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송 인터뷰에서 “그를 좋아하지만, 이제 똑같이 느껴지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관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미국 폭스스포츠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그와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었다”며 “그를 좋아하지만, 이제 똑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시 주석과의 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나는 그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코로나19) 발병으로 인한 여파는 무역분쟁보다 더 심각하다”며 “이 모든 죽음 등은 천배(심각하다). 전 세계는 문을 닫아야 했고, 이는 수치”라고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1월 중국이 농산물을 포함해 미국산 제품을 대규모로 추가 구매하고, 미국은 대(對)중 추가 관세부과 계획을 철회하며 일부 제품의 관세율을 낮추는 내용의 무역합의를 체결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발병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신(新)냉전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도 중국과의 2단계 무역 합의를 논의하는데 흥미가 없다면서, 시 주석과의 통화 여부에 대해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와 통화할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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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안보 분야 석학인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미중 관계가 더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만큼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 제공
미-중 군사적 충돌 위험한 상황.. 대만-한반도서 시작될수도
《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정치 경제 군사 등 전방위에 걸친 패권전쟁 양상이 나타나면서 일각에서는 사실상 신(新)냉전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세계 최강국 간의 관계 악화는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개념을 통해 미중 갈등의 위험을 경고해온 국제안보 분야의 석학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80)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미중 간 군사적인 충돌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고 그 시발점은 한반도나 대만 등 제3지역이 될 수 있다”며 “미중 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한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출신인 앨리슨 교수는 2017년 저서 ‘예정된 전쟁’을 통해 지난 500년간 인류 역사에서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의 16개 충돌 사례를 분석했다. 이 중 12번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졌다며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신흥 강대국 아테네가 기존 패권국 스파르타의 자리를 빼앗으려 할 때 전쟁 등 극심한 구조적 긴장이 발생하는 현상을 당시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지칭하면서 한 말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과 옛 소련의 대립을 분석한 그의 또 다른 저서 ‘결정의 본질’ 역시 국제관계학의 교본으로 평가받는다. 》
앨리슨 교수는 “미중 관계는 악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며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이 기존 강대국의 자리를 위협하면 반드시 엄청난 경고음이 울린다. 인류 역사에서 계속 되풀이됐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13일 e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의 위협을 괴물 ‘프랑켄슈타인’에 비유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정권은 모두 중국을 ‘친구’ 내지는 ‘파트너’로 인식했다.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물론이고 양당 모두 중국을 좋게 말해 ‘경쟁자’, 나쁘게는 ‘적’으로 여긴다. 만약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China Great Again)’라는 야망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계속해서 서열 1위인 미국을 위협하고 도전할 것이다.
만약 시 주석이 이 게임에서 승리한다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동아시아의 지배적인 파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미국은 점점 더 중국의 부상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미중 갈등과 과거 미소 관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더 많다고 본다. 무엇보다 경제적 비중이 다르다. 옛 소련의 경제 규모는 미국의 절반을 넘은 적이 없다. 중국은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미국보다 20%가량 크다. 또 소련의 무역은 동유럽 위성국가들로 제한됐고 세계 경제에서도 철저히 고립돼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 세계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한다. 정치 이념도 많이 다르다. 소련은 전 세계의 공산주의 혁명을 추구했지만 중국(공산당)은 그냥 중국만 지배하고 있다.”
현재 미중 관계가 20세기 냉전 시대와 다르다는 것은 앨리슨 교수를 비롯한 많은 국제안보 전문가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은 군사 및 과학기술, 체육 등의 분야에서 주로 경쟁을 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이런 분야 외에도 경제 무역 언론 등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측면에서 대립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양측이 교역 등에서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설사 미중의 극단적 대립이 발생한다고 해도 한쪽의 일방적 승리나 붕괴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고, 미국 또한 희토류 등 전략물자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만큼 상대방을 파멸로 몰아넣는 일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이 정말 전쟁을 벌일까.
“미중이 군대를 동원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중국을 계속 ‘악마’로 몰아가고, 중국은 소위 중국몽(中國夢)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반격을 하는 상황이다 . 과거 역사에서는 이런 상황일 때 실제로 전쟁이 자주 발생했다는 점을 두 나라가 깨달아야 한다.”
―군사 충돌이 벌어진다면 어떤 형태로 시작될까.
“강대국끼리 바로 충돌해서 전쟁이 발발하는 사례는 드물다. 그 대신 의도치 않았던 행위, 제3국의 도발, 평소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쉽게 수습될 사건들이 연쇄 반응의 악순환을 일으켜 강대국 또한 이에 합류하는 형태를 띤다.
