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이지만 한때 국가 원수 모독죄와 관련된 조크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왕권중심 국가로서의 역사가 길었던데다 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독재가 만연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제왕적 위치로서 대통령을 바라보는 인식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제6공화국 체제가
각하라는 표현이 전두환 정권까지 공식적으로 대통령의 호칭에 쓰였고 한때 '각하'라고 하면 무조건 누군가를 지칭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각하라는 표현이 권위주의의 상징[5]이라 여겼는지 보통사람을 표방한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대통령을
칭할 때 그냥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도록 지시했으니 이는 형식적이였고, 이 시절 청와대 비서들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는 '어전(御前)회의'로 부르고, 누군가가 대통령과 반대의견을 제기하면 '감히 어전에서 무례한 언동하지 마라'면서 상급자들이 질책했다고 한다.
이렇듯 청와대 내부와 측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각하'라고 쓰이다가 김대중 대통령 때 정식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희호 여사(김대중 대통령 부인)의 저서인 '동행'에 언급된 바로는 청와대 내부에서도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동안 '각하'라는 말이 사라지는 듯 싶었으나, 이명박 정권기에 (비공식적이지만) 일부 여당 의원들이 '각하'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이에 대해 '탈권위주의적인 시대 풍조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으며, 이를 비꼬는 '가카'라는 표현이 세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공식적인 호칭은 아직까지 '대통령님'이다.
군이나 정부 내부적으로 보고서 등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VIP로 지칭한다. 과거에는 코드원, 각하 등으로
표현되었으나, 이명박 이후 VIP로 쓰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보도자료에서까지 VIP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대통령의 불체포 특권은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보다 더 강력해서, 내란/외환죄의 현행범이 아닌 이상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절대로 체포되지 않는다.
체포하려면 일단 탄핵을 한 다음에 체포해야 한다.
다만 '임기 중'에만 한정되는데다, 그냥 '불체포 특권'이지 '면책 특권'은 아니며, 이 특권이 행사되는 동안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내려오는 순간 임기 중에 제기되었던 모든 피의사실이
한꺼번에 수사망에 오르게 된다.
물론 대통령 본인이나 주변 인물들이 잘 처신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불행히도 아직까지는 그런 대통령은 없었다.
특히 민주화 이후에도 이러한 일이 계속 일어나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논자들이 많다.
대통령 본인에게 닥친 불행이나, 본인 및 친인척의 범법 행위로만 한정해봐도...
이승만 :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불명예 사임 및 망명.
윤보선 : 5.16 군사정변으로 강제 사임.
박정희 : 10.26 사태 때 김재규에 의해 암살.
최규하 : 12.12 군사반란, 5.17 내란으로 강제 사임.
전두환 :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등의 헌법 유린,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부정부패 등으로 실형 선고.
대통령 예우 박탈.
노태우 :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등의 헌법 유린,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부정부패 등으로 실형 선고.
대통령 예우 박탈.
김영삼 : 아들 김현철이 수뢰 및 탈세로 실형 선고.
김대중 : 아들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이 수뢰로 실형 선고.
노무현 : 형 노건평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실형 선고. 본인은 자살.
이명박 : 형 이상득이 수뢰로 실형 선고.
박근혜 : 본인이 피의자로 연루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2016헌나1을 통하여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
대통령 예우 박탈.
이렇게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전부가 끝이 영 좋지 않다. 설령 본인에게는 별 일 없더라도 가족들과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에 갔다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청와대에서 지내게 된다. 청와대 내 관저와 집무실을 오가게 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청와대
참조할 것.
MBC에서 MBC 스페셜로 노무현 대통령 퇴임 직전에 방영한 <대한민국 대통령>을 보면, 대통령의 일상과 청와대에서 자세히 나온다. 유튜브 링크
청와대 내부에 역대 대통령의 식단이 전시되어 있다.
이승만은 미국물을 먹은 사람답게 식사가 서양식이다.
주요 식단이 샌드위치, 햄버거, 와인, 카스테라다.
윤보선은 비교적 화려하게 먹었다.
더덕구이, 갈비찜, 잣죽, 해물전골 등 매우 푸짐하게 먹었다.
박정희는 윤보선과는 반대로 밥을 그리 많이 먹지 않았다.
쇠고기 편육 몇 조각, 순두부, 막걸리, 소량의 열무김치 정도에 불과했다.
