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시사

사교육에 치이는 강남 아이들…마음의 병 깊어간다

도토리 깍지 2019. 8. 27. 11:04
서울 강남의 학생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은 사교육을 받는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쉬지 못해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다. 2017년 8월10일 오후 비가 오는 가운데 서울 대치동 학원 거리에서 학생들이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의 학생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은 사교육을 받는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쉬지 못해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다. 2017년 8월10일 오후 비가 오는 가운데 서울 대치동 학원 거리에서 학생들이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공감신문





사교육에 치이는 강남 아이들…마음의 병 깊어간다

 

청소년 사교육·정신건강 현황조사

중고생 43% 스트레스에 시달려
학업이 주원인…주말에도 학원
자해 또는 자살 등 극단 생각도
도움·심리상담 받는 학생 적어

대치동 학원가에 상담센터 추진
뜻밖의 암초 부딪쳐 무산 위기 




서울 강남구는 과거에는 ‘8학군’이라는, 대부분의 학부모가 부러워하는 지역이었고, 현재는 ‘교육 특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강남 개발과 함께 주요 고등학교들이 강북에서 이전해 왔고, 학원들도 가세하면서 상승작용을 한 것이다.

 집값도 덩달아 올랐다.
강남·서초 교육지원청의 통계를 보면, 강남구에 약 2천개의 입시와 관련된 학원·교습소가 몰려 있다.
그중에서도 절반이 훨씬 넘는 1300여개가 대치동에 포진해 있다.
 ‘사교육 1번지’라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유명 학원들이 빼곡한 은마아파트 앞 도곡로는 도로명보다는 ‘학원 거리’라는 이름이 더 유명해졌다.
도로변 상가건물은 학원들이 꽉 들어차 있어 ‘학원건물’이라고 하는 게 더 잘 어울린다.
 ‘좋은 대학 가려면 먼저 대치동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여러 사회·경제적 여건들이 상호작용을 한 결과였을 터이다. 그 속에는 학생들의 눈물과 고통이 숨어 있다.

■ 과도한 사교육에 고통 커져


강남구보건소가 지난 5~7월 관내 중 2·3학년과 고 2학년 16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강남구 청소년 사교육·정신건강 현황조사’ 결과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중고생 중 43.1%가 스트레스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평상시 스트레스를 ‘항상 느낀다’ 또는 ‘느낀다’고 답했다.
성별로는 여학생(51.0%)이 남학생(35.4%)보다 훨씬 높았고, 고교생(46.0%)이 중학생(39.5%)보다 높게 나타났다.

 ‘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교육부·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와 비교해볼 때, 서울시 전체 중고생의 스트레스 인지율 40.4%보다 강남구에서 약간 더 높은 수치다.

학생들의 스트레스 원인은 주로 학업 때문이었다.

스트레스 원인 중 학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9%로 절반이 넘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61.6%)이 중학생(55.0%)보다 높았고, 여학생(60.5%)이 남학생(56.9%)보다 높았다.
 다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학생 가운데서는 남학생(71.4%)이 여학생(68.7%)보다 조금 높게 나왔다.

지난 1년간 사교육을 경험한 비율은 93.7%로 통계청의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와 비교해볼 때, 전국
(72.8%), 서울시(79.9%)보다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 중 97%가 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85%는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학원에 다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한 주일 동안 학원에 가는 시간은 19.5시간으로, 주중 12.9시간, 주말 6.6시간에 이르렀다.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인 2017년 서울시 중고생의 사교육 참여 시간 7.7시간의 2.5배에 해당한다.
  공부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도 주말조차 쉬지 못하는 학생들이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최근 1년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는 학생이 17.1%에 이르렀다.

고등학생(19.2%)이 중학생(14.5%)보다 우울감 경험 비율이 더 높았고, 성별로는 여학생(20.5%)이 남학생(13.8%)보다 높았다.
성별과 학년을 모두 고려하면, 여고생이 가장 우울감을 높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4명 중 1명꼴인 24.1%가 최근 1년간 2주 내내 슬픔·절망감을 경험한 것으로 보고됐다.

■ 스트레스·우울감에 극단행동 벌여

학생들의 높은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극단적인 행동을 불러온다.
 죽고자 하는 의도 없이 고의로 자신의 신체에 자해를 하는 학생이 4.7%로 나타났다.

