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분더리히 (테너) Fritz Wunderlich (tenor)
후버트 기젠 (피아노) Hubert Giesen (piano)
Schubert, Die Schöne Müllerin D.795
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가곡 분야에서 슈베르트의 업적은 다른 어떤 작곡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31세의 짧은 삶 동안 600여 곡의 작품을 작곡한 슈베르트는 18세기 유럽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가곡에 대한 인식, 즉 ‘가곡은 자연스러움과 단순함을 가지고 시의 내용(text)을 잘 전달해야 하는 매개체’라는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냈다.
즉, 이전까지는 단순히 텍스트를 전달하는 성악과 시의 운율과 내용을 보조만 하던 피아노 반주 사이의 불균등한 역할 구도를 깨고, 피아노 반주의 존재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켜 노래와 반주를 서로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피아노 반주 역시 노래만큼이나 가곡의 의미와 본질을 전달하는 데 본격적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슈베르트는 왕립학교를 마친 1813년부터 리히덴탈의 초등학교 교사로서 3년간 근무하게 되는데 그 당시에 접했던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서 강렬한 영감을 얻어 최초의 예술가곡으로 분류할 수 있는 <물레 잣는 그레트헨>(Gretchen am Spinnrade)을 1814년에 작곡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비로소 피아노 반주가 성악에 의해 표현되기 힘든 작품의 분위기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하며, 노래또한 피아노가 이중창의 요소로 어우러지는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슈베르트의 지속적인 시도로 인해 비로소 우리는 이전의 가곡의 범주와는 다른 형태로 분류되는 ‘예술가곡’
(Kunst-lied)이라는 장르를 얻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음악세계를 관통했던 예술의 핵심은 바로 이 예술가곡에 있었으며 예술가곡의 정점은 바로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두 개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와 <겨울 나그네>(Die Winterreise>(원제는
겨울여행)를 통해 완성되었다.
물방앗간 아가씨를 짝사랑한 청년의 슬픈 사랑 이야기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냇물의 노래는 청량 음의 반주가 이어지며 젊은이의 솔직함과 냇물의 우아함이 조화되어 있다.
최초의 구상 이후 나머지 다른 시집의 작품을 추가적으로 덧붙여 완성한 <겨울 나그네>에 비해 처음부터 하나의 연작시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는 일관적인 스토리 속에서 각텍스트들이 이루고 있는 앞뒤 연관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물방앗간 아가씨와 한 청년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숲속의 시냇물을 따라 방랑하던 청년은 물방앗간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 잠시 정착하게 된다.
그 집 주인에게는 어여쁜 딸이 하나 있었고 청년은 그 처녀를 사모하게 된다.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은 꿈에 부푼 청년은 주인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인정도 받게 된다.
그러나 아가씨는 새로 나타난 사냥꾼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질투심에 괴로워하던 청년은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시냇물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 최후를 맞는다.
이 비극적인 연가곡은 최초 1824년 자우어 & 라이데스도르프 사에서 5권으로 분할되어 출판되었고, 슈베르트의 친구였던 성악가 쇤스타인에게 헌정되어 초연되었다.
하지만 당시 연가곡 전곡이 모두 불리지는 않았으며, 비로소 전곡이 모두 연주된 것은 1856년에 이르러서였다.
1. 방랑 Das Wandern : 5절의 유절가곡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밝은 느낌을 품고 있다.
왼손의 8분 음표 음형은 방랑자의 발걸음을 연상시키며 16분 음표는 시냇물의 흐름을 나타낸다.
2. 어디로 Wohin? : 냇물을 따라서 길을 떠나는 젊은이의 기대가 이어진다. 반주부의 오른손이 6연음으로 냇물의 흐름을 나타낸다.
3. 멈추어라 Halt! : 장면 전환적인 곡으로 반주의 저음부에서 물레방아의 회전을 묘사하고 있다.
4. 시냇물에게 감사 Danksagung an den Bach : 젊은이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는 이곳에서 머무르려고 결심한다. 반주부는 유장한 냇물의 흐름을 묘사한다.
