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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읽는 명상록

베스트셀러 시집의 허와 실

 

                                                                                                          

 

 1 상업적 연시집의 등장

  다수의 시집을 몇 십만 부 찍을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대형 서점에서 매달 시집 베스트셀러 순위를 따로 매기는 나라도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해마다 출간되는 시집의 수도 엄청나지만 한두 해에 10판 이상을 찍는 시집도 상당수 출간된다.

 {홀로 서기}를 필두로 하여 100만 부 이상 팔려나간 시집도 여러 권이니 우리 나라는 시인의 왕국, 시의 나라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러한 외적 화려함이 문화의 전반적인 성숙함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일까. 

상업적 측면에서 성공을 거둔 시집이 많다고 하여 국민의 시에 대한 사랑의 체감온도가 서정윤의 {홀로 서기}와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의 성공과 더불어 갑자기 뜨거워졌고, 그 뜨거움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시집의 상품화 성공과 시집이라는 얇은 책자의 고부가가치가 시에 향기를 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향기를 악취로 바꾸는 데 일익을 담당해왔는데, 이는 일시적인 우려를 넘어 문학적 불행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는 것이 그레샴의 법칙이다. 

독자대중에게 널리 읽혀지는 시가 문단에서 높이 평가받는 시를 구축하고 있으므로 그레샴의 법칙에 따르면 영상 매체가 

우리의 시야에 늘 자리잡고 있는 이 휘황찬란한 시대에 질 낮은 시집의 상품화는 막을 도리가 없다.

 

 


  독자층의 확대와 문학의 문화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문학의 시대'로 간주해도 좋을 1980년대의 우리 시단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집을 몇 권 갖게 된다.

 

 250만 권이 팔렸다는 {홀로 서기} 외에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김초혜의 {사랑굿}, 김대규의 {사랑의 팡세} 등이 

그것이다. 1976년에 나온 이해인의 {민들레의 영토}도 1980년대에 수십 판이 나간 시집 중의 하나다. 

 

1990년대의 베스트셀러 시집은 류시화가 여러 권을 점하고 있다. 

그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시집 외에 번역한 책도 예외가 없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는 저력을 발휘하였다. 

 

이밖에 이정하의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와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예반의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용혜원의 {네가 내 가슴에 없는 날은}과 {그대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원태연의 {원태연 알레르기}와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등이다. 

 

  이들 시집은 낙양의 지가를 올린 것 외에도 이성(혹은 절대자)에 대한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뒤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

(이하 줄여 '戀詩'로 표기)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우리 시문학사에 연시의 전통은 1925년에 출간된 소월의 {진달래꽃}과 1926년에 출간된 만해의 {님의 침묵}으로 

거슬러 올라가므로 많이 팔린 연시집이라고 하여 '상업적'이라는 수사를 붙여 비판을 가할 수는 없다. 

 

1980∼90년대의 유명 연시집은 시 독자층의 확대에 공헌한 문단사적 의의를 지닌 시집으로 훗날에도 거론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정통문학권 출판사에서 낸 시집 가운데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으로 80년대는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90년대는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정호승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등을 갖고 있다. 

  그럼 '상업적 연시'라는, 다분히 비판적인 어조로 언급될 수밖에 없는 시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필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출간된 시집 중 베스트셀러 순위의 상위를 한동안 지킨 많은 시집의 이름을, 출판사명·저자명과 함께 

일일이 나열하면서 출판사의 속된 상업성에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한 권의 시집은 하나의 상품임이 분명한데, 많이 팔렸다는 사실 때문에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다. 

 

분석이 전제되지 않은 비판은 설득력이 없으므로 ①상업적 연시집의 공통적인 특징과 함께, ②연시가 넓은 수용층을 

갖고 있는 이유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할 것이고, ③연시집의 상업적인 성공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또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의 승리자인 상업적 연시를 쓴 시인들에 대한 공격적인 비판은 가급적 피하겠지만, 시를 인용할 때는

 저자 혹은 편저자의 이름을 밝히도록 하겠다.

