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 1년을 앞둔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원 이어 투 고
올림픽’ 행사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2020년 도쿄패럴림픽 메달
/사진=뉴시스
똥물 수영, 골판지 침대..논란 끊이지 않는 '도쿄내림픽'
2020년 도쿄(東京) 하계올림픽ㆍ패럴림픽이 개최를 300여일 앞두고 잇따른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가뜩이나 국제 사회의 방사능 공포를 불식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무더위, 수영장 수질 문제 등 부실한 준비 과정까지
도마에 오르며 도쿄올림픽은 벌써부터 ‘만신창이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상황이 이런데도 ‘다 괜찮다’며
밀어붙이는 일본 정부와 달리 해외뿐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방사능 수치, 서울과 비슷하다”는 일본 정부
도쿄올림픽의 아킬레스건은 방사능 오염 문제다.
도쿄올림픽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원전폭발 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福島) 지역의 ‘재건과 부흥’이라는 목적
아래 올림픽선수촌에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공급하고, 인근에서 야구 경기 등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에 대해 “후쿠시마산 식자재 사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도쿄 조직위원회와 논의 중”
이라고 밝혔으나 불안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방사능 우려가 쏟아지면서 일본 외무성은 이달 24일부터 주한일본대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후쿠시마의 방사선량을 서울과 비교해 공개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서는 일본의 3개 도시의 방사선량이 “서울을 포함한 해외의 주요 도시와 비교해비슷하다”고 밝히고 있다.
해당 측정치는 일본 내 각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자료를 활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가 26일 공개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수치를
토대로 한 도쿄올림픽 인근 지역 방사능 오염 지도.
민주당 제공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가 26일 공개한 일본 방사능 오염 지도에 따르면 2020 도쿄올림픽
경기장인 후쿠시마 아즈마 스타디움은 출입 금지가 필요한 ‘즉시대피구역’으로 분류된다.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 정도를 측정하는 일본 시민단체 ‘모두의 데이터’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지도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이 열리는 도쿄신국립경기장과 사이타마스타디움은 ‘자발적 대피지역’으로, 이바라키스타디움과
미야기스타디움은 ‘방사선 관리구역’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무더위 대책은 결승선에 ‘냉탕’ 설치?
방사능 못지 않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근심거리는 바로 ‘무더위’다.
도쿄올림픽 유치위원회는 2013년 1월 IOC에 제출한 유치신청서를 통해 “2020년 올림픽 기간 날씨를 선수들이 최상의 성적을 내는 데 이상적”이라고 주장했으나 현실은 다르다.
내년 올림픽은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40도에 육박하는 1년 중 가장 뜨거운 시기로, 일본 정부의 ‘더위지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도쿄올림픽 기간 17일 중 12일 정도는 야외활동이 어려운 수준이다.
일본에서 40도가 넘는 폭염이 잇따르면서 최소 15명이 사망하고 1만 2,000여명의
온열질환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7월 23일 도쿄 북부 구마가야에 설치된 대형 전자온도계가
낮 기온이 41.0를 기록해 일본 사상 최고 기온 기록을 갱신했다.
도쿄=교도뉴스 AP 연합뉴스
최근 한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일본이 무더위 대책으로 마라톤 결승선에 ‘얼음을 띄운 냉탕’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는 15일 도쿄에서 열린 마라톤 그랜드 챔피언십에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내년 올림픽의 무더위 대책을 미리
시험해보는 과정에서 나왔다.
주최 측은 이례적으로 코스 양쪽에 텐트 및 미스트 샤워장치를, 또 결승선 근처에는 냉탕을 설치했다.
일사병 증상을 보이는 선수들을 위해서였지만 실제 이용자는 없었던 만큼 내년 도쿄올림픽에서도 얼음 목욕탕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본에서는 또 이달 13일 온도를 낮추기 위해 인공눈을 뿌리는 실험까지 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경보와 마라톤 출발을 새벽 시간대로 옮겼고, 100㎞ 넘는 도로엔 '열 차단제'까지 바르는 등 온갖 아이디어를 쥐어짜내고 있다.
