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리스트 맞보복ㆍ지소미아 파기… 단계별 카드는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화이트리스트 맞보복ㆍ지소미아 파기… 단계별 카드는
WTO 제소는 당장 효과 어려워… 정부, 국제 무대서 여론적 지속
방사능 문제 겨냥 식품 검역 확대… 지소미아 연장 거부도 파장 예고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제외 조치에 문재인 대통령이 ‘맞불’을 놓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만큼 우리도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조치를 시작으로 대(對)일본 수출 제한 같은 강경한 반격 카드가 단계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파기도 맞대응 카드로 거론된다. 그러나 모든 압박 수단 동원은 일본이
대화에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어서 외교적 해법 모색을 위한 접촉 역시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가 준비되고 있다.
더불어 국제 무대에서 일본 조치의 부당성과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강조하는 국제 여론전도 지속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 등가(等價) 대응에도 정부가 착수한다.
최종 판정까지 2년가량 걸리는 WTO 제소의 경우 당장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 수출 관리를 까다롭게 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이날 관광과 식품, 폐기물 등 분야부터 안전 조치를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일본의 취약 지점인 방사능 문제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한 방사능 문제는 일본의 아킬레스건과 다름없다.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교부가 도쿄(東京) 등 일본 내 여행 자제 지역을 선포하고
△일본산 식품류에 대한 검역을 전수 조사로 확대하는 한편 △공산품에 대해서도 안전 검사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맞대응 카드로 꼽았다.
일본으로의 수출 제한 조치와 더불어 이런 식으로 일본산 상품ㆍ서비스의 국내 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관세를 인상하는 방안은 국책연구기관이 제시한 상응조치이기도 하다.
여권 일각에서는 우리가 일본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는 소재ㆍ부품 관련 품목에 대한 일본 수출을 규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지소미아 연장 거부도 정부가 활용 가능성을 시사한 카드다.
일본 주장대로라면 안보상 신뢰가 훼손된 국가끼리 어떻게 군사 정보를 교류할 수 있냐는 게 한국 정부 논리다.
지소미아는 한쪽이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하면 폐기되는 구조인데, 통보 시한이 이달 24일이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내용이 포함된 수출무역관리령 시행 예상 시기(28일)와 비슷하다. 지소미아가 한미일 삼각 안보
공조의 틀이어서 미국 눈치를 많이 보는 일본을 막판까지 움직일 지렛대로 쓸모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육책으로 맞대응 카드를 내놓긴 했지만 여전히 문 대통령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갈등 해결 방식은 대화다.
현재 일본이 우리 요청을 거부하고 있지만 정부는 6월 19일 제안한 ‘한일 기업 공동 기금 조성안’(1+1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화를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미국이 중재 필요성을 인식한 상태인 데다 국내외 여론 악화가 신경 쓰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결국 출구를 찾으려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대법원의 징용 피해 배상 판결 이행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삼권 분립 원칙을 견지한다는 게 현재 방침이지만 일본이 전향적으로 나올 경우 청와대가 우회적인 피해자 설득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양국 간 협의가 아직
결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이 요구하는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 구성이나 국제사법재판소(ICJ)행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 변함없는 정부 입장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지소미아 파기를 보류하고 미국 중재로 일본이 한국 경제를 옥죄거나
기술 패권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데에 한미일이 합의하는 방안을 추진해봄 직하다”며 “화이트리스트 국가는 아니지만 화이트리스트 국가에 가까운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일본과 대만ㆍ싱가포르 간 포괄허가제가 참고할 만한 모델”이라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캡처
정부 "우리도 백색국가에서 日 빼겠다"… 靑, 지소미아 파기
[日 2차 보복] 우리 정부의 대응
포괄수출허가 29개국서 日 제외… 日식품 방사능 검사도 강화
문 대통령 발언 직후 정부는 역(逆)으로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식품 안전 강화… '日 방사능' 겨냥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날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우리 정부가 일본 조치에 대해 맞대응하고 (일본 측이) 다시 맞대응하는 걸 반복하는 것은 두 나라 모두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우리 정부도 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통해 일본을 포함한 29개국을 '가' 지역(화이트리스트)
으로 분류해 포괄수출허가를 내주고 있다.
앞으로는 '다' 지역을 신설해 일본을 넣겠다는 계획이다.
우리 기업이 전략물자를 일본에 수출하는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홍 부총리는 또 "국민들의 안전과 관련한 사항은 관광, 식품, 폐기물 등의 분야부터 안전조치를 강화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일본산 수입 식품 등에 대한 방사능 검사 등 비관세 무역 장벽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권 관계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한 방사능 문제는 일본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번 일본 정부의 결정과 관련된 전략물자 1194개 품목 가운데 159개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들 품목을 '관리품목'으로 지정하고, 대체국에서 이들 물품이나 원자재를 수입하면 기존 관세를 40%포인트 내에서 경감하고 국세 납기를 연장해주는 등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또 이들 품목이 신속히 통관될 수 있도록 24시간 상시 통관 지원 체제를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일본 수출 규제로 피해를 보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대출·보증 만기를 연장해주고 최대 6조원의 운전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현재 29조원을 공급할 수 있는 정책금융 지원 프로그램도 가동하기로 했다.
