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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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39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학생들이 희생자 묘를 참배하고 있다. /사진=뉴스1 |
5월 18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시작
1980년 5월 18일 광주시에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사망하자 같은 해 12월 12일, 10·26 사태 수사를 맡았던 전두환 당시
국군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실행했다.
이에 광주에서는 항거했으나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해 진압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시민이 희생됐다. 이 과정에서 무장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10일에 걸친 광주 민주화 운동 결과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등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후 호남 전역에서 전두환과 신군부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높아졌다.
당시 신군부는 언론 사전검열을 실시하고 관제보도를 의무화하도록 해 언론을 장악하고 조종했는데, 주한미대사관과
주한미군 사령관 등 관련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한민국 내 언론이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와 5·18 민주화
운동 진압을 승인했다는 보도를 쏟아내자 학생운동권 내 미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끝내 진압당했지만, 1980년대 이후의 민주화 운동(1987년 6월 민주항쟁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계엄사령부는 1980년 7월 4일에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발표했다.
서울의 학생시위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 20여 명이 조종했다는 명목으로 김대중과
민주화 운동가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이는 후에 신군부가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대중 등은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미국의 강력한 사면 요청에 따라 감형됐다.
이후로도 전두환 정권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김대중의 사주에 의해 발생한 소요사태로 조작했다.
하지만 1988년에 5공 청문회를 거치고 국회에서 1995년 12월 21일에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해, 계엄군의 진압 과정에서 죽거나 부상당한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피해 배상을 위한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전두환 정권의 비(非)민주성과 폭력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으로 다시 평가받았다.
특히 유네스코는 2011년 5월 25일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했다.
이 사건의 핵심 관련자인 전두환, 노태우는 1997년에 대법원으로부터 징역형과 2천억 원이 넘는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박병준기자
출처 : 중부일보(http://www.joongboo.com)
▲ 피의 광주!
1980년 5월 17일 밤 12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뒤 총검으로 완전
무장한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시내로 시가행진하며 진출하고 있다. '피의 광주'를
예고하고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 데일리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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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12.12 군사 반란으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밤 12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총검과 곤봉으로 완전 무장한 특전사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시내로 시가행진하며 진출했다. 민주화의 봄이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완전히 제압당하며 '피의 광주'를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5월 18일(일요일, 맑음) 오전 10시 전남대 앞. "계엄 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고 외치는 학생들과 공수부대의 첫 대치가 벌어졌다. 5월 19일(월요일, 오후부터 비) 새벽 3시 공수부대 11여단 병력이 광주역에 도착하는 등 계엄군이 광주에 증파되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금남로, 수만명의 시위대와 공수부대가 대치했다. 터질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긴 침묵을 깨고 누군가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쳤다. 동시에 '탕, 탕탕탕...' 공수부대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피의 광주가 시작된 것이다. 민주화의 봄. 쿠데타와 학살. 그리고 저항···. 한국의 80년은 그렇게 시작됐고 어느새 '오월광주'는 한국 민주화의 정신적 고향이 되어 있었다. 핏빛 진달래와 함께 찾아온 반도의 5월은 언제나 그렇게 80년대 청춘들에게 원죄의 무게를 더해줬고 눈물과 분노 , 새로운 결의와 다짐 그리고 투쟁이 늘 함께했다. 돌이켜보면 84년 이후 전국의 대학가가 들끓기 시작하고 캠퍼스가 온통 몸살을 앓으면서 드디어 '광주'가 신열을 토해내며 그 나신을 드러냈다. 투쟁의 서막을 알리는 대학가의 해오름식은 이후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캠퍼스는 단 하루도 영일이 없었다. 그렇게 광주는 그때 청춘들에겐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으며 스스로의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멍에였다. 어느 누구도 광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오직 광주만이 그들의 영감과 사상적 전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듯 민주화 여정은 거칠었고 힘겨웠으며 이따금 몸져 누웠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과 5월. '5.