여학생이 5.1%로 남학생(4.3%)보다 약간 높았고, 중학생의 비율은 5.6%(남 5.4%, 여 5.8%)로, 고등학생(3.9%)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내 청소년들의 자해에 대한 실태조사는 많지 않은데, 한 연구에서는 중고생의 경우 22.8%, 여중생의 경우 20%가 자해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됐다.

처음 자해를 한 나이는 14살(25.4%), 13살(22.4%) 순으로 나타나, 자해 행동이 보통 14~15살에 처음 발생한다는 국외 연구 결과와 유사했다.
자해를 시도한 학생 중 자해 행동과 관련해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상담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2개월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학생의 비율도 8.7%에 달했다. 여학생은 10.1%, 남학생은 7.3%로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 학생의 비율도 2.5%,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는 학생은 1.1%로 나타났다.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로는 학업 및 진로 문제가 40.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다음으로 가족 갈등(24.7%), 친구 및 대인관계 문제(18.7%) 등의 순이었다.

심리상담을 원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평소 정신건강 문제로 심리상담을 받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학생은 현재 혹은과거 심리상담 경험자를 포함해 16.2%로, 여학생(20.4%)이 남학생(12.3%)보다 정신건강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높았다.

■ 상담 원하는 학생들 늘어나

강남보건소는 올해 초부터 스트레스와 우울 경험 학생들에 대한 상담과 힐링을 위해 준비에 나섰다.
학생들은 학원 등 사교육 스케줄이 많기 때문에 학원가로 청소년들을 찾아가는 사업에 목표를 두고, 하루 평균 유동
인구가 약 3만명에 육박하는 대치동 학원 거리의 한가운데 은마치안센터에 쉼터 및 심리상담센터 조성을 추진해왔다.

수서경찰서에 현재 비어 있는 치안센터가 철거될 때까지 무상 사용을 요청하는 한편 추경에 시설 예산을 확보하는 등 착착 준비를 마쳤다.
긍정 반응을 보였던 경찰은 최근 건물은 경찰 소유이지만 토지는 개인 소유여서 토지주의 허락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협의 중단을 알려왔다. 8월 중순부터 시작하려던 공사 추진도 중단된 상태다.

양오승 강남보건소장은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 청소년들이 무거운 대학입시 등의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며 “하루빨리 스트레스 관리 등 종합 안전망을 구축해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 사진제공=시사중국어학원




 


대치동 학원가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고시텔(레지던스)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대치동 학원가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고시텔(레지던스)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SAT 학원비만 900만∼1300만원…“초등생도 바다 건너와”



매년 여름이면 5천여명씩 몰려
아이들 머무는 숙소 천차만별
“원룸 월세 방학 때 2∼3배 치솟아”

기숙학사에서는 10분 단위 통제
“못버티고 나가는 아이들 많아”

호텔에서 강사진이 함께 숙식
1600만원짜리 고액캠프도 열려
“호텔이 감옥처럼 느껴졌어요”





해마다 여름이 되면 유난히 앳된 얼굴의 자취생들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배회한다.
 국외 조기유학을 떠났다가 방학 특강을 듣기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을 대치동에서는 ‘리터니’ 또는 ‘일시귀국생’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최종 진학 목표는 국외 대학이 아니라
 한국 대학의 재외국민 전형이다.

국외 체류 3년 이상이면 자격이 생기는 이 전형에서는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가 등락을 좌우한다. 이들을 위한 단기 속성과정이 생긴 것은 2010년 무렵이라고 학원가에선 말한다.

<한겨레>는 지난 두 달 동안 리터니들을 직접 만나 일상을 따라가 봤다.
형편에 따라 어떤 중학생은 고시원에, 어떤 초등학생은 호텔에서 생활한다.

 편의점에서 홀로 끼니를 때우고 어두운 자취방으로 귀가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흔한 풍경이다.
변질한 입시제도와 불법 사교육 시장, 학부모의 욕망이라는 트라이앵글이 리터니를 양산하는 엔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3회에 걸쳐 그 실태를 파헤친다.