양국 갈등의 최전선에 있는 중국 최대 통신업체 화웨이를 보자. 미중 관계가 계속 악화하면 중국이 대만에 쳐들어가 반도체 공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TSMC는 최근 미국의 압박에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중단했다. 앨리슨 교수의 말은 중국이 산업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대만에 군사 공격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앨리슨 교수는 이에 대한 추가 질의에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거듭 밝혔다.
―그렇다 해도 양국이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드러난 ‘사실(fact)’만 놓고 봐도 지금은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각국이 객관적인 팩트를 주관적으로 인식하면서 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다. 오해가 쌓이고 오판이 늘어나는 것이다.
만약 한쪽이 상대방의 진의와 야욕이 무엇인지를 한번 판단하게 되면, 이후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그런 편견을 확인하는 쪽으로 해석된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리 관계가 적대적이더라도,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자살 행위라는 게 엄연한 사실이라면 결국 ‘협력적 경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우린 냉전을 겪으면서 우리가 서로 아무리 달라도, 핵전쟁을 피하려면 서로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옛날 얘기를 좀 하자면 나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 특별보좌관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 서슬 퍼런 반공주의자(레이건 대통령)가 냉정히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는 항상 입버릇처럼 “핵전쟁은 이길 수도 없고, 그러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양국은 앞으로 서로 어떻게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보나.
“미국과 중국은 두 나라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되는 공통의 문제도 있다.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므로 양국은 불편하더라도 상호 간 파트너십(그게 아무리 제한된 파트너십이라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양국은 서로와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고대 중국에서 송나라와 거란이 외교 협정을 통해 더 이상의 전쟁을 피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면 미중 관계는 어떻게 될까.
“중국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핵심 이슈가 돼 버렸다. 정치권에는 ‘국가 안보에 관한 한 상대보다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는 금언이 있다. 그래서 두 후보 모두 상대가 중국 공산당에 너무 소프트하다는 공격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서로 더 경쟁적으로 중국에 강경 일변도로 나가려 하고 중국을 악마화하는 데 기름을 붓고 있다. 이런 선거 분위기 때문에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한동안 미중 관계의 악화는 불가피하다 . 하지만 바이든 후보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그는 중국에 대한 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높다. 지금 한국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나.
“아프리카에 ‘코끼리가 싸울 때 풀잎은 사정없이 밟힌다’는 속담이 있다. 한국은 두 투키디데스 라이벌(미국 중국) 중간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도 중국이 개입한 이후에는 남북한 군인에게 죽은 한국인보다 미군과 중국군에 의해 죽은 한국인이 더 많았다.
미중 간 갈등은 한국의 이익에 바로 직결되는 문제다. 양국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지 스스로 연구해야 한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앞서 말했듯이 미중의 군사 충돌은 반드시 미국이나 중국에서 비롯되지 않을 수 있다. 그보다는 제3국 또는 우방국을 둘러싼 갈등에서 촉발될 수 있다. 1950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예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관계 개선을 위해 다리를 놓은 것을 높게 평가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국의 이런 역할이 (미중 간의 관계에서도) 앞으로 더 중요할 수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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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워치
북한 비핵화 협상, 남·북·미·중 4자회담으로 가야
정부는 남북 관계를 ‘비상 시동’해 북핵 문제 견인하려 하나 북한은 한국 아닌 미국에 집착해 남북 관계 개선엔 무관심 비핵화 진전 위해선 북·미의 동시 행동 보장하는 장치 필요 미·중을 4자회담에 참여시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도록 해야
미·중의 발걸음이 갈수록 노골적이다. 상대국 외교 공관을 서로 폐쇄하는가 하면, 남중국해 도서 문제를 두고도 충돌한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처음으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무역 전쟁과 체제 경쟁에 이어 영토 문제에 이르는 전면전이다. 70년 전 미·소 냉전이 극으로 치달을 때의 모습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개인적 성향을 넘어 양국 관계에 충돌 에너지가 쌓이고 있다. 이 에너지는 대만·남중국해·한반도 중 어느 취약 지점에서 파괴력을 드러낼지 모른다. 44년 전 오늘 판문점에서 ‘8·18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전 재발의 일촉즉발 위기가 감돌았다. 다행히 미·중 관계 정상화 협상이 순항 중이던 시기였다. 워싱턴-베이징 핫라인으로 사태를 진화했지만, 한반도 지정학의 단면을 보여줬다. 당시 미·중 관계가 지금 같았다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한반도에서 강대국을 배경으로 한 충돌을 막고 평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 국정의 최우선 순위다. 1992년 남·북 기본 합의서, 2000년 6·15 정상선언, 2007년 10·4 정상선언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합의는 결국 북한 핵 문제로 좌초됐다.