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고 광주 망월묘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방송3사 합동 실황 중계방송이 열렸다. ▲ 항쟁의 중심지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는 분수대를 중심으로 2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열고 대대적인 횃불행진을 벌였다. (사진=5.18기념재단)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에는 5.18광주민중항쟁이 정부행사로 승격됐다. 이후 5.18 공식 기념식 본 행사 때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2004년 5월 18일 광주 망월동 5.18민주열사묘역에서 열린 5.18 24돌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불렀다. 대통령은 이 땅의 참민주를 위해 먼저 가신 임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듬해인 2009년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본 행사에서 내쳤다. 역사와 상식을 뒤엎은 것이다. 이후 5.18을 앞두고 해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둘러싸고 국론이 둘로 갈라져 논란이 격화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이유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국론분열'을 언급했다. 하지만 1980년 이후 28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생겼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오월광주의 상징적인 노래라는 것은 국민의 상식이다. 다행히 촛불시민혁명으로 2017년 정권을 교체했고 그해 광주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 등 1만여 명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 18일 5.18광주항쟁 37돌 기념식에서 절절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읽은 뒤 눈물을 흘리는 유족을 안아주며 함께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사진=청와대) '5.18정신 계승, 정의가 승리하는 대한민국' 주제로 열린 37돌 5.18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추모했다. 대통령은 이어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받았지만 서슬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갔다"면서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있다"고 선언했다. 광주항쟁 39돌을 맞은 올해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18일 오전 10시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유족과 시민, 학생 등 5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국가보훈처 주최로 '오월광주, 정의로운 대한민국' 주제로 열린다. 2년 전 감동적인 연설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다. 기념식은 오프닝공연, 국민의례, 경과보고, 기념공연, 기념사, 기념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60분 간 진행된다. 오프닝공연은 5.18의 역사적 현장인 옛 전남도청에서 5.18때 고인이 된 당시 고등학생의 일기를 바탕으로 작곡한 '마지막 일기'로 시작된다. 기념공연은 5.18 당시 도청 앞에서 가두방송을 진행했던 박영순씨의 스토리텔링과 고등학교 1학년 신분으로 5월 27일 새벽 최후의 항전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고 안종필의 어머니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당시 5.18을 기억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치유하는 내용을 담는다. 특히 이번 기념식에서는 최초로 당시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장소인 옛 전남도청에서 이뤄지는 오프닝공연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이원생중계해 역사성과 현장감을 동시에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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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좌로부터)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김후식 회장, 이용섭
광주시장, 정충식 회장, 김동찬 광주시의 의장
5.18광주민주화운동 제39주년 전야제행사,
“광주의 한 하늘도 함께” 눈물을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인 동구 금남로 일원에서
거리행진과 전야제행사 열려
해마다 오월이 오면 광주시민들은 또다시 슬픔에 눈물을 적신다.
금년 에는 유별히도 자유한국당에 의한 5.18폄훼와 왜곡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39주년을 맞이한 광주5.18민주화
운동 기념을 하루 앞둔 광주 금남로에는 미주동포와 전국에서 민주주의 원천도시인 광주를 찾아 광주시민과 함께 거리행진을 금남로 5가에서 5.18민주광장까지 행진을 이어갔으며, 이어 전야제 행사가 5천여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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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19.05.18.
pak713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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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광주금남로 일원에서 열린 5.18 제39주년 전야제행사와 거리행진은 80년 5월 금남로를 재현하는 행사와 함께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는데 하늘도 광주시민의 슬픔을 아닌지 가랑비로 시작 비가 내려 광주시민들의 눈물을 대신 한 것
같았으며, 80면 광주시민들이 흘린 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초석이 되어 6월 항쟁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져 오늘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게 된 원천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 거리행진에 앞서 여는 말을 하고 있는 김후식 회장
김후식 5.18부상자 동지회장은 여는 말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이 39년이 지났습니다.
부리가 내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야 할 시대에 아직도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세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은 깊어도 새벽은 오기 마련이고 아무리 겨울이 무섭게 추워도 봄은 오기 마련입니다.
