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제 현대인들은 더 장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수많은 질병과의 기나긴
싸움도 예고되고 있다.
특히 기억력과 언어능력 등 인지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돼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치매 환자 증가가
우려된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함께 치매 인구 증가 속도는 가팔라지고 있는 추세다. 어느 누구도 치매 위협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치매와 치매 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모습이다.
치매 환자는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인식이 지나치게 강하고, 치매로 인해 주변 가족들이 받는 고통이 너무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치매를 남의 일로만 여기면서, 회피하려는 태도가 강하다.
정작 치매를 미리 예방할 수 있고, 조기에 발견하면 치매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처럼 치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치매 환자 부양의 어려움이 큰 만큼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치매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치매 인구 증가 소식을 알고 있으며, 10명 중 1명만이 "내가 치매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
한다"고 답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치매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령화 시대를 맞아 치매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자신도 치매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치매와 관련한 문제를 마냥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려는 태도가 강해 보였으며, 사회 및 국가적으로 치매 문제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최근 사회전반적으로 치매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잘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전체 42.3%가 치매 인구의 증가 소식을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자세한 내용은 잘 몰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절반 가량(50.3%)이었다.
특히 치매 인구의 증가와 관련한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주로 중장년층(20대 38.4%, 30대 35.6%,
40대 47.2%, 50대 48%)에 해당되었다. 전체 11.5%는 실제 가족구성원 중에 치매환자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신이 ‘치매’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10명 중 1명(11%)만이 스스로 치매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사회가 치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느 정도 선입견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만이 치매가 흰머리나 주름처럼 정상적인 ‘노화’의 한 부분이고(29.9%),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질병이라는(29.5%)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고령화와 함께 치매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정상적인 노화현상과는 구분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치매를 감기처럼 흔하게 걸릴 수 있는 질병(15.2%)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물론 치매에 걸리는 이유를 그저 ‘불운’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73.8% "치매는 한 가정 무너뜨리게 만드는 무서운 질병"
10명 중 1명 정도(11%)만이 치매에 걸리고, 안 걸리고는 순전히 운에 의해 좌우된다고 인식할 뿐 대부분은 ‘나이’와
‘음주’, ‘유전적 요인’ 등 다양한 요인이 치매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바라봤다.
가령 치매에 걸릴 위험은 나이에 비례하고(57.6%), 음주와 관련이 있다(56.2%)는 인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유전적 원인에서 치매의 원인을 찾는 시각도 적지 않았는데, 전체 44.2%가 치매는 유전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었으며, 부모가 치매환자면 자식도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40.5%)는 생각도 많은 편이었다.
치매에 걸리게 되면 개인의 삶이 비루해진다는 시각도 엿볼 수 있었다. 치매라는 진단을 받는 순간 그 사람은 한 인간으로서 더 이상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고(27.9%), 중증 치매환자의 삶은 가치가 별로 없다(24.9%)는 인식이 결코
적지 않은 것이다.
고령층에 가까워지는 중장년층이 치매환자는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어렵고(20대 18.4%, 30대 26.4%, 40대 31.2%,
50대 35.6%), 중증 치매환자로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20대 19.2%, 30대 16.4%, 40대 29.2%, 50대 34.8%)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치매에 걸리면 사회적으로 격리될 필요가 있다(19.5%)는 극단적인 시각도 일부 존재했다.
또한 치매환자의 존재가 한 가정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상당해 보였다.
전체 73.8%가 치매는 한 가정을 무너뜨리게 만드는 무서운 질병이라는데 동의하는 것으로, 남성(69.2%)보다는 여성
(78.4%), 그리고 연령이 높을수록(20대 66.4%, 30대 73.2%, 40대 74.4%, 50대 81.2%) 치매가 가족 전체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인식이 보다 뚜렷했다.
10명 중 8명(79.6%)은 우리나라에서 치매환자를 보살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데 공감을 하기도 했다.
더욱이 치매는 약물로 완치될 수 있다(12.2%)는 기대감이 현저하게 낮은 모습이었다.
다만 일찍 치료를 시작하면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79.5%)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평소 본인과 가족의 치매 예방 및 조기 발견을 위해 건강관리와 검진에 많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어 보인다.
