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정호성 90분 녹음파일
강성휘기자 yolo@donga.com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지난 1월10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소환되고있다.
사진공동취재
박근혜-최순실-정호성 90분 녹음파일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 작성 회의…
박근혜 ‘침묵’ 최순실 ‘지시’ 정호성 ‘받아쓰기’
국정농단 주역인 최순실씨가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90여 분짜리 녹음파일 전체를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리기 직전인 2013년 2월에 서울 모처에서 녹음된 것이다.
녹음 당사자는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다.
즉 ‘정호성 녹음파일’ 중 하나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파일은 두 개다.
하나는 1시간9분30초, 또 하나는 16분49초 분량이다.
합하면 1시간26분19초에 달한다.
그동안 박근혜·최순실 재판 과정에서 파일 일부가 법정에서 공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취임사 관련 녹음파일 내용이 언론에 전부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녹음파일 속 등장인물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정 전 비서관 등 3명이다.
이들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작성한 취임사를 놓고 대폭 수정을 가했다.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취임사 관련 비선(秘線) 회의를 주도한 이는 최씨였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공식 참모들이 머리를 맞대 작성한 취임사 초안을 박 전 대통령과 정 전 비서관에게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국정 철학과 운영 방향 등에 관한 메시지를 거침없이 제시했다.
최씨의 이날 의견은 박 전 대통령 취임사에 실제로 상당 부분 반영됐다.
특히 4대 국정 기조 중 핵심인 ‘경제부흥’ 부분은 최씨의 메시지와 주장이 거의 그대로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녹음파일을 들으면 도대체 누가 대통령 당선인인지 헷갈릴 정도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 말을 중간에 자르고 불쑥불쑥 끼어드는 건 예사였다.
박 전 대통령의 애매모호한 선문답(禪問答)식 발언을 정리하고 재해석해 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심복인 정 전 비서관은 최씨 앞에서 잔뜩 주눅 든 자세로 최씨의 메시지를 받아 적었다.
그는 때때로 최씨로부터 불호령을 듣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최씨를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최순실, 朴 취임사 초안 보더니 “쓸모없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취임사 준비를 위한 별도의 조직을 만들지 않았다.
정치적 동지, 학자 등으로 취임사준비위원회를 꾸린 이명박·노무현·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과 다른 행보였다.
당시 일부 언론은 박 전 대통령이 취임사를 직접 썼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정호성 전 비서관 녹음파일에 따르면, 당초 대통령직 인수위원 등으로 구성된 실무진이 준비한 취임사 초안은 최순실씨가 모두 갈아엎었다.
정 전 비서관 녹음파일 속 다음 대화 내용에 이 같은 정황이 담겼다.
최순실씨(이하 최): 팩트가 있어야지, 정확하게 딱 내지르는 메시지가 있어야 되는데. (초안은) 부사적이고 드라마틱도 아니고, 어떡하지. (중략) 이게(초안이) 다 별로인 것 같은데,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공약을 나누는 건….
정호성 전 비서관(이하 정): 공약이 아니라 이번에 인수위에서 죽 해 온….
최 그게 공약이지 뭐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 이건 그런 국정과제를 얘기하기엔 너무 좀 쪼그라들어가지고….
최 (한숨 쉬며) 이거 봐. (취임사 초안에서 복지 정책 관련 내용을 읽으며) 이런 게 취임사에 들어가는 게 말이 돼? 너무 말이 안 돼. (고용 정책 관련 내용을 읽으며) 어유….
(중략) 잘 써야지. 이건(초안은) 완전 공약 푼 거거든.
정 (역대 대통령의) 모든 연설문들이 그렇게 구성돼 있습니다.
자기가(대통령이) 인수위 동안 했던, 그리고 앞으로 5년 동안 할 국정 어젠다 그런 것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회의할 때 (취임사 구성에서) 서두, 마무리 있고 중간은 어차피 5년 동안 어떻게 갈 건지 국정기조 이런 것들을 놔야 되는데, 인수위 내용들을 다 모아서….