▲ 80년 5.18당시 계엄당국의 강력진압을 거부한 전라남도 안병하 경찰국장(치안감)과
당시 광주현황을 외부로 널리 알릴수 있도록 도와준 택시운전사 김사복 선생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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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 이 뜨거운 열기로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5,18민주화운동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 부리가 내릴 수
있도록 여러분 힘을 실어주시기를 바란다.“면서” 이 자리에는 광주시장과 교육감 그리고 전국에서 한국당만 배놓고는
4당대표가 다 오셨습니다.
▲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미주지역 5.18민중항쟁 동지회원들
전 국민이 민주주의를 잘 아는 국민이 이 자리에 같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열기를 모아서 한국당을 박살내고 폄훼했던 국회의원들을 몰아내고 특별법을 개정해서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당부했다.
오늘 열린 거리행진과 전야제행사장에는 공연과 함께 5월의 노래도 함께 부르고 작품도 감상, 80년 주먹밥을 나눠
먹던 일들을 재현하였으며, 자유한국당 해체와 전두환 가족 3족을 멸해야 된다는 피켓 등 한이서린 피켓들이 금남로에 휘날리고 있었다.
▲ 일본에서 사랑의 멜로디를 전하고 있는 '일어서라 합창단'
한편, 일본에서 일행 25명과 함께 지난 16일 광주를 찾은 야마다 히로끼(1961년생 지하철 기관사 / 山田博樹)씨는 일본에서도 광주 민주화운동에 관심 깊게 갖고 있으며, 지난 촛불집회 등이 일본에서 관심사로 부각되어 ‘일어사라 합창단’ 단원과 함께 사비(私費)를 들여 5.18 제39주년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한편, 행사위는 이에 앞서 금일 오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5.18유족들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제가 열려
5.18 민주 열사들을 넋을 위로하고 민주화 정신 계승을 다짐했으며. 18일 5.18 기념식은 오전 10시, 부터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제39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광주=뉴스핌] 이형석 기자 =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5.18 희생자 유족들과 시민들이 39주년 전야제가 열리는
5.18민주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2019.05.17 leehs@newspim.com
폭우도 끄지 못한 5‧18 전야제 횃불…시민들 "희생자 없는 집 없다"
17일 광주 금남로 일대서 5‧18 전야제
1000여명 시민들 참석, 오월 영령 기려
한국당 제외한 여·야 4당 대표도 참석
일부 시민 "망언 정치인 꼭 처벌 받아야
광주=뉴스핌] 김규희 김현우 기자 =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대표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열린 전야제에 참석해 오월의 영령을 기렸다.
약 1000여명의 시민들이 빗속에서도 호국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전야제 행사가 끝나도록 자리를 지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오후 6시
30분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전야제에 일제히 모습을 보였다.
본행사를 앞두고 다양한 사전 행사가 진행됐다. 이날 오후 1시에는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난장이, 오후 6시에는 풍물패가 금남로 일대를 행진하며 전야제 분위기를 달궜다.
이해찬‧손학규‧정동영 대표는 이날 오후 6시 30분 광주일고 사거리에서 모여 금남로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민주평화대행진‘에 참석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를 비롯해 설훈‧김해영‧이재정‧홍익표‧표창원 의원 등이 함께 했다. 이들은 ‘오월 광주의 역사로 한반도 평화를 완성하겠습니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금남로로 이동했다.
바른미래당은 손 대표와 박주선‧권은희 의원이 ‘5월 민주영광의 숭고한 뜻을 따르겠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사법 개혁 꼭 이루겠습니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민주평화당은 정 대표와 유성엽‧박지원‧장병완‧천정배‧이용주 의원이 ‘5‧18 역사왜곡 바로잡겠습니다’ 문구의 현수막을 들고 금남로로 향했다.
정의당은 윤소하 의원을 필두로 ‘끝나지 않은 5‧18, 완전한 진상규명‧책임자처벌,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길입니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이정미 대표와 여영국 의원은 이후 본행사부터 합류했다.
같은 시각 금남로 일대에서는 시민군과 시위대가 트럭을 타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들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도청으로 향하는 퍼포먼스를 하며 애국가를 제창했다.