  2 상업적 연시집의 공통적인 특징

  첫 번째 특징은 두말할 것 없이 사랑의 시, 그리움의 시, 우정의 시라는 점이다. 시집의 제목에, 시의 제목에, 그리고 

편편의 시에 '사랑'이라는 명사는 무수히 등장한다. 

 

시집 제목 앞에 '사랑·명상의 시'라는 또 하나의 제목이 붙기도 하고({만남에서 동반까지}), 시집 제목 밑에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사는 것이며 또 사랑이란 진실로 무엇일까요' 하는 부제가 붙기도 한다({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더 마음 절이는 것은 작은 웃음이다}).

 

 시집을 펼쳐보면 소녀 취향의 조악한 삽화가 등장하는 경우는 아주 많고, 시인의 잘생긴 얼굴이 여러 장에 걸쳐

 소개되는 경우도 있다({원태연 알레르기}).

 시 본문 하단 여백에 고딕체 활자로 "서로 만나고 서로 알고 서로 사랑하고끝내 헤어짐은 많은 사랑의 슬픈 인생인 것을

"이나,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또 안다는 것은 미워한다는 것" 등 사랑에 관한 유치한 소리가 적혀 있기도 하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더 마음 절이는 것은 작은 웃음이다}). 

시집 말미에 여러 쪽을 할애해 "이 순간을 소중히 사랑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길은 기쁨이 아닌 고통이게 합니다.

"느니, "잃어버린 것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픔을 느끼는 것은 곧 성숙을 느끼는 것, 사랑은 부서지는 자신의 틀 속에서(…)" 하는 식의 사랑에 관한 치졸한 경구가

 나열되기도 한다({만남에서 동반까지}). 

 

사춘기 청소년들의 연애편지에 인용하기 좋을 글귀를 시와는 무관하게 적어놓는 이런 행위는 시집의 품격을 

떨어뜨릴지는 몰라도 상업적 성공에는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다. 

시를 봐도 거의 전부 사랑을 예찬하거나 이별을 서러워하지 않으면 우정과 진실을 소중히 여기자고 권유하고 있다.

  지금 나는 누군가 절실히 그립습니다.
  혼자란 사실이 너무도 싫습니다.
  나이를 들어가면서 더욱더 느껴지는 이 고독.

  이제는 혼자 있기를 원치 않건만
  세상은 언제나 나를 외톨이로 만들며,

  그대로 혼자 있는 시간을 필요하게 하며
  진실된 마음을 더욱 그립게 합니다.

 ―박렬, <만남에서 동반까지 6―사랑을 찾습니다> 1연 

  휘저어도 바람이 일지 않는 
  이별의 적막함이여

  고함을 쳐도 소리가 막힌
  이별의 무서움이여
  
  그대여
  손을 흔들지 마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떠나는 사람은 아무때나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무언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  
 
  기약도 없이 떠나려면
  손을 흔들지 마라.
                               

 

이정하, <사랑의 이율배반> 전문

  친구야!
  우리가 꿈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이유를 알고 싶었지.

  …(중략)…

  친구야!
  우리들의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커다랗게 웃었지.


  우리들의 꿈이 산산이 깨져버렸을 때,
  얼싸안고 울었다.

  욕심 없던 날
  우리들의 꿈은 하나였지.
  ―용혜원, <네가 내 가슴에 없는 날―친구야 8> 1, 3연

  상업적 연시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과 이별, 우정과 진실의 노래는 이렇듯 유치하기 짝이 없다. 

시적 수련의 흔적은 도무지 느낄 수 없는 대신 편마다 어설픈 감상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유치함과 감상성이야말로 

독자의 감정에 강력히 호소하는 힘을 발휘함으로써 이들 시집을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게 한다.


  상업적 연시집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생활의 구체적인 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렬의 시를 보면 세상은 혼자 있는 시간을 필요하게 하는데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싫다고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넋두리다. 