5. 일을 마치고 Am Feierbend : 일을 잘해 아가씨의 마음을 얻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자신의 힘을 탓하는 젊은이의 한탄이 이어진다.
젊은이의 이야기는 총 3개의 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대목에서 화음의 연타나 물레방아가 멈추는 것을 묘사하는 인상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6. 호기심이 강한 젊은이 Der Neugierige : 5곡과 마찬가지로 3부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아가씨의 마음을 알고 싶은 젊은이의 마음을 나타낸다. 아가씨의 마음을 묻는 대목은 레치타티보 양식으로 되어있다.
7. 초조 Ungeduld : 4절의 유절가곡으로 되어 있다. 젊은이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묘사한 3음 연부의 반주가 인상적이다.
8. 아침인사 Morgengruß : 4절의 유절가곡으로 되어 있으며 4번의 반복마다 조금씩 변화되는 음형이 인상적이다. 부드러운 감성으로 물방앗간 아가씨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9. 물레방앗간의 꽃 Des Müllers Blumen : 경과구처럼 쓰인 곡이며 단순하고 소박한 선율로 이루어져 있다.
10. 눈물의 비 Tränenregen : 작품을 통틀어 가장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곡이다. 4절의 유절가곡으로 되어 있으며 아가씨와의 행복한 시간들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A장조로 되어 있는 3절까지는 행복함을 마지막 4절은 F단조로 전조되는데 이는 급작스럽게 떠나는 아가씨와 이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복선처럼 제시된다.
11. 나의 것 Mein! : 사랑을 확신하는 젊은이의 행복한 마음이 나타나있다. 모든 노래 중에서 가장 힘찬 활기를 띠고 있다.
12. 휴식 Pause : 우쭐거리는 자신감은 불안감으로 급반전되는데 중간부에서 단조로 전조되는 부분은 그런 인상을 더욱 짙게 한다.
13. 초록색 리본으로 Mit dem grünen Lautenbande : 다시 소박한 민요 선율로 전환되며 명쾌하고 생기 넘치는 곡이다.
14. 사냥꾼 Der Jäger :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청년의 연적이자 경쟁자인 사냥꾼이 나타나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자 청년의 마음은 다급해지기 시작한다.
청년의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전체적으로 스타카토로 일관되며 청년의 격앙된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15. 질투와 자랑 Eifersucht und Stolz : 반주부는 냇물 흐름을 묘사하지만 전과 다르게 리듬이 격해진다. 질투심을 그려낸 듯하다.
16. 좋아하는 빛깔 Die liebe Farbe : 젊은이의 불안감은 현실로 다가온다. 절망감에 그녀가 좋아하는 녹색 풀 밑에 묻히고자 한다.
17. 싫어하는 빛깔 Die böse Farbe : 청년은 결연히 이별을 선언한다.
전체적인 분위기 역시 결의가 느껴지는 강한 선율이 사용되어 인상적인 효과를 드러내며 끝부분은 처절하게 마무리된다.
18. 시들어버린 꽃 Trockne Blumen : 느릿한 8분 음표의 반주는 죽음을 결정한 청년의 마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E단조의 우울한 시정은 청년이 행복한 나날을 떠올리는 듯한 대목에서 E장조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E단조로 전환된다.
이 선율로 이후 ‘시든 꽃에 의한 서주와 변주곡’이 작곡되었다.
19. 물레방앗간과 시냇물 Der Müller und der Bach : 슬픔에 젖은 젊은이와 평화로운 냇물의
20. 시냇물의 자장가 Des Baches Wiegenlied : 청년의 마지막 노래로 단조가 아닌 장조로 유유히 제시된다.
5절의 유절가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차분하게 냇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청년의 고단한 모습이 그려진다.
슈베르트는 1823년에 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이외에도 1827년에 "겨울나그네", 또 사후에 출판된 "백조의 노래" 등 3개의 가곡집을 냈다.
이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는 시인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총 20곡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슈베르트로서도 처음 낸 가곡집이지만 낭만파 시대에 처음 출판 된 가곡집이기도 하다.
이 가곡집은 물방앗간의 처녀와 고용인인 사나이와의 사랑을 테마로 한 것으로, 소녀의 아버지와, 사랑의 적수인 사냥꾼과 시냇물과 물방아 등에 대하여 지은 소박한 전원의 소품집이다.
