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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음악( Newage* )

Armik-Cafe Romantico

 

 

 

 

 

 

 

 

 

Nuevo Flamenco(누에보 플라멩코: New Flamenco)는 전통 플라멩코의 현대적인 파생어로서 현대 플라멩코의

대명사이다.

그것은 플라멩코 기타의 그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다른 연주가들에 의해 플라멩코에 융합된 재즈, 룸바,

보사노바, 집시, 라틴, 켈트, 중동, 록, 쿠바 스윙, 재즈,탱고와 살사 등의 음악적인 융합과 함께 고도의 연주기교를

결합하는 것이다.

 

전통 플라멩코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스페인에서 Rock & Roll에 의해 대체되었으나 1980년대에

부흥시킨 뮤지션으로는 Paco de Lucia(파코 데 루치아),Ketama(케타마), Pata Negra(파타 네그라)가 클래식

플라멩코와 재즈와 살사 등의 다른 형태로 융합된 연주를 새로이 보였다.

 

오늘날 Nuevo Flamenco or Rumba Flamenco 뮤지션으로 알려진 많은이들이 있으나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이들로는 Alex Fox(알렉스 폭스), Govi(고비), Jason McGuire(제이슨 맥과이어),

 Jesse Cook(제시 쿡), Pavlo (파블로), Ottmar Liebert(오트마르 리베르트),Armik(아르믹)등이 있다.

 

 

 

 

 

 

 

Armik(아르믹)은 1950년생으로 아르메니아인 부모아래 이란의테헤란에서 태어났으며 평생을 기타에대한 사랑을

가졌다고 하는데 7살때 그의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산 클래식 기타를 가지고 집 지하실에서 숨어 연습하는 그를 발견한 가족들은 Armik의 음악적인 열정을 인식치는 못했으나 이미 그때쯤 그는 능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한다.


 이미 12살 때 스튜디오 레코딩을 위해 전문적인 연주 실력을 쌓기 시작했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음악적인 구절들을 읽고 연주를 잘 해냈다고 하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주로 재즈를 연주하며 지냈는데 이란의

 대중적인 인기 가수들의 녹음 작업에도 참여하였었고 기타 공부를 위해 자주 찾은 스페인에서 유명한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Paco de Lucia(파코 데 루치아)의 연주에서영감을 얻어 플라멩코 기타로 전환하게 되는데 그는 나중에

 자신의 웹 사이트에서 설명하기를 처음 플라멩코 기타를 만지면서 소리를 들었을때 나는 내 악기를 통해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고 피력하였다.

 

이란의 호메이니에 의한 1979년 혁명후 새 근본 이슬람 정부는 음악을금지하게 되는데 기독교인이자 아르메니아인,

음악가로서의 그의 신원은 엄격한 이슬람법에 의해 고초를 당할 것인바 1980년에이란을 떠나 1981년에

 로스 앤젤레스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후 10년동안 세션 뮤지션으로 경력을 쌓으며 무려 만개가 넘는 세션 작업에 참여하는데 1994년 발표한 그의 첫 솔로 앨범 Rain Dancer는 Billboard’s Top New Age Albums chart의 탑10에 랭크되었으며 1995년에 출시한 두 번째

앨범 Gypsy Flame의 호조와 더불어 현재까지 26개의 앨범을 발매하는등 2004, 2005, 2006, 2008년에 빌보드 잡지의 톱 텐 뉴 에이지 뮤지션으로 선정되어 명실공히 스페인의 발라드와 남미 리듬과 재즈를 융합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뉴 에이지 시장에서의틈새를 자리 잡은 누에보 플라멩코의 선두적인 뮤지션으로자리매김하고 있다.

 

안락한 느낌을 주면서도 격정적인 연주 기법을 들려주는 누에보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인 Armik의 연주 음악은

 일상에 찌든 몸과 마음에 또 다른 생기를 불어넣는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해질 무렵 그라나다(Granada)의 알함브라(Alhambra) 궁전 전경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나라 스페인

투우와 축구, 태양과 열정으로 대변되는 스페인은 유럽이 걸어 온 역사의 길 위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나라다.

지중해 세력들 간의 각축장이었고 한때는 유럽 역사의 중심 무대로 도약하기도 했던 스페인은 고대로부터 복잡한 역사의 흐름이 이어졌던 곳이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로마의 진출일 것이다.

지중해 서쪽의 요충지였던 탓에 로마와 카르타고의 헤게모니 다툼이 이베리아 반도 위에서 벌어졌고, 유명한 포에니 전쟁으로 한니발의 카르타고를 몰아낸 로마가 반도를 지배하며 발전된 문명을 전파했다.

 이어 게르만족과 고트족이 들어오고, 서 고트 왕국이 건립되어 고대와 중세를 잇는 과도기를 이어 나갔다.

 

음악을 포함한 이베리아 반도의 문화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711년부터 1492년까지 이어진 이슬람 세력의

 지배였다.

이들의 알-안달루시아(Al-Andalucia) 왕국은 당시 기독교 문명보다 선진적인 문명으로 반도에 아랍문화를 만개시켰다. 그 중심지였던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역에는 지금도 아랍 문화의 흔적들이 크게 남아 있다. 안달루시아 지방을 기원으로 하는 플라멩코에 음악적, 정서적으로 아랍의 요소들이 깃들어 있는 이유도 이러한 역사적인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 내부 모습. 호수에 비친 코마레스 궁전(Palacio de Comares)(좌측)과 궁전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슬람 문양(우측)

이처럼 스페인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인종과 종교, 학문과 예술, 정치와 사회 등 모든 방면에서 다양성이

 두드러진 역사를 겪었다.

