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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名言의 비결 / 金泰完

[名言의 비결] 기자가 만난 명언들

 

“촌철살인으로 자신과 타인을 변화시키는 말”

 

글 : 金泰完

 

⊙ 명언은 대결이어야 더 빛나… 자신과 세상과의 不和, 神과 죽음과의 대결이 감동을 자아내

⊙ 명언은 낯설어야 하고 상식을 깨는 표현이어야… 상투적이면 감동의 무게도 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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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와 오효진 기자.

“밴드가 초죽음(초주검)이 되도록 연습한다”

 

 

명언(名言)의 사전적 의미는 ‘이치에 들어맞는 훌륭한 말’이다. 《명언명구선》(名言名句選)의 저자 정현수(鄭玄秀)씨는 “건방 떨고 오만한 사람에게는 경청과 겸손을, 슬픔과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재기의 등불을 선사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좋은 명언이란 촌철살인(寸鐵殺人)이 촌철활인(寸鐵活人)으로 변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변화시키는 말이다.

 

그렇다고 꼭 멋들어진 말일 필요는 없다. 가왕(歌王)으로 꼽히는 나훈아는 《월간조선》 오효진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밴드가 초죽음(초주검)이 되도록 연습한다”는 것이다. ‘초죽음(초주검)’과 ‘연습’의 행간 사이에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명언은 자신의 삶을 담고 있어야 한다. 나훈아의 말이다.

 

“저는 절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아주 보통 사람입니다. 지방에 공연을 가면 가수들이 거의 연습을 하지 않는답니다. 저는 밴드가 초죽음(초주검)이 되도록 연습을 합니다. 그러면 밴드들이 ‘다른 가수들은 악보만 갖다주고 그냥 무대에 올라갑니다. 그럼 그냥 하는데예’ 그래요. 그럼 나는 이럽니다.

‘이 사람들아 그런 가수들은 노래를 잘해서 그래도 되지만 나는 노래를 못하니까 연습을 해야지!’

그러면 아무 소리도 못 해요. 이렇게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하는 겁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몇 년 전 첼리스트 장한나를 만났더니 “연주란 스승의 토대 위에 집을 짓는 행위”라고 했다. 나훈아의 ‘초죽음(초주검) 연습’과 또 다른 버전이다. 그녀는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 최우수상을 타면서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로스트로포비치와 마이스키 등에게 사사했다. 흔히들 요즘 세태를 빗대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스승만 한 나침반은 없는 법이다.

 

 

“연주란 스승의 토대 위에 집을 짓는 것”

 

 

첼리스트 장한나.

“연주란 스승의 토대 위에 집을 짓는 행위”

 

 

“스승이 지은 토대 위에 내가 집을 짓고 벽을 쌓으면 다음 세대가 지붕을 얹는 것이죠. 쇼스타코비치나 로스트로포비치는 첼로의 개척자였지만 저는 그분의 연주를 보고 배웠습니다. 진정 스승을 닮고 싶다면 스승을 딛고 일어설 줄 알아야 합니다.”

 

기자는 스승과 관련한 또 다른 명언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백순근(白淳根) 원장(서울대 교육학과)은 “스승이 안내하는 길은 신호등이 있는 길과 같다”고 말했다. 언뜻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스승을 믿고 따르면 신호등처럼 안전하게 목적지(꿈)에 다다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백 원장은 고1 때 만난 강흥일 국어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선생님은 첫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시를 다 외워 오라는 숙제를 냈다. 시 외는 일이 쉽지 않은데다 교과서 시를 죄다 외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백 원장은 “선생님이 학생에게 불필요한 일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기에 열심히 외웠다.

 

일주일이 지나 돌아온 국어 수업시간. 선생님은 숙제검사를 하겠다며 학생 한 명씩 시를 외웠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아예 한 편도 못 외웠고, 잘하면 겨우 한 편 정도에 그쳤다. 그가 교과서에 나오는 수십 편의 시를 모두 외자,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 자신도 매우 놀라는 듯했다.

