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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Wagner Tannhäuser Over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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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과 영상이 나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OQpBQSOOups

(Klaus Tennstedt London Philharmonic)

 

http://www.youtube.com/watch?v=KTM7E4-DN0o

(Thielemann / Münchner Philharm)

 

  흔히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친해지기

 쉬운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탄호이저]입니다. ‘순례자의 합창’, ‘저녁별의 노래’ 등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어있고,

아직은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인 ‘아리아’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페라이기 때문이죠. 바그너는 ‘오페라’ 대신

‘무지크드라마(Musikdrama)’라는 형식을 정립해 독일 음악극을 이탈리아 오페라보다 우위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후기 대작 [니벨룽의 반지]나 [파르지팔]은 이 새로운 분류에 속하는 작품이지만, 서른두 살의 바그너가 1845년에

 드레스덴에서 초연한 [탄호이저]는 바그너 스스로 ‘낭만적 오페라’라는 부제를 붙인 작품이랍니다.

 

 

  그러나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경계를 없애고 ‘오페라’에서 ‘무지크드라마’로 나아가려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탄호이저]에서 이미 확연히 드러납니다.

 

아리아가 끝나는 시점을 명확하게 마무리하지 않고 다음 음악으로 계속 연결해 극의 단절감을 없앤 것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본격화되는 ‘무한선율’의 기초작업이며, 앞에 발표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비교할 때

 라이트모티프(시도동기)의 사용도 더욱 두드러집니다.

 

 

 

  [탄호이저]는 중세 음유시인이면서 기사였던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Heinrich von Ofterdingen)을

모델로 삼아 ‘사회 인습에 저항하는 예술가의 초상’을 보여준 오페라로, 바그너는 스스로 ‘불행한 천재’라고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주인공 탄호이저에게 투사했습니다.

 

13세기 문학작품인 [마네스 노래집]과 [바르트부르크 노래 경연], 그리고 하이네, 호프만, 브렌타노, 티크 등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이 이 중세 소재를 토대로 새롭게 쓴 이야기들을 참고해서 바그너는 자신만의 독특한

 탄호이저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대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었지요.

문학적 재능이 각별했던 바그너는 자기 오페라의 대본을 늘 스스로 썼으니까요.

 

 

 

 

 

  순결한 사랑과 관능적 쾌락 사이의 갈등

 

 

 

 

                                                                                                         

    베누스 동굴에서 사랑의 쾌락과 여신을 찬미하는 탄호이저       

 

 

  13세기 초 독일 튀링엔 지방 바르트부르크 성의 기사 탄호이저(하인리히)는 영주의 조카딸 엘리자베트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지만, 관능적인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가 사는 동굴에 찾아간 뒤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세계의 쾌락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적 의무와 맑은 공기가 그리워 바깥세상으로 돌아온 그는 동료기사들을 만나

다시 바르트부르크 성의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합니다.

 

 

  탄호이저가 자취를 감춘 뒤로 줄곧 그를 그리워해 온 엘리자베트는 그가 돌아왔다는 전갈에 기뻐하며

노래 경연의 전당으로 달려가 아리아 ‘그대 고귀한 전당이여’를 노래합니다.

 

기사들과 귀족들이 청중으로 모인 전당에서 영주 헤르만이 기사들에게 준 노래의 주제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중세의 실존인물이었던 기사 볼프람 폰 에셴바흐,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 등이 등장해 ‘욕망을 억제하는

정신적 사랑’을 예찬하자 탄호이저는 그들을 비웃으며 ‘사랑의 본질은 쾌락’이라고 말하며 자신도 모르게

베누스 여신을 찬미합니다.

 

그가 이교 여신과 함께 쾌락의 세계에 있었던 것이 밝혀지자 분노한 기사들은

 칼을 빼들지만, 엘리자베트가 목숨을 걸고 막아서서 그들을 설득합니다.

탄호이저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죠.

그러자 영주 헤르만은 탄호이저에게 로마 순례를 명합니다.

 

 

 

 

 

 

  시간이 흘러, 로마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순례자의 합창’을 노래하지요.

엘리자베트는 순례자들의 행렬 안에 탄호이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절망합니다. 탄호이저의 죄를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엘리자베트.