◆75% "가족 중 누군가가 치매 진단받으면 앞이 막막할 것 같다"
이처럼 치매 인구의 증가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당면 과제로 부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과 가족에게 닥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10명 중 4명 이상(42.4%)이 가족 중 누군가가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직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20~30대(20대 45.2%, 30대 49.6%, 40대 42%, 50대 32.8%)에게 더 많이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가족 구성원이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상상 그 자체만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전체 응답자의 75%가 가족 중 누군가가 치매 진단을 받으면 앞이 막막할 것 같다고 밝혔는데, 이런 막막함은
연령(20대 73.2%, 30대 73.2%, 40대 77.6%, 50대 76%)에 관계 없이 비슷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환자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서 많은 두려움(64.3%)을 느끼는 것으로 보여졌다. 반면 나와 내 가족이 집에서 환자를 잘 보살필 수 있다는 자신감(12%)을 피력하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만약 가족 중에 치매환자가 생길 경우 환자를 간호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될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커 보였다.
대부분 치매환자의 간호로 인해 나와 내 가족들의 몸과 마음이 고달플 것 같고(75.7%), 내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할 것 같으며(72.5%),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을 것(72%)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남성보다는 여성, 청년층보다는 중장년층이 치매환자로 인해 보호자가 받게 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클 것이라는데 더욱 많이 공감하는 편이었다.
자료사진/픽사베이/
전체 72.2%는 나와 내 가족은 환자에게 드는 비용 때문에 걱정이 많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만큼이나 치료비 때문에 감내해야 할 경제적 고통도 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치매환자가 있을 경우 우리 가족이 예전처럼 잘 지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57.8%)은 필연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타인의 시선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가족 중 치매환자가 있다면 이 사실을 되도록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숨길 것 같고(12.1%), 치매 진단을 받은 내 가족을 바라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된다(29.5%)고 말하는 사람들은 적은 편이었다.
◆치매 진단받을 경우 염려되는 점으로 '경제적 부담' '정신적 스트레스' 많이 꼽아
가족이나 본인이 치매를 진단 받을 경우 염려되는 부분으로는 ‘경제적 부담’(56.7%, 중복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다.
물론 간병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48.5%)도 크겠지만, 무엇보다도 치매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수반될 경제적 비용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가족을 영원히 못 알아볼 수 있다는 두려움(42.4%)도 상당했는데, 젊은 층일수록 치매로 인한 기억 감퇴를 못 견뎌
하는 태도(20대 53.2%, 30대 46%, 40대 33.6%, 50대 36.8%)가 강한 모습이었다. 부양 책임감(33.5%)과 치매환자로
인한 가족의 불화(30.2%), 간병으로 인한 육체적 스트레스(28.4%)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만약 가족 중 누군가가 치매 진단을 받을 경우 치료를 맡길 기관으로는 요양병원(62.7%, 중복응답)과 사회복지기관
(57.2%)을 주로 꼽았다. 반면 집(17.9%)에서 직접 요양을 할 생각은 드물어 보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치매에 걸릴 경우에도 치료기관으로 대부분 요양병원(65.7%, 중복응답)과 사회복지관(56.1%)을 희망하고 있어, 가족에게 짐을 주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을 읽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치매환자의 간병을 둘러싼 고민이 깊은 만큼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치매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것도 당연해 보인다.
고령화 사회에서 치매 노인의 부양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국가(80.2%, 중복응답)를
꼽는 사람들이 단연 가장 많은 것이다.
특히 중장년층(20대 70%, 30대 80.8%, 40대 85.2%, 50대 84.8%)과 자녀가 있는 기혼자(미혼 76.7%, 무자녀 기혼자
78.7%, 유자녀 기혼자 84%)가 치매 노인은 국가가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내비쳤다.
그 다음으로 치매 노인의 가족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46.3%)도 많은 편이었으며, 지역사회(37.5%)와 사회단체
(15.1%)에 치매 노인을 부양할 책임이 있다는 시각이 뒤를 이었다.
