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마련된 선별진료소 앞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체 채취 순서를 기다리는 내원객들을 응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끝이 보이지 않는 ‘집콕' 터널"... 코로나 블루 대처법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 코로나뉴스 청취 보다 SNS로 잦은 소통 유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우울·공포·스트레스가 바이러스처럼 번지고있다. 코로나 확진자·격리자 뿐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까지도 이른바 ‘코로나 블루(우울)’와 ‘코로나 번아웃(정서적으로 부담 혹은 기대가 높은 환경에 오랜 시간 관여되면서 비롯되는 긴장되고 고갈된 상태)’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다.
실제 호주에서는 세쌍둥이 자녀의 출산을 기다리던 예비 아빠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직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영국의 전직 경찰 간부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인 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가 격리를 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내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죽고싶다"는 글이 올라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코로나19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정신보건 위기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감염에 대한 불안감 뿐 아니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외로움이 개인 정신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8월에 이례적인 수준으로 자살자가 늘어 정부 당국이 긴급 메시지를 발표했다.
일본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849명으로, 작년 동기와 비교해 15.3%(246명) 급증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장관)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앞으로의 생활에 불안을 느끼는 분도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는 "코로나로 인한 자살 증가에 대한 우려는 세계 공통 과제"라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높은 자살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신건강문제, 경제적 문제, 건강문제의 삼중고가 코로나로 모두 악화될 위기"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자살 증가 위험을 높인다는 통계는 아직까진 없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블루가 자살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국가별 통계가 아직 없어 파악하기엔 매우 이른시점"이라면서 "코로나로 인한 자살과 관련해서는 입증되지 않은 사례나 증언들만이 이용 가능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서도 최근 코로나로 인한 외출 자제·사회적 고립 등으로 불안감과 우울 증가, 이로 인한 자살 증가 우려 등이 크게 늘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코로나19 8월 유행 이후 '코로나 우울'로 인한 정신건강 관련 정보 문의는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심리상담 건수도 같은 기간 1.8배 늘었다.
수도권 중심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지난달 14일 3085건이었던 정신건강 관련 정보 제공 건수는 20일 6244건, 26일 1만193건으로 늘어나더니 21일 만인 이달 4일에는 1만2300건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2457건이었던 하루 심리상담 건수도 20일 3378건, 26일 4570건에 이어 이달 4일 4424건으로 1.8배가량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코로나 우울'을 질병 코드로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코로나 블루는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서는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코로나 블루라는 질병명은 없기 때문에 전조증상인 우울증 등을 조기에 감지하고, 치료하면 된다. 백종우 교수는 "감염재난 시기에 발생하는 건강에 대한 위협, 경제적인 어려움, 일상의 중단 등은 현실적 고통으로서 우리가 직면하는 첫 번째 화살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가야 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자연스레 우리의 마음 한켠에는 불안, 분노, 우울감이 유발되는데 이를 코로나 블루라고 일컫는다. 사실 불안한 감정을 질환으로 느낄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의 불안은 누구나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KSTSS)에서 최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소 시기에 비해 국민들의 우울과 불안은 증가했지만, 80% 정도는 정상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0~20%는 임상적 관심이 필요한 정도의 불안을 보여주고 있다. 백 교수는 "우울증, 불안증세가 있었거나 너무나 큰 고통으로 잠을 못 자는 분들은 전문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미래를 속단하거나, 예측하려고 하면 스트레스가 더 커지므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요즘처럼 비대면 접촉이 늘고 있는 와중에는 우울감이나 슬픔,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인간이 변화에 적응하려면 신체적 혹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대안을 하나씩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야외활동이 제한됨에 따라 집에만 머물며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계속해서 보게 되는데, 이는 심리방역에 가장 안 좋은 행동이다. 최소한 실내에서 창문을 열고 햇볕에 드는 곳에서 운동하기를 권장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백 교수는 "타인과 ‘소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소중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전화 혹은 SNS 등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고 ‘함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준수 교수도 "생활 반경이 줄어들수록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 적절한 식이조절 등을 지켜야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것도 좋은 기회다. 취미활동은 휴식을 즐기며 코로나 우울을 이겨낼 수 있는 해법이다. 뜻밖에 주어진 이 고립된 시간동안 스스로를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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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천주교대구대교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던 미사를 재개한 11일 오전 대구 중구 성모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한 천주교 신자들이 거리를 유지하며 기도하고 있다.
