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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mp
There’s only so much you can learn in one place 이곳은 당신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야 The more that I wait, the more time that I waste 난 오래 기다렸지만,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해버렸지
I haven’t got much time to waste, it’s time to make my way 난 시간을 낭비해선 안돼 지금은 내 길을 만들 시간이니까
I’m not afraid what I’ll face, but I’m afraid to stay 난 내가 갈 페이스같은 건 두렵지 않아 하지만 안주하는 것은 두려워
I’m going down my own road and I can make it alone 나 자신의 길을 걸어나갈 거야 혼자 해낼 수 있다는 것 보여줄테니까
I'll work and I'll fight, Till I find a place of my own 나 자신의 장소를 찾아낼 때까지 난 부딪히고 싸울거야
Are you ready to jump?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어?Get ready to jump 도약할 준비를 해봐
Don’t ever look back, oh baby, 돌아보지 말고,
oh baby Yes, I’m ready to jump 그래, 난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어 Just take my hands 그냥 내 손을 잡아봐 Get ready to jump 도약할 준비를 해봐
We learned our lesson from the start, my sisters and me 우린 나와 내 여동생이 시작한 가르침을 배웠어
The only thing you can depend on is your family 당신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당신의 가족이겠지
And life’s gonna drop you down like the limbs of a tree 그리고 삶은 널 나무의 큰 가지처럼 스러지게 할 것이고
It sways and it swings and it bends until it makes you see 네가 보는 모든 것을 동요하게하고 날개짓하게 하겠지만 결국 무릎꿇게 만들거야
Are you ready to jump?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어? Get ready to jump 도약할 준비를 해봐
Don’t ever look back, oh baby 돌아보지 말고, oh babyh
Yes, I’m ready to jump 그래, 난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어 Just take my hands 그냥 내 손을 잡아봐
Get ready to, are you ready? 도약할 준비를, 넌 되어있는 거야?
There’s only so much you can learn in one place 이곳은 당신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야 The more that I wait, the more time that I waste
난 오래 기다렸지만,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해버렸지 All work and no fighting, I’ll find a place of my own
모든 일을 인정하고 난 나 자신의 장소를 찾아낼 거야 It sways and it swings and it ben 동요하고 날아오르고 무릎꿇으며
ds until you make it your own 당신이 당신 자신의 것을 만들어 낼 그날까지 I can make it alone(my sisters and me)
(repeat 7x) 난 혼자 해낼수 있어 (내 여동생과 나처럼)
Are you ready to jump?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어?Get ready to jump 도약할 준비를 해봐
Don’t ever look back, oh baby, 돌아보지 말고, oh baby
Yes, I’m ready to jump 그래, 난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어 Just take my hands 그냥 내 손을 잡아봐
Get ready to jump 도약할 준비를 해봐 Are you ready to jup?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어?
Get ready to jump 도약할 준비를 해봐 Don’t ever look back, oh baby,
돌아보지 말고, oh baby Yes, I’m ready to jump 그래, 난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어
Just take my hands 그냥 내 손을 잡아봐 Get ready to jump 도약할 준비를 해봐
미국의 가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음악가로 꼽힌다. 80년대에는 'boy toy'를 휘두르는 물질적인 여자(
material girl)로, 90년대에는 누드집 《SEX》를 발간하는 등 성(性)에 대해 도발적으로 외치는 섹슈얼한 여자로,
2000년대에는 아이의 어머니이자 당시 미국에서 갓 시작되던 일렉트로니카를 선구자적으로 도입한 아티스트이다.
처음엔 단순한 섹시 여가수 정도로 취급받았으나 30년 넘는 세월동안 끊임없는 변신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역량으로 지금은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확고한 위치에 올랐다.
특히 과거 유럽에서의 인기가 대단했었는데, 80년대에는 빌보드 유로 차트에서 가장 성공한 가수였고, 90년대에도
1위 앨범 + 싱글 수로는 5위 안에 들었고, 2000년대에도 싱글은 에미넴에 밀려 2위였지만, 여가수 판매량 1위다.
수많은 여가수들의 롤모델이며, '제2의 마돈나'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가수들은 숱하게 많다. 물론 그 중에 마돈나를
뛰어넘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0년대 초중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포스트 마돈나
자리를 놓고 유력하게 경쟁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이혼 등 암흑기를 겪은 뒤 약간 다른 쪽의
음악으로 돌아섰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완전히 하향세.
갑툭튀한 레이디 가가가 포스트 마돈나로 점쳐지기도 했으나, 행위예술(...)에 심취하며 대중과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 중이다.
자동차의 본고장인 디트로이트에서, 제너럴 모터스에서 일하던 엔지니어인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인 아버지와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이탈리아 계 집안이었으므로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다.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중산층
가정이었다. 다만 어머니가 5살 때 돌아가셨고 이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어린 시절을 흑인들과 같이 지냈다고 한다.
덕분에 흑인 배우들과 염문설이나 흑인 인권에 대하여 꽤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어릴 적 동네 흑인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던 점이 컸다고 한다.