     

“방학만 되면 전세계에서 몰려와요. 아르헨티나부터 아이슬란드까지. 초등학생도 와요.”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만난 한 기숙학사 실장 ㄱ씨는 이렇게 말하며 수첩을 펼쳐 들었다.

 ‘입사 대기자 목록’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세계 각국 국제학교 학생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ㄱ씨는 “처음에는 학부모들이 애를 값싼 고시원에 보낸다.


그런데 에어컨도 잘 틀어주지 않고 방음도 안 되니까 애들이 한두달 살아보고 진절머리를 낸다”며 “그때부터는 돈을

더 주더라도 학사로 보내거나 아예 호텔에서 장기 투숙을 시킨다”고 설명했다.

이곳 학사의 월세는 120만원인데 주변 원룸에 비하면 싼 편이라고 한다. 실장은 “입사 경쟁률이 30~40 대 1 수준”

이라고 했다.


매년 리터니 5천명 이상 온다

사교육 업계는 매해 여름 최소 5천여명의 리터니가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강남 학원가를 찾는다고 추정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국내 대학들의 재외국민·외국인 전형 모집 인원도 5천명쯤 된다.

 대치동의 한 학원 원장은 “‘사교육만큼은 한국이 최고’라는 믿음은 단 8주짜리 특강을 듣기 위해 바다도 건너게 한다.


선릉역 부근 학원에만 2천~3천명의 학생이 온다”고 말했다.

외국으로 떠났던 조기유학생들이 여름 동안 한국으로 ‘재유학’을 오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리터니’(Returnee·돌아온 사람)라는 이름에는 외국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국내 대학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여름을 앞둔 리터니들의 최대 관심사는 방학 동안 다닐 에스에이티(SAT) 학원이다.


국내 주요 대학들이 재외국민 전형에서 에스에이티 점수를 주요 평가 요소로 삼기 때문이다.

대치동과 압구정동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에스에이티 전문 학원들이 포진해 있다.


리터니들이 대치동에서 보내는 여름은 언뜻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연상하게 한다.

에스에이티 학원의 8주 수강료는 900만~1300만원 선이다.

 사립대 한 학기 등록금 수준인데 해마다 오르는 추세다.


학원들은 “하버드·엠아이티(MIT) 출신 선생님이 강의한다” “

이 학원에서는 누구나 에스에이티 고득점을 할 수 있다”고 경쟁적으로 홍보한다.

 지난해까지 자녀를 에스에이티 학원에 보낸 한 학부모는 “선생님들 스펙을 보고 있으면 마치 외국 명문 사립학교를

치동에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들더라”고 말했다.


대치동 버전의 ‘지옥고’

학원 밖에서는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기업이나 정부기관 국외 주재원의 자녀들인 리터니들은 한국에 부모와 거처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 대치동 가까이에서 2개월간 살 곳을 얻는다.

고시원부터 호텔, 기숙학사와 하숙까지, 리터니들의 숙소는 형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특히 적지 않은 학생들이 반지하 월세방이나 고시원 같은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내몰린다.

부동산업자들은 이를 두고 대치동 버전의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아도 비싼 이곳의

부동산 시세는 여름방학 특수를 맞아 갑절 이상 치솟는다. 원룸 월세는 100만원대에서 시작하고, 좀 더 깔끔한 곳은

200만원 이상으로 오르기도 한다.


대치동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단기 계약이라는 이유로 원래 시세보다 2~3배 더 높게 받는 것인데 그마저도 경쟁이 치열해서 공실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여름에 대치동에서 월세가 50만원 이하인 곳은 ‘레지던스’뿐이다. 이곳에서 레지던스는 흔히 떠올리는 호텔식 숙박시설이 아니다. 낡고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3평짜리 방들이 마주 보고 있는 레지던스 내부 풍경은 영락없는 고시원이다.


구청에도 고시원으로 신고돼 있다. 레지던스를 운영하는 ㄴ씨는 “엄마들이 애를 ‘고시원’에 맡긴다고 하면 아무래도

 거부감이 있다 보니까 이름을 보통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

반지하나 하숙집에 가는 학생들도 있다.


중학생 때 반지하 월세방에 살았던 한 학생은 “어두운 방에 혼자 들어가는 게 싫어서 밤늦게까지 편의점이나 피시방에 있다가 갔다.