2020.9.11/뉴스1
울화통 터져요" 우울증이 분노로..'코로나 앵그리' 퍼진다
"고의적 방역수칙을 어겨 감염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화가 납니다" "거리두기 때문에 수입이 줄어 스트레스가 큽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이 계속되고 방역을 위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도 커지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탓에 신체적 질환 외에도 감염과 낙인에 대한 두려움, 경제 상황 악화 등도 일으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을 전제하고 상황에 맞는 방역 수칙과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지켜야 신체·정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감염병예방법 위반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개인의 심리상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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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바꿔봐도 힘들어…고의적 방역수칙 미준수에는 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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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에 다니는 유모씨(28)는 "홈트레이닝을 하거나 지인을 아주 소수로만 만나는 등 나름 스트레스 해소법을 만들고 생활을 바꿨지만 언제 코로나가 끝날지 몰라 답답함이 쌓인다"며 "대유행이 끝나면 잠깐 활동했다가 다시 번지면 활동을 줄이고 실망해야 하는 점이 힘들다"고 밝혔다.
이어 "힘든 사람들 소식을 들어 우울감이 심해질 때면 '정말 코로나 블루인가' 생각한다"며 "고의적 방역수칙 미준수로 큰 감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화가 난다"고 했다. 직장인 이모씨(31)도 "우울증까지는 아닌데 답답한 느낌은 항상 있다"며 "코로나19가 나만 걸리고 끝인 병이 아닌데, 감염에 위험한 행동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서울 소재 식당에서 일하는 배모씨(32)는 코로나19 확산 후 악화된 개인 경제 상황, 줄어든 모임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다고 말했다. 배씨는 "근무 시간에 맞춰 급여를 받는데 코로나19 이후 일하는 시간과 함께 월급이 줄어들어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성북구 인근 식당 주인 이모씨(69)는 "3개월째 집세가 밀리는 상황에서 2차 대유행 후 이익이 마이너스가 됐다"고 했다. 이어 "울화가 터져 전광훈 목사 퇴원 날 사랑제일교회 앞에 항의하러 혼자 찾아가기도 했다"며 "교회 앞 상인들이 한다는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참여하고 싶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일반인 코로나 관련 상담도 다수…마음 고통 원인은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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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서울시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의 일환으로 시내 포장마차, 푸드트럭 등에 저녁 9시~오전 5시 취식 금지 조치를 적용하기로 발표한 6일 서울 광진구 일대에 포장마차가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2020.9.6/뉴스1
일반인들의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고통 관련 상담은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하거나 고강도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시기와 맞물려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 상담실적에 따르면 자가격리·일반인 대상 월별 상담 건수는 △2월 9456건 △3월 5만8501건 △4월 8만4643건 △5월 6만1140건 △6월 6만8424건 △7월 6만2347건 △8월 6만1276건 등이다.
국가트라우마센터 관계자는 "상담 건수와 유행 건수 그래프를 그려보면 서로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상담자들은 우울감뿐 아니라 사회적 불안이나 낙인 가능성 등 다양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한다"고 설명했다.