방랑의 길을 떠난 품팔이 젊은이가 봄날의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따라서 헤매다가 방앗간에 고용되었다.
그는 이 집의 아름다운 딸에 대하여 사랑의 불길을 태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딸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부지런히 일했다.
주인에게도 인정을 받게 되었으나 딸의 속마음을 몰라 사랑의 번뇌는 계속 된다.
그러다가 딸의 호의를 알게 된 청년은 그녀가 좋아하는 푸른 리본을 만들어 놓고 기뻐한다.
그러나 얼마 후 횡포한 젊은 사냥꾼이 나타나 딸의 마음을 사로잡자 그의 사랑은 무참하게 깨어져 버렸다.
실연 당한 그는 눈에 보이던 모든 광경이 일변해 버리고, 절망 끝에 마음의 벗이었던 시냇물에 안식을 찾아 몸을 던져 버린다.
그의 친구 '란트 하르팅거'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친구를 기다리며 책상위의 시집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서 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곡을 붙였는데, 다음날 친구가 찾아왔을 때는 이미 3편의 시에 곡이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그는 만성병으로 입원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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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황실왕립신학교의 합창대원이 되었다.
여기에서는 A. 살리에리 등 당시 일류작곡가의 가르침을 받음과 동시에 친구 J. 슈파운이 조직한 학생관현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 뒤에 지휘자를 지냈다.
또 방학 때는 아버지·형들과 현악 4 중주곡을 즐기며 여러 음악체험을 쌓았다.
13년 신학교를 떠나기까지, 이미 도이치번호 82(이하 D로 약칭)의 교향곡 제1번, 현악 4중주곡, 가곡 등을
작곡하였다. 집에 돌아온 슈베르트는 사범학교를 다닌 뒤, 16년까지 아버지의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내성적이어서 교직은 힘들었으나 작곡면에서는 우수한 작품을 남겼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1814년 리히텐탈교회에서 작곡자 지휘 아래 연주된 미사곡 F장조(D105), 가곡
[실을 잣는 그레트헨, D 118], 15년에는 가곡 [방랑자의 밤의 노래, D 224] [들장미, D 257] [마왕, D 328]등이
있다.
슈베르트의 작품에 반한 친구들이 모여, 그의 음악을 즐기는 슈베르티아데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8년과 24년 2회에 걸쳐서 J. 에스터하지백작의 집 음악가정교사로서 헝가리의 젤리츠에 초대되었다.
백작의 딸 마리와 칼로리네를 지도하기 위해서였다.
헝가리에 체류하는 동안 연탄용(連彈用)피아노곡 [헝가리의 디베르티멘토, D815, 작품 54]를 작곡하였다.
1816년 친구 F. 쇼버로부터 당시 유명한 오페라가수 M. 포글을 소개받았고, 이로 인해 슈베르트는 19년 오페레타
[쌍둥이, D 647]를 작곡했다.
그러나 다른 극장작품과 같이 이것도 몇 회 공연되었을 뿐 잊혀져 버렸다. 그의 이름은 오히려 21년 [마왕]이 작품
1로 출판되자 가곡작곡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포글은 이 시기, 슈베르트의 가곡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22년 작곡된 [미완성교향곡, D 759]은,
보통 교향곡이 4악장인 데 비해 제 2 악장까지밖에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왜 미완성으로 끝났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최근에는 22년 말에 발병한 매독 때문이라고 본다.
23년 병고 가운데 작곡된 가곡집이, 물레방앗간 직인의 슬픈 이야기인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D 795,
작품25]이다.
그를 괴롭히는 병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명성은 차츰 오스트리아 국외로도 퍼져갔다. 25년에는 베를린에서 당시의
유명한 여성가수 A.M. 하우프트만이 [마왕]을 노래했으며, 슈베르트는 영국 작가 W. 스콧의 시 [호수의 숙녀]를
작곡한 [엘렌의 노래, D837∼839, 작품 52] 제3곡이 유명한 [아베마리아]에 영어 가사를 붙여 출판했다.