방에서 거미랑 지네도 나왔다”고 말했다.





에스에이티 학원들의 추천 숙소 목록에 올라와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기숙학사 외부 전경.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에스에이티 학원들의 추천 숙소 목록에 올라와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기숙학사 외부 전경.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상나팔 울리는 ‘군대식’ 기숙학사

리터니들이 고시원보다 더 꺼리는 곳이 있다. 바로 기숙학사다. 대치동의 학사들은 새벽부터 취침 때까지 학생들의

24시간을 통제한다. “군대나 다를 바 없다”는 말도 나온다.

ㄷ학사는 새벽 6시30분에 각방 스피커를 통해 군대 기상나팔 소리를 내보낸다.


 이곳에선 이를 ‘아침 점호’라고 부른다. 일일이 인원수를 점검하는 건 아니지만 이때부터 학생들의 시간은 10분 단위로 관리된다.

6시40분에는 아침 식사 안내 방송이, 50분에는 국민체조 방송이 울려 퍼진다.

7시40분까지는 모두 아침 식사를 마쳐야 한다. 밥을 먹으러 나오지 않으면 실장이 직접 방으로 찾아간다.


시간 관리는 잠잘 때까지 이어진다.

 현관에 출입카드를 찍으면 부모에게 문자메시지가 전송된다.

 하루라도 학원에 지각하거나 귀가가 늦으면 부모들이 바로 알 수 있는 구조다.


밤 11시부터는 출입이 통제되고, 와이파이도 끊긴다. 1

1시30분 조용한 음악이 취침 시각을 알리면 고단한 하루가 끝난다.

 시간을 막론하고 방이나 복도에서는 하품도 크게 하면 안 된다. 학사는 부모와 통화할 때도 계단에서 하도록 안내한다.


이런 통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엇나가는 리터니도 적지 않다. 이곳 실장은 “한 학생은 일주일 만에 못하겠다고 나가더라. 10명 중 8명은 차라리 고시원에 가겠다고 말한다”고 했다.


3~4성급 호텔에서 ‘기숙학원’ 차리기도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는 리터니들도 있다.

일부 에스에이티 학원은 재원생들에게 특정 호텔의 제휴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원장이 같은 호텔에서 숙식하면서 저녁 시간 자습을 지도하거나 과외를 해주기도 한다.


아예 기숙학원의 형태를 띠는 경우도 있다. 3~4성급 호텔에서 강사진과 학생이 함께 숙식하고 등하원도 같이 하는

방식이다.

ㄹ학원은 이번에 서초동의 한 호텔에서 ‘여름방학 생활관리형 캠프’를 열었다.


 일주일에 약 200만원씩, 8주 과정에 1600만원짜리 고액 캠프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전체가 1시간 단위로 통제된다는 점에서는 학사와 다를 바 없다. 홍보 자료에는 “학생 개개인을 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한다”는 문구도

 등장한다.


 이런 기숙캠프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는 한 학생은 “처음에는 호텔이라고 해서 좋았는데 나중에는 다른 데보다 더

힘들었다.

호텔이 감옥처럼 느껴지더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한 학생이 한 손에는 컵라면, 다른 손에는 탄산음료를 들고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유학 간 14살, 방학이면 홀로 '대치동 지옥'을 배회했다




대치동 학원가 리터니들의 '방학 잔혹사'
여름방학이면 조기유학생 '리턴'
대입 재외국민 전형 SAT가 좌우
대치동 8주특강에 수천명 몰려와

중학생이 만성 위염.."부모님은 몰라요"
학원 이동하는 짬에 '10분 점심'
편의점 메뉴가 주식 "한 달 6kg 빠져"
"자취방 가는 버스에서 펑펑 울어"

우울증 17살 "팔에 칼 댄 적도"
"수면유도제 먹어야 잠 와"

"외로움 지쳐" 완전 리턴한 19살
집팔아 등떠밀려 간 유학보다
대치동 여름방학이 더 힘들어




해마다 여름이 되면 유난히 앳된 얼굴의 자취생들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배회한다.

국외 조기유학을 떠났다가 방학 특강을 듣기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을 대치동에서는 ‘리터니’ 또는 ‘일시귀국생’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최종 진학 목표는 국외 대학이 아니라 한국 대학의 재외국민 전형이다.