◇GSOMIA 파기로 이어지나
김현종 차장이 이날 공식 브리핑에서 GSOMIA 재연장 거부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여당 지도부도 GSOMIA 파기 주장을 쏟아냈다.
'GSOMIA 파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던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이날 일본 규탄대회에서 "그 생각은
오늘로써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이런 상황이라면 GSOMIA의 유의미성에 대해 우리 당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최재성 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위원장은 "외교·안보 등 비경제적
인 분야에서 의미가 없어진 기존의 관계와 틀을 제거해야 한다"며 "경제 분야에서는 일본도 감당하기 어려운 능동적인 (보복) 조치를 시작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외교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이 한·미·일 안보 협력 유지를 원하는 미국을 움직이는 카드로 GSOMIA 파기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원하는 바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 일본 아베 신조 총리.
사진출처 |(GettyImages)/코리아, ⓒGettyImagesBank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사진출처 |(GettyImages)/코리아
전면전으로 치닫는 韓日경제전쟁 |
역사문제에 日경제보복 감행…美중재에도 한·일 갈등에 기름 부어 |
역사문제에 日경제보복 감행…美중재에도 한·일 갈등에 기름 부어
일본 정부가 2일 한국을 '백색 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2차 경제 보복을 감행하면서 한·일(韓日) 간 '경제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게 됐다. 지난 7월초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1차 경제보복 조치 이후 한국 정부와 국민이 거세게 반발하고 최근에는 미국까지 자제를 촉구했지만, 일본은 결국 양국 간 갈등에 기름을 부어 불길을 더 키운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미 여러 차례 일본에 대한 총력대응을 공언한 데다, 일본 정부도 추가적인 보복 조치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만큼 이미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한·일 관계는 한층 격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2일 오전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을 의결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의결 시엔 한국측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폐기를 시사하고 있어, 한·일(韓日) 갈등이 역사문제에서 통상 분야에 이어 안보 분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이날 각의를 통과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은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연서한 뒤 나루히토(德仁) 일왕(日王)이 공포하는 절차를 거쳐 그 시점으로부터 21일 후 시행된다. 공포(公布)까지는 통상 며칠이 소요되므로 시행 시점은 8월말 정도로 전망된다. 한국은 미국, 영국, 독일 등 27개 국이 포함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된 첫 사례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이 한국으로 수출할 때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에서 개별허가를 받게 된다.
일본이 2일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우대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강행하면서 한·일 관계가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일본의 2차 경제 보복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대상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서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됨에 따라 한·일 양국의 교역과 산업 생태계가 최대 위기 상황을 맞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모두(冒頭)발언을 통해 “문제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으로,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 문재인 대통령이 8월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긴급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점은 이번 조치가 우리 경제를 공격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을 가로막아 타격을 가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이번 조치는 양국 간의 오랜 경제 협력과 우호 협력 관계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조치로 우리 경제는 엄중한 상황에서 어려움이 더해졌으나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 보복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조치에 따라 우리도 단계적으로 대응 조치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를 의도적으로 타격한다면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7월30일 수암칼럼- 韓日기독단체 “아베정권, 한국 수출규제 철회하라” 참조>
日정부 “일본 기업 피해 없을 것…대화 환경 조성은 한국 책임”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상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조치로 인한 일본 기업 피해는 발생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2일 각의에서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결정을 내린 뒤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조치로 인해 일본 기업에 대한 영향은 기본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만약 피해가 발생한다면 대만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과 공급망을 정립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
그러면서 "한국과는 신뢰감을 갖고 대화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한국 측이 지난달 12일 열린 양국 실무자간 설명회를 '협의의 장'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일본이 인식하지 않은 '철회 요청'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뢰하며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한국 책임"이라며 "한국이 (7월12일) 발표의 정정을 포함해 성의 있는 대응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각의에서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이날 결정된 개정안을 오는 7일 공포해 28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韓정부 반격 돌입···홍남기 부총리 "우리도 화이트국서 일본 빼겠다"
한국 정부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일본에 대한 수출 관리를 강화하는 절차를 밟아 나가기로 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국가 배제 조치에 대한 맞대응 차원이다. 수출규제 관련 품목 반입 시 ‘24시간 상시통관지원 체제’를 가동하는 등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대응책도 내놓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고 “정당한 근거 없이 취해진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달(7월) 4일 3개 품목 수출 규제 시행에 이어 이번 백색국가 배제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조치는 그간 양국이 어렵게 쌓아온 협력과 신뢰관계를 근본적으로 훼손시키는 행위”라며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 조치 배경에 대한 명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그때 그때 말을 바꾸며 아전인수 격 주장을 되풀이해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홍 부총리는 이어 “앞으로도 외교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지만,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해 일본에 대한 수출 관리를 강화하는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와 같은 수출통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심사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 ‘가’지역이 백색국가다.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29개 국가로, 일본을 비롯해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독일·벨기에·덴마크·스위스·스웨덴·네덜란드·호주·뉴질랜드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에게는 기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서류면제ㆍ처리기한 단축 등 심사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 부총리는 이어 “국민의 안전과 관련한 사항은 관광·식품·폐기물 등의 분야부터 안전조치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는 WTO(세계무역기구) 규범에 전면위배 되는 조치인 만큼 WTO 제소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대한 수출 간소화 혜택을 없애는 것은 물론 다른 분야에 있어서도 '비관세 장벽' 형태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일본의 이번 수출통제 조치로 관련되는 전략물자 수가 1194개라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배제 영향이 크지 않은 특정품목들을 제외하면, 총 159개 품목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 159개 전 품목을 관리품목으로 지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대일(對日)의존도·파급효과·국내외 대체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보다 세분화해 맞춤형으로 밀착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획 재정부
정부는 수출규제 관련 품목이 신속히 통관될 수 있도록 24시간 상시통관지원체제를 가동하고, 서류제출 및 검사선별을 최소화해 기업들의 물량 확보에 도움을 줄 계획이다. 또 159개 관리품목의 경우, 보세구역 내 저장기간을 연장하고 수입신고지연에 대한 가산세를 면제하기로 했다. 금융지원과 관련해선 피해기업 대상 대출ㆍ보증 만기연장을 추진하고, 최대 6조원의 운전자금을 추가 공급할 방침이다.
