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팬더믹 1차 위기에 미국ㆍ유럽보다 더 잘 대처한 건 맞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성과다. 장기적으로 볼 때, 아시아 국가들은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로고프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등 아시아의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에서 상황이 좋지 않다”며 “이는 아시아 각국 경제 상황이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징조”라고 지적했다. 로고프 교수는 세계적 경제 석학으로, 예일대 졸업 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하버드대의 스타 경제학 교수로 재임해왔다. 1953년생이다. 그는 '그린 뉴딜' 정책에 대해선 “원칙적으로는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로고프 교수가 하버드대 동료인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와 공저한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이 필독서로 꼽는 명저다. 경기 호황 때마다 사람들은 “이번엔 전과 달리 위기는 오지 않을 거야”라고 헛된 희망을 품지만 결국 호황의 끝은 위기라는 점을 역사적으로 실증해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5차 비상경제대책회의' 내용을 전하기 위한 브리핑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로고프ㆍ라인하트 교수를 인터뷰하며 ‘이번 위기는 진짜로 다르다’는 제목을 붙였다. 로고프 교수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두고 “추락 속도가 전에 없이 빠르다”며 “이번 위기는 진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다르다”고 말한 것에 빗댄 제목이다.
한국과 세계경제에 대한 로고프 교수의 진단이 궁금해 e메일을 보냈고, “눈코 뜰 새 없긴 하지만 꼭 답하고 싶어 짬을 낸다”며 회신을 보내왔다. 그는 하버드대가 있는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의 자택에서 e메일과 화상으로 업무를 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Q : 한국 경제, 어떻게 진단하나.
A : “한국을 포함한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19 팬더믹의 1차 위기에 미국ㆍ유럽보다 훨씬 더 잘 대처한 건 맞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성과일 뿐이다. 아시아의 경제의 수출 의존도는 매우 높은데, 앞으로 다가올 팬더믹으로 인한 위기에서 이는 좋은 신호가 아니다.
수출은 두 가지 이유로 점점 더 어려워질 텐데, 경기 회복이 더딘 속도로 이뤄질 것이라는 이유와 그 과정에서 각국이 보호주의를 채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이제 다음 질문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해외가 아닌 국내로 눈을 돌리는 상황에서 재편될 세계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
코로나19는 미국 경제도 강타했다. 지난 3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주정부 취업센터 앞에서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Q :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처럼 토네이도 폭풍에 휘말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는데. 폭풍은 언제쯤 끝날까. A : “중요한 건 토네이도가 도로시의 집을 어디에 데려놓을지다. 코로나19가 세계화의 전진과 수많은 장기 거시경제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건 분명하다.
앞으로가 문제인데, 세계화의 후퇴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인플레이션과 플러스 금리의 기조가 뒤바뀔지, 경제성장률은 얼마나 떨어질 것인지, 각국 정부가 직면한 포퓰리스트 정책에 대한 압박으로 우리 경제 시스템 자체가 바뀔 것인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Q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리처드 클라리다 부의장 등은 ‘V자 반등’과 급반등이 3분기부터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A : “V자 반등은 가능하지 않다. 우리 앞에 닥친 깊은 경기 침체의 골에 있어서, 단순한 경제성장률을 분석하는 건 아주 훌륭한 도구는 못 된다. 경기 침체에 진입하기 전의 1인당 국내총생산 수준을 회복하는지가 유효한 척도가 된다. 설사 3분기의 경제성장률이 V자처럼 반등한다고 가정을 해보더라도 이는 가짜 성장이다.
이미 경제가 50% 곤두박질을 쳤다고 가정할 때, 그 다음에 25% 반등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 가장 중요한 건 이제 팬더믹이 엔데믹(endemicㆍ풍토병)으로 진화했다는 것이고 백신 개발이 되기 전 2~3차 감염 확산이 있을 거라는 점이다.
일상생활이 재개된다고 해도 예전과는 다른 형태로 재개될 것이고 중소기업들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다. 세계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개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타격이다.”
미국 실업률이 지난달 14.7%로 급등했다. 5월 실업률은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 미국 대선, 상황 악화시킬 수도
Q :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Fed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의 역할론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A : “Fed는 지금까지는 영웅과 같은 역할을 해냈고,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인데, 이 팬더믹으로 인한 위기가 더 오래가고 더 힘들어진다면? Fed와 ECB 모두 정부 당국자들이 바라는 수준의 조치들을 해낼 도구를 갖고 있지 못하다. 물론 경기부양책은 필수고, 더욱더 큰 규모로 해야 한다.
하지만 큰 정부의 과도한 지출에 수반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의 비정상이 뉴노멀이 되지 않고 과거의 정상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일이다.”