27년 제 5 곡의 [보리수]를 포함한 가곡집 [겨울나그네, D911, 작품89]를 작곡, 28년 3월에는 자작만으로 콘서트를
열어 성공을 거두고, 그 후 교향곡 [그레이트, D944], 현악5중주곡(D956), 가곡집 [백조의 노래, D957] 등의 대작을
완성시켰지만, 그해 11월 19일, 31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유해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빈의 베링묘지 L. 베토벤의
무덤 옆에 안장되었다.
작품
슈베르트의 작품은 작품번호가 주어져 있는 것이 아주 적고, 그것도 연대순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에는
O.E. 도이치가 전작품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일련번호인 도이치번호사용(또는 작품번호 병용)이 일반화되어 있다.
도이치의 작품목록에 의하면 슈베르트의 전작품은 998곡이며, 그 중 가곡은 630여 곡이다. 슈베르트는 그 이전에는
민요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은 가곡을 예술가곡 수준까지 높였다.
그 선율과 화성의 아름다운 변화, 반주피아노의 자율성 등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주 <가곡의 왕>이
라 불린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오페라·미사곡·교향곡·실내악·피아노곡 등에도 발휘되어 있어, 모두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각 장르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1) 교회음악
미사곡은 완성한 것이 6곡 있다. 제 5 번A 장조(D 678, 1822)와 제 6 번E 장조(D 950, 1828)가 현재에도 자주
연주된다. 소품이지만, [독일미사곡, D872, 1827]도 소년합창단 등의 연주에 의해 널리 친숙해져 있다.
(2) 무대작품
오페라가 3곡, 오페레타가 5곡, [로자문데, D797, 1823)] 외에 미완성곡이 10곡 있다.
(3) 합창·중창곡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슈베르트는 성악 카논, 3중창곡, 4중창곡 외에 규모가 큰 2중합창을 위한 작품 등,
이 악종에서 총 100곡 이상 작곡했다.
작자 생전부터 사랑받은 작품에는 남성 4 중창곡 [작은 마을, D598, 작품 11의 1, 1817] [곤돌라의 뱃사공, D809,
작품 28, 1824], 남성 8 중창과 저음현악기를 위한 [물 위의 정령들의 노래, D714, 작품 167, 1821], 여성 4 중창을
위한 [시편 23번, D706, 작품 132, 1820] 등이 있다.
(4) 교향곡
현재 남아 있는 완성곡은 7곡이지만, 미완으로 끝난 제8번 [미완성교향곡, D759, 1822]은 유명하다.
1828년 완성된 C장조 교향곡(D 944)은 R. 슈만이 말한 <천국적인 길이>를 가져, [그레이트, Great]라고도 한다.
또, 이 교향곡은 구(舊)슈베르트전집에서는 제 7 번으로 되었지만, 그 뒤 [미완성교향곡]보다도 뒤에 작곡된 것을
고려하여 제 9 번, 최근에는 [미완성교향곡]을 제 7 번, 이것을 제 8 번으로 부르고 있다.
이 교향곡은 최근 분실했다고 생각되었던 [그문덴가슈타인교향곡, D849]과 같은 작품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있다.
(5) 실내악
현악 4중주곡은 현재 남아 있는 완성작이 13곡 있다. 여기에 미완성 2곡(D 68과 D 703)을 합하여 제15번까지
일련번호가 붙여져 있다.
제13번 a단조 [로자문데, D804, 작품 29]와 제14번 d단조 [죽음과 소녀, D810]는 모두 느린 악장에 변주곡이
사용되었다.
피아노 5 중주곡 [송어, D667, 작품 114]에서도 제 4 악장에 자작의 [송어]를 주제로 한 변주곡을 사용하고 있다.
현악 5 중주곡(D 956, 1828)은 바이올린·비올라·첼로의 편성이며, 슈베르트의 실내악 중 최고걸작으로 꼽힌다.
그 밖에 피아노 3 중주곡, 선율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 몇 개 있다.