최 짜깁기, 딱 보면 모르냐고. 짜깁기해서 그냥 갖다 붙여가지고. 이거는요, 취임사가 아니라 저기 무슨 경제장관회의, 총선에서 어디 나가서 얘기해야 되는 거지.
내가 보기엔 이거는 하나도 쓸모없다고 봐. (중략) (정 전 비서관에게) 이렇게 늘어지는 걸 취임사에 한 줄도 넣지 마.
핵심 국정기조 ‘경제부흥’은 최순실 작품
최씨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이었던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이후 박근혜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후 청와대 경제수석) 등 핵심 실무진이 작성한 초안에 대해 ‘별로’라고 깎아내렸다.
실무진 버전은 박 전 대통령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등 양대 선거를 거치며 국민에게 공약해 온 내용을 전면에 내세
웠던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 정 전 비서관 앞에서 초안 속 ‘복지 관련 서비스 통합’ ‘고용 창출’ 등에 관한 문구를 읽으며
“이런 내용이 취임사에 들어가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평가절하했다.
잔뜩 주눅 든 정 전 비서관이 역대 대통령 취임사도 초안과 비슷한 구성이라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최씨는 재차
“짜깁기다” “하나도 쓸모없다”고 폄하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의 월권 행사를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물론 제지하지도 않았다.
대통령 취임사는 새 정부 5년의 청사진을 담는다.
최고 권력자의 집권 구상과 국정 철학이 압축돼 있다.
단순한 연설문 그 이상으로 평가된다. 이런 취임사 작성에 박 전 대통령은 지극히 사적 관계인 최순실씨를 아무 거리낌 없이 참여시켰다.
공식 실무진이 작성한 초안을 쓸모없는 종잇장으로 만든 최씨.
그는 박 전 대통령과 정 전 비서관에게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4대 국정 기조인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구축’ 등과 관련한 핵심 내용을 정립했다.
이 중 취임사 순서로도, 중요도로도 첫 번째였던 경제부흥은 최씨의 즉흥적인 발언이 거의 그대로 취임사에 반영됐다 해도 무방하다.
최 나는 첫 번째, 경제부흥을 일으키기 위해서 뭘 하겠다는 걸 일단 넣는데. 여기서 넣을 게 뭐가 있어요? 그걸 이렇게 넣고 가면 될 것 같은데, IT 강국 그걸….
나는 경제부흥에서 가장 중요한 국정의 키(key)를 과학기술·IT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주력할 것이다. 그건 어떠세요.
박 그게 핵심이에요.
최 그게 핵심이다,
그걸 넣어 경제부흥…. (중략) 제가 보기에는 취임날엔 잔잔한 얘기보다 큰 테두리를 가지고 팍팍 꽂히는 얘기로.
‘내가 이런 걸 어떻게 만들어가고 국민에게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그런 게, 굉장히 강한 메시지가 나가야지, 이건(초안은) 지금 너무 아니에요.
(중략) 나는 경제부흥 일으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21세기에는 IT와 경제, 정보통신 분야, 그다음 ‘미래창조’ 얘기한 걸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게 우리 경제 나아가야 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경제부흥, 과거하고 패러다임 바
었듯이 지금은 그런 과학적인 미래창조과학부 어떻게 해 나가겠다는 것 구체적으로 쓸 필요 있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가…. 빌 게이츠 하나로도 세계가 밥을 벌어먹고 나라가 자산이 높아질 정도로 그렇지 않냐.
사람 하나 키우는 것이, 미래 산업을 키우는 것이 굉장한 국가적인 자산이고 경쟁력 있는 시대에 왔기 때문에 나는
그런 거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런 인재와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단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고 지금은 그걸 실천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실천해 나가려고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사실 경제부흥 얘기를 여기서 잡다하게 안 해도 IT 경쟁력, 빌 게이츠 얘기 하나만 해서 우리나라가 그런 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굉장한 거잖아요. 그런 꽂히는 얘기를 좀 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이날 최씨의 발언은 며칠 후인 2013년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박 전 대통령이 천명한
취임사에 실제로 반영됐다.
