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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 Mozart, La clemenza di Tito

Mozart, La clemenza di Tito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Tito: Michael Schade

Sesto: Vesselina Kasarova

Vitellia: Dorothea Röschmann

Annio: Elina Garanča

Servilia: Barbara Bonney

Publio: Luca Pisaroni

Wiener Staatsopernchor

Wiener Philharmoniker

Conductor: Nikolaus Harnoncourt

Salzburg Festival 2003

 



Franz Welser-Möst/Opernhaus Zürich 2005 - Mozart, La clemenza di Tito

 

 

모차르트의 오페라 22편 중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인 <티토 황제의 자비>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1791년 9월, 그러니까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마술피리>에 앞서 발표한 오페라입니다. 사실 <마술피리>와 <티토 황제의 자비>는 음악적으로 무척 다른 성격의 작품이지만, '철인(哲人) 군주의 관용'이라는 주제 면의 공통점 때문에 자주 비교되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대본작가 다 폰테와 함게 음악 면에서나 극 내용 면에서나 철저히 혁신적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를 발표했던 모차르트는 이 <티토 황제의 자비>에 이르러 다시 전형적인 18세기 오페라 세리아 형식으로 회귀했습니다. 1781년에 초연한 <이도메네오> 이후로 세리아를 작곡하지 않았던 모차르트로서는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다가 다시 퇴보한 셈인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답니다.

1790년,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 공연이 한창일 때 오스트리아 계몽전제군주 요제프 2세가 세상을 떠납니다. 황제가 서거했는데 희극을 공연할 수 없어 <코지 판 투테>는 10회 만에 막을 내렸죠. 모차르트에게 더 큰 타격은 그 뒤에 찾아옵니다. 새로 황제가 된 레오폴트 2세는 모차르트를 후원했던 요제프 2세와 달리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오폴트 2세의 귀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면이 있었던 모차르트의 음악보다는 치마로사나 살리에리의 음악이 훨씬 익숙하고 편안했습니다. ▶<티토 황제의 자비>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되었다.

당시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대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 레오폴트 2세는 보헤미아의 통치자이기도 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그의 대관식은 프라하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빈보다 더 모차르트를 사랑하고 인정했던 프라하는 대관식 축전 오페라를 모차르트에게 의뢰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티토 황제의 자비>였죠. 형편이 어려웠던 모차르트는 작곡료로 제시된 200굴덴이라는 큰 액수를 무시할 수 없어 이 일을 맡았고, 대관식에 어울리는 일종의 ‘용비어천가’를 소재로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레오폴트 2세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래서 고른 원작 대본이 군주의 덕성과 관용을 칭송하는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의 <티토 황제의 자비>였고, 형식은 당연히 진지한 ‘세리아’가 되어야 했습니다. 메타스타시오의 원작을 토대로 수많은 오페라 대본이 쓰였고, 모차르트의 <티토 황제의 자비>는 카테리노 토마소 마촐라의 대본으로 작곡되엇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2008 <티토 황제의 자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2세를 위한 ‘용비어천가’

티토(티투스)의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게 밀려난 비텔리우스 황제의 딸 비텔리아는 티토와 결혼해 다시 권력을 얻고 싶어 합니다. 티토 황제는 원정 중에 알게 된 현명한 유대 공주 베레니체(베레니스케)를 사랑하지만, 로마 여성과의 결혼을 원하는 로마 시민들의 뜻에 따라 베레니체와의 결혼을 포기하지요. 아들 같은 친구인 젊은 귀족 세스토(섹스투스)의 위로를 받은 티토는 세스토의 여동생 세르빌리아를 아내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스토는 세르빌리아를 사랑하는 자신의 친구 안니오에게 이미 여동생과의 결혼을 허락한 상황이었습니다.

난감해 대답을 못하는 세스토 대신 안니오가 나서서 황제에게 세르빌리아의 덕성을 예찬하며 황제의 결정을 옹호합니다. 그런 다음 세르빌리아에게 가서 황제의 뜻을 전하고 작별을 고하죠. 황후가 될 세르빌리아에게 “늘 하던 대로 ‘내 연인’이라 불러서 미안하다,”며 눈물로 사과하는 안니오. 그런 안니오에게 세르빌리아는 “당신은 내 첫 사랑이고 내 마지막 사랑”이라고 대답합니다. 두 사람이 부르는 이 이중창은 이 오페라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사랑스러운 음악입니다. 이제 세르빌리아는 황제 앞에서 당당하게 안니오와의 사랑을 밝힙니다. 티토 황제는 세르빌리아의 솔직한 태도에 감동받아 안니오와의 결혼을 허락하지요. 황제는 “아, 내 옥좌를 둘러싼 모든 사랑이 이 여인처럼 진실하고 신의를 지킨다면, 대제국을 다스리는 일도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 될 텐데...”라고 노래합니다.

이제 베레니체만이 아니라 세르빌리아에게까지 밀렸다고 생각한 비텔리아는 티토 황제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자신을 열렬히 숭배하는 세스토를 이용해 티토를 암살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 티토는 마침내 비텔리아와 결혼하기로 결정하죠.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비텔리아는 암살을 막으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세스토는 부하들을 시켜 로마에 불을 지르고 티토를 칼로 찌르지만, 실제로 칼에 찔린 사람은 티토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고 그 찔린 사람조차도 다행히 치명상을 입지 않아 살아납니다.