"오늘에 충실해야 마음도 건강" "법 위반자에 대한 처벌도 유의미"
하지현 건국대학교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 지수에 영향을 주는 두 요인은 '통제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며 "코로나19는 통제나 종료 시점에 대한 예측이 힘들어 스트레스를 주고 사람 심리를 지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크리스마스 때에는 나아지겠지' 등 미래를 예측하려 하지 않고 현실 상황을 받아들여야 실망이 감소해 정신 건강에 좋다"며 "오늘, 이번주에 주어진 일을 규칙적으로 함으로써 내 삶을 지켜나가는 것, 그러면서 '잘 해냈다'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10명 중 7명으로 나타났다"며 "보통 10명 중 2~3명을 넘기 힘든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 무기력증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인데 힘든 사람은 빨리 상담소를 찾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일부 불성실한 사람·집단이 감염 연결고리가 돼 대유행이 번지는 것을 보면 자기 희생하던 시민들은 '노력이 소용없다'라는 생각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우울·무기력감의 뒷면은 분노"라며 "관련된 돌발행동도 증가할 수 있어 세심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감염병예방법을 어긴 사람들을 합당히 처벌해야 수칙을 지켜온 국민이 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개인의 방역수칙 미준수가 이웃과 공동체의 마음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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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블루에 휘청이는 사람들… ‘고위험군’ 먼저 쓰러지다
[코로나 블루, 또 다른 재난] <1부> 불길한 징후 ② 무너지는 위기군
최근 SOS생명의전화에 술에 취한 30대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죽으려고 마음먹었다가 전화기를 들었다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비극이 된 자신의 처지를 한참 동안 토로했다. 회사가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돼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실직자가 됐다.
빚이 늘었고 스트레스가 심해져 대인관계가 흔들렸다. 전염병 확산으로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기존 사회관계망을 통한 정서적 안정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는 전화기를 들기 전에도 자해와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했다.
또 다른 남성은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집이 압류에 들어갔고, 직원들 월급도 못 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직원도 힘들고, 저도 힘들고, 모든 사람이 힘들다”는 호소를 반복했다고 한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는 며칠 전 음독자살을 시도한 20대가 실려 왔다. 대부업체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가 코로나19 사태로 해고됐다. 이후에도 취업이 안 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아버지와의 다툼이 잦아졌다. “나도 잘 해보려는데 안 되는 것”이라고 항변하던 어느 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그는 회복 진료 때 “개인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제한된 상태에서 해고까지 당하자 사회적으로 고립된 느낌을 받았고, 가까운 가족들마저 무시하고 비난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모두 코로나 블루가 원인이 돼 새롭게 자살 고위험군으로 편입된 사례들이다. 전염병 확산으로 인한 정서적 불안의 심화, 경기침체로 인한 경제난 가중, 사회관계망 단절로 인한 치유 기제 약화 등 문제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코로나 블루’가 무서운 건 이처럼 그 여파가 자살자들의 주요 동기로 지목된 정신적·정신과적 문제와 경제생활 문제를 한꺼번에 건드리고 있다는 데 있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10일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과정에서 축적된 스트레스 등 임팩트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장 활동가들은 또 다른 문제를 지목했다. 코로나19가 자살 예방을 위한 위기군 관리시스템을 헐겁게 만들어 제대로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대면을 강조한 방역 체계에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위기군이 늘어나는데, 대면 위주의 기존 시스템은 이들에게 닿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고위험군이 먼저 쓰러졌다
고민영(가명·38)씨는 얼마 전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을 때 전염병의 진짜 위험성을 실감했다. 그의 가족은 3년 전 극단적 선택을 한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줄곧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살 고위험군이 된 고씨 가족은 심리치료를 받으며 삶의 의지를 겨우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전염병 사태가 터졌다. 아버지는 가족들이 강권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코로나19 지역감염이 심각해지면서 대면 대신 전화 상담을 주로 받았다. 친구를 만나 적적함을 달랬던 노인복지센터와 성당도 문을 닫았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끊겼고, 유일한 치료였던 상담도 뜸해지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머니와의 사별 후유증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있던 아버지 심리상태는 곤두박질쳤고, 알코올 의존이 심해졌다. 전염병 우려로 가족들도 전화 안부밖에 묻지 못하던 때, 아버지는 술을 마신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다행히 빨리 발견돼 생명을 건질 수 있었지만 가족들은 지금도 조마조마하다.
