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지난달 21일부터 시작된 일종의 파업인 ‘집단 진료 거부’를 철회하기로 했다. 지난달 7일 전공의 의대생들이 서울 여의대로에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왼쪽)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정 협의체 구성 합의서 체결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회현동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열린 최대집 의사협회장과의 합의 서명식을 위해 식장으로 향하자 전공의들이 저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름간의 의사파업이 남긴 것…
정부·의협 손잡고 전공의는 반발한 '반쪽 협약식'
정부·의사협회, 코로나19 극복 위해 의사 집단행동⋅4대 의료정책 추진 중단 합의 최대집 회장 "‘철회’ 고집으로 잃게 될 것 냉정하게 고민…진료현장 복귀해달라" 의협산하 전공의협의회 "단체행동 중단 우리가 결정... ‘원점 재논의’로는 부족"
"우리의 제안에는 ‘철회’가 있었고, 아무리 그 뜻이 ‘원점 재논의’와 같다고 한들 우리가 주장해 온 명분에 미치지 못한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오는 7일 예고했던 무기한 의사 총파업을 취소하고 진료 현장으로 복귀하기로 정부와 합의했지만, 전공의들의 반발이 거세 ‘반쪽 협약’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공의·전임의로 구성된 젊은 의사 비상대책위원회는 의·정 합의 과정이 독단적이었으며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반발 중이다. 당정이 의료체계 개편안 원점 재논의를 약속했지만 향후 협상은 기약없이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보건복지부와 의협은 4일 오후 2시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보건의료발전과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합의’ 서명식을 갖고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에는 의료계가 반대해온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 중단 등 5가지 사항이 담겼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 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 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한의사협회와 협의하기로 했다. 협의 과정에서 의협과 더불어민주당의 정책협약에 따라 구성되는 국회 내 협의체 논의 결과를 존중하고 의대 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또한 지역 수가 등 지역의료 지원책 개발,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 전공의 수련 환경의 실질적 개선, 건정심 구조 개선 논의,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등 주요 의료현안을 의제로 하는 의정 협의체 구성에도 합의했다. 이 부분은 전공의들도 적극 주장했던 내용이다. 의협이 철회를 주장했던 ‘의대 증원, 공공 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등 4대 정책도 이 협의체에서 논의한다.
의·정이 이같은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전공의·전임의로 구성된 젊은 의사 비상대책위원회 등 전공의단체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합의문이라며 반발했다. 이날도 일부 전공의들의 반발로 의·정 서명식은 오전에서 오후로 세 차례 시간과 장소가 변경됐다.
당초 오전 10시로 예정됐다가 오전 1시로, 다시 오후 1시로 바뀌었고, 전공의 70~80명이 서명식장을 점거하고 "졸속 행정도, 졸속 합의도 모두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를 해 2시30분으로 다시 연기되면서 장소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서울 정부청사로 변경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등은 이날 의사협회가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부와 마련한 합의안에 대해 절차상 문제를 제기했다.
박지현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인스타 라이브를 통해 "저를 포함한 대전협 집행부와 전임의협의회, 의대협 등은 전혀 내용을 듣지 못했다"며 "최종 합의안이 도출된 후 협상에 대해선 의협 회장(최대집 회장)에 전권을 위임하기로 했지만, 최종 합의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저희 제안에는 '철회'가 있었고, 아무리 그 뜻이 '원점 재논의'와 같다고 한들 우리가 주장해 온 명분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이들은 의협과 복지부의 합의안에 집단행동 중단이 적시된 데에도 반발했다. 박 위원장은 "의협 산하 단체지만 단체행동 중단은 저희가 결정한다"며 "그들 마음대로 정당한 의사결정을 거쳤든지 아니든지 우리 행동을 휘두를 수 없다"라고 밝혔다.
