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곡

Andrea Bocelli-Sogno (꿈, F.P.Tosti)

 

 





Andrea Bocelli-Sogno (꿈, F.P.Tosti)

 

Sogno

 

 

 


Ho sognato che stavi a ginocchi
Come un santo che prega il Signor,
Mi guardavi nel fondo degl'occhi
Sfavillava il tuo sguardo d'amor,

Tu parlavi e la voce sommessa
Mi chiede a dolcemente mercè,
Solo un guardo che fosse promessa
Imploravi curvato al mio piè.

Io taceva e coll'anima forte
Il desio tentatore lottò,
Ho provato il martirio e la morte,
Pur mi vinsi e ti dissi di no.

Ma il tuo labbro sfiorò la mia faccia
E la forza del cor mi tradì,
Chiusi gli occhi, ti stesi le braccia,
Ma sognavo e il bel sogno svanì!




거룩한 그대의 고운 두 눈
지난밤 꿈에 난 보았네.
나를 보는 맑고 고운 두 눈
촉촉히 사랑에 찼어라.

그대 부끄런 가냘픈 음성
내 맘에 사랑 찾았도다.
날 보는 그 눈, 무릎을 꿇고서
눈물만이 흘러있었네.

그리워 안타까운 내 마음.
사랑의 괴롬에 싸여서
죽도록 괴로운 이 내 마음.

그대를 피하려 하여도
고운 그대 입술 스치며는
내 맘 무너졌도다.

감은 그 두 눈, 벌린 내 눈에는
하염없는 꿈만 남았어라.



 

 

 


 

 


 

 

 

 

 

 Andrea Bocelli, 1994년 산레모 가요제의 신인상을 받은 이래, 보첼리는 팝과 클래식, 8개의 오페라 음악을 포함한

 13개의솔로 스튜디오 앨범을 녹음하여 세계적으로 7천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팔았다.

 1998년 잡지 《피플》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 50명'중의 하나로 꼽혔다.

 

셀린디온과 듀엣으로 부른 "The Prayer"는 영화 《캐멀럿의 탐구 대상》의 주제가로 골든 글러브의 최고 새가수 상을

 수상하였고, 아카데미 에서도 같은 부분의 후보에 올랐다.

 클래식 앨범 《Sacred Arias》는 미국 클래식 앨범 차트의 톱3에 들어오면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랐다.

 

세계적으로 5백만 장이나 팔리면서, 그 앨범은 솔로 가수에 의한 최대 판매 앨범이 되었다.

또한 전 세계에서 2천만 장 이하로 팔린 1997년 팝 앨범 《Romanza》는 이탈리아 가수에 의한 최대 판매 앨범이

되었으며,캐나다,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최대 판매 앨범으로 알려졌다.

 

앨범의 첫 싱글 "Time to Say Goodbye"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하여,

이탈리아 국내에서 3백만 장,  세계적으로 12백만 장이나 팔리면서 판매 기록을 깼다.

 

Andrea Bocelli는 1958년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포토와 올리브를 작하는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농촌이라는 환경때문에 음악 교육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첼리의 부모는 그를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으며, 이후 플루트와 색소폰을 가르쳤는데 그러는 중에 보첼리는 어린 시절을 유독 오페라

 아리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Andrea Bocelli는 12세때 두 눈을 잃게 되고 만다. 그리고 피사 대학에 진학하여 법률을 전공하여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몇 해 동안 법정 선임 변호사로 활약한 경력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다른 것이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설적인 테너 프롱코 코렐리를 찾아가 그의

문하생이 된다.

 

그는 교습비를 마련하기 위해 클럽과 식당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미래 그의 부인이 될 엔리카를 만나게 된 것도
당시의 일 이었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1958년 9월 22일 이탈리아 농촌지역인 투스카니에서 포토와 올리브를 작하는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농촌이라는 환경대문에 음악 교육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첼리의 부모는 그를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으면 이후 플루트와 색소폰을 가르쳤는데 그러는 중에 보첼리는 어린 시절을 유독 오페라 아리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저 역시도 친척들의 모임에서 항상 어른들이 노래를 시켰던 그런 아이중 하나였죠.

누구든 스스로 가수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없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반응을 통해 그 결심을 만들어 내는 거죠" - 보첼리는 불행히도 보첼리가 두 눈을 잃게 되는 것은

 12세때 일이었다.

 

사람들이 이 점에 너무 감상적으로 느끼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것은 단순한 사고였죠.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부딪혔어요.

그리곤 뇌가 상처를 입었는데 며칠뒤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했죠." - 보첼리

 

그는 이러한 비극이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보첼리는 피사 대학에 진학하여 법률을 전공했다.

