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 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20.10.25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지난 2011년 7월 6일남아공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회장이 평창 유치위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뒤 자크로게 IOC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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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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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전부다'…이건희 회장의 '천재' 사랑
인재 양성에 매진…7·4제·열린 채용·성과주의 도입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바둑 1급 10명을 모아도 바둑 1단 한 명을 이길 수 없다."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의 직원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쟁의 시대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유난히도 인재 양성에 집착했다. '인재 제일'을 사훈으로 삼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뜻을 따른 것이기도 하다.
다만, 두 사람의 인재 양성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선대 회장은 좋은 사람을 뽑아 재교육하는 데 집중했고, 이 회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선대 회장은 숫자에 밝은 재무 전문가를 선호한 반면, 이 회장은 기술에 통달한 엔지니어를 높이 평가했다는 점 또한 달랐다. 이 회장이 추구한 인재상은 '천재'에 가깝다.
그는 자서전 '생각 좀 하면서 세상을 보자'에서 "미국이 소프트, 하드웨어를 다 점령하고 엄청난 돈을 버는 원동력도 따지고 보면 그 나라가 세계 각국의 두뇌들이 모인 용광로이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의 천재가 한곳에 모여서 서로 협력하고 경쟁할 수 있는 두뇌 천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바라는 '천재'는 한 가지 전문 분야에만 정통한 'I자형 인재'가 아니라 자기 전문 분야는 물론 다른 분야까지 폭넓게 아는 'T자형 인재'였다. T자형 인재를 양성하고자 이 회장은 7시에 출근하고 4시에 퇴근하는 '7·4제'를 도입했다. 업무를 일찍 마치고 자기계발을 할 시간을 준다면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 회장은 "18만명이 하루 1시간씩 출퇴근 시간을 절약해 어느 분야든지 10년만 계속하면 그 방면에 도사가 된다"며 7·4제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임직원의 반발로 10년 만에 폐지됐다. 인재를 선발할 때 성별, 학벌, 학력을 따지지 않는다는 게 이 회장의 철학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성(性)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학력, 학벌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단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그런 연후에 경쟁에서 뒤떨어진다면 그것은 본인이 책임질 문제이지만, 성별·학력·학벌에 따라 미리 차별을 둔다면 그 사람의 숨은 능력을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묻어버리는 꼴이다." 그렇게 삼성그룹은 1995년 7월 국내 기업 최초로 '열린 채용'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인재 양성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 회장은 취임 후 새로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속속 도입했다. 1991년 지역전문가제도, 1993년 21세기 CEO과정과 21세기 리더양성과정, 1994년 테크노-MBA, 1995년 소시오-MBA, 1996년 삼성경영기술대학 등이 대표적이다.
2003년 삼성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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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3대 교육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SVP(Samsung Shared Value Program), SLP(Samsung Business Leader Program), SGP(Samsung Global Talent Program)도 이 회장이 도입을 결정했다. SVP는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삼성의 경영철학과 핵심가치를 전파하는 교육으로,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열리는 '신입사원 입문교육'과 매년 여름 개최하는 '하계수련회'가 여기에 속한다.
SLP는 우수한 평가를 받은 관리자급 직원을 외국 명문대학이나 국내 주요 경영대학원에 2년간 파견하는 프로그램이다. 임원이 될 부장을 선발해 5개월간 역량을 계발하는 '임원양성 프로그램'도 여기에 해당한다. SGP는 임직원이 외국에서도 무리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외국어와 매너 등을 가르치는 교육 제도이다. 1년간 외국에서 생활하며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모든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지역전문가제도'가 있다.
성과주의 또한 이 회장의 작품이다. 2002년 6월. 이 회장은 긴급 소집한 'S급 핵심인력 확보·양성 사장단 회의'에서 S급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S급 인재 10명을 확보하면 회사 1개보다 낫다.
그런 S급 인재는 사장이 직접 발로 뛰어다녀도 찾을까 말까다. S급은 찾는 데만 2∼3년이 걸리고 데려오려면 1∼2년이 더 걸린다. 업무 절반 이상을 S급, A급 인재를 뽑는 데 할애하라. 이게 안 되면 일류 기업은 불가능하다." 이 회장은 이날 사장단 인사평가 점수가 100점 만점이라면 그 가운데 30점을 핵심 인력을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두겠다고 선포했다.