 

오래 전부터 그녀를 흠모해온 기사 볼프람은 엘리자베트의 삶이 꺼져가는 것을 느끼며 ‘저녁별의 노래’를 부릅니다.

밤이 깊자 지친 모습의 탄호이저가 볼프람 앞에 나타납니다.

 

 

  온갖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며 순례자들의 대열에 섞여 로마에 도착했지만, 베누스 동굴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교황은 ‘고목에 싹이 돋지 않는 한 용서할 수 없는 끔찍한 죄’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지 못해 절망한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 여신을 부르며 쾌락의 세계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때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부르자 베누스의 세계는 사라져 버리지요.

 

합창단이 엘리자베트의 죽음을 알리자 탄호이저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며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둡니다.

그때 고목 지팡이에 푸른 싹이 돋아나고, 순례자들은 탄호이저가 구원받았다고 합창합니다.

 

 

 

  여성의 희생을 통한 천재 예술가의 구원

 

 

 

 

                                                                                                         

     중세 필사본에 등장하는 탄호이저의 모습.     

    탄호이저의 전설은 13세기 후반에 생겨났다.

 

 

  위의 내용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버전입니다.

 그러나 원래의 탄호이저 이야기는 좀 달랐습니다.

 13세기 문학을 기초로 해서 16세기에 쓰여진 [탄호이저의 노래]에 따르면, 탄호이저는 베누스와 쾌락을 즐기다가

 그곳을 힘들여 빠져나와, 엘리자베트를 만나지 않고 곧장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교황 우르바누스가 쾌락에 빠졌던 죄를 용서해주지 않자,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의 동굴로 돌아갑니다.

교황은 사흘 뒤에 고목에 새 잎이 나는 기적을 보고 탄호이저를 찾지만, 그는 이미 베누스에게 돌아간 뒤여서

만날 수가 없었답니다.

 

 

  낭만주의 시인 하이네의 유머러스하고 시니컬한 [탄호이저]를 보면 한술 더 떠서, 베누스는 돌아온 탄호이저에게

따뜻한 수프를 끓여주고 순례 중에 상처 입은 발을 치료해 줍니다.

 

결국 탄호이저는 베누스 동굴의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쾌락을 즐기며 살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천재성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분노하고 있던 바그너는 ‘여성의 절대적 헌신과 희생을 통한

 예술가의 구원’을 강조하려고 결말을 진지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비슷한 시대의 작가, 같은 소재라 해도 작가의 가치관 또는 세계관에 따라 이처럼 상반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탄호이저]를 작곡하던 중에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 지휘자로 취임해 스스로의 연출과 지휘로 [탄호이저]를 초연하기로 합니다. 마지막 3막을 두고 고민에 빠진 바그너는 탄호이저가 베누스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탄호이저의 환상’으로 처리하고, 엘리자베트의 죽음과 고목 지팡이에 돋은 새싹 등은 기사 볼프람의 암시와 설명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초연 때 청중은 무대 위에서 사건이 거의 전개되지 않는 이런 방식을 대단히 지루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그너는 이 부분들을 무대 위 사건으로 전환해서 사실적으로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이 판본은1847년 8월에 개정판으로 발표되었고, 이것이 바로 ‘드레스덴 판본’입니다.

 

유럽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서의 성공을 갈망했던 바그너는 발레와 화려한 음악을 좋아하는 파리 오페라 애호가들의

 기호에 맞춰 서곡, 1막 1장, 2막 4장을 대대적으로 수정했고, 이것이 1861년 3월 13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파리 판본’입니다.

 

 [탄호이저]가 파리 판본으로 공연되기를 작곡가 자신이 원했기 때문에 바이로이트에서도

1891년 이후 파리 판본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요즈음은 많은 경우에 파리 판본과 드레스덴 판본의 절충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누스와 엘리자베트는 관능적 괘락과 순결을 상징하는 이분법적 여성상이지만, 한 여성 안에 내재된 이원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점을 드러내기 위해 연출가 괴츠 프리드리히는 두 여주인공을

한 명의 가수(귀네스 존스)가 연기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서곡부터 ‘순례의 합창’ 모티프에 베누스 동굴 음악이 겹치면서, 이 주제가 뚜렷이 부각됩니다.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에서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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