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 모두 기각… 피해자진술 신빙성‧안 전 지사 위력성폭력 인정 김지은씨 “진실이 다시 묻힐까 두려웠다, 노동자로 돌아가고 싶어”
“피고인 안희정. 주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9일 아침 10시25분께, 대법원 1호 법정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4) 전 충남도지사에게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이날 안 전 지사의 피감독자 간음 등 혐의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위력 행사 여부를 모두 인정해 10가지 혐의 가운데 9가지를 유죄라 판단했다.
위력 이용한성폭력 유죄 원심 인정하는흐름 따른 판결
원심은 피해자 김지은씨 진술을 두고 “주요부분에서 일관성이 있고, 사건 당시 상황과 피고인 행위의 세부내용,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의 상호 행동과 반응 등에 관해 구체적이며 직접 경험하지 않고선 진술하기 어려운 세부적이고
비정형적 사항까지 상세하기 묘사”했다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허위의 피해사실을 지어내 진술했다거나 피고인을 무고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있다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도 했다.
반면 안 전 지사 진술에 대해선 폭로 직후 ‘합의에 따른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라고 밝히거나, 검찰 조사
때 피해자와 연인관계라 주장하다 법정에서 이를 뒤집은 점 등을 들어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또 안 전 지사의 위력 유무를 판단하며 “피고인의 지위나 권세는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가 “(김씨는) 수행비서로서 권력적 상하관계에 있어 적극 저항하는 등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기 취약한 상태에 있음을 인식한 상태에서 이를 이용해 간음행위에 나아갔다”며 “특히 그 과정에서 실제로 위력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의 유형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원심 재판부는 주로 피해자 김씨를 상대로 신문한 1심과 달리 피고인 신문을 거친 뒤 이같이 판결했다.
“실제 위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없고, 피해자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10개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한
1심을 뒤집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2월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돼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최근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혐의에 유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해온 판결 흐름을 따르는 것이다.
대법원은 최근 △김문환 전 에티오피아 대사의 위력을 이용한 부하직원 성폭력 사건 △연예기획사 매니저가 연예인
지망생을 위력으로 성추행한 사건 △이윤택 연극연출가가 극단 단원들에게 위력으로 성폭력을 가한 사건 등에서
원심의 유죄 판단을 모두 인정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일곱 달 간 수행비서인 김씨를 4차례 위력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 차례 위력으로 추행하고, 5차례 강제 추행한 혐의도 받았다.
안희정공대위 “성인지감수성이 법리 전부인 듯 보도 않길”
선고 직후 김씨를 지원했던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등 관계자들은 법정을 나서자마자 서로를 격려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날 공대위에서 65명가량의 시민이 연대 의미로 선고를 방청했다.
공대위는 이날 11시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을 계기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과 성폭력이 지금 당장 끝나기를 바란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 김지은씨 지원 변호인들과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 등이 9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유죄 확정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 앞서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9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유죄 확정 선고 직후 환영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회견에 앞서 이들을 둘러싼 취재진을 향해 성인지 감수성만을 유일한 법리로 강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배주 대표는 “법원 판단의 핵심은 김지은씨의 진술 자체가 워낙 일관되고 구체적이었고, 성폭력 피해자가 가지는 신빙성을 완벽히 갖췄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또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한 점도 중요하지만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기에 위력 부분이 강조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지은씨는 이날 대독을 통해 “진실이 권력과 거짓에 의해 묻혀 버리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날까 너무나도 무서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수많은 증거와 사실관계를 꼼꼼히 파악해준 재판부의 공명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통해 진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2차 가해로 거리에 나뒹구는 온갖 거짓들을 정리하고,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정말 돌아가고 싶다”며 “앞으로
세상 곳곳에서 숨죽여 살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분들의 곁에 서겠다”고 했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9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유죄 확정 선고 직후 환영 기자회견을 열었다. 배복주 전성협 대표는 이날 취재진에게 법원 판단의 핵심을 전해달라는 당부를 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당과 시민사회단체 등도 환영 입장을 냈다.
정의당은 “오늘 판결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피해자다움은 가해자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이정표를 세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과 민주평화당도 “대법원 판단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민주노총은 “이제 일터 성폭력은 위력에 의한 범죄행위임이 이 사회 인식기반이 된 셈이다.
