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강사 구조조정 저지와 학습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풍선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6/05/9b3d98ec-9e7c-498a-ae75-8b2acedb3c52.jpg)
지난 3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강사 구조조정 저지와 학습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풍선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강사 구조조정 저지와 학습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풍선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A씨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친한 교수들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은 “8월에 강사법이 시행되면 대학은 4대 보험이 있는 강사를 겸임교수로 우선 채용할 수밖에 없다.
살아남으려면 4대 보험이 되는 곳에 취직하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했다.
강사법에서는 3년간의 재임용 절차와 방학 중 임금·퇴직금 지급 등 최소한의 지위를 보장하지만 겸임교수는 이를
보장해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학, 재임용 의무 없는 겸임교수 선호
교수들은 또 “대학이 강사를 제로(0)로 만드는 게 목표”라는 말도 자주 반복했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교육부에서 다른 직업이 없는 전업강사 고용 변동상황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나서자
대학들이 마련한 대응책이다.
A씨는 “사실상 4대 보험이 없으면 2학기 때 강의를 맡기 어려울 것”이라며 “직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4대 보험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건 분야 강사 중에는 병원에 취직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강사법 시행을 두 달 앞두고 시간강사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당장 다음 학기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맡지 못할까 우려해 다른 일을 찾거나 아르바이트를 구하느라 분주하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B씨(35)도 마찬가지다.
B씨는 최근 성형외과에서 외국인 환자를 상대로 한통역 업무와 편의점·커피숍 등의 시간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올해 1월부터 다니던 회사는 지난달에 그만뒀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에 입사했던 곳이었다.
박사학위를 인정해 주지 않았고, 월급도 또래 직장인에 비해 적은 편이었지만 주 1회 대학 출강을 양해해 줘 입사했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가자 처음 이야기했던 것과 상황이 달랐다.
불필요한 야근을 강요하거나 B씨 담당이 아닌 업무를 떠넘기는 일도 잦아졌다.
강사법 시행에 대한 대학의 방침이 설 때까지는 버티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후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근 때문에 다음날 강의까지 지장이 생기자 B씨는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B씨는 “이제 와서 교수 임용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자니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깝고, 경력이 부족해 뽑아주는 곳도 없다”며 “10년 걸려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경기도의 한 사립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C씨(37)는 “강사 중에는 교수 임용을 준비 중인 사람도 있지만 강의를 업
으로 삼아 일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들에게 논문 실적을 요구하는 건 결국 대학이 전임교원 수준의 실력을 갖춘 강사를 뽑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B씨도 “논문을 학회지에 게재하거나 실적이 인정되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려면 수십만~수백만원이 드는데 한 달에 강의료 70만원을 받아 이를 진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전임교원처럼 대학이 기본 연구 인프라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강사 채용 시 논문 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관계자는 “공개 채용을 하게 되면 여러 사람 중 일부를 선발해야 하므로 지원자가 해당 분야 전문성을 갖췄는지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며 “3년간의 연구실적 제출은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정교수 수준의 강사를 뽑으려 한다는 비판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정부 대책은 “평생학습 강의 주선”
교육부가 채용 과정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공개 채용을 의무화한 것을 두고도 강사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나온다.
강사 일자리가 지도교수와 선배 등의 학연을 이용해 알음알음 채용되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내용이다.
서울 등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D씨(32)는 “공공기관 채용처럼 블라인드로 이뤄지는 게 아닌 이상 다른 조건이 비슷하면 출신학교 지원자한테 마음이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결국 여러 대학에 지원하느라 강사들의 고생은
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놓은 해고 강사 구제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교육부는 해고 강사에게 연구지원사업비 280억원을 우선 지원하고, 지역사회 평생학습·고교학점제 프로그램에서 강의할 수 있게 연결해 주는 정책을 추진할 방침을 세웠다. 강사법 시행에 앞서 올해 1학기에만 약 1만 개의 강의 자리가
줄어들자 마련한 대책이다.
이에 대해 서울 지역 시간강사(37)는 “학생을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고 전공 관련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 이 길을 선택
했는데 미래가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세종=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교육부가 강사법 안착에 노력한다는데, 완전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죠.
이미 집 잃은 소가 겪은 피해는 어떻게 책임지나요?"
지난해 1학기를 끝으로 하나 남았던 강의 자리마저 잃은 철학 박사 A(45)씨는 5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전날 교육부가 발표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안착방안에 관해 이렇게 촌평했다.
