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시사

'르까프' 화승 법정관리 신청..토종 패션 브랜드 몰락 이유는

도토리 깍지 2019. 2. 24. 16:49


(주)화승은 지난달 31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법원은 화승의

 채권추심과 자산 처분을 막는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사진=연합뉴스)




20년 전 모델을 새롭게 탄생시켜 10대 청소년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휠라의

 ‘디스럽터2’. 휠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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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발표된 르까프.


/사진=화승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화승의 신발·스포츠 브랜드 ‘르까프’ 행사 포스터.









'르까프' 화승 법정관리 신청..토종 패션 브랜드 몰락 이유는



토종 스포츠패션 업체 화승은 지난달 31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이 회생절차를 거부하면

화승은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화승이 운영하는 신발·스포츠 브랜드 ‘르까프’도 시장에서 사라진다.


◇ 화승, 기업회생절차 신청…‘르까프’ 사라질 위기

르까프는 한 때 ‘국민 운동화’라고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현재는 50대 아저씨, 아줌마조차 사지 않는 브랜드로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화승이 시대 변화에 안일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우선 르까프가 가진 ‘오래된 국내 브랜드’ 이미지를 떨쳐 내지 못했다.

신발·스포츠 브랜드로서 주 고객인 10~30대 젊은 고객을 사로잡지 못했다.

이는 최근 복고를 주제로 브랜드를 리뉴얼 해 젊은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인 휠라와 비교된다.


판매 채널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도 화승 몰락 이유로 꼽힌다.

 이유리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나이키·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경쟁해 이길 수 있는 토종 브랜드는

 별로 없다"며 "브랜드 대(對) 브랜드로 싸우기 보다는 온라인 등을 적극 활용해 소비자 접점을 늘려야 했다"고 말했다.


토종 브랜드의 몰락 이유는 지난 2010년 부도 처리 된 ‘쌈지’ 사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쌈지는 1990년대 중후반 핸드백 시장에 아이디어 번뜩이는 캐주얼풍의 백을 선보이며 국내 대표 잡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테마파크·영화 등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며 결국 파산했다.


패션업계에는 ‘패션 산업의 핵심은 옷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쌈지의 사업 확장은 방향성에선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본업이 아닌 다른 분야에 에너지를 너무 쏟았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2000년 들어 매출 1000억원을 찍은 중소·중견기업 쌈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사업 확장이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쌈지의 브랜드 가치와 경쟁력은 점점 떨어졌다.





현재 벨트·지갑 등 쌈지 잡화 브랜드는 2010년 쌈지 부도 전 제품을 납품했던 국내 업체가 생산, 판매하고 있다.


현재 벨트·지갑 등 쌈지 잡화 브랜드는 2010년 쌈지 부도 전 제품을 납품했던 국내

 업체가 생산, 판매하고 있다.     

     


현재 벨트·지갑 등 쌈지 잡화 브랜드는 과거 쌈지에 제품을 납품했던 국내 업체가 제조, 판매하고 있다.


◇ 패션기업 경영인, 브랜드 가치 바라볼 수 있어야

경영인의 가치관도 중요하다.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 회사의 지속성장을 이끌려는 게 아니라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본다면 그 회사는 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는 보통 회사를 매각한 후 경영인(오너)이 바뀌었을 때 일어난다.


2010년 부도를 맞았던 ‘톰보이’가 그랬다. 톰보이는 1970년대 중후반 국내 패션 브랜드 최초로 여성용 청바지와 티셔츠를 선보이며 자유로운 영 캐주얼 브랜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6년 창업주 최형로 회장이 타계했고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브랜드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박정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한양대 럭셔리연구소장)는 "브랜드는 패션 기업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며

 "경영인이 브랜드에  이해 없이 단기 이익 등 재무적인 측면만을 바라본다면 절대 회사가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톰보이는 2011년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인수했다. 이후 사명을 신세계톰보이로 바꿨고 현재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 뉴스1


   


국내 1호 신발기업 ‘화승’ 흥망성쇠


법정관리 여파로 매니저·협력업체 생계 위협 토로
매니저들 “월급으로 받은 어음, 빚더미 됐다” 분통



(주)화승의 대표 브랜드들. 왼쪽부터 르카프, 케이스위스, 머렐.