이 회장의 뜻에 따라 삼성그룹은 핵심 인재를 S급(Super), A급(Ace), H급(High Potential)으로 구별, 같은 직급일지라도 연봉이 4배까지 차이가 나도록 하고 있다. S급은 계열사 사장 연봉과 맞먹는 인재로 최소 상무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A급은 외국 박사 출신이나 수재급 인재로 특정 분야에 뛰어난 경우에 해당한다. H급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실무급 인재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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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7월 6일 남아공 더반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인사하는 이건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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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7월 7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발표를 듣는 이건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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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의 눈물 2011년 7월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올림픽 위원회(IOC) 총회에서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가 확정되자 이건희 회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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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생전에 흘렸던 두 번의 눈물…재판과 평창
비자금 재판 받다 "1위는 정말 어렵다" 말뒤 눈물 평창올림픽 유치 성공한 뒤 눈물 흘리는 모습 포착
(서울=연합뉴스) 김영신 기자 = 25일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생전에 강인하기로 유명했지만 공개석상에서 두차례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2008년 조준웅 삼성 특별검사팀으로부터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기소됐다. 그해 7월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여섯번째 재판에서 판사는 이 회장에게 '계열사 중 특별히 중요한 회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 회장은 "전자와 생명"이라고 답했다. 이어 "삼성전자[005930]에서 나오는 제품 중 11개가 세계 1위인데 1위는 정말 어렵다. 그런 회사를 만들려면 10년, 20년 갖고는 안된다"고 말을 이어가다 목이 메었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당시 이 회장은 퇴진해 삼성전자 대표이사직도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 회장은 이듬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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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편법승계 문제, 검사 '떡값' 제공 의혹, 비자금 사건 등으로 이 회장과 삼성은 세간의 부정적 평가에 시달렸다.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공도 컸지만 이면이 비판받았다. 회장직을 내놓은 이 회장에게 사회에 공헌할 기회는 평창올림픽과 함께 찾아왔다.
2018년에 열릴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대해 이 부회장에게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온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를 두차례 실패한 후였다. 이 회장은 10년 넘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맡았고 평소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 동호인으로서 세계 체육계에 영향력이 있었다.
이에 따라 재계와 체육계에서 이 회장의 도움을 받자는 제안이 나왔고, 정부도 이를 수용해 2009년 12월 이 회장을 단독 사면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발표 듣는 이건희 회장 (서울=연합뉴스) 사진은 2011년 7월 7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발표를 듣는 이건희 회장.
2020.10.25 [삼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막중한 부담을 안은 이 회장은 동계올림픽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2010년 2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참석을 시작으로 이후 1년 반 동안 11차례에 걸쳐 170일 간 해외 출장을 다녔다. IOC 위원 110명을 거의 전부 만나는 강행군이었다. 총 이동거리는 21만㎞로 지구를 다섯 바퀴 넘게 돈 셈이었다.
2011년 7월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외치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요란한 분위기 속에서 이 회장이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남아공에서 귀국하는 이 회장에게 기자들이 심경을 묻자 이 회장은 "지금은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며 그동안 받았던 심적 압박을 털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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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 향하는 이재용 부회장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0.10.25 kane@yna.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철선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차려지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도착했다. 이 부회장은 25일 오후 4시 57분께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두 자녀와 함께 도착했다.
이 부회장과 두 자녀는 모두 흰색 마스크를 쓰고 검정 정장을 입었다. 이 부회장은 굳은 표정을 한 채로 아무 말 없이 취재진 앞을 지났다. 이들은 장례식장 로비에서 전자출입명부를 작성하고 빈소가 차려질 예정인 장례식장 지하로 향했다.
이 부회장 외 다른 가족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가(家)에서도 장례식장을 방문해 조문했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은 빈소를 방문해 이 회장에 대해 "큰 거목이셨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도 함께 방문해 애도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재현 CJ 회장도 가족과 함께 조문했다. 이 회장은 "국가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분"이라면서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을 위로했다.
장례식장에는 박병석 국회의장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화 김승연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가 도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빈소에 조화를 보내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내 유족들에게 이 회장 별세에 대한 구두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빈소 향하는 이재용 부회장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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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이날 이 회장이 생전 치료를 받던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은 평소 주말과 달리 인파로 북적였다.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오전부터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취재진이 모여들기 시작해 약 수십명이 장례식장 출입문 주위에 대기했다.