“아버지가 좀 괜찮아질 만할 때 코로나19가 터졌어요. 그나마 손자들 챙기고 친구들도 사귀면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좋아지려던 차에 갑자기 모든 사회관계가 차단돼 버리니까…. 다시 혼자만의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셨던 것 같아요.”
고씨처럼 가족을 자살로 잃은 유족들은 자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8배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체계가 상담과 자조모임 등인데 코로나19 여파가 여기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고씨도 고위험군 관리대상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자신마저 무너지면 안 되겠기에 마음을 다독이려 병원치료와 자조모임에 집중했는데, 그 사이 생계가 막막해졌다. 프리랜서 콘텐츠 제작자인 그녀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불안이 심해져 1년 동안 아예 일을 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생활전선에 복귀했지만 이번엔 코로나19가 터졌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할 예정이었던 일들이 줄줄이 연기·취소됐다. 계획된 수입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그녀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티고 있다.
“통신비나 집세 같은 고정 지출이 있으니까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죠. 저는 신용회복도 하고 있는 상태인데 지금 코로나19로 잠깐 상환이 중단된 상태거든요. 그러니 그동안 열심히 갚을 준비를 해둬야 하는데…. 그나마 저는 이렇게라도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도 안 되는 분이 있잖아요. 무급휴직이나 실직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억누르다가 나중에 터질까봐 걱정이에요.”
드러나지 않은 위기군
고씨는 기존 자살 고위험군 관리에 구멍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고위험군에 새로 편입되는 사람들 역시 크게 늘고 있다. 종합병원 정신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최근 눈에 띄게 증가했다.
양극성 정동장애로 산후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김민지(가명)씨는 지속적인 통원치료와 약물 복용 덕에 일상을 거의 회복했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정상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완치의 희망도 품게 됐다. 그러나 전염병 재난이 그간의 노력을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코로나19가 심해지고 카페가 문을 닫아 실업자가 됐다.
설상가상 어린이집마저 운영이 중단돼 혼자 집에서 아이를 보게 됐고, 증상이 다시 악화됐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나 신경질이 많아졌고 아이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고 그녀는 토로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인들은 사회생활 범위가 더욱 좁아지면서 ‘외롭다’ ‘잠이 안 온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며 “아이들과 집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게 된 주부들의 경우 자식에게 불필요하게 짜증을 내는 자기 자신이 원망스럽다며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생명의전화에 걸려온 상담자들의 고민 유형 역시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상담자들이 털어놓은 문제 유형은 1위가 가족, 2위가 대인관계와 인생, 3위가 진로와 학업 등이었는데 올해는 순서가 인생, 경제, 정신·신체건강, 대인관계 순으로 바뀌었다. 코로나19 여파가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는 상담 유형들이 상위권에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고위험군을 발굴해야 할 기존 사회 시스템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태다. 경북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살예방 최전선에 있는 생명의전화가 4개월 넘게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상담소를 모두 닫으라는 명령이 떨어져 2월 말부터 7월 초까지는 낮에만 일부 전화 상담을 받았다.
자원봉사 상담원으로 운영되는 생명의 전화는 24시간 상담이 이뤄져 왔었다. 해당 센터 관계자는 “운영을 재개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상담사 선생님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 수치상으로는 상담건수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온다”며 “연세 많은 분은 외출이 안 돼 답답하고 외롭다는 호소들을 하신다”고 했다.
당사자들끼리 위로와 공감을 나눠왔던 자조모임도 대부분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고씨가 참여하던 자조모임은 중단됐다. 유족들은 자조모임에서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안을 얻는데 이 자체가 차단된 것이다.