교육부가 강사법 시행 예고 8년 만에 법령 정비를 완료하면서 대학 재정지원사업과 강사 고용 안정성 연계를 골자로
한 제도 안착방안을 내놓았지만, 강사들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강사법이 2011년 개정된 후로 8년간 4차례에 걸쳐 유예되는 동안 강의 자리를 잃은 '해고 강사'가 이미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이미 해고된 강사를 위한 지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통계와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11년 9만231명이었던 시간강사는 2018년 6만1천639명으로 32%가량 줄어
들었다.
같은 기간 전임교원은 7만995명에서 7만9천447명으로 약 12% 늘었다.
강사단체는 올해만 최대 2만명에 달하는 강사가 강의 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교육부 역시 올해 1학기 강사 자리가 최소 1만개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다.
강사들에 따르면 대학들은 강좌 통폐합, 전임교원 강의 확대, 명예교수에게 강의 맡기기 등 여러 방법으로 강사를
줄이고 있다.
박사 B씨는 "강사들이 맡았던 교양과목이 대부분 대형 강의로 바뀌었다"면서 "특히 '비판적 글쓰기' 같은 글쓰기 관련 인문학 교양과목들이 1∼2학년이 함께 듣는 식으로 통합되면서 대형 강의로 바뀌고, 그마저도 전임교원이 맡은 경우가 늘어났다"고 전했다.
실제 올해 4월 대학 정보공시를 보면 올해 1학기 수강생이 50명을 초과하는 대규모 강의는 4만2천557개로 지난해보다 2천888개 늘어났다. 반면 수강생이 20명 이하인 소규모 강좌는 10만9천571개로 지난해 1학기보다 9천86개 줄었다.
강사 C씨는 "일부 교양 강좌는 온라인 동영상 강의로 바뀌었다"면서 "200만원 받고 14회차 강의를 찍었더니, 그대로
5년 동안 돌려서 누적 수강생 수가 1만명 가까이 됐더라"면서 "최근에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들으나 마나 한 '옛날
이론'을 배운 셈"이라고 꼬집었다.
강의가 곧 생업인 '전업강사'들은 당장 생계유지에 지장을 겪을 수준이라고 말했다. 교육통계에 따르면 2008∼2017년 전체 대학 강사 중 전업강사 비율은 55∼60%로 비전업강사보다 매년 많았다.
지난해까지 3개 대학에서 6개 강의를 맡았다는 강사 D씨는 "올해 1학기에 1개 대학 1과목으로 강의가 줄어, 생계는
배우자 수입에 기대고 있다"면서 "한 선배 강사는 4개 대학에 11개 과목을 맡았던 인기 강사였는데 선배도 1개 대학
1과목으로 줄었다며 헛웃음을 짓더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4대 보험료나 퇴직금 부담이 없는 겸임교원을 선호하는 통에 겸임교원 자격을 얻기 위해 가짜 '1인 연구소'
사업자등록을 낸 강사도 있다. 아예 대학에서 강사들에게 이런 방식을 요구하기도 한다는 게 강사들 이야기다.
교육부는 전업강사의 고용 변동 폭 위주로 강사 고용현황을 조사하고, 지난해보다 강사가 많이 줄어든 대학에 방학
기간 강사 임금을 적게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 혁신지원사업 등 재정지원 사업에도 강사 고용 관련 지표를 반영하기로 했다.
강사단체 측은 강사들의 강의 자리를 보장하고 전임교원의 강의 부담을 덜어 연구를 활성화하려면 '전임교원 강의시
수 제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이 제도는 대학측 반대로 시행령과 매뉴얼에선 빠졌지만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전임교원 강의시수를 '9학점 이하'
정도로 제한하는 방안을 앞으로도 계속 요구할 방침이다.
이는 전임교수들도 원하는 바다. 지방 사립대의 E교수는 "학교 측이 강사를 줄이는 대신 전임교원 강의 시수를 늘리는 바람에 다음 학기에 5개 강의를 맡는 교수도 있다"며 "강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강사법은 돈 안 쓰려는 대학에만 좋은 법 같다"고 비판했다.
법에 따라 강사를 공개 임용하더라도 대학들이 해외 석·박사나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강사 F씨는 "대학에서 '공개 채용은 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로 생각하면 된다'고 하더라"면서
"공고도 나지 않았는데 이미 내정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일단 이런 식으로라도 강사 권익 보장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데서 의미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지방 국립대의 한 교수는 "지금은 문제가 많지만 앞으로 점차 자리가 잡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면서 "시간강사에게도 정당한 교원 지위를 보장하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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