함께 해온 모든 여성 노동자도 당사자다. 미투 운동 시작에는 김지은씨가 있었다”고 했다. 안 전 지사가 속했던 더불어민주당은 낮 1시 현재까지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법원 ‘성인지감수성’ 재확인 피해자 진술 신빙성 있다고 판단 안, 진술 자주 바꾼 것도 유죄 근거
대법원이 9일 오전 10시 10분 안희정(54) 전 충남지사의 상고심에서 안 전 지사와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안 전 지사에게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 김모(34)씨에게 업무상 위력을 행사해 간음·추행한 혐의로 지난해 3월 재판에 넘겨졌다. 안 전 지사는 그해 8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듬해 2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한 ①안 전 지사가 위력으로 김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점 ②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한 점에 대해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서 지난 2월 항소심 재판부가 1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으며 당시 판단의 근거로 삼은
두 가지 판례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두 가지 판례는 우리나라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인 2018년에 명확하게 판시됐다. 2
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면서 다수 판례를 언급했는데 그중 하나가 ‘성인지감수성’ 판례다.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도록 ‘성인지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하고, 성폭행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치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규정한 것이 성인지감수성 판례다. 이 판례는 한 대학교수가 학생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해 징계를 받았다가 이를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나왔다.
2심은 피해 여학생들의 진술 내용 등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성범죄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해자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피해자 등
제3자의 문제 제기 이후 신고하는 경우도 있으며 ▶신고를 하고도 수사기관이나 법정 진술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꼽으며 이를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안 전 지사 사건의 1심 재판부도 성인지감수성 관련 판례를 판결문에 썼다. 다만 1심 재판부는 이런 법리에도 이 사건이 “정상적 판단 능력을 갖춘 성인 남녀 사이 사건이고,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볼만한 물리적 위력이 직접
행사됐다고 할만한 근거는 없다”고 판단해 다른 결론을 냈다. 항소심이 유죄 근거로 든 두번째 판례는 ‘피고인 진술의 모순점’에 대한 판례다.
이 판례는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논산 부부 성폭행 사건을 파기환송하며 처음 명시적으로 판시한 내용이다.
2017년 충남 논산에서 남편 친구에게 성폭행당한 아내가 성폭행 피해를 호소했지만 1·2심에서 ‘연인관계’라는 남편
친구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부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이 사건을 성폭행 혐의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은 파기환송심에서 “강간죄에 대해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로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할 경우 피고인의 진술이 합리성이 없고 모순돼 믿을 수 없다면 이는 법관의 판단에 따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거나 공소 사실의 간접 정황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이 판례에 따라 안 전 지사가 진술을 여러 차례 바꾼 점을 지적하고 피고인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그는 "당사자가 아니라 말하기엔 조심스럽지만 1심과는 전혀 다른 판결이 나왔다"며 "이런 판결 자체를 완전히 신뢰해도 될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강모(34)씨도 "1심과 너무 달라 의문이 생기긴 한다"며 "보도된 정황 만으로 보면 서로 호감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더욱 그렇다"고 했다. 이어 "물론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갖는 무게를 감안해야겠지만 여러 정황을 놓고 볼 때 실형은 과했다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자영업자 전모(32)씨는 "핵심 쟁점은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여부가 아니라 피해자가 느끼는 압박이었다고 본다"며
"대법원은 그것을 인정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직장에서 이같은 사례가 확실히 인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당한 판결 vs 실형너무 과해
이번 판결에 대해 야권은 대법 판결을 환영하는 목소리를 냈다. 다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원론적 답변만 내놓는
수준에 그쳤다.