다음은 박 전 대통령의 2월25일 취임사 일부다
최순실씨(사진 왼쪽)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연합뉴스
첫째,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가겠습니다.
세계적으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기존의 시장을 단순히 확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융합의 터전 위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창조경제의 중심에는 제가 핵심적인 가치를 두고 있는 과학기술과 IT산업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과학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기술들을 전 분야에 적용해 창조경제를 구현하겠습니다.
새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는 이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춰 창조경제를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갈 것입니다.
창조경제는 사람이 핵심입니다. 이제 한 사람의 개인이 국가의 가치를 높이고,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우리 인재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겠습니다.
또한 국내의 인재들을 창의와 열정이 가득한 융합형 인재로 키워 미래 한국의 주축으로 삼겠습니다.
앞서 검찰이 정 전 비서관 휴대전화에 담긴 다른 녹음파일을 분석해 2017년 12월 공개한 바에 따르면, 경제부흥이란
키워드를 처음 만들어낸 이도 바로 최씨였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 철학이 최씨 입에서 탄생한 것이다.

박 그러니까, 그, 성공했기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성공한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국민이 많아지면 대한민국이 행복한 거고 또 대한민국이 성공하는 거다.
최 대통령님, 좀 천천히 해야 돼요.
(중략)
박 단군 할아버지가 얘기한 게(홍익인간, 이화세계 등 고조선 건국이념) 이렇게 지금 맞아 들어가고 있지 않나. 그 얘기를 살짝 하는 게 어때요.
최 잘 얘기하셔야….
박 잘못하면 종교 또….
또 박 전 대통령이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추상적인 표현을 늘어놓으면 어김없이 최씨가 끼어들었다.
최 (말을 자르며) 그렇지, 경제를 잘하려면 아이디어와 사람을 키워야….
그게 바탕이 없으면 그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기본이 교육이고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중점적으로, 경제부흥의 가장 기본적인 틀로 그것을 바꿔보려고 한다.
말 하나를 써도 그렇게 멋있게 쓰는 게 낫지.
지금 (박 전 대통령이) 말씀하신 게 그거잖아. IT강국과 미래창조를 하고 경제부흥을 일으키시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이라는 것 아냐. 사람인데, 어떤 사람이냐면 자기의 끼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발휘했는데 스펙 쌓기나
그런 게 아니라 능력….
박 학벌이 아니라 능력….
최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지시를 하는 대목도 있다.
박 그러니까 이거네. 부국(富國), 정국(正國), 평국(平國)이에요.
부국이란 건 부자 나라. 정국이란 건 바른, 부패 안 하고 신뢰가 쌓이고. 그다음 편안한 평국.
최 부국, 정국, 평국. 또 하나는 그럼 뭐라고….
박 이건 꼭 할 건 아니고….
최 정국이 평국 아닌가요?
박 정국이 바른 거죠, 바른 거.
최 평국은?
정 (조심스럽게) 문화나 이런 건 평국에 좀 가까울 수 있습니다.
최 평국을 조금 다른 말로 해가지고…. 부국, 정국, 하여튼 이건 좀 상의를 해 보세요.
박 예예예.
(중략)
최 내일 어떻게 발표하실 거 좀 정리를 해 줘야 될 것 같은데, 얘기 안 하셨죠?
박 거기만 안 했어요.
최 하아(한숨)….
최씨와 박 전 대통령 사이에서 정 전 비서관은 그야말로 ‘고래 사이에 낀 새우’였다.