Q :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진단은. A : “미국은 올해 대선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해외 상황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팬더믹 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 하다. 미국의 융통성 있는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한 때에 그렇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해오던 역할을 벗어났고, 재선된다면 상황은 악화일로일 것이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미국의 역할을 회복시킬 수는 있겠지만, 민주당 내 계파 갈등은 여전한 문제로 남아있다.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끄는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이 트럼프와 똑같은 방식의 반(反) 세계화 기조를 선호하는 것도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샌더스 측의 정책은 사실 트럼프와 똑같다. 겉만 더 번지르르할 뿐이다.”
Q :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식 뉴딜 정책’과 ‘그린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A : “관련 정책의 세부적 내용의 뉘앙스를 파악할 시간이 부족하기에 딱 잘라 분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볼 때, 한국과 같은 고도로 성장한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 성장 동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불평등 이슈와 기후변화 분야에서 방법을 찾은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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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1일 대구의 제조업체 조립공장의 모습. 코로나 이후 주문이 거의 사라지면서 직원들이 모여앉아 제품을 만들던 작업대가 텅 비었고, 관리직원만 홀로 남아있다.
/오종찬 기자
코로나 경제위기, 외환·금융위기 때보다 회복 속도 더뎌
제조업 자금사정 전망,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 6월 전망치는 68.9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달(61.8) 대비 7.1포인트 상승한 수치이지만, 여전히 기준선(100)을 한참 밑도는 수치다. BSI 전망치가 기준선을 넘으면 경기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고, 100을 밑돌면 그 반대다.
6월 전망치 부문별로는 내수(71.4), 수출(71.1), 투자(77.0), 자금(78.2), 고용(85.2), 채산성(76.2) 등 전 부문에서 기준선 미만을 기록했다. 업종별로는 자동차(42.1), 의류·신발(50.0), 의료·정밀기계(50.0), 비금속 광물(55.0), 금속 및 금속가공(55.2) 순으로 낮은 전망치를 기록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수요 회복이 더디고 주요국 해외공장의 셧다운 지속으로 내수와 수출이 부진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제조업의 자금사정 전망(73.9)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66.4)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업활동 부진으로 현금흐름이 위축되고, 금융기관 대출여건도 악화된 데 따른 것으로 한경연은 분석했다. 일부 기업들은 신용등급 하락으로 대출연장에 실패하고 해외 매출채권 회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연은 과거 위기에 비해서 회복속도가 더디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2009년 1월 최저치(52.0) 기록 후 두 달 만에 24.1포인트가 상승한 반면, 이번 위기 때는 지난 4월 최저치를(59.3) 기록 후 같은 기간 9.6포인트 상승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한경연은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수요·공급의 복합적 충격이 겹쳐 경기 전망이 여전히 어두울 것으로 전망했다.
5월 실적치는 70.6을 기록하며 61개월 연속 기준선 아래에 머물렀다. 부문별로는 내수(74.2), 수출(72.0), 투자(76. 8), 자금(82.6), 재고(107.3), 고용(84.9), 채산성(78.4) 등 전 부문에서 기준선 미만을 기록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어 회복세 지속에 대해 예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기업들이 경제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금지원 절차 간소화 등 적극적인 유동성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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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위키리크스한국·한국기업법연구소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코로나19 극복 위한 정부의 기업·금융 정책 방향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시장중심 정책을 촉구했다.
[사진=최지환 기자]
한국경제 위기 근본 '소주성·반기업·친노조'...'시장경제' 정책 대전환 요구"
세계경제 역성장 등 '코로나19'발 경제 타격과 맞물려 한국경제 위기 기저엔 근본적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 기업조세부담 확대, 규제 신증설, 반기업·친노조 정책 등 시장경제활동을 위축하는 현재의 정부 정책이 있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코로나19'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소주성 등 정책 기조 변화, 규제 개혁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위기가 시장경제체제로 돌아가는 계기가 된다면 "위기가 곧 기회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이외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제, 비용적 제약을 넘어 기업 내 업무타당성까지 들여다보는 준법조직 정비 등도 요구된다.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위키리크스한국 주최, 한국기업법연구소 주관 '코로나19 극복 위한 정부의 기업·금융 정책 방향 포럼'에서 금융·경제 전문가들은 "소주성 등 현재 정부정책이야말로 저성장세인 한국경제 위기를 가중한 근본 원인"이라며 "이 와중에 '코로나19'발 위기까지 덮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는 '코로나19' 이전 이미 일련의 문재인 정부 정책으로 불황이 닥친 상태였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코로나19'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부 정책기조 변경과 적절한 제도 보완 등이 맞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황인학 한양대 특임교수는 '코로나19' 유행 이전부터 잠재성장률이 15년만에 반토막 날 정도로 한국경제 기저질환이 심각한 상태라며 근본 원인은 기업가 정신을 제약하는 제도와 정책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저출산·고령화, 투자·혁신 미흡, 고비용·저효율은 결과이자 증상일 뿐 시장원리와 시대환경에 맞지 않는 제도, 정부정책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세계경제 장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기업가정신과 시장활력을 되살리는 제도 혁신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황 교수는 "한국경제는 역사적 기로에 직면, 성장과 일자리 엔진을 되살리는 정책기조 대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이야말로 혁신과 전환 적기"라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유연근로시간제·한시적 규제유예제도 도입, 법인세 인하, 기업활력제고법 대상 확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 국민 재산권 보호·계약 자유 확대, 규제개혁, 공공기관 시장잠식행위 중단 등이다.