이런 좌절의 행렬을 뒤로하고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판문점·싱가포르·평양·하노이로 이어지는 정상회담 드라마가 전개됐다. 긴 역사에 걸쳐 외세 간섭과 분단 대립의 사막을 걸어온 한국민에게는 오아시스의 신기루로 비쳤다. 남·북·미 지도자들의 비핵화 동상이몽 그러나 핵무기를 보유한 채 제재를 벗어나겠다는 김정은, ‘바보 같은 전임자들’이 하지 못한 북한과의 한 판을 겨냥한 트럼프, 충돌의 위기에서 일거에 비핵 평화로의 전환을 기대한 문재인, 이 세 사람이 올린 초현실적 무대는 지금 막을 내리고 있다. 핵 단추의 위협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정상 담판에 대한 신화적 믿음은 깨지고 북한은 9번째 핵 국가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한반도의 주역은 북한과 미국이라는 평양의 오랜 주장이 더 각인됐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는 두 번의 양자 회담과 한 번의 다자 회담에서 구체적인 원칙 합의에 도달했다. 1992년 남·북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그리고 2005년 6자회담의 베이징 합의다. 6자회담에서는 9·19 공동성명 등 3개의 합의가 나왔다. 그러나 이 합의들은 모두 이행되지 못했다. 이행 구도는 원칙 합의 단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취약하다. 매 단계 말이 아닌 실제 행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갈수록 협상이 예민해진다.
특히 북·미 양자 구도에는 종종 2% 부족의 의사소통 문제와 2년마다 선거를 해야 하는 미국의 국내 정치 요인도 제약으로 작용한다. 다자 회담이라고 해서 이런 장애를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협상의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함수 관계도 복잡해진다. 어차피 북핵 문제의 처방은 배탈 나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 사이의 선택이다. 맛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덜 불완전한 것을 찾아야 한다. 일단 북핵 감시와 단계적 해체를 위한 장치를 만들고, 추가 개발을 저지하면서 최종 해결로 가야 한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각자 의사를 현장에서 교차 확인하고 특정 국가의 일방적 궤도 이탈을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기록을 보면 미국과 북한에만 맡겨두기 어려운 일들이다. 몇 가지 이유에서 남·북·미·중 4자회담이 현실적이다. 첫째, 북핵은 근본적으로는 한반도 문제다. 당사자인 한국이 협상 현장에 있어야 한다. 둘째, 중국 없이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김정은은 협상의 고비마다 시진핑을 만났다. 트럼프와 폼페이오도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토로한다.
셋째, 북한은 중국이 참여하는 회담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는 핵 실험 같은 도발을 하지 못했다. 북·중 관계의 레드라인이기 때문이다. 넷째, 강대국은 전면 대결 상태에서도 어느 공간에서는 타협의 여지를 찾는다. 북핵 해결과 한반도 안정은 미·중이 함께 원하는 것이다. 회담 진행에 따라 일본과 러시아의 참여가 필요할 수도 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북한의 비핵화 진전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동시 행동을 보장하는 장치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와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핵 폐기에 뒷걸음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필요하다. 만약 북한이 발을 뺄 경우 중국이 이행을 강제한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중국이 진정으로 북핵 해결을 원한다면 반드시 맡아야 할 역할이다. 이런 전제 아래 한국도 미국의 적극적 행동을 독려할 수 있다. 세계 보지 않는 세계관은 위험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되면 북핵 해결이라는 업적을 과시하고자 할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감축·철수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해외 국방예산 감축과 미국 우선주의를 내거는 그의 성취 욕구에 맞는 소재가 된다. 이런 경우에도 핵 폐기 이행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4자 구도가 요구된다.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트럼프식 협상은 끝나고 제재는 지속할 것이다. 북한의 과격 반발과 한반도 위기가 예견된다. 바이든은 올해 초 외교정책 요강을 공개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동맹국 및 중국과 조율된 캠페인을 비상 시동(jump-start)할 것이라고 했다(‘포린 어페어스’ 기고). 다자적 접근을 염두에 둔 것이다. 중국은 진작부터 한반도 문제의 다자 구도를 지지해왔다. 지금 정부는 남·북 관계를 ‘비상 시동’해 북핵 문제를 견인하고자 한다. 과거 남·북 관계의 수많은 시도가 궤도에 오르기 전에 북핵 앞에서 예외 없이 주저앉았다. 다분히 북한이 한국 아닌 미국에 집착해 생긴 실패의 기록이다. 지금도 변할 기미가 없다. 정부는 북한의 이런 고질적 전략을 직시하고 한반도를 덮고 있는 국제 정세를 살펴야 한다. 미국은 대선과 무관하게 대북 압박을 상당 기간 지속하고자 할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대북 정책 구도를 존중해야 4자 회담 개최를 설득하고, 나아가 미·중을 한반도에서 조화시키는 길도 시도할 수 있다. 근대 지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세계를 보지 않는 사람의 세계관만큼 위험한 세계관은 없다.”