◇똥물 수영장, 골판지 침대… ‘보이콧’ 주장도
8월 15일 도쿄 오다이바해변공원에서 열린 트라이애슬론 대회 중 오픈수영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한 관련 인프라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다. 도쿄올림픽 테스트대회를 겸해
지난달 15일부터 도쿄 오다이바(お台場) 해변공원에서 진행 중이던 도쿄 패러트라이애슬론 대회 가운데 오픈워터
수영 경기는 수질 검사에서 국제 트라이애슬론연합(ITU)이 정한 기준치를 두 배 초과한 대장균이 검출되면서 취소됐다.
이후 오다이바 해변에서는 악취를 풍기는 갈색 거품이 포착되는 등 수질악화가 여전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일본 트라이애슬론연맹은 “수영에 적합한 수질이 아니더라도 수영 경기는 제한된 시간에 이뤄지는 만큼 건강상의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비 절감’을 위한 도쿄올림픽의 노력도 빈축을 사고 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앞서 2016년 자원봉사자 모집공고를 내면서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총 38박 동안 저렴한 숙소를 이용해도 숙박비만 5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국적
무관 모든 자원봉사자들에게 숙박과 식사를 무료 제공했다. 올림픽 선수촌에 제공하기로 한 ‘골판지 침대’도 재활용을 위해서라지만 일각에서는 비용문제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도쿄올림픽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자신을 정신과 의사라고 밝힌 한 일본 누리꾼은 '도쿄올림픽 상상도'를 트위터에 올려 5만건 이상 공유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상상도에는 ‘똥물’ 논란을 빚은 오다이바의 수영경기장, 더위에 지친 선수들, 관중석에서 휘날리는 욱일기, 뇌물을 손에 쥔 도쿄올림픽 관계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올린 누리꾼은 “어느 정도의 개연성으로 현실이 될 이 지옥도를 회피할 간단한 해결법이 있다.
중지 혹은 2개월 정도의 연기”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일인 8월 15일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서 우익들이
일본 국기와 욱일기를 들고 서 있다.
도쿄=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일본 정부가 전범기인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을 허용하기로 밝히면서 도쿄올림픽에 대한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아예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목소리도 꾸준하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 14~15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009명을 유ㆍ무선 전화 면접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응답률 14.7%ㆍ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응답은 59.1%로, 참가해야 한다는 응답(36.7%)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mailto:hoihoi@hankookilbo.com)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 화합” 기대감 ‘보이콧’ 대일 보복카드로 사용 안 할 듯 日 요지부동… 정부 측 “긴 호흡이 필요”
문재인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 내년 도쿄올림픽에 남북한이 공동
으로 출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권 일각에서 일본 경제보복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맞대응 수단으로 도쿄올림픽 보이콧까지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온 가운데 문 대통령은 올림픽을 ‘맞불 카드’로 쓰지 않겠다는 의중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과 마찬가지로 도쿄올림픽을 남북 관계개선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
으로 분석된다.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유엔 본부에서 바흐 위원장과 만나 이처럼 도쿄올림픽 남북 공동출전 추진 의사를 밝히고 협조를 구했다.
문 대통령은 또 2032년 하계올림픽을 남북이 공동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도쿄올림픽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올림픽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한국은 도쿄올림픽,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이 화합과 공동번영을 이끌어 가도록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도 했다
. 이어 문 대통령은 “평창에서 시작된 평화 분위기가 2032년 남북 올림픽으로 이어져 완성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에 바흐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평화로운 올림픽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올림픽이 정치화되지 않고 IOC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될 때만이 가능하다”며 “한반도 평화와 이해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IOC의 사명”이라고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올림픽 보이콧 문제는 민간·정치권 일각에서 나왔지만, 정부에서는 한 번도 검토 중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최악의 한일갈등 국면에서도 문화·스포츠 분야와 민간교류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일본 경제보복에 대한 강경대응을 멈추고 호흡 고르기에 들어가는 ‘시그널’을 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비합리적 경제보복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대화에 나서도록 반전의 명분을 제시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쿄올림픽 남북 공동출전 추진을 계기로 한일갈등이 당장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일본과 공식·비공식 접촉을 이어 가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요지부동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당분간 긴 호흡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뉴욕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
미드 ‘체르노빌’의 공포, 후쿠시마에서 되풀이된다면
[강혜란의 사소한 발견] 1986년 원전 파국을 키운 '거짓의 대가'
이 옥죄어오는 공포는 어디서 오는 걸까. 살인도, 고문도, 좀비도 없는데 5부작 내내 오싹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심지어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라서 결말도 아는데 말이다.
