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시사
모두 안녕" 故박원순 오늘 영결식..고향 창녕서 '영면'
도토리 깍지
2020. 7. 13. 09:12
1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13일 오전 서울 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 위폐와 영정이 입장하고 있다.
goodlh2@cbs.co.kr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운구차가 13일 오전 발인식이 열린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나와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2020.07.13. amin2@newsis.com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영현이 13일 서울광장에서 결식이 열릴
서울시청사로 봉송되고 있다
故박원순, 침통한 분위기 빗속 발인.."아이고" 통곡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오전 7시께 발인진행
엄숙한 분위기 속 일부 참석자 눈물 보이기도
오전 8시반, 서울시청에서 온라인 영결식 예정
[서울=뉴시스] 정윤아 박민기 기자 =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인이 13일 아침 차분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
비가 많이 오는 날씨에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참석자 100여명이 모여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박 시장의 발인은 이날 오전 7시께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전날부터 비가 많이 왔지만, 서울시장 장례위원회 소속 사람들은 오전 6시반부터 속속 모였다.
서울시장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인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영교, 기동민, 김성환 민주당 의원, 홍영표 의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도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기 위해 모였다.
많은 취재진과 유투버들도 발인을 취재하기 위해 자리했다.
오전 6시50분께 유족과 관계자 등 100여명이 빈소에 모였다.
오전 7시께부터 스님의 진행으로 발인이 시작됐다.
박 시장의 관이 나오자 다들 고개를 숙였고, 일부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일부 여성참석자들은 '아이고'를 외치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오전 7시10분께 박 시장의 관이 운구차에 실렸다.
운구차를 찍으려는 취재진들과 버스에 탑승하려는 참석자들이 몰리면서 다소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박 시장의 운구차량은 오전 7시18분께 서울시청을 향해 출발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운구차가 떠난 뒤에도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8시30분 서울시청에선 박 시장의 영결식이 온라인으로 개최된다.
박원순 서울시장 장례위원회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박 시장 영결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oona@newsis.com, minki@newsis.com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운구차가 13일 오전
발인식이 열린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 운구차 장례식장 출발 곧 영결식
박원순 서울시장을 배웅하는 운구차가 13일 빈소를 떠나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시청으로 출발했다.
박 시장 운구차는 이날 아침 발인을 마친 뒤 오전 7시20분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출발했다.
박 시장의 영결식은 오전 8시30분부터 시청 다목적홀에서 온라인 생중계된다.
영결식 현장에는 유족과 시·도지사, 민주당 지도부, 서울시 간부, 시민사회 대표자 등 100여명의 제한된 인원만 참석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운구차가 13일 오전 발인식이
열린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장례위는 영결식을 마친 뒤 박 시장의 시신을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다.
이후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옮겨 매장할 방침이다.
장례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해찬 민주당 대표,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행정1부시장) 등이 맡는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이 12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13일 서울시청 앞에서 박 시장의 부인 강난희 여사가
영정을 뒤따르고 있다.
goodlh2@cbs.co.kr
모두 안녕" 故박원순 오늘 영결식…고향 창녕서 '영면'
코로나19 확산 방지 위해 서울시·TBS 유튜브로 생중계
"묘소는 야트막하게 살짝 솟은 정도의 봉분 형태 소박"
(서울=뉴스1) 장지훈 기자 = 지난 9일부터 닷새간 치러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서울특별시장(葬) 장례 절차가
13일 발인, 영결식, 화장 등을 거쳐 마무리된다.
발인 이후에는 고인의 마지막을 기리는 '온라인 영결식'이 진행되며 고인의 유해는 화장한 뒤 고향인 경남 창녕의 선영에 묻힌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진행된다.
전날 영국에서 입국한 아들 주신씨를 비롯한 유가족이 참석해 입관식이 치러진 데 이어 이날도 유가족들이 고인의 곁을
지킬 예정이다.
박 전 시장의 유해는 이후 고인이 9년간 몸 담았던 서울시청으로 옮겨진다.
'노제' 등 별도의 행사는 치르지 않고 오전 8시30분
부터 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리는 '온라인 영결식'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영결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했다"며
"영결식 전체를 서울시와 TBS교통방송의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결식 현장에는 유가족과 장례위원회 위원장단, 시도지사,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서울시 간부, 시민사회계 대표자 등 100여명만 참석한다.