정 전 비서관은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함께 1998년 4월 박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직후부터 보좌하며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다. 그러나 녹음파일 속 정 전 비서관은 잔뜩 얼어 대화에 자유롭게 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최씨로부턴 ‘정 과장’으로 불리며 최씨 지시를 실시간으로 이행하는 등 부하 직원 같은 취급을 받았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최 딱 심플하게 해 보라 그러세요. 김팀(대통령 취임식장 디자인 담당자로 추정)한테 전화 한번 해 봐.
정 예.(바로 전화)
김팀 여보세요?
정 김팀, 잠깐만요.(최씨에게 전화 바꿔줌)
최 (김팀에게) 여기 청와대 기와 있잖아요.
두 개 넣는 건가요. 하나만 딱 넣어가지고 양 가장자리 날개 있는 거 심플하게 만들어 보라 그러신 거 한번 해 보세요.
(중략)
최 두 페이지씩 만들면 충분하지. 경제부흥을 2.5, 그다음에 국민행복을 2.5, 그다음에 자랑스러운 걸 2.5 하면 7.5잖아. 앞뒤로 하면 되겠네.
북한 프로세스 그걸 1.5 정도 하고, 여길 1.5 하면 되겠다.
그러니 경제부흥을 좀 많이 해야 되지 않겠어?
정 예. 그게 또 하다 보면 혹시 또….
최 그러니까 정 과장이 일정을 정해 놓고 해야 된다니까.
(중략) 그러니까 정 과장님, 페이지를 안 정해 놓고 하면 말이야 이런 일이 생긴다고 늘어지는 결과가.
내가 경제 쪽에서 2페이지 쫙 마감하고 그다음에는 2페이지 정도 이걸 넘어가고 그다음에 2페이지 넘어가야지 압축이 되지. 페이지 꼭지 정해 놓지 않으면 이렇게 늘어져서 이상한 말을 앞뒤에 갖다 붙이고 억지로 되는 페이지가 나오니까. 딱딱 해서. 맞춰놓으세요.
정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씨는 간간이 정 전 비서관이 자신의 발언을 받아 적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묵인했다.
최 (취임사 관련 메시지를 늘어놓다가 가만히 있는 정 전 비서관을 발견하고 답답해하며) 좀 적어요.
정 예.
(중략)
최 그런 말을 넣어야 된다니까. 못 적었지?
정 받아썼습니다.
(중략)
최 문화만 할 수 있는 가치는, 빨리 써요 정 과장님! (중략) 저 안 쓰고 있잖아. (중략) 여기서부터 써야 돼, 정 과장님. 함께하고자 한다!
崔, 검찰에 “연설문 작성 부담스러웠다”
이번 녹음파일은 박근혜 정권 출범부터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씨 입김이 국정에 반영됐던 사실을 또 한 번 입증한다.
검찰 수사 결과,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박 전 대통령, 최씨와 수시로 연락하며 두 사람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전 대통령 연설문과 국가 기밀 문건 등이 최씨에게 전달된 시기는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12년부터 2016년 4월까지였다.
구체적으론 2012년 30건, 2013년 138건, 2014년 2건, 2015년 4건, 2016년 6건 등 총 180건이다.
검찰 수사로 확인된 것일 뿐 실제론 더 많이, 더 오래 기밀 문건을 최씨가 받아 봤을 가능성도 있다.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 최씨와의 회의나 통화 내용을 수시로 녹음했다. 그 파일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물증이 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최순실씨의 검찰 피의자 신문 조서에 따르면, 최씨는 연설문 작성 개입이 정 전 비서관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진술했다.
최씨는 수사검사가 ‘처음에는 어떤 경위로 대통령의 연설문 및 말씀자료에 의견을 주게 된 것이냐’고 묻자 “정
전 비서관이 반듯하고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다 보니까 잘하려고 제 의견을 구해서 수정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제 입장에선 수시로 연설문과 말씀자료를 보내오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들기도 했다”며 “저도 제 개인적인 일정이 있는데 정 전 비서관이 수시로 자료를 보내오면 그것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고도 했다.
