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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Prokofiev, Synfonia Concertante in E minor Op.125

Prokofiev, Synfonia Concertante in E minor

프로코피예프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단조

Sergei Prokofiev

1891-1953

Emanuel Graf, cello

Nicolás Pasquet, conductor

LISZT School Symphony Orchestra

2012.05.10

 

Emanuel Graf/Nicolás Pasquet/LISZT School SO - Prokofiev, Synfonia Concertante

 

프로코피예프가 처음으로 작곡한 첼로 협주곡 1번 Op.58은 1938년 11월 26일 알렉산더 메릭-파샤예프가 지휘하는 USSR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 레프 베레조프스키의 연주로 초연됨과 동시에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다. 작품 탓인지 연주자 탓인지는 정확하게 구분하기 힘들지만 두 달 동안 이 신작을 첼리스트인 베레조프스키와 함께 리허설을 했던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베레조프스키는 너무 감상적으로만 이 작품을 해석하려고만 해서 이 작품이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 실망스러운 초연 이후 친구들의 간곡한 설득에 힘입어 프로코피예프는 몇몇 부분을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하긴 했지만, 1933년경 작곡가가 파리에 머물던 시절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의 영향을 받아 스케치를 시작한 이 작품에 대해 완전히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근본적으로 실패할 운명을 타고난 작품인 것 같았다.

9년 뒤 작곡가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소강당에서 벌어진 기념비적인 연주회에 참석했다. 20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첼리스트가 피아노 반주로 작곡가가 애정이라고는 갖고 있지 않았던 비운의 첼로 협주곡 Op.58을 연주하는 것을 지켜본 것이다. 순간 번뜩이는 영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음을 깨달은 프로코피예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작품을 개정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프로코피예프는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 많은 음악적 교감을 나누면서 이 곡을 탄생시켰다.

그는 무대 뒤로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해준 젊은 첼리스트를 찾아가 작품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말하며 초연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1947년 12월 21일 벌어진 이 두 음악가의 대화는 새로운 개작의 시작인 동시에 20세기 첼로 협주곡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날 프로코피예프를 감동시킨 젊은 첼리스트의 이름은 바로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였다.

제자이자 친구였던 첼로의 거장

그 사이 프로코피예프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의 첫 부인인 리나가 억울하게 스파이 혐의를 받고 1948년 2월 20일 체포되어 노동자수용소에 보내졌다. 무려 20년형을 받았다. 로스트로포비치가 후일 “항상 위대한 아이와 같으며 놀라울 정도로 천진난만했다.”라고 회상했을 정도였던 작곡가는 가히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세 가지 부류로 정의 내렸던 낙타-사자-어린아이 가운데 바로 어린아이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문화 담당 인민위원인 안드레이 알렉산드로비치 주다노프가 중앙인민회의에서 작곡가들을 맹렬히 비난하는 자리에서조차 자신의 오페라 <전쟁과 평화>를 지휘한 지휘자와 유쾌한 음악 대화를 나누었을 정도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그는 사자의 단계로 자신을 끌어내려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을 맹렬히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분노를 음악으로 녹여내려는 듯 그는 1930년대에 작곡한 교향곡 4번과 피아노 소나타 5번, 그리고 실패로 점철된 첼로 협주곡을 개작하는 작업에 몰두하며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프로코피예프는 로스트로포비치를 위해 첼로 소나타 Op.119를 작곡했다. 니콜리나 고라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로스트로포비치를 초대한 작곡가는 소나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1950년 3월 1일 그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곧바로 첼로 협주곡의 개작에 착수한 프로코피예프는 매년 여름마다 니콜리나 고라에 있는 별장으로 로스트로포비치를 초대하여 악기의 테크닉적인 측면과 표현의 한계에 대한 많은 조언을 얻었다.

첼리스트 역시 작곡가를 자신의 우상으로 존경하며 그의 엄격하고도 절제된 일상생활과 음악에 대한 헌신을 자신 또한 배우게 되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생의 마지막까지 규칙적인 일상과 활발한 음악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프로코피예프로부터 배운 습관 덕분이다. 프로코피예프가 좋아하던 타이나 향수까지 똑같은 것을 사용할 정도였던 로스트로포비치는 작곡가의 음악적 재능에 감복한 나머지 작곡가가 되고자 했던 자신의 꿈을 스스럼없이 접을 수 있었다.