영결식은 Δ개식 선언 Δ국기에 대한 경례 Δ고인에 대한 묵념 Δ추모영상 상영 Δ추모곡 연주 Δ 위원장단 조사·헌화 Δ유족 대표
인사말 등 순서로 진행된다.
1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을 마치고 추모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영결식이 끝나면 오전 9시20분쯤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해 화장이 진행된다.
다만 고인의 유해는 서울이 아닌 선영이 있는 경남 창녕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박 전 시장은 지난 9일 종로구 가회동 공관을 나서기 전 남긴 유서를 통해 주변 지인들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밝히는 한편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며 "모두 안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묘소는 유족의 뜻에 따라 야트막하게 살짝 솟은 정도의 봉분 형태로 소박하게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러진 이번 박 전 시장의 장례에는 사회 각계 인사들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며 고인과 인연을 맺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평소 박 시장을 "민주화운동의 동지"라고 부르며 각별하게 대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함께 서울시정을 이끈 서정협 행정1부시장 등은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권영진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대구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 등 5명은 장례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추모 열기도 뜨거웠다.
서울대병원 빈소에는 각계 인사의 조문이 끊이지 않았고, 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도 지난 11일부터 2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찾아와 시민사회운동의 대부이자 유일한 3선 서울시장을 지낸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다만 박 전 시장의 장례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고인이 함께 일한 서울시 직원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서울특별시장(葬)에 반대한다는 글이 올라와 50만명이 넘는 시민이 동의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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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국무총리가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20.7.12/뉴스1
박원순 장례 사흘째..김병준 "죽음 앞에서는 일단 모자 벗어야
비 내리는 날씨에도 조문행렬 이어져
영결식 앞두고 다소 차분해진 분위기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온다예 기자,박종홍 기자 =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 사흘째인 12일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조문객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각계각층 인사가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애도의 뜻을 전했다.
오전에는 다소 발길이 뜸했다가 입관식이 진행된 후인 오후에는 조문객이 부쩍 늘었고 저녁이 되자 다시 조문객이 줄어들었다.
이날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 홍익표 의원, 윤재옥 미래통합당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이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다음날 영결식을 앞두고 빈소 내부 분위기는 다소 차분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김부겸 전 의원은 장례식 첫날인 지난 10일에 이어 이날도 빈소에 발걸음했다.
김 의원은 "첫날은 (유족들이) 정말 문상을 받을 만한 마음이 아니었다"며 "그게 마음에 걸려서 오늘 (다시 와서) 사모님한테도 위로의 말씀을 드렸고, 상주도 오늘 봤다"고 말했다.
저녁시간에 조문을 온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지금 유가족들은 너무 슬픔이 커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면서도 "시장님이 늘 강조해왔던 공공의료체계 강화 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비상대책위원장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죽음 앞에서는 일단 모자를 벗는 것이다"라며 "당의 입장과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조문을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비극적인 일을 겪으면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잊어버린다"며 "진영논리들이 앞서가지고 옳고
그름에 관한 문제가 자꾸 묻혀버린다"고 아쉬워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인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박 시장 장례위원회 구성 및 영결식 절차 등에 대해
브리핑하기 위해 나오고 있다.
2020.7.1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이 밖에 고건 전 국무총리, 정경두 국방부장관, 송하진 전북도지사, 김영록 전남도지사,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조문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전 문화재청장)와 소설가 조정래, 그리고 후안 이그나시오 모로
주한스페인대사 등 외국사절들도 찾아왔다.
참여연대에서 박 시장과 연이 있던 조정래 작가는 "고인과 이상이나 뜻이 같아 참여연대부터 함께 했다"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이만큼이나 일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허망하게 떠나서 애석하고 안타깝다"고 추모했다.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오후 한때 장례식장 입구에는 조문을 위해 십 수명이 줄을 서기도 했다.
평소 박원순 시장의 지지자라고 밝힌 유모씨(61)는 "따뜻한 행정을 하셨는데 정말 비통한 마음"이라며 침통해 했다.
또 다른 시민 조모씨는 "시장 3선에 도전했을 당시 선거캠프에서 봉사를 했었다"며 "권위의식보다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분"이라고 기억했다.
서울시는 유족과 협의해 박 시장의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전날(11일) 박 시장의 아들 박주신씨가 영국에서 귀국함에 따라 유가족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이날 입관식도 진행됐다.
