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시사

서울 빌라촌까지 온 '갭투자 쓰나미'… 신혼부부를 덮치다

도토리 깍지 2019. 7. 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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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매 재판 삽화.


 /사진=머니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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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갭투자 피해자 박애정씨 부부가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9일 오후 아이를 보고 있다. 식탁에 놓인 문서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왼쪽)와 빌라임대차계약서다. 집주인이 2015년 1억1500만원을 주고 산 집에, 박씨는 3년 뒤 전세금 1억3500만원을 내고 들어왔다.
                

갭투자 피해자 박애정씨 부부가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9일 오후 아이를 보고 있다.
 식탁에 놓인 문서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왼쪽)와 빌라임대차계약서다. 집주인이
2015년 1억1500만원을 주고 산 집에, 박씨는 3년 뒤 전세금 1억3500만원을 내고
들어왔다.

 /이태경 기자





서울 빌라촌까지 온 '갭투자 쓰나미'… 신혼부부를 덮치다


전셋값보다 싸진 집값… 강서·양천구 빌라 600채 주인 잠적하기도
전세로 시작한 부부에 직격타… 법적으로도 뾰족한 수 없어 문제




작년 4월, 회사원 전모(37)씨 부부가 모아둔 돈 5000만원에 은행 대출 1억3000만원을 보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전셋집을 얻었다.
올해 4월,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잠적한 것을 알았다.

 중개업소에 알아보니, 최근 주택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비슷한 물건은 1억4000만원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평생 모은 돈을 모두 날리게 되자, 끙끙 앓다 대상포진에 걸렸다.
그래도 휴직계를 내고 변호사·법무사를 찾아다녔다. 번번이 "뾰족한 수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지난달 태어난 아기는 체중 2.6㎏ 미숙아였다.
전씨는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 같다"며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아 너무 괴롭다"고 했다.
전씨에게 집을 빌려준 강모(52)씨에겐 이렇게 전세 놓은 집이 서울·경기에 걸쳐 280여채 더 있다.

한껏 과열됐던 주택 시장에 정부가 초강력 규제를 가한 데 따른 부작용이 집 없는 서민을 덮쳤다.


집값 10~20%에 해당하는 돈만 가지고 전세를 끼고 집을 여러 채 사들인 '갭투자'족(族)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전세입자 수백 명씩 한꺼번에 보증금을 떼이는 사례가 서울에서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최대 피해자는 경제적 약자인 '저가(低價) 주택 세입자'였다.

 특히 신혼부부가 많았다.















서울 아파트 밀집지역.


[헤럴드DB]







서울에서 파산한 수백 채 규모 갭투자자는 강씨만이 아니다.

지난달 17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A빌라 입구에는 메모와 편지가 수두룩이 쌓여 있었다.

'집수리를 해달라' '전세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이곳에 살던 이모(62)씨는 강서구·양천구·구로구 일대에 집 600여채가 있으나 올해 1월부터 연락이 두절됐다.

피해자 주변에선 '좀 비싸게라도 집을 사들여서 눌러 살면 그만 아니냐'고들 한다.

 결혼 5년 차인 박애정(34)씨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작년 2월 만삭의 몸으로 갭투자자 강씨의 화곡동 빌라에 전셋집을 얻었다.

집 살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 반지하집에 들어갔다.


 아이는 지금 두 살이다.

박씨는 집주인이 잠적한 뒤, 정부 지원 임대주택에 당첨됐다.

입주금 9000여만원만 내면 평생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었지만,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고는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포기했다.







대규모 갭투자자 파산에 따른 피해 사례            





2017년 12월 전모(32)씨는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구로구 고척동 빌라에 1억8500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했다.

 일단 살림을 먼저 합친 뒤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올해 2월 전세자금대출을 연장하려고 집주인에게 연락했으나 전화는 꺼져 있었다.


 전씨는 "돈에 물리고 나니 퇴근해도 단란하게 함께하기보다 서로 이것저것 방법 알아보느라 휴대전화 들여다보기

 바쁘다"고 했다.

갭투자족은 정부를 탓한다.

갭투자자 강씨를 대신해 주택을 처분 중인 이모씨는 "주택 경기가 좋을 때 투자한 건데, 부동산 대책으로 집 사려는

 사람은 씨가 마르고 은행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집주인들의 '출구전략'은 고스란히 세입자들의 피해로 돌아간다.

 경남 창원에 192가구를 보유한 김모씨는 지난해 법원에 개인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세입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보증금은 줄어든다.


 동탄신도시 갭투자자 임모씨 소유 아파트 270가구 세입자들은 올해 5월 "임씨가 허위의 가족 간 채무를 만들어 집을

헐값에 경매에 넘기고 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갭투자 상담 업체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서울 신도림역 앞 컨설팅 업체에 전화를 걸었더니 "요즘 서울 집값이 다시

오름세다.