 

 

한국교육개발연구원 백순근 원장.

“스승이 안내하는 길은 신호등이 있는 길과 같다”

 

 

강 선생님은 “다 외우는 학생이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외우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낸 숙제였다”고 했다. 아울러 “오랜 교사생활을 하면서 같은 숙제를 내줬지만 실제로 시를 다 외운 학생은 처음”이라며 흐뭇해했다. 백 원장의 말이다.

 

“그날 이후 저는 국어 과목을 좋아하게 됐고 시가 그러하듯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게 됐답니다. 혼자서 바른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고, 신호등이 없는 길을 건너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스승이 안내하는 길은 신호등이 있는 길과 같아요. 스승을 가슴에 품기 전에는, 또 스승을 믿고 따르기 전에는 공부 목표에 다가설 수 없어요.”

 

반면 소설가 헤밍웨이(1899~1961)는 “인생에 신호등이 없다”며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들에 신호등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스승을 찾지 못했는지 모른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

 

 

故 장영희 교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

 

명언은 대결이어야 더 빛난다. 자신과 세상과의 불화(不和), 그리고 신과 죽음과의 싸움은 한계를 뛰어넘는 구도자의 모습과 닮았다. 이 과정에서 나온 ‘알갱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기자는 고(故) 장영희(張英嬉) 교수를 생전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를 한 기억이 있다. 인터뷰에서 듣게 된 가장 인상 깊은 말은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였다. 이 말은 2009년 9월 척추암 판정을 받고 3년간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북 칼럼을 접어야 했을 때 한 말이기도 하다.

 

장 교수는 생후 한 살 무렵부터 앓은 소아마비로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야 했던 1급 장애인이었다. 심지어 유방암·척추암 판정을 받고 오래 투병을 했다. 병마(病魔) 속에서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고 세상을 긍정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

 

“몇 년 전 하버드대 방문 교수 자격으로 보스턴에 있을 때 우연히 유방암이 발견됐어요. 두 번 수술을 받고 귀국했을 때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어요. ‘음, 역시 장영희는 달라. 남들은 무서워 벌벌 떠는 암을 이렇게 초전박살 내다니…’하고요.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저는 믿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저는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던 그녀는 2009년 5월 9일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떠난 이튿날 다섯 번째 수필집이자 유작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출간되었다. 다음은 책의 내용 중 일부다.

 

<…이 세상에서 나는 그다지 잘나가지도 또 못나가지도 않은 평균적인 삶을 살았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다지 길지도 않은 짧지도 않은 평균수명은 채우고 가리라. 종족 보존의 의무도 못 지켜 닮은 꼴 자식 하나도 남겨두지 못했는데, 악착같이 장영희의 흔적을 남기고 가리라.…>

 

 

故 김영태 시인.

“죽음은 재생을 위한 불가피한 침전,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이다”

 

 

2007년 7월 12일 세상을 떠난 시인 김영태(金榮泰) 선생은 생전 인터뷰에서 죽음을 ‘재생을 위한 불가피한 침전’이라며 이런 말을 남겼다.

 

“화상(畵像)이 눌인(訥人)인데 아무도 쳐다보는 이 없습니다. 이젠 가지고 갈 짐도 많지 않고, 다 버렸으니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죽음조차도 추하거나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닌, 재생을 위한 불가피한 침전,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로 보고 싶습니다.”

 

기자와 만날 당시(2006년 5월) 그는 암 투병 중이었다.

평생 시와 그림, 춤 비평의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사시사철 춤 보러 다니고’, ‘아름다움을 훔치던 사람’인 그도 어딘가 목소리가 떨리고 음색이 어두웠다. 그는 “난 이미 칠 벗겨진 사람이지만 주어진 운명을 색칠하다 간 칠장이로 남고 싶다”고도 했다.

 

 

[새해에 힘이 되는 명언들]

 

“미치광이와 不適應者가 세상을 바꾼다!”