국외 체류 3년 이상이면 자격이 생기는 전형에서는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가 등락을 좌우한다. 이들을 위한 단기 속성과정이 생긴 것은 2010년 무렵이라고 학원가에선 말한다.

<한겨레>는 지난 두 달 동안 리터니들을 직접 만나 일상을 따라가 봤다.


형편에 따라 어떤 중학생은 고시원에, 어떤 초등학생은 호텔에서 생활한다.

편의점에서 홀로 끼니를 때우고 어두운 자취방으로 귀가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흔한 풍경이다. 변질한 입시제도와 불법 사교육 시장, 학부모의 욕망이라는 트라이앵글이 리터니를 양산하는 엔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3회에 걸쳐 그 실태를 파헤친다.


승완(가명·14)이는 두달차 자취생이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대치동 원룸에 입주했다.

3년 전 중국의 한 국제학교에 유학 간 승완이는 중학교에 들어간 지난해부터 여름방학마다 대치동 학원가를 찾는다.


 올해는 방학식도 치르기 전에 서둘러 입국했다.

학원 여름특강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다.

 집도 친구도 없는 낯선 도시의 한복판에서 자취하게 된 것도 모두 학원 때문이다.

 이곳에서 승완이는 혼자 일어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든다.


7평짜리 원룸서 자취, 평균 수면 5시간

새벽 6시30분, 7평짜리 원룸에 돌고래 소리 같은 고음이 울려 퍼졌다.

 잠에서 깬 승완이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새벽 1시 넘겨 잠들었으니 5시간쯤 잔 셈이다.


승완이의 알람은 4옥타브를 넘나드는 ‘초고음’으로 유튜브에서 명성을 얻은 러시아 가수 ‘아쟁 총각’의 노래다.

깨워줄 사람이 따로 없다 보니 늦잠을 피하기 위해 택한 차선책이다.

실제로 이 노래를 알람으로 맞춘 뒤부터 알람 소리를 못 듣고 자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로까지 달아날 리는 없다.

 ‘이대로 5분만 더 눈 감고 있을까….


’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쯤 “방 안에서 큰 소리는 내지 말아 달라”던 관리인 아저씨의 꾸지람  잔소리가 기억났다. 며칠 전 옆방 세입자의 통화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던 것도 떠올랐다.

 깊은 한숨을 내쉰 승완이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알람을 껐다.

아직 어스름한 시각에 일어난 건 전날 못다 한 학원 숙제 때문이다.


 “원래 자던 것처럼 자면 숙제를 끝낼 수가 없어요.

 한국에 온 뒤로 거의 날마다 이런 식이에요.” 승완이는 불을 켠 뒤 기계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려 나갔다.


말수도 없고 글쓰기도 싫어하는 승완이에게 매일 숙제로 써 가야 하는 500단어짜리 영어 에세이는 익숙해지지 않는

 골칫거리다. 문장 하나 쓰고 단어 수 확인하기를 몇 차례. 남은 분량을 꾸역꾸역 채우자 8시가 넘었다.

오후에 가는 수학 학원 숙제가 남았지만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시계는 8시45분을 가리켰다.

전날 밤 마신 에너지드링크 빈 병들과 방바닥을 뒹구는 잡다한 쓰레기가 눈에 밟혔지만 일단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학원까지는 걸어서 15분. 이미 지각이다.




어린 나이에 자취 생활을 하는 리터니들의 끼니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점심과 저녁을 모두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햄버거로 때운다는 승완(가명)이의 식사.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어린 나이에 자취 생활을 하는 리터니들의 끼니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점심과

 저녁을 모두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햄버거로 때운다는 승완(가명)이의 식사.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편의점 음식, 위염…한달 만에 6㎏ 빠져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학원 강의실에서 승완이의 고정석은 맨 앞자리다.

거의 매일 지각하다 보니 남들이 제일 꺼리는 자리에 앉게 됐다.


승완이는 학원에서 선생님이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 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다.

‘리터니’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도 접점도 없는 학생들은 쉽사리 친해지지 못한다.

 쉬는 시간에는 각자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느라 바쁘고, 점심도 따로 먹는다.