최규하도 박정희처럼 간단하게 먹었다. 나물, 생선구이, 전골 정도다.
전두환은 육식주의자였다. 조개구이, 불고기, 편육, 생선회, 떡갈비, 청주 등 순 고기 위주의 식단이었다.
노태우는 자기 친구인 전두환과 식단은 비슷하지만 전두환보다는 스케일이 작았다.
두부조림, 갈비구이, 생선튀김, 복분자주, 맥주 정도다.
김영삼은 전두환 못지 않게 잘 먹었다. 그 유명한 칼국수를 비롯하여 랍스타, 야채샐러드, 전복죽, 양갈비구이,
포도주, 와인, 설렁탕 등이 포진되어 있다.
김대중은 친구인 김영삼과 원수인 전두환을 절충한 형식이었는데 홍어삼합, 우거지갈비탕, 된장찌개, 해물전골,
매운탕 등이었다.
노무현은 박정희와 비슷했다. 막걸리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고 삼계탕, 강냉이, 군고구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명박은 해괴하게도 이승만과 박정희의 절충형이다.
그리고 김영삼이 칼국수를 좋아하는 것처럼 이명박은 냉면을 좋아했다.
샌드위치, 나물, 냉면, 배추김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식단에서 막걸리만 빼면 동일하다.
원래 한국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를 재건할 때, 대통령제를 도입할 것인지 아니면 내각제를 도입할 것인지에 관해 의견이 많았다.
한국 정치사에서 계속 지적되는 아이러니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대통령제 하에 국무총리를 둘것이냐
말것이냐, 대통령 한 명만 둘 것이냐, 내각제를 할 것이냐 등등에 대한 토론이 길게 이어졌다고 한다.
헌법 초안은 이승만도 포함한 모든 정파들이 동의한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는데, 1948년 6월 15일 이승만이 돌연 기
초위원회에 나타나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7월 12일 헌법을 제정, 7월 17일에 공포하였으며 7월 20일 제헌국회 의원들의 간접선거에 의한 제1대 대통령 선거로
이승만 후보(제헌국회 의장)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는 사실상 정치적 기반이 허약한 이승만이 대통령제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한국은 정/부통령이 존재하고 국무총리가 존재하는 혼합형 정치체제가 되었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처럼 대통령 자리를 3번씩 연임해도 대수가 넘어가지지 않고 그냥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이지만 한국은 박정희처럼 연임할 경우 대수가 넘어가져 '제5 ~ 9대 대통령'으로 불린다.
한국의 모든 대통령이 국민들의 투표로 정통성을 인정받으며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 쿠데타나 국회(또는 유사기구)의 힘으로 올라선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민주화 이후로도 한국의 대통령은 정치 선진국과 비교할 때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견제가
미진하기에 대통령이 상당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위에서 보듯 한국의 대통령은 명예롭게 말년을 보낸 사례가 없고, 설령 자신에게 피해가 안 와도 측근들이나 가족들이 줄줄이 감옥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에서는 한국 대통령은 국민의 신임을 제대로 얻고 명예롭게 은퇴한 경우가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이름을 딴 거리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지금은 충청남도 아산시에 윤보선로가 존재하고 경상북도 구미시에는 박정희로가 존재하지만, 윤보선은 내각제
시절이다 보니 대통령으로서는 딱히 비중이 없었고, 박정희는 호불호가 매우 심하게 갈리는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이원복이 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는 아직 변하지 않은 듯.
결국 19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새나라의 어린이들의 올바르고 씩씩한 장래희망 중 하나였던 대통령은 점점 여러가지 의미에서 긍정적 이미지가 실추되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꿈으로 주장하는 아이에게 꿈은 크다만 다른 걸 해보라고
일러줘야 될 직업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과거 대통령들이 현재 대통령들보다 더 잘나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무조건 미화하고 우상화하던 독재 시절에 비해 대통령의 실책이나 부당한 점들도 공개적으로 공론화하고 비판할 수 있는 자유화가 이루어진 점,
또 경제 발전과 민주화가 완료되면서 국민들이 시급히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국정 과제 및 그 해결 방향이 크게 달라져 나타난 현상이니 나쁘다고만 볼 것은 아니다.
현재 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최연소, 최고령 대통령은 다음과 같다.