장례식장 출입문에는 방문객 안전 등을 고려해 포토라인이 설치됐고, 포토라인을 둘러싸고 방송 장비와 사진기자들이 대기했다. 장례식장은 고인의 빈소가 설치되면 조문객을 위해 장례식장 게시판이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빈소 위치를 알리지만, 이 회장의 빈소 관련 정보는 아직 게시되지 않은 상태다. 검정 양복을 입고 장례식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일부 삼성그룹 임직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르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오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고 알렸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취재진이 몰리자 출입문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장례식장에) 실내 50인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빈소가 마련된 지하 2층에 기자들의 출입이 제한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부착했다.
이건희 회장 빈소 입구 코로나19 출입제한 안내문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병원 관계자 들이 출입제한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 2020.10.25 yato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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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시대…사법리스크 등 난관 많아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 본격화…지배구조 재편 기능성도
'뉴 삼성'으로 돌파구 모색 전망…조만간 '회장' 타이틀도 달 듯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별세로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와병으로 인해 사실상 그룹의 총수 역할을 해왔던 만큼 삼성의 미래는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 중심으로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법리스크부터 글로벌 복합 위기까지 이 부회장 앞에 놓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빈소 향하는 이재용 부회장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0.10.25 kane@yna.co.kr
◇ 국정농단 등 사법리스크 지속…지배구조 재편 가능성도 부담
일단 사법리스크가 크다. 이 부회장은 현재 국정 농단 파기환송심과 불법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이 동시에 진행중이다. 법조계는 경영권 승계 재판은 내년 이후 천천히 진행될 가능성이 크지만, 파기환송심은 다음 달부터 재판이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
당장 26일에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공판준비기일이 열린다. 준비기일에는 피고인 참석 의무가 없는 데다 상중에 있어 이재용 부회장은 불참할 예정이지만 이 재판은 이르면 연내 선고가 이뤄질 정도로 속도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건희 회장 별세로 공식적으로 삼성의 미래를 짊어지게 된 이재용 부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게 된다면 경영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 부회장은 올해 5월에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 거듭나겠다는 미래 비전을 공개했다.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단도 내놨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잇단 재판으로 인해 당분간 법정 출두가 불가피하고, 재판 결과에 따라 삼성의 신인도 하락과 경영 차질을 각오해야 한다. 지배구조 재편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6년 5개월의 시간동안 지배구조를 단순화해왔다.
삼성물산[028260]을 정점으로 사실상 경영권 승계 구도가 짜진 만큼 당장 지배구조 체제에는 변화가 없을 것 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부친이 별세한 만큼 만약 이부진, 이서현 등 동생들과 계열 분리 문제가 불거질 경우 삼성은 또다시 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또 국회에 발의돼 있는 일명 '삼성생명법'이라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핵심 계열인 삼성전자[005930]의 지배구조에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깃발 펄럭이는 삼성 서초사옥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2020.10.25 hihong@yna.co.kr
◇ 글로벌 복합위기 극복도 과제…'뉴삼성' 박차 가할 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미중 분쟁을 비롯한 복합위기도 글로벌 기업인 삼성을 짓누르고 있다. 미중 분쟁의 핵심이 반도체, 휴대폰 등 IT분야에 집중되면서 삼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형국이다.
사업의 핵심인 반도체에서 메모리 부문 세계 2위였던 SK하이닉스[000660]가 인텔 낸드 사업 부문 인수해 1위 삼성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데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는 삼성을 따돌리고 점유율 격차를 더 벌려가고 있다. 2030년 반도체 전 부문에서 1위 자리에 오르겠다는 '비전 2030' 달성을 위해 메모리 뿐만 아니라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더욱 약진해야 하는 삼성 입장에서 숨 가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계는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5월 선언한 '뉴 삼성'을 통해 위기 극복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주 베트남 출장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떠한 큰 변화가 닥치더라도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대규모 '빅딜'이 일어나며 반도체 지형이 변화하고 있는 만큼 이재용 부회장이 유망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는 등 '통 큰 베팅'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차세대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공지능(AI)와 5G 사업, 이 부회장의 경영키워드인 '인재경영'도 지속할 전망이다. 핵심 인재 영입이야 말로 위기 상황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에서다.
