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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읽는 명상록

야스퍼스, 철학이란 무엇인가


 

 

 

서양철학, 하이데거/야스퍼스, 철학이란 무엇인가

 

 

 

 

영원과 존재(Ewigkeit und Sein)

영원은 인간의 사유를 넘어선 초월이다. 영원은 인간의 한계 너머에 있는 극한의 정점이다.

인간은 영원을 경험하기 전까지 영원을 인식할 수 없고, 영원을 살 수 없다.

영원은 ​인간이 외면하기 쉬우나,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고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모든 인간은 영원을 직면하냐 아니면 영원을 외면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영원을 외면하지 않고 영원을 직면하는 인간은 영원의 가치를 마음속에 품는 영생을 살고,

영원을 직면하지 않고 ​영원을 외면하는 인간은 영원의 가치를 망각한체 허무한 삶을 산다.

영생의 반대는 허무이며, 허무의 반대는 영생이다.

​영원을 외면한 인간은 허무에서 태어나고 허무로 살아가고 허무로 돌아가는 허무주의에 빠진다.

영원을 외면한 인간이 직면하는 허무주의는 크게 네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존재적 허무주의다.(existential nihilism)

 

모든 인간은 스스로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물음은 생의 동기이며, 생의 의욕이며, 생의 전부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지 답을 찾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자기 자신에게서는 도대체 자신이 지금 이 시기에 여기서 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왜 살아가야 하는 지 답을 찾기가 어렵다.

인간은 근본적 자기 정체성을 자아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부여받는다.

먼저 이름은 내가 짓는게 아니라 타인이 붙여준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먼저 스스로 부른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붙여준 게 나의 이름이 되었고,

나는 그 이름을 들으며 그게 나인줄 알고, 앞으로도 나는 그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 지, 타인을 통해서 안다. 나는 스스로

나의 생일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스스로 내가 몇살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스스로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 수 없다. 나의 나이와 생일과 출생지를 모두 다 타인이 알려준 것이다.

또 나는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느 민족인지 타인을 통해서 알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민족적 정체성과 국가적 정체성을 규정해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언어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나는 살아있으나 어느 나라에 속하여 살아가는 지 모르는 무국적자가 된다.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이름과 나이와 민족은 나 스스로 알아낸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나 자신만 살펴본다면 내 이름이 꼭 지금의 내 이름일 이유가

없으며, 나의 나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으며, 나의 민족은 더더군다나 알 수 없다.

간신히 나의 이름과 나이와 국가를 알았다고 해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이

종결되는 건 아니다. 이제야 비로소 참된 질문이 여기서 시작된다. 그런데

나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나에게서 찾을 수 없는 이 무지한 존재가, 나의 궁극적인 방향성과

실존적 존재의미를 어떻게 혼자서 찾을 수 있는가?

내가 나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무엇을 더 알 수 있을까?

이는 동해바다에 쪼그려 앉아서, 나무젓가락으로

백사장의 모래를 퍼담는 것마냥 부질없는 일이다. 나무젓가락으로 모래를 잡을 수도 없고, 잡아도 부질없다. 나에 대해 탐구하고, 연구하고, 사유할수록 나는 나 자신이 누군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존재적 허무주의에 빠진다.

 

 

 


 

둘째는, 물질적 허무주의다.(material nihilism)

 

우리는 흔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만 유물론 으로 알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신자유주의도 유물론과 다름 아니다.

물질이 정신을 결정하고, 물질이 모든 가치를 좌우하는 신자유주의에서는

사람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 자유가 최고의 가치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가치관에 경도되어, 어떤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건다.

그 물질은 타인 역시 너무나 갈망하는 것이고, 타인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물질을 막상 손에 잡는 순간

그리고 나의 전 존재를 걸어 그 물질을 획득하는 순간

그 물질을 취득하기만 한다면 나의 모든 삶이 한순간에 변화될 것이라는

낭만이 사라지고 불안이 엄습한다. 