한때는 너무 배가 고파서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했다고 고백한 바 있지만 이것은 가수가 되기 위해 뉴욕에서 고생하던 무명시기의 이야기이다.
의외로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어서 미시건 주립대학에 무용 전공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가 가수가 되느라 중퇴했다.
아이큐가 140이라는 설도 있다.
1977년 단돈 35달러를 가지고 뉴욕에 입성하여 백댄서와 밴드 활동을 하며 기본기를 닦았다.
이 당시 돈이 없어서 10달러를 받고 찍은 누드사진 때문에 유명해진 후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사진을 보면 근육없는 평범한 소녀 몸매의 갈색 머리의 전형적인 이탈리아 여성이다.
2013년 마돈나는 당시 성폭행당한 것을 고백했다.
다음 해 2집 Like a Virgin의 리드 싱글 Like a Virgin으로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고, 세계적으로 2,0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월드스타가 되었다.
특히 1984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Boy Toy라고 새겨진 벨트와 웨딩 드레스, 그리고 머리를 헝클며 바닥에 몸을 문대는 Like a Virgin 공연은 당시 엄청난 파격이었으며, 마돈나의 베스트 퍼포먼스 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
Like a Virgin의 히트는 데뷔한지 2년 밖에 안 된 여가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고, 이 앨범으로 마돈나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까지도 마돈나 최고의 히트곡을 꼽자면 단연 Like a Virgin이 꼽히며[12] 이때 섹시한 이미지와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많은 마돈나 워너비들을 양산해 내기도 했다.
1986년에는 3집 True Blue를 발매했다. 싱글 'Live to Tell', 'Papa Don't Preach', 'Open Your Heart'는 빌보드 1위, 'True Blue', 'La Isla Bonita'는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하면서 앨범의 모든 싱글을 5위권에 진입시키는 성공을 거뒀다. 앨범 판매량은 2100만장을 기록했다.
투어 Who's That Girl World Tour도 성공적이었는데, 남자 솔로 또는 밴드 투어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여자 가수로는 독보적이었다.
이 당시가 가히 마돈나의 진정한 리즈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1989년 4집 Like a Prayer 시기에는 신성 모독등 다양한 논란을 몰고 다녔으며, 앨범 판매량은 전작에 비해 절반이나 떨어졌다.
하지만 리드곡인 Like a Prayer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극적인 구성 덕에 마돈나 곡들 중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는
명곡이며, 팬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월드 투어 Blond Ambition World Tour를 다니면서 대박을 쳤다.
1990년에는 베스트 앨범 The Immaculate Collection을 발매해 3,00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이 판매량은 마돈나 커리어 최다 판매량이며 역대 솔로 아티스트 베스트 앨범 판매량 최다 기록이다.
같은 해 마돈나의 대표곡이자 명곡으로 다섯 손가락안에 반드시 꼽히는 'Vogue'도 발매 되었다.
1990년 9월 열린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선보인 'Vogue' 공연은 마돈나의 레전드 공연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마이크도 없이 아주 당당한 립싱크 공연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호평을 받는 무대이다
MTV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 공연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90년대로 넘어가면서 5집 Erotica 시기부터 대놓고 섹스 어필 컨셉을 밀고 홍보를 위해 본인의 누드집까지 일부러 유출시켰으나, 망했어요.
앨범 판매량이 고작 400만장에 그쳤다.
또한 6집 Bedtime Stories에서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는지 부드럽고 차분한 사운드를 가지고 나왔지만, 전작 에로티카에 비해 약간의 앨범 판매량이 늘었을 뿐 대중적으로 크게 실패했다.
90년대부터 연이은 실패는 마돈나를 좌절케 했고,마돈나는 심지어 자신을 미국이 알아주지 않는다며 이민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8년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수용한 7집 Ray of Light를 통해 재기에 성공한다.
음악성, 대중성 모두 인정받았다. 그동안 마돈나를 외면해왔던 그래미상 조차도 상을 주며 인정했다.
2000년에는 일렉트로닉 장르의 연장선인 8집 Music을 발매, 성공을 거뒀다.
또한 앨범의 동명 싱글 Music은 마돈나의 마지막 1위 싱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3년 9집 American Life를 발매하면서 마돈나는 다시 한 번 추락한다.
리드 싱글 American Life의 뮤직비디오에서 자국 대통령인 부시를 묘사한 사람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등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미국인들을 비판했다.
그리고 라디오 에어플레이 보이콧을 당하며 싱글 American Life는 37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에어플레이 보이콧은 이후에 마돈나의 싱글이 1위에 오르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앨범은 이렇게망했으나, 투어 Re-Invention World Tour는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성공을 거뒀다.
'American Life'에서 이라크 전쟁을 비판해서 라디오 스테이션이 일제히 마돈나를 보이콧한 이후 마돈나의 싱글플레이는 걷잡을 수 없이 하락했고 이후로 회복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시기의 투어인 'Re-Invention Tour'의 경우 직전의 'Drowned World Tour'나 이후의 'Confessions Tour'와 비교해서 세트도 거의 밴드 구성으로 이뤄진 소박한 것이며 무대의 크기 역시 스태디움이 아닌 중극장 정도이다.
