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ändel, Georg Fridrich (1684-1759 E.)
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할렐루야
Halleluya from Oratorio 'Messiah'
Stephen Cleobury/Choir of King's College/Academy of Ancient Music
- Händel, Messiah
정명훈 지휘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합창 "할렐루야"
오라트리오 '메시아'로 널리 알려진 헨델은 바흐와 같은 시대에 나서 그 때까지의 음악의 모든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새로운 음악 세계로 비약시켰습니다.
바흐의 음악이 이지적이며 대위법적이고 교회와 궁정을 중심한 경건한 음악이라 한다면 헨델의 음악은 감정적이며
멜로디를 바탕으로 하여 세속과 대중을 상대로 웅장하고 상쾌한 음악을 창조했습니다.
헨델은 참으로 백절불굴의 투지와 정력적이고 활동적이며 강하나 인정미가 넘치는 인간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대중을 상대로 썼으며 극적이고, 웅대하고, 활달하여 따뜻한 인간미가 흐르는 것은 그 인격의 반영이라
할 것입니다.
그는 21세 때 이탈리아 음악을 꿈꾸면서 새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대망을 품고 로마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 신진 작곡가로 활약 하면서 건반악기의 연주자로서도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하노버 궁정 악장의 자리를 차지했고 1710년, 영국을 방문한 이래 영국에 머무르면서 앤 여왕의 비호를
받아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도가 그리 평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탈리아 악파인 보논치니 (1670-1747)와는 음악상의 적수였습니다.
이들의 경쟁과 헨델을 질투하는 음모 때문에 수차의 파산과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당했습니다.
아무튼 그는 죽을 때까지 영국에 살면서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 많은 작품을 썼으며 1726년에는 영국에 귀화했다.
한때 비운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아일랜드 총독의 더블린 연주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곳에서 .필생의 대작인 '메시아'가 24일이란 단기간에 탈고되어 1742년 4월 12일, 더불린에서 초연하여 절찬을
받았습니다.
메시아의 초연 후 8년째인 그가 63세 되던 해에는 완전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생존시의 '메시아' 공연만 해도 34회나 되었다고 합니다.
헨델은 영국의 국가적인 음악가로서 존경을 받아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
그의 작품은 46곡의 오페라와 우수한 오라토리오를 비롯하여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쳄발로, 오르간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음악은 명쾌하고 호탕하고 신선하여 생생한 리듬에 성악적입니다.
그는 가난한 음악가 구제회에 1000파운드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베토벤의 말과 같이 그는 공전의 대음악가였습니다.
Halleluya from Oratorio 'Messiah'
헨델의 대표적인 이 메시아는 1742년 4월 23일 더블린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메시아란 말은 구세주라는 뜻이나 본래는 기름을 부은 자란 뜻인데, 그것이 다시 신으로 부터 선택을 받은 자 혹은 괴로운 자를 해방하는 자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런던에서 초연되었을 때 영국의 국왕인 조지2세가 참석하였는데 〈할레루야 코러스〉부분에서 몹시 감동하여 기립했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으며, 오늘날에도 그 대목에서는 전원이 기립하는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제1부〔예언과 탄생〕- 전체적으로 맑고 온화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제2부〔수난과 속죄〕- 예수의 복음의 선포와 그 최후의 승리를 이야기 합니다 - 할렐루야 코러스
제3부〔부활과 영원한 생명〕 - 굳은 신앙의 고백으로 시작하여 영생의 찬미로 끝납니다. (우리는 아느니 속죄자의
영생을 .....〕최후에 아멘 코러스로 끝납니다.
헨델은 1685년 바하와 같은 해에 독일에서 태어난 위대한 작곡가이다.
바하가 평생 독일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것과는 달리 헨델은 후반생을 영국에서 지내영국 음악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사망했을 때 그는 독일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이 아닌 영국인 죠지 프레디릭 헨델로 영국의
2대 사원의 하나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매장되었다.
헨델은 56세인 1741년에 이 장대한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작곡. 헨델은 영국에서 오페라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유별난 성격으로 적(敵)도 많았고 그의 신변은 항상 불안하여 빈번한 파산으로 세번의 죽을 고비를 당했다한다.
그가 곤궁의 밑바닥에서 발버둥치고 있을 때 마침 아일랜드의 귀족으로부터 신곡의 의뢰가 들어왔는데 침식을 잊은 채
전념하여 작곡에 몰두하였고 그 결과로 헨델의 오라토리아 '메시아'의 탄생이되었다.
이 메시아는 3부로 되어 있으며 연주시간도 약 2시간 반이 걸리는 초대작인데 헨델은 24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한
것이다.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그리스도 탄생의 예언, 수난, 부활을 그린 음악으로 많은 위대한 작품과 함께 종교의 벽을 초월한 깊은 감동을 준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신의 영광을 찬미한 장엄한 '할렐루야' 코러스이다.
당시 초연에 참석한 국왕이 할렐루야를 듣고 감격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그 후 이 '할렐루야' 코러스 연주는 모든 청중들이 기립해서 듣는 관습이 생기기도....
