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빌라촌까지 온 '갭투자 쓰나미'… 신혼부부를 덮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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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매 재판 삽화. /사진=머니투데이DB |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전셋값보다 싸진 집값… 강서·양천구 빌라 600채 주인 잠적하기도
전세로 시작한 부부에 직격타… 법적으로도 뾰족한 수 없어 문제
한껏 과열됐던 주택 시장에 정부가 초강력 규제를 가한 데 따른 부작용이 집 없는 서민을 덮쳤다.
집값 10~20%에 해당하는 돈만 가지고 전세를 끼고 집을 여러 채 사들인 '갭투자'족(族)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전세입자 수백 명씩 한꺼번에 보증금을 떼이는 사례가 서울에서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최대 피해자는 경제적 약자인 '저가(低價) 주택 세입자'였다.
특히 신혼부부가 많았다.
서울 아파트 밀집지역.
[헤럴드DB]
서울에서 파산한 수백 채 규모 갭투자자는 강씨만이 아니다.
지난달 17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A빌라 입구에는 메모와 편지가 수두룩이 쌓여 있었다.
'집수리를 해달라' '전세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이곳에 살던 이모(62)씨는 강서구·양천구·구로구 일대에 집 600여채가 있으나 올해 1월부터 연락이 두절됐다.
피해자 주변에선 '좀 비싸게라도 집을 사들여서 눌러 살면 그만 아니냐'고들 한다.
결혼 5년 차인 박애정(34)씨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작년 2월 만삭의 몸으로 갭투자자 강씨의 화곡동 빌라에 전셋집을 얻었다.
집 살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 반지하집에 들어갔다.
아이는 지금 두 살이다.
박씨는 집주인이 잠적한 뒤, 정부 지원 임대주택에 당첨됐다.
입주금 9000여만원만 내면 평생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었지만,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고는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포기했다.

2017년 12월 전모(32)씨는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구로구 고척동 빌라에 1억8500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했다.
일단 살림을 먼저 합친 뒤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올해 2월 전세자금대출을 연장하려고 집주인에게 연락했으나 전화는 꺼져 있었다.
전씨는 "돈에 물리고 나니 퇴근해도 단란하게 함께하기보다 서로 이것저것 방법 알아보느라 휴대전화 들여다보기
바쁘다"고 했다.
갭투자족은 정부를 탓한다.
갭투자자 강씨를 대신해 주택을 처분 중인 이모씨는 "주택 경기가 좋을 때 투자한 건데, 부동산 대책으로 집 사려는
사람은 씨가 마르고 은행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집주인들의 '출구전략'은 고스란히 세입자들의 피해로 돌아간다.
경남 창원에 192가구를 보유한 김모씨는 지난해 법원에 개인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세입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보증금은 줄어든다.
동탄신도시 갭투자자 임모씨 소유 아파트 270가구 세입자들은 올해 5월 "임씨가 허위의 가족 간 채무를 만들어 집을
헐값에 경매에 넘기고 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갭투자 상담 업체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서울 신도림역 앞 컨설팅 업체에 전화를 걸었더니 "요즘 서울 집값이 다시
오름세다.
갭투자 하기 좋은 곳을 추천해주겠다"고 했다.
이 업체는 매주 토요일 참가비 1만원을 받고 투자 세미나를 연다
.
정부는 이달 3일에야 '전세금 반환 보증' 가입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너무 늦었다"고 했다.
☞갭투자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의 차액(差額·gap)만큼만 투자하고, 나머지 집값은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으로 충당해 집을 사는 행위. 예컨대 집값이 1억원이고 전세금이 8000만원이면, 갭투자자는 집 한 채값 현금으로 5채를 사들일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10/2019071000237.html

피해자들은 평범한 가장,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취업준비생들이었다.
◆다자녀 가장=“딸 셋 데리고 어디로…”
“집이 공매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날, 잠든 딸들의 모습만 밤새 바라봤습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모(44)씨는 피해자만 142명, 피해 보증금 100억원대의 ‘영등포구 갭투자 사기’ 사건을 맨 먼저 알게 된 임차인이다.
그는 지난해 3월 말 자신이 사는 영등포구 ‘R하우스’가 공매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집주인에게 낸 전세보증금은 2억2000만원, 입주자 중 가장 많은 액수다.
그날 밤 김씨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딸들을 바라봤다.

건물주 이씨는 다른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1년 넘게 생존권 투쟁을 하면서 우리 가정에서 웃음소리가 사라졌어요.”
살던 집이 위기에 처한 이후 가족 구성원들은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둘째 딸이 귀국해서는 ‘돈 많이 버는 게 꿈’이라고 말했을 때 가슴이 가장 아팠어요.