고씨는 “경제적으로 힘든데 정신적으로도 고립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A지역 자조모임 관계자는 “참석자들은 ‘집에만 있으면 더 우울한데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하니 좋다’고 말씀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임을 자제하라는 공문이 내려오면 이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현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은 지난 3일 열린 자살예방종합학술대회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자살 문제를 언급하며 “가장 외로운 집단과 실직으로 인한 영향이 큰 집단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빠르게 추적하고 확산을 막았기 때문 아니냐”며 “정신건강 영역에서도 부정적 감정은 전파되고, 그냥 두면 더 심해질 수 있다. 빨리 추적해서 막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리방역 대책 서둘러야
전문가들은 강력한 감염병 확산 방지 대책과 병행할 수 있는 심리방역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 위기군의 경우 자살 위험이 계속 축적되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신규 위기군의 경우 발굴이 더뎌 시차를 두고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정신건강서비스가 잘 제공되면 자살률에 큰 영향이 없는데 현재는 (전염병) 재난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 제공이 안 되면 추후 자살이 늘어난다는 보고들이 있다”고 경고했다. 유명순 교수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형식적 상담은 도움이 안 된다”며 “보통의 사람이 겪고 있는, 혹은 과거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사람들이 새롭게 경험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여기에 근거한 실질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택트’ 상담이 불가피하다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매뉴얼 개발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현진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은 “비대면 서비스가 깊이 있는 상담에서 가벼운 안부 확인까지 다양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지역 유관기관에서도 심리 문제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연계해 사각지대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우울과 절망에 빠지거나 고립된 상태에서 정보에서 소외되면 받을 수 있는 지원도 모르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변인에게 위험신호를 알렸거나 전화 등을 통해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가능한 지원과 치료를 연계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감 증가로 ‘코로나 우울’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라며 “긴급지원 등 경제적 대책과 심리적 상처가 우울로 발전하고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심리방역을 병행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슈&탐사1팀 전웅빈 문동성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국민 74.4% "코로나 우울증 경험 있다"
알앤써치 '국민들은 지금' 정기 여론조사 국민 10명 중 7명 코로나 장기화에 우울 느껴 특히 60대 이상·여성·TK에서 우울 경험 높아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Corona+Blue)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실시한 9월 첫째 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불안과 무기력, 분노 등의 우울증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74.4%가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 빈도와 관련해선 '가끔 경험했다'는 응답이 33.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종종 경험했다' 20.9%, '자주 경험했다' 19.8% 순이었다. '전혀 경험한 적이 없다'는 응답은 21.6%, '잘 모름'은 3.9%였다.
코로나 블루를 느끼는 이유는 코로나19가 언제 종식할지 모른다는 막연함과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 신체활동의 제한, 경제적 부담 등 다양하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실시한 9월 첫째 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불안과 무기력, 분노 등의 우울증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74.4%가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데일리안 박진희 그래픽디자이너
코로나 블루는 연령과 성별, 지역과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다수의 국민이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0대 이상, 여성, 대구·경북에서 코로나 블루 경험 비율이 높았다. 세부적으로 30대의 75.9%, 40대의 76.9%, 50대의 76.7%, 60대 이상의 77.3%가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20대 젊은층은 다른 연령층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64.2%가 경험했다고 했다.
성별로는 남성(68.1%)보다 여성(80.8%)이 코로나 블루를 더 많이 경험했다. 지역별로는 지난 3월 신천지 교회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고통을 겪은 대구·경북(88.5%)에서 우울감과 불안감이 가장 컸다. 강원·제주(81.3%)도 80%대를 상회했다. 이어 서울(76.3%), 대전·충청·세종(73.9%), 경기·인천(72.3%), 부산·울산·경남(71.2%), 전남·광주·전북(66.6%) 순이었다.
정치성향별로는 중도보수(84.6%), 보수·중도진보(74.7%·동률), 진보(67.8%) 순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이틀에 걸쳐 전국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 100% RDD 자동응답방식으로 진행했다. 전체 응답률은 6.4%로 최종 1008명(가중 1000명)이 응답했다.