이후 이렇다할 싱글 히트곡이 나오지 않는 상황. 그러나 사실 어떻게 보면 85년 데뷔한 가수, 그것도 전성기 짧기로
유명한 여자 솔로 댄스가수가 아직까지 월드 투어를 돌 정도로 커리어를 서서히 연착륙시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5년 10집 Confessions on a Dance Floor로 재기에 성공. 참 굴곡이 많은 커리어이다.
싱글 Hung Up은 가장 많은 국가에서 1위를 한 싱글이라는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폭발적인 디지털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사건으로 7위로 마감.
2008년 11집 Hard Candy도 나름 중박을 기록했다.
특히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리드 싱글 4 Minutes은 21개국에서 1위에 올랐으며, 미국에서도 3위까지 올랐다. 이전 싱글들의 안습한 미국 성적을 생각해보면 성공적이다.
2012년 2월 3일 12집 MDNA의 싱글 "Give Me All Your Luvin' (MIA와 니키 미나즈 피처링)"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이틀후인 2월 5일 슈퍼볼 하프타임쇼를 통해 이 곡과 과거 히트곡인 Vogue, Music, Like a Prayer 등의 무대를
선보였다.
함께 합동무대에 선 LMFAO의 레드 푸는 마돈나 들다가 저승 인사 하는 줄 알았다고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
MDNA에 대한 평단의 호평과는 달리 싱글 플레이가빌보드 1위를 한 지 10년이나 지났고'포스트 마돈나'로 인정받을
확률이 매우 높은 이상한 여자도 나타나고 해서 슬슬 마돈나 위기설(?)이 대두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미 몇 번의 침체기를 극복한 전력이 있으니, '이 누님은 분명히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다시 살아날 거다.'는
의견이 (아직까지는) 일반적이다.
농담이 아닌게 58년생이면 30먹은 사회인 아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모 연배다.(...) 실제로 'MDNA' 투어에
마돈나와 가이 리치의 아들인 로코 리치(Rocco Ritche)가 댄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2000년생. 그런데 로코 리치는 이후 아버지 가이 리치가 살고 있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마돈나와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살기를 희망한다는 모양.
2000년대 후반부터 차트 성적이 부진한 것은 마돈나 본인이 약삭빠르게 2010년대 음악계의 중심이 싱글이나 앨범이
아닌 라이브 공연인 것을 파악하고 월드 투어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냉정히 바라보자면 마돈나의
인기가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는 게 객관적인 설명이다.
다만, 수익을 올리는 데에는 이골이 난 마돈나답게 MDNA 앨범부터 수십년간 소속사였던 워너와 계약을 종료하고
공연위주 기획사인 'Live Nation'과 계약하기도 했다.
MDNA 투어로 자신의 이전 투어 기록을 갈아치우며 이를 바탕으로 1억2천5백만$를 벌어들여 2013년 아티스트 수익
1위를 기록했다
2014년 말 한창 13집 작업 중 12월 데모 곡들이 유출되었다. 이에 마돈나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인스타그램에 핸드폰 던진 사진을 올리고, "유출은 예술 강간이며 테러."라는 글을 올리며 분노를 표하는 등 SNS로 한바탕 하셨다.
결국 같은 달 13집 Rebel Heart의 리드 싱글 Living for Love를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이후 그래미와 브릿 어워드 퍼포먼스를 한다고 발표하며 이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프로모션 행보를 보인다.
브릿 어워드에서는 공연 중 뒤로 넘어지는 사고[16]가 발생해 나름 이슈도 되었지만,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진입도
못하고 싱글 활동을 접었다.
두 번째 싱글 Ghosttown은 소리소문 없이 묻혔고 세 번째 싱글 'Bitch I'm Madonna' 는 한창 핫한 니키 미나즈 피처링을 대동하고 뮤직비디오에는 비욘세, 칸예 웨스트, 케이티 페리, 리타 오라, 마일리 사이러스, 크리스 락 등 핫한
스타들이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핫 100 차트 84위로 기록을 마감하며 역대 최악의 흑역사 앨범으로 남았다.
최고 기록 싱글차트 84위, 앨범 판매량 전세계 합쳐 80만장. 심지어 미국에서 골드 인증도 받지 못했다.
'Hard Candy'와 'MDNA' 앨범이 연속으로 평이 뜨뜻미지근했던 데 비해 'Rebel Heart'는 오랜만에 평론이 상당히
호평이었지만 아무래도 하락세를 막기 어려운 듯.
이후 늘 그렇듯 앨범 활동은 슬슬 접고 월드 투어를 시작해 돈이나 싹쓸이 하는듯하다.
특히 Rebel Heart 투어에서는 22년만에 호주를 방문하고 필리핀, 대만 등 그동안 가지 않았던 국가에도 방문한다고
확정지었다.