 

특히 로마와 이슬람 문화의 유산은 스페인 중세 사회에 당시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다른 이질적인 문화가 꽃 필 수 있게

했고, 이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스페인이 독특한 문화 정체성을 축적할 있었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스페인은 중남미 대부분의 지역을 라틴의 기질로 물들인 나라이기도 하다.

기독교 왕국들이 벌였던 레콩키스타(Reconquista-국토회복운동)로 무슬림을 축출한 스페인은 강력한 통일 국가를

기반으로 대항해 시대를 열어 갔다.

 

신대륙 발견의 기치를 내걸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간 스페인은 포르투갈이 지배했던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대부분을 지배했다.

800년 가까이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던 세월이 무색할 정도의 식민 정책과 엄청난 자원의 착취로 지구촌 역사 속에 흘러 온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 가운데 많은 분량의 페이지를 장식했다.

 

흔히 스페인의 음악으로 플라멩코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플라멩코를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페인 속에는 하나의 국경 안에 있을 뿐, 뚜렷한 개성을 지닌 여러 지역이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며 존재하고 있다. 남부의 안달루시아를 비롯해 지중해를 끼고 있는 동

 

 

 

 

스페인의 각 지역은 독특한 자기들만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흔히 스페인의 음악으로 플라멩코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플라멩코를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페인 속에는 하나의 국경 안에 있을 뿐, 뚜렷한 개성을 지닌 여러 지역이 서로 다른문화적 전통을 유지하며 존재하고 있다.

 

 남부의 안달루시아를 비롯해 지중해를 끼고 있는 동북쪽의 카탈루냐(Cataluña) 지방,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중의 하나인 바스크(Basque)족 사람들이 사는 북부의 바스크 지방, 켈트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는 북서부의 갈리시아

(Galicia) 지방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 이질적인 특성을 지닌 지역들이며, 바스크와 카탈루냐는 스페인 정부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표출해 온 곳이기도 하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몬테프리오(Montefrio) 마을 전경

 

 

플라멩코의 기원

인도 북부의 라자스탄(Rajasthan)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집시들의 기나긴 방랑은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와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발칸반도 일대와 러시아, 그리고 서유럽 곳곳으로 이어졌다.

그중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까지 먼 길을 갔던 집시들이 바로 플라멩코의 주인공들이었다.

 

집시들이 지닌 음악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은 유럽 일부 지역의 전통 음악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이 지나온 지역에서 흡수한 악기와 음악을 전파했으며 특유의 감성을 불어넣었다.

집시들의 음악에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삶을 살아 온 우수어린 한의 정서가 표현되기도 하는데, 플라멩코는

그러한 정서적인 농도가 가장 짙은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집시들이 주역이었지만, 플라멩코를 온전히 집시들만의 예술이라 할 수는 없다.

집시들이 안달루시아 지역에 들어온 때는 15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스페인에서 이슬람 세력이 축소되어 가던 시기였다.

 

1492년 무슬림 최후의 본거지였던 그라나다가 함락되면서 스페인 내의 무슬림들과 집시들이 기독교로 강제 개종을

당했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은 추방되거나 산악지대의 동굴에 은신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들 중에는 스페인으로 흘러들어 온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플라멩코는 집시들과 무어인(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인), 그리고 유대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기독교 왕국으로 통일된 스페인의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어 박해받았던 이들의 한이 담겨 있는 음악인 것이다.

전통적인 플라멩코가 심오하고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죽음, 번뇌, 절망 등을 정서적 근원으로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학자들은 플라멩코의 발상지가 안달루시아 지방 서남쪽의 작은 도시인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

(Jerez de la Frontera)라고 범위를 좁혀 말한다.

 

플라멩코는 이 마을 저 마을로 이동했던 집시들에 의해 세비야와 그라나다를 비롯한 안달루시아 지방 여러 곳으로

전파되었고, 이슬람 색 짙은 지역 전통 음악과 안달루시아 사람들의 열정이 녹아들면서 그 독특한 예술적 색채를

 만들어 온 것이다.

 

 

 

플라멩코의 발상지로 알려진 헤레스 데 라 프론떼라(Jerez de la Frontera)

마을 전경

플라멩코를 이루는 요소들

플라멩코는 바일레(Baile-춤), 토케(Toque-기타 연주) 혹은 토카르(Tocar), 칸테(Cante-노래)를 3대 요소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플라멩코 고유의 박수 소리인 팔마스(Palmas)와 타악기 등이 등장한다. 초기의 플라멩코는 팔마스와

 함께 하는 춤과 노래가 전부였다.

 

은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음악 플라멩코는 집시들의 거주지인 동굴이 무대였는데, 지금도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동굴’이라는 뜻의 쿠에바(Cueva) 플라멩코 공연장들이 있다.

 

플라멩코가 세상 밖으로 나와 기타와 만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9세기 중반 세비야에 카페 칸탄테(Cafe Cantante)라는 플라멩코 카페가 생겨나면서 뮤지션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이는 기타의 도입과 함께 플라멩코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1950년대 중반에 생겨나기 시작한 타블라오(Tablao)라는 이름의 극장식 레스토랑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만날 수 있다.

 

 

 

 

‘동굴’ 이라는 뜻의 ‘쿠에바’ 플라멩코 공연장 모습

바일레(Ba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