대전협은 어떤 단체행동을 벌일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각 병원 전공의들과 의견을 수렴해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21일부터 이어온 무기한 파업을 지속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최대집 의협 회장이 전공의 달래기에 나섰지만, 전공의들의 집단 휴진이 멈출지는 미지수다. 최 회장은 이날 유튜브에 대회원 담화문을 발표하며 "젊은 의사들의 당혹감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철회'라고 하는 두 글자를 얻는 과정에서 얻게 될 것과 잃게 될 것을 냉정하게 고민하고 설령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협회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미 고발 당한 전공의를 비롯하여 복지부가 고발을 미루고 있는 수백명의 전공의, 오늘을 마지막으로 시험의 기회를 잃게 될 의대생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건 없는 복귀와 구제가 가능해진 만큼, 선배들을 믿고 진료현장으로 돌아가 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현재 파업을 진행중인 의사의 대부분은 전공의들이기 때문에 의협과 당정 합의에 전공의들의 반발이 지속될 경우 의사들의 현장복귀는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의협의 주축인 동네의원 휴진율(8.26∼28)은 6∼10%에 그치는 반면 전공의 휴진율은 70∼80% 수준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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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길 기자
전공의 파업 철회 병원으로 돌아간다
대전협 비대위 박지현 위원장 “정부 합의사항 이행 감시”
박지현 위원장 불신임안, 찬성 71, 반대 126으로 부결
[현대건강신문=박현진 기자] 전공의들이 지난달 21일부터 시작된 일종의 파업인 ‘집단 진료 거부’를 철회하기로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6일 오전 파업 철회 안건이 가결되었다고 밝혔다.
비대위 박지현 위원장은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합의한 내용에 따라 단체 행동을 잠정적으로 유보 한다”면서도 “비상사태를 유지하여 ‘젊은의사 비대위’에서 추후 정부의 합의사항 이행에 대한 감시를 위한 전공의 단체행동에 대한 부분은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 복귀 △학생 복귀 △학생 국시 응시 △1인 시위 등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대전협 비대위 일부 대의원들은 위원장의 제안에 반발해 박 위원장 불신임건을 발의했고 의결 결과, 참석 대의원 197명, 찬성 71명, 반대 126명으로 불신임건은 부결됐다. 대전협은 “자세한 사항은 곧 공지하겠다”고 밝혀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가 진료에 참여할 시점은 곧 결정될 전망이다.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대한의사협회와 여당, 정부의 합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진료 거부를 이어왔던 전공의들이 이르면 내일부터 진료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대전협 비대위)는 병원대표자회의를 열어 투쟁 수위를 1단계(전공의 복귀, 학생 복귀, 1인 시위만 진행)로 낮추는 내용에 대해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투쟁 수위를 낮추자는 박지현 비대위원장에 대한 불신임 안건에 대한 투표도 진행했지만, 불신임안이 부결되면서, 사실상 투쟁 수위가 1단계로 낮아지는 방향으로 힘이 쏠렸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의협과 여당, 정부와의 합의안에 따라 단체행동을 잠정 유보하되, 전공의와 의대생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 추후 정부 합의사항 이행 감시 등 대응방안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6일 오전 대전협 비대위는 파업철회에 대한 투표 결과 의견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에 따라 전공의들은 빠르면 내일(7일)부터 현장에 복귀하되, 1인 시위 등 의정합의에서 전공의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반대 의견을 계속해서 개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선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어 논란은 진행 중이다. 특히 오늘(6일)로 마감예정인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재접수를 놓고 의대생들이 전수조사 등을 통해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어, 의대생들도 투쟁을 중단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관련 서명을 위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 합의 실패한 이유는 “리더십과 소통 부재"
[더퍼블릭=김영일 기자] 의료계가 대정부 협상 과정에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건 내부 리더십과 소통 문화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5일 “의사 사회에는 자유로운 토론과 민주적 의견 수렴 과정을 주도할 진정한 리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내부 조율 기능이 없다 보니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최소 합의 수준인 강경 일변도의 파업만 이어갔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 등 외부와 협상을 하려면 결국 무언가를 양보해야 하는데, 어디서 물러날지 합의하지 못한 상태에선 협상 테이블에 누가 앉던 비난을 면치 못한다”고 진단했다.