2016년 빌보드 뮤직어워드 피날레에서 스티비 원더와 함께 친구였던 프린스 로저스 넬슨의 추모공연을 했다.
은 해에 호주 멜버른에서 Tears of a Clown이라는 공연을 했는데 마돈나가 무려 광대로 분장했다.
가수 외에 연기자로도 활동해 상당한 영화에 많이 나왔다. 국내에서는 《딕 트레이시》, 《그들만의 리그》가
알려졌으나 마돈나 본인의 연기력도 사실 좋은 편은 아닌 데다가 골든 라즈베리만 피하는 데에 의의를 둬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90년대 영화배우중 가장 많은 라즈베리 상을 수상한 여배우"라는 불명예까지 떠안는 수모도 겪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 수잔 세이들먼 감독의 《수잔을 찾아서》나 아벨 페라라 감독의 《위험한 게임》,
제임스 폴리 감독의 《화려한 유혹》같이 헐리웃에서 예술적 감독으로 알려진 이들 영화에도 자주 나왔다.
당연히 이 영화들은 흥행으로는 거리가 멀다보니 잘 알려지지 않기에 마돈나의 영화는 무조건 육체적으로 들이댄다는 편견으로도 희생이 되었던 셈. 그런 영화에 육체의 증거라든지 스텝트 어웨이같은 영화가 있다.
그밖에도 1991년작인 진실 혹은 대담[18]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로 호평을 받은 것[19]을 비롯하여 1996년작
뮤지컬영화 《에비타》에서 제법 호평을 받으며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
011년, 본인이 직접 감독한 영화 《W.E》가 개봉했고, 수록곡 〈Masterpiece〉로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을 받았다.
물론 영화에 대한 평은 그저 그렇다.
2003년 American Life의 MV에서 이라크 전쟁을 강하게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아 큰 논란을 일으킨바 있다. 뮤직비디오 내용은 이라크 전쟁을 패션쇼에 빗대어 타 국민을 억압하는 미국 정부와 그것을 방관하는 미국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는 맹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시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거의 80~90%에 육박할 정도였고 사회 분위기 또한 반전=매국 이라는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연히 반전의 목소리는 나올 수도 없었다.
어느 정도로 심했냐하면 거의 사회적인 매장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컨트리 가수였던 딕시 칙스가 자신의 콘서트에서 조지 부시를 비판하는 말을 내뱉자마자 그들에게 쏟아졌던 비정상적인 반응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이런 상황에서 공개된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는 당연히 큰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마돈나가 지금까지 그 어떤 금기를 까발려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던 미국 사회는 마돈나를 향해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퍼붓기 시작한다.
각종 방송과 라디오 채널들은 마돈나의 노래를 보이콧하고 비난하는 멘트를 날렸고 심지어는 마돈나의 가족들마저
극우세력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을 정도로 거의 매장 직전의 상황까지 몰리게 된다.
결국 마돈나는 자신의 가수생활 최초로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게 되는데, 이전 뮤직비디오의 충격적인 장면들을
전부 없애고 국기를 배경으로 노래를 하는 수정판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것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 반전세력들은 몸을 사리는 태도라고 비판하였다. 가수 샤키라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돈나의
American Life MV 수정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American Life 앨범은 유래없는 상업적인 실패를 거두었고 (싱글로 50만 장) 이후 싱글들도 연이어
상업적인 실패를 거두어 American Life앨범은 전무후무한 마돈나의 흑역사로 막을 내리는 듯......하였으나
이후에 있었던 Re-invention Tour에서 부시정부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이 투어는 이후에 있었던
Confession 투어, Sticky & Sweet 투어를 제외한 가장 성공적인 투어로 기록되기에 이른다.
그 엄청났던 미국내 마돈나 비난 여론들을 생각해볼때 마돈나의 월드투어성공은 매우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후 미국내 여론도 점차 이라크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으로 바뀌기 시작하였고 그제서야 마돈나에 대한 여론도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2003년도에 있었던 MTV VMA AWARD 공연에서 후배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키스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당시 포스트 마돈나로 한참 극부상하고 있던 두 가수가 그것도 마돈나와 키스 했다는 사실은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때 마돈나는 스피어스, 아길레라 두명과 모두 키스를 했는데 카메라가 스피어스와의 키스만 보여줘서 마돈나,
스피어스만 언론의 집중을 받았고 정작 아길레라는 이렇다할 주목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
스켄들
첫 번째 남편은 《아이 엠 샘》에 출연한 배우 숀 펜.
그 당시 숀 펜에게 쇠사슬에 결박당한 채 구타당하면서 살았다는 루머가 있으나 자세한 건 추가바람
2015년 이후부터 마돈나는 숀 펜과 다시 만나면서 화해한 듯 하다.
두 번째 남편은 영국의 영화감독 가이 리치. 2009년 무려 29세 연하의 남자친구인 헤수스 루즈와 결별한 바 있다.
가장 유명했던 연인으로는 데니스 로드먼이 있다.
