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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OST

OST 드라마 "임꺽정 장사익 - 티끌같은 세상, 이슬같은 인생

 

 

 

 

 

 

 

 

이 나라 이 강산에 이 몸이 태어나
삼베옷 나물 죽으로 이어온 목숨
기구 하여라 고단한 세월
타고난 굴레는 벗을 길이 없어라

달은 기울고 별빛조차 희미한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않는 세상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않는 세상

슬퍼 말아라 티끌 같은 세상
슬퍼 말아라 이슬 같은 인생
슬퍼 말아라 티끌 같은 세상
슬퍼 말아라 이슬 같은 인생

대장부 가는 길에 무슨 한이 있으리
워~ 어야워.. 어어워~
워~ 어야워.. 어어워~ 어어워..

 

이 나라 이 강산에 이 몸이 태어나
삼베옷 나물 죽으로 이어온 목숨
기구 하여라 고단한 세월
타고난 굴레는 벗을 길이 없어라

달은 기울고 별빛조차 희미한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않는 세상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않는 세상

슬퍼 말아라 티끌 같은 세상
슬퍼 말아라 이슬 같은 인생
슬퍼 말아라 티끌 같은 세상
슬퍼 말아라 이슬 같은 인생

대장부 가는 길에 무슨 한이 있으리
워~ 어야워.. 어어워~
워~ 어야워.. 어어워~ 어어워...



 

 

 

 

 




 

..“내가 뭐 볼 게 있다고 이렇게 오셨데유. 아침 댓바람부터 고생 많았겄시유.”
장사익이 생면부지 객을 맞으며 허허롭게 웃는다. 입 양끝에는 세월이 그린 주름이 넉넉하게 걸려 있다.

그 주름을 따라 삶의 애환이 굽이친다. 살아온 세월을 무람없이 드러내는 건 얼굴만이 아니다. 그가 뽑아 올리는

소리에도 생이 사무쳐 흐른다.
장사익은 초로의 나이에 다다라서야 소리꾼의 삶을 구했다.

그러니 반평생 가까이 소리를 묻어 두고 살았던 셈이다.

 웅웅거리다 끝내 가슴에서 입을 닫아 버린 소리가 터져 나온 지, 불과 십여 년.

소리꾼으로 살기까지, 이일 저일 전전하며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이제 소리에 녹아든다. 장사익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오다가

 어느 순간 뻥 뚫리듯 시원해진다. 그저 감정이 영그는 대로 소리를 토해 내면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낸다.

실컷 울고 나면 기어이 신명이 터져 나오고야 마는 이치다.

 

 

 

 

.
“슬플 땐 슬퍼야 허지. 빨개 벗고 춤출 순 없지 않어유. 술 한 잔 허면서 같이 울어주는 것이쥬.

 

초상나면 신나게 울어 제끼잖여.

 

곡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주고, 산 사람의 슬픔을 씻어 주는 거여. 그것은 생산적인 슬픔이지.

 

삶의 질곡에 자빠지고 뒹굴러 곤죽이 되도 살어보겠다고 마음 다잡는 슬픔 말유.

 

치유와 소통의 힘이지유.”

 


눈은 새것을 찾지만 귀는 옛것을 찾는다 했다. 장사익이 부르는 노래는 국악이기도 하고,

 

가요이기도 하고, 둘 다를 합친 것이기도 하다.

 

혹은 둘 다가 아니기도 하다. 어디 한 군데 국한되지 않고, 정형화되지 않은 상태로 자유롭게 풀어내는 노래다.

 

산다는 것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장사익의 노래는 우리의 정서가 진하게 배어들어 있다.

 


지난 해 말 뉴욕, 시카고, 워싱터, LA 등 네 도시를 돌며 공연을 펼쳤다.

 

현지 프로모터 없이 자체 기획된 공연임에도 1만 명에 육박하는 관
객을 모았다.

 

뉴욕타임스는 피를 토하듯 톡 쏘는 음색이 감동적이었다고 평했다. “옛날부터 늘 허는 거지.

 

‘야! 인마 폼 잡으려고 미국 가냐?’ 사람들이 그러는디, 산악인은 목숨 내 놓고 산에 가잖여. 산이 있으니께 가는 거지.

 

사실 명예도 쪼금 있겠쥬. 나는 그려요. 이왕 가는 거 제대로 보여줘야겠다.

 

우리 동포나 현지인들에게 이 시대 우리 대중음악을 선 봬야겠다는 마음이쥬.