그리고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몇 해 동안 법정 선임 변호사로 활약한 경력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다른 것이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설적인 테너 프롱코 코렐리를 찾아가 그의

문하생이 된다.

 

그는 교습비를 마련하기 위해 클럽과 식당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미래 그의 부인이 될 엔리카를 만나게 된 것도

당시의 일이었다.

 

1992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록스타 주개로는 자신과 U2의 멤버 보노가 공동 작곡한 작품 "Miserere"의 데모 테입을 만들기 위한 오디션을 열었다.

이 노래에는 주게로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를 테너가 필요했던 것이다. 주개로는 이미 마음 속에 자신의 친구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결정하고 있었고 단지 데모 테입 제작을 위해 테너 가수를 물색 중이었다.

 

그때 주개로는 안드레아 보첼리를 선택했고 그렇게 제작된 데모 테입은 파바로티에게 들려지게 되었다.

 "주개로, 이 친구 누구야?" 파바로티는 깜짝 놀랐다.

 

"나를 위해 이 곡을 써준 것은 고마우나 이 곡은 그 누구에게도 부탁할 필요가 없네.

이 데모 테입을 부른 안드레아를 능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 파바로티


주개로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 믿을 수 없을 정도였죠.

 그는 다른 테너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뭔가를 갖고 있어요.

그것은 바로 목소리에 영혼을 불어넣은 능력이죠."

 

결국 "Miserere"는 주개로의 원래계획대로 파바로티와 함께 녹음되었다.

이 곡이 유럽 전역에 히트가 되자 청중들은 그의 공연에서 이곡을 라이브로 듣길 희망하였다.

그때 주개로의 공연 스케줄에 맞출 수 없는 파바로티를 대신하여 주개로는 보첼리를 초대하였다. 당시 보첼리는 무명의 가수였지만 주개로는 내심 관중의 반응을 확신하고 있었고 그것은 적중하였다.

 

보첼리는 주게로와의 공연을 통해 일약 그 이름을 유럽에 알리기 시작한다.

 보첼리와 파바로티와의 관계는 이렇게 주개로를 통해 이뤄졌다. 그의 목소리에 감탄한 파바로티는 연말 자선 콘서트에 보첼리를 초청했는데 여기에는 브라이언 아담스와 같은 팝스타도 대거 참석하였다.

 

96년 전 유럽 투어인 "Night of Proms"에는 거물급 팝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였는데 여기 초대된 보첼리는 도합

 50만명의 청중과 천만명의 시청자 앞에서 그의 매혹적인 소리를 들여주게 된다. 95도에 그는 Time to sya goodbye의 원곡 "Con Te Partiro 그대와 함께 떠나리"를 불렀고 이에 감동을 받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프로듀서 마우리오

 말라바시는 두 번째 앨범 "Bocelli"를 제작하여 이탈리아에서만 100만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1997년 7월 우리나라에 상륙한 보첼리의 첫 인터내셔널 앨범 "Romanza"는 발매되자마자

현재까지 클래식차트 상위권을 기록하며 지칠줄 모르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미 보첼리는 95년 블라디미르 페소세예프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 러시아 아카데미 합창단과 함께

 이탈리아인의 여행을 녹음한 바 있는데 이 앨범에는 19세기말, 20세기토 이탈리안들의 대규모 미국이민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여자의 마음" "생명의 양식"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와 민요등을수록하고 있다.

 

이는 판매만큼이난 자사의 레이블 이미지를 중시하는 폴리그램 그룹으로서는 보첼리의 클래식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을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다.파바로티의 전폭적인 지원과 이미 증명된 그의 탁월한 역량이 여실히 증명된 본 앨범은 현

 테너 기근의 성악계에 "위대한 테너의 탄생"과 "확실한 쓰리 테너의 대안"이라는 모범 답안을 제시한 것으로 간주된다.


어릴 적 이탈리아 투스카니의 정통 오페라 가수를 꿈꿨던 안드레아 보첼리.

 현재 그는 자신의 소망대로 오페라 무대에서 마음껏 노래하지는 못한다.

그는 그러나 자국의 오페라 무대보다 훨씬 더 '큰 물'인 온 세계를 무대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다.


 '영혼의 목소리', '눈먼 천사'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 보첼리는 비록 본격적인 오페라 가수는 못되었을지언정 자신

만이 갖는 음악재능을 극대화시키며 전 세계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클래식 가수로 우뚝 섰다.

 

 그의 음악은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가슴 속 깊이 스며들어 있다. 굳이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차태현, 김민희가 출연했던

모 이동통신 CF연작과 '결혼할까요'라는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그의 음악을 기억할 것이다.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불러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Time to say goodbye'와 'Canto della terra', 'Mai piu'

cosi' lontano' 등이 연속으로 방송전파를 타면서 국내 음악 팬들도 보첼리에 중독되었다.