승완이가 맨 앞자리를 택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화장실 가기가 제일 편해서다.

 이날은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한손으로 구역질을 막고 반대편 손을 들자 선생님이 익숙하다는 듯 갔다 오라고 손짓했다.

곧장 화장실로 뛰어가 아침에 먹은 샌드위치를 게워냈다.

한달 새 벌써 두번째다.

승완이는 만성 위염을 앓고 있다.


중국에서도 가끔 소화가 잘 안 됐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된 뒤로 더 심해졌다.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그마저도 5~10분 만에 급하게 먹을 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입에 달고 사는 에너지

드링크도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래도 편의점에서 햄버거 고를 때가 제일 행복해요.” 승완이는 이날도 오후 1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 옆 건물

편의점으로 직행했다.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수학 학원은 1시30분에 시작한다.


온전히 ‘밥’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는 셈인데, 그 안에 남은 숙제도 마저 해야 한다.

 시간에 쫓기는 승완이의 식사는 편의점 제품 중에서도 빨리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채워진다. 불고기버거와 컵라면

, 바나나우유가 단골 메뉴다.


비만으로 가는 지름길 같지만 한달 만에 오히려 6㎏이 빠졌다.

175㎝인 승완이의 현재 몸무게는 49㎏이다.

한창 성장기에 되레 몸무게가 줄어든 건 승완이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숙제가 많을 때는 끼니를 거르거나 급하게 먹는 게 습관이 되면서 살이 급격히 빠졌다.

부모님은 이 사실을 모른다. “굳이 말하기 귀찮잖아요.” 이날 점심에도 승완이는 컵라면을 반쯤 남겼다.

 허겁지겁 버스에 탔을 때는 이미 1시30분. 또 지각이다.


“집 가는 버스에서 남몰래 펑펑 운다”

승완이의 전쟁 같은 하루는 밤 10시, 숙소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을 때까지 계속된다.

아직 할 일은 남아 있다. 엄마에게 전화해 귀가를 알려야 하고, 자취방에 도착해서는 학원 숙제도 해야 한다.

통화는 오래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일주일만 더 일찍 중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가 싸웠어요. 엄마가 절대 안 된대요. 그 다음부터는 엄마랑 말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승완이에게 ‘한국’은 ‘학원’과 동의어라고 했다. 중국에서도 학원에 다녔지만 학원이 전부는 아니었다.

 적어도 저녁을 같이 먹을 친구가 있었고, 밤늦게 귀가해도 불이 켜져 있는 집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학원 외의 일상이 없다.


 “에스에이티 점수가 안 나오면 인생 망하는 거다” “요즘은 다 전략적으로 외국 나가기 때문에 경쟁자가 더 많다”는

학원 선생님들의 훈계를 종일 듣다가 불 꺼진 방으로 귀가하는 하루의 반복이다.

승완이는 “그게 너무 숨 막혀서 자취방 가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펑펑 운 적도 많다”고 털어놨다.


자정쯤까지 숙제하고 나면 승완이는 불을 끄고 넷플릭스를 켠다.

다음날 피곤할 걸 알면서도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온종일 학원 숙제만 하다가 자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밤늦게까지 에너지드링크를 마신 통에 잠이 오지 않는 이유도 있다.

 최근에 정주행을 시작한 드라마 <나르코스> 한 편을 다 보고 나면 새벽 1시가 훌쩍 넘는다.

승완이의 평균 취침 시간이다. 승완이는 “너무 피곤해서 꿈도 꾸지 않고 잘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승완의 진짜 ‘꿈’은 바뀌었다. 처음 중국으로 유학을 갈 때만 해도 한국이 그리울 줄 알았다.


헤어진 친구들과 대학 가서 만나자는 얘기도 했다.

지금은 아니다.

지난 20일 중국행 비행기를 탄 승완이는 “이젠 한국이 너무 싫어졌다.

한국을 떠나는 게 꿈”이라며 “다음 방학 때 또 와야 할 걸 생각하면 벌써 끔찍하다”고 했다.





매일 배달 음식을 먹는다는 서준(가명)이의 냉장고에는 물병뿐이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매일 배달 음식을 먹는다는 서준(가명)이의 냉장고에는 물병뿐이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수면패턴 흐트러져 약 먹어야 잠 와”

자취 생활이 길어진 리터니들은 단순 스트레스 이상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서준(가명·17)이도 그중 한 명이다.