최연소 대통령 : 박정희 (취임 당시 46세)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임기는 5년이며 중임할 수 없다.
대통령제 국가들 중에 중임제[8]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한국 대통령의 경우 중임이 불가능하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즉, 대통령 임기가 바뀌는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기존 대통령은 기존 헌법에 따른 5년 단임제가 적용되는 것이다.
매번 개헌 논의가 뉴스로 보도될 때마다 우리 주변에서 현직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더 해먹으려고
탐욕을 부린다"며 비난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현행 헌법에 규정된 개헌 조건을 모르는 데에서 빚어진 촌극이다. 애초에 이런 제한을 둔 이유가 대통령 더 해먹으려고 개헌을 마음대로 하는 행위를 막으려고 한 것이다.
대통령이 임기 중 사임하거나 탄핵되어 직위를 잃거나 사망할 경우 다시 대선이 실시되는데[9] 이때 당선되는 대통령은 다른 선출직의 재·보궐선거와 달리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아예 임기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즉, 어떤 대통령이 임기 중 2년만 채우고 사임해서 새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면 신임 대통령은 전임자의 잔여
임기인 3년 동안 대통령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 5년의 임기가 새로 주어진다. 전임 대통령이 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경우 그 후임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헌법 또는 공직선거법상 관련규정이나 판례는 없다.
공직선거법은 전임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운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에 대하여 특별한 구별을 두지 않고 있고, 두 경우의 임기를 달리 볼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재임기간은 동일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5년의 임기 중에서 윤년이 없으면 1825일, 윤년이 1번 있으면 1826일, 윤년이 2번 있으면 1827일이다.
5년이 아닌 대통령들은 다음과 같다.
박정희 : 5793일 (15년 10개월 9일)
이승만 : 4273일 (11년 8개월 11일)
전두환 : 2733일 (7년 5개월 23일)
박근혜 : 1475일 (4년 13일)
윤보선 : 588일 (1년 7개월 10일)
최규하 : 255일 (8개월 10일)
최근에는 10차 개헌에서 4년 중임제 등이 제안되고 있다
대통령의 3대 권한은 정책권, 인사권, 예산권이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장남 또는 장녀보다는 차남 또는 차녀 이하가 월등히 많다.
박근혜도 엄밀히 따진다면 육영수에게는 장녀지만 박정희에게는 장녀가 아니다. 특히 박정희, 노무현, 이명박은 막내다.
이복형이나 이복누나도 없는 완벽한 장남인 대통령은 김영삼 정도.
이승만 : 두 명의 형이 있었으나 일찍 죽음.
박정희 : 박동희, 박무희, 박상희, 박한생 등 4명의 형을 두고 있었으며 누나도 한명 있었다. 그리고 남매들 중 막내였다.
전두환 : 3명의 형이 있었으나 전열환과 전규곤은 어려서 사망, 전기환만 성인이 되어서도 살아남았다.
전기환은 현재도 생존해 있다. 누나도 4명이나 있다.
김대중 : 이복형과 이복누이들이 있었다. 누나의 이름은 김안례.
노무현 : 3남 1녀 중 막내. 형으로 노영현과 노건평이 있고 누나로 노영옥이 있다.
이명박 : 두 명의 형 이상득과 이상은이 있다.
박근혜 : 이복언니(어머니 김호남)인 박재옥이 있다. 박근혜보다 15년 연상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응답이 35.5%로 1위, 박정희 대통령이 30.8%로 2위, 김대중
본디 박정희를 꼽은 응답이 압도적이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으로 박정희-박근혜 부녀에 대한 평가가
2017년 현재까지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까지 총 4명이다.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전직대통령 내지 그 유족이 받는 예우가 규정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사저 주변에 2채~3채의 경호동을 건설한다.(이는 청와대 예산으로 만든다)
1조 8명씩 3개조 24명이 약 7년 동안 전직 대통령을 경호한다.
전직 대통령이 유고 시에는 그 배우자가 1년 동안 경호를 받을 수 있다.
그 이후는 경찰에 경호 업무가 이관된다. 물론 이 경호는 대통령 의사에 따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연금은 대통령은 현 대통령의 월급의 90%를 받고 배우자는 75%를 받는다.(종신)
비서 3명(한 명은 배우자 몫)을 둘 수 있고 이 비서는 국가에서 월급을 제공한다.