갭투자 하기 좋은 곳을 추천해주겠다"고 했다.


 이 업체는 매주 토요일 참가비 1만원을 받고 투자 세미나를 연다 .
정부는 이달 3일에야 '전세금 반환 보증' 가입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너무 늦었다"고 했다.




☞갭투자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의 차액(差額·gap)만큼만 투자하고, 나머지 집값은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으로 충당해 집을 사는 행위. 예컨대 집값이 1억원이고 전세금이 8000만원이면, 갭투자자는 집 한 채값 현금으로 5채를 사들일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10/2019071000237.html








14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R하우스 건물 입구에 ‘갭투자’ 피해 관련 소송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이제원 기자



14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R하우스 건물 입구에 ‘갭투자’ 피해 관련 소송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이제원 기자






새주인 못찾은 갭투자자 속출…서울 아파트 경매건수 최고치

정부의 역대급 규제로 서울 아파트 경매 시장이 위축됐다. 올 들어 낙찰가율이 100%를
 계속해서 밑돌고 있다. 작년부터 4번 유찰된 끝에 주인을 찾은 유원홍은아파트 전경.

<지지옥션 제공>






보증금 먹튀에 무너진 40대 가장 .. 딸 셋 모습 보며 '한숨'


건물주가 파놓은 '개미지옥'
건물 한 채 돈으로 10여채 매입
이자 감당 못하고 주저앉는 순간 
 세입자는 전 재산 고스란히 날려 
 영등포구 갭투자 사건 

 신탁사 공문서 믿고 임대차계약 
 금융사 근저당권 우선 인정 충돌 
 주민 100여명 1년 넘게 법적 싸움 
 풍비박산 난 신혼부부 꿈

고시원 살면서 모은 전세보증금 
 집주인은 자취 감추고 돈만 떼여
하루하루 고통.. 아이계획도 미뤄



갭투자자는 건물주의 꿈을 꿨겠지만 다수 임차인은 마음놓고 생활할 공간이 절실했다. 갭투자 한 명이 대출금이나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주저앉는 순간 세입자 다수는 전 재산을 잃는다. 3
∼4년 전 우리 사회를 열풍처럼 휩쓴 갭투자 폐해가 시한폭탄처럼 터지면서 큰 상처를 내고 있다.

세계일보가 최근 분쟁에 휘말린 서울시내 부동산 3곳의 현황을 파악한 결과 피해 세입자만 1000여명, 피해액은
12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자들은 평범한 가장,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취업준비생들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공인중개사를 통해 적법하게 임대차계약을 했으나 건물주가 파놓은 ‘개미지옥’을 벗어나지 못한 채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다.
 
◆다자녀 가장=“딸 셋 데리고 어디로…”
 
“집이 공매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날, 잠든 딸들의 모습만 밤새 바라봤습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모(44)씨는 피해자만 142명, 피해 보증금 100억원대의 ‘영등포구 갭투자 사기’ 사건을 맨 먼저 알게 된 임차인이다.
 
그는 지난해 3월 말 자신이 사는 영등포구 ‘R하우스’가 공매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둘러 임대차계약서와 등기부등본 등 자료를 가지고 법무사를 찾아갔다. “전세보증금을 찾기 어렵고 그냥 내쫓길 수 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가 집주인에게 낸 전세보증금은 2억2000만원, 입주자 중 가장 많은 액수다.
이 중 절반은 은행 대출로 마련한 보증금이었다.           
그날 밤 김씨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딸들을 바라봤다.


당시 중학교 3학년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던 딸들이다.
 집에서 쫓겨나면 얘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14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R하우스 건물 입구에 ‘갭투자’ 피해 관련 소송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이제원 기자

14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R하우스 건물 입구에 ‘갭투자’ 피해 관련 소송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이제원 기자          



2017년 3월 임대차계약을 할 때 신탁회사 공문서를 철석같이 믿었다.
R하우스는 ‘담보신탁’ 물건이라서 법적인 소유주는 신탁사였다.
건물주 이모(59)씨는 건물감정가 32억원인 이 건물을담보로 더 많은 대출을 받아 다른 곳에 갭투자를 하려고 신탁계약을 한 것이었다.