낮 12시30분에 시작된 입관식은 50분 만에 마무리됐다.
서울특별시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장례 세부일정에 대해 밝혔다.
13일 오전 7시30분 발인과 함께 장례식장을 나서는 고인의 유해는 8시쯤 서울광장에 도착한다.
영결식은 8시30분부터 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온라인으로 거행된다.
영결식 현장에는 유족과 서울시 간부, 시민사회 대표단을 포함한 100여 명만 참여하고 영결식은 서울시와 tbs교통방송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맡았다.
박 시장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공관을 나선 뒤 연락이 두절됐다.
오후 5시17분 실종 신고가 접수된 후 경찰이 수색에 나섰으나 10일 오전 0시1분 서울 성북구 북악산 숙정문과 삼청각
중간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시장은 유서를 통해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박 시장은 실종 전날인 8일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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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박원순 논란…민주당은 왜 윤리 위기를 정치로 보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3일 서울시민장(葬)으로 치러지는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 논란에 "'서울시장(葬)으로
장례를 치진중권 "'박원순 논란…
민주당은 왜 윤리 위기를 정치로 보나"른다는 발상 자체가 시민들 사이에 보편적 동의를 얻어내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이를 제대로 비판하고 견제하지 못한다며 제1야당 미래통합당에도 일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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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윤리적 상황을 정치적 상황으로…불필요한 충돌만"
진 전 교수는 전날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윤리적 위기에 대처하는 코드가) 시민사회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식과 윤리의 기준에서 동떨어져 있어 매번 사달이 난다"며 이같이 적었다.
진 전 교수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윤미향 민주당 의원, 안희정 전 서울시장 등을 고 박 시장과 함께 언급하며 "이들의 윤리적 위기에 대처하는 민주당 코드에 나름 일관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엉뚱하게 피의자의 법적 지위를 규정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워 자기 편의 비위를 덮고 그로 인한 윤리적 곤경을 피해가려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진 전 교수는 "민주당은 윤리적 위기를 이를 반성해야 할 윤리적 상황이 아니라 돌파해야 할 정치적 상황으로 본다"며 "사태를 공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해결한다는 생각이 없고 오직 자기들의 당리당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처리하려 하니 매번 불필요한 충돌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 전 교수는 전날 누리꾼에게서 논란이 비롯된 '관노' 발언을 언급하며 "결국 오직 콘크리트 지지층만 믿고 가겠다는 건데 지지자들마저 모조리 거기에 동원되다 보니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전우용과 같은 망언도 나오는 것"이라며 "그러니 매사에 나라가 두쪽으로 갈라지게 된다"고 했다.
'관노' 발언은 전날 여권 지지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이용자가 "'난중일기'에서 '관노와 수차례 잠자리에 들었다'는
구절 때문에 이순신이 존경받지 말아야 할 인물인가요?
그를 향해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건가요?"
라고 글을 올려 논란이 된 일을 말한다.
진 전 교수는 특히 다른 글에서 여성계 출신 민주당 의원들이 박 시장의 부고를 대하는 태도를 다룬 기사와 함께 "여성 팔아먹고 사는 여성들"이라고 독설했다.
진 전 교수는 "'우리는 더 많은 말하기가 필요하며, 고백과 증언 그리고 폭로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행동과 움직임에 연대할 것'이라더니 지금 입장은 '우리까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며, 고백과 증언 그리고 폭로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행동과 움직임이 많이 우려된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통합당, '똥볼' 민주당에 괜히 어설픈 공격하다 역공만"
진 전 교수는 이어 올린 또 다른 글에서는 제1야당인 통합당이 여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잘못된 공세만 퍼붓는다며 "지금 해야 할 일은 민주당에 등돌린 민심이 찍어줄 만한 당으로 개혁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진 전 교수는 "통합당 의원들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민주당에서 똥볼 차는 것만 받아먹어도 된다"며 "공격을 하려면 가드(방어)나 좀 올리든지 주먹이라고 조막손 뻗으며 '제발 때려달라'고 턱을 들이민다"고 비난했다.
진 전 교수는 "대여투쟁은 하태경이랑 이준석한테 맡겨 두든지 괜히 어설픈 공격하다가 역공만 당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영호는 정보도 없이 쓸 데 없이 돗자리 깔았다가 망신 당하고 곽상도는 괜히 남의 아파트 공격했다가 되치기 당하고 배현진은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상주를 건드렸다가 빈축이나 샀다"고 비판했다.