[광주=뉴스핌] 이형석 기자 =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전야제에서 광주시민들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지역 대학생들과 시민 주도로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횃불 시위인
`민족민주화성회'를 재연하고 있다.
2019.05.17 leehs@newspim.com
전야제 본행사는 오후 7시 30분부터 어린이 합창단 노래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열렸다. 행사 도중 5.18 당시 시민군들이 횃불을 들고 도청을 둘러싸는 듯한 모습을 재연하며 시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분위기는 정점에 달했고 시민들은 빗속에서도 우비를 입고 우산을 나눠쓰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등 호국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전야제 행사는 당초 이날 오후 10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오후 8시께 행사가 마무리됐다.
행사가 끝난 뒤 주최 측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준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보자기를 머리에 두른 여성들이 트럭에서 준비한 2000개의 주먹밥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대학생 전모씨(26)는 “매년 민주화운동 전야제와 기념식에 참석한다. 친척 어르신이 유공자이신데 어릴때부터 당시
상황을 들었던 터라 매년 오월에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전야제에 참석한 김모씨(63)씨는 “1980년 5월 광주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가족 중 희생자가 없는 사람이 없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망언을 하는 정치인들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뉴스핌] 이형석 기자 = 5·18 민주화운동 39돌을 하루 앞둔 17일 저녁 광주
광역시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시민들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재연하며 행진하고 있다.
2019.05.17 leehs@newspim.com
한장의 사진이 준 울림.."계엄령 광주를 가야겠다"
정태원, 당시 UPI통신사 사진기자 80년 5월 취재
'시민에 곤봉' 사진은 전남일보 신복진 기자 촬영
"복진이가 찍었다는 것 알게 돼 나중에야 美송고"
"군인들, 같은 민족인 광주시민에게 무차별 총격"
"군인, 죽은 아이 발 잡고 털렁털렁 계단 내려와"
'탱크 탄 시민군' 사진은 미국 타임지 표지 실려
서울=뉴시스】조인우 기자 = "기자님, 오늘 저녁에 군인들이 들어온답니다. 우리가 살지 죽을지 모르겠지만, 기록이나 좀 해주소."
외신기자 정태원(80·로이터통신 전 사진부장)씨는 그날 전라도 광주에 있었다. 계엄군과 시민군 간 긴장이 극에 달했던 1980년 5월26일,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광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 날이다.
그날 밤, 누군가 정씨의 방문을 두드렸다.
"밖에선 '철컹철컹'하는 쇠소리가 나는거야. 누구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고. 아, 계엄군이 설마 여기까지 왔나.
문을 열어보니까 학생 세 명이 개머리판 없는 총을 매고 왔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저러는 거야. 그래, 가자."
당시 전남도청이 보이던 전남일보사 2층에 자리를 잡은 정씨는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새벽 2시께부터 들리기 시작한 총소리는 포 소리로 이어졌다.
"들으면 알아, '탕탕탕탕탕' 연발은 계엄군이야.
소리가 점점 심해지는 거야." 창문이 흔들릴 정도였다.
계엄군의 전남도청 무력진압 사건이다.
"광주에 가봐야겠다" 생각하게 된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군인이 시민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는 사진이 당시 정씨가 몸담고 있던 UPI통신으로 넘어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전남일보 신복진 기자가 5·18 직전 공수부대의 탄압이 시작된 광주를 담아 보낸 것이었다.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보도되지 못했다.
언론통제 때문이었다.
【서울=뉴시스】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곤봉과 최루탄을 동원해 시민군을
진압하는 계엄군의 모습. 사진기자 정태원씨에 따르면 계엄군은 버스 창문을 깨고 그 안에
최루탄을 던져 넣는 수법을 썼다.
2019.05.18 (제공=정태원씨)
"이게 누구 사진인지, 사실관계가 확실한지 통과가 돼야 미국의 본사로 사진을 보낼 수 있는데 복진이 사진은 처음엔
못 보냈어. 누가 찍었는지 처음엔 확인이 안됐거든. 근데 광주의 사실을 알려야 했고, 복진이가 찍었다는 걸 내가
알게 돼서 나중에야 보냈지."