세스토는 절망감에 빠져 자살하려 하지만 안니오는 티토 황제가 죽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경비대장 푸블리오는 황제 암살 미수범으로 세스토를 체포해 감옥에 가두지요. 원로원은 세스토에게 사형을 선고하지만 티토는 세스토의 배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스토를 직접 만나 배후 없이 스스로 암살을 계획했다는 세스토의 거짓 진술을 듣고 배신감에 휩싸여 사형집행을 허락하는 서류에 서명합니다. 그러나 곧 자비심과 평정을 일었음을 후회하며 서류를 찢어버리지요..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황제의 분노와 절망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지만 차마 비텔리아를 배신할 수 없는 세스토. 황제를 향한 그의 애절한 노래 ‘예전의 사랑을 기억해주세요’는 이 오페라의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2013 드로트닝홀름 오페라 페스티벌(Drottningholm Opera Festival), 스톡홀름

한편 세스토가 끝까지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 사형을 당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비텔리아는 세스토를 희생시켜 가며 황제와 결혼하려 했던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낍니다. 결국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 비텔리아는 서글프고 비장한 아리아 ‘결혼의 꿈은 사라지고’를 부르죠. 그런 다음 콜로세움에 나아가 모든 것이 자신의 음모였다고 황제 앞에서 자백합니다. 황제는 놀라지만 세스토와 비텔리아를 다 용서하고 그들을 맺어주지요. 로마 시민들이 모두 티토 황제의 자비를 찬미하는 가운데 막이 내립니다.




James Levine/Wiener Philharmoniker 1980 - Mozart, La clemenza di Tito

Tito: Eric Tappy

Sesto: Tatiana Troyanos

Vitellia: Carol Neblett

Annio: Anne Howells

Catherine Malfitano as Servilia

Publio: Kurt Rydl

Wiener Staatsoper

Wiener Philharmoniker

Conductor: James Levine

Director: Jean-Pierre Ponnelle

Wien, 1980

Act 1


Act 2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둔 진보한 형식의 세리아

티투스 황제(AD 39-81)는 1세기 로마의 황제였던 실존 인물입니다. 유대 원정에서 만난 베레니케 공주를 로마로 데려와 결혼하려 했으나 로마 시민들의 반대로 돌려보내고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죠.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죽은 뒤 79년에 황제가 되자마자 베수비오 화산 폭발, 로마 대화재와 전염병과 싸우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티투스는 학문적으로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관용과 자비로 통치해 로마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황제였습니다. 역병을 퇴치하려 애쓰다 재위 2년 만에 41세로 생을 마감한 티투스 황제는 후세까지 크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등장인물들의 애매하고 기묘한 상호 관계와 심리 묘사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 오페라는 1800년 이전에는 <돈 조반니>, <마술피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기작이었으나, 19세기 후반부터는 오랜 세월 무대에서 거의 잊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로마 현지에서 촬영한 장 피에르 포넬의 영화판 연출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뒤 특히 21세기에 들어와서 훌륭한 공연과 영상물이 쏟아져 나오고, 지난해 201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도 새롭게 공연되는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역사상 실존 인물이었던 티투스(티토) 황제가 개선 행진을 하는 광경.

아버지와 아들처럼 혹은 연인처럼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티토와 세스토의 관계에서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로마 시대 남성들의 동성애적 성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도 역시 이 두 남자의 처절하고 불꽃 튀는 감옥에서의 대결 장면입니다. 세리아에서 흔히 카스트라토 주인공을 내세우는 전통에 따라 세스토 역을 남자 가수가 아닌 소프라노 또는 메조소프라노가 맡는다는 점도 각별하지요. 세스토는 <피가로의결혼>에 등장하는 미소년 케루비노와 비교되기도 하는데요, 타이틀롤인 티토보다 더 비중이 큰 세스토와 비텔리아는 모차르트 특유의 서정미와 유려함뿐만 아니라 감탄할 만한 가창 기교를 담은 아리아들을 노래합니다. 안니오 역 역시 소프라노나 메조소프라노가 노래합니다.

원래 대본작가 메타스타시오와 작곡가 칼다라가 1734년 황제 카를 6세의 영명축일 축전행사로 초연한 <티토 황제의 자비>에는 아리아가 25곡이나 들어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후기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세리아였죠.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들 아리아를 7곡으로 줄이고 새로운 아리아 4곡을 추가한 뒤 이중창 3곡, 5중창, 6중창, 합창 등을 작곡해 넣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연극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음악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치중한 새로운 스타일의 세리아가 탄생한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프라하로 가는 마차 안에서 작곡하기 시작해 18일 만에 마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모차르트의 속필을 과장한 소문이었고, 실제로는 4주에서 7주 정도가 걸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작고하지 않고 안니오와 세르빌리아, 세스토와 안니오의 이중창부터 시작했다고 하네요. 초연 날짜에 맞추기 위해 레치타티보 부분은 제자 쥐스마이어가 작곡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추천음반

[음반] 마크 패드모어/베르나르다 핑크/알렉산드리나 펜다찬스키 등.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RIAS 캄머 합창단, 르네 야콥스 지휘, 2006년 녹음

[DVD] 요나스 카우프만/베셀리나 카사로바/에바 메이 등.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프란츠 뵐저뫼스트 지휘, 조너선 밀러 연출, 2007년

[DVD] 미하엘 샤데/베셀리나 카사로바/도로테아 뢰슈만 등.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슈타츠오퍼 합창단,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마틴 쿠세이 연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2003년

[DVD] 에릭 타피/타티아나 트로야노스/캐롤 네블릿 등.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슈타츠오퍼 합창단, 제임스 레바인 지휘, 장 피에르 포넬 연출, 1980년

 

  출처 : 네이버캐스트 기획물 전체>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3.03.13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22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