 

'고독' '외톨이' '진실된 마음'이란 것도 극단적으로 추상화되어 있어 대중가요의 수준보다 못하다. 

이정하의 <사랑의 이율배반>은 '이별'이 시종일관 관념화되어 있어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용혜원의 <친구야> 연작에는 '꿈'이 나오는데 "꿈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라는 구절에도 불구하고 이 시에서 말하는 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꿈이 관념어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상업적 연시집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아마도 '사랑'과 '이별'일 것이다. 

누구를 왜 사랑하게 되었고 어떻게 이별하게 되었는지 사건의 추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된 채 그저 사랑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고 이별은 대단히 슬프다는 식의 통속적인 얘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진실이니 꿈이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관념화가 지나쳐 우리네 보편적 삶과는 철저히 유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주된 요소이므로 질타의 대상만이 될 수는 없다.

 

 독자가 이런 시를 찾고 있는 터에 시인이 그런 시를 제공하고 있으니 서비스의 차원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인가. 

그렇더라도 독자 대중을 추상과 관념의 안개 속으로, 유치와 감상의 늪지대로 계속 인도하는 데까지 옹호할 수는 없다. 

연시라도 얼마든지 사람의 숨결과 생활인의 온기를 느끼게 할 수 있거늘 이들 시집은 하나같이 사춘기 청소년들의 

설익은 감성에만 호소하려 든다.


  세 번째 특징은 저자의 약력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는 점인데, 상업적 연시집이 대개 무명 시인의 시집이므로 이는

 불가피한 현상일 것이다. 

 

그렇지만 무명을 의도적으로 내세우는 시집, 예컨대 '얼굴 없는 시인'이란 글자를 표지에 큼지막하게 내건 

{우리가 진짜로 사는 것은} 같은 시집은 출판사의 상업성이 도에 지나쳐 꼴불견이다. 소설가 서영은을 연상시키는

 '서은영'이라는 약력 미상의 사람이 편집한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더 마음 절이는 것은 작은 웃음이다}는

 어느 일간지에서도 문제를 제기한 바 있지만 그런 구설수가 판매 부수에 지장을 주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 시집은 누구의 작품을 어떤 기준으로 편집했는지를 숨기고 있는, 독자를 철저히 기만하고 있는 시집임에도 불구하고 

장기 베스트셀러였다.

 

 '책머리에' 부분에는 거의 전부를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인용하고 있어 칼릴 지브란의 작품을 시의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네 번째 특징은 제목이 긴 시집이 많다는 것이다. 

제목이 너무 길어 암기하기 어려운 베스트셀러 시집은 부지기수다.

 

 이풀잎의 {이별은 헤어짐이 아니라 간직함이라더니 거봐 너도 울잖아!}와 고은별의 {마지막이란 말보다 더 슬픈 말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는 저자명도 본명이 아닌 듯하다. 

원태연의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와 여경희의

 {그대 사랑엔 "완전 초보"랬지 알고 보니 그대 이별엔 "완전 프로"였어}도 앞의 두 시집과 함께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시집이다. 장근봉의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사랑하는 당신이 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김양수의 {니가 미워질 때쯤 떠나면 안 되는 이유는 그 이후에 더욱 사랑하고 싶은 것 같음이지}, 김정곤의 

{아침 늦게까지 꿈을 꾼 날에는 메조포르테의 음률이 춤을 추고 아침을 서둘러 깨는 날에는 안단테 길게 산책을 한다}는 베스트셀러 순위로의 진입을 꿈꾸는 시집인데 뒤의 두 시집 제목은 문법에도 맞지 않는다. 

 

이들 제목은 하나같이 통속의 극을 보여주고 있어 어처구니없다. 청소년 독자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데, 제목이 길면 잘 팔린다는 속설이 연시집 전문 출판사에는 널리 퍼져 있는 모양이다. 