홍 부총리는 "주력산업 공급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100여개 전략 핵심품목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 등에 매년 1조원 이상 대규모로 추가 지원해 나갈 예정"이라며 "해외 핵심기술 확보, 해당 전문기업 인수·합병(M&A) 등을 적극 뒷 받침하기 위해 별도의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해외 M&A 인수금융 지원, 소재·부품·장비 M&A 세제지원 등도 적극적 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제3국에서 해당 품목을 수입할 경우 최대 40%까지 관세를 깎아주는 할당관세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대체 수입처 확보를 도와주는 코트라(대한무역투자공사) 무역관을 지역별로 지정해 정보 거점 역할을 하도록 하고, 대체 공급처 조사비용 중 회사 부담을 50% 이상 줄여주기로 했다. 정부는 곧 소재·부품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며, R&D와 관련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별도 종합대책을 8월 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한편 홍 부총리는 이번 일본의 조치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조치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엄중하지만 내용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며 “지금 단계에서 이것 때문에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당분간 조정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文대통령 “가해자 ‘적반하장’…일본도 큰 피해 감수해야할 것” 청와대에서 긴급 국무회의 주재… 일본 화이트리스트 배제 대응 모색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오후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외교적 해결 노력을 외면하고 상황을 악화시켜온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는 것이 명확해진 이상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책임도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여민관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무슨 이유로 변명하든,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보복”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강제노동 금지’와 ‘3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국제법의 대원칙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일본이 G20 회의에서 강조한 자유무역질서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또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일본 정부 자신이 밝혀왔던 과거 입장과도 모순된다”고 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일본 아베 내각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을 각료회의에서 통과시키자,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문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이례적으로 방송 생중계됐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조치로 인해 우리 경제는 엄중한 상황에서 어려움이 더해졌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에겐 그 어려움을 극복할 역량이 있다”며 “과거에도 그래왔듯이 우리는 역경을 오히려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어낼 것”이라고 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8월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일본의 추가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또 문 대통령은 “정부도 소재·부품의 대체 수입처와 재고 물량 확보, 원천기술의 도입, 국산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공장 신·증설, 금융지원 등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지원을 다하겠다”며 “나아가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다시는 기술 패권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물론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일방적 조치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비록 일본이 경제 강국이지만 우리 경제에 피해를 입히려 든다면, 우리 역시 맞대응할 수 있는 방안들을 가지고 있다”며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경고한 바와 같이, 우리 경제를 의도적으로 타격한다면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일본에게 대화의 길로 나오라고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지금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원치 않는다. 멈출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일본 정부가 일방적이고 부당한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하고 대화의 길로 나오는 것이다”고 했다.
한국과 결별 택한 아베…韓 콕집어 안보우방 제외 "과거의 분쟁과는 질적으로 다른 최저점"…개헌과 맞물린 강경론, 대립 장기화할 듯
"지금까지 경험했던 한·일관계의 ‘최저점’과는 질적으로 다른 '최저점'이다.", "한·미동맹과 함께 전후(戰後)한국을 지탱해온 보조축, 안보와 경제측면의 한·일 파트너십이 궤도를 이탈했다."