 

노랫말은 알아들을 수 없어도 느낌으로 통하는 거니께.”

 


각 나라마다 자기네만의 색깔을 지닌 노래가 있다. 우리 것은 된장이다.

 

몸이 개운해지는 된장. 그게 한국 사람의 정서다.

 

장사익의 노래는 된장처럼 구수하고, 마늘처럼 톡 쏜다.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음색인지도 모른다.

 


“저기 저 산 좀 봐유. 아주 미쳐 미쳐! 완만한데 없이 툭툭 불거져 있잖유. 노래도 마찬가지여.

 

큰 소리와 작은 소리들이 굽이치다 한 호흡으로 어우러져유.

 

봄에는 개나리가 피고, 여름에는 푸성귀가 돋고, 가을에는 단풍 지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카드처럼 펼쳐진다니께.

 

봄여름이 지나면 가을겨울이 오잖여.

 

그것이 자연의 호흡이쥬. 이렇게 가장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부르는 것이 노래여.

 

근디 별이 떴는지, 달이 떴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니께.”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나 보다.

 

장사익의 두툼한 손이 가리키는 인왕산 자락에 시선이 가 닿자, 이토록 빼어난 능선을 마주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것과 같은 찬사가 입 안을 몇 바퀴 굴렀다.

 

“미쳐 미쳐!” 입때 자연의 호흡을 거스르고 살았구나!

 

 

상처없이 피는 꽃은 없다.

 

..“강남에 있으면 죽어죽어! 복작복작 난 게.” 장사익은 종로구 홍지동, 세검정천을 지나

 홍지문 옆 언덕배기에 지은 집에서 자연을 벗 삼고 산다.

벽을 터서 단 너른 창은 액자고, 거기로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은 동양화다. “요런 데서 하도 많이 나와서 장사익이

 아주 호화주택에 산다고들 허겄어.” 전혀 다른 의미에서, 호화주택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표현대로 인왕산과 북한산을 두르고 사니, 이 모두가 내 것인 게지.
자연에 대해 유다른 애정을 쏟는 장사익. 어딜 가나 늘 빠지지 않고 부르는 노래가 <찔레꽃>이다.

그 노래에는 지난날이 비쳐든다. 마흔댓 살의 나이에도 일정한 직업 없이 태평소 불며 사물놀이패를 따라다니던 시절, 잠실 5단지 옆을 지나다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찔러 가던 길을 멈춘다.

 

 장미꽃이겠거니 냄새를 따라가 보니, 어느 잘 보이지 않는 한구석에 핀 하얗고 소박한 찔레꽃에서 나는 향기더란다.
“눈물이 확 쏟아지더라구. ‘아, 내 모습이구나!’ 폼 잡지 못허고 주변에서 삐죽삐죽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같았쥬.

 그래서 맹근 노래가 <찔레꽃>이유. 이상허게도 이 노래만 부르면 개운허고 마음이 편해진다니께.

한번 들어 볼래유?”
그리 하겠다는 대답도 듣기 전에, 그가 이미 녹음기의 시작 버튼을 꾹 누른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시름 한숨과 설움 한 움큼 담긴 목소리는 느릿한 박자와 흐느적거리는 소리를 넘나들며 기어코 눈에서

눈물을 떨어뜨리게 한다.

눈물을 다스리지 못한 채 슬픔을 노래할 수는 없다.

장사익의 인생은 우리네 산야처럼 굽이져 있다.

그는 충남 홍성군 광천리에서 장구 잘 치기로 소문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뒷산에서 고함지르고, 노을 진 강둑에서 태평소 부르며 자랐다. 그러나 노래로는 먹고 살 수 없었다.

무역회사, 보험회사, 제지회사, 가구회사, 카센터 수리공 등 열댓 번씩 회사를 옮겼다

. 그의 표현대로 자발 맞은 인생,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야 비로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 살고 싶은 삶을 잡았다.

 

 앞으로 3년 동안만 죽을 힘을 다해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물놀이패 따라다니며 태평소를 불렀고, 꽤 이름도 알렸다.

그러다 공연 뒤풀이에서 뽑아낸 그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가수 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소리꾼으로서 새로운 인생이 열린 것이다.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권유로 앨범도 냈다.

 1집 <하늘가는 집>, 2집 <기침>, 3집 <허허바다>, 4집 <꿈꾸는 세상>, 그리고 최근에

발표한 5집 <사람이 그리워서>까지 원 없이 소리를 토해 냈다.