이 한 장은 5·18의 실태를 세계에 알리는 사진이 됐다.
정씨가 광주에 도착한 20일께 광주는 이미 계엄군에 봉쇄된 뒤였다.
손주가 집을 나선 지 사흘이 지났는데 오지 않는다고 길바닥에 주저 앉아 통곡하던 할아버지, 계엄군에게 얻어맞아
팔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던 할머니들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최후 항쟁으로 기록된 27일까지 외신기자 1호로 광주의
현장을 누볐다.
"버스 유리창을 깨고 그 안에다가 최루탄을 집어 넣었어. 무차별이야.
27일 아침에 전남도청에서 죽은 아이들을 여럿 봤어. 군인 두 명이 죽은 아이의 발을 하나씩 잡고 내려오는데 계단
층마다 머리가 털렁털렁 했지."
시민군의 시체는 도청 앞에 푸대자루처럼 늘어졌다. 계엄군은 그들을 쓰레기차에 실었다.
숨이 붙어 있는 사람까지 쓰레기차에 실어 올리려는 모습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걔는 병원으로 갔다던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지."
그리고 계엄군은 한 자리에 모여 노래를 불렀다. '우리 앞에 대적할 이 누구인가.'
"이건 한민족으로서 그럴 수가 없는 일이야.
그냥 앞에 있으면 무조건 (총을) 갈겨. 그게 바로 광주사건이야."
머리에 총알이 스치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 27일 아침의 일이다. 차츰 해가 뜨면서 창문 너머로 사진을 찍던 정씨가
컬러 사진용 카메라로 장비를 교체하려고 머리를 숙인 그 순간 총알이 날아와 벽에 박혔다.
머리에선 뜨끈한 피가 흘렀다.
"광주에 특수부대만 보낸 게 아니라 저격수까지 보냈다고 생각하는 이유야. 카메라에 담아둔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복도로 기어나갔는데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최광태(당시 ABC 기자)가 담배를 권하면서 연기가 머리로 나오면
뚫린거고, 안 나오면 안 뚫린거니까 괜찮다고 하더라고."
광주에서 찍은 사진은 택시를 타고 매일 서울을 오가며 외국으로 보냈다.
택시 자동차 보험, 택시기사 생명보험에 수당으로 하루 16만원을 약속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조명된 독일 기자
위르겐 힌트페터와 광주에서 동행한 것도 정씨다.
"위험하니까 기자들끼리 몰려 다녔는데 웬 못보던 친구가 온거야. 어디서 왔냐고 하니까 동경에서 왔대.
그래서 한 이틀 간 같이 다녔지. 한국말을 못하니까 날 졸졸 따라 다니더라고."
그렇게 찍어 남긴 사진은 고스란히 광주의 기록으로 남았다. 타임지에서는 탱크를 탄 시민군의 모습을 담은 정씨의
사진을 '스트라이프 인 사우스 코리아(Strife in South Korea·한국에서의 항쟁)'이라는 제목과 함께 표지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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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에서 퍼져나가는 5.18 민주화운동
BTS, 'Ma-City' 속 5.18 언급 가사 화제
한강, 소년이 온다 등 소설 속 5.18
5.18 왜곡 담은 영화 김군 등 대중문화계 5.18 홍보 이어져
오늘(18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이다.
그간 대중문화계에서는 노래나 작품 등을 통해 5.18을 알리며 민주화영령의 넋을 기렸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방탄소년단(BTS)이다.
지난 2015년 방탄소년단이 발표한 앨범 '화양연화 파트2'에 수록된 '마 시티(Ma City)'라는 곡은 멤버들이 각자 자란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사다.
광주 출신인 제이홉은 이 노래에 '7시'와 '062-518'을 언급한다.