한편 최씨 측 이경재 변호사(현재는 사임)는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숨은 조력자로서 대통령에게 걸맞은 얘기를 조언한 것”이라면서 “박 전 대통령이 최씨 아이디어에 따라 국정기조를 정했다는 주장은 박 전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당선시킨 1200만 주권자에 대한 모독에 가깝다”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최순실 90분 녹음파일’ 전체 육성과 ‘13분 요약 파일’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튜브 ‘시사저널TV’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1부 ‘폭풍’의 서막
“최순실에 이 정도로 배신당할 줄 몰랐습니다”
“최가 진짜 그런 사람인가요, 세 비서관은 알려줬어야지”
● 朴, 조윤선에 “꿈 많고 섬세하게 잘하고 계셨는데…”
● 2차 담화 전 ‘눈물의 讀會’, 무능했던 참모들
● 靑 참모들, ‘최순실 모른다’ 잡아떼 초기 대응 실패
● 3인방·수석 사표에 朴 “모두가 다 떠나가야 하나요”
● ‘최순실 조기 귀국’ 대통령이 직접 전화해 종용
● 윤전추 “‘퇴직 세 비서관’ 연결해볼까요?” 朴 “아뇨”
《 이 연재물 각 회의 수기는 2014년 7월부터 3년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필자 (천영식) 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결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사저로 돌아가기까지,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육성과 에피소드를 담았다.
연재를 시작하며
이 글은 박근혜 대통령을 미화하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그 자체로서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역사의 요청에 어느 정도의 응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이 늦었다.
‘없는 역사’ 취급만 할 수 없는 것이고, 일방적인 정보만 기록되도록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막을 내린 뒤 지난 2년간 만난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도대체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렇게 쉽게 무너졌을까 하는 본능적인 물음이 뒤따라왔다.
이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있을 수 없지만,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역사적 소명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한민국 역사는 유유히 흘러갈 것이며 또 전진할 것이다. 보수나 진보를 떠나 대한민국 정부를 운영하는 모든 이에게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기억하고 추측한 박 대통령의 생각이 자칫 코끼리 다리 만지듯 일부분을 과장한 게 되지 않을까 항상 우려하면서 조심스럽게 글을 채워갈 것이다.
2016년 12월 9일 대한민국 국회는 제18대 대통령 박근혜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박 대통령은 이듬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최종 결정될 때까지 겨울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날 마지막 국무회의

박근혜 대통령은 감정을 억누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부덕이고 불찰입니다. 국가적 혼란에 송구합니다.
이날 대통령의 마지막 인사는 연설비서관이 써주지 않았다.
오랫동안 감정절제술이 몸에 밴 탓인지, 대통령의 발언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인생의 수많은 굴곡을 견뎌왔듯 대통령의 마지막 발언은 차분했고 담담했다.
그리고 황교안 국무총리 차례였다.
“결과가 송구스럽습니다. 저부터 응당 책임을 지는 게 도리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게 된 황 총리 역시 말과 행동을 절제했다.
대통령은 총리와 장관들의 인사를 들은 뒤 마무리 발언을 했다. 이때는 각 장관들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석별의 정을
生과 死 이별 같던 눈물의 작별
마지막으로 이석준 국무조정실장까지 거론하며 “산더미 같은 일을 잘 조정하느라 고생했다”고 위로했다.
“제 일은 여기서 멈추지만 총리가 직무대행으로 난국을 맡아 처리하게 된 게 마음이 놓입니다.
대통령은 그러다가 감정이 격해졌다.
“마음 아플 줄 알았지만 마음속 피눈물이 이런 것이구나…
참석자들이 같이 흐느꼈다.
“이제 대통령 몫까지 나라 위해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나는 3년 동안 대통령이 참석하는 청와대의 모든 행사에 대부분 배석했다.
생과 사의 이별 같던 그날의 장면이 아직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희망은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기둥이다.