이모(62)씨는 서울 남서부지역의 오피스텔이나 다세대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갭투자자로 소문나 있다.
평범한 직장인인 A씨의 전세보증금은 1억5000만원, 서울에서 10년간 일해 모은 돈이다. 결혼 전 보증금 2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악착같이 모았다.
지난해 11월 그는 집주인이 건설사에서 이씨로 바뀐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어머니한테 차라리 알리지 말 걸 그랬어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아야 할 신혼부부 집에는 침묵만 가득하다.
“아이 계획도 기약없이 미뤄야겠어요. 지금 같이 힘든 상황에서는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대학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직한 뒤에는 악착같이 모았어요.
서울 상도동 T빌리지에 사는 30대 초반의 박모씨는 사회 생활 출발부터 쓴맛을 보는 중이다.
2017년 2월 이 집을 선택할 때 오씨가 꺼림직한 게 있기는 했다.
오씨가 근저당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면서 건물이 공매로 넘어가면서 박씨는 보증금을 모두 잃을 처지다.

회생절차가 실패하면 박씨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은 요원하다.
김범수·이희진 기자 sway@segye.com

'조물주 위 건물주' 꿈꿨는데… 도미노처럼 무너진 '갭투자'
박근혜정부 때 ‘빚 내서 집사라’
부동산 과열에 너도나도 투자
집주인 파산에 도미노 피해
보증금 떼인 세입자 앞길 깜깜
서울 영등포구의 다가구주택 ‘R하우스’에 사는 정모(28)씨. 부모님이 마련해 준 전세보증금 6200만원을 모두 잃을 위기에 놓였다.
영등포구 내 건물 3개를 담보로 대출받아 ‘갭투자’를 한 집주인이 임차인들 보증금을 갖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은행 측은 이자가 연체되자 R하우스를 공매에 넘겼다.
공매가 이뤄지면 은행이 우선적으로 20억원 대출금을 가져간다.
은행보다 선순위 채권자인 일부 세입자는 그나마 보증금을 돌려받겠지만 순위가 밀리는 정씨는 손에 쥘 금액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를 휩쓴 말이다.
자기 건물을 가지고 알토란 같은 임대수익을 얻으며 노후 걱정이 없는 삶.
씀씀이는 날로 급증하는데 수입은 제자리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이가 건물주의 꿈을 꿨다.
부동산 시장을 경제살리기에 동원한 박근혜정부는 “빚 내서 집 사라”며 투자 열풍을 부추겼다.
저금리 속에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까지 풀었다.
남녀노소가 ‘갭투자’ 대열에 뛰어들었다.
광풍이 휩쓸고 가면서 남긴 그림자가 너무 짙다.
투자자 한 명이 쓰러지자 수십, 수백명의 꿈이 스러지고 있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3∼4년 전 부동산시장에서 하나의 큰 흐름이었던 갭투자의 후유증이 지난해부터 서울·수도권에서 나타나고 있다.
갭투자는 매매가격과 전세보증금의 차액을 활용한 부동산 투자를 일컫는다.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낀 채 대출 등으로 매매가격과 전세금 차액만 자기 돈을 들여 투자하는 것이라서 적은 돈으로
‘건물주’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집값이 1억원이고 전세보증금이 9000만원이라면 갭투자자는 집 한 채 값으로 10채를 사들일 수 있다.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는 물론이고 등기는 하나이나 수십명이 거주하는 다가구건물도 대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부동산 호황기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 연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집주인이 대출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거나 집값이 떨어지면 바로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넘쳐나게 된다.
2016년 2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 이하를 유지하다가 같은 해 7월 2.66%로 5년 새 최저점을 찍었다. 시중 유동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시장이 과열되고 대규모 갭투자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대출 금리는 2016년 말부터 3% 이상 오른 뒤 상승세로 돌아서 지난해 5월에는 3.49%까지 치솟았다.
반면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각종 규제가 이뤄지면서 얼어붙기 시작했다.
전국 부동산 매매가와 전세가 변화율은 지난해 각각 1.1%, -1.8%로 둔화한 뒤 올 상반기에는 -0.9%, -1.4%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갭투자에 나섰던 건물주는 높은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계약이 끝난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 내몰렸다.
금융기관이 대출회수에 나서 부동산이 공매 등에 부쳐지면서 세입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넓게 보면 부채비율이 80% 이상인 부동산은 모두 갭투자 부동산”이라며 “갭투자 부동산은 부동산 경기와 대출금리 등 외부요인에 취약한데 피해 대상이 대부분 사회약자 계층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사회 초년생의 ‘피눈물’… 절반은 “보증금 대출”
갭투자 부동산에 거주하다가 피해를 본 임차인들 상당수는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대다수가 전세보증금을 대출이나 부모 지원으로 마련한 사회적 약자로 드러났다.
14일 세계일보 취재진이 최근 서울시내에 발생한 갭투자 피해 임차인 2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피해자 중
