신하게 만든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징계 대상 법관들의 이중 잣대는 시민의 공분을 부르는 두 번째 이유다.

 이런 판사들에게 재판을 받게 되면 법정의보다 힘의 논리, 특권층을 대변하는 변호사의 논리에 일반인들이 기대하는 진실을 밝혀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사기관과 법원 등 사법부의 타락은 비록 일부라고 하더라도 법정의를 실종시키고 소시민의 인권을 하찮은 것으로

전락시켜 특권사회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법치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퇴행하게 되는 법이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은 사법부의 절대적 신뢰를 전제로 한다.


민주 시민이 분노해야 할 세 번째 이유다.

언론은 그동안 수사기관의 문제에 집중했을 뿐, 판사의 비리나 판결 내용, 양형의 적정성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감시가 느슨했다.

일부 판사의 일탈조차도 용납해서는 법치주의를 구현할 수 없다.


 더구나 대법원, 대법관의 일탈행위나 불법행위는 취재도 어렵지만 제보를 받더라도 용기 있게 보도할 수 있는 언론이 얼마나 될까.

특권사회는 특권층에게만 살기 좋은 세상이다. 법도 제도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특권층의 일탈, 불법행위에 언론 감시 역할이 더욱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언론 스스로 권력층 행세를 하는 일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절망 속에 젊은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가해자들은 여전히 건재하며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피해자도 있고 목격자의 분명한 증언도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장자연 리스트 관련자들을 뒤늦게 기소하더라도 특권판사들이 과연 법과 양심에 따라 제대로 판결할 수 있을까.

 타락한 일부 법관, 대법관의 비굴한 모습이 던지는 현실이 왜 사법부 개혁이 필요한가를 웅변한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사진: Y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