 

제목이 짧은 경우도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나 {원태연 알레르기} 같은 시집은 제목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려

 애쓰고 있어 가관이다.

 

 1995년 3월 10일자 조선일보의 시집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세 권의 시집이 한 사람이 쓴 것이라 놀랍다. 

그중 하나가 {원태연 알레르기}이다.

 

 원태연이라는 시인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알레르기에 가깝다는 것인지, 시인이 알레르기로 고생한 내용이 들어 있는지,

 시인의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정신적인 거절 반응이 심각하다는 뜻인지 제목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것은 특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랑의 명시' 등의 제목으로 출판사 편집부에서 유명 시인의 시를 수집, 

재수록하여 판매고를 올리는 경우가 있다. 

필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름다운 장정의 시집에 이미 발표했던 시가 실려 있는 것을 보고 경악한 경험이 두 번 

있었다. 

 

그리고 대학가 화장실과 도서관 벽의 낙서와 동아리 방(서클 룸)의 노트를 수집해 거기 적힌 낙서를 시 형태로 행과 

연을 나누어 출판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도 있었다. 시집에 실려 있으니 시라고 해야 하겠으나 도무지 시 같지가

 않아 두 편 예시해둔다.

  대학은 뭐하러 왔어?
  취직하러요.
  취직해서 뭐하려고?

  돈 벌어야죠.
  돈 벌어선?
  자식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죠.

  그리곤?
  없어요. 그게 전부예요. 그밖에 또 있나요?
  그래…… 없다. 우린 레디메이드 인생이니까.


  ―대학문학탐험대 편, {사랑하기 시작하자} 중    
  <우리들의 대학> 부분

  가을과 나와 가을 여인
  둘은 사랑했으며
  둘은 이별했다.

  그리고 나는
  가을 여인을
  또 찾는다.

―사회와 문학을 생각하는 모임 책임편집, 
 {슬픈 우리 젊은 날} 중 <가을여인> 전문


  3 연시가 넓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이유 

  연시가 넓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이유는 첫째, 시집이란 상품의 주요 고객이 10대 청소년과 20대 초반 직장 여성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연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무시하고서 문단에서 높이 평가받는 시인의 이해 못할 시집을 꼭 읽어야 한다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둘째 이유는 상업적 연시가 학교에서 배운 시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연시라고 해도 연모의 대상이 조국이나 절대자였지 이성인 경우는 많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중·고등학교에서 시를 애송하는 것이 아니라 시어와 시의 구조를 분석하는 신비평적인 방법으로 배운다. 

제도교육의 긴 과정을 통해 시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해야 하므로 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아울러

 묘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시마다 시인의 활동 무대와 시대 배경과 관련해 암기할 사항도 많고, 이 시의 이 단어는 무엇을 의미한다는 따위의 해답도 익혀야 하니 시가 어렵게 느껴진다.

 

 이에 반해 연시집은 전혀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무척 쉽고 공감이 가는 내용일 뿐 아니라 독자에 따라서는 깊은 감동을 주는 절묘한 구절도 연시집을 펼쳐보면 속출한다. 구체성의 상실이란 것도 독자에 따라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과 이별, 우정과 진실의 대상이 애매할 때, 독자는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주변 인물을 대입시키기가 훨씬 

쉬워지는 것이다.
  셋째 이유는 교과서에 나오는 시가 케케묵은 시조가 아니면 대개 일제시대에 생산된 시로서 현대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용혜원의 <네가 내 가슴에 없는 날>이란 시는 제목도 그렇거니와 연들이 "이유를 알고 싶었지", "커다랗게 웃었지", 

"우리들의 꿈은 하나였지" 등으로 끝나 청소년층의 현실적인 언어 감각에 호소하고 있다.

  넷째 이유는 우리 현대시의 대중성 상실을 들 수 있다. 