전날 배현진 의원이 8년 만에 귀국해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박 시장의 장남 주신씨에 대해 과거 불거진 병역비리 의혹을 재차 꺼내들었던 것을 언급한 것이다.
진 전 교수는 "민주당 스스로 망가지고 있다"며 "냅두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법 만들어 대안야당의 길로 나아갈 생각을 하라"고 촉구했다.
진 전 교수는 "고작 법안이라고 만든 것이 '국회의원 국립묘지 안장법'이니 이 분들 도대체 누구 말을 듣고 정치하는지 모르겠다"며 "'민심'이라는 단어 뜻은 아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민주당은 야당 복이 터졌다"고 했다.
이어 "(통합당은) 궤변으로 내로남불하고 음모론으로 공격해대는 것이 야당질이라 믿나 보다"라며 "유권자들이 민주당이 '좋은' 당이라 생각해서 찍어주는 줄 아나 보다. 그러니 되도 않는 소리로 억지로 깎아 내리려고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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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가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러지는 가운데
1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에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한국여기자협회 "박원순 죽음 안타깝지만 피해호소인 보호 우선"
[아이뉴스24 한상연 기자] 한국여기자협회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 대해 애도 하지만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호소인을 보호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여기자협회는 12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피해호소인 보호가 우선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회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른 고인은 1990년대 한국 최초의 직장 성희롱 사건 무료 변론을 맡아 승소한 것을 비롯해 여성 인권 향상에 기여했다"며 "고인이 서울시 직원이었던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했다는 사실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혹을 제대로 밝히는 것은 질문의 답을 찾는 첫 단계"라며 "현행 법체계는 이번 의혹 사건에 공소권 없음을
결정했지만 진상을 규명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면제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공인으로부터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국민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하며 피해호소인의 고통을 무시하며 고인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정치인 및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공적 언급에 강력한 유감을 표했다.
한상연기자 hhch1113@inews24.com
박원순이 우리에게 남긴 10가지 유산
죽음으로 가장 무거고 힘든 유산을
우리에게 넘긴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평가는 앞으로도 다양하게 계속될 것이다.
이 글은 박원순이라는 인물이나 그의 사망사건에 대해 총체적으로 살펴보지는 않는다.
다만 박원순이 만들고 남긴 것이 무엇인지 내가 파악한 범위에서 정리-나열하고자 한다.
나는 박원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기에 그가 남긴 것은 내가 당장 떠올리는 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공인이기에 일체의 호칭은 생략한다.
[#1] 진보적 역사가
박원순은 모종의 사건(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서울대에서 제적당하고 단국대 사학과로 옮긴 뒤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이후 정선등기소장과 대구지검 검사를 거치며 여러 경로로 현대사 자료를 입수하게 되었다.
특히 검사 재직시절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많이 모았다고 한다.
박원순이 수집한 해방전후사 사료들이 기초가 되어 80년대 초중반 서중석, 이이화, 임헌영, 원경 스님 등이 모여
이른바 해방3년사 세미나를 시작했다.
이 세미나 모임이 주축이 되어 1986년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연구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역문연)가 출범했다.
박원순은 역문연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박원순은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라며 연구소 활동에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했지만, 막상 형편이 어려운 연구소 사정을
위해 사재를 털어 사옥을 구입해 그간 모은 장서들과 함께 연구소에 기증할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대부분의 운동단체가 월세 내기에도 빠듯했던 1989년이었다.
오늘날에도 역사문제연구소는 한국사 연구에서 논쟁의 역할을 자임하며 역사학의 진보적 지평을 넓히고 있다.
[#2] 법률가와 국가보안법 연구
법률가로서 박원순의 대표적인 저작은 <국가보안법연구>라 할 수 있다.
80년대 국가보안법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주요 법률적 근거로 작동했고 관련 사건도 많아졌다.
자연히 국가보안법에 대한 사회의 문제의식도 높아지고 있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3권 총 12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에서 박원순은 국가보안법의 성립과정과 역할을
추적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론의 강력한 근거를 제공한다.
박원순은 이후 후속작으로 2008년에 완간된 <야만시대의 기록 - 고문의 한국현대사>를 펴내기도 했다.