 사진=화승 홈페이지




르까프’ 화승 부도 일파만파…DH저축은행과 수상한 관계 추적 


                            

DH저축, 화승 매니저들 어음할인 수수료 챙겨…

(주)화승 전 임원이 실소유주로 밝혀져





[일요신문] 르까프와 케이스위스, 머렐 등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를 유통하는 ㈜화승이 지난 1월 31일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신청 하루 만인 지난 1일 채권추심과 자산처분을 막는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화승이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납품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들은 연쇄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250여 명 매장 매니저(중간 관리자)들도 화승에서 받은 어음이 동결되면서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매니저들은 그간 본사에서 임금 성격의 판매대금을 6개월짜리 전자어음으로 받고, 부산에 위치한 DH저축은행에서

 어음을 할인해 현금으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느닷없이 날아든 화승의 부도 문자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머렐 매장을 운영하는 한 매니저는“설 직전 날아온 문자 한 통으로 빚쟁이가 됐다“며 ”본사도, 은행도 문을 닫은

연휴 동안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고 토로했다.  

임금 성격의 판매대금을 어음으로 받은 쪽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의 매니저는 “면접장에서 본사가 판매대금을 어음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히면서 싫으면 관두라는 식으로

말했다”며 “본사에서 ‘우리는 어음깡을 하는데, 업계 관례’라고 말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어음 발행인인 ㈜화승의 부도로 DH저축은행은 매니저들에게 지난해 8~11월 4개월치 할인어음 상환을 요구했다.

 은행은 지난 7일 문자를 통해 “할인어음 금액이 상환되지 않을 경우 카드사의 신용카드 정지, 재산 압류조치 등의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으며, 상환시까지 원금에 11.5% 연체이자가 적용되므로 조속한 시일 내에 변제해 주시길

바란다”고 통보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화승은 매니저들에게 은행과 협의해 부도어음을 개인대출로 전환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먼저 어음할인 잔액 기준 5~10%를 매니저들이 우선 자력변제하면 대출금리를 기존 어음할인과 같은 8.5%로 해 12개월간 분할상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매니저들은 신용불량자 신세를 면할 수 있고 DH저축은행 입장에서도 부도어음을 개인대출로 전환하면

 대금을 회수할 수 있어 나쁠 게 없다. 
  

그러나 ㈜화승과 DH저축은행 간 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매니저들의 설명에 따르면 ㈜화승은 전국 모든 매니저들에게 부산에 위치한 DH저축은행을 통해 전자어음을 할인
받도록 했다.

한 매니저는 “초기에는 일괄적으로 서울 본사에 매니저들을 모아두고 DH저축은행에서 방문해 할인어음 계약을 체결
했다”며 “이후 매니저가 교체되거나 신규 매장이 추가될 경우에는 매니저들이 직접 부산 DH저축은행에 방문해 계약
했다”고 전했다.

㈜화승 관계자는 “㈜화승의 주거래은행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건마다 다른 은행을 이용하지만 매니저들에게 어음
할인 은행을 DH저축은행으로 지정해준 것은 맞다”고 말했다.
 DH저축은행은 부산 연제구 연산동 본사 외 다른 영업지점이 없다.

때문에 매니저들이 어음할인 계약 시 ㈜화승 서울 본사나 부산 DH저축은행을 직접 방문해야 했다.
전국에 매장을 둔 ㈜화승이 굳이 전국망이 없고 부산에만 있는 DH저축은행을 지정해 매니저들에게 어음할인을 받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 

법인등기부를 확인한 결과 ㈜화승과 DH저축은행의 등기상 주소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화승은 DH저축은행 지분 100%를 보유한 ㈜대호와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인등기부상 2013년 5~8월 ㈜화승의 사내이사로 이름이 올라 있는 정 아무개 씨는 ㈜대호의 법인등기부에도 2013년
 1월~2016년 3월 사내이사로 이름이 올라 있다.