방패가 뚫렸다

JTBC의 ‘최순실 파일’ 보도는 과장과 왜곡이었지만, 최순실이라는 숨겨진 인물을 끌어내는 데는 충분한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이 지금도 1차 사과 담화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당시 대통령이 1차 담화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 본인이 최순실의 잘못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도 훗날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그때(1차 담화) 사과를 한 것은 연설문 표현, 홍보적 관점에서 (최순실을) 받아들인 게 다인데, 저렇게 (JTBC 보도
정호성은 훗날 만기출소한 뒤 “일단 문건이 전달된 것은 맞고, 그 이상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건 전달
담화의 내용은 짧았다. 시인할 게 최순실의 연설이나 홍보 메시지 수정을 인정하는 데 국한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담화는 실패였다. 이날 담화는 대통령 입으로 최순실이라는 사람을 처음 실토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휘발성에 비해 담화는 너무 짧았고, 내용도 감질났다. 청와대는 이제 국민과 언론의 후속적인 관심과 요구를
최순실이 한 게 그게 전부냐? 일정 기간이라는 게 언제까지인가?
실제 담화 이후 수많은 궁금증이 쏟아졌다.
‘잘못 끼운 첫 단추’ 1차 담화
1차 담화는 분명히 한계를 지녔지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정보의 부재 및 쏠림 현상이다. J
대통령의 지시로 몇몇 수석과 정호성이 참여해 담화문을 준비했다.
최순실 존재 알던 사람들의 침묵
그나마 정호성이 적극적으로 나섰을 뿐,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최순실을 알고 있던 인사들은 여전히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극도로 말을 아끼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만약 정호성이 그렇게 일찍 구속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대응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란 게 당시 청와대
둘째, 최순실의 존재 공개에 대한 충격의 여파가 모든 것을 삼켰다는 점이다.
셋째, 당시엔 태블릿PC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실제 JTBC는 2016년 10월 24일과 25일 보도에서는 태블릿PC의 존재를 밝히지 않았고, 그저 ‘최순실 파일’ 혹은 ‘최순실 PC’ 등의 용어를 쓰고 있었다.
JTBC가 태블릿PC라는 용어를 보도한 것은 10월 26일 저녁 뉴스부터다.
1차 사과 때 JTBC 보도 내용을 인정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은 태블릿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연설문을 줬다는 자체를 부인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그래도 최순실의 존재, 연설문 전달 경위와 시점 등 내용 측면에서 조금 더 정교했어야 한다는 지적은 수용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더 키워버린 ‘미숙한 담화’였다고 평가한 바 있다.
태블릿PC 문제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태
풀어야 할 최순실 태블릿PC 실체
이 때문에 태블릿PC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최순실과 3인방은 공동으로 소유한 G메일 계정에서 같은 아이디(ID)로 접속해서 문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태블릿PC 소유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와 별도로, 혹은 그와 상관없이 이미 JTBC는 ‘영리한 편집’으로 최대의 성과를 냈다는 사실이다.
물론 JTBC 보도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비겁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최순실 사건은 최씨가 검찰에 긴급체포된 10월 31일을 맞아 절정으로 치달았다.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정호성의 휴대전화가 압수되고 녹취가 공개되자 너무 황당해했다”고 윤전추 제2부속실 행정관
“휴대전화는 왜 뺏기고 녹취는 왜 했나요?”
대통령은 윤전추에게 한숨을 내쉬었다.
“국민들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했잖아요!”

JTBC는 물 만난 고기처럼 헤집고 다녔다.
다른 방송이라고 차이는 없었다.TV조선도 31일 저녁 7시뉴스에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28건의 뉴스 꼭지를 내보냈다.
“어휴! 최순실이 국민들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했잖아요!”
대통령은 11월 초 참모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분노와 허탈감을 표현했다.
대통령은 11월 1일 나를 집무실로 불렀다. 3인방이 사라진 이후 빈 공간이 형성된 청와대의 의사소통 시스템 구축 등을 당부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은 열심히 해보자며 격려했다.