악동과 섹시퀸의 결합이 꽤나 많은 화제를 불러왔다. 리치와의 결혼생활 동안 야구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염문이
있었으나 둘 다 부인했다.
그 밖에 워렌 비티, 존 에노스 3세, 바닐라 아이스, 장 미셸 바스키아트 등 인종과 연령에 무관하게 다양한 남자친구를 섭렵했다. 마이클 잭슨은 유혹에 넘어오지 않았다.
섹스 파트너로는 존 F. 케네디 주니어, 프린스, 데이비드 블레인 등이 있다.
2013년에는 브라힘 자이밧(Brahim Zaibat)이라는 28살 연하 프랑스 출신 댄서와 교제했었는데 현재는 헤어졌다.
성 소수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가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자신의 섹시하고 당당한 이미지, 클럽 튠인 댄스 팝 음악,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 가사와 사상이 그 원인인듯하다.
마돈나 역시 지속적으로 동성애자 및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태도를 취하며 동성애 커뮤니티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돈나와 게이 커뮤니티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곡이 1990년 발표한 곡 'Vogue'로,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보깅(Vogueing)' 댄스는 당시 게이 클럽에서 유행하던 춤[25]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이외에도 마돈나와 그녀의 동성애자 팬들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며, 심지어 1991년에 발표한 다큐멘터리 영화
《마돈나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에서는 마돈나의 보조춤꾼 중 유일한 이성애자가 겪는 혼란(?)이 경쾌하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그는 결국 마돈나와 열애설이 나 버리고 만다...
2012년 마돈나의 12번째 앨범 <MDNA>의 두 번째 싱글인 Girl Gone Wild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인터넷에서 알음알음
유명한 섹시한 컨셉의 우크라이나 출신의 댄스그룹인 카자키를 백댄서로 세웠다.
헐벗은 근육질 남자들이 하이힐(!)을 신고 섹시한 춤을 추는 컨셉이다.
미드 《빅뱅 이론》에서 게이 개그를 담당하는 라제쉬 쿠트라팔리 캐릭터가 마돈나, 셰어, 아델을 '자기를 미치게 하는 여자들'이라고 말한 적 있다(...)
2012년 8월 7일에는 러시아 제 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약 2만 5천여 명의 관객들에게 미리 나누어준 분홍색 손목 밴드를 찬 손을 들어 동성애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시할 것을 호소했는데, 이에 제대로 멘붕한(...)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부총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모든 창녀 출신들은 나이가 먹으면 모두에게 도덕에 관한
강의를 하려고 한다. 특히 외국 순회공연이나 투어에서 더 그렇다"
고 마돈나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마돈나와 패션
지금에서야 마돈나가 워낙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가수이기도 하고 전성기도 지난 가수이기 때문에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80~9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당시 트렌드를 이끄는 패셔니스타로 유명했다.
1980년대 찢어진 청바지, 가죽 자켓, 악세사리 등으로 대표되는 펑크스런 패션을 이끄는 트렌드세터였던 마돈나이다.
이외에도 무대에서 입은 웨딩드레스, 콘브라 의상 등 유명한 의상들도 많다.
현재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욘세, 레이디 가가 등 유명한 댄스 가수들은 무대에서 바디슈트 의상을 입는 것이
트렌드인데, 이미 마돈나는 이미 90년대에 이러한 의상을 입고 공연했다.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여자가수 무대 의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구자였던 것.
가수로서는 최초로 H&M과의 콜라보레이션을 맡았다.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대표적인 뮤즈이기도 하다.
1990년 'Blond Ambition' 투어에서 입은 콘브라는 마돈나와 장 폴 고티에의 대표적 협업. 이 콘브라는 2013-2014년
'MDNA' 투어에서도 등장한다.
또한 Dolce & Gabanna 브랜드를 발굴한 가수로 역시 동 브랜드의 뮤즈이다.
지금 유행하는 Dsquared2 청바지 역시 마돈나가 2000년대 초반에 입었다
마돈나와 뮤직비디오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뮤직비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가수로, MTV 시대를 본격적으로 이끌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들이 워낙 인상적이고 논란을 이끌어내어서, 노래 자체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어왔다는 평이 있을 정도. 2012년 기준으로 무려 20개의 MTV 뮤직비디오 상을 받기도 했다.
많은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들과 작업했으며, 그 중에는 훗날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데이비드 핀처도 있다.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를 모은 dvd로는 The Immaculate Collection(동명의 앨범과는 수록곡이 조금 다르다),
The Video Collection 93:99, Celebration: The Video Collection이 있다.
보컬리스트 마돈나
재능을 타고난 대단한 보컬리스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58년생이 무대에서 날아다니며 라이브를 한다는 것은 대단하지만, 당장 인순이만 해도 57년생(...) 또 마돈나가 무대에서 노래를 라이브로 할 수 있는 것은 기술 발달과 백업 코러스에 힘입은 바도 크다. 특히 마돈나 특유의 진폭이 큰 비브라토(바이브레이션)는 팝 음악의 보컬 코치들이 꼽는 '절대로 따라하지 말아야 할 비브라토'에 늘 꼽히곤 한다(...)