한 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2일 일본 정부가 각의에서 화이트국가 관련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한 직후 이렇게 논평했다. 이 시행령은 무역관계에서 우대조치를 제공하는 안보우호국(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을 빼는 조치다. 일본이 한번 지정한 화이트국가(한국포함 27개국)를 리스트에서 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적어도 수출관련 절차와 관련된 시행령 속에 ‘일본의 안보우호국’, 즉 우방국으로부터 한국의 이탈이 공식화된 것이다. 불가리아와 아르헨티나, 그리스, 헝가리 보다 못한 처우다. 이는 양국의 갈등이 위안부 합의와 징용 문제 등 역사문제의 범위를 벗어나 안보의 영역으로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 ▲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 의결을 주도한 아베 신조 일본총리
지난 7월4일 시행된 불화수소를 비롯한 3개 품목 수출 규제 강화때만 해도 '수출 관리의 적정성' 문제로 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국’이란 국가를 콕 집어 화이트국가에서 빼는 것은 지난번과는 차원이 다른 조치라는 지적이다. 물론 양국 정치권 등에선 "이번 조치를 그렇게 무겁게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측 의원들은 최근 도쿄를 찾았던 한국 의원들에게 “신뢰관계가 회복되면 다시 화이트국가로 복귀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문단의 일원이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윤상현 의원도 “한국은 이번 조치에 큰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지만, 일본은 ‘제3국에 문제있는 물자를 보내지 않는다'는 증명이 되면 풀어주겠다는 가벼운 태도"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런 일부 지한파(知韓派) 일본 정치인들의 인식은 아베 정권을 움직이는 핵심 인사들의 사고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베 정권이 한국을 우방국으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는 수출 규제 조치가 발효되기 훨씬 전부터 총리관저를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일본사회에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에 밝은 일본측 소식통은 “지난해 12월 이후 레이더 조준 논란이 발생하고, 징용 갈등의 피로감이 길어지면서 한국을 중국과 북한수준의 ‘적’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총리관저와 관료사회에 전파됐다”고 했다.
이런 인식은 이제 외교안보 이슈를 다루는 학자들로까지 번졌다. 7월 중순 도쿄에서 비공개로 열린 심포지엄에선 북한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 패널이 "이제 일본은 한국을 안보우호국으로 보지 않으니, 향후 한반도 전략이나 한·일 관계는 그런 인식을 전제에 깔고 연구해야 한다"는 작심 발언을 해 한국측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렇게 물밑에서 확산돼온 움직임을 아베 총리가 이번 화이트국가 관련 조치를 통해 '법제화'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전후 냉전시대를 거치며 동북아 안보를 담당해온 한ㆍ미ㆍ일 협력의 축이 실제로 갸우뚱대기 시작했고, 향후 아베 총리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이와 관련, 일본 내 한국 전문가들 사이엔 "아베 총리로선 문재인 정권 출범이후 위안부 합의가 파기되는 과정에서 억눌러온 악감정을 폭발시켰기 때문에 향후에 징용문제 등에 부분적 진전이 있다고 해도 한국에 대한 그의 접근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한국과의 안보적인 협력은 미국이 함께 엮이는 범위 내에서만 이뤄질 것”이란 분석이 있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공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 미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한·일 공조를 모색하리라는 뜻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한국을 뺀 채 "미국과 연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기 내 개헌에 집착하는 아베 총리로선 보수층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정도 있다. 한국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 어려운 상황적 요인 때문에라도 한국과의 대립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규제 한달 만에 '경제 전면전'…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후 최악의 파국 韓·日관계 앞날은…백색국가 제외조치로 ‘경제단교’ 향후 외교·안보분야 확산 우려
일본이 2일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우대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양국 관계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이 체결된 이후 최악의 파국을 맞았다. 사실상 ‘경제단교’에 비유될 이 파장이 향후 외교·안보 분야로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쏟아진다. 전문가들은 양국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단호하면서도 외교적 해법 마련을 위해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날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로 1965년 이후 54년간 지속한 한·일 우방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양국은 1965년 한·일협정 성사까지 14년간 7차례에 걸쳐 회담을 가졌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해야 했던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적대시하는 상황을 간과할 수 없었고, 양국의 수교를 위해 물밑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의 수교 압력과 경제 발전을 위한 경제적 기반 마련이 절실했고 결국 일본과의 수교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이 1965년 6월22일 조인됐고, 국내 여론의 반발로 비준이 미뤄지다가 12월18일 비준서가 교환됐다. 양국의 경제관계는 ‘재산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을 통해 일본이 한국에 10년간 무상으로 3억달러를 지불하고, 정부 간 차관으로 2억 달러를 연리 3.5%, 7년 거치 20년 상환의 조건으로 10년간 제공하며, 1억달러 이상의 상업차관을 제공키로 약속하면서 근대 이후 첫 경제협력 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로 이 관계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게 됐다.
전문가들은 양국의 갈등이 장기화할 것을 염두에 두고 단계적 대응을 조언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이 문제가 굉장히 오래갈 가능성이 크고 이런 상황에서 양국 간 반일(反日), 반한(反韓) 감정이 격화하면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더 힘들어진다”며 “한·일이 냉각기를 갖고 좀 더 냉정한 자세로 서로를 바라보되, 우리는 일본이 더는 (보복성) 조치를 할 수 없도록 국제적인 외교전을 더 치열하게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문제가 외교·안보 분야로 확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동북아 정세가 경제안보를 둘러싸고 국익의 각축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일본과 관계를 강대강 대치국면으로 끌고 갈 때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번 문제의 시발점이 된 강제동원 문제를 풀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교수는 “백색국가 배제 조치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지만 근본적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며 “경제보복의 시발점인 강제동원문제에 관해 집중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안으로 한·일 기업들의 출연금으로 기금을 조성하는 ‘1+1안’에 더해 정부도 특별법 입법 등을 통해 구제 조치를 하는 2+1(한·일 기업+한국 정부)안을 제안했다.
