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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Handel'의'Hallelujah' (할렐루야')

 

서양음악 뒷담화 1

헨델의 '할렐루야'

글쓴이 '나무'


작년 어느 날 오후, 그날따라 집이 적막해서 라디오를 켜 두었는데, ‘우리에게 한 아기 나셨도다’(For unto us a child is born)와 ‘할렐루야 코러스’(Hallelujah)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전야였다.


일반적으로 가장 흔히 연주되는 유형의 예. 2004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 공연.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 - 할렘 가스펠 합창단, 앙드레 리외(Andre Rieu) 지휘.

 

교회에서 성가대가 할렐루야를 합창하기 시작하면 몇 사람이 주섬주섬 일어난다. 그리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어나, 이게 전통이야.”


1742년 더블린의 자선 음악단체인 필하모니아 협회가 헨델에게 작품을 의뢰할 당시 헨델은 파산 상태였다. 헨델은 병든 몸을 이끌고 먹지도 자지도 않고 단 24일 만에 미친 듯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메시아가 1, 2, 3부를 통틀어 53곡에 이르는 대작임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전설이라고 할 밖에.


대개 이 일화는 메시아라는 작품을 설명할 때, 이 작품의 훌륭함을 뒷받침하는 배경으로 덧붙여지는 코멘트이다. 하지만, 잠깐 의심해보자. 헨델을 사로잡았던 놀라운 힘은 단순히 순수한 음악적 창작열이나 메시아라는 작품에 대한 강한 영감, 신에 대한 뜨거운 헌신의 표현이었을까. 혹시 가진 것이라고는 재능밖에 없는 한 인간의 절망의 순간에 끌어낸 혼신의 힘은 아니었을까.


당시-음악사에서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궁정을 중심으로 무위도식하는 귀족들의 사교생활의 중요한 요소였다. 젊은 시절의 헨델은 하노버 선거후의 궁정악장으로 있었는데, 휴가기간에 잠시 런던에 가서 자신의 오페라를 연주하게 된 모양이다. 런던에서 자신의 음악이 ‘먹힘’을 알게 된 야심 가득한 청년 헨델은 몇 년 뒤 또다시 휴가를 내 런던으로 갔다가 아예 영국 앤 여왕의 왕실 작곡가로 정착하고 만다. 하노버 선거후에게 양해도 없이.


하지만 공교롭게도 몇 년 뒤 죽은 앤 여왕의 뒤를 이어 영국의 왕 조지 1세가 된 것은 바로 헨델의 전 주인 하노버 선거후였다. 자기를 엿 먹인 헨델이 고와 보일 리 없는 새 왕 조지 1세. 궁정 음악가 자리가 위태로워진 헨델은 왕이 물놀이를 하느라 한층 기분이 좋아진 틈을 노려 자신이 얼마나 이태리 최신 유행(당시에도 유행은 이태리나 파리에서 시작되었다)에 통달한 작곡가인지, 얼마나 우아하고 화려한 궁정 생활에 딱 맞는 사람인지를 자신의 음악으로 증명해 보인다. 그 음악이 음악교과서에 헨델의 대표작으로 나오는 ‘수상음악’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왕은 또 바뀌었고 정치적 세력판도가 변해갔다. 조지 2세는 헨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나 보다. 물 건너온 이태리 최신 유행이었던 헨델과 그의 오페라는 한물간 구닥다리가 되었다.


하지만 헨델의 회심의 역작 <메시아>는 더블린 초연에서 대단히 성공하였다.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를 예언하는 내용과 탄생을 다룬 1부와 예수의 수난과 속죄를 다룬 2부, 그리고 예수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내용으로 하는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유명한 합창곡 할렐루야는 2부의 마지막 곡으로, 예수가 수난을 겪었다 하여도 여전히 왕의 왕임을 강하게 선포하는 곡이다.


              이 깜찍한 비디오 클립을 주의 깊게 봐주시길.

 

더블린의 성공에 힘입어 1742년 헨델의 <메시아>는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조지 2세를 모시고 다시 연주되었다. 이 런던 초연에서 조지 2세는 ‘할렐루야’ 곡이 연주될 때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기립하여 박수를 쳤다고 한다. 흔히 말해지는 그 ‘기립의 전통’. ‘할렐루야’에서 계속 반복되는 절정 부분의 가사는 이렇다.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and he shall reign for ever and ever, Hallelujah!


조지 2세에게 이 가사가 얼마나 감격적이었을까는 능히 상상이 가는 일이다. 그리고 이 곡으로 헨델이 완전히 재기에 성공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위대한 작곡가로 그 이름을 남기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 이제는 기립하지 말자.


헨델이 이 곡에 걸었을지도 모르는 세속적 희망은 이 곡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불온한 태생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지만, 반면 이러한 세속성과 대중성은 ‘할렐루야’ 코러스가 이때까지 살아남아 가장 자주 연주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반복되는 ‘할렐루야’의 음표 네 개는 2돌 즈음의 손의준 군이 크리스마스 때 할머니 교회에서 한 번 듣고 와서 따라할 정도의 중독성을 자랑한다. 내가 감히 또 한 번 더 짐작컨대 18세기의 영국 상류층을 비롯해 시장 바닥에서도 이 멜로디가 흥얼거려졌을 것이다. 후반부에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부분은 성적인 엑스타시를 연상케 한다(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태클 걸지 마시랍!)


 

king이 누구인지, he가 누구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조지 2세는 자기라고 여겼을 것이고, 누구는 신으로, 또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존의 질서에 대한 찬양으로 불려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 유투브에서 찾은 의외의 클립이다. 이 버전에서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부분이 얼마나 애매하게 연주되는지를 들어보라. 마치 물음표가 붙은 것 같은. 과연 king은 누구인지.


마지막 보너스. ‘할렐루야’의 가장 세속적인 버전이 제일 위의 동영상이라면, 이 동영상은 고귀한 버전이다. 이 곡은 헨델의 장례식 때 불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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