 

? “미치광이, 부적응자, 반역자들, 말썽꾸러기들, 네모난 구멍에 박힌 동그란 못들.

 세상을 다르게 본 사람들 만세! 그들은 정해져 있는 룰을 좋아하지 않는다

(Here's to crazy ones. the misfits. the rebels. the troublemakers, the round pegs in the square hole. the ones who see things differently. they are not fond of rules).”

- 스티브 잡스

 

? “당신의 최고 걸작은 무엇인가?”

“next one(다음 작품이다).”

- 찰리 채플린

 

? “앞으로 20년 후에 당신은 저지른 일보다는 저지르지 않은 일에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 항해를 떠나라.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고 탐험하고 꿈꾸며 발견하라.”

- 마크 트웨인

 

? “과거의 당신이기를 멈추고 당신 자신이 돼라(Stop being who you were and become who you are).”

- 코엘류

 

? “일을 하는 데 있어 2년이 되면 재검토하라. 5년이 되면 의심하라. 10년이 되면 버려라.”

- 펄만

 

? “영어의 행복이란 단어 happiness는 본시 옳은 일이 자신 속에 일어난다는 뜻을 가진 happen에서 나온 말이다. 행복이란 글자가 가진 뜻과 같이, 행복은 그 사람의 올바른 성과이지 우연히 외부에서 찾아온 운명의 힘은 아니다.”

- w. 메닝거

 

? “개인적인 성공에는 모델이 없다. 타인의 위엄에 눌려 그를 모방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일에 대하여 자신만큼 그 일을 잘하지 못한다.”

- 로버트 h 슐러

 

 

“낙반사고를 당한 광부처럼”

 

 

소설가 이제하.

“쓰고 싶어 썼나, 거기에 전부 투여했나가 중요하다”

 

 

명언은 예상을 뛰어넘어야 좋다. 그저 흔한 소리라면 호소력도 없고 잊히기 쉽다. 단편소설의 명수였던 발자크(1799~1850)도 저절로 펜 끝에서 주옥같은 글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짜며 문장을 모질게 학대하고 글을 썼던 것이다. 발자크는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마치 낙반사고로 갇힌 광부가 목숨을 걸고 괭이를 휘두르듯이 창작활동을 했다.”

 

발자크가 무너진 광산에 갇힌 광부처럼 ‘괭이를 휘둘렀다’(소설을 썼다)고 상상하기 어렵다.

《보바리 부인》을 쓴 프랑스 소설가 플로베르(1821~1880)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가 남긴 말이다.

 

“몸이 아파서 초조한데다, 하루에 몇백 번씩이나 격심한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진짜 노동자처럼 괴로운 작업을 계속하였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이나, 눈이 내리거나 우레가 치거나 마치 망치를 내려치는 직공처럼 일하였다.”

 

시대를 빛낸 소설가조차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글을 쓴 것이다. 대가(大家)들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범인(凡人)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시와 소설, 동화, 그림은 물론 노래까지 불러 가수로도 데뷔한 이제하(李祭夏) 선생은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쓰고 싶어 썼나, 거기에 전부 투여했나가 중요하다”고 고백했다. ‘전부 투여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에 눈길이 쏠린다.

 

?한 사람이 많은 재능을 갖기 힘든 일인데, 무슨 비법이 있나요.

 

“재주가 많아서가 아니라 먹고살려고 한 일이지. 나는 재주라는 걸 믿지 않아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그리고 싶어 흔적 남기는 게 그림이죠.

완성된 작품 틀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 나이에 깨달았어요. 소설도 ‘쓰고 싶어 썼나, 거기에 전부 투여했나’가 중요합니다. 소설의 구조는 간단하고 거의 똑같아요. ‘얼마나 진심을 갖고 표현하고 전력을 다했나, 고통스런 흔적이 있느냐’가 중요하죠.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넣거나 원하지 않는 키스신을 넣거나 하는 건 금방 보여요. 좋은 소설이 아니죠. 얼마나 부벼댔느냐가 중요합니다.”