대통령은 또 사실이 아닌 보도에 대한 대응 방법을 주문했다. ‘이것이 팩트다’라는 청와대의 오보 대응 코너가 만들어진 것은 그 얼마 뒤다. 하지만 수많은 오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종범 경제수석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최순실의 체포로 수사가 본격화하자 좋은 뉴스가 나올 리 없었다.
2차 담화와 지지율 급락

2차 사과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좀 더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민심을 추스르는 게 필요했다.
대통령은 뒷날 2차 담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도 몰랐던 이야기, 최순실이 사익을 취했다는 등의 내용은 제 불찰이라고 생각해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하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쏟아지던 비리 뉴스는 매일 책 한 권을 쓸 정도였다. 11월 2일 하루 동안의 언론 뉴스만 모아봐도 당시 분위기를 대략 알 수 있다.
명백한 오보와 실체가 불분명한 기사 등이 뒤엉켜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모두 국민을 분노케 한 쟁점들이다.
사과와 검찰 조사 및 특검 수용을 기본 뼈대로 하면서도 해명할 것은 해명한다는 기조였다. 해명이 부족하다는 게
대국민 사과뿐 아니라 수사를 받게 된 공무원, 기업인에 대한 미안함, 검찰수사 협조 및 특검 수용 의사,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겠다는 다짐, 각계 지도자와 소통 의지 등을 두루 포함했다.
“알맹이가 빠졌다”…냉혹한 평가
평가는 냉혹했다. 사이사이 녹아 있는 국가 및 국정에 대한 걱정 등이 오히려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2차 담화를 발표하는 날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대통령 지지율 5%를 발표한 것은 치명타였다.
담화에 따른 여론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과다.
지지율 5%는 국민들로부터의 심리적 지지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사실 2차 담화는 많은 준비 과정을 거쳤는데도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고’였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나 참모들의 인식 수준에 문제점이 있음을 드러낸 셈이다.
2차 담화 독회와 참모들의 무능

참모들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담화 준비에 참여했다.
“선거 때마다 ‘믿고 있어요’라고 말하던 국민들을 마음속에 담고 살아왔습니다.
굿이나 사이비 종교 믿는다니 가슴이 찢어집니다.
헌법 가치 망가지지 않도록, 나는 사명감으로 일해왔습니다. 국민 마음 아프게 하려고 대통령 된 게 아닙니다. 차라리 대통령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각오는 매일매일 다졌습니다. 지금 저는 언론보도 보고 같이 놀라고 있는 상황입니다.”
朴 향한 ‘보호막’에 냉정함 잃어
대통령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대통령의 참회의 발언을 들으면서 위안이 됐다.
그런데 독회 때 대통령의 발언에 비해, 실제 담화는 불필요한 사족이 많아졌다.
담화는 최대한 콤팩트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국민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확하게 꽂아야 한다.
물론 당시에는 사족이 많아진 데 대해 그 정도로 걱정하지 않았다. 사
2차 담화의 내용 중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표현도 강하게 제지하지 않았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독회 때 대통령이 최순실 비리와 관련해 당시 언론보도를 보고 놀라고 있다고 말했을 때 불안감을 느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안도감을 우선시했다.
반대로, 대통령도 사건의 전모를 모르고 있다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검찰과 야당에 의해 향후 사태가 어디로 번져나갈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건 불안감의 원천이지만, 당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독회를 마무리할 때쯤, 나는 대통령에게 담화 때 무슨 옷을 입을 생각이냐고 물었다.
“의상도 걱정되나요? 회색 정장을 입으면 되지 않을까요.”
걱정이라기보다는 확인이 필요해서 말한 것인데, 오히려 먼저 ‘걱정되냐’는 말로 참모의 긴장을 풀어주려 한 걸로
참모들 사이에 대통령에 대한 연민이 형성된 것도 이즈음(11월 초)이다.
