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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You
No, I can't for-get this evening
Or your face as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r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오, 나는 이 밤을 잊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떠날 때의 당신 얼굴모습도 잊을 수 없어요
그러나 결국은 다 이렇게 되는 건가 봐요
당신은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지만,
당신의 눈 속엔 슬픔이 넘치고 있어요
그래요, 슬픔이 넘치고 있지요
No, I can't for-get tomorrow
when I think of all my sorrow
When had you there,but then I let you go.
And now it's only fair that I should let you know
what you should know.
오, 나는 내일을 잊지 못할 거예요
내 모든 슬픔 생각하게 될 내일을..
그대 내 곁에 두었을 땐, 그러나 떠나 보내야 하지요
이제 그대에게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대가 꼭 알아야 할 말을요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난 살수 없어요 당신 없이 살아야 한다면
더이상 살 수 없어요 더 이상 줄 수도 없어요
난 살수 없어요 당신 없이 살아야 한다면
더이상 살 수 없어요 더 이상 줄 수도 없어요
No, I can't for-get tomorrow
when I think of all my sorrow
When had you there,but then I let you go.
And now it's only fair that I should let you know
what you should know.
오, 나는 내일을 잊지 못할 거예요
내 모든 슬픔 생각하게 될 내일을..
그대 내 곁에 두었을 땐, 그러나 떠나 보내야 하지요
이제 그대에게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대가 꼭 알아야 할 말을요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난 살수 없어요 당신 없이 살아야 한다면
더이상 살 수 없어요 더 이상 줄 수도 없어요
난 살수 없어요 당신 없이 살아야 한다면
더이상 살 수 없어요 더 이상 줄 수도 없어요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난 살수 없어요 당신 없이 살아야 한다면
더이상 살 수 없어요 더 이상 줄 수도 없어요
난 살수 없어요 당신 없이 살아야 한다면
더이상 살 수 없어요 더 이상 줄 수도 없어요
해리 닐슨(Harry Nilsson)은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Everybody's Talking', 'Without You' 등을 발표\함으로써 스타로서의 자리를 굳혀나갔다.
그는 많은 앨범을 발표하기보다는 오히려 프리 록 스타일의 공연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였기에 때로는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해리는 60년대 중반에 몇 곡을 Modern Folk Quartet과 함께 작업하기도 하고 그 스스로 작업한 곡들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Pademonium Shadow Show]가 발표되기까지 자신의 직업이었던 은행원을 그만두지 않고 있었다.
이 앨범은 비틀즈의 귀를 사로잡았고, 비틀즈는 가장 좋아하는 미국인 음악가로 서슴지 않고 해리를 꼽았다.
1969년에 발표된 싱글 'one'은 차트 10위에 올랐고, 'Everybody's Talking'은 영화에 수록되어 차트 10위에 랭크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70년대 초기에는 이제까지 이어왔던 음악적인 방향을 조금 더 넓히려 하였으나, 기존의 팬들만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70년대 중반에 발표한 앨범들의 실패로 그는 가정과 사업에 집중하였으며, 존 레논이 죽은 이후로는 총기 사용 반대
캠페인에 정열을 쏟았다.
1941년 6월 15일, '뉴욕의 브룩클린(Brooklyn)'에서 출생한 '해리 닐슨(Harry Nilsson)'은 소년시절을 LA에서 운동선수로 활동하면서 '레이 찰스(Ray Charles)'의 음악에 심취해 ' 뮤지션(Musician)'의 길로 들어선 '싱어 송 라이터
(Singer, Songwriter /작곡가 겸 가수)'.
데뷔앨범 : 1966년 1집 앨범 '슾포트라이트 온 닐슨(Spotlight on Nilsson)'
'위드아웃 유(Without You)' 와 '에브리보디스 톡킹(Everybody's Talking)', 그리고 영화 주제곡 '오버 더 레인보우
(Over the Rainbow)' 등으로 유명한 '해리 닐슨(Harry Nilsson)'은 1994년 1월 15일 밤 생애 마지막 앨범이 된
'퍼스널 베스트(Personal Best)' 녹음을 끝내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위드아웃 유(Without You)'는 원래 '배드핑거(Badfinger)'라는 영국의 '록 밴드(Rock Band)'가 1970년에 발표한
곡으로 그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듬해인 1971년 '해리 닐슨이 리메이크(Harry Nilsson이 Remake)'
해서 대 '히트(Hit)'를 하면서 '빌보드 싱글 차트 넘버 원(Billboard Single Chart #1)'에까지 올랐다.
