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시댁은 공포 그 자체였다..피해자 40명 중 5명 주검으로
서울신문]10년간 판결문으로 본 국제결혼의 비극
26만명에 이르는 국내 결혼 이주 여성들은 중첩된 마이너리티(소수자성)를 안고 한국 땅에서 살아간다.
여성인 동시에 이주민으로서 일상적 차별과 혐오에 맞닥뜨리면서도 대부분은 버텨 내지만, 일부는 극단적인 범죄의
피해자가 돼 한국에서의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한다.
서울신문은 결혼 이민자들이 국내에서 겪는 비극의 원인을 역추적했다.
그 자료로 판결문을 택했다. 대법원 판결 데이터베이스에서 ‘결혼 이주’, ‘외국 아내’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2009~2019년 사이 발생한 결혼이주 가정의 강력범죄(살인·강간·감금·폭력 등) 40건을 찾았고, 서울·대전 등 각 법원
으로부터 이 판결문을 입수, 분석했다.
판결문에는 남편·시댁 식구가 휘두른 상상할 수 없는 폭력에 생을 마감했거나 겨우 살아남은 40명의 이주여성
(가해자 1명 포함) 이야기가 등장한다. 전문가들은 “이주여성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인식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결혼 이주민들이 언제든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여성들이 범죄에 노출된 이유를 키워드별로 정리했다.
#권력이 된 경제력
몽골에서 한국으로 결혼해 온 A씨는 1년간 남편 노모(46)씨의 소유물로 살았다.
남편은 아내를 배우자로 대하지 않고 외국에서 사 온 기념품 취급했다. A씨가 향수병을 호소하며 “몽골에 잠시 다녀
오고 싶다”고 하자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 여기 데려오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아?”
이후 남편의 무차별적 폭행이 이어졌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몽골에 사는 친구와 채팅만 해도 주먹이 날아왔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여성 B씨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는 남편 최모(53)씨에게 “고향에서 친정엄마가 오는데 택시비 좀 달라”고 말했다가 사정없이 맞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왜 택시를 타느냐”는 게 이유였다.
폭행 혐의로 법정에 선 남편은 “국제결혼으로 인해 내가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며 오히려 피해를 주장했다.
두 여성이 겪은 비극은 결혼 이민자들이 집안 내에서 겪는 갑질이 극단적으로 곪아 터진 사례다.
브로커를 통해 아내를 소개받은 남편 측은 중개비 등으로 1000만원대의 금액을 지출하는 데다 가정 내 경제권까지 틀어쥐고 있다 보니 출신국에 따라 이주여성을 하위 계급의 사람처럼 대하기도 한다.
황정미 강원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는 “국제결혼을 하면 문화나 언어가 달라 서로 이해하려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데, 잘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아내가 도망갈까 봐 감금한 남편도 있다.
김모(53)씨는 자신이 밖에서 일하는 하루 18시간 동안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내 C씨를 비닐하우스에 가뒀다.
비닐하우스 바깥문은 자물쇠로 잠그고, 쇠사슬 등으로 꽁꽁 묶기까지 했다. 재판부는 김씨에게 “개인의 폭력성에 기인한 문제라기보다는 외국인 아내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의심에서 비롯된 범행”이라고 판시했다.
범죄 피해를 당해도 가해자인 남편을 오히려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기현상도 확인됐다.
본국 가족들의 기대 속에 먼 곳으로 결혼해 왔는데, 남편이 처벌받으면 기댈 곳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분석 대상 40건의 판결 중 폭행, 상해 혐의 등을 받은 5건은 아내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혀 ‘공소기각’(형사소송에 형식적 흠결이 있어 재판부가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 처리됐다.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벌하지 않는 죄)가 아닌 감금·강간치상 등의 혐의를 받는 남성도 아내가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해 감형받기도 했다.
#성적 대상화
판결문에는 일부 한국인 남편들이 외국인 아내를 성적 만족감을 채워 주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듯한 흔적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6월 발표한 결혼이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경험한 여성 가운데 27.9%는 남편으로
부터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받았다’고 답했다.
중국인 여성 D씨와 결혼한 정모(63)씨는 아내와 성관계를 시도하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너 필요 없다. 가!”라며
윽박질렀다. 엉덩이는 물론 은밀한 부위까지 수차례 때렸다.
아내가 뛰쳐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자 폭력이 되풀이됐다.
