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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Grieg -Solveigs sang - Malena Ernman, mezzo-sop외


 

 

 

 

 

Solveig's Song

Grieg (1843-1907, Norway)

 

 

 

 

 

Solveigs Lied(Solveig's Song) 연속듣기

 

1. 관현악곡

2. Barbara Bonney (Soprano)

3. 조수미 (Soprano)

4. Elly Ameling (Soprano)

5. Malena Ernman (Soprano)

6. Meav (Popera)

7. Sarah Brightman (Popera)

8. Evgenia Zamchalova (Popera)

9.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Slava (Kagan Paley), counter tenor

 

바바라 보니 (Barbara Bonney) 성악가 

 

 

출생 1956년 4월 14일, 미국

데뷔 1979년 오페라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학력 뉴햄프셔 대학교  

경력 1997년 DECCA 음반사와 계약 
       1984년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오디션에 합격

 

 

아르농쿠르와의 <마술피리>, 줄리니가 지휘한 브람스 <레퀴엠>, 레바인의 <팔스타프>를 비롯하여 45개가 넘는

오페라에 출연했고 지금껏 60여장의 음반을 낸 바바라 보니는 뉴 햄프셔 대학에서 독일어와 첼로를 공부한 후 뒤늦게

 모차르테움에서 성악을 공부,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여 오늘날 우리 시대의 최고의 파미나로 손꼽히는 리트 전문

 소프라노이다.

 

 

 

 


 

 

 

Grieg, Peer Gynt Suite No.1 & No.2

 

그리그 '페르귄트 조곡 모음곡'

Edvard Grieg 1843-1907

Richard Kraus, conductor

Bamberg Symphony Orchestra

1959 DG Label

 

노르웨이 국민주의 음악의 대가 그리그는 1843년 노르웨이의 항구도시 베르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북해로 새우잡이를 왔다가 노르웨이에 정착한 스코틀랜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노르웨이 여성이었다.

 

 그리그가 태어났을 당시 노르웨이는 1536년에 덴마크에 병합되어 약 300여 년간의

지배를 받았고 1814년부터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격파한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노르웨이가 독립국이 된 것은 1905년의 일이었다고 하니 그리그가 태어난 1843년은

 노르웨이가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였다.

 

    노르웨이 국민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그리그

 

그리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같은 베르겐 출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올레 불의 인정을 받아, 그의 권유로 15세 때(1858년)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유학한다.

이 시절 클라라 슈만이 연주하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도 들었고 바그너의 <탄호이저>도 여러 번 보았다 전해진다.

 

 귀국 후 21세 때,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젊은 작곡가였던 노르드라크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이듬해 코펜하겐으로

 옮긴 그리그는 덴마크 음악계의 대가인 닐스 가데와 교류했다.

 

그리그는 1865년에 로마를 여행했고, 1870년에 리스트의 초대로 재차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

 이때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1868)을 연주한 리스트는 그리그를 극찬했다고 한다.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리그는 오슬로 음악원 부원장, 필하모니아 협회의 지휘자 등을 겸하면서 작곡에 몰두했다.

 

 1867년에 오슬로 음악 협회를 조직하여 7년간 지휘자로 활약했고, 1874년 31세 때부터 고향인 베르겐이나 오슬로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국가의 종신 연금을 얻어 작곡에 전념했다. 그리그가 <페르귄트>를 작곡한 것은 이 시절이었다.

 

 

 


 

 

 

위대한 극작가 입센의 작품에 음악을 입히다

 

작곡가들의 작품을 작곡 분위기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확신에 의해서 감전된 듯 써나가는 작품이 있고, 반신반의하며 회의 속에서

 작곡하는 곡이 있다고 할 때 <페르귄트>는 명백히 후자에 속할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리그는 평소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 서정적이라 극음악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페르귄트>를 처음 의뢰 받았을 때도 반신반의했었다고 한다.

 

 돈 때문도 아니었고 단지 주제가 음악적이지 않아 아무런 영감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낳은 위대한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위촉을 받고 힘을 내

 작곡에 임한 결과, 그리그의 최고 명곡일 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걸작 <페르귄트>가 탄생했다.

 

그리그는 의뢰를 받은 31세 때 이 곡을 쓰기 시작했고, 다음 해 여름에 완성했다. 처음에는 피아노 2중주 형식으로

 출판했다가 뒤에 오케스트라로 편곡했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

입센은 그리그에게 자신의 작품 <페르귄트>에 곡을 붙여줄 것을 의뢰했다.

