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시사

체육계의 충격적인 폭력 실태

도토리 깍지 2020. 7. 4. 08:56

 

 

2013년 해양스포츠제전 참가한 故최숙현 선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故 최숙현 선수의 생전 일기장 [유가족 제공]

 

 

 

 

 

사과하는 김승호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경위 보고에 앞서 김승호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왼쪽)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체육계의 충격적인 폭력 실태.

 

 

 

(서울=연합뉴스) "눈 뜨고 싶지 않다. (중략) 저 사람들이 그냥 무섭고 죽을 것 같다."
"토가 나올 정도로 겁이 난다. 죽어버렸으면. 길가다 누군가 (나를) 차로 쳤으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 일기장의 한 대목.
볼펜으로 눌러쓴 일기에는 소속 팀 지도부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스포츠 인권 사각지대에서 22살 한창의 선수가 느낀 삶의 고통이 안타까울 정도다.
최 선수는 경주시청 시절 감독과 팀닥터 등의 가혹 행위를 호소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최숙현 선수 사건 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인에 따르면 생전 최 선수가 당한 가혹 행위는 비상식적이고 극악스러워 충격적이다.
체육계의 고질적 병폐가 '또 터졌다'는 개탄스러움을 넘어 국민적인 비난이 들끓는 이유다.
청원 글을 보면 최 선수는 식사 자리에서 콜라를 시켰다는 이유로 20만원어치 빵을 '죽을 때까지' 먹도록 강요당했고, 복숭아 1개 먹은 걸 감독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20분간 폭행을 당했다.
체중 감량을 못 해 3일씩 굶는 가혹 행위도, 슬리퍼로 뺨을 맞아도 견뎌야 했다.








경주시체육회 인사위에 나타난 트라이애슬론팀 감독


[연합뉴스TV]






지난해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녹취에선 최 선수가 팀닥터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구타당하는 현장이 담겼다.
"이빨 깨물어, 이리와, 뒤로 돌아, 이빨 깨물어."
최 선수와 가족은 도움을 청하고자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법적 절차도 밟았지만,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최 선수가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는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였다.








심석희 사건 겪었지만…"거의 매일 맞는다"는 선수도
최 선수 사건으로 공분이 인 가운데 한국체대 남자 핸드볼부에서도 선배가 후배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합숙 훈련 중 선배 A씨가 두 후배에게 라면 국물을 붓고 칼을 던지는 등 특수 폭행을 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것이다.
체육계의 폭력,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와 분노를 자아낸다.
지난해 1월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로부터 성폭력과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사건, 모두 기억할 것이다.''









지난해 '심석희 폭행' 경찰 출석하는 조재범 전 코치

[연합뉴스TV]

 



또 2018년 당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이택근 선수는 3년 전 팀 후배 문우람을 야구 배트로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정규시즌 36경기 출장 정지 제재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방망이 뒷부분으로 머리를 몇 대 친 것은 사실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상벌위원회 참석 후 기자회견에서)








2018년 상벌위원회 후 기자회견서 사과하는 이택근 선수

[연합뉴스TV]



앞서 2015년에는 역도선수 사재혁이 사적인 자리에서 후배 황우만을 폭행해 이듬해 선수 자격정지 10년의 중징계를 받으며 사실상 역도계에서 퇴출당했다.
남자 쇼트트랙의 신다운도 2015년 대표팀 훈련 도중 후배를 폭행해 2015-2016시즌 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실업팀 선수 인권실태조사 결과보고']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실업팀 선수 인권실태조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응답자 1천251명 중 33.9%(424명)가 언어폭력, 15.3%(192명)가 신체폭력, 11.4%(143명)가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폭력의 경우 8.2%가 '거의 매일 맞는다'고, 67.0%가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보고서에서 선수들은 피해 사실을 이렇게 증언했다.
"선수를 그냥 쓰고 버리는 물건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데려왔는데 실적을 못 내면 자르면 그만이지, 이런 식이다."(20대 중반 실업팀 선수)
"대부분 선수들이 자기가 우울증인 걸 몰른다.
그냥 내 정신력이 약하다, 이겨내야지, 극복해야지, 이렇게 되곤 한다."'
(20대 후반 실업팀 선수)