범투위(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에서 협상 전권을 위임받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전날 정부·여당과 합의에 이르자 젊은 의사들이 ‘독자적 행동’이라며 강력 반발한 데 대한 분석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상황에서 집단 진료 거부에 동참할 수 없었다고 밝힌 한 대학병원 전공의도 “의료계의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젊은 의사들이 강경투쟁 방식에 내몰렸다”며 “의대생들도 시험 족보 공유부터 원하는 과 지원까지 선배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선배들의 압력을 심하게 느끼며 국가고시 거부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만일 의사들이 또다시 집단행동에 나서려고 한다면 내부 의견수렴 과정을 바꾸는 게 우선”이라며 “내부 반대 의견을 뭉개지 말고 토론과 설득이 우선하는 문화를 마련해 이익단체가 아닌 전문가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kill0127@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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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對 정부, 싸움 중계한 언론이 알려주지 않은 진실
정부는 7월 23일 당정협의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의사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전공의들을 중심으로 의료 집단 휴진을 이어왔다.
원점에서 논의하기로 일단 갈등은 봉합됐지만 언론 보도만 봐서는 의사측 주장과 정부측 주장 중 무엇이 맞다는 건지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J는 언론들이 이 사태를 어떻게 보도해왔는지 들여다봤다.
의사 對 정부…갈등 중재자 아닌 중계자 머문 언론
의대 정원 확대와 의사 진료 거부는 폭발력이 큰 사안이었지만 정부의 발표 직후부터 언론보도가 쏟아진 건 아니었다. J가 빅카인즈로 10대 일간지와 3대 경제지를 상대로 '의사 파업'이라는 키워드를 다룬 보도량을 분석해보니 정부 발표가 나온 7월 23일부터 8월 13일까지 관련 보도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8월 14일 1차 총파업 때 46건으로 늘었다가 15일 광화문집회 이후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자 보도들이 늘기 시작해 의사들의 2차 총파업이 있었던 26일, 181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언론들은 그러면서도 '강 대 강'이나 '치킨게임'이라는 용어들을 써가며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보도들을 이어갔다. 중앙일보는 8월 27일 <정부·의협 강대강 충돌…
출구 없는 의사 총파업>, 경향신문은 8월 21일 <전공의 파업 '혼란' 없었지만… 정부·의협 '치킨게임' 계속> 등 중계 보도는 잇따랐다. 사회적 공론장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할 언론들이 단순 중계자에 머물렀다.
특히 조선일보의 논조 변화가 두드러졌다. 7월 23일 당정협의회 발표 당시만 하더라도 지역 의사 3천 명 키운다는 정부 정책을 그대로 전하거나 공공의대를 유치하려는 지자체들 소식을 전하는가 하면 7월 24일 <외국보다 의사 부족한 건 맞는데, 왜 의협은 화가 났다>라는 기사에선 정부와 의협이 근거로 제시한 각종 통계를 팩트체크한 다음에 "이번 의대 정원 확대 자체에는 긍정적인 전문가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그러다가 8월 26일 2차 총파업이 시작된 다음날인 27일 <코로나 와중에 의대 증원 평지풍파 일으켜야만 했나> 사설에선 "정부가 이 와중에 의사들의 반발을 부를 것이 뻔한 의대 증원 방침을 밝혔다. 코로나 사태가 잡힌 뒤에 추진할 수는 없었나. 굳이 평지풍파를 만든 경솔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정부에 화살의 방향을 돌렸다.
각종 통계를 팩트체크하며 의사정원 확대에 찬성했다가 한달 만에 태세전환한 까닭은 뭘까?
