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예산 삭감 규모에 동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막판 타결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오후 7시쯤 상황은 급반전됐다. ‘오후 8시 본회의 개최’가 공지되면서다.
예정보다 30여분 늦게 열린 본회의에서 문 의장은 초강수를 뒀다.
오전 본회의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200여개 안건을 먼저 처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본회의가 열린 직후인 오후 8시
38분 4+1 협의체가 준비한 2020년도 정부 예산안 수정안을 바로 상정했다. 통상 예산안에 앞서 선(先)처리했던 예산부수법안보다도 먼저였다.
예산부수법안 수정안을 70여건 제출해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키려던 한국당의 1차 전략은 무산됐다.
이에 한국당은 예산안 ‘수정안 카드’로 또 맞섰다.
4+1협의체가 마련한 수정안과 별도로 한국당 의원 108인 명의로 다른 수정안을 제출해 4+1 협의체 수정안 처리를 저지할 계획이었다. 이날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라 자정이 지나면 본회의 차수변경이 불가능해지는 점을 노린 전략이었다. 수정안 제안 설명으로 자정까지 시간을 끌면 예산안 처리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 카드는 문 의장이 수정안 제안 설명 절차를 생략하면서 무력화됐다.
이후 조경태 한국당 의원이 반대토론에 나섰으나 원활히 진행되지 않자 문 의장은 토론 종료를 선언했고, 결국 표결로 이어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
수정안에 대한 정부측 의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허를 찔린 한국당 의원들은 전원 기립한 상태로 ‘4+1 세금도둑’ 피켓을 들고 “문 의장은 사퇴하라”는 구호를 외쳤고
일부 의원들은 “제안설명을 하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도 통하지 않자 한국당 의원들은 급기야 “아들공천 대가” “세습공천”으로 구호를 바꿔 문 의장을 공격했지만
소용 없었다.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4+1협의체가 마련한 예산안 수정안은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당이 제출한 예산안 수정안을 부동의한다”고 밝혔고 각본을 짠 듯
문 의장은 곧바로 헌법 57조를 언급하며 “부동의 결정에 따라 표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후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등 162명이 발의한 4+1협의체 수정안이 상정됐고 찬성 156표로 가결됐다.
예산안 처리 ‘파국’의 조짐은 이날 오전 9시쯤 포착됐다. 9일부터 밤새 정부 예산안을 심사한 국회 예결위 3당 간사인
민주당 전해철ㆍ한국당 이종배ㆍ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이 ‘합의 불발’을 선언하면서다.
513조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 원안 중 한국당은 4조원, 바른미래당은 3조원을 삭감하자고 했으나, 민주당은 ‘4+1’ 협의
체가 합의한 1조 2,000억원 삭감을 고수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예산안이 안건으로 잡혔던 본회의는 1시간 지연된 오전 11시에 처음 열렸고 여야는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등 처리가 시급한 안건 16개만 우선 통과시켰다.
이후 여야는 본회의 문을 닫고 예산안 협상에 올인했지만 합의를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은 제1야당을 제외하고 예산안을 처리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정기국회 내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컸다.
예산안 늑장 처리를 막기 위한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이 2012년 제정된 이후, 여야가 예산안 처리 법정 기한(12월
2일)을 넘긴 적은 많지만 정기국회 회기 내에는 모두 처리됐기 때문이다.
또 예산안 이후 곧바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비롯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처리해야 하는 여당으로선 예산안 강행 처리로 한국당 기선을 제압하고 패스트트랙 4+1협의체 공조를 유지하려는 의도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뺀 '4+1' 예산 수정안을 상정한 뒤 가결을 선포하자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항의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발언대로 나와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민주당 이인영·한국당 심재철·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와 3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들은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만나 6시간 넘게 '마라톤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합의를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29일, 본회의 안건 199건에 대한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신청) 이후 경색된 정국이 더욱 격랑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본회의 속개 후 35분 만에 끝... 현장은 이랬다 협상 불발은 이날 오후 7시께 기정사실화 됐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본회의 참석 문자를 돌리면서부터다.
심재철 원내대표도 30여분 뒤한국당 의원들에게 "민주당에서 20시에 본회의를 열어 날치기를 할 예정이니 의원님들게서는 속히 국회로 오시기 바란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날 오전 '민식이법' 등을 처리한 후 정회됐던 본회의는오후 8시 38분께 속개됐다.
문희상 의장은 회의 개의 직후 앞서 정해졌던 안건순서를 바꿔 예산안부터 처리한다고 밝혔다.
