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 Piano Concerto No.21 in C maj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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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Maurizio Pollini, piano
Riccardo Muti, conductor
Orchestra Filarmonica della Scala
2004
영화 <엘비라 마디간>. 1967년 작품인 이 스웨덴 영화는 ‘한때 가장 아름다웠던 불륜’을 다룬 영화로 유명하다. 거기엔 여주인공 피아 데게르마르크의 청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과 배경음악으로 쓰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의 아름다움이 한몫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고요한 호숫가에서 미끄러지듯 배를 타는 느낌, 풀밭에서 나비를 잡으며 뛰어다니는 엘비라 마디간의 순수한 모습은 모차르트의 이 곡에 대한 가장 큰 선입견이자, 방방곡곡 유명하게 만든 성공적인 홍보 요인이기도 했다. 이제 영화가 나온 지 40년이 넘었고 점차 영화 <엘비라 마디간>과의 연관성보다는 이 곡이 피아노 협주곡의 명곡이라 불리는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시점이 왔다고 하겠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2악장
모차르트가 1785년 2~3월 완성한 이 작품은 1785년에 나온 3개의 협주곡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피아노 협주곡 20번 K.466이 나온 지 불과 한 달 뒤 자신이 주최하는 예약 콘서트에서 모차르트가 직접 독주 파트를 연주할 작품으로 작곡한 것이다. 이 곡은 기존의 협주곡 영역을 탈피해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교향악적으로 하나가 되는 내용을 지닌 충실한 편성으로 관현악법을 전개시켰다. 그 점에서 피아노 협주곡 20번과의 구조상의 공통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주는 우아하고 감미로운 인상은 단조에다가 어둡고 질풍노도와 같은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행진곡 풍으로 시작하는 곡의 분위기, 끓어오르는 듯 희극적인 정서가 강한 피날레, 중간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아름다운 칸타빌레를 관철시키는 안단테, 곡의 무게중심이 완연하게 피아노 독주에 잡혀 있는 점을 보면, 모차르트가 전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20번에서 탈피하려 했던 사교계의 유흥음악 영역으로 다소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전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숨 막힐 듯 어둑어둑한 격정의 D단조에서 빠져나와 C장조란 맑고 투명한 조성을 고른 모차르트의 심리는 무엇일까? 어쩌면 자신의 악기를 금방 주조한 종처럼 마음먹은 대로 한껏 울려보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겠다. 분명 독주자의 기교를 과시하고 있지만 결코 극단으로 빠지지 않는 균형감각과 중용이 돋보이며, 오케스트라와 독주악기가 주고받는 조화로운 모습은 협주곡의 두 가지 성격 가운데 하나인 ‘협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모차르트가 직접 쓴 카덴차가 없는 것이 아쉽다. 1785년 3월 9일 빈에서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필 악보에는 1785년 2월로 나와 있다. 1785년 3월 10일 부르크 극장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초연됐는데, 성황리에 개최된 이 음악회에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참석해 그 성공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Dinu Lipatti/Herbert von Karajan/LFO - Mozart, Piano Concerto No.21 K.467
Dinu Lipatti, piano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Lucerne Festival Orchestra
Kunsthaus, Luzern
1950.08.23
추천음반
굳이 <엘비라 마디간>의 그 연주라 말하지 않더라도 게자 안다가 1960년대에 카메라타 아카데미카 잘츠부르크와 함께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집(DG) 녹음을 가장 자주 플레이어에 올리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첫사랑의 추억은 노 젓는 배가 미끄러지듯 또다시 우리 귓가에 감겨온다. 모차르트를 꿰뚫어보는 듯한 게자 안다의 손가락은 장조 속에 숨어 있는 엘비라 마디간의 비극을 언뜻언뜻 시리게 제시하는 듯하다.
다음으로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인 미츠코 우치다(Philips)의 음반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반복 감상할 때마다 우치다의 모차르트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 외면의 아름다움을 좇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작곡가 모차르트와 작품을 철저히 연구해 그 각각의 맥락까지 파고드는 오랜 준비 기간이 만들어낸, 시간에 투입한 노력의 금자탑이라 하겠다. 제프리 테이트가 지휘하는 잉글리시 체임버는 피아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을 선보이고 있다.
머레이 페라이어(Sony Music)의 연주 역시 뛰어난데, 페라이어의 모차르트 협주곡 앨범 가운데 최고의 성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한 음의 낭비도 없이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와 동일한 색채로 약동한다. 나긋나긋한 건반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하나가 되고 있다.
원전 연주의 해석으로는 말콤 빌슨의 포르테피아노와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하는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의 연주(Archiv)를 꼽고 싶다. 빌슨은 모차르트가 당대에 소유했던 안톤 발터가 제작한 포르테피아노를 복사해 만든 악기로 연주하는데, 빌슨과 가디너의 민첩하면서도 우아한 연주를 들으면 모차르트가 원래 의도한 정답에는 이쪽이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솟구치며 설득 당하게 된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현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전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전 <객석> 편집장 역임. 옛 음반과 생생한 공연의 현장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누비길 즐겨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