데뷔 초기에는 락에 영향을 받은 보컬(이라고 쓰고 쌩목이라고 읽는)을 사용했다.
이 시기의 특징적인 보컬 퍼포먼스는 'Like A Virgin'에서의 콧소리 정도. 다만 이때는 20대였기 때문인지 C나 D 정도의 고음을 종종 내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했든 비브라토, 발성 등 기초적인 부분이 좋지 않은, 사실상 쌩목으로 노래를 했다.
덕분에 'The Girlie Show' 등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에서 목이 잠겨서 노래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쌩목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10곡이 넘게 만들어내고, 투어를 돌았던 것을 보면 엄청나게 지독한 듯.
보컬리스트로서 마돈나에게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1992년 뮤지컬 영화 《에비타》 출연이었다. 원
래 뮤지컬의 작곡가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사실 마돈나를 탐탁치 않아했지만[28] 마돈나는 결국 이 뮤지컬에
출연하게 되면서 보컬 레슨을 받게 된다.
이 레슨을 통해 두성과 가성의 사용법을 익히면서, 당장 다음 앨범인 《Ray of Light》에서 사용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에비타 이전인 《Bedtime Stories》에서 《Ray of Light》로 넘어오면 목소리가 맑아지고 발성이 안정적인
것이 느껴진다.
지금은 이전에는 사용하지 못했던 가성, 두성, 반가성 등을 사용하게 되었으나, 나이 때문인지 음역대 자체는 조금
내려앉았다.
음색에 있어서는 초창기 특유의 깨랑깨랑한 목소리가 더 좋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확실히 테크닉면에서는 지금이 더 낫다는게 중론. 그런데 Rebel Heart 앨범에서는 스튜디오 기술로도 커버가 안 될 정도로 목소리가 상한 것이
드러나서 우려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 나이에 쉬지 않고 월드 투어를 해 왔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실패에 대처하는 마돈나의 자세
피도 눈물도 없는 미국 연예계에서 몇십년동안 소위 최고의 '탑 셀러브리티'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운 일이 아니다.
당장 80년대, 90년대, 2000년대에 각각 '마돈나의 라이벌' 이나 '포스트 마돈나' 로 꼽히는 여자 가수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만 봐도 그 어려움을 알 수 있다. 물론 마돈나도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진 않았고 정상의 자리에 있던
기간을 보면 10년 정도다.
2010년 들어서는 여느 중견가수들과 마찬가지로 하락세를 타고 있고 레전드의 반열에 드는 중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절대 인기가수라고 부를 수 없는 신디 로퍼가 80년대 마돈나의 라이벌이었다.
아니, 사실은 마돈나가 신디 로퍼의 라이벌이었다. 당시 마돈나는 '신디 로퍼에 비교하면 한참 질이 떨어지는 저 섹시함만 내세우는 3류가수는 몇 년 내로 사라질 것이다'라는 평을 들었다(...)
마돈나의 성공비결이 딱 잘라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돈나 평전이 묘사하는 바 그 긴 활동기간을 버텨내게 한 여러 요인 중 실패에 대처하는 마돈나의 자세는 참으로 귀감이 될만하여 여기에 소개한다.
긴 활동기간 동안 음악, 영화, 사업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모두 성공할 수는 없었고, 심지어 본업인 음악마저도 몇 번의 하락기를 겪었다.
대표적인 것이 1992년의 'Erotica' 와 2003년의 'American Life' 앨범. 그리고 2012년 'MDNA' 앨범(...)[30] 골든
라즈베리
상의 대표주자답게 영화에서의 실패는 너무나 많아서 모두 언급하기 힘들고(...) 자신의 음악 레이블이어던 '매버릭 레코드'[32] 사 역시 실패하는 등 사업에서도 실패를 많이 겪었다.
그럴 때마다 마돈나가 실패를 이겨나는 방법은 아주 명쾌했다.
-
음악이 실패한 경우 : 프로듀서를 비난하고 해고한 뒤 다른 프로듀서와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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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실패한 경우 : 감독을 비난하고 해고한 뒤 다른 감독과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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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실패한 경우 : 사업 파트너를 비난하고 해고한 뒤 다른 파트너와 일한다(...)
사실 마돈나 평전에 의하면, 그렇게 돈이 많은데도 슬리퍼 한 켤레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불같이 화를 내며 가정부를
해고하거나 친구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절대로 돈을 내지 않고 팁도 아주 적게 주는 등, 짠순이(...) 스러운 면
역시 실패를 이겨내고 재기하는 발판이 되었을지도.
이름
프로필에 나와있듯 마돈나의 본명은 마돈나 루이스 베로니카 치코네(Madonna Louise Veronica Ciccone)로, 사실
마돈나라는 이름은 본명이다.
미국식 발음은 '머다나'에 가깝다.
거의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전형적인 이름. 동갑내기인 가수 프린스 역시 (다소 오만한) 예명으로 자주 오해를 받지만
그쪽 역시 본명이다.