일본의 이번 조치를 냉철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이 추가로 쓸 수 있는 카드는 이제 많지 않다”며 “비자 제한 등도 남아 있지만 일본 내 인력이 부족해 현실성이 떨어지고, 일본계 자금 회수도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큰 파급력이 없을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어 “대만이나 싱가포르는 백색국가가 아닌 상태로 일본과 교역을 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간과해서도 안 되지만 과대 포장할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 파장…사실상 전 품목 개별 심사 받아야
일본 정부가 2일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확정하면서 일왕이 7일 공포하면 28일 시행된다. 헌법에 따라 개정 수출무역관리령은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연서(連署)했다.
일본은 수출관리 대상국을 그룹 A∼D 4개 범주로 나누고 있다. 그 룹 A가 화이트리스트 국가를 의미한다. 4대 수출관리체제로 불리는 바세나르체제(WA), 핵공급국그룹(NSG), 호주그룹(A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참가하고 있는 나라 중에서 일본의 우대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하는 국가를 포함한다. 화이트리스트 국가는 모두 27개국이었는데 이번에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26개국이 됐다.
그룹 B는 4대 관리체제에 참가하는 나라 중 화이트리스트 국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나라라고 일본이 판단하는 그룹이다. 한국 등 20개국 미만이 속한다. 그룹 D는 북한,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10개 우려국이다. 그룹 A, B, D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국가들이 그룹 C를 이룬다.
그룹 A(화이트리스트)와 그룹 B의 가장 큰 차이는 일본의 수출 기업이 일반포괄허가를 받을 수 있느냐이다. 화이트리스트 국가는 일반포괄허가 대상국이 된다. 수출 기업이 수출 시 3년 단위로 한번 심사를 받으면 건별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룹 B에 속한 나라는 특별일반포괄허가 대상이 된다. ‘특별’자가 붙은 이유는 기업의 수출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사전에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수출하는 기업에는 필요 없는 규제다.
규제 대상 품목의 경우 한국은 1194개, 일본은 240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과 거래하는 기업들로선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품목은 지난 7월1일 발표와 같이 특별일반포괄허가 대상에서도 제외돼 수출 건별로 심사를 받는 개별허가 대상이다. 심사에는 보통 90일이 걸린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됨으로써 일본의 캐치올(Catch all)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국제적으로 합의된 전략 물자가 아니더라도 군사전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품목의 경우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이런 품목은 기업이 수출 건별로 허가 신청 절차를 밟아야 한다.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전 품목에서 일본 정부가 개별 수출허가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청와대 “日과 군사정보 공유 맞나 검토”…GSOMIA 연장 거부 가능성 시사 ‘日, 평화프로세스에서도 걸림돌’ 판단…美 ‘협정 지지’ 변수… “신중한 접근 필요”
청와대가 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거부 검토를 시사한 것은 다목적 용도로 읽힌다. 경제 보복조치를 일본과의 향후 협상을 염두에 둔 ‘일본 경고용’이면서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GSOMIA는 양국 간 민감한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 협정이다. 일본이 우리에 대한 신뢰가 없고 안전보장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지속할 수 있나”라며 “일본은 이를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GSOMIA 파기로 한·미·일 안보공조가 무너질 우려가 있지 않나’라는 물음에는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며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일본이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축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국내 일각의 인식을 소개하며 일본을 압박하고 나섰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본은 우리의 평화프로세스 구축 과정에서 도움보다는 장애를 조성 했다”며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한·미 연합훈련 연기 반대, 북한과 대화 중 제재·압박 주장,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 국민의 전시대피 연습 주장 등 일본이 한반도에 인위적으로 긴장을 조성한 사례를 열거했다. 김 차장은 “(남북 정상회담 당시) 납북 일본인 문제는 물론 북·일 수교와 관련한 일측 입장을 북측에 전달했다”며 ‘납북 일본인’과 ‘북·일 수교’ 등 일본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도 건드렸다. ▲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일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화이트리스트 배제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GSOMIA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미·일(韓美日) 3국 안보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GSOMIA가 흔들리면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의 토대가 흔들릴 위험이 커지는 셈이다. 미국의 적극 관여를 이끌어내는 촉매제로서 GSOMIA가 강력한 카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던 이유다.
하지만 일본이 추가 보복 조치를 취하면서 GSOMIA가 실제로 폐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시행 예정일인 28일과 GSOMIA 연장 통보 시한인 24일이 맞물려 있어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일본 압박용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GSOMIA를 연장하지 않는다면 한·일 갈등이 안보·군사분야로 확대되면서 일본이 더 강력한 추가 보복 조치를 감행할 명분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GSOMIA 폐기 문제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남 교수는 “한·일 관계에 미국을 끌어들이는 게 결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GSOMIA를 카드로 쓰려다 미국의 개입을 불러왔고,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끌려가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강경화 “美도 많은 우려”… 한·일 충돌 ‘물밑 중재’ 다시 나서나 방콕 ARF서 韓美日 외교장관 회담 성과 없이 끝나…美, 향후 수습과정 ‘공조’ 강조할 듯
일본이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강행하면서 ‘분쟁중지 합의(standstill agreement)’를 촉구하던 미국의 1차 중재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은 수습 국면에서 한·미·일 공조를 다시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태국 방콕에서 한·일 외교장관은 만날 때마다 싸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 8월2일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이 사진 촬영을 위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안내하고 있다.