(6) 피아노곡
완성한 소나타는 13곡 있다. 그 밖에 리트(가곡) [방랑자, D493, 작품 4의 1, 1816]의 주제를 사용한 환상곡
[방랑자, D760, 작품 15, 1822], 2개의 즉흥곡집 (D899, 작품 90, 1827, D 35, 작품 142, 1827) 등이 있다.
또, 30곡을 넘는 여러 가지 연탄곡은 W.A. 모차르트의 작품과 함께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7) 가곡
가곡 중에서 아름다운 작품이 매우 많다.
자연의 아름다움, 상쾌함을 노래한 것에 [물 위에서 노래한다, D774, 작품
72, 1823] [봄에, D882, 작품 101의 1, 1826] [세레나데, 들어라 들어라! 종달새를 D889, 1826] [초원의 노래,
D917, 작품 115의 1, 1827], 음악에 대한 감사, 음악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에 [음악에 부쳐, D547, 작품 88의
4, 1817], 애심을 노래한 [그대는 나의 안식처, D776, 작품 59의 3, 1823], 세계의 자장가 중에서 가장 애호되고
있는 [자장가, D498, 작품 98의 2, 1816], J.W.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로부터의 3곡 [미뇽, D321, 1815;D
726과 D 727, 1821], 3곡의 [하프연주자의 노래, D478, 작품 12, 1816·1822] 등이 있다.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빈의 리히텐탈에서 출생. 초기 독일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가곡의 왕’으로
불리고 있다.
아버지 프란쯔 테오도르는 모라바의 농가 출신, 어머니 마리아 엘리자베트도 모라바의 직공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 프란쯔 테오도르는 빈으로 와서 교원 양성교육을 받고 리히텐탈에서 국민학교를 경영하였다.
프란츠 페터는 그 넷째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어 8세 때부터 아버지와 근처의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부터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오르간을 배우고 1808년 왕실예배당의 소년가수 시험에 합격하여 국립신학교(Staatkonvikt)라는 기숙사에 수용되어
피어리스트 수도회의 규정에 따르는 훈련 및 일반교육과 일류 교사로부터의 음악교육을 받았다.
특히 살리에리가 그의 음악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작곡 및 그 밖의 것을 가르쳤다.
재학 중에는 학생 오케스트라에 참가하여 모짜르트 하이든 등 의 서곡. 교향곡을 익히고, 예배에서는 미햐엘 하이든
폭스 에베를린 등의 곡을 노래 불렀다. 정 지휘자 부재중에는 지휘봉을 드는 일도 있었고 또 저명한 극장의 오페라를
들을 기회도 많았으며, 여러 가지로 재능을 키울 기회도 많았을 뿐 아니라 평생 변함없는 우정을 나눈 요제프 시파운을
사귀게도 되었다.
1813년에 변성기가 와서 콘빅트를 떠났으나 때때로 이곳으로 와서 작곡 등의 레슨을 받았다.
재학 중에 이미 상당한 작품을 완성하였는데 그 중의 어떤 것은 습작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었다.
1년간의 교원양성 과정을 마치고 아버지 학교의 조수로 일하면서 대작에 착수하여 제1교향곡 D장조를 완성하였고
이어서 오페라 <악마의 별장>에 착수하여 1814년 5월 14일에 완성하였으나 살리에리의 지도에 따라 개작하여
10월에 완성하였다.
6월에는 F장조의 미사곡을 완성하였고 10월에 리히텐탈의 <14개의 구난성인 (救難聖人)교회에서 초연하여 호평을
받아 프란쯔 페터의 이름이 빈 시민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이때 소프라노 독창을 한 이웃 상인의 딸 테레제 그로프는 슈베르트가 평생을 수 없던 애모(愛慕)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 해 10월에 작곡한 <실을 잣는 그레트헨>은 그의 가곡의 장래의 방향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1815년 18세 때는 생애 중에서도 드문 다작(多作)의 해로서, <들장미> <마왕> <끊임없는 사랑> 등의 명작을 포함하는
약 145개의 가곡, G장조의 미사곡, 제2교향곡 Bb장조, 오페라는 미완성의 것을 포함하여 4곡, 그 밖의 것이
작곡되었다. 외적인 생활은 단조롭고 그 때까지도 조교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시파운의 소개로 괴팍한 문학청년
마이어호퍼와 알게 되었다.