헨델은 이 '메시아'의 성공으로 완전히 다시 재기했고 이후에는 오라토리오 작곡가로서 부동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742년 4월 더블린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헨델은 생전에 56회나 '메시아'를 지휘, 상연하여 그 수익금을 모두
자선사업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 작품 개요 ◈
이 할렐루야는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에 나오는 종교적 바탕으로 힘차고 장엄함이 특색이다.
할렐루야 [ JHVHia ] =[할렐루]+[야]
* 할렐루: ~을 讚揚하라
* 야: [야훼]의 줄임말.
[야훼]는 [여호와]란 뜻의 다른 말. 여호와 는 하느님이란 뜻의 히브리어!
-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합시다...란 뜻으로 {승리(勝利)}한 者만이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능력과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메시아(Messiah)[ 명사]
1. 구약성서에서, 초인적 인 능력 을 지닌 이스라엘 의 통치자 를 이르는 말.
2. 기독교에서, ‘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서 이르는 말. 구세주(救世主).
이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크리스마스 또는 부활절에 매년 성대한 규모로 상연을 하는 것이 관례로 있는 곡이기도 함다
디셔 공작의 부탁에 따라 1741년에 이 곡을 쓰기 시작한 헨델은 다음해 자신의 지휘로 초연을 하였는데, 초연 당시에는 합창자가 70 - 80명, 관현악은 10여명 의 소규모로 공연이었으나, 후에 모차르트가 개편을 한 이후로는 수십 명의 관현악과 수백 명의 합창자와 함께 성대하게 상연되고 있다.
하이든은 이 곡의 '할렐루야 코러스'의 연주를 듣다가 코러스의 높은 합창에 감동 받아 무의식중에 '저편에 신의 영광이 나타났도다.'라고 외치며 오라토리오 ≪천지 창조≫를 작곡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이 곡은
≪천지 창조≫와 멘델스존의 ≪엘리아≫와 함께 세계 3대 오라토리오로 일컬어지고 있다.
유명한 합창곡 '할렐루야 코러스'는 오늘날에도 가장 널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곡으로
당시 초연에 참석한 국왕이 이 곡의 장엄함에 자기도 모르게 일어섰다는 일화도 전해져 내려온다.
그 후 이 '할렐루야 코러스'가 연주될 때는 모든 청중이 기립해서 듣는 관습도 생겼다.
제1부의 처음을 장식하는 서곡 부분은 예언적인 무거운 관현악의 총 합주로 시작해서 경쾌한 푸가풍의 연주가 이어진다. '너희들을 위해서 구주가 나셨으니'로 시작되는 우아하고 힘찬 합창곡이다.
이어지는 '전원 교향곡'은 그리스도가 나신 날 밤에 별이 반짝이는 베들레헴의 작은 거리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는 양치기들 앞에 하늘로부터 상서로운 징조와 환희에 가득한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 연출된다.
소프라노의 독창에 이어지는 이 합창은 만백성의 경축을 표현하는 장엄하고 환희에 가득 찬 곡조이다.
그리스도의 전도와 수난, 속죄가 그려지는 제 2부는 복음의 선포와 그 최후의 승리를 나타내는 '할렐루야 코러스'가
이어지는 '거룩하도다 어린양'과 '아멘 코러스'도 이 곡을 절정으로 이끄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마지막 제 3부는 하느님의 실제, 영생의 확증, 가난의 행복이 그려지는 부분으로
굳은 신앙의 고백으로 시작해서 영생의 찬미로 끝나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아름답게 전개된다.
그리고 '우리는 아느니 속죄자의 영생을'은 최후의 아멘 코러스를 만들면서 장엄하게 끝을 맺는다.
이른바 국제적인 감각에서 헨델을 따를 만한 음악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스물다섯 살에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귀환한 그는 하노버의 궁정악장 직을 맡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영국 런던이었다.
물론 헨델이 하노버에서 받았던 대우는 매우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같은 해에 태어난 바흐가 바이마르 궁정에서 80플로린을 겨우 받았지만 헨델은 그 여섯 배가 넘는 500플로린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더 큰 물에서 놀기를 원했고 결국 이듬해에 휴가를 얻어 런던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런던에서 음악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던 헨델의 본격적인 행보는 그렇게 시작된다.
자, 당시의 영국은 산업적으로 매우 번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만한 자국의 음악가가 별로 없었던 상황이었다.
바로크 이전의 음악가로 기록되고 있는, 예컨대 윌리엄 버드나 존 다울랜드, 또 헨델보다 앞선 세대였던 헨리 퍼셀
같은 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미 옛날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당시 런던에서 가장 인기를 끌던 장르는 이탈리아 오페라였다.
극장에 모여든 청중은 이탈리아 풍의 화려한기교와 장식적인 선율에 온통 마음을 뺏기고 있었다.
말하자면 당시 런던의 음악계는 자신들에게 화려한 이탈리아풍의, 또한 영어나 독일어가 아니라 이탈리아로 쓰인
오페라를 멋들어지게 들려줄 음악가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헨델이야말로 그러한 시간과 공간의 선택을 받은 음악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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