박원순은 2011년 서울시장이 당선된 이후 반드시 폐지하거나 개정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입장을
여러 번 내비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의 <국가보안법 연구>는 다작으로 알려진 박원순의 저작 중 그를 가장 대표하는 책이자
진보적 법학의 최전선에서 시대와 맞선 흔적이라 할 수 있다.
[#3] 여성인권운동가
박원순의 인권변호사 선배였던 조영래를 대표하는 사건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라면 박원순을 대표하는 사건은
1992년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현재 신 교수 성희롱 사건으로 명명됨) 일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공해 문제, 여성 문제 등 이념이 쇠퇴하는 90년대에 들어서자 오래된
새 모순에 부딪혔다.
서울대 화학과 신정휴 교수가 조교에게 오랫동안 신체접촉을 강요했다.
조교가 이를 거부하자 신 교수는 우 조교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면서 시작된 사건이었다.
박원순을 비롯하여 김창국, 이종걸, 배금자 변호사 등이 우 조교의 변론을 맡았다.
6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우 조교에
대한 신 교수의 성희롱이 인정되었다.
아직 많은 사람이 '성희롱'이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이 사건은 성희롱은 나쁜 것이며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
(현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성희롱 개념도 법제화되었다.
형법상으로도 직장 내 성희롱의 처벌이 가능해졌다.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에 우 조교의 공동변호인인 박원순, 이종걸, 최은순 변호사를
선정했다.
박원순은 이후에도 양성쓰기 운동이나 호주제 폐지운동에 동참하며 인권변호사로서 여성인권 향상에 매진해왔다.
이렇게 성희롱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자 회사, 즉 생산 현장의 문화도 빠르게 변해갔다.
[#4] 시민운동의 재편
1994년 창립한 참여연대의 문제의식은 87년 이후 열린 시민사회라는 공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으로 대표되는 기존 시민운동에 대한 문제제기기도 했다. 조희연의 표현을 빌리면
'진보적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것.
이 도원결의에 박원순을 비롯한 인권변호사 그룹, 조희연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소장학자들, 김기식으로 대표되는
학생운동 출신 그룹이 함께 했다.
시민운동가로서 박원순이 남긴 유산을 짧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박원순이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재임하던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의 활동은 시민의 권력 감시와 시민의
권리 찾기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검사제 도입, 낙천낙선운동이 전자라면 소액주주운동이나 작은권리찾기운동으로 대표되는 활동이 후자일 것이다.
특히 소액주주운동은 이후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라는 비판을 받으며 진보 진영의 경제민주화 논쟁으로 확산되어갔다.
이 논쟁 구도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90년대 한국 시민운동의 폭발적 성장은 정당정치와 노동운동의 미성숙이 만든 공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미지로 상징되던 시민운동은 박원순 이후 시나브로 정당정치에 수렴되어 갔다.
[#5] 기부문화와 나눔문화
2002년 참여연대를 떠난 박원순의 새로운 시도는 '아름다운재단'을 통한 기부문화 확산이었다.
동시에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나눔문화를 확산하는 데 주력했다. 잘 알려진 네이버 해피빈이 이 시절에 만들어진
유산이다.
이후 시민사회의 싱크탱크를 표방한 '희망제작소'를 창립하는 등 시민운동의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면서도 시민사회의
저변을 넓히는 데 힘썼다.
기업의 사회공헌을 이끌어 내며, 네거티브형 운동에서 포지티브형 운동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기 국정원의 사찰 피해를 폭로하면서 박원순은 정치와 시국에 대한 발언과 행보를 늘리게 된다.
[#6] 의지의 행정가
2011년 서울시장 박원순의 등장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명박이 서울시장과 대통령 재임 시절 자신에게 부여된 행정적 권한을 최대한 과감하게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박원순 역시 한편으로 이명박 못지않은 과감함이 있었다.
온화하다는 인상과 평가를 뒤집는 행보였다.
당선 직후 오세훈 전임 시장이 막아놓았던 무상급식을 추진했고, 공약으로 내세운 반값 등록금도 시장이 이사장을 겸임하는 서울시립대를 통해 관철시켰다.
서울시에서 근무하는 수천 명의 비정규직도 정규직화시켰다.