미심쩍어하는 그에게 공인중개사는 신탁회사 대표의 직인이 찍힌 공문을 보여줬다.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우선적으로 보장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건물이 공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한 걸 알고 확인해 봤더니 신탁사 공문은 전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문서였다.
새마을금고의 근저당권을 우선적으로 인정한다는 신탁계약서와 권리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건물주 이씨는 다른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이씨가 고용한 공인중개사가 신탁사 공문으로 임차인들을 끌어 모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같은 상황의 주민
 100여명을 모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금껏 법적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1년 넘게 생존권 투쟁을 하면서 우리 가정에서 웃음소리가 사라졌어요.”           
            살던 집이 위기에 처한 이후 가족 구성원들은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유학 중이던 둘째 딸은 조기 귀국했다.
 여행이나 외식은 사라졌다.
 
“둘째 딸이 귀국해서는 ‘돈 많이 버는 게 꿈’이라고 말했을 때 가슴이 가장 아팠어요.
 건축사를 꿈꾸던 딸이었는데, 내 탓인 듯해서….”  


         
           






신혼부부=“아이 가질 계획 미뤄야겠어요”
 
이모(62)씨는 서울 남서부지역의 오피스텔이나 다세대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갭투자자로 소문나 있다.
그의 끝없는 욕망에 신혼인 30대 중반의 A씨는 어렵게 장만한 보금자리를 잃을 판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A씨의 전세보증금은 1억5000만원, 서울에서 10년간 일해 모은 돈이다. 결혼 전 보증금 2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악착같이 모았다.
미래를 약속한 사람과 함께 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짠돌이 소리를 들으면서 절약했다. 2016년 전세로 지금의 집으로 들어왔다. 절반 이상은 대출이었으나 신혼 보금자리를 꾸민 것에 행복해했다.
 
지난해 11월 그는 집주인이 건설사에서 이씨로 바뀐 사실을 알게 됐다.
새 집주인은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떠안고 적은 투자금으로 부동산을 추가 구입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지난달 아내와 결혼식까지 올렸다.
 
그의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집주인이 행방을 감췄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피해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강서·양천·구로구 등에 있는 건물 600여 가구 세입자들이 같은 처지였다.
피해 보증금 액수만 1000억원 상당이었다.
아들의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까지 했다.
 
“어머니한테 차라리 알리지 말 걸 그랬어요.
매일 후회가 몰려와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아야 할 신혼부부 집에는 침묵만 가득하다.
집에서 아내와 부둥켜안고 우는 날이 많다.           
“아이 계획도 기약없이 미뤄야겠어요. 지금 같이 힘든 상황에서는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사회 초년생=“악착같이 모은 재산인데…”
 
“대학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직한 뒤에는 악착같이 모았어요.
 전 재산인데 어떡해요.”                      
서울 상도동 T빌리지에 사는 30대 초반의 박모씨는 사회 생활 출발부터 쓴맛을 보는 중이다.

그가 건물에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집주인 오모(65)씨가 받은 부채는 많지 않았다.
다른 곳에 쓸 돈이 궁해진 오씨가 전세보증금을 올리고 대출도 더 받으면서 위험 물건으로 전락했다.
오씨는 추가 대출을 받기 위해 전세계약서까지 위조해 금융기관에 낸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 2월 이 집을 선택할 때 오씨가 꺼림직한 게 있기는 했다.
전세보증금 6000만원에 임대차계약을 할 당시 해당 부동산에 담보신탁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법적으로 신탁사 소유니 별 문제가 없을 걸로 여긴 게 잘못이었다.
집을 소개한 공인중개사도 담보신탁에 대해 잘 몰랐다.
 
오씨가 근저당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면서 건물이 공매로 넘어가면서 박씨는 보증금을 모두 잃을 처지다.
 규정상 박씨의 임대차계약서를 오씨가 신탁사에 보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씨가 새마을금고에서 대출을 더 받으려고 계약 사실을 감춘 것이다.          









최악의 경우 박씨는 임차인 인정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신탁사는 박씨의 임대차계약서를 받지 못했으니 박씨의 보증금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씨와 같은 상황에 놓인 T빌리지 주민만 30여명이다. 

 오씨는 현재 회생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회생절차가 이뤄지면 박씨는 오씨한테서 보증금을 5년간 조금씩이라도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회생절차가 이뤄질지 미지수다.
오씨와 얽힌 채무자가 많아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회생절차가 실패하면 박씨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은 요원하다.
약 26억원의 새마을금고 근저당을 변제하고 나면 박씨에게 돌아갈 돈은 없다.
 T빌리지는 임대차보호법이 아니라 특별법인 신탁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소액임차인의 보증금 일정 부분을 보장해 주는 ‘최우선변제’ 대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배당이의소송 재판 결과가 나오려면 2∼3년 걸린다. 하지만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박씨는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김범수·이희진 기자 sway@segye.com
      


대박 노린 갭투자 광풍 ‘깡통전세’ 부메랑으로



          





2016년~2019년 6월까지 용도별 경매 낙찰률 변동 추이.

 / 그래픽=김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