지난 8월부터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를 통해 국내서도 시청 가능한 드라마 ‘체르노빌’ 얘기다. 제목 그대로
1986년 4월 구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루고 있다.
이미 입소문에 본 사람이 많지만 오는 22일(현지시간) 제71회 에미상 결과가 나오면 또 한번 붐이 일 전망이다.
지난 5월 미국 HBO에서 방송된 ‘체르노빌’은 최우수 미니시리즈 등 1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있다. 지난 14~15일
사전행사 격으로 열린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Creative Arts Emmy Awards)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TV 프로그램의 효과, 음악, 캐스팅, 디자이너 등 기술 부문을 대상으로 하는 이 시상식에서 총 10개 부분을 수상한
‘왕좌의 게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7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 중 하나가 리미티드 시리즈/TV 영화 음악 작곡 부문이다.
수상자로 선정된 아이슬란드 여성 뮤지션 힐두르 구드나도티르(37)에겐 겹경사였다. 그보다 일주일 전 폐막한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도 사운드트랙 스타상을 탔기 때문이다.
수상작은 코믹스 계열로는 처음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호아킨 피닉스 주연 ‘조커’다.
1986년 4월 구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 미국 케이블 네트워크 HBO가 처음으로 영국 SKY와 손잡고 공동제작해 기록적인 시청률과 함께 격찬을 받았다.
[사진 HBO]
북유럽 특유의 감성이 배어서일까. ‘체르노빌’에는 희한하리만치 ‘음악’이 거의 없다. 리투아니아에서 로케이션 촬영된 화면을 지배하는 건 오로지 음산한 금속성 음향 혹은 서늘한 바람소리, 물소리 등이다.
‘픽션’이라는 걸 잊게 만드는 실존 인물들의 다큐멘터리급 사투가 이어진다. 그리고 묵직한 질문.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왕좌의 게임' 시청률 기록 깬 화제작
HBO가 처음으로 영국 SKY와 손잡고 공동제작한 ‘체르노빌’은 당시 사고 조사위원이었던 실존 인물 발레리 레가소프
소장이 1988년 4월 26일 1시 23분 경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드라마는 2년과 1분 전으로 돌아간다. 1부 제목 ‘1:23:45’는 노심 폭발사고가 발생한 1시 23분 45초를 뜻한다. 프리피야트 시내 한 소방관의 아내가 창문 너머 멀리서 피어오르는 구름과 섬광을 봤을 때 비극은 이미 시작됐다. 그로부터 시청자는 악몽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게 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 벌어졌는데 드라마 속 인물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무지 일색이다.
부조리한 지휘 체계 속에 사태는 악화되고 공포는 커져간다. 1부가 끝날 즈음 레가소프 소장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솔루션 트랙을 타게 되지만 해결난망이다.
숱한 ‘이름 없는 이들’의 고통과 희생을 거쳐 5부에선 일종의 법정스릴러 양상을 띠는데, 이 과정 어느 한 틈 긴장감과 휴머니티를 잃지 않는다. HBO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HBO GO’와 ‘HBO NOW’ 시청률 집계 결과 52%를 기록, ‘왕좌의 게임’이 갖고 있던 최고 기록(46%)를 깰 수 있던 이유다.
1986년 4월 구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 미국 케이블 네트워크 HBO가 처음으로 영국 SKY와 손잡고 공동제작해 기록적인 시청률과 함께 격찬을 받았다.
[사진 HBO]
5부작 어느 한 대목 버릴 게 없지만 [사소한 발견]이 주목한 건 이른바 ‘죽음의 다리’(Bridge of Death) 장면이다.
발전소 지붕 화재 사고로만 알고 소방관들이 출동하는 사이 프리피야트 시민들은 화재가 잘 보이는 철교 위로
모여든다.
칠흑 같은 하늘에 빛나는 섬광은 어느 순간 오로라 혹은 불꽃놀이 같다. “예쁘긴 하다”며 이를 천연덕스레 지켜보는
시민들. 가로등 아래 뛰어노는 아이들 어깨로 초미세 분진이 흩날린다. 죽음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단 뜻이다.
