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동부 르비브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들이 28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공격에 대비한 위장 그물을 만들기 위해 천을 찢고 있다. 르비브|AP연합뉴스
미국, '핵전쟁' 가능성 없다면서도 푸틴 의도 분석에 촉각
서방서 ‘군사 대치 없다’ 선 그었지만
러 ‘공격적 언사’ 이유로 핵무기 언급
“장기전 양상·금융제재로 초조” 분석도
미국과 서방은 핵무기 운용부대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와 러시아의 실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예상보다 강력한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서방의 제재에 직면한 푸틴 대통령이 서방을 위협하고 전 세계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려는 의도로 핵무기를 언급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어떤 식으로든 핵무기 사용을 위한 준비 태세를 끌어올린다면 실수나 오판으로 인한 핵무기 발사 위험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의 핵무기 운용 부대 경계 태세 강화 지시를 규탄하면서도 핵무기 대결 구도로 흐르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데 주력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취재진으로부터 ‘미국인이 핵전쟁을 걱정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 수사(레토릭)를 줄이고 긴장을 완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우리는 푸틴 대통령의 발표를 검토·분석하고 있지만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미국의 전략적 억지 태세와 미국 본토, 그리고 동맹국 및 우방국들을 지킬 역량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TV연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최고 당국자들의 러시아에 대한 공격적인 언사를 거론하며 국방장관과 총참모장에게 러시아군 억지력 부대에 전투 경계를 내릴 것을 지시했다. 서방 언론들은 일제히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운용부대에 전투 경계 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해석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다음날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전략로켓군, 북해·태평양함대, 장거리항공사령부 등 3개 부대가 준비태세 강화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다만 전투 경계 태세 강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핵무기 운용부대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하고 나온 맥락이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규탄하고 강력한 경제 제재를 단행하면서도 러시아군과 군사적으로 직접 대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관되게 선을 그어 왔다.
이처럼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반격 가능성을 명확하고 일관되게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은 ‘나토 최고 당국자들의 공격적인 언사’를 이유로 핵무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
러시아가 2020년 기존의 핵 선제 불사용 원칙에서 벗어나 러시아의 존재를 위협하는 비핵 공격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새 억지 전략을 채택하긴 했지만 공격적인 언사에 핵무기로 대응한다는 것은 위협의 강도에 있어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적이 핵 공격을 가할 경우 적의 핵무기가 도달하기 전 또는 도달한 후 남은 보복력을 이용해 상대방도 전멸시키는 상호확증파괴(MAD)를 전략으로 채택했다.
한쪽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상대방이 핵무기로 보복함으로써 양쪽 모두 전멸이 확실시 된다는 것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과 베를린 봉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1969년 중·소 국경 분쟁,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1999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등 역사적으로 핵무기 보유국들이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면서도 실제 핵전쟁까지 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키 대변인은 “모두가 그것(핵전쟁)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카드를 위협한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 대한 초조함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군과 시민이 힘을 합쳐 주요 도시에서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고, 서방은 러시아에 신속하고도 강력한 제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의 지시는 자신이 핵무기를 갖고 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서방을 위협하고,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그간 러시아 억지에서 거둔 성공으로부터 관심을 딴 데로 돌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상황 파악과 판단 능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제임스 클래퍼 전 미 국가정보국장(DNI)은 CNN방송에서 “개인적으로는 그가 불안정한 상태라고 생각한다”면서 “그의 판단력과 균형감각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래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 역시 뉴욕타임스에 공격적 언사를 이유로 세계 최대 핵강국이 핵무기를 들먹이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서 “푸틴의 현실 파악력이 느슨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를 더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러시아 선임 국장을 지낸 피오나 힐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수단이 있으면 언제나 그것을 사용하려고 했다”면서 그간 서방이 “설마 그렇게 할까”라고 반신반의할 때마다 푸틴 대통령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재중 특파원

북한이 지난달 30일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과 이 미사일이 찍은
지구의 사진.사진=평양 노동신문 캡처
푸틴의 핵위협 카드와 북한 핵...한국의 대응은 어떻게
푸틴 '핵 폭탄' 에 MAD 기제로 핵보유국 지도자들 합리적 행동 필요...
北 바짝 다가선 핵 완성 대응에 韓 확장억지 틀에서 '핵 공유' 추진 필요
미국과 EU가 “금융핵폭탄”이라고 불리는 '국제 금융 결제망(SWIFT)' 배제를 꺼내 들자 러시아 푸틴이 국제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실제 '핵폭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같은 핵위협 발언은 ‘공포의 균형’을 깰 수 있는 심각한 사안으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SWIFT는 200여 개국 1만1000여 금융기관이 이용하는 국제 송금·결제 시스템이다. SWIFT에서 축출되면 러시아는 달러 결제가 안 돼 최악의 경우 원유, 천연가스 수출이 중단되고, 중앙은행의 보유 외환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없게 된다.