그 외 필요 시에는 청와대에서 헬기나 버스 등을 제공한다.
탄핵이나 사법처리가 되면 모든 특전은 제외된다. 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경호를 제외한
대통령 예우 자체가 전부 취소되어 전 대통령 취급조차 안 되기 때문에 전(前) 대통령이라고 부르면 안 되었었다.
그래서 12.12 군사반란과 관련된 재판을 받을 땐 각 언론에서 모두 '전씨', '전○○ 씨'라고 불렀다.
지금은 특별사면으로 복권되었지만 이미 박탈된 전직 대통령 예우는 회복되지 않았다. 전두환, 노태우의 경호는 경찰청에서 주요 요인들에 대한 경호임무를 근거로 하는 것이지 前 대통령의 신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재판으로 박근혜는 탄핵심판 인용으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고 나머지는 모두 고인이기
때문에 지금은 이명박만이 전직 대통령 대우를 받고 사는 유일한 인사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 활동하다가 어느 시민이 "어머, 전(前) 대통령님 안녕하세요"라고 했다가 "저는
전(全) 대통령이 아니라 이(李) 대통령인데 말입니다, 허허"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퇴임 후 예전에 살었던 집으로 돌아가거나 새로 신축하여 산다.
집이 위치한 지명을 따서 종종 부른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전 부터 각각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유명했고, 그를 따르는 무리를 상도동계,
동교동계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승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 이화장으로 불린다.
하와이로 망명하기 전까지 살았다.
1982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6호로 지정되었다.
윤보선 -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 '윤보선 가옥'이라고도 알려진 곳으로 근대 한옥의 건축미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건물이다.
대통령 재직 시에도 청와대에서 기거하지 않고 이 곳에서 집무를 했다고 전해진다.
사적 제438호로 지정되었다.
노태우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 전두환과 실제로 이웃사촌으로 5분 거리에 있다고 한다.
김영삼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 김영삼 민주센터가 상도동 사저 인근에 있다.
다만 이 센터는 김 전 대통령의 사후(死後)에 문을 열었다.
김대중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 김대중도서관이 사저와 바로 붙어 있다.
노무현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 최초로 퇴임 후 서울이 아닌 지방에 내려가 산 대통령이 되었다.
이명박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 당초 새로 내곡동에 땅을 사서 그 곳으로 이사가려고 했으나,
매입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불거져 나왔고 결국 특검까지 이뤄지게 된다.
결국 포기하고 전에 살던 논현동 자택을 재건축하였다.
대통령은 국가장법에 따라 서거한 경우에는 유족 등의 의견을 고려하여 행정자치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장으로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국장과 국민장이 구분되었으나 현재는 국가장으로 통합되어 운영한다.
더불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 및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대상자가 된다.
또한,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더라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존묘지로 지정될 수 있다.
단, 탄핵이나 사법처리가 된 대통령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다음은 고인이 된 대통령의 장례 절차 및 안장지이다. 세상을 떠난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이승만 (1965년 7월 19일 서거, 같은 해 7월 27일 가족장)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83-18 (국립서울현충원 독립묘역)
박정희 (1979년 10월 26일 서거, 같은 해 11월 3일 국장)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90-7 (국립서울현충원
독립묘역)
윤보선 (1990년 7월 18일 서거, 같은 해 7월 23일 가족장)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산34-2 (사설묘지, 국가보존묘지[10])
최규하 (2006년 10월 22일 서거, 같은 해 10월 26일 국민장)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111-27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 1호[11])
노무현 (2009년 5월 23일 서거, 같은 해 5월 29일 국민장)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21-7 (사설묘지, 국가보존묘지 1호)
김대중 (2009년 8월 18일 서거, 같은 해 8월 23일 국장)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99-13 (국립서울현충원
독립묘역)
김영삼 (2015년 11월 22일 서거, 같은 해 11월 26일 국가장)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22-4 (국립서울현충원 독립묘역)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 역순으로 걸려 있는 역대 대통령 공식 초상화[1][2] |
이승만: 망명길에 오른 ‘건국의 아버지’
. 윤보선: 쿠데타를 추인한 ‘영국 신사’
전두환: 5공은 3공의 모조품?
노태우: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
박근혜: 청와대의 ‘공주’에게 비전은 있는가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유념해야
겠다.
원대신문 webmaster@w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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