"나 전라남도 광주 베이비(baby), 날 볼라면 시간은 7시 모여 집합, 모두다 눌러라 062-518…"
여기서 7시란 광주의 지도상 위치가 7시 방향이라는 이유로 극우 사이트에서 광주를 비하 할때 쓰는 단어다.
062는 광주의 지역번호, 5.18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의미한다.
지난해 5월 한 ARMY(방탄소년단 팬)가 이 같은 내용과 함께 5.18을 자세히 소개하는 글을 SNS에 올렸고, 이 글이
퍼져나가며 전세계 팬들이 5.18의 아픈 역사를 공부하고 알게 됐다.
실제로 일부 팬은 한국 방문 뒤 광주의 묘역을 찾아 참배를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4월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기
위해 열린 '슈퍼콘서트'에 참여해 공연 중이다
(사진=광주CBS 박요진 기자/자료사진)
또 방탄소년단은 지난 4월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기 위해 열린 '슈퍼콘서트'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대표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 'DNA', 'Make it Righe', 'IDOL' 등 4곳을 잇따라 부르며 후끈한 열기를
모았다.
특히 멤버 제이홉은 이 자리에서 "나 전라남도 광주 Baby"라고 말하며 자부심을 드러내고, 'Ma City' 일부를 불러
관객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지난 2014년 5월 출간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도 광주 민주화운동을 글로써 널리 알리고 있다.
'소년이 온다'는 그 시절을 잊고 5.18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5.18의 트라우마를 안고 힘겹게 사는 이들을 위로한다.
한강 작가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정교한 문장으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년이 온다'는 오는 11월 무대로 옮겨져 연극으로 관객을 찾는다.
남산예술센터는 지난 1월 '소년이 온다'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휴먼 푸가'(Human Fuga)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휴먼 푸가'는 소년이 온다를 '푸가'라는 음악적 형식으로 풀어내는 데, 푸가는 하나의 주제가 성부 또는 악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모방 반복되면서 특정한 법칙이 만들어지는 악곡이다.
연출을 맡은 배요섭 감독은 소설 '소년의 온다'를 '연극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릴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장르의 방식으로 사회적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설로도 충분한데, 왜 연극으로 옮기느냐. 릴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의식을 두고) 소설이 할 수 있는 방식이 있고, 연극이 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은 사회적 고통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다.
이렇게 릴레이식으로 다양하게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다.
그 지점이 한 작가와 맞은 부분이다."
강상우 감독이 13일 오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5.18 시민군의
행방을 쫓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영화 속 김군은 누군가는 한 동네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지만원 씨는 북한군
‘제1광수’ 로 지적한 인물이다.
(사진=황진환 기자)
5.18 왜곡을 바로잡고 진실을 전하려는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김군'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극우논객 지만원 씨가 북한 특수군 '제1광수'로 지목한 인물을 찾는
기나긴 여정을 담았다.
해당 인물에 대한 단서는 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것을 증명해 주는 사진뿐이다.
지난 13일 열린 영화 '김군' 언론시사회에서 1983년생인 강 감독은 "5·18에 대해 피상적으로나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영화 작업을 하면서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영화 '김군'은 지만원 씨의 5·18 왜곡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지 씨의 왜곡 주장)을 믿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설득이 될 지는 모르겠다. 다만 스스로 5·18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이 영화를 많이 보면 좋겠다. 5·18에 관한 다른 모습, 다른 목소리를 들으면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한편, 이날 10시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개최된다.
이번 기념식에는 각계 대표와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및 유족, 일반시민, 학생 등 50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권형 교사가 제작한 5.18배지(사진=광주 운남초등학교 제공)
[사진으로 함께한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전야제행사]
▲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기관단체장및 시민들
▲ 우중에도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오월을 사랑하는 사람들
▲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사)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서울지부 회원들
▲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 80년 5월 그날을 재현
주먹밥 나눠주는 종사자들
▲ 광주시민들의 마음? 을 표시한 프랑카드
아픔을 예술로 만드는 종사자들
시민들의 마음을 표시한 태극기
행사장에서 당보를 나눠주고 있는 정동영대표와 최경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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