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stakovich, Symphony No.5 in D minor, Op.47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D단조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Philippe Jordan, conductor
Gustav Mahler Jugendorchester
BBC Proms 2013
Royal Albert Hall, London
2013.08.24
등장인물 소개
차선생 음악 감상회의 해설자. 자신의 삶에서 음악을 만나 사랑하게 된 인연을 가장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음악 감상회를 오래 진행해 온 덕에 어떤 음악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 ‘잡식성 대식가.
박은허 중국 고대 유적의 이름이기도 한 ‘은허(殷墟)’처럼 신비롭고 오래된 신화에 바탕을 둔 바그너의 음악을 몹시 사랑하는 음악 애호가.
류슈연 음악 감상회와 함께 어느덧 파릇파릇한 새내기에서 졸업반이 된 대학생. 좋아하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음악을 찾아 듣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차선생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에 관한 자료를 읽다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어요. 바로 안드레이 즈다노프라는 사람이에요. 그는 음악이론가이며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있으면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레닌그라드를 지킨 전쟁 영웅이었고, 전후에는 러시아 문화의 우월주의를 주창한 체제의 수호자로 알려져 있지요.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 당시의 예술 활동 전반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무자비한 난도질을 자행했다고 해요. 자칫 그의 눈 밖에 나는 일이라도 생기면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 정도였으니 예술가들에게 그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겠어요. 그러한 즈다노프의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 앞에서 마치 외줄을 타듯 곡예를 했던 음악가가 바로 쇼스타코비치였지요.
류수연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음악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쇼스타코비치를 소개한 부분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바로 프라우다라는 공산당 기관지에 관한 것이죠. 그런데 그가 프라우다로부터 받은 비판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나요?

박은허 그 이전까지 뛰어난 천재성으로 전도유망한 작곡가로 환영받던 쇼스타코비치의 새 작품인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스탈린이 보러 온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어요. 스탈린은 극의 내용에 잔뜩 화가 난 채로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고,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프라우다가 온갖 악의에 찬 표현을 동원하여 쇼스타코비치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죠. 그것은 이 오페라가 음악적으로도 난해하지만 동시에 퇴폐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결과가 매우 나쁘게 끝날 수도 있다는 강력한 경고였어요. 소수의 청중만을 위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그들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프라우다는 이를 두고 ‘형식적’이라는 단어로 그를 매도하였던 것이죠.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의 한 장면
차선생 하지만 교향곡 5번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갈 뻔했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이 교향곡이 쇼스타코비치의 이름을 음악사에 영원히 빛나게 한 것은 매우 역설적임과 동시에 음악사의 아이러니라고 표현할 수도 있죠. 소비에트 체제하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삶에 스탈린이라는 인물이 미친 영향 역시 절대적인 것이었어요. 그는 쇼스타코비치에게 온갖 시련과 굴종을 요구했지만, 그 이상의 충분한 지위와 명예로 보상해주었어요. 이것은 쇼스타코비치가 얼마나 뛰어난 능력의 음악가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며 또한 그에게 그런 천재성이 없었더라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음을 나타내주지요.
‘당국의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 이는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다섯 번째 교향곡을 초연할 때 이 작품을 설명한 말이었어요. 베토벤의 다섯 번째 교향곡이 ‘한 인간의 고난과 이를 극복한 승리의 환희’였다고 한다면, 쇼스타코비치의 다섯 번째 교향곡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정신의 고취와 승리의 쟁취’를 그 주제로 삼고 있죠. 이는 예술가의 정치 참여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일단 급한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일종의 체제와의 타협 같은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작품의 내면에는 그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처럼 체제의 장막에 갇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역설과 풍자를 담고 있어요. 예술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창적인 영역이라고 할까요.

박은허 코가 석 자였던 쇼스타코비치가 그 와중에도 자신의 작품에 역설과 풍자를 담을 생각을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군요. 그렇게 볼 수 있는 어떤 근거가 있는 건가요?
차선생 여러 사람들의 회고를 참고하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우선 작곡자의 아들인 막심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는 이러해요.
“교향곡 5번이 발표되자 비평가들은 아버지가 1936년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한 뒤에 ‘교화되고, 개선되고, 또 명확해졌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아버지의 의도는 명확한 의사전달을 위해서 좀 더 일반적이고 명료한 음악적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교향곡 5번은 이를테면 아버지의 ‘영웅’ 교향곡이다. 그래서 1악장 서두는 광폭하고 강렬해야 된다. 왜냐하면 적어도 나에게 아버지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여기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내가 이제 솔직하게 말할 테니까!”
그리고 소련 당국도 이 작품이 어쩌면 당과 체제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던 모양이에요. 이번엔 위대한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이기도 했던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쇼스타코비치, 1950. 웃는 모습을 찍은 그의 사진은 거의 없다.
“당시에 소련 당국은 교향곡 5번을 발표한 쇼스타코비치를 당장에 처형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연주가 끝난 뒤 기립박수가 무려 40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러한 대대적인 성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소련 당국도 쇼스타코비치의 작곡 의도를 모르진 않았지만 예상외의 결과에 당황한 나머지 작품의 성공을 자신들의 몫으로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쇼스타코비치를 잘 교화해서 이제 그가 청중에게 받아들여지는 상식적인 음악을 만들었다면서 꼬리를 감추었던 것이다.”
이렇듯 쇼스타코비치는 여차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체제와의 목숨을 건 줄다리기 게임을 하였던 것이죠. 그들 위협에 호락호락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같은 게 그의 가슴속에서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나 봐요.