◆10명 중 7명 "韓 곧 치매 사회로의 진입 앞두고 있어"…90.9% "고령화사회 대비해 국가적으로 치매인구 부양 위한
노력해야"
‘치매 문제’는 우리사회가 정면으로 응시하고,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는데 대부분이 공감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체 10명 중 8명(79.3%)이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라고 바라보는 것으로, 특히 30대
이상이 치매는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문제라는 생각(20대 67.2%, 30대 82%, 40대 84%, 50대 84%)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바탕에는 치매는 이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성 질환이고(74.5%), 우리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81.6%) 현실적인 문제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부모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린다면 부양을 잘할 자신이있다(18.6%)는 목소리는 적고, 치매에 걸리는 것은 자식들에게 큰 짐이 될 수 있다(86.9%)는 우려는 크다는 사실도 치매 문제를 개인 차원에서만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더욱이 앞으로 대한민국에는 치매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51.9%)이 많은 시점이다.
고령화 사회가 눈 앞으로 다가온 만큼 치매환자의 증가 속도도 가팔라질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으로, 전체 65.7%는
한국이 곧 ‘치매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고까지 느끼는 모습이었다.
서울 성북구 치매안심센터가 지난달 2일 성북구청 바람마당에 마련한 ‘기억다방’(기억을 지키는 다양한 방법) 캠페인에서 어르신들이 치매 테스트를 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아직 우리나라는 치매에 대한 인식이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 대다수(74%)의 시각이었다.
이런 만큼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치매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매우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전체 응답자의 90.9%가 고령화 사회에 대비국가적으로 치매 인구의 부양을 위해 힘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치매가 있더라도 숨기지 않고 안전하게 공존하고 치료할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90.2%)는 주장에도 이견을 찾아
보기 어려웠다.
다만 전반적으로는 치매환자들도 일상에 일반인들과 함께 지내게 해야 한다는 인식(동의 34.7%, 비동의 24.5%)보다는 요양원에서 따로 모아서 지내게 하는 편이 낫다는 인식(동의 48.6%, 비동의 21.3%)이 더 강한 모습으로, 아직은 치매
환자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토양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비록 많은 사람들(71.6%)이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일상생활을 포기하라는 법은 없다고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과 함께 하는 생활을 경계하고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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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권리 없는 요양병원, 스트레스 받는 고객들
요양병원 고객들 불만이 심상치 않다.
요양병원 입원 환자와 그 보호자들이 알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기 화성에 사는 K씨는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이후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요양병원을 처음 이용하다 병원 종사자들에게 물어 볼 사항이 많은 데 문의를 자주하면 싫어하는 눈치이기 때문이다.
간호사실이나 원무과, 상담실 등에 문의를 하고 나면 뭔가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답변하는 종사자들이 너무 바쁜 것 같기도 하고, 질문하는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입원 초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불안 해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궁금한 점은 많으나 환자인 어머니에게 불이익이 생길까 조심스러운 마음이라고 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기력 없고, 거동 불편한 어머니를 혼자 두고 병원을 나설 때는 걸음이 무겁다고 했다. 요
양병원을 처음 이용해보는 관계로 궁금한 점은 많은데 종사자들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질문을 주저하게 된다고 했다.
심지어는 퉁명스럽게 답변하는 종사자도 있어 이러한 상황을 겪고 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질문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고 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날도 많은 서류에 서명을 하라고 해서 서명을 했지만 서명한 서류를 고객에게 교부하지 않아 궁금하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교부를 받아 서명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만 종사자들이 싫어할 것 같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종사자 이름도 묻고 싶은 데 질의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인 배정임 위원(소비자문제연구원 전문위원)은 요양병원뿐만 아니라 대학병원조차도 유사한 불만은 계속되고 있다며, 향후 노인인구 증가로 요양병원 이용고객 불만이 더 늘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1차 진료기관에서 급성 질환을 치료하고 장기간 회복치료를 해야 하는 노인환자들이 증가하면서 요양병원 민원이 늘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문제 전문가인 손정일 박사(소비자인재개발원장)도 향후 장기요양병원 이용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요양병원 안심이용을 위한 국가시책 개발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했다. 우선 요양병원 입원에 필요한
표준약관 개발이 필요하고, 이를 서명한 이용 고객에게도 이용약관을 교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요양병원 입원 시 소비자에게 알려주어야 할 정보 목록을 만들어 목록별 내용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정보제공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고객 입장에서 당직자는 물론 요양병원 종사자별 담당업무와 이름도 알 수 있고, 투약기록, 검사기록, 간호기록 등에 접근 상담방법과 주야로 바뀌는 간호실 교대 시스템 등도 알기 쉽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부친상을 치른 김모(48)씨는 지금도 아버지가 생전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요양병원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김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5월 뇌출혈로 쓰러져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위기는 넘겼지만 수술 후 1주일 만에 병원에서는 “더 이상 우리가 해줄 것이 없다”며 퇴원을 권했다.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겼지만 여기서도 입원 1주일 만에 같은 이유로 퇴원을 종용했다. 집안형편상 아버지의 병수발을 할 수 없었던 김씨는 수소문 끝에 아버지를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한 달에 60만~70만원만 내면 아버지를 ‘편히’ 모실 수 있다는 요양병원의 말을 믿고 아버지를 입원시켰지만 현실은
달랐다.