표본은 올해 2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기준에 따른 성·연령·권역별 가중값 부여(셀가중)로 추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알앤써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반년 넘게 이어지면서 우울감이나 우울증 증세를 호소하는 ‘코로나 블루’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평소보다 식욕이 줄었다. 잠들기가 어렵거나 자주 깼다. 신문을 읽거나 TV를 보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말과 행동이 느려졌다.’ 최근 2주간 이런 증상이 나타난 날이 이틀 이상 있었다면 ‘코로나 블루’ 초기 단계일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가벼운 우울증은 운동이나 자기관리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면서도 “2주 이상 우울감 등이 지속되면 방치하지 말고 상담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력감에 짜증만 납니다”
경기 부천시 상동에 사는 김모씨(39)는 최근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늘어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처음에는 ‘며칠 이러다 말겠지’ 하고 버텼지만 3주 가까이 불면증이 지속돼 견딜 수 없었다. 김씨는 우울 증세를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다. 코로나19 이후 만남과 외출이 줄어들면서 고립감이 커진 게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됐다.
김씨는 “사촌언니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도와주던 일도 끊기고 하루종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두 달간은 소리 내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우울’과는 거리가 멀던 직장인 정모씨(34)도 부쩍 한숨이 늘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직장생활 틈틈이 야구경기 관람 등 취미생활을 즐기던 그에겐 요즘이 악몽 같다.
정씨는 “사는 게 이렇게 재미없다고 느껴진 적은 처음”이라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생겨서 자꾸 인테리어 소품을 사게 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11일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지난 1월 29일부터 이달 7일까지 보건복지부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에 몰린 상담 건수는 총 45만1704건이다.
작년 한 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우울증 상담 건수(35만3388건)를 훌쩍 넘었다. 감염을 걱정하는 불안·강박장애부터 고립감을 호소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실업이나 휴업·폐업 등 경제적인 고통을 털어놓는 사례도 많다.
상담 건수는 지난달 말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면서 눈에 띄게 늘었다. 이달 첫 주엔 2만2792건에 달했다. 지난달 셋째 주(1만1807건)보다 93% 급증했다. 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심리지원팀 관계자는 “코로나 우울에 대한 심각성이 커지면서 관련 질병코드를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전화 통화로 고립감 탈출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다스리려면 걷기나 맨손체조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늘리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코로나 블루가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은 언택트(비대면)”라며 “집 안에만 갇혀 있기보다는 마스크를 쓰고 공원 등을 걸어보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대화를 늘리거나 친구와 전화, 문자를 통해 유대감을 키우는 방안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버티고 견딘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강한 소통’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공중보건위생국장을 지낸 비벡 머시는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는 책에서 “외로움은 하루 15개비 담배만큼 해롭다”고 했다. 그는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소통, 공감을 늘려야 한다”며 “외로운 경험 등을 주변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1인 가구이거나 지속적으로 소통할 지인이 없다면 인공지능(AI) 스피커나 반려동물, 반려식물 등을 활용하는 대안도 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AI 스피커 등 사람과의 소통을 대체할 장치를 마련하면 심리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화영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순천향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땀을 흘리고 심박수를 올리면 몸에 유리한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몸을 움직여주는 게 좋다”며 “매일 할 일을 정해놓고 이행하는 습관도 무력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치했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2주 이상 심한 무기력감이나 좌절감, 우울감 등이 지속된다면 상담을 받거나 병원을 찾아야 한다. 병원을 가는 게 부담스럽다면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무료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동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불안은 자책, 분노, 절망 등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초기부터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보를 자주 보면 우울이나 불안 증세가 심해질 수 있다. 심 부장은 “상담하러 오는 이들에게 SNS는 아예 앱을 삭제하고 보지 말라고 권한다”고 했다.