재계에선 조만간 이건희 회장 별세로 이재용 부회장이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별도의 혁신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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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CJ그룹 회장
[사진=아이뉴스24 DB]
작은 아버지 빈소에 달려간 이재현…삼성-CJ 갈등 '끝'
이건희 회장 가족 없는 빈소서 1시간 기다려… 두 그룹 화해 분위기 무르익어
[아이뉴스24 장유미, 서민지 기자] "가족이니까 당연히 먼저 챙겨야죠."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5일 오전 작은 아버지인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접하자 마자 부인인 김희재 여사와 자녀 이경후 CJ ENM상무, 이선호 CJ부장 내외 등과 함께 빈소도 제대로 차려지지 않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몸이 불편한 탓에 취재진을 피해 지하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현장에 도착했을 땐 빈소도 차려지지 않고 가족들도 있지 않아 꼬박 1시간여 넘게 이건희 회장의 가족들을 기다렸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딸 이원주 양, 아들 이지호 씨와 빈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이날 오후 4시 57분께 이재용 부회장이 아들 이지호 씨, 딸 이원주 양과 함께 막 마련된 빈소로 들어서자 이재현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가장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지하 통로를 통해 도착한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과도 만나 이건희 회장을 함께 회상했다.
몸이 불편한 와중에도 20여 분간 대화를 나눈 이재현 회장은 CJ 관계자를 통해 "국가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분"이라며 "가족을 무척 사랑했고, 자랑스러운 작은 아버지"라고 말했다. 이어 "일찍 영면에 드셔 황망하고, 너무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경영 승계에 밀린 장남, '유산 분쟁'으로 갈등 키워
삼성과 CJ 한 때 경영 승계 및 유산 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형제였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삼성그룹 경영 승계를 놓고 경쟁을 벌이며 50여 년간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 창업주인 부친 이병철 회장은 첫째 아들인 이맹희 명예회장, 둘째 아들인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 대신 셋째인 이건희 회장을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 택했다. 관계가 좋지 않았던 첫째 아들, 둘째 아들과 달리 셋째 아들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해서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은 후계 수업을 받던 지난 1974년에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반도체 인수에 적극 나섰다. 또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는 결실을 맺는 등 능력을 입증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1987년 45세의 나이에 총수에 올랐음에도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며 삼성을 이끌었다"며 "혁신을 거듭한 끝에 명실공히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고 평가했다.
(왼쪽부터)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사진=각 사]
경영 승계에서 밀려난 이맹희 명예회장과 누나인 이숙희 씨 등은 지난 2012년 이 회장의 차명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하며 1조 원대 소송을 제기해 또 다른 갈등을 키웠다.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을 이 회장 명의로 실명 전환해 독식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상속 분쟁은 1·2심 모두 이건희 회장이 승소하고 이맹희 명예회장이 고심 끝에 상고를 포기하면서 마무리됐다. 이에 선대에 화해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소송 도중 형제간 화해 가능성도 엿보였지만 서로 화해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어려울 때마다 힘이 돼 줬다. 특히 지난 2014년 이재현 회장이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되자 이재용 부회장 등 범 삼성가에서 탄원서를 제출해 재계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후 지난 2018년에는 CJ그룹이 삼성맨이던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을 영입하자 재계에선 두 그룹이 관계 개선의 신호탄을 쐈다고 해석했다. 특히 박 부회장을 영입하기 전 이재현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그룹의 화해는 기정사실화됐다.
재계 관계자는 "한 때 선대 회장들의 갈등은 컸지만 이재현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3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두 그룹의 화해 분위기는 더 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 회장의 빈소에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과 정몽규 HDC 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이 외에도 현대가에서도 장례식장을 방문해 조문했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은 빈소를 방문해 이 회장에 대해 "큰 거목이셨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도 함께 방문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장례식장에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박병석 국회의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도 도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빈소에 조화를 보내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내 유족들에게 이 회장 별세에 대한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노 비서실장은 오후 7시 24분께 빈소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이 고인에 대해 어떤 얘기를 전했냐는 질문에 대해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는 짧막한 답변만 남겼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가 2010년 라스베이거스 가전전시회(CES 2010)를 찾아 참관하는 모습. 왼쪽부터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 회장,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 삼성전자 >> [연합뉴스 자료사진]
주식재산만 18조…"상속세 10조 넘어 역대최대"
연부연납 통해 5년간 나눠낼 수도"
"상속자금 어떻게 마련할지에 시장 관심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하채림 김아람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한 후 재산을 물려받을 이재용 부회장 등 상속인들이 내야 할 세금은 얼마나 될까. 이건희 회장의 자산이 천문학적인 규모인 만큼 상속세도 천문학적 규모가 예상된다. 상속세 전문 세무사들은 주식 평가액의 60%, 나머지 재산의 50%를 상속세로 내게 될 것으로 추정했다.