비슷한 장면은 1부 엔딩에도 반복된다.
지휘부가 소개령을 미루는 사이, 아무 것도 모른 채 햇살 아래 귀가하는 학생들의 발걸음 뒤로 철퍼덕 하늘에서 추락한 새가 몸을 비틀며 절명한다.
무지와 은폐, 커져가는 공포와 비극
크리스 조던이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에 서식 중인 새들의 삶을 8년간 추적한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2018)의 한 장면. 바다에서 구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로 생각한 어미가 새끼에게 게워 먹이고 있다.
[사진 크리스 조던]
“
바다가 제공하는 것을 믿고 새끼에게 먹일 뿐인데, 알바트로스는 플라스틱이 뭔지 모르고 나는 안다는 게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변호사 출신의 환경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이 지난 봄 서울 성곡미술관 전시회 때 내한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조던은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에 서식 중인 새들의 삶을 8년 간 밀착 관찰해 사진과 다큐로 담았다.
특히 바다에서 구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로 생각한 어미 알바트로스가 새끼에게 게워 먹이는 장면이 큰 화제를
불렀다.
자신이 믿고 먹인 것 때문에 자식이 죽게 된다는 걸 안다면 어느 누가 그러겠는가. 그래서 ‘체르노빌’을 보는 시청자도 소리치고 싶어진다. 지금 당신들이 호흡하는 공기는 온통 방사능이라고, 그 흑연에 손대는 순간 엑스레이를 4000만회 이상 쬐는 피폭을 당하게 된다고, 피폭 당한 남편을 간호하는 아내 역시 피폭될 거라고, 당신 태중의 아기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역사가 스포이기 때문에, 2019년의 나는 알고 1986년 프리피야트 주민은 몰랐던 것들. 죄책감과 무력감 뒤에 우리도 언제든 저들 중 한명이 될 수 있다는 불길함이 덮친다.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에 오염수를 담아둔 대형 물탱크가 늘어져 있는 모습. 처분하지 못한 오염수가 급격히 늘며 현재 부지에는 오염수 100만 톤(t)이 물탱크에 담긴 채
보관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불길함이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건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가능성이 논란이 되면서다.
잘 알려진 대로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도교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전체가 정전이 됐다. 이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체르노빌과 함께 인류 역사상 단 두 번뿐인 원전 사고 척도 최악의 7등급 사고로
기록됐다.
일본은 지난 8년 간 이 사고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고 표면적으로는 더 이상 사태 악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근 아베 내각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 쌓여있는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수면 아래 있던 문제가 올라왔다.
일본은 원전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계속 냉각수를 주입시켜왔는데 이로 인해 축적된 방사능 오염수가 이미 100만t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일부 각료는 "과감히 (바다에) 방출해 희석하는 방법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말해 일본 정부의 '무작정 방류' 의혹에 불을 지폈다. 한국이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기총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자
한‧일 간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후쿠시마의 진실' 일본이 밝힐 수 있을까
오염수 문제는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의 ‘후쿠시마 부실 대응’까지 재조명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당시 어떻게 졸속 처리됐는지, 현재 방사능 오염 악화를 막을 길은 없는지, 오염수 방류가
생태계에 얼마나 해로운 수준인지 등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내년 도쿄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웃나라인 한국의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의할 것은 원전사고 관련된 '은폐'도 문제이지만 '공포 과열'도 진실 파악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죽음의 다리'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결국 이로 인해 다 사망했다고 '체르노빌' 에필로그는 전한다.
하지만 이는 '도시 괴담'이고 실제론 전원 사망까진 아니었다고 알려진다.
거짓과 진실 문제를 파헤친 드라마까지도 착오를 피하지 못했으니 실체 규명이란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만큼이나
오래 걸리는 일일지 모른다.
1986년 4월 구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 미국 케이블 네트워크 HBO가 처음으로 영국 SKY와 손잡고 공동제작해 기록적인 시청률과 함께 격찬을 받았다.
[사진 HBO]
그러나 이 같은 괴담이 양산된 책임은 소련 정부에 있다.