 

 

역사평론가 이덕일.

“역사란 화려한 것만 좇기보다는 화려함의 이면,

시간의 관 뚜껑을 덮고 난 뒤에도 그를 기억하는 것이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사도세자의 고백》 등을 쓴 역사평론가 이덕일(李德一)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대중적인 역사서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필력은 우연한 성취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변변한 직장도 없었으나 독서실에 틀어박혀 대학노트에 자신만의 역사적인 호기심을 쉬지 않고 써내려갔다.

 

“저는 인생에서 많은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어요. 난관을 피해 돌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작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일관된 방향으로 도전한다면 끝내 작은 실패들은 성공의 재료가 됩니다.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1997년 처음으로 펴낸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쓰기 위해 낙향, 시골집 골방에서 긴 여름을 보냈다. 자신의 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비전도 없었지만 글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다. “라면을 먹으나 한정식을 먹으나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소소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책을 다 쓴 뒤 대학 도서관에 가서 두 달치 신문을 뒤져 출판사의 팩스번호를 가득 적었다. 그리고 책 목차를 적어 출판사 30여 곳에 팩스를 보냈다.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 그렇게 한 권의 책이 묶였다. 그는 “얼마 안 되는 인세를 받고, 이 길로 가도 밥 세 끼는 먹고살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을 다들 훌륭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겠느냐고 한다면 아무도 그러겠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다산이 힘들어할 때 당대 잘나가던 사람들을 오늘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것만 좇기보다는 화려함의 이면, 시간의 관 뚜껑을 덮고 난 뒤에도 그를 기억하는 것이 바로 역사입니다.”

 

 

‘거절을 많이 당할수록 물건 팔 확률이 높아졌다’

 

명언은 고통과 실패, 거절을 딛고 일어선 경험을 담는 글이면 금상첨화다. 그런 글은 읽는 독자에게 비관적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 관점을 갖게 한다. 또 무조건 짧은 문장일 필요도 없다. 지난해 1월 만난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인 차동엽(車東燁) 신부는 한 세일즈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의 말은 저서 《잊혀진 질문》에도 실려 있다.)

 

“불황이 한창일 때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판매원이 손님이 없어 울상인데 한 명만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는 손님이 필요 없다고, 안 산다고 손을 내젓는데도 전혀 낙담하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동료들이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어요.

 

‘거절을 많이 당할수록 물건 팔 확률이 높아졌다.’

 

그러니까 손님 10명이 구매를 거절하면 열한 번째 손님은 물건을 사간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 번 거절당할 때마다 ‘이제 아홉 번만 거절당하면 되겠구나. 이제 여덟 번만 거절당하면 되겠구나…’하고 말이죠.

 

세일즈맨으로 크게 성공해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낸 미국 작가 오그 만디노는 자신이 되고 싶은 상(像)을 벽에 써 붙이고 아침에 눈뜰 때마다 큰소리로 읽었다고 합니다.

 

‘슬퍼지면 소리 내어 웃자. 기분 나쁘면 곱빼기로 일하자. 두려우면 문제 속으로 뛰어들자. 열등감을 느끼면 새옷으로 갈아입자. 불안하면 고함을 두 번 지르자…’”

 

‘거절당하면 당할수록 물건 팔 확률이 높아졌다’는 말은 관점의 차이다. 사람들은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자기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관점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현실은 바꿀 수가 없다. 현실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

 

〈뜨거운 것이 좋아〉, 〈미스터 로보츠〉 등에 출연해 명성을 얻은 미국 코미디언 잭 레먼(1925~2001),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의 어록 중에서 자주 인용되는 명언이 있다.

 

“실패는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람을 망친다.”(잭 레먼)

 

자신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자신감이 붙는다. 성격이 행동을 만드는 게 아니라 행동이 성격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이 유용한 인재라는 자신감만큼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없다.”(카네기)

 

“가장 먼저 전투 현장에 들어가, 가장 나중 나오겠다”

 

명언의 조건 중 하나는 행동의 변화를 이끌거나 행동의 변화에서 나온 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추상적이고 모호하면 의미가 적어진다.