상속세법령에 따르면 증여액이 30억원을 넘으면 최고세율 50%가 적용되고, 고인이 최대주주 또는 그 특수관계인이라면 주식 평가액에 20% 할증이 붙는다. 극단적으로는 한 계열사의 1주만 있어도 특수관계인으로서 최대주주 할증이 적용된다. 이 회장은 현재 국내 상장사 주식 부호 1위다. 그는 수년간 병상에 누워 지내면서도 주식 부호 1위 자리를 지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회장의 보유 주식 평가액은 23일 종가 기준으로 18조2천251억원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이 회장은 ▲ 삼성전자 2억4천927만3천200주(지분율 4.18%) ▲ 삼성전자 우선주 61만9천900주(0.08%) ▲ 삼성SDS 9천701주(0.01%) ▲ 삼성물산 542만5천733주(2.88%) ▲ 삼성생명 4천151만9천180주(20.76%) 등을 보유했다.
[그래픽]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보유 주식 규모
이 회장은 이들 4개 계열사의 최대주주이거나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다. 모두 상속세법상 최대주주 할증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 4개 계열사 지분 상속에 대한 상속세 총액은 주식 평가액 18조2천억원에 20%를 할증한 다음 50% 세율을 곱한 후 자진 신고에 따른 공제 3%를 적용하면 10조6천억여원이다.
주식 평가액은 사망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의 종가 평균을 기준으로 산출하므로 실제 세액은 달라질 수 있다. 신한은행 택스컨설팅센터의 박상철 세무사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주식 상속분만 있다고 해도 역대 최고 상속세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 [국세청 제공]
부동산 등 다른 재산에 대한 세율은 50%가 적용된다. 상속인들은 상속세 총액 가운데 자신이 상속받은 비율만큼 납부하게 된다. 이 회장 상속인들의 상속세 신고·납부 기한은 내년 4월 말까지다.
상속·증여세 전문 세무사인 고경희 한국여성세무사회장(광교세무법인)는 "각종 공제가 있지만 상속 재산이 워낙 많아 큰 의미가 없다"며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한꺼번에 내기에 부담스럽다면 연부연납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부연납은 연이자 1.8%를 적용해 신고·납부 때 '6분의 1' 금액을 낸 뒤 나머지를 5년간 분할 납부하는 방식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고 구본무 회장에게 물려받은 재산에 대한 상속세 9천215억원을 이 같은 방식으로 내고 있다. 이 회장의 법정상속인은 배우자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주식평가액은 7조1천715억원이다. 이 부회장은 ▲ 삼성전자 0.7% ▲ 삼성물산 17.33% ▲ 삼성생명 0.06% ▲ 삼성SDS 9.2% ▲ 삼성화재 0.09%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 사장과 이 이사장은 각각 삼성물산 5.55%와 삼성SDS 3.9%를 보유해 평가액도 각 1조6천82억원으로 같다.
상속인들이 10조원이 넘는 상속세를 5년에 걸쳐 나눠 낸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가진 보유 현금만으로 세금을 내기는 어려울 수 있어 경영권 유지를 위해 보유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 상속 등이 정해진 바가 없어서 삼성전자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중립적인데 이 부회장이 지분을 상속받을 때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등에 시장의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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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촬영 임헌정]
상속세 10조원 이상…'부당' vs '정당' 논란
사상 최대' 올해 증권거래세도 가뿐히 넘을 듯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인들이 내야 할 상속세가 사상 최대인 10조원 이상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상속세가 상속 재산의 60%에 육박한다는 추산에 온라인에서는 상속세가 부당하다는 주장과 정당하다는 주장이 맞서며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회장의 보유 주식 평가액은 지난 23일 종가 기준으로 18조2천251억원이다. 이들 지분에 대한 상속세 총액은 주식 평가액 18조2천억원에 최대주주 할증률인 20%를 할증한 다음 50% 세율을 곱하고 자진 신고에 따른 공제 3%를 적용하면 10조6천억여원이다.