언론은 민감한 공공의대 선발 과정과 관련해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에 집중하고 확산시키기도 했다. 보건복지부가 "공공의대 후보 추천은 학생,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시도 추천 위원회를 구성해 진행한다"라고 밝히자 여기서 시민단체라는 단어를 문제 삼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현대판 음서제', '운동권 자녀 특혜', 심지어 조국 전 장관 가족까지 소환한 보도들이 잇따랐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시민단체 추천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는데도 언론들이 가짜뉴스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시민단체 추천 논란은 갈등의 핵심이 됐다.
의사 수 부족하다 vs 넘친다...사실은?
이렇게 언론들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열심이지만 정작 해야 할 팩트체크는 게을리했다. 그래서 J는 의사 수 증원 논란과 관련된 주장들을 팩트체크해봤다.
한국의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2017년 기준으로 인구 천 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이 3.5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3명에 그쳤고 그것도 한의사 0.4명이 포함된 수치입니다.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의사협회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다.
의사협회는 한국의 의사 수 증가율이 높아서 2038년이 되면 OECD 평균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한국의 연평균 인구당 의사 수 증가율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2.0%로 같은 기간 OECD 평균 1.6%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17년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의과대학 졸업자 수는 한국이 7.6명인데 OECD 평균은 13.1명으로 한국이 OECD 평균의 58%에 불과하다. 의사협회 주장대로 2038년이 되더라도 한국의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증가율이 높다는 거 자체가 거꾸로 현재 의사가 너무 적다라는 걸 보여준다."라면서 "10만 명당 의사가 몇 명이 지금 양성이 되느냐, 10년 지나면 몇 명이 증가하느냐를 따졌을 때 한국이 지금 수준으로 가면, 의사 수를 늘리지 않으면 OECD 평균만큼 못 간다"고 설명했다.
"의료 접근성 높은 이유는 엄청나게 많은 환자 보기 때문"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의협의 주장은 어떨까? 환자 1인당 연간 외래진료 건수는 16.6회로 OECD 평균 6.8회보다 크게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료 건수가 많다고 해서 접근성이 높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한국의 진료 건수가 많은 이유는 '행위별 수가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료를 많이 할수록 급여를 많이 지급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료 건수가 많아질수록 그만큼 짧은 시간에 진료하는 이른바 '3분 진료'를 해야 하므로 진료의 질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높은 이유는 의사 한 명이 엄청나게 많은 환자를 보기 때문"이라면서 "거꾸로 이야기하면 적절한 수준의 환자를 보고 의사가 적절한 수준의 의료의 질, 적정 진료를 제공하게 되면 사실은 의사가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지역 의료 공백' 속타는 지역 의사들
이 사태의 본질은 지역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다. 수도권과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은 실제로 심각하다. 인구 천 명당 의사 수는 서울 3.1명이지만 경북 지역은 1.4명이다. 더 자세히 보면 서울 종로구 같은 경우 16.27명이지만 경북 영양군은 0.72명으로 22배나 격차가 난다.
하지만 이런 지역의 의료 현실에 대해 심층 취재해 공론화하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J는 지역에 있는 의사를 취재해 지역 의료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남 창원의 마산의료원에 근무하는 최원호 의사는 지역도 지역 나름이라고 한다. 최 의사는 "창원은 권역 중심지라 의료 여건이 나쁘지 않지만, 인근의 함안, 의령, 창녕 등 군 지역은 의료가 붕괴됐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의료 수준이 매우 열악하다"고 말한다.