6인실 병실은 환자들의 소지품과 음식, 약품에 치어 발디딜 틈이 없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국동포 간병인은 환자 6명의 식사ㆍ목욕 수발은 물론 기저귀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씨의 아버지는 입원 2개월 만인 같은 해 7월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아버지 상태가 위중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실 줄은 알았지만 임종을 못한 것은 한이 됐다.
김씨는 “병원에서 한 일은 사망 당일 아침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 한 통을 한 것이 전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가 낮아 입원환자 채워야 생존
병원마다 시설이나 서비스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김씨처럼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셨거나 모시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요양병원에 부모를 맡겼지만 자식으로 할 짓이 못 된다”고 말한다. 이유가 뭘까.
의료법에 따르면 요양병원은 노인성질환자, 만성질환자, 외과수술 등으로 인해 장기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의료와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다.
사실상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수술 등 치료를 통해 응급상황은 벗어났지만 완치를 기대할 수 없는 암 환자, 뇌심혈관질환자 등 중중환자들이 휴양을 하면서 병을 치료하는 곳이다.
설립 취지만 놓고 보면 노인환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의료기관이지만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까지 요양병원을 ‘9대 생활적폐’라고 지목할 정도로 요양병원들은 사회적인 지탄받고 있다.
이는 입원환자 수에 비례해 돈을 버는 구조 탓이 크다.
국내 요양병원들은 진료, 검사, 처방, 입원 등 실제 행한 진료행위에 따라 수가를 받는 행위별 수가제가 아닌 환자의
입원일수만큼 정해진 금액을 받는 일당(日當) 정액수가제로 운영된다.
일당정액수가에 의해 환자는 중증도나 입원치료 필요성 등에 따라 7개 등급으로 구분되고, 등급별로 요양급여가 지불된다. 현재 1등급 요양병원의 경우 의료최고도는 7만6,250원, 신체기능저하군은 4만7,870원이다.
정해진 금액을 받으므로 그 범위 내에서 치료를 해야 하며, 덜하면 할수록 병원에 이익이 되는 구조다.
경기도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모든 치료는 등급별로 책정된 수가에 맞춰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환자에게 항생제 처방을 하고 싶어도 손해가 날까 겁이나 일단 기존 약으로 버티고 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를 열심히 치료하는 요양병원은 오히려 망할 위험이 크다”며 씁쓸해했다.
조항석 대한요양병원협회 정책위원장은 “너무 낮게 수가가 책정돼 별반 치료가 필요 없는 환자를 입원시키는 이른바 ‘환자 고르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저질의료, 과소 진료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
대한 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연도별 요양병원
-박구원 기자/2019-07-28(한국일보)
◇멀쩡한 사람 환자 만들어 장사” vs “우리라도 받아 다행”
치료(요ㆍ療)도 부실한데 돌봄(양ㆍ養)기능마저 변질돼 ‘요양병원의 요양원화’가 심화한 것도 큰 문제로 꼽힌다.
요양병원은 질병이나 장애로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지 노화 등에 따른 신체·정신적 기능저하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요양원처럼 운영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굳이 입원 치료가 필요 없는 환자라도 일단 받아 병상 수를 채우면 돈을 벌 수 있는 정액제 수가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요양병원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에서 1, 2급을 받지 못해 요양원에 입소하지 못하는 환자 또는 그 보호자의 요구가 맞아 떨어져 발생한 현상이다.