참모들과 회의를 하다가도 눈물을 보이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시간을 늦추어 다시 독회를 했고, 대통령은 그때에도 참모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대통령이 담화 준비과정에서 눈물을 많이 흘린 탓에 담화 발표 당일에도 눈물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꺼번에 사표 제출한 참모들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멀쩡하던 사람도 도망가는 판인데, 이미 독일로 도피해 있던 최순실을 왜 무리하게 귀국
하지만 이 같은 정략적 판단을 하기에는 당시 청와대 안이 너무나 어수선했다.
“모두가 다 떠나가야 하나요.”
당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최순실 범죄 궁금해 한 대통령
이런 가운데 대통령이 최순실의 귀국을 종용하는 전화를 한 게 10월 28일이었다.
나중에 보니 26일과 28일은 이틀 차이지만, 정국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어찌 됐건 당시 최순실을 귀국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또 최순실을 도피시키는 게 가능한 분위기도 아니었다고 믿고 있다.
최순실 귀국 미스터리 전말

최순실이 귀국을 늦췄다면, 얼마간 더 늦출 수 있었을까.
“비참한 대통령이 되더라도 비겁한 대통령이 되지는 않겠다.”
당시 청와대의 기류였다.
최순실은 박 대통령에게 어떤 존재일까.
대통령은 2차 담화에서 조금 더 진전된 표현을 사용했다.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 씨로부터
대통령은 1, 2차 담화를 통해 크게 ①홀로 사는 데 필요한 개인사를 도와주는 사람,
대통령은 통상 소소한 개인사를 도와준 사람으로 많이 표현해왔다.
영부인? 말벗? 최순실의 의미
특히 대통령의 여러 가지 표현은 최순실의 존재를 조금은 이해하게 했지만, 너무 절제된 표현이어서 대중에게는 구체적인 느낌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나는 대통령에게 최순실의 존재에 대해 조심스럽게 두 번 정도 개인의 느낌을 피력한 적이 있다.
영부인의 역할은 위의 3가지가 모두 해당되는 영역이다.
언론은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겨레신문은 2016년 11월 1일 ‘최순실이 퍼스트레이디?
이때 청와대가 영부인론을 내세웠으면 큰일 날 일이다.
특히 비리에 개입하는 것은 영부인의 역할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건넨 두 번째 의견은 “말벗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최순실과 그렇게 많은 말을 나누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최순실을 충직한 ‘집사’쯤으로 생각했다는 뜻으로 들렸다.
윤전추 앞에서 울어버린 대통령

이즈음 대통령은 제2부속실 행정관으로 헬스트레이너를 했던 윤전추에게 마음을 열었다.
대통령과 윤전추가 ‘대화’를 한 것은 2차 담화를 마친 그 주 일요일(11월 6일)이다.
이날 따라 대통령은 윤전추에게 “4년 동안 어떤 게 제일 기억에 남느냐” “해외순방 가서는 어느 나라가 기억에
대통령은 윤전추에게도 항상 존댓말로 이야기했다.
“이 정도로 배신당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앞만 보고 일했는데 결과가 당황스럽습니다.
대통령은 아예 흐느꼈다.
“내가 나라를 위해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는데 너무 속상합니다.
대통령은 감정이 복받쳐와 펑펑 울었고, 윤전추도 같이 울었다.
윤전추가 “3인방에게서 최순실의 행실에 대해 들은 게 없었느냐”고 묻자, 대통령은 “이렇게 될 때까지 세 비서관 중
최순실의 ‘행실’ 보고한 행정관들

하지만 3인방 입장에서는 행실의 문제점을 비리로 규정할 수 없었고, 비리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두 행정관의 전언을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사건이 터지자 3인방에 대해 섭섭함을 가졌던 것으로 확인된다. 문
그래서일까. 3인방이 사표를 내고 나간 어느 날 윤전추가 “전화번호를 갖고 있는데 연결 한번 해볼까요?”라고

[출처] - 국민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