이 극음악은 5곡의 전주곡을 비롯하여 행진곡, 춤곡, 독창곡, 합창곡 등 모두 23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헨리크 입센이 노르웨이 민속설화를 소재로 해서 쓴 <페르귄트>의 환상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페르귄트는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재산을 낭비하고 몰락해버렸기 때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과부가 된 어머니 오제와 함께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페르귄트는 대단히 게으른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는 자신이 잘 될 것이라 큰소리치며 꿈을 꾸는 몽상가이자 방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돈과 모험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면서 기적적인 모험을 겪는 페르귄트는 남의 부인을 빼앗기도 하고, 험준한 산에서

마왕의 딸과 같이 지내기도 한다. 농부의 딸인 솔베이그가 나타나 서로 사랑을 맹세하지만, 페르귄트는 애인인 솔베이그를 두고 늙은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겪는다.

 

페르귄트는 다시 먼 바다로 떠난다. 아프리카에서는 추장의 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등 부와 모험을 좇아 고뇌와

 유랑의 모험을 하던 페르귄트는 끝내 몰락한다. 그는 노쇠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다.

 

고향 산중의 오막살이에는 솔베이그가 페르귄트의 귀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발이 된 채. 그리하여 페르귄트는 그를 사랑하던 여인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그는 후에 이 극음악 가운데 가장 뛰어난 4개의 작품을 뽑아 ‘제1모음곡’으로 하고 그 후에 다시 4곡을 선정하여

 ‘제2모음곡’으로 삼았다.

 

 

 


 

 

제1모음곡 Op.46

 

1. 아침의 기분 (Morgenstimmung/Ochtendgloren)

 

원래 4막의 전주곡으로 경쾌한 목가다.

조용한 새벽빛이 떠오르는 모로코 해안의 아침 기분을 목가풍으로 묘사했다.

이 아름다운 아침의 정경은 한 폭의 그림같이 전개된다.

 

2. 오제의 죽음 (?ses Tod)

 

느리고 비통하게 연주된다.

 어머니 오제는 산에서 돌아온 페르귄트를 맞아 병상에서 아들의 공상 이야기를 들으며 임종을 맞는다.

 

 여기서 나오는 간명한 슬픈 노래가 고독했던 늙은 어머니의 죽음을 잘 그려놓았다.

 전곡을 통해 슬픔을 가장 잘 대변해 놓은 곡이고, 유유한 구상에 높고 풍부한 감정, 어두운 측면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만가이다.

 

3. 아니트라의 춤 (Anitras Tanz)

 

4막에 나오는 아라비아 추장의 천막에서 추장의 딸 아니트라가 추는 춤곡이다. 매력적이고 깨끗한 작품으로 현악기와

 트라이앵글로 연주하는 동양풍의 요염함이 돋보인다.

 

4. 산속 마왕의 전당에서 (In der Halle des Bergk?nigs)

 

2막 산 속 마왕의 전당 장면이다.

개막 전부터 연주되는 행진곡풍의 곡으로 동굴에 사는 마왕의 부하들이 춤을 추면서

 마왕의 딸을 페르귄트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 주위를 돌아다닌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큰 폭음이 폭발해 악마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리그는 이 부분에 대해 “소똥 냄새가 나는, 너무도 노르웨이적인 작품이다”라고 코멘트했다.

 

 

 

 


 

▲부와 모험을 쫓아 유랑하는 페르귄트의 모습을 그린 삽화

 

 

 

Limburgs Symfonie Orkest ol.v. Otto Tausk

I Ochtendgloren
II Aases dood
III Anitra's dans
IV In de hal van de bergkoning

 

 

 

 


 

 

 

제2모음곡 Op.55

 

1. 신부의 약탈과 잉그리드의 탄식 (Der Bruderovet Ingrids Klage)

 

원곡에서는 2막의 전주곡이다. 신부의 약탈이라는 짧은 테마가 관현악을 통해 격렬하고 야성적인 절규를 하게 된다.

페르귄트는 신부를 약탈해 산으로 가지만, 곧 그 여자에게 권태를 느껴 새로운 꿈을 그리며 깊은 산으로 도망치게 된다. 처음에는 약탈을 묘사한 음악이 나오지만 나중에는 의지할 데 없는 탄식을 묘사하고 있다.