정 씨는 ㈜대호의 지분 6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대호의 나머지 40% 지분은 또 다른 정 아무개 씨가 보유하고 있다.
법인등기부만 놓고 보면 ㈜화승의 전 사내이사가 DH저축은행의 실소유주인 것이다.  

세 회사는 사람뿐 아니라 기업 연혁에서도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화승과 ㈜대호, DH저축은행의 관계는 2004년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상호무진주식회사로 출발한 DH저축은행은 1982년 화승그룹에 인수돼 1988년 ㈜화승상호신용금고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후 2002년 ㈜화승상호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다시 변경했으며, 2004년 ㈜DSP 계열회사 및 특수관계인이
회사의 지분을 인수했다. 현재 ㈜대호는 ㈜DSP와 DH저축은행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화승이 발행한 어음이 부도나면서 DH저축은행이 큰 타격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DH저축은행은 ㈜화승의 어음을 할인하면서 수수료를 챙겼고, ㈜화승이 기업회생을 신청하자 부도어음을 매니저들 개인대출로 전환해 회수하기 쉽게 했다.

DH저축은행이 그간 챙긴 어음할인 수수료율은 8.5%로 알려졌다.
어음거래에 정통한 한 사채시장 전문가는 “DH저축은행은 ㈜화승 어음할인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했을 것”이라며 “최근 다수 저축은행들에서 어음할인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는 간단한 검색만 해도 “화승의 어음을 더 낮은 수수료로 어음할인해주겠다”는 다수 업체를 확인할 수 있다. 앞의 시장전문가는 “어음할인을 하는 업체들은 발행 기업의 재무상황에 따라 어음할인 수수료를 책정한다”며 “비교적 높은 금리를 받아 온 DH저축은행은 ㈜화승의 어음할인을 통해 이익을 챙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춰보면 비록 ㈜화승은 부도가 났지만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DH저축은행에는 오히려 이득을 챙겨준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낀 매니저들만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DH저축은행과 연관성에 대해 ㈜화승 관계자는 수차례 “해당 사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말로 일관했다.
또 어음할인을 부산에만 있는 DH저축은행에 지정한 이유에 대해 화승그룹 관계자는 “㈜화승에서 결정한 일이라 그룹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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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르까프의 복고풍 광고 영상 캡처





르까프의 추억




나이키 맞선 국산 브랜드…한때 국내 시장 2위 아성

세계인 감성 잡긴 역부족, 신발역사 100년 재도약을





1990년대 초반 교환학생으로 호주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옷은 격식을 갖춰 입었는데 신발은 운동화인 부조화패션의 사람들을 처음 보곤 ‘이게 호주 스타일인가’ 싶었다.

정장에 웬 운동화!


운동화는 웬만한 구두보다 비싼 최고급 나이키였고 정장과 나이키의 조합은 튀는 패션 센스와 경제력 과시의 수단

이었다는 사실을 조금 지나 알았다.


 눈길을 끈 건 바로 그 나이키 운동화였다.

가게에 진열된 나이키 중에 최상품은 어김없이 ‘Made in Korea’였다.

 우리 돈으로 10만 원이 훌쩍 넘는 신발을 신은 백인들을 보면서 왠지 뿌듯했다.

그 ‘메이드 인 코리아’가 엄격하게는 ‘메이드 인 부산’이었다는 사실은 더 한참 뒤에야 알았다.

한국산 나이키가 부산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74년부터다. 삼화고무가 나이키와 5년 독점계약을 맺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들었다.

최초 물량 3000켤레는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범천동에 와서 직접 계약했다.


이후 전 세계적인 조깅 붐으로 물량을 감당 못한 삼화가 독점생산권을 포기하자 국제상사 동양고무 대양고무 태화고무 세원 등이 앞다퉈 나이키 OEM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 세계 나이키의 70%는 한국에서 만든 것입니다.”