3~5급 판정을 받아 요양원에 입소할 수 없지만 집에서 가족의 돌봄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는 환자가 요양병원에 입원
하는 것이다.
현재 요양병원을 전전하고 있는 B(61)씨가 그런 사례다. 40대 초반 경미하게 뇌출혈을 앓았던 그는 완치가 됐지만
알코올의존증이란 문제가 있다.
치료를 위해 수 차례 정신과병원에 입원했지만 그때뿐, 퇴원하면 다시 술에 손을 대자 B씨 가족들은 2년 전 그를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B씨는 환자등급으로 따지면 최하등급인 ‘신체기능저하군’에 속했지만 뇌출혈을 앓은 경력이 있어 ‘의료경도군’으로
분류돼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의료경도군으로 분류되면 등급이 올라 병원에서는 수가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버림 받아 오갈 데 없는 B씨도, 아버지로 인해 더 이상 고통을 겪고 싶지 않은 가족들도, 입원환자를 늘릴 수 있는 병원도 모두 손해 볼 게 없었다.
3년 전 계단에서 넘어져 오른쪽 무릎을 다친 C(72)씨도 ‘요양 난민’이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맞벌이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혼자 살았지만 무릎을 다친 후 식사는 물론 목욕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도 힘들었던 C씨는 아들의 권유로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약간의 치매증상이 있는 C씨는 인지장애군으로 분류됐다. 그는 장기입원으로 수가가 삭감될 때마다 요양병원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과거 요양병원에서 근무했던 한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요양병원에서는 이렇게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을 ‘업 코딩
(up coding)’이라고 한다”며 “병실이 차지 않아 병원운영에 힘든 요양병원들이 이런 식으로 실제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입원자’를 입원시킨다”고 귀띔했다.
그는 “환자를 6개월 이상 입원시키면 입원료의 5%, 1년 이상 입원시키면 입원료의 10%를 수가에서 차감 당하기
때문에 병원들은 6개월마다 이런 환자를 주고받고 있다”며 “사무장병원들의 경우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들 환자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공개한 ‘요양시설·요양병원 역할정립 방안’보고서에 따르면 치료가 필요 없는 신체저하기능군
환자는 2014년 4만3,439명에서 2016년 5만8,505명으로 34.6% 증가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총장은 “연금, 주거시설, 지역사회시설 등 노인복지 인프라가 극히 부족해,
본인부담금 20~40%만 내면 입원할 수 있는 요양병원에 사회적 입원환자가 쏠릴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요양병원들은 오로지 경제적 이유로 선택되는 곳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요양병원들은 “우리마저 받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갈 데가 없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치료가 필요 없는 신체
저하군은 요양병원 입원보다 요양시설 입소가 적합하지만, 단순 신체기능 저하자들은 장기요양등급 1~2등급을 받을 수 없어 요양병원을 선호한다.
요양시설 입소가 가능한 요양등급 1~2등급을 받으려면 일상생활에서 전적으로 또는 상당부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
김주형 아주대병원 교수(대한요양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지역사회나 가정에서 이들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받지 말라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D씨는 “병원에 신체저하군 환자가 많으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실사가 나오는 등 귀찮은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오는 환자를 막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요양병원이 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요국처럼 요양병원 장기입원을 통제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지역사회에서 돌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요양병원에 환자가 입원하면 의무적으로 48시간 내 입원기준에 적합한지 판정하고 주기적으로 입원 기준 적합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입원 후 61~90일까지는 1인당 329달러(약 38만원)의 자기부담금이 부과되고, 90일 초과 시에는 원칙적으로 병원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한다.
일본은 중증환자 수가는 상향조정하고 경증환자 수가는 하향 정해 병원이 중증환자에 집중토록 했다.
입원환자는 수가의 10%를 본인부담금으로 부담하고, 180일 이상 입원할 경우 병원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고 있다.
공공요양병원을 설립해 요양병원의 ‘적정의료 서비스’를 구축하고 이를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민간 의료기관에 본보기로 제시하는 등 공적 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정형준 사무총장은 “요양병원 수가체계 및 관련 법규도 해외사례를 벤치마킹했지만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최소한
권역별, 지역별로 공공요양병원을 건립하거나, 기존 민간에 위탁한 70여 곳의 공공요양병원을 지자체가 직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