10조6천억여원은 올해 증권거래세 예상 금액인 8조8천억원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올해 증권거래세 수입은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같은 규모의 상속세는 우리나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할 수 있어 지나치게 많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 누리꾼은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에서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많은데 10조원씩 세금을 내면서 누가 기업을 운영하겠느냐"며 "지나친 상속세 과세로 기업이 해외 투기 세력에 넘어가면 손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다른 누리꾼도 "18조원 상속에 상속세가 10조원이면 실질적으로 상속받은 금액의 과반을 국가에 내라는 것"이라며 "이는 이 나라에 국적을 두고 경제활동을 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막대한 세금을 내려고 주식을 팔면 한국 기업이 눈뜨고 외국으로 넘어가는 일도 생길 텐데 과도한 상속세가 국익에 정말 실익이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국내에서 기업활동을 하며 막대한 부를 쌓은 삼성이 당연히 내야 하는 금액이라는 주장도 팽팽하게 맞섰다.
이 회장 상속인들이 낼 상속세를 두고 한 누리꾼은 "불로소득이라서 세금을 많이 떼는 것"이라며 "상속세에 발끈하는 분이 많은데 이는 어쩔 수 없는 부의 재분배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속세로 거둬들인 돈을 사회 전반의 유지와 활력을 위해 써야 한다"며 "상속세는 정당한 사회 유지를 위한 필요악"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세금은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돈을 사회 구성원에게 걷는 것이고 그 돈은 사회 유지에 쓰인다"며 "또 삼성은 국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이 들어간 기업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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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소병해, 이수빈, 현명관, 이학수, 김순택, 최지성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회장 곁을 지켰던 그림자 '비서실장 7인'
소병해에서 최지성까지…' 삼성 핵심' 비서실·구조본·전략실·미전실 수장들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비서실장, 구조조정본부장, 전략기획실장 그리고 미래전략실장. 삼성그룹 역사와 함께 이름이 바뀌어온 자리이지만, 그들의 역할은 하나였다. 바로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부터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까지 27년 동안 총 7명의 비서실장이 그의 옆자리를 지켰다. 1959년 이병철 선대 회장의 지시로 탄생한 비서실은 1998년 구조조정본부, 2006년 전략기획실, 2010년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꾸며 삼성 경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사장단 워크숍 주재하는 이건희 회장 (서울=연합뉴스) 사진은 2002년 삼성 사장단 워크숍을 주재하는 이건희 회장
. 2020.10.25 [삼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마지막 그림자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2012년 6월. 삼성전자[005930] TV와 휴대전화를 세계 1등으로 만든 최고경영자(CEO)를 미래전략실장으로 발탁하자 재계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다. 정기 인사철이 아닌데다, 재무통이나 전략통과 같은 역대 '관리형 2인자'와 달리 최 실장은 '실무형 2인자'였기 때문이다.
최 실장은 2006년 보르도 TV를 내세워 소니를 제치고 삼성을 세계 TV 시장 1위 자리에 올렸고, 2011년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애플을 추격하는 디딤돌을 만든 인물이다. 이 회장은 이런 성과를 높이 사 최 실장을 전격 기용했다는 게 당시 삼성그룹의 설명이었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계에서는 최 실장이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정교사로 불리는 만큼,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적임자를 골랐다는 분석도 나왔다. 강원도 삼척 출신의 최 실장은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와 1977년 삼성물산[028260]에 입사했다.
입사 후 4년 만에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기획팀에 합류했고,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한 직후에는 비서실 전략1팀장을 지냈다. 이후 1994년부터 삼성전자에서 반도체판매사업부장, 디스플레이 사업부장, 디자인센터장 겸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 정보통신총괄 사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10년 1월에는 삼성전자 사장 자리에 올랐고, 그해 12월에는 부회장 자리를 꿰차는 등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이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 12년 동안 동고동락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1997년 비서실장, 1998년 구조조정본부장, 2006년 전략기획실장. 이건희 회장 곁을 가장 오랜 기간 지켜온 이학수 실장의 직함은 총 3번 바뀌었다.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전략기획실이 2008년 해체되면서 이 실장은 삼성전자 고문으로 물러났다. 이후 2010년 삼성물산 건설부문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뒤 삼성을 떠났다.
재임 당시 이 실장에 대한 이 회장의 신임은 두터웠다. 이 실장은 1999년 구조조정본부장 시절 4대 그룹 계열사를 정리하는 정부 주도의 '빅딜' 과정에서 총수와 상의 없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권을 쥔 유일한 인물로 회자된다.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실장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를 삼성가의 최측근으로 꼽는다. 그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 발행한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지만, 1년 만에 사면복권된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이 실장은 부산상고와 고려대 상과를 나와 1971년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이후 제일모직에서 경리과장, 관리과장, 관리부장으로 경력을 쌓았다.1981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운영1팀장으로 발탁된 이후 비서실에서 재무팀장 역할을 하며 이사, 상무, 전무로 승진 행진을 이어갔다. 1995년에는 삼성화재[000810] 사장 직함을 거머쥐었다.