국가인권위원회에 출범한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성적 지상주의가 불러온 폭력…체육 교육 패러다임 바뀌어야
전문가들은 체육계에서 구타와 가혹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성적 지상주의'를 첫손에 꼽는다.
초·중·고교·대학교, 실업팀 선수들은 단기간에 성적을 내야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되고, 지도자들도 자기 위치를 유지하려면 선수들의 성적을 지속적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트라이애슬론 주니어 국가대표 감독 출신 이지열 씨는 "이런 조건이 맞물리면 지도자들이 선수 경기력을 높이고자 무리수를 둔다"며 "그게 반복되다가 강도가 세지면 욕설이나 폭행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도 "일례로 전국 66개 고등학교 야구부에 감독이 때리는 학교가 있고, 안 때리는 학교가 있다.
그런데 때리는 학교인 걸 알고도 어쩔 수 없이 보내는 학부모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진천국가대표선수촌서 훈련하는 국가대표 선수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렇다 보니 위계질서가 강한 체육계에서 폭력이나 다름없는 체벌도 경기력 향상 수단으로 당연시돼버린다.
선수들은 지속적인 폭행에도 감독이나 코치 등 지도부에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법에 호소하기 어렵다.
그럴 경우 해당 종목 지도자들의 공고한 카르텔 안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어린 시절부터 달려온 꿈에서 탈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영노 평론가는 "감독이 생사여탈권을 가진 것은 선수에게 운동 말고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며 "초등학교 때부터 한길로 걸어왔기 때문에 다른 걸 할 수 없게 된다.
선수들의 약점을 알고 있어 그것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장 이런 권위적인 구조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내 체육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회 성적으로 진학하는 체육 특기자 제도, 개인 자유를 구속하며 1년 열두달 훈련하는 강압적인 시스템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가 들끓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게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라고 지시했다. 관련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도자들이 선수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며 이를 무기로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는 것을 뿌리 뽑도록 하겠다"고 쇄신안을 냈다.
더는 제2·제3의 최 선수가 나오는 비극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은정 기자 김혜빈 mimi@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대한체육회 사옥 내 체육협회 출입문 마다 붙어있는 '스포츠 폭력,성폭력 문제 근절을
위한 스포츠인권센터 안내문

(사진=노컷뉴스)



 

  실업선수 4명 중 1명 "신체폭력 당했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소속 실업선수 중 25% 이상이 신체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는 국내 스포츠계에 폭력 등 가혹행위가 얼마나 만연한지를 드러낸다.
고 최숙현 선수의 사망 사건은 오늘날 한국 스포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격적인 현실의 한 사례일 뿐이다.

26세 실업팀 남성 선수가 소속팀 감독에게 “이만큼 너희한테 지원해주는데 이거 못 하면 패배자다,
그럼 병신이지. 어디 가서 이 연봉 받고 일했겠냐.
우리니까 너희가 이 정도 연봉 받으면서 일하는 거다”라는 언어폭력을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30세 실업팀 여성 선수는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해 문제 제기를 하고, 호소문을 써도 생각보다

달라지는 게 없다.
오히려 우리가 운동하는 데 있어서 더 제재를 당할 것 같은 불안감이 온다”며 “협회 쪽이 그쪽 분들이라서, 협회 쪽에서 도움을 전혀 못 받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11월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이 발표한 스포츠 현장인권실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성인까지 스포츠 현장에서 총체적인 인권 유린이 이어졌다.

특히 운동을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는 프로나 실업팀 선수가 되면 심각성은 훨씬 더했다.
지난해 7~8월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소속 실업선수 56개 종목 선수들을 대상으로 모바일 조사를 한 결과 대부분 폭력에 노출된 채 운동을 하고 있었다.
조사에 응답한 1251명 가운데 26.1%에 해당하는 326명이 ‘신체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경험한 신체폭력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머리박기, 엎드려 뻗치기 등이 106명(8.5%), 계획에도 없는 과도한 훈련이 89명(7.1%), 손이나 발을 이용한 구타 66명(5.3%), 운동기구나 도구를 이용한 구타 57명(4.7%) 순으로 나타났다.
신체폭력 경험이 있는 선수들의 경험 빈도는 ‘1년에 1~2회’가 45.6%로 가장 높았다.

‘거의 매일’이라고 답한 피해자도 8.2%나 됐다.
신체폭력의 가해자는 선배 운동선수가 52.2%, 코치 42.3%, 감독 37.9% 순이었다.