이명박과 박원순의 충격적 등장은 정치란 결국 실행하려는 정치가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정치란 의지를 가지고 하면 되며 할 수 있다는 박원순의 지방정부모델은 이후 민주당 집권 지자체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패배주의가 만연해있고 지역에서는 오히려 한나라당과 다를 게 없다는 평가를 자주 듣던 민주당이었다.
2선 3선을 거치며 박원순의 저돌적 스타일은 많이 변화되었지만 현재까지 이어지는 민주당 지방정치의 모델과
과감한 정치 스타일을 제시했다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7] 사회혁신의 설계자
박원순 서울시정의 핵심 키워드인 '사회혁신'은 매우 모호한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박원순 시정을 잘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다.
사회를 뭔가 바꾼다는 것인데, 그것이 혁명이나 개혁의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들고 가다듬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고 이해하면 될까.
그렇기에 박원순은 시장재임 초기부터 이명박 오세훈과 같이 토건으로 랜드마크를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
못을 박았다.
대신 그 역량이 투입된 것은 도시재생이나 마을재생과 같은 지역 공동체 사업들, 청년수당이나 은퇴자 재취업 프로그램과 같은 것들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정에서 생성된 수많은 미시적 프로그램은 지금도 시민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8] 운동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1년 박원순의 등장이 사회운동 전반에 준 영향은 무엇보다 수많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서울시 공무원이 되거나
관련 기관에 가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사회단체의 중견 활동가들이 서울시에 들어갔고, 또 이러한 경력과 경험을 통해 중앙정부나 다른 지방정부로
들어가기도 했다.
자연스레 사회단체와 지방정부 간의 관계도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좋게 말하면 지방정부 운영에 진보적 의제가 빠르게 형성되었고, 관료주의의 무력함을 환기하는 기제가 되었다.
하지만 과거 권위주의 시절 무수한 외곽단체들처럼 민주당 지방정부 아래서 사회단체들이 관변단체화 되어가는
현상도 있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대해서 이 글에서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나 스스로가 이를
논할 자격이 별로 없다.
다만 2018년 서울시장 경선에서 박영선 후보가 이른바 '시피아'(시민단체+마피아)를 문제 삼자 그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 청와대로 갔다고 답했다.
박원순이 시도한 것은 어쩌면 자신을 중심으로 민주당을 혁신해 나갈 새로운 조직적 결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들 청와대로 갔다는 박원순의 자조처럼 그들이 친문 그룹 같은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박원순의 원심력 안에
머무르는 일은 많지 않았다.
[#9] 스타일의 정치
'원순씨'로 상징되던 파워블로거 박원순이 있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한국 정치에서 인터넷을 도입한 시초였다면 박원순을 이를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정치인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블로그와 트위터-페이스북을 오가며 수많은 사람과 직접 소통하기도 했고, 수해 등 긴급상황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장 상황을 중계하기도 했다.
시정만큼이나 선거운동도 파격적이었다.
후보자의 얼굴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포스터, 유세차량을 운용하지 않고 배낭과 운동화를 신고 걸어 다니며 시민들을 만나는 모습들은 끊임없이 논쟁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박원순의 소통 스타일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지만 이와 같은 스타일의 정치가 민주당의 주류, 한편으로 한국 정치인의 주류적인 스타일이 되어갔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제 모든 정치인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10] 다시, 직장 내 성희롱
마지막으로 박원순이 남긴 것. 인권변호사로서, 시민운동가로서 사회에 끊임없이 문제제기했던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서 그조차 자유롭지 않았다는 역설일 것이다.
박원순의 사망으로부터 시작된 이 논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죽음으로 가장 무겁고 힘든 유산을 우리에게 넘겼다.
이 글은 박원순에 대한 엄정하고 객관적인 포지션을 취하며 쓴 글은 아니다.
다만 그에 대한 추모도 비난도 쉽게
하기 힘든 이 상황에서 박원순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었나를 먼저 살펴보고 싶었다.
나는 유물론자로서 사후세계를 믿지 않기에 그에게 명계의 복을 빌지는 않는다.
다만 어린 시절 처음으로 만난 운동가가 그였고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오랫동안 추억할 것이다.
박원순의 삶에서 그에게 상처받은 분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며 이들에게도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내가 그가 남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말하고 싶다.
나 같은 이들의 메마른 마지막 셈들을 뒤로 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누군가 홀로 마지막까지 남아 상을 치우고 부르다 만 노래를 고쳐 부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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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부인 강난희 여사와
유가족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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