시댁 식구로부터 강간 등 극악 범죄를 당한 이주여성들도 있다.
캄보디아 출신 E씨는 남편의 형 신모(53)씨로부터 수차례 성폭행당했다.
“나는 이미 남편이 있지 않느냐”며 울며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악몽 같은 상황은 몇 년간 반복됐다.
재판부는 “외국인이라 도움을 청할 곳조차 없는 상황임을 이용해 피해자를 오랜 기간 자신의 성욕 해소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가해자 신씨는) 비난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소속 이현서 변호사는 “정부가 애초 국제결혼을 권장하기 시작한 건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면서 “이 때문에 `이주여성을 존엄한 인간이 아닌 출산의 도구 또는 노동력쯤으로 치부하며 착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독이 된 오해
이주여성들이 우리말에 서툰 건 당연하다.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이 인내심을 갖고 적응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분석 판결 40건 중 10건에서는 문화 차이와 의사소통 문제 탓에 오해가 커져 극단적 범죄까지 이어진 정황이 포착됐다.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받은 이모(68)씨가 베트남 출신 아내 F씨를 살해하려고 한 것도 말이 통하지 않았던 탓이 크다.
부부는 평소 손짓이나 전자 번역기 등을 활용해 의사소통을 했다. 소
통이 원활치 않은 상황에서 이씨는 젊은 아내의 외도를 지속적으로 의심했고, 싸우다 지친 아내가 짐을 싸 집을 나가려 하자 쇠망치로 때려 살해하려 했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 이주여성 G씨의 시아버지인 김모(84)씨는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고 적응이 느리다며 타박하는 날이 늘어 갔다.
며느리가 요리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밖에서 사다 먹게 되면서 불만은 더 커졌다.
특히 며느리가 아들과 자신의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오해했다. 아들과 크게 다툰 날 김씨는 흉기로 자는 며느리의 목을 찔러 살해했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장은 “이주여성이 한국 국적을 딴 뒤 위장이혼한다는 의심이 많은데, 대부분은 한국에서
건실한 가정을 꾸리려고 온 것”이라면서 “부부가 서로 맞춰 살면 이주여성이 굳이 이혼하거나 돌아가려 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죽음으로 치닫는 결혼
외국인 배우자를 얕잡아 보는 인식 속에 의사소통마저 어려워 오해가 쌓이다 보면 살인 범죄로 치닫기까지 한다.
판결문에 등장한 결혼 이주여성 40명 중 5명은 남편 또는 시댁 식구에 살해당했고,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살인미수 피해자들도 3명 있었다.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임모(45)씨와 결혼한 베트남 여성 H씨는 한국에 온 지 겨우 9개월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탓에 아내와 자주 다투던 임씨는 어느 날 아내가 홧김에 “이혼하자”고 말하자 방바닥에 넘어
뜨리고는 흉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재판부는 “낯선 이국땅에 오면서 믿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남편으로부터 이처럼 끔찍하게 살해당하면서
느꼈을 공포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모(60)씨는 망상 탓에 자신과 재혼한 이주여성 I씨를 살해했다.
전처가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 가려 했다고 오해했고, 새 아내도 헤어지면 자신에게 해를 입힐 것으로 생각했다.
망상의 정도가 심해지자 I씨는 남편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수차례 권했다. 하지만 화만 키웠다.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겠다”고 강하게 말하자 남편 이씨는 흉기로 아내를 찔렀다.
재판부는 “남편이 가졌던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 멸시, 혐오감정 등이 작용해 범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5~2019월 7월)간 다문화가정의 가정폭력 검거 건수는 4529건에 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언어적 어려움 때문에 신고를 제대로 못 하는 이주여성 특성상 숨은 범죄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드문 경우지만 지속적으로 학대받던 이주여성이 가해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베트남 이주여성 J씨는 한국인 남성과 21살에 결혼해 딸을 낳고 시숙, 조카 2명과 함께 살았다.
그는 가족 부양을 모두 자신이 떠맡은 상황에서 시어머니가 자주 고성을 지르며 구박하자 지쳐 갔다.
베트남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가지 못했고, 설상가상 둘째마저 유산했지만 아무도 돌봐 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친정에 연락하는 것조차 막았다.
스트레스가 지속되자 시어머니 밥에 독극물을 타 죽이는 꿈을 꿨고 현실에서 실행했다.