"군 지역에 계신 어르신들은 1차 진료도 어려워 감기약이나 혈압약을 타기 위해 창원까지 버스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최 의사는 지역별 맞춤형 공공의료가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심혈관 질환을 예로 들면 창원 지역은 민간병원에 심혈관 센터가 이미 6~7곳이 있어서 의료원에는 심혈관 센터가 필요 없는데 지금 정부에서는 다시 예산을 들여서 의료원에 심혈관 센터를 만들려고 한다"면서 "지역별 상황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공공의료 정책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최 의사는 "100개 지역이 있다면 100개 지역 의료 상황이 다 다르므로 언론들도 이런 점을 알고 취재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최원호 마산의료원 외과의사
한승연 기자hanspond@kbs.co.kr
▲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안에 반대하는 전공의 집단 휴진을 하루 앞둔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2020.8.6 뉴스1
험난했던 의료 파업 22일...중요 장면 7가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위기 속에서 파업을 강행했던 의료계가 집단 진료거부 22일만인 지난 4일 철회를 선언했다. 지난달 14일 전국 의사 총파업을 시작으로 정부와 의사단체와의 길었던 갈등 과정에서의 핵심 장면 7가지를 6일 정리해봤다.
8월14일 의사 총파업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4달여만에 100명을 넘어선 날, 그동안 으름장만 놓던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이 총파업을 행동에 옮겼다. 의사들의 요구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정책을 전면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원격의료(비대면 진료) 추진을 ‘4대 악(惡)’으로 규정했다.
첫 테이프는 전공의가 끊었다. 앞선 8월7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에 지역별 야외집회를 열었다. 코로나19에 헌신해온 의료진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 '덕분에 챌린지'를 비꼬는 피켓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공의 단체행동을 지렛대 삼아 의협은 12일까지 정부에 정책 재검토 등 변화된 입장을 가져오지 않으면 14일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면서도 '의료인력 확충을 더이상 늦추기 어렵다'고 맞섰다. 파업은 결국 예정대로 진행됐다.
14일 총파업에는 전국에서 추최측 추산 2만8000여명이 모였다.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은 정부 집계 기준 31.3%가 참여했다. 지자체별로 30%가 넘으면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도록 지침을 내려보냈지만 실제로 적용하진 않았다.
박능후-최대집 만남...갈등 폭발1차 총파업 이후 갈등의 정점에 있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최대집 의협 회장은 지난달 19일 의정간담회에서 얼굴을 맞댔다. 대전협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만남은 이전과 달리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한 시점이었다. 부족한 병상과 의료진이 부각되는 때 파업 책임에 대한 여론 향방이 중요해졌다.
정부는 처음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화하자"고 제시했다. 복지부는 의협도 의료계가 코로나19 대응에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하지만 간담회 후 상황은 더 악화됐다. 의료계는 "정부가 훈계했다"고 협상 태도를 문제 삼았고, 정부는 "정책 철회를 대화 조건으로 삼았다"고 폭로전을 이어갔다.
정세균 총리 등판 후 화해무드 조성
폭주기관차처럼 폭주하던 양측은 정세균 국무총리의 등판 후 진정국면에 들어서는 듯 했다. 23일 밤 11시까지 회동한 대전협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진료에 적극 참여한다"는 전향된 입장을 보였다. 불과 하루 전 '복귀 안 하면 면허취소'(정부)와 '정책 철회 전까지 파업 강행'(의협)이라는 강대강 대치를 했던 상황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정부가 공개한 합의문에 따르면 정부는 대한전공의협의회를 포함한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논의를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엄중한 코로나19 시국을 고려해 전공의들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진료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정리했다. 여세를 몰아 정 총리는 이튿날인 24일 최대집 회장 등 의협과 면담도 이어갔다. 면담 후 박능후 장관은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다"고 했고 최대집 회장도 "정 총리와 박 장관, 나도 허심탄회하게 진정성있게 핵심 의제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의료계는 24일에 이어 25일 새벽까지 마라톤 협의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합의문도 나왔다.
하지만 협의 과정에서 정부는 오랜 기간 숙고과정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을 철회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고, 최대집 회장도 "정세균 총리와의 만남에서 얘기됐던 수준보다 훨씬 후퇴안 안을 들고와 협상하자고 했다"며 실망감을 표현했다. 진전된 안이 나오면 파업을 철회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26일 새벽까지 이어진 협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26일 2차 총파업...