●강경화 장관 “미국도 이 상황에 우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30분간의 짧은 회담을 마친 뒤 “미국도 이 상황에 대해서 많은 우려를 갖고 있고 앞으로 어렵지만 역할을 다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고노 회담 전 폼페이오 장관이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 사이에서 양팔을 뻗으며 웃어 보였으나 두 장관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후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한국·일본의 관계는 강하며 북한의 비핵화와 아세안의 중요성,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에 중요하다”고 밝혔다. 일본 각의 결정을 앞두고 폼페이오 장관은 ARF 기간 여러 물밑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도 전날을 기점으로 당장 일본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다자회의 일정이 길어지면서 폼페이오 장관은 예정됐던 미·일, 한·미 회담을 모두 취소하고 한·미·일 회담만 소화했다.
분쟁중지 합의가 이미 불가능해진 만큼 미국은 수습 과정에서 한·미·일 공조를 촉구하며 다른 방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국 정부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를 주문하며 맞대응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미 각의 결정이 내려진 만큼 일본에는 새로운 중재안으로 어떤 제안을 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일본 측은 이날 한·미·일 회담 뒤 브리핑에서 미국의 우려 표명이 없었다고 말했는데, 우리 정부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다자회의장에서 이례적 설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 외교장관회의 등 주요 다자회의가 집중된 이날 ARF 회의가 개최된 방콕 센타라그랜드호텔 회의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한·일 무역전쟁’이었다. 이날 오전 열린 아세안+3(한·중·일) 회의 모두발언에서 강 장관은 일본의 조치에 대해 “엄중히 우려(gravely concerned)한다”고 말했다. 다자회의에서 특정 국가를 겨냥해 쓰는 표현으로는 수위가 높다는 평가가 나왔다. 비공개회의에서도 한·일 간 이례적 설전이 벌어졌다. 비비언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 장관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아세안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며 한국을 뺄 것이 아니라 아세안을 추가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게 도화선이 됐다. 이어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발라크리슈난 장관의 발언을 넌지시 두둔하며 일본을 비판하는 대열에 동참했다. 강 장관과 고노 외상은 각각 3차례, 4차례 발언을 주고받으며 강제동원 배상 판결, 1965년 청구권협정 문제까지 꺼냈는데 통상 한번씩 돌아가며 발언하는 ARF 다자회의에서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美, 韓日갈등 중재·조정 관심 없어, 중간개입 긍정적이지 않아”
미 국무부는 2일(현지시간)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개최 자체가 한·일 갈등에 대한 해법 모색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일 갈등과 관련해 구체적 안을 제안하면서 중재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태국 방콕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끝난 뒤 가진 백브리핑에서 회담 내용에 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3국이 만났다는 사실은 해법 또는 적어도 해결책을 찾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것”이라며 “미국은 중재나 조정에 관심이 없다. 그 사실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일 분쟁에서 중재자가 되지 않겠다는 말이냐’는 질문이 추가로 나오자 이 당국자는 “미국은 관여돼 있지만 중간에 들어가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다. 그것(한·일 갈등)에 대한 긍정적 결과가 없다”며 “이것은 한국과 서울 간(문제)이고,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시점이 불행하고, 우리는 분명히 이를 빨리 극복해야 한다”며 “분명히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겠지만 한·일 양국이 추가적 조치를 갈등을 심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당국자는 “백악관, 미국 정부에서 계속 나온 말은 ‘그것은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쪽에서도 확실히 감정적인 문제”라며 “미 정부가 하는 일은 이런 문제가 통제 불가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성과 장기적 관점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한일 양국 관계의 완전한 배제를 보는 것 같다’는 질문에 “아니다. 양측은 해결책을 찾는데 아주 관심이 많다. 그것은 분명하다”고 반박했다.