 

 가장 최근에도 모 광고를 통해 'Time to say goodbye'의 원곡 'Con te partiro'를 들을 수 있다.

"내가 가장 열망하는 것, 내가 가장 희구하는 것은 관객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다. 어릴 적 내가 감동 받았던 것처럼

같이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날 울게 하고 날 꿈꾸게 했던 가수들에게 그토록 감동 받았듯이." - 보첼리

 

 보첼리가 밝히는 또 다른 '꿈(Sogno)'이다. 그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관객과의 소통 그리고 감동의 미학은 이미

충분히 현실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클래식과 팝 음악 모두에게 열려 있는 그의 음악을 듣고 공감하며 크게 감동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음악 팬들에게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유리돼 있던 팝과 클래식간의 거리감은 서서히 좁혀졌다.

그것은 '테너 빅3'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가 아니라 '4번째 테너', 바로 안드레아 보첼리가 이뤄낸 성과다.

 

 클래식을 수업을 받은 보첼리는 탄탄한 성악적 실력을 기반으로 클래식과 대중음악과의 부드러운 결합을 시도했다.

이탈리아 특유의 벨 칸토 창법으로 오페라를 부르는 한편, 감미로운 목소리로 팝 발라드를 노래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클래식과 팝을 섞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감동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의 음악에 감동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의 목소리가 지닌 특별함 때문이다.

 파스빈더의 영화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할까?

 

상처를 극복한 영혼의 심연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들을 잠식하며 숭고함마저 일깨운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팝과 클래식의 결합은 결코 한때의 방편이나 줄타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그것은 일부 한정된 클래식 팬들하고만 소통하는 게 아니라 보다 많은 대중과 호흡하고 싶다는 보첼리의 신념이 낳은

결과이기에 우리는 그 진솔한 열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클래식과 팝 음악 활동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그가 확립한 것은 팝과 클래식의 크로스오버이며, 최근 등장한 용어로는

'대중화된 오페라', '팝 스타일로 부른 오페라'라는 뜻의 팝페라(Popera)였다.

그가 등장한 1990년대 중반 이후 팝과 클래식의 크로스오버 또는 팝페라는 대중들에게 더욱 폭넓게 흡수되었고,

여러 스타들을 배출하며 클래식 음반계에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현재 활약중인 사라 브라이트만, '이탈리아의 마리아 칼라스' 필리파 지오다노(Filippa Giordano)

그리고 이지(Izzy) 같은 팝페라 가수들은 모두 보첼리의 수혜자들이다.

 

 잘 알려진 대로 보첼리는 시각장애인이다. 오페라 가수를 소망했던 그에게 앞을 볼 수 없다는 건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시골의 소산'이라고 칭할 정도로 이탈리아 투스카니(Tuscany)의 가족생활, 그리고 시골의 목가적인

문화와 전통에서 자양분을 얻으며 자란 그는 그 불편함을 딛고 일어섰다. 오페라 무대를 휘저으며 노래할 수는 없었지만 기어코 성악가수라는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자신의 영웅이던 성악가 프랑코 코넬리(Franco Corelli)의 제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수련을 쌓던 그는 1992년

 'Miserere'란 곡의 데모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록 뮤지션 주케로(Zucchero)와의 운명적 만남이

 성사되었다.

 

벨 칸토 창법에 충실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공명하는 비브라토가 특징인 그의 목소리는 주케로와 테너

 파바로티에게 큰 감명을 주었고, 이어 1994년에는 산 레모 가요제에서 'Il mare calmo della sera'란 곡으로 우승하며 그때부터 그의 음악생활이 꽃피기 시작한다.

 

 1994년과 1995년 클래식 음반 2장을 잇따라 발표한 그는 1997년 드디어 첫 크로스오버 앨범 를 출시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다.

 

 이어 1999년에는 본격적인 팝 음반 가 발매 즉시 빌보드 팝 차트 5위 내에 진입하는 '사건'을 연출했다.

 셀린 디온, 에로스 라마조티 같은 팝 가수들이 참여한 이 음반은 대중들에게 더욱 더 눈높이를 맞춰 훌륭한 팝 음반으로 평가받았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앨범이 발매되자 동시에 그가 전에 발표했던 앨범 4장이 모조리 미국 팝 차트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1987년 U2, 1992년 가스 브룩스 이후에 첫 번째 위업이었으며, 그와 같은 현상을 지켜본 미국 언론들은

 비틀매니아, 데드헤드에 버금가는 '보첼리매니아'(Bocellimania)라는 문구를 붙여줬다.