이 노래는 이후 1991년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가 '리멩크(Remake)' 했으며, 1994년에는 '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가 '리메크(Remake)'해서 다시 한 번 큰 '히트(Hit)' 를 했습니니다.[이하생략]
해리 닐슨[Harry Nilsson 1941. 6. 15 ~ 1994. 1. 15 ]
미국 싱어송라이터 해리 닐슨 의 본명은 "Harry Edward Nilsson 3세" 이며 그는 미국 출신의 가수겸 송라이트로서
1941년 6월 15일,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출생한 [Harry Edward Nilsson(해리 에드워드 닐슨)]은 소년시절을LA에서
운동선수로 활동하면서 레이 찰스의 음악에 심취해 뮤지션의 길로 들어선 싱어 송 라이터이다.
그후 해리 닐슨은 야간 은행의 컴퓨터 기사로 일하면서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작곡을하여 뮤지션들에게 주기도 했는데, 그는 이 때문에 자주 레코드 스튜디오를 오가며 자신이 만든 노래의 반응을 살폈는데, 이때 프로듀서로 명성이 높았던 필 스펙터를 알게 되었으며 필 스펙터의 도움으로 해리 닐슨의 곡이 유명 뮤지션들에 의해서 발표될 수 있었다.
그룹 [Three Dog Night]가 불러 히트시켰던 [One]을 비롯해[Yardbirds(야드버즈)]의 [Ten Little Indians], 그리고 [The Monkees(몽키즈)]의[Cuddly-Toy], 그룹 [Blood Sweat and Tears]의 [Without Her]등을 만들어 일약
송 라이터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67년 12월에는 RCA 레코드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데뷰 앨범 [Pandemonium Shadow Show]를 직접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11곡의 비틀즈넘버가 실려 있는데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 뒤로 계속해서 1969년에 영화 [한밤의 카우보이]의 타이틀 곡[Everybody's Talkin']을 불러 히트시키면서 그래미상을수상하기도한 그는[Jump into the Fire(불 속으로 뛰어들어)], [Coconut(코코넛)]과 같은 특이한 노래도 히트시킨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싱어 송 라이터,프로듀서로 인정받았다.
다른 싱어 송 라이터와는 달리비틀즈등 다른 사람이 작곡한 노래도 많이 불렀으며 그의 최대 히트곡인 [Without You]은 [배드핑거(Badfinger)]의 원곡을 다시 부른 노래이다.
비틀즈에게 가장 좋아하는 미국가수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John Lennon(존 레논)]과[Paul McCartney(폴 매카트니)]는 해리 닐슨이라고 했었고, 존 레논은 닐슨의[Pussy Cat(푸시캣)]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다.
▲ ⓒ Independent.co.uk, 배드핑거(Badfinger)의 모습
배드핑거는 영국의 4인조 밴드로 당시 전세계가 비틀즈에 빠져있던 때 등장한, 비틀즈가 속한 회사가 계획한 일종의
전략적 밴드였다.
잡지 롤링스톤즈사에서 '제 2의 비틀즈'로 호평할만큼 대중적으로 안정적인 음악성을 가진 밴드였던 것이다.
그렇게 성공가도를 달릴 것만 같던 그들 앞에 뜻하지 않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1970년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메카트니가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동시에 비틀즈를 탈퇴한다고 선언하며 비틀즈가 해체된 것이다.
당시 혼란스런 팬들은 제 2의 비틀즈라고 불리던 배드핑거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다.
배드핑거는 비틀즈의 아류, 그림자, 표절이라는 수모를 당하며 공연히 화를 입게 된다.
배드핑거는 밴드로서의 자존심과 그들 스스로의 음악성을 믿으며 꿋꿋이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같은 해인 1970년
발표한 앨범 <No Dice>마저 비틀즈의 팬들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노골적인 비난을 받자 배드핑거의 리더 햄은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짖궂은 운명의 장난인지 모를 어느날, "Everybody's Talkin'"(1969)으로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해리 닐슨
(Harry Nilsson)이 배드핑거에게 찾아온다.
해리 닐슨은 배드핑거의 <No Dice> 6번 트랙 "Without You"의 리메이크 저작권을 요청하게 되고 배드핑거는
아무런 기대없이 순순히 그들의 음악을 내주게 된다.
▲ ⓒ Harry Nilsson.com, 해리 닐슨(Harry Nilsson)
해리 닐슨은 이듬해인 1971년에 <Nilsson Schmilsson> 속 "Without You" 리메이크 곡을 발표하게 되고, 이 곡으로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며 골드 레코드, 그래미 어워드 수상까지 기록하게 된다. 이런 성공에 원곡을 넘겨준
배드핑거는 깊은 절망과 좌절, 시샘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공연에서 들은 관객의 "우리는 배드핑거가 아니라 비틀즈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리더 피트 햄은
여자친구에게 사랑한다는 편지, 그리고 "우리는 비틀즈가 아니야, 그저 배드핑거일뿐이야" 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른다.