110명(49.7%)이 만 30∼34세로 나타났다.
만 35∼39세 54명(24.5%), 만 25∼29세 32명(14.5%)이 그 뒤를 이었다.
피해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사회 초년생인 셈이다.
직업은 사기업에 근무한다는 응답자가 126명(57%)으로 가장 많았고, 전문직이 28명(12.7%)으로 뒤를 이었다.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공기업 직원도 10명(4.5%)이나 됐다.
피해자 상당수가 고학력자에다가 전문직까지 포함된 점은 누구라도 갭투자 임차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피해 임차인의 개별 보증금 액수는 1억5000만∼2억원이 62명(28.1%)으로 가장 많았다. 6000만원 이상∼7000만원 미만이 55명(24.9%)으로 뒤를 이었고, 2억원 이상도 53명(24%)이었다.
보증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를 물었더니 10명 중 9명은 대출이나 부모 지원으로 마련했다고 답했다.
대출을 받았다는 피해자가 105명(47.5%)이었고, 부모의 지원으로 마련했다고 답한 사람이 44명(19.9%)이었다.
전액을 저축으로 모았다는 응답자는 27명(12.2%)에 그쳤다.
비싼 수도권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자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라서 금융기관이나 가족한테서 돈을 빌렸음을
알 수 있다.
피해자들이 임대차 계약을 진행한 경로는 ‘직방’, ‘다방’ 등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이 143명(64.7%)으로 가장 많았다.
지역 공인중개사를 통해 계약했다고 응답한 피해자는 61명(27.6%)이었다.
지금 사는 부동산을 선택한 이유로는 피해자 66명(29.9%)이 편리한 교통을 꼽았다. 저렴한 보증금 44명(19.9%),
공인중개사 신뢰 42명(19%)이 뒤를 이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대박 노린 갭투자 광풍 ‘깡통전세’ 부메랑으로
박근혜정부 때 ‘빚내 집사라’
부동산 과열에 너도나도 투자
경기악화에 투자자 파산 속출
보증금 떼인 세입자 앞길 깜깜
서울 영등포구의 다가구주택 ‘R하우스’에 사는 정모(28)씨. 부모님이 마련해 준 전세보증금 6200만원을 모두 잃을 위기에 놓였다.
영등포구 내 건물 3개를 담보로 대출받아 ‘갭투자’를 한 집주인이 임차인들 보증금을 갖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은행 측은 이자가 연체되자 R하우스를 공매에 넘겼다.
공매가 이뤄지면 은행이 우선적으로 20억원 대출금을 가져간다.
은행보다 선순위 채권자인 일부 세입자는 그나마 보증금을 돌려받겠지만 순위가 밀리는 정씨는 손에 쥘 금액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를 휩쓴 말이다.
자기 건물을 가지고 알토란 같은 임대수익을 얻으며 노후 걱정이 없는 삶.
씀씀이는 날로 급증하는데 수입은 제자리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이가 건물주의 꿈을 꿨다.
부동산 시장을 경제살리기에 동원한 박근혜정부는 “빚 내서 집 사라”며 투자 열풍을 부추겼다.
저금리 속에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까지 풀었다.
남녀노소가 ‘갭투자’ 대열에 뛰어들었다. 광풍이 휩쓸고 가면서 남긴 그림자가 너무 짙다.
투자자 한 명이 쓰러지자 수십, 수백명의 꿈이 스러지고 있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3∼4년 전 부동산시장에서 하나의 큰 흐름이었던 갭투자의 후유증이 지난해부터 서울·
수도권에서 나타나고 있다.
갭투자는 매매가격과 전세보증금의 차액을 활용한 부동산 투자를 일컫는다.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낀 채 대출 등으로 매매가격과 전세금 차액만 자기 돈을 들여 투자하는 것이라서 적은 돈으로
‘건물주’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집값이 1억원이고 전세보증금이 9000만원이라면 갭투자자는 집 한 채 값으로 10채를 사들일 수 있다.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는 물론이고 등기는 하나이나 수십명이 거주하는 다가구건물도 대상이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 연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집주인이 대출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거나 집값이 떨어지면 바로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넘쳐나게 된다.
2016년 2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 이하를 유지하다가 같은 해 7월 2.66%로 5년 새 최저점을 찍었다. 시중 유동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시장이 과열되고 대규모 갭투자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대출 금리는 2016년 말부터 3% 이상 오른 뒤 상승세로 돌아서 지난해 5월에는 3.49%까지 치솟았다.
반면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각종 규제가 이뤄지면서 얼어붙기 시작했다.
전국 부동산 매매가와 전세가 변화율은 지난해 각각 1.1%, -1.8%로 둔화한 뒤 올 상반기에는 -0.9%, -1.4%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갭투자에 나섰던 건물주는 높은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계약이 끝난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 내몰렸다.
금융기관이 대출회수에 나서 부동산이 공매 등에 부쳐지면서 세입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넓게 보면 부채비율이 80% 이상인 부동산은 모두 갭투자 부동산”이라며 “갭투자 부동산은
부동산 경기와 대출금리 등 외부요인에 취약한데 피해 대상이 대부분 사회약자 계층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