원래 마돈나(Madonna)는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호칭으로, 섹시한 컨셉의 가수가 이 이름을 쓴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것이 본명인 것을 어쩌겠는가.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남미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 '마돈나!'를 부른다는 사연이 와서 '그럼 한국에서 놀라면 원더걸스!라고 해야 하나'는 드립을 치고 이후 '페르난도! 마자나!'라는 컬투의 유행어가 만들어졌는데, 그러니까 저 마돈나!는 '성모 마리아여!'라는 뜻이다.
한때 매지(Madge)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가이 리치와의 결혼기간에 불리던 애칭이라 본인은 별로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진짜로 그녀와 친한 사람들은 그녀를 M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곡의 저작권 표기 등 공적인 이름이 들어가는 자리에는 'Madonna Ciccone' 내지는 'M. Ciccone'를 쓴다.
=
마돈나를 한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자신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첫 앨범을 발표한 84년부터 지금까지 연예계를 한번에 휘어잡는위력을 발휘하는 몇 안 되는 엔터테이너로서 자신만의 노래와 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하여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진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80년대 초부터 마이클 잭슨과 함께 뮤직비디오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한 그녀는 자존심,독립성,그리고
솔직함을 무기로 마돈나,자신만의 표현을 하고 있다.
1958년 8월 16일,미국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 로체스터에서 태어난 마돈나 (본명:마돈나 루이즈 베로니카 치치오네)는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계모인 어머니밑에서 8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치어리더,피아노 레슨,발레등 춤과 노래에 특출난 재능과 끼를 발휘하여 미시간 주립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등 그녀의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1977년,그녀는 발레를 하기위해서 뉴욕으로 가 도너츠가게 카운터에서 일을 하면서 [Alvin Ailey & Martha Graham]이라는 무용단에 들어가 춤을 추던 중 노래로 방향을 전환.클럽의 인디 밴드에서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면서 자신만의 곡을 만들기 시작한다.
클럽에서도 마돈나의 특이한 음색과 펑키하면서도 과격한 춤실력을 주목 받아 마침내 1982년 Dj Mark Kamin에
픽업되어 'Everybody'라는 노래로 클럽에서부터 인기를 얻게 된다.
첫 데뷔 앨범[Madonnna] 1983년에 발표한 그녀의 첫 데뷔 앨범[Madonnna]는 대중들에게 많은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클럽에서만큼은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앨범 수록곡인 'Hoilyday'는 방송챠트에 진입을 했고 'Borderline' 은
1984년에 Top10에 들어 17주간동안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Lucky Star'는 차트에 4위로 랭크가 되었는데 그녀의 곡들과 함께 특이하면서도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의상으로 꾸며진 뮤직비디오도 주목을 받게 된다.
1984년에 발표된 마돈나의 두 번째 앨범 [Like A Virgin]은 차트에서 정상을 기록하면서 6주간 차트에 머무르게 되는데 1985년 어느 아티스트보다 최고의 음반 판매율을 보이게 된다.
1986년에 히트를 기록한 마릴린 먼로에게 헌사한 노래 'Material Girl'로 그녀는 투어를 시작했으며 'Crazy For You'로 그 해 5월 두 번째 히트곡을 낳게 되면서 영화 [Vison Quest]와[Desperately Seeking Susan]에 출연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그해 마돈나는 영화계의 악동,숀펜과 자신의 생일날 결혼을 했으나 행복한 결혼생활도 잠시 4년 후에 숀펜과는 결별을 하게 된다.
1987년 그녀의 다섯번째 앨범 'Open Your Heart'가 싱글로 발표되고 그녀의 세번째 영화 [Who's That Girl]의 주제가인 ' La Isia Bonita'가 여섯 번째 싱글 앨범으로 정상에 오르게 된다.
파격적인 뮤직비디오 'Like A Prayer'와 영화 [Dick Tracy]출연 팝과 락,댄스를 포함한 그녀의 네 번째 앨범인
[Like A Prayer] 슬립 차림의 마돈나가 불 타는 십자가 앞에서 흑인성직자와 키스를 하는 파격적인 화면으로 꾸며진
뮤직비디오와 함께 또 한번 마돈나는 뜨거운 화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4집에 수록된 'Express Yourself','Cherish','Keep It Together'이 싱글 원을 기록하면서마돈나는 1990년 4월부터 12월까지 [Blond Ambition]이라는 타이들로 투어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90년 5월에는 [Vouge]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웨렌 비티와 영화 [Dick Tracy] 에 출연을 하게된다.
그녀는 'Immaculate Collection'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앨범에서는 'Justify My Love'와 'Rescue Me' 두 곡이 히트를 하게 되고 'Rescue Me'는 미국 여자 가수중에서 차트에 15위로 첫 등장하는 신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92년 여름,영화 [League of their Own]의 주제가로 사용되기도한 'This Used To Be My Playground' 라는 히트곡을 내놓고 1993년에 발표된 [Erotica]와 1995년에 발표된 [Bedtime Stories]는 플레티넘을 기록하면서 일곱 번째
멀티 플레티넘을 기록하게 된다.