최준선 한국기업법연구소 이사장도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 세계경제 위기"라며 "세계무역 30%가 급감하고 세계경제 마이너스 성장으로 국제공조가 실종되며 한국경제엔 치명타를 예고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현재 정부대책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위주 현금살포와 일회성 지원에만 수십조원을 투입 중"이라며 "경제시스템 붕괴가 우려된다.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생존'에 방점을 둔 장기 플랜이 절실하다"고 했다.
최 이사장은 "기업 인력감축, 무급휴직, 자산매각 등이 잇따르고 있다. 신용경색으로 자금줄 막힌 기업 체감경기는 패닉 수준"이라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보건의료기술진흥법, 의료법개정안,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 등 경기활성화 관련 법을 조속히 입법해야 한다"고도 했다.
26일 코로나포럼에서 오정근 회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최지환 기자]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도 현재의 성장률 추락과 기업대량 부도, 대량실업 위기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 정책기조를 꼽았다. 오정근 회장은 "소주성, 반기업 반시장, 친노조 반노동, 정부주도로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문재인 불황'이 닥친 상태였다"며 "경기안정화 대책은 거꾸로 갔고 문 정부 출범 이후 경기추락은 지속됐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19'가 엎친 데 덮쳐 올해 한국 경제 역성장으로 실업자 급증이 예상된다"며 "기업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실업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오 회장은 예견되는 구조조정 로드맵, 원칙을 제시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기간 내에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되 여야정치권, 정치논리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정부는 구조조정방향과 지원방식, 사후대책 등 큰 그림만 그릴 것을 강조했다. 특히 구조조정 전문가에 의한 신속한 구조조정, 기업회생 후 한은 발권력 회수로 경제안정 도모 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외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현재 전문성 없는 사외이사제 운영에서 탈피, 기업 필요에 부합한 제도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대정부 로비를 염두에 둔 검찰·국세청·공정위·감사원 등 4대 권력기관 사외이사 낙하산 풍조를 비판하고 기업이 중시하는 전문성 갖춘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직 출신, 업계 이해도 높은 기업인 출신 사외이사 비중을 늘리면서 사외이사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부 교수는 사내 준법조직 정비 방향을 고민했다. 최 교수는 "상법상 감사제도는 준법만이 아닌 회사 내 업무타당성까지 보는 제도적 장치"라며 "기본적인 컴플라이언스 모습은 금융기관 백 오피스 기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법무실이나 감사팀 확대로 내부 기능을 두는 방법, 독립된 준법감시조직을 두는 방법, 이사회내 위원회 하나로 준법감사위원회 두는 방법, 그룹 전체 총괄 준법감시조직을 두는 방안 등 기업 준법감시조직 구성방안을 짚어봤다.
최 교수는 구성방안 가운데 준법조직을 상법상 이사회내 하나의 위원회로서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해당 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정보플로우 정립', 내부 위법행위를 위원회로 알리는 '핫라인 확보' 등을 강조했다.
안인숙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연대와 협력의 정신으로 지역사회를 지키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장기적인 사회적 안전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사회적경제의 '공동체 정신'이 코로나 위기 이겨내는 열쇠 될 것"
인터뷰] 안인숙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집행위원장
"누구도 해고하지 않겠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때, 쉽지 않은 약속을 한 이들이 있다. 대기업이나 '코로나 특수'를 잡은 온라인 상거래 업체가 아니다. 자체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4곳 중 3곳의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그 주인공이다. 자활 기업, 협동조합 등으로 이루어진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지난 3월 26일 코로나19 사회적경제 공동 대응 본부를 꾸리고, 가장 먼저 '고용 조정 제로' 선언부터 내놨다.
