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as Scholl - White as Lilies (백합처럼 하얀)
White as Lilies
(백합처럼 하얀)
White as lilies was her face
When she smiled and she beguiled
And I will never find a love like this again
그녀가 미소짓고 기뻐할 때면..
그녀의 얼굴은 백합처럼 하얗게 되었죠.
이와같은 사랑은 다시는 깨닫지 못할거에요.
Lady, as you know My heart is full of sorrow
For I can't see a face
Wake up with you tomorrow
당신도 알고 있듯 내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해요.
내일 당신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
당신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Your fair looks inflame my desire
Quenched again with love If love makes
my sweet come to the silent grovy shade
당신의 희고 아름다운 모습은 내 욕망에 불을 붙이듯
다시 한번 사랑으로 갈증을 풀어 주었죠 사랑이 나의 즐거움을
침묵의 그늘로 만들런지는 모르지만..
White as lilies was her face
When she smiled and she beguiled
그녀가 미소짓고 기뻐할 때면..
그녀의 얼굴은 백합처럼 하얗게 되었죠.
And I will never find a love like this again
White as lilies was her face
When she smiled and she beguiled
이와같은 사랑은 다시는 깨닫지 못할거에요.
그녀가 미소짓고 기뻐할 때면..
그녀의 얼굴은 백합처럼 하얗게 되었죠.
And I will never find a love like this again
A love like this again
A love like this again
A love like this again
이와같은 사랑은 다시는 깨닫지 못할거에요.
다시는 이와같은 사랑은
다시는 이와같은 사랑은
다시는 이와같은 사랑은
White as lilies was her face
When she smiled and she beguiled
And I will never find a love like this again
그녀가 미소짓고 기뻐할 때면..
그녀의 얼굴은 백합처럼 하얗게 되었죠.
이와같은 사랑은 다시는 깨닫지 못할거에요.
카운터 테너들 가운데 선두주자로 꼽히는 안드레아스 숄(33ㆍ독일).
브라이언 아사와, 데이비드 다니엘스와 더불어 3대 카운터테너로 불리는 독일 출신의 성악가 안드레아스 숄
(Andreas Scholl).
여성의 음역을 소화해내는 카운터테너 중에서도 유난히 편안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그의 목소리 1967년 독일에서 태어난 안드레아스 숄은 어려서부터 유서 깊은 키드리헤어 소년 합창단에서 노래했다.
꾸준한 연습과 개인 교습으로 실력을 쌓아가던 그 였지만 고난은 있었다. 12살이 넘어서면서 변성기를 맞게 되자
한동안은 노래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량 때문에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고음을 소화할 수 있었고 <그의 말을 빌면 소프라노 영역까지 17살때 올라 갔다고 함..>, 그에게 새로운 개척의 영역으로 카운터테너라는 분야가 떠올랐다.
20살 되던 해 그는 스위스 바젤의 스콜라 칸토룸 바실리엔시스로 진학, 카운터테너에 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 그는 리차드 레빗과 르네 야콥스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수학했다. 숄은 지금까지 독주자와 협연자로 30여종에 가까운 음반을 냈다.
이제 막 30줄에 들어선 나이이지만, 탄탄한 실력과 타고난 재능으로 무장된 그는 바흐 음악 같은 심오한 작품을 대하는 데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어떤 작품에서나 나이를 초월한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데....
숄이 프랑스의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를 통해 내놓은 '독일 바로크 가곡집' 등은 '신선한 감각'이라는 평을 얻었고, '17세기 영국 민요와 류트 가곡집'도 유려하고 맑은 음색으로 호평을 받았다.
숄이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이제 겨우 6년 정도이다.
그가 대중 앞에서 첫 리사이틀을 가진 것은 1993년 1월 Paris의 그래뱅 극장에서 였는데, 숄의 이 공연은 현지인들로
부터 그 시즌의 하이라이트로 평가받기도 했다. 연이어 2월에 런던의 퍼슬 룸(Purcell Room)에서 가졌던 영국 데뷔
무대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는 데뷔 때에 이미 완숙한 모습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초창기의 몇몇 레코딩을 제외하면, 숄의 음반은 프랑스의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를 통해 속속 발매되었다. 그의 첫 독집 레코딩은 "독일 바로크 가곡집"이다.
이 음반은 그동안 간과해왔던 바로크 시대의 독일 가곡들을 신선한 감각으로 재조명한 것인데, 비평가들로부터 대단한
찬사가 쏟아졌다. 그는 ('백합처럼 하얀'(White as lilies)은 바로 숄 자신의 작곡이다.) 'Maria' 등 대중적인
레퍼토리들이 담긴 'Three Coutertenors'로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는 아르모니아 문디에서 소속사를 데카로 옮긴 뒤 18세기 카스트라토(castratoㆍ17~18세기 이탈리아에서 변성
이전의 고음을 유지하기 위해 거세된 남성 가수) 아리아를 부른 '영웅들', 그리고 비발디 앨범 등을 내놓았다.
숄은 96년에 '스타바트 마테르' 등을 담은 비발디 앨범으로, 97년에는 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칼다라의 오라토리오 '그리스도 발 아래 엎드린 막달레나'로 권위의 그라모폰상을 거푸 거머쥐었다.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그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는 엘리자베스 시대에서 모차르트 초기 오페라까지의 레퍼토리에서 빛을 발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