시파운은 슈베르트가 그때까지 만든 괴테의 시곡(詩曲)을 정서시켜서 정중한 편지와 함께 괴테에게 보냈지만 그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편지를 제외한 악보는 반송되어 왔다.
조교사의 일에 싫증이 난 그는 라이바하의 교원양성학교의 음악교사의 자리를 얻으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816년 5월 청년 쇼버의 권고로 그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되어 작곡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으나 아직도
조교사의 일을 계속한 듯하다.
12월 쇼버의 어머니가 빈으로 나와 넓은 집에서 살게 되었으므로 슈베르트는 교직을
물러나서 그 집안의 신세를 지면서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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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린 성병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822년에 베토벤을 방문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 것은 후에 유명한 음악 평론가가 된 로흘리쯔가 아내와
친구에게 쓴 편지를 근거로 하여 나온 소리이지만, 이 편지는 어떤 고의적인
의도에 의한 위조임이 밝혀졌다.
또 이 로흘리쯔는 모짜르트가 자신의 창작태도를 자세하게 기술한 편지를 위조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해는 전해나 그 전해보다 수확이 많았던 해였다.
피아노곡으로서는 <34개의 감상적인 왈츠> <악흥(樂興) 의 때> <12개의 독일 무곡> 등이 있다.
게다가 이해부터는 슈베르트를 둘러싸고 그의 새 작품을 듣는 모임이 여기저기의 가정에서 개최되게 되었다.
이것을 슈베르티아데라 하였다.
시타이어와 그라쯔의 음악협회는 그를 명예회원으로 추천했고, 전자에게는 b단조 <미완성>교향곡을 보냈다.
10월 25일 베버의 <오이리안테>가 빈에서 공연되어 이 기회에 슈베르트는 그 작곡자와 면담하였는데, 이때 평을
해 달라는 청을 받고 솔직하게 혹평을 하였으나 베버는 화를 조금도 내지 않고 오히려 나중에 <알폰소와 에스트렐라>
를 공연시키려고 무진 애를 써 주었으나 끝내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오페라에는 계속 실패였으나 1825년 2개의 피아노 소나타 A장조, Op.42와 D장조, Op.53은 호평을 받았고 특히
전자는 곧 출판되어 북독일 스위스의 음악애호가들을 기쁘게 했다.
이 해 처음으로 친구인 화가 쉬빈트의 이웃으로 이사하여 그들의 친분도 더욱 두터워지고 또 슈베르티아데도 큰
성황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지병이 재발하여 생활을 어둡게 하였다. 5월 포글과 함께 시타이어로 갔는데 그 도중에 가시타인의
온천장에 체재하면서 가시타인 교향곡을 작곡하였다고 전하여지고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전혀 없고, 현지로서는
1828년에 완성한 C장조의대형 교향곡의 일부 초고가 여기에서 쓰여졌다고 인정되고 있는 정도이지만 이것도
정설은 아니다.
피아노 소나타는 그가 신처럼 존경한 베토벤의 만년의 스타일에, 슈만 비슷한 젊음, 게다가 그에게 독특한 서정성의
혼합이라 생각되지만, 원래 베토벤과 같은 구축성이 강한 단계를 거치고 난 자유로움이 아니기 때문에 이완된
부분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방랑자 환상곡>의 어떤 부분은 완전히 슈만적이며 또 연주 기교면에서는 리스트 에 가깝다.
<악흥의 때> <즉흥곡>은 멘델스존이나 슈만의 소곡 연작의 직접적인 선구(先驅)이며, 19세기 후반에 무수히
만들어진 서정소곡 또는 살롱 피스의 출발점이 되었다. 피아노 연탄곡과 중(합)창곡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유행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대형의 교회음악은 그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이 성악적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오케스트라의 표현력을
중시한 교회음악과 상당히 거리가 먼, 그에게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의 2대 미사곡이 모두 크레도의 전례문의 일부를 빠뜨리고 있는 사실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갖가지 추측을 낳게
하고 있으며, 그가 교회를 부정하였다는 설도 있었으나 이것은 지나친 생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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