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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백남옥(메조소프라노) - 사월의 노래(박목월 시, 김순애 곡)

 

 

 

 



 



 

소프라노 김주연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김순애

 

 

사월의 노래

김순애 곡 l 박목월 시 l 백남옥 노래

오래전에 봤던 한 드라마를 기억한다. 동생과 단둘이 살아가는 어린 여학생이 거친 세파를 뚫고 외롭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내용이었다. 제목도 기억이 안 나고, 또 그런 류의 이야기는 자주 보는 소재이니 별반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드라마 전편에 흐르던 가곡 ‘사월의 노래’ 때문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朴木月) 시인의 시에 작곡가 김순애(金順愛)가 곡을 붙인 사월의 노래는 많은 성악가들이 좋은, 또 좋아하는 가곡으로 내세우는 작품이다. 한국 가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가’ 풍의 선율이 아니면서도, 우리네의 애틋한 감성을 담고 있는 때문이다. 한국적인 선율과 정통 예술가곡의 전개를 잘 조화시켜 막힘없이 물 흐르듯 노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그윽한 목련의 향기로 다가오는 이 곡은 그러나 마냥 낭만에만 빠져 있는 곡은 아니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생생하던 1953년 4월, <학생계(學生界)>라는 잡지가 창간을 기념해 전쟁으로 절망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취지에서 청탁해 작곡된 곡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터전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은 좌절하고 있지만, 복구할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청탁을 받아 든 작곡가의 상황 역시 다를 게 없었다. 한 인터뷰에서 김순애는 “서울로 돌아오니 피아노도 없어졌고 적적한 방 안에서 화창한 봄날을 연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김순애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다. 당시 그는 경성음악전문학교(현 서울대 음대) 교수이던 베이스 바리톤 김형로와 스승과 제자, 작곡가와 가수로 만나 딸 셋을 낳았지만 전쟁과 함께 남편이 납북됐다. 홀로 남은 김순애는 세 딸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고, 그런 험난한 세월을 겪으며 정리한 선율이 그에겐 ‘희망의 등불’이요, ‘생명의 등불’이었다.

작곡가 김순애는 대한민국 1호 여성 작곡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생전에 그녀와 인터뷰를 했던 필자는 자택이 있던 후암동 근처 한 카페에서 강렬한 자줏빛 원피스에 우아한 올림머리를 하고 들어서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에게서는 ‘최초’라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선도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쉽지 않은 작곡가의 길을 걷는 어려움을 이렇게 고백했다.

“예술가의 길은 뼈를 깎는 고행이다. 곡을 쓸 때마다 될 듯 될 듯 안 되는 고통을 아는가. 그(남편)가 있으면 모든 것을 알려줄 텐데, 그러면 이 곡이 술술 쓰일 텐데 하고 운 적도 여러 번이었다.”

고난의 시간은 살면서 누구에게나 있다. 중요한 건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황을 뛰어넘어 오히려 상대에게 위안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순애의 ‘사월의 노래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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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옥(음악 칼럼니스트) 선화예술중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동덕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음악전문지 기자를 거쳐 KBS 1FM KBS 음악실, SBS 개국 10주년 기념 음악’, EBS 예술의 광장 등을 진행했다. 저서로 <클래식, 아는 만큼 들린다>,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 등이 있다. 현재 <매경이코노미>에 칼럼 ‘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을 연재하고 있다.

 

출처 : http://blog.daum.net/spdjcj/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