일제시대에 활동한 김소월과 윤동주, 김영랑과 이상화가 아직도 국민의 시인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현대시의 난해성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유치환이나 김춘수의 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현대시사에 큰 획을 그은 김수영의 대부분의 시도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의 시가 한자(대개 관념어이다)의 난무에서 헤쳐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였고, 한자가 거의 사라진 시집을 

손에 쥐게 된 것은 1980년대였다. 

 

그런데 1980년대에 폭발적으로 씌어진 민중시는 그 이름과는 달리 민중의 폭넓은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민중은 시를 통해 민중의 건강한 힘을 느껴보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말재주로서의 유치함과 말초적인 감상성에 젖어들기를 더 원했던 것인지 모른다. 

 

민중, 아니 보편적인 인간은 정치가 우리의 삶 전반을 강하게 억압할 때 문학을 통해 더 많은 억압을 체험하기보다는, 

사랑 노래로 위안을 받기를 원하는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1980년대의 많은 독자들에게 문예지의 순수시는 여전히 난해하게 느껴졌고, 분노에 찬 현장의 민중시는 왠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10대 청소년과 20대 초반의 직장 여성들에게 절실한 문제는 계급의 평등과 통일, 민주화와 노동자 해방이 

아니었다. 

 

이렇듯 순수시와 민중시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무명 시인이 저급한 사랑의 찬가를 열심히 불렀고, 이는 독자의 열렬한

 환영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상업적 연시의 탄생과 성장에는 이렇듯 또 다른 변수가 존재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농구 경기장에 '오빠 부대'가 몰려들 듯 연시집에 청소년 독자는 계속 몰릴 것이다. 


  4 상업적 연시의 성공은 바람직한 것인가

  다시 말하거니와, 이러한 특징과 성공 요인을 갖고 있는 연시집을 '잘 팔린다'는 사실 때문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독자의 구미를 잘 포착한 출판사의 상업적 전략은 출판계의 만성적인 불황을 타개하려는 몸부림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리라. 

 

그리고 영세한 출판사가 고부가가치를 낳는 시집에다 시인이 무명임을 강조하고, 유치하건 어떻건 제목을 길다랗게 

붙이고, 조악한 삽화까지 그려 넣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것쯤이야 가상하게 봐줘도 무방하리라. 

 

그럼 독자층에 문제가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도 선뜻 비난의 화살을 꺼내 들 수는 없다. 활자 매체 위축의 시대에 

그나마 시의 독자층이 있는데 이런 시가 훌륭한 시니 읽고 이런 시는 저급한 시니 읽지 말자는 주장을 한다는 것은 

자율적인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위배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논리로 귀결될 수는 없다. 

상업적 연시집의 서점 시집 코너 장악은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므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이 문제에 대해 

회피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이 시가 왜 좋은 시이며, 이 시는 왜 저급한 시인가 하는 분별력을 갖춘 독자가 지금같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되는 날이 오지 않는 한 우리 문화의 성숙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날 또한 요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마다 노벨 문학상의 계절이 오면 번역 환경의 열악함을 운위한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나는 이것을 우리 문학의 숙원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문화

(문학도 문화의 한 갈래이니)를 잘 보존하고 보살피려는 성숙한 국민의식에 있지 않을까. 

우리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 베껴 먹기 일색인 무명 시인의 베스트셀러 시집에 영혼을 팔 수 있으랴.


  나는 학교 교육에서의 시 학습 방법에 문제가 아주 많다고 본다. 

시가 설사 어렵지 않더라도 어렵게 배움으로써 독자는시에 대해 동경과 거부의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는 결국 상업적 연시에의 경도로 이어진다.