1996년! 마돈나는 영화 [에비타]에서 주인공을 맡으면서 그녀의 인생에서 잊지못할 한 해를 맞게 된다.
마돈나는 에비타에 출연하면서 섹시한 이미지에서 엘레강스하면서 지적인 이미지로 탈 바꿈하게 되는데 그 결과 그해 골든 그로브 [Musical or Comedy] 부문에서 최고 여자 배우상을 거머지게 되고 그녀의 트레이너인 카를로스 레온의 딸 [Lourdes]를 출산하게 된다.
마돈나는 1998년 트랜스적인 요소가 강한 [Ray Of Light]를 발표하면서 이미지를 바꾸게 되는데[Ray Of Light ]는
99년, 제41회 그레미 시상식에서 데뷔 이래 처음으로 최고 팝 앨범상, 최고 댄스 레코딩상, 단편 뮤직비디오상을
받으면서 그간 그래미와 인연이 없는 마돈나에게 세 개의 트로피를 선사하기도 했다.
뮤지션,가수,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진 마돈나는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다른 뮤지션들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그녀는 위대한 가수도 아니고 위대한 배우도 아니지만 항상 새로운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고 파격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에 자신만의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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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황문권기자] 팝 디바 ‘마돈나’와 ‘레이디가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뮤직 다큐멘터리 <마돈나 :
라이크 어 버진>과 <레이디가가 : 온 더 엣지>가 오는 24일 개봉을 앞두고 팝 디바들의 계보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투어 공연에 대한 이슈들로 연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마돈나’와 ‘레이디가가’를 주인공으로 한 뮤직
다큐멘터리 <마돈나 : 라이크 어 버진>과 <레이디가가 : 온 더 엣지>의 개봉 소식으로 팝 디바들이 스크린에서 펼칠
대 격돌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원조 팝 아이콘 ‘마돈나’와 21세기에 돌풍처럼 등장한 ‘레이디가가’는 명실상부한 팝의 여왕들이다. 두 디바는 파격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트랜드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세기를 뛰어넘는 라이벌로 지목되며 최고의
자리를 두고 여전히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의 개봉소식과 함께 ‘마돈나’와 ‘레이디가가’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녀들 이외의 팝 디바들에게로 이어졌다. 영화 <마돈나 : 라이크 어 버진>과 <레이디가가 : 온 더 엣지>가 개봉을 앞두고 추억으로 사라진 디바, 재기를 위해
노력하는 디바, 여전히 건재함을 자랑하는 디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팝 디바들의 계보를 정리해 눈길을 끈다.
1980년대는 댄스를 대표하는 ‘마돈나’와 발라드를 대표하는 ‘휘트니 휴스턴’의 양대 산맥이 팝 계의 막강 여성 파워를
맡았다.
둘은 각기 다른 장르의 음악 스타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아 가수와 배우를 넘나드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1990년대가 되면서 ‘마돈나’라인으로 정리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그리고 ‘그웬 스테파니’가
데뷔했고, 강렬한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휘트니 휴스턴’ 라인 역시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이 등장해 소름끼치는 가창력을 뽐내며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마돈나’와 ‘휘트니 휴스턴’ 라인으로 구분되던 팝 디바의 계보는 2000년대로 오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다양한 장르들이 파생되면서 팝 디바들도 영역을 파괴하며 다양한 도전을 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마돈나’의 강
렬한 댄스와 ‘휘트니 휴스턴’의 가슴 저릿한 가창력을 적절하게 배합한 음악 스타일을 가진 ‘비욘세’, ‘켈리 클락슨’,
’리한나’,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대형 신인들이 팝 계를 장악했다.
그리고 모두가 팝 여왕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2008년, ‘레이디가가’가 등장하면서 팝 디바의 라인은 다시금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부는 ‘레이디가가’가 ‘마돈나’로부터 파생된 아티스트라고 주장하고, 일부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혁명을
시도하는 아티스트라고 주장하며 ‘가가’를 ‘마돈나’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쟁쟁한 후배들의 등장 속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놓지 않았던 ‘마돈나’ 역시 자신보다 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레이디가가’로 인해 30년 간의 독주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팬들은 수 많은 쟁쟁한 팝 디바들 가운데 ‘마돈나’와 ‘레이디가가’를 경쟁 관계에 두고 비교하기 시작했고 누가 최고인
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이름만으로도 빛이 나는 세기의 팝 디바들 속에서 역시 단연 눈에 띄는 두 디바 ‘마돈나’와 ‘레이디가가’의 진검 승부에 대한 답은 24일 스크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돈나’와 ‘레이디가가’를 둘러싼 논란과 찬사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는 <마돈나 : 라이크 어 버진>과 <레이디가가 :
온 더 엣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돈나 : 라이크 어 버진>과 <레이디가가 : 온 더 엣지>는 연속 상영되어 음악 팬들과 영화 팬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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