이 실장에서 최 실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는 김순택 초대 미래전략 실장이 등장한다. 그는 건강 문제로 2년 만에 미래전략실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실장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72년 제일합섬에 입사해 1978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에 발을 들였다.
이후 비서실에서 경영지도팀장, 비서팀장, 경영관리팀장, 비서실장 보좌역을 맡았다. 1999년에는 삼성SDI[006400]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0년에는 삼성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신사업추진단장을 겸임했다.
◇ 소병해·이수빈·현명관 등 역대 비서실장들
이 회장이 취임 후 처음 호흡을 맞춘 비서실장은 소병해 실장이었다. 그는 이 회장의 사람이라기보다 선대 회장의 사람이었다.1978년 비서실장을 처음 맡은 소 실장은 12년 동안 삼성그룹을 좌지우지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 회장이 취임 후 3년간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채 은둔하던 시절 삼성그룹을 실질적으로 경영한 인물이기도 하다.
선대 회장의 삼년상을 마친 1990년 12월 이 회장은 소 실장을 경질하고 그 자리에 이수완 비서실장을 앉혔다. 하지만, 이 실장도 한 달 만에 쫓아냈다.
이 회장은 선대 회장 시절 비서실에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됐다고 판단해 긴장감을 조성할 목적으로 이런 조치를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후 바통을 넘겨받은 사람은 이수빈 비서실장이다. 그는 이 회장을 3년 동안 보필했다.
이수빈 전 삼성생명 회장
[삼성생명 제공,
이 실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질 경영'을 내세운 이 회장에게 '질 경영도 좋지만, 양도 중요하다'고 반기를 들었다가 그해 10월 비서실을 떠났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이 실장을 완전히 내치지는 않았다. 그는 2002∼2019년 삼성생명보험 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삼성경제연구소 회장을 맡고 있다.
이수빈 실장이 떠난 자리에는 감사원 출신인 현명관 비서실장을 깜짝 등용했다. 삼성 공채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큰 화제가 됐다.
현 실장은 삼성그룹 내 뿌리가 없어 이건희 회장의 요구대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강도 높은 개혁을 해나갈 수 있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현 실장은 삼성을 떠난 뒤에는 2013∼2016년 한국마사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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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삼성 이건희 회장 별세와 이재용의 '초일류 기업' 삼성 만들기
李 부회장, 지난 5월 재판 앞두고 대국민 사과... 삼성을 누가 맡아도 흔들리지 않는 대기업으로 키워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 지난 2011년 7월 7일 낮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자크로게 IOC 위원장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호명하는 순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의 눈물 속엔 만감이 교차했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단독 사면을 받은 후 1년6개월여의 동안 온국민의 염원을 안은 채 지구 다섯바퀴를 돌면서 100여명의 IOC 위원을 찾아 평창 지지를 호소했던 이 회장이 임수를 완수한 후의 안도와 회한이 녹아났다. 이것은 이 회장이 일생동안 흘린 두 번 째 눈물이라고 한다.
# 앞서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이끄는 동안 공식 석상에서 흘린 첫번째 눈물은 지난 2008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경영퇴진을 발표하던 순간이었다.
삼성그룹 오너인 이건희 회장이 노구를 힘겹게 이끌면서 느린 걸음으로 회의실에 들어섰다. 이 회장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얼굴은 창백했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습니다”라고 경영퇴진을 선언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 회장의 경영퇴진 선언에 재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 회장은 이어 “삼성가족 여러분 20년 전 저는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면서 눈가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재계는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첫번째 눈물은 ‘통한’이었고, 2011년 두번째 눈물은 ‘기쁨’의 눈물로 각각 해석한다. 첫 번 째 눈물을 흘리면서 떠났던 이 회장이 돌아와 흘린 ‘더반의 눈물’ 이후 한국은 2018년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25일 타계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내성적인 성격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은든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승부사' 기질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났다. 27년 전 '신경영 선언'은 지금의 초일류 삼성을 만든 기틀로 꼽힌다.
이 회장의 '신경영' 배경에는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다른 반성이 있었다. 당시 삼성은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다.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한 나머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은 소홀히 한 것이다. 일부 선진국에선 '싸구려'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이에 그는 "단 한 개의 불량제품을 만드는 것도 회사를 좀먹는 암적 존재이자 경영의 범죄행위"라며 양이 아닌 질 위주로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지시했다. 이후 그의 집념과 열성으로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다.