왼쪽부터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 하차투리안, 1945
류수연 정말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군요. 저는 머리가 핑 돌 것 같아요. 그러니 이제 이데올로기나 체제 같은 이야기는 그만하고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음악 감상을 했으면 좋겠어요.
차선생 한 작곡가의 작품을 몇 마디의 말로 다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니 수연이 말대로 다음 순서로 넘어가도록 하죠. 먼저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진 1악장은 제1, 2주제와 연결구, 그리고 다시 제1주제의 반복이 있은 후 느린 아다지오 악장을 연상하게 하는 조용하고 느린 선율이 한동안 지속되죠. 그것은 암울한 느낌을 지니고 있는데, 마치 곧이어 나타나게 되는 격렬함을 예고하는 듯해요. 이 격렬함은 피아노를 필두로 하여 타악기와 금관악기에 의한 강력한 리듬을 동반하고 있는데, 붉은 깃발을 떠올리게 하는 매우 선동적인 느낌의 행진곡으로 되어 있어요. 피아노라는 악기는 교향곡 연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악기인데, 음악을 꽤 오래 들은 사람들도 이 소리가 단지 저현 악기인 첼로나 콘트라베이스의 강한 울림에 의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 곡에는 피아노 외에도 첼레스타와 같이 흔히 보기 힘든 악기도 등장하는 등 고전과 낭만주의 교향곡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다양한 볼거리를 안겨주는 곡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물론 이 곡을 영상으로 감상했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2악장은 경쾌하고 흥겨운 리듬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처럼 현악기의 피치카토가 인상적이고요. 중간에 위트와 풍자를 표현하는 듯한 부분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이라는 곡도 생각나게 하는 등 매우 재미있는 스케르초 악장이에요. 하지만 작곡자의 아들 막심은 이 악장을 일러 “영혼이 없는 사악한 무리들의 강한 폭력과 파괴를 일삼는 기계적 인간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이올린 솔로의 등장은 이러한 무리의 군화에 짓밟혀 신음하는 어린이들의 절규이다. 플루트가 바이올린 솔로의 패시지를 다시 연주하면서 그 절박함은 다시 강조된다. 사악한 무리들의 행진이 다시 시작되면서 악장은 결국 악의 무리들의 승리를 암시하며 끝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더군요.
박은허 20세기에 쓰인 곡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3악장은 고뇌에 찬 예술가의 페이소스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설명을 본 적이 있어요.
차선생 느린 악장으로는 드물게 연주시간이 15분에 이를 정도로 매우 긴 편인데, 작곡자 특유의 서정미가 배어 있어요. 중간에 흘러나오는 플루트와 하프의 대화는 짧지만 2중주를 듣는 느낌을 주며 고즈넉하게 흘러나오는 오보에의 솔로도 무척 아름다워요. 마지막에는 신비스런 하프 현의 튕김으로 끝을 맺죠. 그런데 이 3악장과 1악장의 대비는 극적이어서 3악장의 존재를 떠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힘은 좀 들더라도 3악장까지 꼭 들어볼 것을 권해요. 4악장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같이 극적인 분위기의 반전을 알리는 투티로 시작하며, 곡의 분위기는 무척 밝아 승리의 행진곡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 이것은 고압 전류이고 감동 전류이다.” 오늘날까지도 작곡자 최고의 작품으로 찬사를 받는 교향곡 5번을 듣고 감동한 어느 청중이 남긴 말이에요. 이 곡은 50분이 넘는 대곡이긴 하지만 특별히 막히는 부분이 없이 쉽게 감상할 수 있는 곡이기 때문에, 몇 번만 들어서 귀에 익숙하게 되면 금방 친해질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교향곡이나 대편성 관현악곡을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명곡이죠.
박은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음반에 관한 자료를 뒤적거리다보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지휘자가 있어요. 바로 므라빈스키죠. ▶레닌그라드 심포니를 지휘하는 므라빈스키, 1980
차선생 그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쇼스타코비치의 열다섯 개 교향곡 중 므라빈스키가 초연을 맡은 곡이 여섯 곡(5, 6, 8, 9, 10, 12번)이 되니까요. 실로 대단한 인연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이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쇼스타코비치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 5번에서부터 출발하게 되므로 두 사람에게 이 곡이 지닌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 이처럼 특정 작곡가의 작품 초연을 한 사람의 지휘자가 도맡아 하는 경우는 음악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까 싶은데, 결과적으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와 므라빈스키의 만남은 어쩌면 두 사람 모두에게 더없는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출처 : 류준하, <내 삶의 변주곡 클래식>(현암사, 2012), pp.309~321.*글의 일부분을 빼고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