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hur Grumiaux/Clara Haskil - Mozart, Violin Sonata K.526
유려하고 우아한 연주로 ‘궁정 악사’라고 불린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1925-1986)와 희귀성 병마와 시대의 고난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피아노의 성녀’ 클라라 하스킬(1895-1960)의 연주입니다.
모차르트의 ‘건반악기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의 역사는 어느 정도 음악 미디어와 장르의 변화, 18세기 음악문화의 변화와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여덟 살 무렵 파리에서 체류 중이었던 모차르트는 악기들의 혼성연주를 주제로 한 작품을 최초로 완성했다(이미 신동 모차르트는 7살 전에 이러한 것들을 시작했다). 그는 바이올린 반주부를 포함하는 건반악기 소나타(초기 단계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고 있었다.
건반악기와 바이올린을 대등한 위치에 놓기 위한 노력
바이올린 소나타 장르는 앙시앵 레짐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 음악 장르로 발전해 나갔다. 왜냐하면 이 장르는 상류 계층에 속해 있는 젊은 귀족 여성들이 하프시코드나 포르테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 레슨을 위해 자주 활용한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들을 가르치는 신사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레슨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도 귀족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이올린 소나타 장르는 이러한 사회-문화적 상황을 바탕으로 딜레탕트 음악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무렵에 반주를 수반하는 소나타 장르는 지금과 달리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소나타 연주에 있어 보조적인 역할만 담당하고 있었고, 주력이 아닌 반주악기로서의 역할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이올린 본래의 모습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18세기 사람들은 이 악기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 음악적 호소력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무심했다. 그러나 미개발 상태로 놓아두기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지닌 가능성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 점을 간파한 모차르트를 비롯한 동시대의 음악가들은 소나타라는 음악 장르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18세기에 바이올린 소나타는 귀족 상류층의 음악 레슨을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카르몽텔 <피아노를 치는 모차르트와 아버지, 누이>.
1760년대부터 작곡된 반주를 수반한 소나타 작품들을 살펴보면, 음악에 관련된 모든 논쟁들이 바이올린이 아닌 건반악기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바이올린은 음률의 조화만을 유지하며 반주의 음형을 첨가했고, 더 나아가 3도 내지는 6도 아래의 선율을 반주하거나(심지어 단순하게 한 옥타브 아래의 선율), 포르테 악절의 건반 연주를 보강하는 역할만 했다. 극히 드물게 바이올린 연주자가 멜로디의 한 도막을 연주하거나, 건반악기 연주자의 오른손 연주와 함께 음악적 대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러나 1780년 후반부터 딜레탕트 음악시장의 요구로 인하여, 몇몇 작곡가들이 이 두 악기들을 좀 더 대등한 관계에 놓은 통합적 소나타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대등한 관계란 바이올린과 건반악기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듯이, 각 악기들에게 다른 특성과 의미와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바이올린이 소나타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인정될 수 있었고, 건반악기가 오히려 보조나 보강의 역할을 맡는 진정한 바이올린 소나타의 시대는 19세기 낭만주의 비르투오소 시대에 접어들어서야 등장했다. 모차르트는 시대에 앞서 바이올린 소나타 장르에 선구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러한 사실은 모차르트가 빈 체류 시 특별한 바이올린 비르투오소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K.454에서 각 악기가 맡고 있는 역할의 균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바이올린을 주도적 악기로 활용하려는 모차르트의 창의적인 실험은 바이올린 소나타 K.526에서 더 적극적으로 구현되었고, 한 세기가 지난 후 세자르 프랑크나 브람스가 작곡했던 바이올린 소나타들의 단초가 되었다.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클라라 하스킬의 고전적인 명연(Philips)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에 대한 위대한 귀감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곡 녹음은 아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영롱한 아름다움과 밝은 서정성, 고전적 균형감은 모든 장르를 통틀어 타의 귀감이 되는 앙상블이라고 할 수 있다. 시몬 골트베르크와 라두 루푸의 연주(DECCA)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독일 현악 전통이 빛을 발하는 단백한 아름다움이 발군이고, 줄리앙 올레프스키와 에스텔라 케르젠바움의 연주(Doremi)는 귀족적이면서도 강렬한 스타일이 작열하는 호연이다. 한편 이차크 펄만과 다니엘 바렌보임의 연주(DG)의 부드럽고 온화한 스타일 또한 추천할 만하다.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