업무개시명령 실행결국 의료계는 예정대로 26일부터 2차 총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에는 전공의들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리자 무기한 파업 선언으로 맞섰다.
의사들의 대규모 진료거부에 병원 현장에서는 혼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예약된 수술은 상당수가 미뤄졌고 병원을 방문한 환자들은 걸음을 돌려야 했다. 부산과 경기도 의정부에선 응급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하는 일이 생겼다. 국민적 공분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적인 법집행을 통해 강력하게 대처하라"는 지시가 나왔다.
정부는 실제로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의사 10명을 고발해는 등 실행에 옮겼다. 이 과정에서 억울하게 고발당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이 나오자 이번엔 의사단체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의대 교수들도 의대생과 전공의, 의사단체의 파업을 지지하고 나섰다. 의사 국가고시를 앞두고 있던 의대생들도 시험거부와 동맹휴학에 나섰다. 28일 전후는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대전협 파업 재투표 논란...의사고시 연기30일 대전협은 파업 중단을 안건으로 한 표결 과정에서 재투표를 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일부 전공의의 의견을 토대로 '파업 찬성'이 과반을 넘지기 못했는데 재투표를 통해 강행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전협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파업중단 의견을 묵살한 것이 아니라 1차 투표에서 어느쪽도 과반을 넘기지 못해 재투표를 한 것이란 설명이었다.
이런 가운데 1일로 시행 예정인 의사 국가고시에 의대생의 90%가 응시를 취소하자 정부는 의대 학장, 교수, 의료계 원로 등의 의견을 수렴해 1주일 연기로 한발 물러섰다. 이 결정은 강경 일변도의 대응방식에서 다시 대화로 전환하는 신호탄이 됐다.
이후 의협은 전공의와 의대생 등이 참여한 젊은의사비상대책위원회 등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를 결성하고 대화 창구를 하나로 통일시켰다. 여당과 정부를 대상으로 실질적 합의를 할 수 있는 단초를 만든 것이다.
새벽 6시까지 줄다리기, 정부·여당 상대 합의문 서명이번 합의에 관여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범투위 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최대집 회장 등 의료계 대표들은 4일 새벽까지 논의에 논의를 이어갔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소통 방식은 온라인과 전화 등을 이용했다. 국회와 정부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과 복지부 정책보좌진이 주도해 의견을 조율했다.
새벽 3시쯤 윤곽이 잡혔다. 문안작성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세부적인 이견은 그때그때 조율했다. 최종 합의문이 나온 것은 새벽 6시쯤 이었다. 각자가 문안을 들고 주체들에게 보고했다. 국회와 정부에서 각각 합의서 서명 일정을 잡았다.
국회 일정은 8시30분, 복지부 일정은 11시로 잡았다.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합의문을 받아 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패싱'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박지현 대전협 회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자고 일어났는데 나도 모르는 보도자료가. 나 없이 합의문을 진행한다는 건지"라며 내부 동의 과정이 없었다며 반발했다.
전공의의 반대에 정부와 국회 일정은 줄줄이 연기됐다. 8시30분에 민주당사에서 진행 예정이던 더불어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 합의문 서명식은 1시간30분가량 늦어진 10시쯤 진행됐고, 복지부 서명 일정은 11시에서 오후 1시에 이어 2시로, 다시 2시30분으로 연기됐다. 하지만 결국 최 회장이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길었던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전공의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증진개발원에서 열리는 ‘의대정원 원점 재논의 정책협약 이행 합의서 체결 협약식’을 막기 위해 로비에 모여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피켓 시위...남아있는 불씨지난 4일 또 다른 결정적 장면은 정부와의 합의서 체결 예정 장소인 서울 중구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나왔다. 70여명의 전공의가 항의시위를 하면서 합의가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전공의들은 서명식이 진행될 대회의장 입구에서 '졸속행정도 졸속합의도 모두반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여당과의 서명식이 끝난 뒤 갈등은 커졌다. 의협 특정인물이 판을 짰다고 묻는 박지현 대전협 회장과 파업 철회 거부에 대해 알아서 판단하라는 최대집 의협 회장의 녹취록이 의사 커뮤니티에 공개돼 내부갈등이 이어졌고 이런 내용은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갈등이 이어지면서 일부에선 최 회장의 퇴진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의료계 내부갈등이 불거지면서 의료거부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에 복귀할 지 미지수다. 박지현 회장은 "단체행동을 중단하는 것은 우리의 의결사항이며, 우리가 알아서 결정할 예정"이라며 집단휴진을 중단하지 않겠단 뜻을 내비쳤다.