지난 2006년에는 국회 대중문화, 미디어 대상 국악상을 수상했고, 지난 연말 환경재단, ‘2007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도 선정되었다.


“소리를 뽑아 내고 그 다음날 일어나 보니께 참 행복허더라고.

내 이름이 생각 사(思)에 날개 익(翼) 잔디, 여태껏 생각이 많어서 땅에 발을 딛지 못했던 거쥬.

생각을 버리니 자연적으로 길을 찾게 된 거유. 근데 어언 50, 60년이 되버렸슈. 오메, 낼 모레 가야 되겄네.”
장사익이 꽃처럼 웃는다.

 그의 인생 또한 꽃처럼 화했다.

 개나리 진달래처럼 일찌감치 피는 꽃이 있다면,

서리 내릴 무렵 느지막이 피는 구절초도 있다.

장사익은 100년 만에 한 번 핀다는 대나무의 꽃인 듯싶다.

인간은 누구나 꽃을 피울 수 있다.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조막만한 꽃일지라도 존재의 의미는 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살아볼 만한 것이다.

 

 

인생과 자연을 노래에 담다

 

 

 

 

..장사익은 5집 <사람이 그리워서> 전국 투어 공연으로 분주한 연말을 보냈다.

“사람이 그리워서 시골장을 서더라~” 5집 수록곡인 <시골장>의 가사다. ‘사람이 그리워서’라는

노랫말을 읊으니, 진짜로 사람이 그립다. 사람은 물론 마음도, 만남도, 헤어짐도 모든 시초가 그립다.

 문명이 한복판에 서고, 사람은 저 뒤켠으로 밀려난 세상.

 

그러한 삭막한 세상이 그리운 감정을 말라붙게 한 것인지도.

사람,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 그리움은 그 시작이다.

세 살배기 아기부터 부모와 친구, 심지어 거리의 노숙자까지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이지 않던가.

또한 이러한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자연이다.

 

 나무를 보더라도 그렇다. 심어 놓은 그 자리에서 뿌리박힌 채 인생의 희로애락을 죄다 겪는다.

그리고 잘난 나무든 못난 나무든 인간에게 다 내어 주며 산다.

 이렇듯 위대한 자연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더불어 살아야 한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 사람을 그리워하면 쓰겠는가.

“자연답게 사는 거쥬. 사람들이 평소에는 왜 한복 안 입냐고 그러는디, 우덜도 넘들 밥 먹는 대로 먹고, 넘들 생각허는 대로 허고 살어유. 대중교통도 이용허고 허는디, 알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인기에는 연연 안 혀. 그냥 내 얘기 진솔허게 펼치며 사는 것이쥬.”
사계절이 시간과 시간의 끊임없는 흐름이듯 우리의 노래도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삶의 연장이다.

 그래서 장사익은 자신의 노래를 하루라고 표현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중천에 걸리고 다시 서쪽으로 기울어 황혼이 지듯 세상사는 그런 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 흐름을 한 호흡으로 담아 내는 것이 노래다.


“차 좀 많이 들어유. 지리산 우렁차여. 차는 몸에 좋은 것이유.”

 

 장사익은 얘기를 나누는 중간 중간 차를 들라 권했다. 그때마다 나는 지엄한 명을 받은 양 차를 들이키곤 했다.

얘기가 마무리될 즈음, 그는 찻잔에 감로수를 따라줬다. “한번 마셔봐유.

 어뗘?” 달달하다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 “그려. 달달허지? 사실은 맹물인디 좋은 차를 마실수록 맛이 더 진혀유.”

 장사익의 노래도 그렇다.

차향을 정갈하게 갈무리하는 감로수처럼 그의 노랫소리는

통한의 세월을 말갛게 씻어 준다.


“노래는 인생과 자연의 기록이유. 그러니 지금 내 노래는 40, 50대에 이른 내 인생이 담겨 있을 거구유.

갈 때까지 노래허고 싶어. 무대 위에서 푹 쓰러지면 더 좋고.

진정한 소리는 나이가 들어야 나오는 거잖여. 60, 70, 80살이 되면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대가 되유. 그 날을 신비스럽게 기다리고 있슈.”


무대 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장사익이 노래를 퍼 올린다.

소리에 기록하는 것은 과거만이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나이가 머물 자리까지 가늠한다.

기어이 눈물 쏟뜨리게 하는, 그리하여 맺힌 응어리를 풀어 내는 그의 노랫소리에 생이 사무쳐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