2. 아라비아의 춤 (Arabischer Tanz)

 

4막에 나오는 아라비아 추장의 장면이다.

경쾌한 활기를 띤 춤곡으로 동양의 이국적인 매력에 반해버린 페르귄트의 심리 상태를 묘사했다.

페르귄트는 마치 예언자처럼 가장하고 춤을 구경한다.

 

아라비아의 아름다운 소녀들은 “예언자가 나타났으니 플루트와 탬버린이여 기뻐 소리를 외쳐라” 하면서 합장하며

춤을 춘다.

 

3. 페르귄트의 귀향 (Peer Gynts Heimkehr)

 

5막에 나오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해안의 저녁이다. 페르귄트는 미국에서 금광을 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돌아가는 길에 폭풍을 만나 배가 부딪혀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알몸뚱이가 된다.

그리그는 천지를 뒤엎는 큰 폭풍우의 정경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4. 솔베이그의 노래 (Solveigs Lied)

 

페르귄트의 귀향을 애타게 고대하는 솔베이그의 심정을 노래한 너무나 유명한 이 멜로디는 이 극에서 세 번 나온다.

 꿈을 그리면서 헤매던 몽상가 페르귄트는 기쁨과 슬픔이 얽힌 오랜 여정을 마치고 지친 늙은 몸으로 고향의 오막살이로 돌아오게 된다.

 

백발이 된 솔베이그는 페르귄트와 만나게 되는데, 그는 자기를 위해 기다려준 솔베이그의 무릎에 엎드려 평화스런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 곡은 마쓰모토 레이지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의 테마 음악으로도 변용되었는데, 아내의 영원한

순정을 노래한 이 명곡의 내용은 이렇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 오! 우리 하느님 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늘 고대함 그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가노라 널 찾아가노라.

 

 

 


 

 

 

솔베이지의 노래 (Solveig's Song)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Edvard Hagerup Grieg, 1843-1907)의 모음곡중 하나로서 서정적이고 우울한 선율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원곡  <페르귄트(Peer Gynt) 조곡>은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가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이 쓴 환상 희곡 <페르귄트>에 곡을 붙인 것으로서  막마다 들어있는 5개의 전주곡을 포함하여 행진곡, 춤곡, 독창곡, 합창곡 등 전부 23곡으로

 구성되어있다.

 

나중에 그리그는 이 극음악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곡들을 4곡씩 뽑아 제1 모음곡, 제2 모음곡으로 정리하였는데 이 곡은

 제2 모음곡의 끝곡인 제4곡으로서 가장 유명하다. 

노르웨이 어느 산간마을에 가난한 농부 페르귄트가 살고 있었고 한 동네에 아름다운 소녀 솔베이지가 있었다.

 둘은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했다.

가난한 농부였던 페르귄트는 돈을 벌기위해 외국으로 간다.
갖은 고생 끝에 돈을 모아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국경에서 산적을 만난다.

돈은 다 빼앗기고 고생 끝에 겨우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 오제는 병들어 아들과 만난 후 바로 죽는다.
(입센의 친구 그리그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다고 알려진 조곡을 이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만들었다.)

페르귄트는 지난 날의 후회와 인생의 덧없음에 투신자살을 하려고 할 때 멀리서 솔베이지노래가 들려와 그곳을 따라가

보니 머리가 하얗게 쉔 솔베이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솔베이지는 결혼식장에서 처음 만난 페르퀸트를 매일 솔베이지노래를 부르면서 기다리며 살아 왔단다.

병들고 지친 페르귄트는 솔베이지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고 눈을 감는다.

꿈에도 그리던 연인 페르귄트를 안고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르며 솔베이지 ...

 그녀도 페르귄트를 따라간다.