운동이 직업인 실업 선수들의 경우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걸려있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팀이 해체되거나 보복 또는 불이익을 받아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실제로 신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 가운데 67.0%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처를 잘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절반에 가까운 선수들이 ‘보복이 무섭거나’(26.4%) ‘상대방이 불이익을 줄까 걱정돼서’(23.1%)라고 답했다.


실업 선수들의 5.3%는 ‘누군가 나에게 운동 중 불쾌할 정도의 불필요한 신체접촉(손, 볼, 어깨, 허벅지, 엉덩이)을 하는 행위’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자선수(2.2%)보다는 여자선수(8.4%)들이 더 많이 노출됐다.


그 밖에도 실업 선수 대부분은 욕, 비난, 협박 등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설문에 응한 선수 전체 선수 가운데 424명(33.9%)이 ‘있다’고 답했다. 여자선수의 경우 230명(37.3%)으로 194명(30.5%)인 남자선수보다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 관계자는 “조사 당시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선수들의 의견이 많았다”며 “상당수 선수들은 ‘어차피 이런 조사를 매번 해도 제대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고통을 초래하고 있는 체육계의 관행과 시스템, 그리고 일부 지도자들의 반인권적 범죄 행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석무 기자

 

 

 

 

 

 

 

 

 

▲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심석희 선수 성폭행 관련’기자회견에 참석한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고개숙여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2019.1.9 박지환기자 popocar@seoul.co.kr





   조재범 사건 이후에도 대한체육회는 징계 감경 일상화해왔다

 

조재범 사건 이후 문체부가 공언한 스포츠윤리센터 이제야 직원 25명 뽑기 시작
국회, 2020년에서야 관계법인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처리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스포츠 인권 최우선으로 삼겠다”했지만
대한체육회 산하 전국 시도체육회 징계 경감 일상화 돼 있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 폭력 피해 사건은 앞서 일어난 충격적인 폭력 사건들로부터 교훈을 얻어 철저히 개혁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과 체육계 지도부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심석희를 장기간 폭행한 조재범 코치와 경북체육회 소속 김경두 일가의 전횡이 드러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윤리센터를 만들어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윤리센터는 발족되지 않았고, 대한체육회도 선수들의 인권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인 상황이다.

김현수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은 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체육 단체들을 전반적으로 살펴 보니 징계 감경이 생활화돼 있더라”며 “경북체육회 같은 곳은 자격정지 1년인 사안을 경고나 주의 처분하는 게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이어 “현재 대한체육회는 진정 사건이 들어오면 종목 단체로 내려보내는데 종목 단체는 선수의 지도자들과 잘 아는 사이이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노출되면서 사건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당한다.
그런 과정이 십수년째 반복되고 있다”며 “이번에 피해자가 여러 곳에 진정했다는데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또 “대한체육회장이 스포츠 인권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는데 말만 그렇다.

심 선수 사건 때부터 대책은 많이 발표했는데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인권센터에 폭력 신고를 한 날짜가 지난 4월 8일이었는데도 적절한 조치가 따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실업팀 1251명 선수 인권실태 조사 결과’(중복 답변 가능)에 따르면 언어폭력 33.9%(424명), 신체폭력 15.3%(192명), 성폭력 경험 11.4%(143명), (성)폭력 목격 경험 56.2%(704명) 등이었다.

그러나 김 단장은 “스포츠윤리센터는 말이 독립 법인이지 문체부 장관에게 보고하면서 운영하도록 돼 있다”며 “체육계 쪽 사람들이 문체부 핵심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신뢰성을 얻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마디로 체육계 인사들이 짬짜미로 뒤를 봐줄 가능성을 완벽히 차단하기 위해서는 체육계와 전혀 무관한 인사들로 구성된, 진정으로 독립적인 감시기구 및 징계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금메달 걸었던 故최숙현 선수



 

  뒷짐 진 체육회도 문체부도 사태 키웠다



체육계 폭력사태 왜 근절 못하나 윤리센터 설립 천명한 지 2년 ‘무소식’

인권위 “체육단체 징계 감경 비일비재”
실업팀 폭행 감내할 것이란 전제 깔려
체육계 무관한 감시기구 세워야 효과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가 지난 2013년 8월 부산 송도에서 열린 전국 해양스포츠제전 여자 중등부 부문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전 소속팀 지도자와 선배 등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알려진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 폭력 피해 사건은 앞서 일어난 충격적인 폭력 사건들로부터 교훈을 얻어 철저히 개혁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과 체육계 지도부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심석희를 장기간 폭행한 조재범 코치와 경북체육회 소속 김경두 일가의 전횡이 드러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윤리센터를 만들어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윤리센터는 발족되지 않았고, 대한체육회도 선수들의 인권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인 상황이다.