 

국방대 총장을 지낸 임관빈(林官彬) 국방부 정책실장을 만나 저녁을 같이한 일이 있다. 임 실장은 자신의 저서(《성공하고 싶다면 오피던트가 되라》)를 선물로 주었다. 책 내용 중에 행동과 관련한 말이 눈에 띄었다.

 

<…베트남 전쟁 시 아이드랑 전투에 참여했던 미군 무어 중령의 이야기를 극화한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라는 영화에 리더의 솔선수범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감동적 장면이 나온다. 무어 중령은 제7기갑연대 1대대장으로 임명되어 베트남으로 떠나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이제 전투하러 떠납니다. 나는 제군들이 살아서 돌아오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맹세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장 먼저 전투 현장에 들어갈 것이고(first in), 가장 나중에 그곳을 나올 것입니다.(last out)”

 

무어 중령은 이렇게 말하고 늘 진두에서 지휘함으로써 부하들은 그를 전적으로 믿고 따랐다.…>(p118~119)

 

임 실장은 기자에게 이런 말도 했다.

 

“많은 사람은 흔히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공의 본질을 잘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의 본질은 자기와 싸워 이기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노력의 99%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은 부정적인 나, 게으른 나, 열정이 없는 나, 쉽게 포기하는 나와 끊임없이 싸워서 이길 때 비로소 할 수 있어요.”

 

인생의 전환은 ‘어느 날 갑자기’의 결심에서 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전환의 성공은 ‘갑자기’가 ‘꾸준히’로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실행하지 않는다. 너무나 지루하기 때문이다. 지루함을 견디어내면 성공처럼 확실하고 쉬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하룻밤 사이에 성공하는데 20년이 걸렸다(It takes twenty years to make an overnight success).’(조용상 著, 《생존력》 중에서)

 

‘지금 선택하라. 비평가보다 행동가가 되어라.’(웨인 W. 다이어 著, 《내 인생 내가 선택하며 산다》 중에서)

 

 

“You never know until you try!”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도전해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You never know until you try!)”

 

 

기자가 만난 명언 중에 잊히지 않는 말이 하나 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崔在天) 석좌교수의 ‘도전해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You never know until you try!)라는 말이다.

 

최 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 4학년 때 하루살이를 연구하러 내한(來韓)한 미국 유타대 교수를 만나 인생행로를 180도 바꿨다. 당시 그는 일주일간 미국 교수의 조수 역할을 맡아 “지도를 펼쳐놓고 그냥 좋은 강물, 개천을 안내했다”고 한다. 미국 교수는 차를 몰고 가다가 개울만 보이면 차에서 내려 뛰어들었다.

최 교수가 신발과 양말을 벗을 동안 그는 신발을 신은 채 첨벙첨벙 개울로 뛰어들었다. 할 수 없이 그도 신발을 신고 개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 교수가 떠나기 전날 그는 “도대체 무슨 할 일이 없어서 한국까지 와서 생고생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 교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하루살이를 채집하러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한국이 102번째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좋은 집에서 살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학교에 가기도 하고, 플로리다 바닷가엔 별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저는 그 유타대 교수를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그냥 넋 놓고 있는데 천사가 억지로 제 마음을 흔든 건 아니에요. 길을 찾느라 나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분이 나타났기 때문에 알아본 것이지요. 천사는 늘 우리 삶에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다만 찾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지요.”