 올해 영국 사립학교를 그만두고 대입 준비를 위해 귀국한 서준이는 압구정동의 유명한 에스에이티 학원 근처 원룸을 얻었다. 학원에서는 “에스에이티 점수 1500점은 나와야 연고대를 노릴 수 있다.


 빨리 혼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학원에서 한 얘기가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혼자라는 해방감에 술도 마셔보고, 종일 게임도 해봤지만 잠시였다.


‘혼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공부만 하다 보니 성적이 자연스레 올랐다. 학원과 자취방만

쳇바퀴처럼 돌면서 공부에 대한 압박감은 커져갔다.


서준이는 “자취하면서 불면증이 심해졌다. 최근에는 수면유도제에도 내성이 생겨서 다섯 알은 먹어야 잠이 온다”고

 털어놨다.

혼자 생활하다 보니 수면패턴이 흐트러졌지만 그걸 바로잡아줄 사람은 없다.


어느 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났다가 그다음 날은 정오에 깬다. 그런 날에는 새벽 4~5시까지 뜬눈으로 지새운다.

 “어두운 방에서 혼자 누워 있으면 온갖 생각이 다 나요.

특히 ‘이번 시험도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잠이 확 깨죠.

” 억지로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들면 이튿날은 종일 멍하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서준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울증이) 심해진다.


하루는 과일 깎는 칼을 팔에 댄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한동안 팔에 붕대를 감고 다녀야 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혼자 사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이 그거예요.


 전화할 때만 ‘괜찮다’고 하면 다들 진짜 괜찮은 줄 알아요.”

그렇게 괜찮은 척하는 사이 성격도 변했다.

말수가 많고 활발하던 서준이는 이제 친구를 만나도 조용한 편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혼자 가는 게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혼밥’이 편해졌지만 그보다 배달 음식을 즐긴다. ‘배달의

족’에서 서준이는 월 20회 이상 주문하면 주어지는 ‘천생연분’ 등급이다.

 서준이는 “사람들 없는 곳이 더 편하다.

저녁은 거의 매일 배달 음식을 먹는다”고 말했다.




리터니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진 고시원 내부 복도 모습.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리터니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진 고시원 내부 복도 모습.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몸살 나 혼자 병원 갔을 때 가장 서러워”

승재(가명·19)는 자신을 ‘실패작’ 리터니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친 승재는 3년 동안 베트남의 국제

학교에 다녔다.

“저는 가기 싫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유학 비용 마련한다고 집을 팔아버렸어요.”

유학 생활도 힘들었지만 더 고된 건 대치동에서 보낸 여름방학이었다.

에스에이티 학원 주변의 학사, 하숙집부터 경기도 친척 집까지 안 가본 데가 없었다. 새벽 6시30분 기상 점호를 하는

‘군대식’ 학사도,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하숙 생활도 승재에게는 모두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점차 외로움에 무뎌졌다는 승재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승재는 “아픈데 혼자 병원 갔을 때는 정말 서러웠다”고 했다.

“한번은 몸살이 났는데 일주일 정도 아팠어요. 학사에 살 때였는데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죠. 결국 병원에 혼자

 가서 링거 맞고 학원에 결석한다고 직접 전화했어요.”


승재가 “더는 못하겠다”고 백기 아닌 백기를 든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부모님은 “재외국민특별전형 3년 특례 기준을 맞춰야 한다”며 말렸다.

3년을 채우고 난 다음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이때는 “집 팔아가며 공부시켰는데 아깝게 왜 이러냐”는 엄마의 말도 승재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는 한국 학교를 다녔고, 결국 엄마가 원하는 수준의 대학에 가지 못했다. 자신을 ‘실패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승재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외로웠던 기억밖에 없어서 솔직히 말하면 한국 올 때 ‘탈출’하는 심정이었다”며

 “다시 생각해도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성장기의 건강을 희생해가며, 모든 관계를 절연당한 채 외로움에 시달리는 리터니들. 이들은 미래에 어떤 성인이 될까. 이들이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대치동에서는 매미 울음소리마저 맹렬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