1952년 프로코피예프는 첼로 협주곡 2번 Op.125라는 제목으로 개정작업을 끝마쳤다. 그리고 그 해 2월 18일 로스트로포비치와 오른손을 부상당해 사용할 수 없었던 리흐테르가 지휘하는(그로서는 지휘자 데뷔 무대였다) 모스크바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초연이 이루어졌다. 1948년 2월 10일 중앙인민회의로부터 ‘형식주의자’ 혹은 ‘부르주아’로 낙인찍혔던 프로코피예프에게 이 초연 무대는 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초연된 첼로 협주곡 2번은 그 정확성과 긴장감, 고도의 다이내믹, 유려하면서도 확장력 높은 멜로디 덕분에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개정판인 동시에 두 번째 첼로 협주곡을 초연한 뒤 프로코피예프는 무엇인가가 석연치 않은 듯 또 다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엄정한 기준에서 마지막 악장 외에는 전혀 새로운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작품을 또 다시 수정한 뒤에야 비로소 ‘신포니아 콘체르탄테’(혹은 교향적 협주곡)라는 보다 확장된 개념의 제목을 새롭게 붙인 것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판본은 1954년 12월 토마스 젠센이 지휘하는 덴마크 왕립 오케스트라와 함께 역시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자신의 음악 이념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프로코피예프를 평생 괴롭혔던 스탈린은 1953년 3월 5일 사망했는데 같은 날 프로코피예프도 별세했다. 그래서 스탈린이 끝까지 그를 괴롭히려고 데려갔다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이후 프로코피예프는 로스트로포비치를 위해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티노’라는 작은 규모의 협주곡 하나와 두 번째 첼로 소나타를 작곡하기 시작했지만, 1953년 3월 5일 작곡가가 세상을 떠나는 탓에 이 두 곡 모두 완성되지 않았다(단, ‘콘체르티노’는 프로코피예프의 의도를 전달받은 로스트로포비치의 위촉으로 드미트리 카발레프스키가 완성시켰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적 삶을 끊임없이 괴롭혀 왔던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자신의 소비에트 예술 신념을 끝까지 지키려는 듯 같은 날 프로코피예프를 데려갔지만, 이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는 철권적, 맹목적 지배에 대항한 한 자율적 예술인의 가장 강력한 저항이자 위대한 표상으로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불멸의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Rostropovich/Ollu Kamu/Monte Carlo NO - Prokofiev, Synfonia Concertante

Mstislav Rostropovich, cello

Ollu Kamu, conductor

Monte Carlo National Orchestra

1970.01.12

1악장: 안단테

전체 약 38분 정도의 긴 연주시간을 요구하는 이 대작은 전체가 전통적인 협주곡의 3악장 구성으로 이루어졌지만, 악장별로 독립된 구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전혀 새로운 감정 선과 구조를 갖고 있다. 호방한 듯 자유분방한 제시부에 이어 저역 현악기의 피치카토 위에 첼로 솔로가 곧바로 등장하는 첫 안단테 악장은 서정미와 개방감이 넘실거리며, 현격하게 대조되는 두 개의 주제가 화려하지만 엄격하게 발전, 변형되면서 고도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2악장: 알레그로 지우스토

무려 17여 분의 연주시간을 요하는 두 번째 악장은 알레그로 지우스토로 일종의 스케르초 악장이다. 서정미가 극대화한 첫 부분도 아름답지만, 특히 가운데 부분에 위치한 장대한 카덴차가 20세기의 마지막 비르투오소 작곡가로서의 프로코피예프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명백히 로스트로포비치의 조언을 받은 부분으로, 순수한 평화로움으로부터 광기어린 열기에 이르기까지 악기의 테크닉과 연주자의 정신력을 극한치까지 고조시킨다.

3악장: 안단테 콘 모토 – 알레그레토 - 알레그로 마르카토

마지막 악장은 안단테 콘 모토 – 알레그레토 - 알레그로 마르카토로, 점진적으로 빨라지는 템포를 통해 주제와 변주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진행이 펼쳐진다.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신랄한 유머와 패러독스가 눈에 띄는 이 마지막 악장은 행진곡 풍의 장대한 피날레로 돌진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추천음반

1. 이 작품의 초연자인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를 처음으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공식적으로 세 개의 fp코딩을 남겼는데 이 가운데 첫 번째인 1957년 녹음이 가장 직선적이고 다이내믹한 연주로서 오랫동안 추천되어 왔다.

2. 그 다음으로 툴르스 뫼르크와 파보 예르비의 녹음(Virgin), 고티에 카푸송과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녹음(Virgin)이 현대적인 세련미를 더한 호연으로 추천할 만하다.

3. 이 가운데 장한나와 안토니오 파파노의 녹음(EMI)이야말로 이 작품의 서정성과 극적 감수성을 새롭게 표현한 새로운 시대의 명반으로 가장 먼저 추천함에 모자람이 없다.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2.09.24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13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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