북한 비핵화 합의와 이행 실패의 역사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남북 기본합의서의 쌍둥이 합의다. 남과 북이 핵무기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13차례의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 개최에도 불구하고 핵 사찰 및 검증 대상과 방법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이행이 무산됐다. ◆북·미 제네바 합의(1994)=북한의 흑연 감속 원자로(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를 폐기하는 대신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 2기를 건설해주기로 합의했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경수로 건설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진행됐으나 1998년 북한의 장거리로켓 실험(대포동 1호)과 고농축 우라늄 의혹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미국 국내 정치의 갈등도 상당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이 빌 클린턴 정부에서 조지 W 부시 정부로 행정부가 교체되면서 2003년 폐기됐다.
◆베이징 6자회담 공동성명(2005)=남·북·미·중·일·러 6개국이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요체에 추가해 한반도 평화체제 및 동북아 안보협력을 포함한 포괄적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북한의 불법 자금 문제로 지체되다 2007년 1단계 이행방안을 담은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초기 이행 과정에서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검증 장치 문제(한·미·일은 일괄적 검증 장치를, 북한은 단계적 장치 채택을 주장)로 인해 2008년 이행이 좌초됐다.
[출처: 중앙일보] [송민순의 한반도평화워치]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시진핑 방한 가시권…앞당겨진 '양자 택일의 순간'
習 방한 기대했던 올초와 국제환경 달라…코로나 이후 미중갈등 첨예 "한국의 선택 주시, 표적이 될 가능성"…양자택일 난감한 상황 우려
양제츠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이 조만간 우리나라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 가능성도 매우 높아졌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파동 이후 악화된 한중관계를 정상화하는 계기이지만 날로 격화되는 미중 전략경쟁을 감안하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다.
◇習 방한 기대했던 올초와 국제환경 달라…코로나 이후 미중갈등 첨예
시 주석은 2014년 7월 이후 6년 넘도록 한국을 찾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두 차례 방문하고 전임 박근혜 대통령은 천안문 성루에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큰 불균형이다. 물론 이는 2016년 우리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때문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핵심 안보이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일방적 경제제재를 단행하며 양국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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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집권한 문 대통령은 사드 추가 배치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3불' 입장을 표명하며 중국 달래기에 나섰지만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부는 중국이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데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관계 복원의 최종 이벤트로서 시 주석 방한에 공을 들여온 게 사실이다.
올해 초에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전면 차단하지 않은 이유가 4월총선 전 시 주석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는 비판을 감내하기도 했다. 당시로선 시 주석의 방한은 무조건 환영할 일이었다. 일본도 시 주석의 '벚꽃 방일'을 추진하며 시점을 놓고 한일 간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예상 외로 확대되면서 국제 환경은 급변했다. 코로나19 발생국 중국과 최대 피해국 미국이 상처 입은 야수처럼 거친 힘 대결을 벌이면서 분위기가 갈수록 험악해지는 것이다.
◇"한국의 선택 주시, 표적이 될 가능성"…양자택일 난감한 상황 우려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의 연내 방한이 실현될 경우 세계적 주목 효과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시 주석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첫 해외 출장지로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택하는 것은 매우 전략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성공적으로 관리했다는 대외적 과시와 함께 미국의 반중국 포위 전략에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여주는 셈이다.
반면 한국으로선 오히려 난감한 상황을 맞을 공산이 크다. 시 주석의 방한은 그에 따른 '외교 청구서'가 뒤따른다는 뜻이고 여기에는 미중 간 민감한 현안에 대한 양자택일 요구가 담길 가능성이 높다.