이창수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사회적 지위가 업무상 위력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해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혐의를 범죄 사실로 인정한 원심 판결을 수용한 것"이라며 "안 전 지사는 피해자의 처지를 이용한 파렴치하고 비열한 범죄에 단죄를 내린 대법원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변인은 "피해자의 용기로 권력을 폭력의 근거로 삼은 성범죄를 심판할 수 있었다"며 "여전히 사회 저변에서는
두려움에 목소리 조차 내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이번 판결을 대한민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권력형 성범죄 근절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대법원의 엄중한 판결을 존중하며 사필귀정(事必歸正·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감)의 확립이라고 평가한다"며 "법원은 오직 법과 원칙에 따른 판결로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최 수석대변인은 "야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던 안 전 지사도 법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
살아있는 권력’이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진실과 정의마저 왜곡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
법원의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도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며 "용기를 내어 권력자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고 지금까지
싸워온 피해자 김씨에게 오늘 판결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고 이제는 일상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원
한다"고 전했다.
오 대변인은 "오늘 판결로써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더 이상 피해자다움은 가해자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처를 홀로 매만지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혹여나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닌지 자책하며 숨죽여왔을 피해자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이번 판결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해 위대한 싸움을 진행한 미투 운동의
승리"라며 "이번 판결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던 성폭행과 성추행의 그릇된 문화가 일소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제3지대 구축모임인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 연대'(대안정치) 김정현 대변인은 "우리 사회에 준엄한 경종을 울린 것
으로 해석한다"고 평했다.
김 대변인은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흠결에 대해 더욱 엄격한 기준을 요구할 것"이라며
"안 전 지사가 몸담았던 정치권은 특히 더욱 큰 책임을 지게 됐고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민주당은 별도의 논평이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고 대변인단들도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답변만 남겼다.
◆여성단체 "安 유죄 확정 판결,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승리"
여성단체들은 대체로 환영 입장을 내놨다.
김씨를 지원해 온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는 9일 오전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안희정 전 지사의 유죄 확정 판결은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승리"라고 밝혔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당연한 결과이지만 너무나 기쁘다"며 "개인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또 다른
무수한 김지은들을 위한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대법원은 '피해자다움'에 갇혔던 성폭력 판단 기준이 잘못됐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라며 "이제 '피해자다움'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선 변호사는 "피해자 변호사로서 지난해 3월 수사 과정부터 오늘 최종 선고까지 모든 증거기록과 공판기록을 봐
왔다"며 "항소심 유죄 판결 이후에도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사실이 아닌 내용이 무분별하게 왜곡돼 전파되는 것을
보며 대법원 선고만을 간절하게 기다렸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현실의 '위력'은 선명하게 드러나거나 잘 보이지 않는다"며 "때로는 점잖게, 때로는 의식할 수도 없는
공기처럼 작동해 피해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왜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은밀한 프라이버시나 인간관계, 일상의 기록 등을 모두 철저히 검증
받았다"며 "그렇게 해서라도 사건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다면 기쁜 일이지만, 더는 피해자에게 이를 묵묵히 감당하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경숙 전성협 운영위원은 "성폭력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과 책임을 묻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가 해야 할 일"이라며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꽃뱀'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는 가해자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에 대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죄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민변 여성인권위는 "이번 판결에서는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이고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을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며 "위력이 현실적으로 행사되는 양상과 사건에
대한 안희정 전 지사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항소심 판단의 정당성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노동현장에서의 여성이 왜곡된 성문화, 조직문화로 인한 성적침해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바라보는 잘못된 사회적 편견과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며 "사법기관 역시 왜곡된 피해자상(像)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현실적인 경험과 인식을 더욱 면밀하게 살피는 판단 기준을 확립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김지은 "이제거짓의 비난에서 저를 놓아주시길 바란다"
김씨는 입장문을 통해 "재판부의 공명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통해 진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마땅한 결과를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아파하며 지냈는지 모른다"며 "이제는 2차 가해로 거리에
나뒹구는 온갖 거짓들을 정리하고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거짓의 비난에서 저를 놓아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린다"면서 "앞으로 세상 곳곳에서 숨죽여 살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곁에 서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9일 오전 '안희정 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에 모여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실형 확정 판결에 기뻐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노무현·문재인의 ‘오른팔’ 안희정·조국 엇갈린 희비
안희정, 유죄·징역 3년6개월 확정”(대법원),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문재인 대통령
각각 故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조국 신임 법무부장관의 희비가 9일 시간차를 두고 엇갈렸다. 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 김지은씨를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 무죄’, ‘2심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상고심 판단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으나 대법원은 이날 그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원심대로 징역
3년6개월을 확정했다.