 

 

 

현대인들은 물질의 획득과 물질의 갈망사이에서 불안해한다. 물질을 획득하여도 여전히 불안하다.

다음 번에는 어떤 물질을 갈망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것을 갈망한다고 해서 획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물질을 획득하지 못하였다면, 그 불안은 계속된다. 다른 사람은 모두 다

그 물질을 획득한 것 같은데, 자신은 그 물질을 획득하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 불안하다. 

영원할 수 없는 물질소유는 궁극적으로 허무하다. 모두 다 공기를 잡는것처럼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모두 다 빠져나간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이가 빠지고 머리가 가늘어지는 건 인간의 숙명이다. 얼굴을 땡기고, 이를 대체하고, 머리를 이식하여도 

다시 탱탱하고 싱그러웠던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인간이 환원불가능하기때문에, 물질로 시간을 되돌일킬 수도 없고, 

물질로 삶을 새롭게 할 수 없다.

어찌보면, 영원을 상실한 인간은 물질로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없음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안다.

이미 그는 물질을 갈망하고 물질을 획득함으로써 그 한계에 봉착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물질을 포기하고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게 너무나 두렵다.

그게 그에게는 자살과 같다.

태어나서 물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철학적 허무주의다.(Philosophical nihilism) 

 

 

철학은 지혜의 사랑이다. 혹자에게 철학은 사랑의 지혜다. 그러나 영원을 상실한 지혜는

일시적이고 파편적이다. 그것은 연속성이 없는, 역사성이 사라진 피상적 지식에 불과하다.

영원이 없는 공부는 하면할수록 허무하다. 무엇을 위해서 책을 읽고, 무엇을 위해서 공부를 하나?

누구를 위해서 연구를 하고, 누구를 위해서 가르치나? 공부하면 할수록, 새로운 게 나오는 게 아니라

비관적인 허무주의만 나온다면, 그리고 이미 있는 사상과 가치마저도 거부하고 해체하는 게 공부라고 한다면, 과연 이 공부는 누구를 위하여 계속되어야 하는가?

지금 주어진 것을 무조건적으로 암기하는 게 철학인가?

아니면 지금 주어진것을 무조건적으로 해체하는 게 철학인가?

철학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의 윤리와는 별개인가?

어찌하여,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할수록 인간 심연 깊숙한 곳에 있는 갈망은

채워지지 아니하고 더 갈급한 마음으로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메마른 땅을 미친듯이 파헤치는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데 일조하지 못하는 공부는 도대체 해서 뭐하나?

하면 할수록 사람의 생명을 보듬는게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고, 그 영혼을

질식시키고, 귀를 멀게하고, 마음을 닫게 만드는 공부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건가?

영원을 위한 공부가 아닌, 이익을 위한 공부

진리를 위한 공부가 아닌, 자리를 위한 공부는

하면 할수록 고상한 인격을 파탄내고,

사람에 대한 관심을 급격하게 감소시킨다.

영원을 상실한 학문은 

바닷물을 마시고 토하고, 그 토사물을 먹고

또 토하는 구역질 나는 행위를 무한 반복하며 시간을 죽인다.

시간을 죽이는 공부는 결국 나를 죽이고 우리를 죽인다.  

넷째는 역사적 허무주의다.(historical nihilism)

한국 역사를 보면, 역사가 진보하는 지 아니면 퇴보하는 지

함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분명히 우리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역사가 진보한다고 믿어왔는데 최근 10년가량의 대한민국을 보면

역사가 진보는커녕 역으로 퇴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퇴행은

지금이 마지막인지 이제 시작한건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언제까지 남한과 북한은 이렇게 갈라져서 서로가 서로를 겨누는

인간 총알과 인간 방패가 되어야 하나? 왜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고,

식민지로서 36년간 설움과 눈물의 시간을 보냈던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두동강이 나고, 일본은 분단되지 않았던가?