이를 눈치챈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경찰에 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던 이 사건에서 국민배심원들은 “이주여성이 언어 장벽에서 오는 반복적 오해와 힘겨운
시집살이로 인해 피해자와 갈등을 겪던 중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을 내렸다.
최 부연구원은 “서로 전혀 알지 못한 채 바로 결혼한 중개 국제결혼의 특성은 부부 갈등 요인을 강화한다”면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촘촘한 네트워크나 외부와의 교류가 있다면 이런 상황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국가인권위원회가 베트남 여성 체류와 관련된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뉴스1]](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7/12/6eff21b3-b7bf-4f43-b5b1-e2733110380d.jpg)
국가인권위원회가 베트남 여성 체류와 관련된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뉴스1]
폭력·차별 못 견뎌 이혼하는 데 11년… ‘코리안웨딩’ 끝은 다시 가난
베트남 현지서 본 ‘결혼 이주민 수난사’
1980년대 후반 우리 정부가 농촌의 인구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장려하기 시작한 이후 베트남은 가장 적극적인 상대국이었다.
결혼을 통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인구는 2000년 이후 모두 10만여명. 껀터, 하이퐁 등 주로 가난한 농촌 및 도시
외곽의 어린 여성들이 왔다. 이후 30여년간 많은 이주여성이 ‘코리안드림’을 이뤘지만 적지 않은 여성에겐 악몽으로
끝났다.
남편과 시댁의 홀대와 차별, 학대 등을 견디다 못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빈곤과 사회적
낙인이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되풀이되는 이주여성 수난사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신문은 결혼 이주여성들이 결혼 전후 겪은 속 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베트남에서 이주혼이 가장 활발한 메콩델타 지역을 찾았다.
결혼 피해 여성 4명과 가족을 한국인과 결혼시킨 당사자 13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사진은 껀터 시내 안빙 시장에서 일하던 한 현지 여성이 껀터 강에서 식탁보를 빠는 모습.
껀터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가난 싫어 택한 황금빛 ‘코리안 웨딩’
“따님이 국제결혼해 한국으로 갔다고 들었는데, 맞나요?”(기자)
“아니, 우리 집 딸들은 둘 다 대만으로 갔고 한국은 저기 건너편 집에 가 봐요.”(베트남 껀터 주민)
지난달 13일 베트남 남부 껀터시의 화디엔 마을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은 기자가 국제결혼 여부를 묻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동네에서 국제결혼은 흔한 일이다. 도심에서 차로 달려 50여분 떨어진 곳, 흙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 마을이었다.
결혼이주민 자녀가 있는 가족을 수소문하니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딸을 타국에 시집보냈다고 했다.
껀터 인구는 이 나라 전체의 2.5%(112만명)에 불과하지만, 베트남 결혼이민자 가운데 6분의1이 껀터 출신이다.
이곳에 국제결혼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20여년 전이다.
브로커들이 알음알음 들어와 한국이 ‘잘사는 나라’라며 풍요로운 삶을 미끼로 홍보했다.
최근에는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한류 열풍이 코리안드림을 부추긴다.
껀터 안빙 시장에서 만난 응웬쭝응히아(60)는 “10년 전 국제결혼을 해 떠났던 동네 사람이 한국에서 돌아와 2층짜리
집을 짓는 걸 보고 환상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응히아의 가까운 친척 중 5명이 한국, 대만 등으로 떠났다.
그는 “조카 한 명이 한국에 잘 정착해 최근에 자기 엄마를 한국으로 모셔 갔다”며 흐뭇해했다.
이 마을에는 이따금 결혼 중개업자가 찾아와 ‘영업’을 한다.
이들의 설명을 듣고 국제결혼을 결심하면 혼인 계약은 초고속으로 성사된다.
지난해 유엔인권정책센터 껀터사무소에서 결혼이민예정 현지사전교육 참가자 16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입국 전 남편을 만난 횟수는 70%가 1~2회, 21%가 3~4회라고 답했다.
배우자와의 평균 연령 차는 19.5세로 여성 23.5세, 남성 43세였다.
베트남 안에서도 한국으로의 이주결혼이 가장 활발한 껀터시의 화디엔 마을.
껀터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이곳 사람들에게 중개 국제결혼은 꼭 딸을 팔아 돈을 버는 행위는 아니다.