이튿날부터는 자체 위기 대응 기금 마련에 나섰다. 3주간 진행된 펀딩에는 사회적경제 조직 237곳이 참여해 1억3000만원을 모았다.
이 과정을 이끈 안인숙(56)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선언에 동참해 달라'고 하면서도 '될까' 하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우려는 감동으로 바뀌었다. "제 기대보다 훨씬 적극적이었어요. '사회적경제가 사람을 중시하는 경제 활동을 하자고 만든 건데 상황이 어렵다고 해고하면 되겠느냐'면서 동참 의사를 전했어요.
공동체 정신이 우리의 저력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난 안 위원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희망은 '공동체'와 '연결'"이라며 "재난 상황일수록 약자를 먼저 보살피는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폐업 위기에도…'더 어려운 이웃 도와달라' 힘 모은 사회적경제
안 위원장은 국내 사회적경제계의 '대모'다. 사회적경제가 막 싹트던 2000년부터 행복중심생협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행복중심생협 이사장을 거쳐 지난 2017부터는 전국 사회적경제 조직 66곳이 가입한 네트워크 단체인 연대회의에서 집행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전국 사회적 경제 조직 연합체가 회원사인 연대회의는 주로 현장의 의견을 모아 사회적 경제 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을 한다. 지난 4·15 총선에서는 각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사회적 경제 관련 공약을 내걸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경제 매니페스토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20년간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활동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안 이사장이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청소나 돌봄 등 대면 업종이 많은 사회적 경제 기업 대부분이 영업 정지 상태에 빠졌어요. 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고용하는 곳이 많으니 '일자리를 잃으면 이들은 어쩌나' 하고 걱정했죠.
그렇다고 기업에 무조건적 부담을 강요할 수도 없어 고민했지만, 내부적으로 '위기 극복도 사회적 경제답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고용 조정 제로' 선언을 하고, 기금을 모아 선언에 동참하는 기업을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안 위원장은 "가장 힘든 곳이 가장 많이 도왔다"고 말했다. "기초 수급자를 고용하는 자활 기업 상황이 가장 안 좋아서 사장님들이 '폐업 위기인데 동참했다가 욕이나 먹지 않을지 솔직히 걱정된다'더니 결국엔 기부금도 가장 많이 냈습니다.
게다가 배분처를 논의할 땐 '이 돈이 더 어려운 사람에게 가도록 자활 기업은 배분 신청을 자제하자'고 먼저 말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사람이 만든 기적' 아닐까요?" 함께한 사람들 이름을 하나씩 언급하던 안 위원장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안 위원장은 "사실 이런 경험은 사회적 경제 역사에는 흔하다"고 자랑했다. 지난 2016년 전국자활공제협동조합연합회가 시작한 의료비 공제 사업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사업인데, 매달 1000원을 내면 연간 30만원까지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시작 당시 많은 사람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거라고 했지만 결과는 달랐어요. 5년째 순항 중이죠. 참여자 대부분이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도움을 못 받게 될까 봐 함부로 돈을 못 타고, 쓰면 꼭 갚는다'고 말해요.
사회는 소외된 이웃에게 기회를 주고, 개인은 자립 의지를 가지고 다시 공동체를 돕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걸 사회적경제계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연결'과 '공동체'가 핵심
안 위원장은 코로나19 이후에도 '공동체'와 '연결'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고 내다봤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언택트(Untact·비대면)'가 강조되곤 있지만, 대량 실업과 장애인이나 노인 등 취약 계층이 재난 시기 가장 크게 고통받는 점을 고려하면 사람들이 서로 돌보는 '연대 정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줄 수 있을까요? 또 다른 재난이 오면 어떨까요? 오히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선 '멀어짐'이 아니라 사람 간 연결과 공동체 확대가 '사회의 회복'을 만드는 열쇠가 될 겁니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감염병이 잦아들고 나면 지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여러 사회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텐데, 이때 사회적경제 조직이 할 역할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 환경 오염, 주택 문제…. 이 문제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는데 사회적경제 조직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취약 계층은 모두 일자리를 잃고,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이쿱생협이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같은 자본을 가진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나서서 다른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돕는 것도 이런 것 때문입니다."
아이쿱생협은 자체 출자한 재단을 통해 위기에 빠진 사회적경제 조직에 현금과 물품을 지원하고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대금을 선입금했고,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은 사회적경제 조직 대상 긴급 융자 프로그램을 내놨다.
안 위원장은 "돕는 과정에서도 사회적경제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짚은 사회적경제 원칙이란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평등하고 투명하게 의사 결정을 할 것' 등이다. 대응본부는 펀딩으로 모인 돈 1억3000만원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한 돈 5억원을 합한 기금 총 6억3000만원을 이 기준에 따라 배분하고 있다.