김현수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은 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가 체육 단체들을 전반적으로 살펴 보니 징계 감경이 생활화돼 있더라”며 “경북체육회 같은 곳은 자격정지 1년인 사안을 경고나 주의 처분하는 게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이어 “현재 대한체육회는 진정 사건이 들어오면 종목 단체로 내려보내는데 종목 단체는 선수의 지도자들과 잘 아는 사이이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노출되면서 사건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당한다.

그런 과정이 십수년째 반복되고 있다”며 “이번에도 피해자가 여러 곳에 진정했다는데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또 “대한체육회장이 스포츠 인권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는데 말만 그렇다. 심 선수 사건 때부터 대책은 많이 발표했는데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폭력 신고를 한 날짜가 지난 4월 8일이었는데도 적절한 조치가 따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실업팀 1251명 선수 인권실태 조사 결과’(중복 답변 가능)에 따르면 언어폭력 33.9%(424명), 신체폭력 15.3%(192명), 성폭력 경험 11.4%(143명), (성)폭력 목격 경험 56.2%(704명) 등이었다.
문체부 관계자는 “당초 스포츠윤리센터는 9월 발족을 목표로 했다”며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통과가 올해 초에야 됐는데 법이 시행되는 8월로 앞당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단장은 “스포츠윤리센터는 말이 독립 법인이지 문체부 장관에게 보고하면서 운영하도록 돼 있다”며 “체육계 쪽 사람들이 문체부 핵심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신뢰성을 얻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마디로 체육계 인사들이 짬짜미로 뒤를 봐줄 가능성을 완벽히 차단하기 위해서는 체육계와 전혀 무관한 인사들로 구성된, 진정으로 독립적인 감시기구 및 징계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고 최숙현 선수 후배 임주미 씨의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연합뉴스





  끊이지 않는 체육계 폭력·은폐, ‘또 다른 최숙현’ 없어야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팀 내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시민들이 공분하고 있다.
최 선수는 경주시청팀 소속 시절 감독과 ‘팀닥터’로 불린 운동처방사 등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지난달 26일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더구나 그는 체육계 상급기관인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는 물론이고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등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누구로부터도 그에 대한 조치 결과를 듣지 못했다.
앞길이 창창한 23세 유망주 운동선수를 죽음으로 내몬 현실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최 선수의 훈련일지와 녹취록은 체육계의 고질적 병폐인 갑질과 폭력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해자들은 신발로 뺨을 때리는가 하면 폭언과 구타를 하면서 찌개를 끓이고 술을 마셨다.
체중조절을 못했다며 사흘간 굶으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탄산음료를 주문했다는 이유로 20만원어치 빵을 먹이는 ‘음식 고문’도 했다.

훈련·관리·지도를 빙자한 폭력이 아무런 제지 없이 자행됐다.
더 참담한 것은 최 선수가 수개월 전부터 관계기관에 피해를 호소했는데도 계속 외면당한 점이다.
산하 스포츠인권센터를 통해 신고를 접수한 대한체육회는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관했고, 수사당국은 훈련 일정과 가해자 부인 정황 등을 들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사이 최 선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수백번씩 맴돈다”는 절박한 심경을 일기에 썼다.
관계기관이 신고 즉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고, 신속히 조사해 엄정한 조치를 내렸다면 최 선수가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지난해 1월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코치의 폭력·성폭행 사건을 폭로한 후 선수 인권침해 근절 대책을 마련해 내놓았다. 그런데 1년 반도 채 지나지 않아 이런 비극이 재연됐다.
최 선수의 죽음을 막지 못한 체육기관과 수사당국은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교육에 사랑의 매가 없듯, 경기력 향상을 위한 어떤 폭력도 용납되어선 안 된다. 선수가 지도자로부터 체벌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관행을 이제 없애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발방지책 수립을 지시하자 문체부는 특별조사단을 구성하고 수사당국도 조사를 서두르고 있다.

이번 폭력사건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가해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 가해 행위뿐 아니라 묵인·방조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이런 폭력을 근절할 수 있다. 다시는 최 선수와 같은 희생자가 나와선 안 된다.



사설



 

경주시체육회 인사위에 나타난 트라이애슬론팀 감독
(경주=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2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경주시체육회
사무실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