 

그날 최 교수는 “선생님처럼 되는 게 꿈인데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하고 물었다. 미국 교수는 미국 대학 유학방법을 일일이 적어주며 9개 대학을 꼽아주었다. 하버드대를 1순위로 꼽은 뒤 “하버드대 생물학과 에드워드 윌슨 교수 밑에 가면 참 좋은데…”하더니 그를 곁눈으로 보면서 “그게 꼭 가야 하는 건 아니다”고 얼버무렸다. 최 교수는 턱걸이로 서울대를 졸업한 뒤 펜실베이니아주립대로 진학했고 결국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합격, 윌슨 교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공부와 관련된 가장 극적인 순간을 하버드대 입학으로 꼽았다.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곳이었는데 정말 운 좋게 된 겁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미국 친구들도 ‘어떻게 감히 그런 곳에 도전을 하느냐’고 저를 참 겁없는 놈이라고 했어요. 저는 그렇게 얘기하는 친구에게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네가 해준 말이 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말한다고.

You never know until you try(도전해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도전해 본다고 말했는데 막상 붙고 나니 그 친구가 저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더군요.”

 

...

 

 

[명언, 자기서사의 심리학]

 

偉人의 警句가 아닌 나만의 소박한 이야기

 

명언은 남의 말이 아닌 자기 이야기여야 더 가치가 있다. 명언은 누구나 삶에서 꿈꾸는 ‘홀인원’에서 나온다. 단 한 번의 샷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린의 홀 컵에 공을 집어넣기란,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원 샷’의 자기 이야기를 심리학에서는 ‘자기서사(自己敍事)의 심리학(narrative psychology)’이라 부른다. 그렇다고 꼭 특정 사건이나 성취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생각도 이야기(명언)가 될 수 있다. 내가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 말이다.

어려운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데, 내가 나 자신과 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문화심리학자 비고츠키(Vygotsky)는 생각을 ‘내적 언어’라 불렀다.

 

현대 사회는 모든 사람,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대서사(grand narrative)’를 단호히 거부한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나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 같은 ‘거대 담론’은 평범한 일상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대신 개인이나 소집단에 초점을 맞춘 ‘소서사(little narrative)’에 관심을 둔다. 아기자기한 나와 우리 이야기, 이웃과 내 지역의 소박한 체험, 빈곤과 환경의 이야기 말이다. 이러한 입장을 철학에서는 ‘통약불가설(通約不可說)’이라고 부른다.

 

각기 다른 개념적 틀에 의해 다르게 파악된 세계와 사물에 대한 인식, 즉 진리와 지식은 어느 것이 더 옳은 것인가를 비교, 평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오늘날 명언은 위인전에서 나오는 ‘위대한 일생’의 경구(警句)가 아니라 작은, 나만의 소박한 이야기다.

 

...

 

 

 

“젊은 사람들은 도덕 변비증에 걸린 것 같다”

 

 

한국천주교 정진석 추기경.

“못난 사람이라야 신부가 된다”

 

 

명언이 사람의 머릿속에 박히기 위해서는 낯설어야 하고 상식을 깨는 표현이어야 한다. 상투적이면 그만큼 감동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법이다. 또 그 표현이 삶의 역설과 닿아 있어야 한다.

 

한국천주교 정진석(鄭鎭奭) 추기경을 만난 것은 2006년 1월. 그와의 인터뷰 중 “못난 사람이라야 신부가 된다”는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그 말은 정 추기경을 신학교로 보내준 신부님이 귀청에 거듭 새겨준 말이라고 했다.

 

“유대인에게 걸려 넘어짐이 되고 외교인(外敎人)들에게는 어리석음이 되신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선전하려고 나선 저는 미련한 자임이 분명합니다. 무릇 유한한 가치를 몽땅 버리고 구원의 품에 안겨 파릇파릇한 새싹을 싸늘한 수의(壽衣)로 휘감은 뜨거운 송장의 길을 스스로 택한 저는 어리석은 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대전에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세속에 어리석은 자로서 불리었음을 하느님께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소설가 김훈(金薰)씨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젊은 사람들은 도덕에 대해 변비증에 걸린 것 같다”는 말도 역설적인 명언에 가깝다.

 

 

소설가 김훈.

“우리 젊은 사람들은 도덕에 대해 변비증에 걸린 것 같다”

 

 

김훈은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의 싸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도덕적인 똥을 싸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거요. 그런데 똥이 안 나오는 거요. 그러니까 똥에 갇혀가지고 쌀라고 낑낑대고 있는 거요.”