이건희 회장이 이끈 27년간 시가총액 350배 증가...韓 전체 수출액 중 삼성 비중은 28.2%로 배 이상 늘어나
삼성은 올해로 창사 82주년을 맞았다. 고 이병철 창업 회장이 1938년 3월22일 삼성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설립한 뒤 1950년대 소비재 수입에서 전자·석유화학·조선·첨단기술·정보통신 산업으로 외연을 키우며 ‘한국 대표 브랜드’라는 성장사를 썼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을 이끈 27년간 시가총액은 350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9천억 원이던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이 회장이 쓰러지기 직전해인 2014년에 318조7천634억 원을 기록, 348배로 증가했다.
매출 역시 9조9천억 원에서 338조6천억 원으로 34배로 많아졌다. 자산은 8조 원에서 575조1천억 원으로 70배 넘게 늘어나 명실상부한 재계 1위를 차지했다.
임직원 규모도 10만여 명에서 국내외 총합 42만 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수출 규모는 63억 달러에서 1천567억 달러(2012년 기준)로 25배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가운데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13.3%에서 28.2%로 배 이상 늘어났다.
삼성그룹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높아졌다.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2013년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삼성그룹은 8위에 올랐다. 이 회장 취임 후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배출한 역대 '월드 베스트' 제품은 총 9개다.
하지만 ‘이건희 일가’를 정점으로 지배구조를 세습해온 삼성 성장의 그늘에는 ‘경영권 불법 승계’라는 문제가 늘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벌가의 경영권 세습이 삼성그룹 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가 승계작업은 이제 20년도 더 된 일이다.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집에서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누워있는 시기에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은 부정한 청탁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이 특검 조사에서 드러났다.
그는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을 주도한 혐의로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이 회장의 마지막 과업인 ‘3세 승계’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이다.
검찰은 또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을 통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1년9개월에 걸쳐 수사한 끝에 지난 9월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이 부회장이 승계 작업에 도움을 받으려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건넨 뇌물 사건에서 파생됐다. 박영수 특별검사 때(2016년 12월)부터 3년9개월간 이어져 온 수사의 마무리 단계인 셈이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 앞두고 지난 5월 자녀들에게 경영권 승계 않겠다고 다짐...국내 10대 그룹 중 첫 사례
여기서 주목되는 대목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밝힌 삼성의 경영권 세습 중단 발표다. 그는 지난 5월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어 편법과 불법을 오간 경영권 승계와 노조 탄압 논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과문 내용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이것은 10대 그룹 중에서는 첫 사례다.
우리나라는 재벌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가 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삼성은 특히 이병철 창업 회장부터 그리고 이건희 회장,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으로 내려오는 3대까지는 엄연한 세습경영제체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금 슬하에 20대 아들과 10대 딸을 한명씩 두고 있다.
이들 2명한테 경영권 세습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녀들한테 경영권을 세습해도 합법적으로만 한다면 아무런 법률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사회에서 그 자녀의 경영 능력이 인정이 된다면 적법한 증여, 상속을 통해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에는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다 물려받지도 않은 상태다. 지금 3세 경영이 완전히 이루어지지도 않은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개인자산만 하더라도 20조 원이 넘는다. 우리나라는 30억 원이 넘을 경우 상속 증여세는 50%를 내야 한다. 삼성은 앞으로 거의 10조 원 가까운 천문학적인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한다. 돈도 좋고 권력도 좋지만 이것들은 유한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으며, 흥성한 사람은 반드시 쇠퇴하기 마련(生者必滅. 盛者必衰)’이다. 세상 이치가 모두 그렇다.
남자는 평생토록 살아가면서 세 번의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태어나면서, 부모님을 잃었을 때, 그리고 나머지 한번은 분명하지 않은 빈자리라고 한다. 이재용 부회장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임종하면서 아마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 앞에 남은 과제는 아버지 장례 후 삼성의 승계작업을 마무리하고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완성하는 일이다. 아울러 그가 약속한 세습경영을 끊고 삼성을 누가 맡아도 흔들리지 않는 대기업으로 키우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삼성이 항상 사법처리 선상에 오른 것은 경영권 승계의 불법-탈법-변칙성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지난 5월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약속한 세습경영 차단이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 많은 국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