정지은/김남영/최다은 기자 jeong@hankyung.com
【파이낸셜뉴스 무안=황태종 기자】전남도가 '2021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성공개최 기원과 코로나19로 인한 국민의 사회적 피로감 해소를 위해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2020 특별기획전'을 개최한다.
코로나 우울증
요즘 참 우울하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해지고, 가끔 푸른 하늘이 열리는데도 미소 대신 한숨만 나온다. 코로나19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지난달 중순 이후 세 자릿수 이상으로 늘어나자 심리 상담 건수가 3배 이상 급증했다고 한다.
지난 1월20일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8개월이 넘었다. 다들 많이 지쳤다. 추석 귀향은? 벌써 귀성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고, 좀 덜 북적이는 1, 2주 전에 고향에 다녀오겠다는 사람도 있다. 한 후배는 절에서 지내오던 차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방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추석은 또 한 번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상도 꼬이고 변했다. 육아, 교육, 휴가, 결혼, 장례…. 대학생들은 졸업까지 연기한다. 예전처럼 되는 게 없다. 일상도 의례도 일정을 하나하나 다시 조정하고, 맞춰야 한다. 하다못해 직장인의 점심 풍경도 변했다.
코로나19의 가장 답답한 점은 불확실성이다. 가을만 버티면 괜찮을지, 올겨울까지 이어질지, 코로나 위기만 극복하면 경제는 좋아질지누구 하나 시원스럽게 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에 따라 백신도 내년 초면 나올 것이란 예상부터 2년은 걸릴 것이란 얘기도 있다.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니,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 만수위까지 차오른 댐처럼 더 버틸 수 없는 임계점에 와 있다. 내 주변만 보아도 사실상 실업자가 된 이들이 꽤 있다.
처음에는 ‘두어 달 버티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중장기적 실업 상태가 되자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40대, 50대에 생업을 바꿔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이대로 주저앉을지 모두들 근심이 가득했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5%나 된다. 미국의 4배, 일본과 독일의 2.5배다. 이들은 자본금만 파먹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투자금만 날리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크건 작건, 사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융부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흡연구역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 서로 말을 건네기도 멋쩍어하며 하늘을 쳐다보거나, 고개를 숙인 채 볼이 오목해지도록 담배를 빨았다. 외환위기 이후 똑똑이 봤듯이 코로나19가 지나가면 도산과 파산이 줄을 이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을 주는 것이 종교다. 하지만 일부 교회는 시민사회의 ‘공공의 적’이 됐다.교회를 통해 집단감염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대면 예배’를 고집·강행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피와 살까지 내주겠다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인데, 지금 교회가 사람들의 피를 끓게 한다. ‘제발 교회가 자중해줬으면….’ 어떤 이들은 우려의 시선으로, 어떤 이들은 분노의 시선으로 교회를 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과거의 위기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위기 앞에서 한국 사회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곤 했다. 파멸을 막기 위해 재난을 함께 이겨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힘을 보태며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결속력은 강해진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너나없이 아이들 돌반지까지 들고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코로나 위기를 통해 학자들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공동체를 앞세우는 공화주의적 가치에 다시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지금 한국 사회가 과연 그런가? 의대 정원 확대 등을 문제 삼으며 코로나19 위기의 정점에서 파업에 들어간 의사들의 진정성을 시민들이 얼마나 느낄까?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신실성(Sincerity)과 달리 진정성(Authenticity)은 타인 존중을 전제로 하며, 때로 인정까지 필요로 한다.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게 되면 도덕적 정당성도 흔들린다.
국가적 재난에서 정부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건 시민들이 정책의 잘잘못을 몰라서가 아니라, 전례없는 위기에 힘을 모아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힘줄을 세워야만 밥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재난은 한 사회의 그늘진 곳이 어디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안고 갈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에 어떤 후유증을 남길까.
시민사회가 이런 어젠다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야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터인데, 지금 전후좌우 사방팔방이 암담하다. 참,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