 

 보다 많은 생존 시인들의 작품을 읽는 일, 시를 분석의 대상에서 벗어나 향유의 대상으로 여기게끔 하는 일, 시 공부라 

하더라도 지식 습득이 아니라 인격의 고양 차원에서 논의하는 수업, {詩經}의 시와 호머의 시를 일부분이라도 배워 

동서양 시의 역사적 변천을 알게 하는 일, 시가 왜 탄생했고 온갖 문예사조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대강이라도

 알게 하는 일, 시의 존재 의의를 깨닫게 하는 일 등이 학교에서 제대로 행해지면 상업적 연시집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시를 오로지 문제 풀이를 통해 배우는 현재의 교육 방식이 유지되는 

한 상업적 연시의 위세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상업적 연시집이 좋은 시집을 구축하는 현상황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등단한 시인이 베스트셀러 시집을 낸 바도 있는데, 최영미의 시집은 숱하게 거론되었으니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잠시 보자. 

 

류시화는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운동' 동인의 일원이었음을 약력에서 밝히고 있지만 그의 시집은 장기 

베스트셀러이다. 유치한 연시집도 아니고 시인의 남다른 생이 판매 부수에 영향을 끼친 시집, 예컨대 {접시꽃 당신} 

{노동의 새벽} {입 속의 검은 잎}과도 다른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니 놀라운 일이다. 

 

진단에 별 자신은 없지만 류시화의 시는 상당수 신비주의에 몰입해 있어 물질 만능, 컴퓨터 만능 시대에 역설적으로

 잘 나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현실 일탈이라는 면에서는 여타의 베스트셀러 시집과 궤를 같이한다.

  바다에 섬이 있다
  섬 안에 또 하나의 바다가 있고
  그 바다로 나가면 다시 새로운 섬


  섬 안의 섬 그 안의 더 많은 바다 그리고 더 많은 섬들
  그 중심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잠들면서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또 꿈꾸었다
  꿈속의 꿈 그리고 그 안의 더 많은 잠 더 많은 
  꿈들
  ―<섬> 전문
   
  이런 식의 추상화·관념화는 상업적 연시집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오늘 이 땅에서의 삶의 다양한 모습은 청소년 독자가 원하지 않는 살벌한 풍경이긴 하다.

 

 그렇지만 시인이라고 허구한 날 백일몽만 꾸고 있는 자는 아닌 것이다. 

자연을 노래하더라도 그 자연이 인공의 자연이거나 인간이 없는 자연인 한 자연 고유의 빛마저 상실하기 쉽다.

 우리들의 축축한 삶을 비추는 '빛'이 없는 시가 인구에 오래 회자될 수 있을까.

  하종오의 {님詩篇}(민음사, 1994)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이다. 

이 시집은 "님의 침묵이 지나니 저의 침묵도 지나서, 푸르던 청춘의 옷은 낡고 닳았습니다"(<가을날>) 같은 구절에서 볼 수 있듯 자칫 잘못하면 {님의 침묵}의 아류라는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 

 

또 민중시에 대한 반성 정도가 아닌전면적인 부정으로부터 나온 비현실적인 세계라면 자신이 과거에 했던 

모든 작업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님詩篇}이 상업적 연시집은 결코 아니므로 긴말을 하지 않는 대신 시를 한 편 인용한다.

  님의 영혼을 생각다가 
  저의 영혼은 피곤한 육신에 눌려 흐릿합니다.


  서로 더는 유혹 받을 수 없는 시간이 왔고   
  서로 더는 유혹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환희라고 한다면 그건 님의 생이고
  이것을 비애라고 한다면 그건 저의 생입니다.
  님이시여 님이시여
                                    ―<유혹> 전문

  소월과 만해가 죽은 지 벌써 몇 해인데 우리 시인들이 아직도 그들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시인들 스스로

 반성해야 될 일이다. 

 

기원전 10∼6세기경에 불려진 노래를 모은 {詩經}의 시편을 봐도 시란 사랑 노래임이 분명하지만 '공허한' 사랑 노래는

 아니었다. 

 

이 지상에서의 삶의 모습들이 아무리 지긋지긋한 것일지라도 시는 바로 이 지긋지긋한 삶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프랑스의 쟈크 프레베르처럼 전세계적으로 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네 일상적 삶에서 우러나오는 희로애락을

 그려낼 줄 아는 국민의 시인, 혹은 참다운 민중 시인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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