국제결혼 때 남성 측이 여성의 가족에게 100만~300만원을 건네기도 하지만 현지인들끼리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 쪽에 주는 결혼지참금과 비교해 그리 많은 돈은 아니다.
한 주민은 “브로커들이 영업할 때 가족에게 돈을 약속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받는 일은 별로 없다”면서 “가족들도 결혼이 성사되면 굳이 더 요구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여성은 가난한 친정이 마음에 걸려 남편에게
용돈을 부탁해 송금하기도 한다.
부모들이 바라는 건 돈이 아니라 딸의 ‘더 나은 삶’이다.
호티란(48)은 “일자리가 없는 껀터에서 가난을 물려받아 사는 것보다는 훨씬 잘살고 세련된 나라로 자식을 보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세 딸을 모두 국제결혼시킨 팜티프언투(61)는 2년 전 막내딸을 한국으로 보냈다.
딸은 25세, 사위는 40세였다.
“종종 들려오는 나쁜 뉴스가 있지만, 딸은 한국에 잘 정착해 종종 화상통화를 걸어온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딸을 한국으로 보냈던 동네의 한 부부는 얼마 전 한국으로 떠났다. 딸이 한국에서 자리를 잘 잡아 부모를 아예 모시기로 했단다.
그는 “그런 것까진 바라지 않고, 그저 딸이 좋은 데서 잘살았으면 한다”며 웃었다.
# 결혼이주자를 보는 복잡한 속내
주민들은 한국으로의 이주 결혼을 좋게 말했지만, 사실 그 속내는 복잡했다.
화려한 삶을 보장하는 듯한 이주 결혼이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착잡한 일도 벌어진다.
언니가 국제결혼을 했다는 응웬티란프엉(33)은 “사랑 없이 외국에 가서 결혼하는 여자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는 “결국 가난과 일자리 부족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언니는 외로움에 떨다 우울증까지 얻었다.
껀터 수상시장에서 만난 당반푹(46)은 “이곳에서 결혼해 외국으로 떠나는 많은 여성의 동기는 가난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 출발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가서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일 것”이라며 “이런 결혼 방식이
근본적으로는 잘못됐지만, 처한 환경을 고려하면 (그런 선택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했던 베트남 이주여성 가정폭력 사건은 베트남에서도 공분을 일으켰다. 발전한 도시인 다낭에서
만난 응웬쭝히은(40)은 “자기가 마음에 든다고 데려가 놓고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폭행 사건이
반복될수록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여성을 한국에 보낸 껀터 지역의 분위기는 좀 달랐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안 좋은 뉴스가 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푹은 “폭행 영상을 봤지만 잘잘못을 속단할 수 없다”면서 “남자가 나쁜 사람이라면 불운한 경우이고 어쩌면 여성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주변 사람들은 한국에서 모두 잘산다”고 덧붙였다.
쯔엉티투튀(50)는 “솔직히 자기 자식이 잘사는지 못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무시당하고 망가진 가정에서 살고 있더라도 고향의 부모에게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자식은 드물다”며 “자존심 때문에라도 숨길 것”이라고 했다.
유엔인권정책센터가 실시한 귀환여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돌아온 여성의 약 22%가 ‘가정폭력으로 결혼 생활이 끝났다’고 답했다.
# 파경 뒤 쉽지 않은 귀환, 남은 삶도 파국
끝내 한국 생활을 정리한 베트남 여성들에게는 이후에도 고된 삶이 기다린다. 지난해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이혼 건수는 1570건(한국 가정법원 통계)이었다.
지난 10년간 1만 6840쌍이 이혼했다. 파경을 맞고도 서류상 이혼을 하지 못한 이주여성도 많다.
국제결혼 때 양국에 혼인신고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혼 건수 통계도 양국이 같아야 한다.
그러나 서울신문이 결혼 이주가 가장 많은 껀터 지역의 법원으로부터 입수한 ‘국제결혼 이혼 건수’는 201건에 불과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의 국민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경우를 모두 합친 숫자인데도 한국 법원의 통계보다 훨씬 적다. 그만큼 서류상으로는 아직 이혼하지 못한 여성이 많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법원 관계자는 “과거에 비하면 최근 이혼율이 매우 늘어난 것”이라고 전했다.