이어서 "Without You"의 공동 작곡자였던 톰 에반스 역시 자살하게 되면서 배드핑거는 비운의 그룹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렇게 "Without You"로 알려진 해리 닐슨의 앞날도 평탄하지는 못했다. 해리 닐슨은 이후로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에게 미국에서 가장 사랑하는 뮤지션으로 꼽히고 음반의 성공과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차 잊혀져가는 자신의 인지도를 인정하지 못하고 술에 의지해 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의 나이가 50이 채 되지 않은 어느날 심장마비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그의 죽음과 맞물려 떠오르는 뮤지션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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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nbchronicles.com,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
머라이어 캐리는 해리 닐슨이 죽기 전 해인 1993년 싱글 "Without You"를 발표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고, 독일과 스웨덴에서까지 차트 1위에 랭크되며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하지만 이후 버진 엔터테인먼트로 그녀의 소속사를 옮기면서 제작한 영화 <Glitter>이 크게 망하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데에 큰 돈을 썼던 버진과 머라이어 캐리는 큰 실망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매우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이후 그녀는 과로로 인한 기절로 자살소동이 터지고 계속되는 슬럼프 와중에 터진 에미넴과의 섹스스캔들에 휘말리지만 모두 근거없는 일로 밝혀졌다.
하지만 불운의 일이 연속되면서 그녀의 슬럼프에 대한 대중들의 기다림은 지쳐가고 있었고 새로운 디바들이 무섭게
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후 2005년 발매한 <The Emancipation of Mimi>이 좋은 호응을 얻게 되면서 머라이어 캐리는 안정기를 찾게 되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였다.
"Without You"는 이런 사연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명곡으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다사다난했던 사연을 품은
불운의 명곡, 또는 저주의 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영화 스물에 삽입된 "Without you"가, 그것도 영화 스물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장면의 삽입곡으로 쓰였다는 것은 그 의도가 예사로운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Without You"의 다사다난했던 사연과 영화 스물의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다사다난한,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가장 전성기 때 겪는 불운한 현실을 담아내려고 한 감독의 비장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Without You
"Without You"는 그룹 배드핑거의 피터 햄과 톰 에반스가 만든곡으로 ASCAP에 따르면 해리 닐슨, 머라이어 캐리와
더불어 현재까지 약 180여명이 리메이크 한 곡이다.
이 곡의 원곡은 락 그룹 배드핑거의 피트 햄과 톰 에반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처음 피터 햄이 만들었던'If it's love'
라는 곡의 코러스가 맘에 들지 않자, 당시 톰 에반스가 쓰던 곡과 합쳐서 만들었다.
'당신 없인 살 수 없어요' 라는 가사의 이곡은 배드핑거에 의해 녹음되어 1970년 발표된 앨범 'No Dice'에 수록되어
발표되었는데 싱글은 발표되지 않았다.
그 후 햄과 에반스는 이곡의 가사와 맞물리듯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해리 닐슨 (Harry Nilsson )
Everybody's Talkin‘으로 당시 잘 알려져있던 해리 닐슨은 한 파티에서 배드핑거의 Without You를 듣고 비틀즈의
노래로 오해했다가 사실을 알고 나서 71년 자신의 앨범인 Nilsson Schmilsson 에 리메이크 버전을 발표한다.
이곡은 그 후 미국 팝 차트에서 4주 연속 1위를 했으며 71년 3월 1일부터 5주 연속 영국 팝차트 1위를 기록하며
약 8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곡의 제작자인 리차드 페리는 후에 "발라드에 강한 비트가 들어간 그 당시 매우 차별화된 음반이었다.
이 음반이후로 많은 가수들이 비슷한 곡을 발표했지만 그 당시엔 누구도 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닐슨은 라이브를 자주 하진 않았지만 1992년 링고 스타와 그의 밴드인 올 스타 밴드와 함께 라스베가스의 시저스 팰
리스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라고 꼽은 것만 봐도 해리 닐슨은 대단한 인물이 될 운명처럼 보였다.
그러나 닐슨은 수줍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무대의 조명을 불편해하는 사람이어서 안타깝게도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Nilsson Schmilsson」은 그의 이력에서 핵심적인 앨범이다.
닐슨은 영국인 프로듀서 리처드 페리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했는데 페리는 닐슨에게 완전히 새로운 창작법의 면모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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