지난 5일 주요병원에서는 여전히 전공의의 현장 복귀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신만 키웠다는 반응도 나온다. 전공의의 의료 현장 복귀는 결국 대전협의 결정에 따라 이뤄질 예정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들은 대전협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파업 철회 합의는 이뤄졌지만 파업 철회 실행은 아직까지 물음표가 남아있다.
빵 체인점도 매장 내 취식 금지 수도권 전면 원격수업 20일까지 3단계 막으려면 불편 감수해야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가 어제 밤샘 협상 끝에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치’ 등 공공의료 인력 확충과 관련한 입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주요 의료 현안을 논의할 ‘의·정 협의체’도 조만간 구성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보름가량 이어진 의료계 집단휴진 사태가 해결 국면을 맞았다.
급한 불은 껐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어제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198명으로 이틀 연속 200명 선을 밑돌았으나 최근 8일간 신규 확진자가 전체 확진자의 14%에 달하고 중증환자는 급증하고 있다. 병상부족 사태는 심각하다. 중증환자가 즉시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서울시가 2개뿐이고 수도권을 합쳐도 6개에 불과하다.
교회·도심집회 관련 확진자가 끊이지 않는 데다 김치공장·골프장 등에서 산발적 집단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깜깜이 환자’ 비율이 24%를 넘어선 것도 우려스럽다. 어제 하루 등교가 무산된 학교가 전국 8252개교에 달해 연일 최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정부가 6일로 끝나는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일주일 연장하고 나머지 지역에 시행 중인 거리두기 2단계를 2주간 연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도권 지역의 음식점, 프랜차이즈형 카페, 학원, 실내체육시설 등의 영업제한 또는 운영중단 조치는 계속된다.
매장 내에서 취식을 할 수 없는 프랜차이즈형 카페에 제과제빵점, 아이스크림·빙수점이 추가됐다. 교육부도 고3을 제외한 수도권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전면 원격수업을 20일까지로 일주일 연장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의사파업 종료 합의와 거리두기·원격수업 연장 조치를 코로나19를 극복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번 의사파업 사태를 교훈 삼아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국민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의료계 파업을 끝내기로 했지만 전공의들의 강력한 반발 등 불씨는 남아 있다. 시민단체들은 ‘밀실 야합’ ‘공공의료 강화 포기’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공약’ 이행에 급급해 여론수렴 없이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인 것을 자성하면서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거대 여당의 힘을 과신해 민감한 시기에 의료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정책을 내놓는 미숙함을 보였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진료를 거부한 의료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앞으로 진행될 의·정 협의 과정에서 ‘밥그릇 싸움’이라는 질타를 피하려면 국민 건강을 우선시하는 대승적 차원에서 논의에 임해야 할 것이다.
국민도 방역당국과 의료계만 쳐다보고 있어선 안 된다. 스스로가 방역주체라는 공동체 의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향후 1~2주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시기다.
거리두기 3단계라는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 일상의 마비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일을 막으려면 당장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거리두기와 방역수칙 준수를 생활화하는 게 우선 과제다. 어렵게 버텨온 방역전선에 한 치의 틈도 보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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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증진개발원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의대정원 원점 재논의 정책협약 이행 합의서 체결 협약식'을 막기 위해 로비에 모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