 

 특히 국내에서 인기가 높았던 그는 몇년전 직접 내한해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주옥같은 오페라 아리아를 열창, 한국 팬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안드레아 보첼리(이탈리아어: Andrea Bocelli Grande Ufficiale OMRI)는이탈리아의 테너 가수이다.
그는 아내와 두 명의 아들들과 함께 그가 태어나고 자란 토스카나 주 라자티코에서 살고 있다.
그는 선천적인 녹내장을 앓았으며, 12세 무렵에 축구 시합을 하던 도중 머리에 충격을 받고 시력을 잃었다.

 


그는 팝페라 장르를 개척했으며, 대중음악과 정통 클래식 음악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탈리아 투스카니의 작은 농가에서 출생한 안드레아 보첼리는 6세 때부터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을 접했다.
12세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지만,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

 

피사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수년 간 법정 선임변호사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어 변호사를 그만 둔다.
그 후 야간에 재즈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레슨비를 벌면서 명테너 프랑코 코렐리에게 성악레슨을 받았다.


1992년 이탈리아의 유명한 팝스타인 주케로와 함께 "Miserere"라는 곡을 부르게 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94년 산레모가요제에서 우승했다.

 

1996년에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과 부른 "Time to say goodbye"가 전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국제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는 팝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으며, 여러장의 솔로 음반을 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주빈 메타, 로린 마젤과 같은 세계적인 명지휘자들과 오페라《라보엠》,《토스카》음반을 녹음하기도 하고, 2003년에는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정명훈 지휘로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핑커톤 역을 맡기도 하는 등 정통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6년 이탈리아 공화국 Grande Ufficiale 훈장(2등급)을 받았으며,2010년 2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올랐다.

 

 

 

 

 

 

 

 

 

 

 

우리가 안드레아 보첼리노래를 듣게 될때,맨처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목소리가 지니는 흡인력이다.

이같은 흡인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

 

현재 이태리의 가장 유명한 대중가수인 주케로의 목소리가 갖는 흡인력과는또 다른 느낌을 주는 목소리는 그에게만

 특유한 어떤 내면적 정열에서부터 오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선뜻 풀이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는 목소리로,거기에는 낭만적인 정열의 억제된 폭발,

목가적인 서정성의 자연스러움,명상적인 사유의 깊은 내면적 통찰,그리고 성스러움으로 향하는 인간적인 갈구 등의

요소들이,교묘( ? ) ( 오묘 라는 표현보다는 교묘 라는 표현이 더 맞을듯,.. ) 하게 뒤섞여 있다.

 

그러므로 그가 어떤 종류의 노래를 부르던,그의 노래는 우리들에게는 항상 신선한 충격이며 동시에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그 예로 그이 두번째 앨범인 "보첼리" 에서,그는 오페라 아리아로부터 성가곡인 아베마리아 그리고 이태리 민요인

칸쏘네에서 이르기까지,모든 종류의 노래를 똑같은 감동을 자아내도록 노래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부른 오페라 아리아인 "공주는 잠못 이루고 (Nessun dorma)" 에서도,그의 해석은 서정성과 장엄성이

 기묘하게 배합된 목소리의 질로써,이곡이 포함하고 있는 격정적인 감정의 굴곡을 너무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살려내고 있기 때문에,그가 이 곡을 처음 불렀을때에 청중들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결국 안드레아 보첼리 출현으로,대중음악과 고전음악 사이에 경계선에 구애되지 않은채,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그의 목소리가 선사하는 음악예술의 세계로,모두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길은 지금껏 우리 모두의 음악을 위해서 기다려 왔던 이상적인 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안드레아 보첼리분명 이 시대가 낳은 불세출의 스타임에 분명하다.

이미 Romanza 출시전부터 보첼리는 다음 레코딩은 '오페라 아리아' 가 될 것임을 피력해왔다.

 

이미 보첼리는 95년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지휘하는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러시아 아케데미 합창단과 함께

Viaggio Italiano (이탈리아인의 여행) 을 녹음한 바 있는데,이 앨범에는 19세기말, 20세기초 이탈리아인들의

대규모 미국이민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공주는 잠 못 이루고', '여자의 마음', '생명의 양식', '무정한 마음' 등,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와 민요등을수록하고 있다.

 

이는 판매만큼이나 자사의 레이블 이미지를 중시하는 폴리그램 그룹으로서는보첼리의 클래식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을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바로티의 전폭적인 지원과 이미 증명된 그의 탁월한 역량이 여실히 증명된 본 앨범은현재 테너 기근의 성악계에

 '위대한 테너의 탄생' 과 '확실한 쓰리 테너의 대안' 이라는 모범 답안을제시한 것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