이 때부터 한국당의 거센 항의가 시작됐다. "날치기다!",
"독재도 아니고 말야!", "문희상은 사퇴하라!" 등 구호가 본회의장에 울려퍼졌다.
문 의장이 본인 지역구에 아들을 '세습 공천' 하려고 예산안을 밀어붙인다는의미로 "문희상 앞잽이", "아들 공천",
"공천 댓가" 등의 구호까지 나왔다. 정상적인 의사진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수정예산안에 대한 토론신청을 위해 연단에 섰던 조경태 의원도 같은 당 의원들의 항의 속에서 끝내 말문을 열지
못했다.
심재철 원내대표와 김재원 정책위의장 등도 연단 앞에서 계속 문 의장에게 '정회'를 요구하던 상황이었다. 문 의장은 "정회 여부도 (여당 등과) 합의해 오라"고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기금운용계획안 수정안과 임대형 민자사업 한도액안 원안은 모두 재석 158인 중 찬성 158인으로 가결됐다.
문 의장은 이후 다시 정회를 선포했다. 이날 오후 본회의가 속개된 지 35분 만이었다.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본회의 정회 후 기자들을 만나,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이 총동원 됐다"고 강하게반발
했다.
특히 "제가 명색이 예결위원장인데 저도 전혀 내용을 모르는 예산안이 처리됐다"면서 "세금도둑들에 의해 날치기로
처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한국당, `4+1` 예산안 통과 맹비난…"부끄러운 줄 알라"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4+1` 협의체의 예산안 수정안이 통과된 데 대해 "절름발이
날치기"라고 비판했다. 심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본회의가 정회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날 본회의에 대해 "제안 설명도, 수정안 설명도 없고
안건 순서를 바꿔 예산안을 먼저 의결하고 예산안을 뒷받침할 법적 근거는 (처리하지 않고) 정회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심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실을 찾아 "세금 도둑질에 국회의장이 동조한 것은 매우 잘못됐다.
(의장이 예산안 통과의) 선두에 섰던 모습을 국민이 똑똑히 봤다"며 "이런 분이 우리 국회 수장으로 있는 것이 치욕"이라고 쏘아붙였다.
자유한국당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이날 본회의 정회 후 기자들과 만나 "참으로 참혹한 심정이 드는 불법의 결정판이다. 국민이 두렵지 않나"라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김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월 30일까지 (예결위) 심사가 순조롭게 진행됐는데 갑자기 (민주당이) 예산 심사 절차를 중단하고 예산안 보따리를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며 "명색이 예결위원장인데
저도 전혀 모르는 예산안이 세금 도둑들에 의해 날치기 처리됐다"고 밝혔다.
김 정책위의장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4+1 협의체에 의한 국가 재정 도둑질 내지 세금 도둑질에 부화뇌동해 그들이 결정한 예산안에 대한 예산명세서를 부하직원에게 작성하도록 했다"며 "이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고 직권남용이자 권리행사 방해로, 홍남기 부총리에 대해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본회의가 재개되자 토론을 신청해 여러 차례에 걸쳐 "부끄러운 줄 아세요", "국민이 무섭지 않습니까"라며 여당
의원들을 질타하기도 했다.
같은당 송언석 전략기획부총장은 통상 세입부수법안을 먼저 의결한 뒤 예산을 처리한 관행을 깨고 예산안을 먼저 처리한 데 대해 "이는 세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적인 예산이 처리된 것"이라며 "절차적으로 잘못된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한국당 김성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국가 예산을 엄중히 심사하라는 국회 본연의 임무는 망각하고 야합으로 막대한 수퍼예산을 강행처리 한 것은 국민을 기만하고 스스로 국회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도 `4+1` 수정안 통과에 대해 "513조원이나 되는 국가 예산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폭거"라며 "전혀 설득력이 없는 불법적 사설 기구를 통해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런 식으로 힘으로 밀어붙이는 의회는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되돌려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오 원내대표는 바른미래당 내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에 속해있다.
역시 변혁 소속으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인 지상욱 의원은 "직권남용에 대한 형사고발 조치를 검토해왔으며 검토가 끝나는 대로 형사고발 하겠다"고 말했다.
변혁은 바른미래당 김수민 원내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4+1` 예산안 협의체에서 마련한 수정 예산안에 합의정신을 더하려는 노력은 문의장과 민주당의 예산안 강행이라는 폭거 아래 물거품이 되었다"며 "숫자만 가지고 과반수 넘으면 국회 룰도 국회법도 관행도 도리도 다 무시하는 집권여당. 그들에게 머지않아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