동양고무의 후신인 화승이 낸 광고가 이맘때 신문에 심심찮게 실렸다.


1990년대 초까지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 글로벌 브랜드 70~80%가 당감동 전포동 등지에서 생산됐다.

부산은 세계 신발의 메카였다.
“1980년대가 부산 신발의 황금기라곤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 OEM에 길들여져 기술 혁신이나 브랜드 개발 노력은 게을리했다”는 게 부산대 경제통상연구원 장지용 전임연구원의 냉정한 진단이다.

그런 중에 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에 이어 ‘르까프(LECAF)’가 탄생했다.

 나이키의 무리한 단가 인하 요구 등으로화승은 1986년 나이키와 결별하고 자체 브랜드를 내놓았다.

글로벌 브랜드의 갑질에 떠밀린 것이지만 그들의 생산공장 역할에 불과한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도 있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의 라틴어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브랜드명이나 나이키 생산라인에서 나온 운동화라는 홍보 전략도 소비자에게 먹혔다.

 가볍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청소년 사이에 인기였다.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국산 운동화 인지도가 급상승해 1994년 국내시장 점유율은 프로스펙스 1위, 르까프 2위,

나이키가 3위였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국산 브랜드의 최고 전성기였다.


한때 국산 운동화 브랜드의 자존심이었던 르까프가 사라질 위기라고 한다.

 ㈜화승이 경영난으로 지난달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을 파고들기는 역부족이고 내수시장마저 소비 패턴이 완전히 바뀐 결과이다.


‘월드컵’ ‘타이거’ ‘슈퍼카미트’ 등 부산발 브랜드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지고 프로스펙스와 르까프 2개만 겨우 살아남은 상황에서 르까프의 위기가 부산 신발업계에 던진 파장은 크다.

 때마침 경영난에 빠진 이탈리아 휠라를 휠라코리아가 인수해 최근 다시 각광받는 브랜드로 키워냈다는 소식과

대비돼 더 씁쓸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고급 의류와 마찬가지로 고급 신발 역시 소비자는 품질이 아닌 브랜드를 소비한다.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같은 스포츠 스타에 몇 억 달러씩 홍보비를 쏟아붓는 글로벌 브랜드의 아성을 깨기는 고사하고 일각을 비집고 들어가는 일조차 이렇게 버겁다.


“LA에 르까프 대리점이 있었는데 하루 4, 5켤레 판매되는 게 고작이었다.

” 경남정보대 신발패션학과 남상달 겸임교수의 화승 근무 시절 회고이다.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서영순 교수는 “한국 브랜드로 세계인의 감성을 붙잡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나이키, 리복은 브랜드만 있을 뿐 자체 생산공장이 없다.

아디다스도 독일에 일부가 있을 뿐이다.


모두 대만과 한국 회사가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에서 만들어 납품한다.

현재의 태광실업 창신아이엔씨 파크랜드가 모두 그런 회사이다.

나이키 생산량 세계 3위와 4위가 태광과 창신이다.


 화승그룹조차 르까프를 만드는 ㈜화승은 3년 전 매각하고 아디다스의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사업에 힘을 쏟아

전 세계 아디다스 생산량 2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부산 신발산업의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OEM과 달리 ODM은 제품 개발에 참여하기 때문에 기술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불가능한 사업이다.

신발 만드는 기술만큼은 누가 뭐래도 부산이 세계 최고인 것이다.

이 때문에 33년 전 나이키라는 스포츠용품 제국의 부당함에 맞서 당당하게 자신의 깃발을 올렸던 르카프의 시련이 더욱 안타깝다.

 한국 신발산업 역사 100년은 부산 신발의 역사이다. 100년의 저력에 걸맞은 도전정신을 보였던 르카프의 재기를

 기대한다.





국제칼럼]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르까프가 국내 스포츠 브랜드 중 처음으로 선보였던 신발 큐레이팅 서비스 '슈닥'. 연합뉴스


르까프가 국내 스포츠 브랜드 중 처음으로 선보였던 신발 큐레이팅 서비스 '슈닥'.


연합뉴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