한 당국자는 폼페이오 장관이 현상동결 합의를 제안했느냐는 질문에 “외교에서 시간은 중요하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거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일종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 ‘현상유지 합의를 부인하진 않겠다는 뜻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또 다른 당국자는 “현상유지 합의와 같은 것은 없었다”며 “그러나 분명히 이번 경우에는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매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국자들은 현재의 한·일 갈등이 대북 협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당국자는 “현재의 긴장이 한·미·일 협력의 모든 측면에 적용되진 않는다”며 “사실 북한에 관한 협력은 중단되지 않았고 다른 부분의 긴장으로 인해 영향받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잘 협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가 거론되는 것에 대한 미국의 우려도 나왔다. 한 당국자는 한국이 지소미아를 파기할 가능성과 그 영향력을 묻는 질문에 “(한·미·일 외교장관) 대화에서 지소미아가 나왔지만 그보다 훨씬 광범위했다”고 전한 뒤 “한·일은 우리가 동북아시아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에게 의존하는 만큼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며 “그중 하나라도 잃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며 서로를 방어할 우리의 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공격은 세 나라 중 어느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이것이 한·미·일이 협력해야 하는 이유다. 더 많이 협력할수록 더 좋다. 협력에 덜 긍정적인 면을 없다”고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 때 보는 듯”…14년차 日무역상이 전한 오사카 분위기
"동일본 대지진 때를 보는 것 같다." 14년째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는 황동명(37) 글로벌티엔티 대표의 말이다. 황 대표는 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오사카 지역 풍경을 이같이 표현했다. 오사카 지역만 300번 이상 방문했다는 황 대표는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 후 일본 현지 공항과 항구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대지진 때 방사능 공포로 한국인 관광객이 뚝 끊겼던 때 거리를 보는 것 같다"며 "7월과 8월이면 오사카는 최성수기라 비행기 티켓과 숙소 구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불매 운동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공항과 항구에 한국 손님을 찾기 어려웠다. 체감상 오사카 도심에는 한국 관광객이 절반 정도는 줄어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 쇼핑 명소로 알려진 유명 잡화점 '돈키호테' 매장을 언급하며 "예년에는 줄을 서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지금은 쓸데없는 지출 줄이고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관광객 발길 끊긴 오사카 신세카이. /황동명 글로벌티엔티 대표 제공= 연합뉴스
일본에서 잡화류를 들어와 국내 전자상거래 업자에게 판매하고 있는 황 대표도 일본제품 불매운동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일본 대기업 제품들이 아닌, 생활용품을 수입하는 것이라 타격이 적은 편이지만 매출액이 20% 정도 떨어졌다"며 일본과 연계된 사업군이 타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부산에는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여행사들이 비수기 시즌 직원 월급을 못 주게 될까 봐 걱정하는 것으로 안다"며 "게임, 카메라, 골프, 레저 등 국내에 대체품이 없어 일본이 거의 독점하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타격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아가 부산 국제시장이나 남포동에서 일본 한인타운을 주로 오가며 물건을 배달하는 보따리상도 일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래 알고 지내던 보따리상 할머니들에게 물어보니 다행히 영향은 많이 없다고 했다"면서도 "일본에서 가져오는 것보다 가져가는 비중이 큰데, 가져가는 물량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다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여오는 물건이 조금 줄다보니 뱃삯 정도를 덜 버는 것으로 안다"고 더붙였다.
황 대표는 본인의 회사도 타격을 받지만 불매운동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저도 장사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환율이 급등했고,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 때도 사업을 접어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어려웠다"며 "하지만 그 시기를 버티니 위기 뒤에 기회가 왔다. 이 고비에는 긴축하고, 직원들에게는 '쉬어간다고 생각하라, 내실을 다지자'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황 대표는 26살 때부터 보부상으로 일을 시작해 현재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고 있다. 또 소규모 무역 창업자를 교육하는 창업 컨설팅을 하며 무역·사업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日, 무역을 무기화”…해외 유력 언론·전문가들 일제히 비판
일본 정부가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하자 첨단 기술분야의 글로벌 공급망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들이 제기됐다. 주요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는가 하면 “일본이 무역을 무기화(weaponized)했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냈다.
특히 미국 언론은 우려를 나타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이 한국과의 무역분쟁을 촉발했다”고 지적했고 , 워싱턴포스트(WP)는 “일본이 한국을 일반적인 무역파트너로 격하시키면서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일본 정부의) 결정은 아시아 내 이웃국가 간 갈등을 고조시킬 뿐 아니라 특히 첨단기술 분야에 영향을 줘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해 이미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글로벌 공급망에 더욱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신은 이 같은 소식을 한일 간 역사적 배경과 함께 전하며 “(일본의) 수출 규제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이슈로 이미 비등점에 이른 양국 관계에 기름을 부을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CNN은 웹사이트에서 ‘경제전쟁의 선포’라는 제목의 톱기사로 전하며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의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하는(threaten) 조치 논란이 가중됐다”고 보도했다. CNN은 특히 “세계 반도체 시장에 공급되는 메모리 칩의 3분의 2는 삼성과 SK 하이닉스에서 만들고 있다. 애플과 화웨이의 메모리 칩도 한국 회사에서 나온다”며 우려를 표했다.
헨리 패럴 미 조지워싱턴대 국제학 교수와 에이브러햄 뉴먼 조지타운대 국제학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에 게재한 ‘일본은 한국과의 무역거래를 무기화했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일본의 한국 수출 제한 조치는 한국 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라며 “국가 간 상호의존성이 무기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두 교수는 “일본이 나라 간의 경제적 공급망을 자국의 전략을 위해 상대방을 압박하는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반성장을 위해 맺은 상호 간의 협력을 하나의 공격 무기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이 전략적 이익을 위해 중국 화웨이와 ZTE 등 글로벌 기업을 압박하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라고 설명하며 “기업들은 효율성 추구하는 일을 멈추고 외국 정부의 결정에 의존하게 만드는 정치적 위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교도통신도 글로벌 공급망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한국의 제조업체뿐 아니라 일본 수출업체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교도통신은 “일본이 다른 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 지정했다가 취소한 것은 한국 사례가 처음”이라며 “미국은 한·일 간 갈등 중재에 의욕을 나타냈지만 일본이 강행한 형국”이라고 전했다.