화웨이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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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제재를 비롯한 5G 등의 기술패권 문제는 물론 반중 경제동맹으로 불리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 심지어 대만·홍콩·신장위구르·티벳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으로선 사활적 이해가 걸린 사안들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는 것이다. 우리로선 '선택의 순간'이 앞당겨지는 것이다. 미중 간 줄타기 외교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과거와 달리 선택의 폭은 훨씬 좁아졌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팽팽한 기 싸움'.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미중 대결이 신냉전을 방불케 할 만큼 첨예해지면서 진영 간 결집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주요국 가운데 한국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 나라들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처럼 안보와 경제를 분리 대응하는 전략은 더 이상 쓰기 힘든 상황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국제사회가 한국의 선택을 주시하면서 일종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으로는 미중 양측으로부터 전략적 불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지 않다"며 "국민적 공론화와 합의를 통해 정부의 입장 표명이 이어지는 게 현 상황에선 가장 최선의 대응"이라고 덧붙였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선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도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회담을 갖기 전 손을 맞잡고 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 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도와달라고 시 주석에게 간곡히 부탁했다고 곧 발간되는 신간을 통해 폭로했다.
시진핑은 트럼프 재선 원할것" 중국의 '이중 속내
中 제재 가하는 트럼프 대통령 원색적으로 비난하지만, 속내는 "미국 힘 떨어트릴 지도자"
대선을 앞두고 미 정부가 미쳐 날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미관계의 긴장 수위를 높이는 것이 연임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 있다." 미국이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를 요구한데 대해 지난 23일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논평(論評)을 통해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세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연일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미국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는 물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책임론,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따른 제재, 신장(新疆)자치구 위구르족 인권 탄압 등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中, 겉으론 바이든 바라지만, 속내는 트럼프 이유는?이 때문에 중국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승리를 절대적으로 바랄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속내는 이와 다를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대선까지는 아직 석달 이상이 남아있고 선거판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도 많다"며 "미국 대선주자들의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지는 오는 9월쯤 중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당연한 논리긴 하지만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 대선에 접근하게 될 것"이라며 "현실주의적인 접근과 보편적인 접근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상호 영사관(주미 휴스턴 중국총사영사관, 주중 청두 미국 총영사관) 폐쇄 등 충돌 양상 등 외형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중국에 유리할 수 있다. 중국 관영 매체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중국에 더 합리적인 후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의 실제 속내는 중국이 트럼프의 재선을 바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외교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더 망가뜨려야 중국에 득이 된다는 생각이 중국 엘리트들의 실제 생각"이라며 "단기적으로 힘들어도 트럼프가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면 향후 미국과의 경쟁에서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본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공산정권이 수립된 1949년부터 100주년인 2049년까지 치욕의 역사를 설욕하고 경제·군사·정치적으로 미국을 추월해 글로벌 리더가 되는 '백년의 마라톤'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 전문가는 "중국은 1~2년이 아니고 10~20년을 보고 전략을 짜는 나라"라며 "미국은 시스템의 나라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 시스템을 망가뜨려 미국의 국력을 약화시키면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경쟁에서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6.22.
중 누리꾼 "트럼프는 이중 첩자" 조롱도실제 미국은 코로나19 대응에서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19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주요한 이유중 하나는 의료시스템의 붕괴와 리더십의 부재라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엘리트들 사이에 '미국은 부유하지만 자국민의 안전을 지키기에는 지나치게 분열돼있고 이기적이며 인종차별적인 쇠퇴하는 국가'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관영언론 글로벌타임스를 인용해 "중국 누리꾼들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약화해 중국을 강하게 하는 이중 첩자'라는 조롱이 유행한다"고 전했다. 특히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미국은 패권국으로서 체면이 많아 깎였다.
그동안 진행해온 무역협상을 이어갈 대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게 더 유리할 것이란 평가도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권을 잡게되면 중국은 미국과 새로운 무역협상을 진행해야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현재로선 미국의 대선상황을 조용히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선 바이든 전 부통령이 앞서고 있지만 선거까진 아직 많은 날이 남았다.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은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라며 "대선 결과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야 조금씩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사진=AP 뉴시스
도광양회 버리고 중국몽·대국굴기 택한 시진핑
'중국몽' 시진핑 시대에 버려진 유훈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는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시대의 외교방침이었다. 신중과 절제를 덕목으로 한 이 유훈은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유소작위(有所作爲),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화평굴기(和平崛起)로 이어졌다.