체르노빌로 인한 사망자는 4000~9만3000명 사이라는 게 중론이지만 1987년 이래 소련의 공식적인 숫자는 31명에서 변함이 없다. 대체 누가 그 숫자를 믿겠는가.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그것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 위험한 것은 거짓을 끝없이 듣다가 더 이상 진실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레가소프 소장의 독백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그간 미국과 유럽, 한국까지 ‘체르노빌’ 열풍에 휩싸일 동안 일본에선 유독 방영되지 않아 별의별 억측이 있었다.
그런데 ‘왓챠플레이’의 정보에 따르면 드디어 오는 25일부터 일본 영화전문채널 '스타채널'을 통해 방영된다고 한다.
한편 일본에선 내년 3월 '후쿠시마 50'이라는 영화가 개봉하는데, 원전사고 당시 마지막까지 발전소에 남았던 50명의 희생과 영웅정신을 그리는 내용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도쿄올림픽 홍보를 위해 사고 안전대응을 자찬하는 프로파간다'라고 폄하하는 소리가 벌써 나온다.
과연 일본 사회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50'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고 귀를 기울일까.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독도에 욱일기까지… 도쿄올림픽, ‘그래도’ 참가하나
"독도는 일본땅, 욱일기 자인하는 꼴" "그렇다고 땀흘린 선수단 희생해야 하나"
2020년 도쿄올림픽을 불참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4~15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009명을 유·무선 전화 면접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은 59.1%였다.
앞서 지난 5일 CBS가 의뢰로 리얼미터가 도쿄올림픽 보이콧에 관한 국민 여론을 조사한 결과, 보이콧 주장에 찬성하는 응답 비율은 68.9%였다.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의 안전성을 믿기 어려워 선수 안전이 최우선이므로 추가 안전조치가
없다면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뜻이다.
도쿄올림픽을 불참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건 최근 점화된 일본의 도쿄올림픽 욱일기 응원 허용 방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올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과 우려는 그동안 ‘독도’ ‘방사능’ ‘욱일기’로 압축됐다. 독도가 일본영토로 도쿄올림픽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점, 올림픽 선수단 식단과 관련한후쿠시마산 농수산물과 원전 오염수 방출 논란, 욱일기 응원
허용과 패럴림픽 메달의 욱일기 문양 등이 그것이다.
욱일기에 앞서 국민들은 독도의 일본영토 표기에 주목했다. 이 같은 표기가 수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선수단이
도쿄올림픽에 출전할 경우 세계사회에 독도가 일본땅임을 인정해주는 꼴 아니냐는 것이다.
욱일기도 같은 맥락이었다. 만약 욱일기가 펼쳐진 가운데 한일전을 치르게 되면 이 또한 우리 스스로 욱일기을 인정하
는 모순에 빠진다는 것.
그럼에도 도쿄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인 게 사실이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국민의 자발적인‘노 재팬’열기와 이 같은 논란에도 체육계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일방적인 희생 ▲한국만의 보이콧 한계 ▲국제스포츠계 한국 고립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유치 불리 등의 관점에서 도쿄올
림픽 보이콧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국민 또한 이같은 체육계의 고민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여론이 반전한 것은 욱일기에 대한 하시모토 세이코 일본 올림픽장관의 발언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미온적인 입장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시모토 신임 올림픽장관은 지난 12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욱일기는 정치적 의미의 선전물이 결코 될 수 없다”라면서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은 문제 없다”고 거듭 확인한 것. IOC는 “욱일기를 사례별로 판단하겠다”는 어정쩡한 입장만을 반복했고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패럴림픽 메달은 아름다운 부챗살 모양”이라면서 일본 측 손을 들어주는 듯한
입장을 내놨다.
이에 따라 우리 또한 민관이 체육과 외교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욱일기에 대한 국제 여론 환기에 나섰다.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인식이 우리와 중국 등 일본의 직접적인 침략을 받은 동아시아 일부 국가에만 한정돼 있다는 사실에 착안, 중국 등과의 공조 속에 일본과 IOC를 압박한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8일 전 세계 주요 언론에 도쿄올림픽 욱일기 응원 허가 관련 제보 메일을 발송
했다. 이날 서 교수는 “일본의 욱일기는 과거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전범기임을 증명하고 욱일기가 어떤 깃발
인지에 대한 영어영상도 함께 보냈다”면서 “올림픽 헌장 50조 2항에 명시된 어떤 종류의 시위나 정치적 행위를 허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