 

?예컨대….

 

“진보와 보수의 싸움 있잖아요. 다들 자기가 도덕적인 밥을 먹고 도덕적인 똥을 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변비에 걸린 거죠. 똥이 안 나오는 겁니다. 인간의 삶이란 진보와 보수로 구별되는 게 아니죠. 뒤섞여 있어서 아주 복잡한 것이지요. 그걸 어떻게 흑백으로 구분합니까?

밥그릇을 계급 사이에 노나(나눠) 먹으면 진보고(도덕적이고) 혼자 먹으면 썩어 빠진 수구 반동이다, 이런 얘기잖아요.”

 

급기야 그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말은 개소리”라고 일갈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아니, 도스토옙스키가 인간을 구원해? 난 문학이 구원한 인간은 한 놈도 본 적이 없어! 하하.”

 

 

그 밖의 명언들

 

 

“오래 걸려 나를 다 치우고 나면 무엇이 먼저 무너져내릴 것인가.

나는 그것이 두려워 여태 이 벽돌 한 장을 나에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이병률, <오래된 사원> 중에서)

 

 

“인생살이, 그거 패키지 딜(일괄거래)이다.

기쁨, 슬픔, 즐거움, 괴로움… 한 묶음으로만 팔지 따로따로 살 수 없더라.”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기회는 어디에도 없다’(opportunity is nowhere)에서 단어 하나만 띄어 쓰면 ‘기회는 지금 여기에 있다’(now here)가 된다.”

(조용근 전 세무사회 회장)

 

 

“내 인생은 아주 멋진 이야기다.

그 어떤 착한 요정이 나를 지켜주고 안내했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안데르센, <내 삶의 이야기> 중에서)

 

 

“돈도 배경도 학벌도 스펙도 필요 없다. 6개월만 자기 일에 미쳐라. 반드시 인생이 바뀐다.”

(이희구 한국의약품 도매협회 회장)

 

 

“영어 단어 ‘불가능한(impossible)’에 점을 찍어보면 ‘I'm possible’이 된다. 하면 된다. 불가능은 없다.”

(건양대 총장 김희수)

 

 

“음악은 어디까지나 음악입니다. 결코 ‘철학’이나 ‘장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거죠.

돈 벌려고 저질로 가는 것은 용납될 수 없어요.

무슨 철학을 논하는 듯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는 스타일은 진정한 대중음악이 아닙니다.”

(음악인 신중현)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이 왔을 때 유신체제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나는 민주화의 전기(轉機)라는 밝은 전망을 갖고 양산 통도사 극락암에 가서 경봉(鏡峯) 스님을 뵙고 한시 한 수를 지어 올렸습니다.

풀이하면 ‘넓고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높고 높은 봉우리에 올랐네. 거기서 굽어보는 세상은 어느덧 가을이더라. 십 년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니 만 리에서 바람 불어 뱃전을 치더라’는 내용인데 이제 유신시대가 끝났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경봉 스님이 물음을 내립디다.

 

‘가을이드노?’

‘예, 가을입니다.’

‘가을은 어디로부터 오노?’

‘여름으로부터 옵니다.’

‘가을은 어디로 가노?’

 

경봉 스님의 물음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데 내 시는 겨울을 훌쩍 뛰어넘어 봄이었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봉 스님이 ‘겨울을 거치지 않고 어찌 봄이 오나!’하고 나무라십디다. 얼른 일어나 큰절을 올렸습니다. 경거망동할 때가 아니라는 가르침을 내린 것입니다.”

(고 김충렬 고려대 교수)

 

 

기자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월간조선》과 여러 책을 통해 명언을 만날 수 있었다. 명언은 가볍게 읽으면서 깊은 영혼의 울림을 주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하지만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누구나 읽고 나면 두고두고 생각이 나고 위로가 되는 짧은 글이 명언이다.⊙

 

 

/ 월간조선

 

 

 
Unspoken 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