최악의 한·일 파국사태 해소하려면
한·일관계가 최악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는 8월2일 각의를 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난 7월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종의 수출 규제 발표에 이어 단행된 추가 보복조치다. 백색국가는 군사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물자의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나라로, 대상 품목이 1100여개에 이른다. 아베 신조 총리의 일본 정부가 한국에 전면적 경제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안보상 이유로 취해진 것이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선린 우방’으로 지내온 한국과의 안보 협력을 흔들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경제를 넘어 안보 등 전방위로 퍼지면서 양국 관계가 파탄지경에 처할 것이라는 걱정이 쏟아진다.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아베 정부는 왜 자해적인 보복조치를 감행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국가 간 신뢰가 깨졌다” “국제무역 규범상 문제가 없다”고 한다. 억지 주장이다. 경제 보복조치의 근저에는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가해 아시아 패권국가로 변신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야망이 깔려 있다는 의심을 지울 길이 없다. 백색국가 제외는 1995년 WTO체제 출범 이후 구축돼온 국제분업체계와 산업생태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일본의 산업도 온전할 리 없다. 아베 정부는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이 중단되면 한국경제가 회복불능 상태에 처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한국의 전체 산업재 수입에서 대일(對日) 비중은 15%를 밑돈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해온 소재·부품도 비용·품질 경쟁력이 뛰어나지만 아예 국산화할 수 없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보복조치는 일본 제조업의 기반을 망가뜨리는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제사회뿐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자충수’ ‘자해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백색국가 제외에 대해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이라며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상응조치와 관련해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절차를 밟아나가겠다”고 했다. 아울러 정부는 소재·부품의 물량 확보 및 수입처 다변화와 국산화 기술개발 등 세부대책을 주도면밀하게 세워 국내 산업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앞서 7월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대한민국에 대한 수출관리 운용 개정에 대해’라는 자료를 내고, “TV, 스마트폰, 반도체 소재를 한국에 수출할 때 규제를 강화한다”면서 “수출 관리는 국제법적 신뢰를 토대로 구축되지만 현재 한·일 관계는 신뢰가 현저하게 손상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산업성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전까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한국 정부의 당일 첫 대응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WTO 제소 검토 발표였다. 성 장관은 일본 발표가 있은 7월1일 한 회의에서 관계 장관 회의를 통해 “상황 및 대응방향을 면밀히 점검했으며, 향후 WTO 제소를 비롯해 국제법과 국내법에 의거해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나 청와대의 반응은 따로 없었다.
그러다가 4일부터 정부의 논조가 갑자기 강경해지기 시작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 라디오에 나와서 “일본의 수출 규제는 명백한 경제 보복으로,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다양한 대응 조치를 검토하고 있으며 일본에 상응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홍 부총리는 “국제법과 국내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며 “WTO 제소를 공식적으로 검토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청와대와 조율을 거쳤는지, 행정부 전체의 최종적 입장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성 장관의 발언 이후 만 3일 만에 강대강 대책, 즉 WTO 회부로 회귀한 셈이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충돌 상황은 누가 이기냐의 문제가 아니다. 제소 절차도 길지만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이겼다 한들 실익도 아주 적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당장에 있을 우리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양국 간의 갈등 확전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최고위급 당국자를 일본에 보내야 한다. 일본이 대화의 문을 굳게 잠그고 있지만 그래도 보내서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의 불만, 즉 신뢰회복의 방안에 대해 깊이 청취해야 한다. 그 누구도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다. 일본도 그것을 잘 알 것이다. 양국이 서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한 발씩 후퇴하면 조용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상 대편 피해도 클 것이니 해볼 테면 한 번 해보자는 식의 보복조치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정부는 양국이 절충점을 찾아가는 동안에 생길 피해를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충분히 예상했던 만큼 잘 대응하겠다고 말했는데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대응조치를 보면 준비가 된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만약 정부가 롱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 공개해야 한다. 다음에 나올 제한품목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국민과 기업에 앞으로 어떤 품목에서 공습이 예상되니 주의하라는 조기경보를 울려줘야 한다.
또한, 피해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요령, 행동요령을 발표해야 한다. 일본이 특정 품목을 얼마만큼 수출을 제한하는 경우 어떻게 행동하며, 어디서 구매하며, 정부가 어떻게 도와줄지를 밝혀야 한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일본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방법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아직 대화를 통한 갈등 해결을 시도할 기회는 남아 있다.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아베 총리의 서명과 공포 절차를 거쳐 8월28일 시행된다. 양국은 이때까지 공멸을 피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찾기 바란다. 정부는 극한 대립 상황에서도 일본과 물밑 대화·협상에 나서 절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면 범여권의 특사단을 파견하는 방안도 모색해 볼 만하다. 미국의 ‘분쟁 중단’ 중재를 이끌어내는 외교노력 역시 긴요하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