장쩌민의 유소작위는 '할 수 있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의미이고, 후진타오의 화평굴기는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일어선다'는 의미다. 이들의 외교 키워드는 화합을 우선시 하고 외국을 비판하는데는 방어적인 의미를 지녔다. 그러던 것이 시진핑 주석이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 우뚝 섬)'를 내세워면서 중국의 태도도 달라진다. 시 주석이 2013년 초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이후 강국 노선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박한진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은 그의 저서 '프레너미'에서 "이때 중국이 '대국의 외교'에서 '대국 외교'로 전환했다"고 평가했다. 대국의 외교는 단순히 큰 국가의 외교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지만 대국 외교는 자국에만 신경쓰지 않고 다른 국가와 지역, 더 나아가 글로벌 문제에 대해서 간여하겠다는 의미로 평가된다.
시 주석이 이같은 태세전환은 경제와 기술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면서 미국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있다. 중국은 더 이상 도과양회를 외교 덕목으로 삼지 않게 됐고,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력을 무기로 패권국가 미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을 방치할 수 없었다. 중국을 견제해야한다는 공감대가 미국 내에서 발생했고 이는 두 나라의 격한 충돌로 이어지고 있다.
영구집권 길 연 시진핑, 美와 대결로 내부결속 강화 노렸나일부에선 미중 대결의 원인이 시 주석의 영구집권을 위한 포석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의 패권 대결을 통해 국내적 단결과 강력한 지도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 강력한 적이 만들어지면 내부적으론 배타적 민족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실제 시 주석은 취임 이후 줄 곧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우면서 군사력을 강화했다. 2018년 3월 헌법개정을 통해 국가 주석 임기제한을 철폐하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면서 장기집권에 나섰다. 그러나 시 주석의 이런 노선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감을 불러 무역전쟁이 촉발된 것으로 평가된다. 두 나라의 무역전쟁이 장기화하고 전쟁범위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시 주석의 강경노선에 내부적인 비난도 나오는 상황이다.
일부에선 시 주석이 덩샤오핑이 아니라 마오쩌둥(毛澤東) 스타일의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린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인물이다. 마오쩌둥은 끊임없는 싸움을 이겨낸 투사형 지도자다. 반면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국가로 자리를 잡은 중국을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워 발전시켜야 하는 시기에 집권을 했다. 이를 위해선 안정과 통합이 필요했다.
중국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적이 외부로 바뀌었지만 시 주석은 마오쩌둥 주석처럼 끊임없이 투쟁하고 싸움을 하고 있다"며 "장기집권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중국은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과 다르다"며 "지금은 덩샤오핑 스타일의 타협과 개방이 필요함에도 마오쩌둥 스타일의 외교를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12일 대만 타이페이에 있는 리덩후이 전 총통 분향소를 찾아 추모하고 있다.
/ 사진:AP=연합 뉴스
41년 만에 미국이 대만을 찾은 이유] 미국·중국·대만 삼각관계 끝은 어디
글
美, 중국 폭정 공산당으로 규정… 옛 우방국들과 반중 연대 강화
미국의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9~13일 미수교국인 대만을 방문한 것은 미국-대만 관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에이자 장관은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 단교한 뒤 타이베이를 찾은 미국 인사 중 최고위급이다. 단교 뒤 미국 각료급 인사의 대만 방문은 6년 전인 2014년 지나 매카시 환경보호청장이 마지막이었다.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미·중 무역 전쟁과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이에 따른 휴스턴과 청두의 총영사관 폐쇄 등으로 악화 일로에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에서 눈에 띄는 일정을 보냈다. 의례적인 방문 수준을 넘어선다. 표면적인 이유인 방역 협력은 그 일부일 뿐이다. 8월 9일 특별기 편으로 타이베이에 도착한 에이자 장관은 대만에서 상당히 바쁜 일정을 보냈다. 10일 오전 대만에서 사실상 미국 공관 역할을 하고 있는 민간기구 미국재대만협회(AIT)의 제임스 모리아티 대표 등과 함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만나 회담했다.
미수교국인 대만의 최고지도자와 거침없는 만남의 행보를 보인 셈이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의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 천젠런(陳建仁) 전 부총통, 라이칭더(赖淸德) 전 행정원장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번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12일 에이자 장관이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분향소가 마련된 타이베이 빈관을 조문하며 대만에 민주주의를 가져왔던 리 전 총통의 업적을 기린 것이다. 대만 민주화의 물꼬를 터 ‘미스터 민주주의’로 불렸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분향소를 찾아 추모한 에이자 장관은 중요한 발언을 쏟아냈다.
에이자 장관은 분향소에 ‘리 전 총통의 민주주의 유산은 미국과 대만 관계를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다. 의례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문구다.