아무리 국가가 많은 돈을 벌고, 국가경쟁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돈 없는 서민으로 살아가는 일은

눈물나는 서러운 일이다.

한국에서 서민은 언제나 '서러운 국민'이다.

시대와 역사를 보면, 선이 악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악이 선을 박멸한 경우도 왕왕 보게 된다.

선이 꼭 강한것도 아니고, 악이 꼭 약한것도 아니다.

때로는 천사라고 믿었던 것이 악의 축이었고,

악의 축이라고 믿​었던 것이 천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견으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누군지도 알지못하여

빌빌대는 이 세상에서,

한반도의 역사와 세계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알건 또 뭔가?

역사를 공부해도 더 나아지는 건 없고,

죽은자식 불알만지기마냥, 아무런 의미도 없이 과거의 사건만 달달외우고

현실 문제를 직면하지도 못하고, 해결하지도 못한체

역사가의 역사는 흐른다. ​

 

 

 

​영원과 결별한 존재, 영원과 결별한 물질,

영원과 결별한 학문, 영원과 결별한 역사는 허무하다.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그 자체로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무는 끝이 아니고, 영원의 시작이다.

인생의 허무는 영원이 동트기 바로 직전의 새벽이다.

허무는 인생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무한성으로 넘어가는 영원의 톨게이트다.

허무가 허무로 남을 때 허무는 저주지만,

하무가 영원으로 전환될 때 허무는 축복이다.

허무는 영원을 만나야 한다. 허무는 허무 그 자체로 머무르면 안되고

영원을 향하여 달려가는 엔진이 되어야 한다. 

실존적 허무와 물질적 허무와 철학적 허무와 역사적 허무의 끝에

영원의 새벽별이 떠서 그들을 환하게 비추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허무를 향한 존재가 아니라,

영원을 향한 존재다. 영원의 광채 아래서 모든 인간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 존재를 자각한다.

영원한 광채에 온몸을 맞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 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 지 눈을 뜬다.

모든 물질은, 영원한 존재에게서 나왔다.

물질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게 아니라, 영원한 존재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가치있다. 모든 인간은 그 물질을 영원히 소유하는 게 아니라, 그 물질을

영원의 주인에게 다시 반환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영원의 주인에게

반환되어야 한다.  

우리는 영원에서 태어났고,

우리는 영원안에 살아가며,

우리는 영원으로 돌아간다.

이 영원은 우리가 측정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초월적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다. 단지 우리는 이 영원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이 영원이심을 믿을 뿐이다.

모든 학문은 영원을 연구하는 것을 그의 궁극적 사명으로 해야 한다.

영원을 망각한 학문은 방향성을 상실하여, 그 누구도 살릴 수 없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학문, 영원한 생명을 나누는 공부만이

허무한 학자와 허무한 학생을 치료하고 자유케 한다.

영원은 만물을 새롭게 한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변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허무주의와 역사비관주의에 빠져있기 쉬울지라도,

사랑은 영원하다. 말씀은 영원하다. 영원한 사랑의 말씀이

만물을 새롭게 할 것이다. 이는 이성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믿음의 영역이고, 용기의 영역이고, 희망의 영역이다.

우리는 무엇을 희망해야하 하는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초월자의 말씀을 희망하여야 한다.

만물을 새롭게 하는 새역사에 동참하는

인생은 때로는 실패하나, 다시 일어나 온몸으로

희망의 시를 이 땅에 쓸 것이다.

​허무의 끝에 허무가 아니라 

영원이 우리를 향하여 두팔을 벌리고 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영원의 품이다.

우리는 그 영원의 품에서만이 영원토록 영혼이 안식한다.

우리는 영원을 향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그 안에서 영원을 느끼고 영생을 산다.

허무를 살지말고 영생을 살라

허무는 짧고, 영생은 길다. 

 

 

 


Candy Dulfer-Lily was here - (색소폰연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