껀터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귀환여성 응웬티지엠(38·가명)은 17살 차이가 나는 남성과 결혼했다가 2005년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류상 남편과 이혼하는 데 11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남편과 등진 상태에서 이혼 방법을 알려 줄 사람도, 한국에서 서류를 떼다 줄 사람도 없었다. 처리할 방도를 몰라
정리하지 못한 채 살다가 2016년에야 유엔인권정책센터 껀터사무소의 도움으로 이혼 절차를 밟았다.
중개 결혼 피해자 보띠링(31·가명)은 이혼까지 4년이 걸렸다. 링은 “2013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한 번도 한국에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결혼 비자를 준비하던 중 베트남 주재 한국영사관으로부터 “남편의 소득이 기준에 못 미쳐 비자를 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갈 수도 없는 한국에서 이미 링은 서류상 결혼한 여자였다.
‘법적 남편’과의 연락도 끊겼다. 2016년부터는 비자 취득을 포기하고 이혼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일방 이혼은
허가되지 않았다. 남편의 정확한 주소, 바뀐 연락처도 없는 상태에서 이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조사 결과 혼인 관계가 깨진 귀환여성 가운데 3분의1(30.1%)은 여전히 법적 혼인 상태였다.
28%만이 양국에서 법적 이혼을 끝냈고, 24.7%는 한국에서만 이혼했다. 껀터법원 당판흥 최고재판관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귀환여성들은 남편과의 연락 두절, 서류 미흡 등으로 이혼 절차에 어려움을 겪는 등 이곳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밝혔다.
급기야 껀터법원은 이혼을 원하는 여성이 베트남 국영 국제방송에 이혼 의사를 밝히는 자막 광고를 낸 후 3개월 내
연락이 없으면 남편 없이 이혼 궐석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광고 비용은 법원이 부담한다.
이주 결혼 경험자들은 괴로운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면 다시 빈곤에 내던져진다. 귀환여성 가운데 고향에 그대로 거주
하는 인원은 절반에 불과했다. 36%는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 내 타지로 이동했고, 11%는 외국으로 다시 이주 노동을
떠났다.
귀환여성의 44.1%는 수입이 10만원 미만, 32.8%는 10만~20만원 수준이었다. 20만~35만원 미만은 15.4%였다.
껀터·허우장·다낭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주먹질한 남편의 동의가 외국인 아내 체류 연장에 왜 필요합니까
‘이주여성 정책 대안’ 전문가 제언
[
국내 결혼 이민자는 문화·언어적 장벽에서 비롯된 차별과 혐오, 가정폭력, 불안정한 체류 자격 탓에 고통받는다.
서울신문은 이주여성을 사회 구성원으로 포용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분야별로 살펴봤다.
활동가, 변호사, 연구자 등 이주여성 관련 전문가 8명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생활 정착 지원
여성가족부는 이미 통·번역 지원 서비스, 한국어·한국사회 적응교육, 부모 교육 등 각종 지원 서비스를 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결혼 이주민들이 무슨 지원책이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7월 이주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유아 보육료 지원 외 다른
서비스를 아는 비율은 46%뿐이었다.
정책을 잘 알리기만 해도 결혼 이민자의 어려움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문화가족지원법의 적용 대상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인 배우자가 있어야 지원 대상이 되는 현행 제도를 한국인 배우자가 없어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외국인끼리 꾸린 가정이나 이혼 가정, 한국인 배우자가 사망한 가정 등 전체 이주 가정이 지원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내국인이 역차별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가정 폭력 등 인권침해
‘매 맞는’ 외국인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 도입에는 별다른 반대 여론이 없다. 지난 7월 전남 영암에서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져 사회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
왕지연 이주여성연합회장은 “폭행당한 피해자가 몸을 숨기는 쉼터 등을 늘리는 것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
폭행 발생 때 가해자 분리 등 강력한 보호방안을 만드는 게 근본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중개업소 등을 통해 외국인 아내를 만난 한국인 배우자에게 인식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소속 이현서 변호사는 “노동 착취나 임신 강요 등의 문제로 갈등하다가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상황으로 번지는 사례가 많다”며 “‘외국인 아내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일부 남편들의 가치관을 바꿀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혜실 이주민방송 대표도 “이주여성을 한국사회에 동화시키려고만 하지 말고 다른 문화를 인정하며 포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출입국 및 체류자격
이주여성이 한국인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체류자격 제도도 손볼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1년 “이주여성이 국내 체류 연장을 허가받을 때 한국인 배우자가 신원보증서를 제출하도록 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이후 신원보증서 제출 규정은 삭제됐다. 하지만 허오영숙 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체류연장 또는 영주권 신청을 하려면 혼인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내야 하는데 배우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다”며 “한국인 배우자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결혼 생활이 끝나더라도 체류자격을 인정하는 요건인 귀책사유 기준은 조만간 완화될 전망이다. 대법원이 지난
7월 외국인 배우자에게 혼인 파탄에 이르게 된 일부 책임이 있더라도 결혼이민 체류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파탄의 책임이 전적으로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어야 체류자격이 인정됐다.