국민당 소속 리 총통은 1988~2000년 대만 총통을 지내면서 다당제와 총통 직선제를 도입하고 국민당 독재를 종식해 대만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일본 식민지 시절 대만에서 태어나 일본 교토대 농림경제학과에서 공부하다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일본군 소위로 임관해 복무했다. 그는 종전 뒤 미국에 유학해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석사,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전공은 농업경제학이다.
美 복지부장관 대만 방문, 중국에 맞서 연대 암시
정치에 뛰어든 그는 본성인(本省人)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만 총통을 맡았다. 본성인은 1945년 이전에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한인을 가리킨다. 1949년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 빼앗기면서 대만으로 이주한 국민당계 한인과는 정체성이 다르다.
리 전 총통은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는 한편, 베이징 당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면서 ‘양국론’을 주장하며 대등한 양안 관계를 추구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대만인으로부터는 ‘국부’로 존경 받았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대독(臺獨•대만독립) 세력의 수괴’로 불렸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 방문 중 리 전 총통에 대한 찬사를 계속했다. 10일 차이 총통을 만났을 때는 “리 전 총통은 대만 민주주의의 아버지인 동시에 20세기 전 세계 민주주의 조류의 중요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11일 대만국립대학 강연에서는 리 전 통총을 “위대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민주주의자인 리 전 총통 추모를 내세워 중국공산당을 자유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세력으로 몰아간 셈이다.
에이자 장관의 방문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12일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와 연구소와 미국진보센터(CAP)가 공동 주최한 화상회의에서 “대만이 자유·민주의 튼튼한 보루 역할을 하겠다”고 발언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 보위는 인도·태평양 지역 자유의 보루’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같은 맥락에서 홍콩인에 대한 지원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국이 전국인민대표회의 결정으로 홍콩 국가안전법을 제정하고 일국양제 체제 분열, 정권 전복, 테러조직 결성 및 활동을 예방·저지·처벌한다며 공안 정국을 조성하자 대만은 홍콩인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지원 의사를 밝혀왔다. 이주를 희망하는 홍콩인을 받아들이겠다는 뜻도 공개해왔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 방문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강조했다. 중국이 세계보건기구(WHO) 의사결정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에서 대만의 옵서버 자격 참가를 반대해 올해 화상으로 열린 총회에 참가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에이자 장관은 “장관으로 있는 동안 대만의 옵서버 지위 회복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두고 중국을 비난하고 대만을 감싼 셈이다.
대만 총통 전투기 구매로 美 대만여행법 통과에 화답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10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인구 2380만 명의 대만은 중국 우한(武漢무)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즉시 문을 걸어 닫고 중국과의 인적 교류를 중단했으며 철저한 방역으로 확산을 저지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확진자 481명에 사망자 7명의 경미한 피해에 그쳤다. 그 결과 대만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모범적으로 대처한 국가가 평가된다.
하지만 중국의 방해로 올해 세계보건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의 마스크 공장을 방문해 “우리는 안보·경제·보건 분야에서 친구이자 파트너인 대만을 지속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러한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과 언행은 미국과 대만 관계가 새로운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국은 1979년 단교 뒤 대만과는 공식 외교 접촉은 자제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해왔다. 2016년 5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첫 취임(올해 1월 재선)하고 그 해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취임은 2017년 1월)하면서 미국과 대만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왔다.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이던 그 해 12월 차이 총통과 전화 회담을 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대만의 총통이 전화회담을 한 것은 1979년 미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은 뒤 처음 있는 일이다.
2018년에는 미국과 대만 관계가 급진전했다. 미국과 대만 고위 관료들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촉진하는 ‘대만 여행법(Taiwan Travel Act)이 그 해 2월 28일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3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발효됐다. 미국 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6년 9월 대만여행법을 발의하고 상원에 제출했지만 부결됐다.
하지만 대만여행법은 2017년 1월에 하원을 거쳐 5월 상원에 다시 제출됐으며, 결국 2018년 1월 하원에서 법안이 가결된 데 이어 2월 28일 상원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대만여행법의 첫 수혜자는 대만의 차이 총통이었다. 그는 2019년 3월 말 남태평양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 하와이를 경유하며 미군 장성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과 만났다.
차이 총통은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세미나에도 참석해 “미국에 F-16V 전투기와 전차 구매를 요청했다”고 직접 밝히고 “전 세계에 대만 방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뒤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에 F-16V를 팔기로 했다. 이는 대만이 1992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전투기 도입이 됐다.