2월 2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러시아 전략로켓군 등 핵무기를 운용하는 핵 억지력 부대에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핵전쟁 위협'으로 핵보유국 5개국 금기 깬 러시아,
우크라이나 서방개입 강력 압박...
북한도 핵 완성 바짝 다가서
이 같은 러시아의 핵 위협은 침공 나흘째 접어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쳐 당황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지도부에 대한 강력한 압박뿐 아니라 미국과 EU 그리고 다른 국가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절대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다.
러시아의 핵 공격 위험을 감수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사적으로 연루되고 싶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노림수는 미국과 다른 나토 동맹국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기로 했지만, 앞으로 전황이 악화하더라도 군사적으로 직접 개입하려는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압박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합법적인 핵보유국은 핵무기에 대한 규범을 지킬 의무가 있다. 선제적으로 핵 위협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는 국가는 미, 중, 러, 영, 불 5개국으로 NPT는 이들 국가의 핵 보유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물론 이들 5개국이 이러한 선제 불사용 원칙을 국내법적으로 문서화할 의무는 없었다.
실제로 냉전 시기에 핵보유 국가들이 내부적으로는 재래식 공격에도 핵으로 대응하겠다는 교리를 갖고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냉전 시기에도 미국과 구소련은 핵 선제 사용 불가침 원칙에 실질적으로 합의했고 이행해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푸틴이 이러한 금기를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도 27일 쏜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공정계획에 따른 중요시험"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북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국가우주개발국과 국방과학원은 27일 정찰위성개발을 위한 공정계획에 따라 중요시험을 진행하였다"고 전했다.
미사일이 아니라 정찰위성 개발 시험을 위한 '발사체'를 쐈다는 주장이다.
신문은 "중요시험을 통하여 국가우주개발국과 국방과학원은 정찰위성에 장착할 촬영기들로 지상 특정지역에 대한 수직 및 경사촬영을 진행하여 고분해능촬영체계와 자료전송체계, 자세조종장치들의 특성 및 동작 정확성을 확증하였다"라며 "이번 시험은 정찰위성개발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시험으로 된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올해 1월에만 극초음속미사일을 포함해 탄도미사일 6차례, 순항미사일 1차례 등 지난달 30일까지 모두 7번의 미사일 무력 도발을 감행한 데 이어 베이징동계올림픽 기간 주춤하는 듯 보였으나 28일 만인 2월 27일에 올 8번째 도발에 나선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 2018년부터 핵실험·ICBM 시험발사 유예, 모라토리엄을 유지해 왔으나 지난달 19일 이러한 조치의 철회를 시사한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뉴스1
■러의 핵카드엔 MAD 기제로 핵보유국 지도자들의 합리적 행동 필요,
북핵엔 한국 확장억지 틀에서 '핵 공유' 추진...
김재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크라이나의 항전과 미국, EU를 위시한 국제사회의 제재 대응은 러시아 푸틴 자신이 초래한 것"이라며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로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먼저 전쟁을 일으킨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미국과 EU 등 서방국들은 직접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경제 제재와 무기 지원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핵 카드를 꺼내 들며 '핵전쟁을 위협'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핵 보유국인 러시아가 해서는 안 되는 너무 과도한 대응"이라고 짚었다.
북한도 결국 인공위성발사 기술과 ICBM 발사 기술은 동일하기 때문에 '모라토리엄'을 철회하고 레드라인 넘었다는 비난을 회피하면서 남한을 복속시키기 위한 '핵무기 실전배치 및 핵보유국 공식화'"라는 명확한 목표를 달성 과정으로 핵 완성에 바짝 다가서는 핵 투발 수단의 다종화·다변화를 가속화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이어 "러시아의 핵 위협 상황을 기회삼아 북한과 같은 국가는 '핵 굳히기'에 나설 것이고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자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을 수 있다"며 "핵에는 결국 핵으로 맞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우려했다.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르지만 핵에 맞서 핵 위협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2차 핵 보복 공격력을 포함한 핵무기 능력을 보유하는 것인 가장 확실한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김 교수는 또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국가는 미국으로부터 제공받는 '핵 억지'를 보다 확실히 해야 한다"며 "미국의 핵억지력의 신뢰도를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 ‘확장 억지’의 틀 안에서 미국과 '핵 공유' 프로그램을 추진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 교수는 "최근 푸틴은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고 고의적으로 ‘매드맨 전략’ 즉 미치광이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푸틴의 핵 협박은 협박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지만 혹시라도 진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구심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상호 핵 억지가 작동하려면 '상호확실공멸(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의 기제로 핵보유국의 지도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핵실험 장면.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무기들을 특성적으로 구분하면 크게 2종류로
나뉠 수 있다.
'potential-kill'이다. 자료=네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