 

 

 

 


 

 

The winter may pass and the spring disappear,
and the spring disappear
the summer too will vanish and then the year,
and then the year
but this I know for certain,


that you’ll come vack again,
that you’ll come back again
and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lting then
yes,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lting then,
you’ll find me waiting then

The winter may pass and the spring disappear,
and the spring disappear
the summer too will vanish and then the year,

and then the year
but this I know for certain,
that you’ll come vack again,

that you’ll come back again
and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lting then
yes,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lting then,
you’ll find me waiting then

겨울이 떠나고 봄이 지나고, 그래 여름이 서툴고 해가
지나고 그래, 해가 지나고 당신은 제게 돌아 오겠지요,
분명 당신은 제게로
저는 약속했지요. 진정 당신을 기다립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당신이 아직 태양을 보신다면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당신이 그분께 무릎을 꿇는다면
저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제 곁에 오실때 까지
당신이 제 곁에서 기다리신다면 그곳에서 만나겠지요 

 

 

 

 

 

 

 

 

 

 

 

 

 

 

 

 

 

 

에드바르트 그리그 (1843.6.15~1907.9.4)

 

 영화는 물론 모든 장르의 DVD에는 ‘18세 이상가’ ‘15세 이상가’ ‘전체관람가’ 등의 등급이 매겨지고 있고 이 일은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가 맡고 있다.

 

 몇 년째 클래식 DVD를 수집해오면서 발견한 것은 클래식 DVD의 경우 콘서트이건 오페라건 무조건 ‘전체관람가’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15년 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예방법을 제정할 때 한 국회의원이 ‘외국에 6개월 이상 장기체류한 후 입국하는

 

경우 검사를 의무화’하는 조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대학교수나 성직자 등 사회지도층 인사는 예외로 할 것을

 

 주문하자 당시 주무국장이던 보건사회부 보건국장은 이 한 마디 답변으로 질문공세를 잠재웠다.

 

“의원님, 우리나라AIDS 환자발생 1호가 교환교수로 해외로 나갔다 들어온 대학교수였다는 사실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클래식에도 관람등급이 있다

 

사회지도층이니까 AIDS 검사를 면제해야 한다는 발상, 그리고 클래식 음반이니까 무조건 온 가족이 함께 봐도

 

상관없다는 발상...

 

크게 다를 것 없는 고정관념의 오류라 하겠다.

 

에드바르트 그리그의 <페르 귄트>를 단순히 귀로만 감상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DVD로 영상과 함께 감상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이다.

 

여기서 잠깐 노르웨이의 문호 입센의 원작 줄거리를 살펴보자.

 

페르 귄트는 몰락한 지주의 아들로 지나친 공상에 빠져 애인 솔베이지를 버리고 산속 마왕(魔王)의 딸과 결탁해

 

자신의 혼을 팔아넘기고 돈과 권력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난다.

 

 미국과 아프리카에서 노예상을 해 큰돈을 벌고 추장의

 

딸 아니트라를 농락하는가 하면 결국은 여자에게 배신당하고 정신이상자로 몰려 입원을 강요당한다.

 

고향이 그리워 귀국길에 오르지만 배가 난파해 무일푼이 되어 고향 땅을 밟는다.

 

늙은 마왕으로부터 빚 독촉을 받지만 최후까지 혼을 팔아넘기지 않고 살아남아 백발이 된 옛날의 애인 솔베이지의

 

팔에 안겨 죽는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부(富)와 권력 추구에서 오는 정신의 황폐, 인간의 과대한 야망의 덧없음, 자기를 버리고 간 방탕한 연인을 백발이 될 때

 

까지 가슴 속에 간직한 여인의 청순무구를 대조하여 최후의 구원을 말하고자 하는 이 희곡을 토대로 그리그는 같은

 

제목의 부수음악을 작곡하고 1876년에 초연하였다.

 

 뒤에 이를 편곡해 각 4곡으로 된 두 가지 관현악용 조곡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제1조곡의 3곡 <아니트라의 춤>

 

 제2조곡의 4곡 <솔베이지의 노래>는 너무도 잘 알려진 곡이다.

 

DVD 시대가 열리면서 그리그의 페르 귄트 음악에는 동명 연극의 공연장면을 배경영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야기의 줄거리로 볼 때 자녀들과 함께 관람하기에는 불편한 장면이 여러 군데 있다.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도 공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전라의 여인이 등장하는 버전도 있어 무심코

 

 감상하던 부모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클래식 음반에 대해 너무나도 관대한 영상물등급심의위원들은 아무리업무량이 많더라도 내용을 살펴보고 등급을

 

 매겨야 하지 않을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에드바르트 그리그, 앨버트 아인슈타인 그리고 난파 홍영후

 

그리그의 사진이나 초상화를 보여주고 누구인지 알아맞히라 하면 아인슈타인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두 사람의 모습, 특히 헤어스타일은 많이 닮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닮은 모습 뿐 아니라 삶의 발자취에서도 발견된다.