만장일치로 가장 먼저 지원이 결정된 곳은 대구다. 대구 지역 사회적경제 조직 간 협의체인 대구사회가치연대 준비위원회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지역사회를 위해 써 달라'며 5000만원을 기부했다. 대응본부는 이들이 '사회적경제의 가치를 실천했다'며 1억원을 지원하고 회원사에 배분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고용 조정 제로 선언과 펀딩 참여도, 기업 상황 등을 기준으로 배분처와 금액을 논의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코로나19 전후의 사회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사람이 밀집해 살고 과노동이 일어나는 도시를 중심으로 재난이 퍼졌고,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먼저 희생됐죠. 코로 나19는 환경 오염, 경제적 격차 등 이미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문제로 인해 일어나고 심화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과제도 다시 환경, 노동, 주거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는 게 아닐까요? 이 과제를 해내기 위해선 사회적경제가 언제나 말해오던, 연결과 공동체의 가치가 꼭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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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서 복지국가까지
재난과 경제위기마다 복지정책은 강화돼 코로나발 경제위기, 사회안전망 확충 기대 합리적 정책과 재원 마련 계획 세워야
역사를 들여다보면 재난이 복지국가 확대의 계기가 되었던 굵직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미국은 대공황의 늪에 빠져 있던 1935년 고령연금, 실업보험 등을 골자로 사회보장법을 제정하여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영국 복지국가 건설의 기초가 되었던 베버리지 보고서는 런던이 폭격을 당하고 있던 시기에 작성되었고 전후 폐허 위에서 제도화되었다. 우리나라도 1998년 외환위기의 충격을 극복하는 가운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고 사회보험 적용 대상이 확대되는 등 복지제도가 한층 강화되는 경험을 한 바 있다.
그러면 경제위기와 같은 재난은 어떻게 복지국가의 형성에 영향을 미칠까? 대공황기 미국의 사례는 이 과정을 잘 보여준다. 당시의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대공황 이전의 미국에서는 산업구조 변화와 기술 진보의 뒤안길로 밀려난 피해자들이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은 19세기 말 이후 줄곧 요구되었지만, 미국의 공적인 복지제도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늦은 1930년대에 와서야 만들어졌다. 이러한 지연의 주된 이유는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경제적 개입에 대한 미국 특유의 정치적ㆍ사법적 거부감이었다. 개인주의, 자립성, 자발성을 강조하는 정치적ㆍ사회적 전통도 대규모 복지프로그램의 태동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
대공황의 발생은 산업화 시기를 통해 이미 한계적인 위치로 몰려나고 있던 취약계층의 어려운 경제적인 형편을 극단적으로 악화시키고 이를 보다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정치적인 요구를 한층 강화하였다. 심각하고 광범위한 피해를 목격하면서 대중은 실직이나 빈곤이 개인적인 문제의 산물만이 아니며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사회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간 주도의 과격한 정치적 운동이 부상하면서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급진적인 개혁이 요구된다는 인식도 확산되었다. 이러한 여건은 복지제도에 대한 문화적인 거부감을 완화하였고, 경제적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연방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정치적ㆍ사회적 분위기를 변화시켰다.
코로나19가 초래한 이번 경제위기는 복지국가 확대의 중요한 계기가 될까? 그 가능성은 점차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 시장이 받은 심각한 타격에 대응하여 정부는 고용안전망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천명하였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되기 시작한 재난지원금은 위기 대응을 위한 일회적인 조치로 추진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기본소득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제적인 변화로 인해 복지 확대의 필요성이 발생하더라도 문화적ㆍ정치적ㆍ사법적인 관성과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빠르게 제도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근래의 산업구조ㆍ기술 변화와 함께 빠르게 늘어난 새로운 유형의 취약계층이 여전히 기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이번 재난의 충격이 제도적인 관성과 경직성을 타파함으로써 우리의 사회안전망을 현재의 경제적 현실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강화할 수 있다면 위기를 기회로 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두 가지 주문을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재난에 맞서기 위한 임시적인 조치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인 정책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마련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여러 가지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위기 상황을 먼 미래까지 투영할 만한 확실한 근거는 없다. 한번 만들어진 제도는 쉽게 바꾸기 어려운 만큼 오래 존속될 정책의 수립에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둘째,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의 마련은 매우 중요하다. 재난이 드러낸 사회안전망 확대의 필요성과 함께 합리적이고 투명한 재원 조달 계획을 국민에게 잘 설명하고 그 부담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