#국제결혼 중개업 관리
국제결혼 중개업은 농어촌 사회의 인구 감소 문제의 해결책으로 활용돼 왔다. 이 때문에 이주여성을 출산이나 일을
거드는 도구 정도로 치부하는 시선이 있다.
특히 여성을 상품처럼 취급하며 홍보하는 일부 중개업체들의 영업 행태는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결혼 중개업 관리법에 따르면 중개업체는 거짓 또는 과장 광고, 차별이나 편견 조장 우려가 있는 내용, 인신매매와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내용의 광고를 1년 이내 영업정지나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중개업체가 운영하는 유튜브나 홈페이지를 모니터링해 단속하면 권고나 영업정지, 폐쇄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당장 실현 가능성은 작지만 중개업 자체를 금지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정미 강원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는
“우리나라 국제결혼 중개업은 규제 수준이 매우 낮다”며 “대만에서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상업적 목적의 중개업을 금지하고, 공공기관에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도움 주신 분들 김재련(변호사), 왕지연(이주여성연합회장), 이현서(변호사·이주민공익지원센터), 임선영(국가인권위원회 이주인권팀장), 정혜실(이주민방송 대표), 최윤정(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허오영숙(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 황정미(강원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출처: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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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경찰이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 자녀를 지원하기 위한
치안 활동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주노동자 발목 잡는 고용허가제, 폐지가 답이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 ①] 안전보건 영역에서 배제되는 이주노동자 실태와 문제점
이주노동자 산재통계의 현실
2018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5월까지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3만 3708명으로 이 중 511명이 사망했다.
산재보험에 가입된 이주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1.16%로 정주 노동자(0.18%)의 6.4배에 이르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다. 또한 전체 산업재해율은 2012년 0.59%에서 2016년 0.49%로 낮아졌지만, 같은 기간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6.9%에서 7.4%로 오히려 증가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통계조차 정확치 않으며 현실을 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서 2017년 12월 이주노동자 2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산업재해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정보 부족', '사업주의 비협조', '보험처리 과정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산재보험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했다.
산재보상보험법 제외업종에 많이 종사하는 이주노동자
산재보상보험법의 대상자가 아닌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아예 통계에서 제외되고 있다.
'특히 위험한 일터'로 꼽히는 어업에도 1만 6천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종사하고 있으나 이들의 현실 또한 잡히지 않는다. 20t 이상의 연근해 어선과 원양 어선 선원취업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선원법'의 적용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발표한 <어업 안전재해 감소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산업별 재해율은
어업이 5.56%로 농업 0.9%, 제조업 0.58%, 운수·창고업 0.46%와 비교해 최대 12배까지 위험하다.
부족한 어업 인력을 이주노동자로 대체하고 있는 현실에서 재해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1년 228건에서 2015년에는 336건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재해율은 5%에서 9%로 높아진 상황이다.
특히 국내에서 일하는 어업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40세 미만으로, 언어 소통의 어려움에다 숙련도가 낮은 상태에서 위험도가 높은 작업을 많이 수행하기 때문에 더 많이 재해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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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 폐지가 답이다
열악한 이주노동의 현실 타개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이주노조와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는 대표적인 이주노동자 국내 유입제도인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점이 제기되자 그 대안으로 마련됐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허가하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
사업주에게 귀책사유가 있을 때는 이직이 가능하지만 이 또한 이주노동자가 사유를 입증해야만 한다.
'고용허가제'로 인해 아프거나 다쳤을 때 치료받기를 요구하거나, 산재신청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협박을 당한다. '더 일할 수 있도록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겠다'며 침묵을 강요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 국제사회에서도 '고용허가제'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을 권고하고
안전은 권리다
2019년 2월 정부는 산재예방 캠페인의 슬로건을 '안전은 권리입니다'로 새롭게 채택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손진우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9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이른바 '베트남 아내 폭행 영상' 중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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