노 전 대통령이권좌에 앉는 과정에서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처벌까지 감내한 후 충남지사 재선을 거쳐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 반열에까지 올랐던 안 전 지사로선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것은 물론 ‘성폭행 범죄자’로 전락하게 된 셈
이다.
반면 조 장관은 아내와 딸 등 가족들이 연루된 각종 특혜·부정 의혹 확산에다 검찰 수사, 거대야당의 반대, 임명에
부정적인 과반 여론 등온갖 악재에 벼랑 끝으로 몰렸으나 문 대통령이‘정면 돌파 카드’를 꺼내들면서 학수고대하던
법무장관 임명장을 받게 됐다.
물론 앞으로 검찰 수사 결과가 변수로 남아있기 하지만 조 장관으로선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차기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에 오르는 등‘포스트 문재인’으로서 위상을 다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
◆안희정, 대법원 판단에 한가닥 희망 걸었으나 물거품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이날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수행비서 김지은 씨를 4차례 성폭행하고 6차례에 걸쳐 업무상 위력 등
으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안 전 지사 사건 주된 쟁점은 이른바 김씨 진술 신빙성과 위력 행사 여부였다. 무죄 판단을 내렸던 1심 재판부는 김씨가 피해자라면 보일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며 ‘피해자다움’을 거론했다.
최초 성폭행이 있던 2017년 7월30일 러시아 호텔에서 고학력에 사회경험도 있는 김씨가 소극적으로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봤다.
또 미투운동이 일던 지난해 2월 김씨가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안 전 지사에게 보인 행동에 대해서도 “미투운동에 대해 상세히 인지하고 있었고, 심야에 스스로 대전에서 올라왔다”며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낮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혐의에 대한 상고심
기각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하지만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을 들며 ‘피해자다움’을 비판하고, 김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판례를 인용하며 “법원은 성범죄 사건 발생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의 가해자 중심 문화나 구조로 성범죄 피해자가 문제제기 과정에서 오히려 2차 피해를 당하는 점 등에 비춰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토대로 김씨의 범행 전후 언행이 피해자답지 않다는 판단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그런 이유로 김씨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진술 주요 부분이 일관되고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동기가 분명하지 않은 이상, 진술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해선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1·2심에서 갈렸던 위력 행사 여부에 대해서도 “위력은 피해자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유무형 세력이고, 지위나 권세도 포함된다”고 인정했다.
더불어 “안 전 지사의 지위나 권세는 김씨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 세력이었다”며 “범행 전후
안 전 지사와 김씨의 태도 등을 종합하면 업무상 위력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에선 안 전 지사가 지위를 과시하지 않았으며, 김씨를 제압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조국, 벼랑끝 몰렸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에 기사회생
지난 6일 조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난 후 그의 임명 여부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은 이날 임명을 강행했다.
문 대통령은 “저를 보좌해 저와 함께 권력기관 개혁을 위해 매진했고,그 성과를 보여준 조국 장관에게 마무리를 맡기고자 한다는 발탁 이유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며 엄청난 논란을 무릅쓰고 조 장관을 임명한 배경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의혹 제기가 많았고, 배우자가 기소되기도 했고, 임명찬성과 반대의 격한 대립이 있었다.
자칫 국민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보며 대통령으로서 깊은 고민을 했다”며 “그러나 저는 원칙과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청문회까지 마쳐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본인이 책임질 명백한 위법이 확인 안됐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을 안하면 나쁜 선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가족이 수사대상이 되고 일부 기소까지 된 상황에서 장관으로 임명되면 엄정한 수사에 장애가 되거나
장관으로서 직무수행 어려움 있지 않을까 하는염려가 많은 것도 잘 안다”며 “그러나 검찰은 이미 엄정한 수사의지를
행동 통해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히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검찰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장관은 장관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간다면 그 역시 권력기관의 개혁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분명히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 장관이나 가족 관련 의혹·혐의 수사 강도를 높일 경우 문 대통령이 당부한 대로 될지는 불투명하다.
여권발 검찰 개혁과 검찰의 반발이 표면화할 경우 정권 차원에서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거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