육군 8만8000명, 해군 4만 명, 공군 3만5000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대만은 최신 무기체계 획득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중국의 견제로 전 세계에서 무기를 들여올 수 있는 나라는 사실미국 밖에 없는데 그나마 최신형 무기체계는 팔지 않기 때문이다. 육군의 경우 미군이 쓰는 M1A1 에이브럼스 전차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미국의 거부로 한 단계 아래인 M60A3 전차 200대 구매에 만족해야 했다.
565대의 주력전차(MBT)를 보유한 대만 기갑 전력의 핵심은 구형인 M-48 전차다. 479대의 전투기를 보유한 대만 공군의 핵심은 143대의 F-16 A/B형이다. 개량된 C/D형은 미국이 팔지 않아 획득하지 못했다.
87대의 F-5E/F도 보유하고 있지만 퇴역 시기가 한참 넘은 구형 기종이다. 그 외에 55대의 프랑스제 미라지 2000을 운용하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는 중국의 눈치를 봤는지 성능이 떨어지는 기종을 넘겼다.
미국·대만, 앞에선 단교 뒤에선 우방국 군사동맹 유지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5월 15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백악관 정원을 거닐며 얘기하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이런 사정의 대만에 미국이 F-16V를 핀매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과정에서 대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무역협상 등에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카드인지도 알 수 없다.
이는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와 미·대만 단교 이후 유지돼 왔던 워싱턴과 베이징의 관계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지적된다. 사실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면서도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대만 방위를 위한 역할도 계속해왔다. 미국 의회는 1979년 미국의 대중 수교와 대만 국교단절 직후인 그해 4월 ‘대만관계법’을 제정했다.
오랜 우방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연합국으로 싸웠던 중화민국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과거 양자가 맺었던 외교협정을 유지하고, 대만 방어용 무기에 한해 대만에 미국산 무기를 제공하며, 대만 주민의 안전과 사회경제적 제도를 위협하는 무력사용 등 강제적 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력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은 미국 국내법임에도 내용은 외교 협정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과 대만이 국교는 단절하면서도 군사적 동맹관계는 유지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미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 수립을 전후해 1972년 2월 ‘상하이 코뮤니케(공동성명)’, 1978년 12월 ‘미·중 수교 코뮤니케’, 1982년 8월 ‘8·17 코뮤니케’ 등 3개의 코뮤니케를 발표했다. 1972년 상하이 코뮤니케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처음 언급했다.
1978년 수교 코뮤니케에선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만과 공식적인 정치 관계는 단절하되 경제·문화적 관계만 유지하며, 미·중 양국이 국제 분쟁을 줄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1982년 8·17 코뮤니케에선 이전 코뮤니케에서 나왔던 대만 문제를 재확인했다.
대만관계법·6개보장으로 중국 주도 양안 통일 견제
독특한 점은 8·17 코뮤니케 직전에 대만과 ‘6개 보장’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6개 보장은 대(對)대만 무기판매에 기한을 정하지 않고, 무기수출시 중국과 사전협상하지 않으며, 양안 중재 역할을 맡지 않고, 대만관계법을 수정하지 않으며, 대만 주권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변경하지 않고 대만에 중국과의 협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1979년의 대만관계법과 1982년의 6개 보장은 미국과 대만 관계의 기본 원칙이 돼왔다.
상하이 공동성명은 ‘미국은 대만해협 양측의 모든 중국인들이 중국은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이러한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이라고만 했을 뿐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중국이 주도하는 양안 통일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렇게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 민간기관인 미국주 대만협회(AIT)를 상주시키면서 관계를 이어왔다. AIT는 민간기관이지만 비자 업무 등을 운영하면서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서 실질적인 미국 외교공관 역할을 해왔다. 외교공관과 달리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와 가오슝(高雄)에는 물론 미국 워싱턴에도 사무실을 유지한다.
지난해 3월 19일 AIT의 윌리엄 브렌트 크리스텐슨 대표는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과 대만이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 사무소’의 고위 관리가 참석하는 연례 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대화의 명칭이 ‘인도태평양 민주주의 거버넌스 협의(Indo-Pacific Democratic Governance Consultations)라는 사실이다.
이 포럼의 목적에 대해 크리스텐스 대표는 “미국과 대만이 지역에서 협력을 증진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추구해 오늘날 거버넌스 도전을 받는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것”이라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촉진하는 데 미국과 대만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없다”라고 말했다.
1년 전의 이 발언은 이번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열쇠일 것이다.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반비례해 계속 변화 중이다. 그 궁극적인 종착역이 어딘지는 아직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