 

독일 울름에서 출생한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국립공과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교수생활을 하였으나

 

 유대인으로서의 민족적 자긍심이 강해 유대민족주의, 시오니즘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평화 운동가였다.

 

노르웨이의 베르겐에서 태어난 그리그는 독일의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슈만과 멘델스존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작품 속에는 늘 노르웨이 민족음악의 선율과 리듬이 짙은 이른바 국민악파로서의 민족음악 색채가 짙게 묻어난다.

 

1848년 프랑스의 2월 혁명 이후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오던 나라들 사이에 독립운동이 성행하고 그것이 음악상의

 

운동으로 나타난 것이 다름 아닌 국민악파 음악이다.

 

국민악파의 음악적 특징은 독일 ·오스트리아의 기악과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나라의 민족적

 

 특색을 예술음악 속에 살리려는 것이었다.

 

북유럽 출신으로 덴마크의 게제와 더불어 노르웨이의 대표적 국민음악파인 그리그...

 

히틀러의 집권과 유대인 추방에 따라 미국으로 망명한 아인슈타인이 그의 물리학적 지식으로 통해 유대민족을

 

구원하려 했던 것처럼 그리그는 음악을 통해 노르웨이 민족이 지닌 정신적 유산을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서로의 삶은

 

 얼굴만큼이나 닮은꼴이다.

 

1898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음악원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봉선화>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등의 민족적 정서와 애수가 담긴 가곡을 남긴 난파 홍영후는 말년에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동조하고 친일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국민음악가라는 호칭을 박탈당했다.

 

폴란드 출신의 쇼팽이 폴란드 민속음악의 형식을 빌려 수많은 마주르카를 작곡했으나 조국을 떠나 국외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국민악파로 불리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빼앗긴 나라에 다시 돌아와 음악에 인생을 바쳤으나 마지막 몇 년간의

 

행적 때문에 국민음악가에서 친일음악가로 낙인찍힌 난파 홍영후의 운명 또한 안타깝지 않은가?

 

 

 


 


 

 

 

 

불후의 명곡<피아노 협주곡 제1번 a단조> =

 

작곡가이자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그리그...

 

‘북구의 쇼팽’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는 자신의 피아노 연주 실력을 최대한 뽐내겠다는 불순한(?) 의도로 나이 25세에

 

자신의 16번째 작품인 최초의 <피아노협주곡 a단조>를 작곡하는데 이 곡은 결국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리스트로

 

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 곡은 이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 하면 제1번만이 회자되고 제2번, 제3번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는지 여부조차 기록을 알기

 

힘들 정도이니 어쩌면 그리그는 단 한 곡의 피아노협주곡만으로 명성을 날린 행운의 작곡가일지도 모른다.

 

루빈스타인, 미켈란젤리 같은 20세기 최고의 거장들도 어김없이 이 곡을 녹음했는데 이름만 들어도 감미로운 샹송

 

프랑소와가 1960년대에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낡은 흑백필름을 보면서 스테레오도 아닌 모노사운드로 이 음악을

 

듣는 맛은 DVD 시대에 사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어디 이 뿐이랴. 2003년6월24일, 영국 런던의 라운드하우스에서 열린 신예 피아니스트 므라비차 막심의 세계 초연

 

 콘서트에서 일렉트릭 악기음과 함께 어우러져 쏟아내는 주제 선율은 이 곡이 왜 불후의 명곡인지를 새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곡에 대하여 더 이상 글로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니 일단 들어보고 각자 느껴보는 것이

 

나은 일이라 하겠다. 이 경우야말로 ‘百讀而不如一聽(백독이불여일청)’이 아닐까?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 오! 우리 하느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늘

 

고대함 그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가노라. 널 찾아가노라." 영원한 방랑자 페르 귄트를 기다리며 솔베이지가 부르는

 

<솔베이지의 노래>. 일 년에 몇 차례 있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50년이 넘도록 남편을 기다리며 홀로 자식들을

 

키워낸 백발의 할머니들께서 재혼한 남편을 만나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장면을 보면서 이 땅에서도 얼마나 많은 저마다의

 

'솔베이지의 노래들'이 남몰래 불리었을까 생각해본다.

 

글 / 이 근식(음악저널 9월호에서)

 

 

 

 

 

 


 

  

* 그리그와 부인 니나

 

 

 

* 트롤드하우겐 집(현재는 그리그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