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로이터=뉴스핌] 이홍규 기자 = 미국 뉴욕 시 맨해튼 그랜드센트럴 터미널 인근의 가로등에 달린 미국 성조기가 눈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2020.12.16 bernard0202@newspim.com bernard0202@newspim.com
ⓒAP 연합·UPI 연합
허니문 대신 ‘트럼프 탄핵’ 폭탄 안고 출발한 바이든
민주주의 뒤흔든 트럼프의 비참한 말로
2021년 1월 미국의 심장인 워싱턴DC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월20일(이하 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1만5000명의 군인이 백악관과 연방의회 의사당을 에워싸고 있다.
지난 1월6일 의회 난입 사태를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폭력시위를 예고하면서다. 미 당국은 기습 시위와 테러,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영화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민주주의의 본토라 불리는 미국에서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는 축제여야 할 취임식이 테러 위협으로 얼룩진 것이다.
정권 교체를 이뤘다는 기쁨의 시간은 잠시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초기부터 골머리를 앓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숙제를 풀지 못한 채 임기를 시작하게 됐기 때문이다 . 미 하원에서 1월13일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상원에서도 탄핵안이 통과돼야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이 최종 확정된다. 바이든 당선인으로서는 취임 초반기 ‘허니문’이 탄핵 정국의 ‘블랙홀’에 묻혀버린 셈이다.
전쟁터 방불케 한 워싱턴DC, 취임식도 ‘흔들’
바이든 당선인 측은 초긴장 상태다. 탄핵 위기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 측의 분위기 못지않다. 바이든 측은 코로나19 우려로 이미 취임식 규모를 200분의 1로 줄인 바 있다. 기존 20만 명이었던 초청 인원을 1000명대로 대폭 축소했다.
취임식과 함께 열렸던 각종 행사도 대거 취소하거나 화상 방식으로 전환했다. 여기에 폭력 사태 우려까지 겹치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시작부터 인상을 찌푸리게 됐다. 바이든 당선인은 일단 인원이나 일정 변경 없이 그대로 취임식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장소는 전통적으로 대통령 취임식이 열려온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앞 계단이다. 의회 소요 사태가 일어난 지 2주 만에 정확히 같은 곳에서 취임식이 열리는 것이다. 트럼프 진영의 선동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강인한 모습과 화합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취임식을 예정대로 열 것으로 풀이된다.
핵심 정책들을 추진해야 할 취임 초기에 탄핵 정국에 휘말리면서 이슈를 빼앗긴 상태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코로나19 대응과 경제 회복의 고삐를 쥐겠다고 공언한 바이든 당선인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당장 바이든 당선인은 장관 지명자 등에 대한 의회 인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 정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공전을 거듭하고 있어, 인사청문 절차도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정 운영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추락한 미국의 위상을 회복하고, 극에 달한 미국 내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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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최고 위협” 트럼프 지우기 대작전
바이든 행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 절차에 박차를 가했다. 민주당은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지 이틀 만에 표결을 진행해 통과시켰다. 1월13일 하원에서 가결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안은 찬성 232명, 반대 197명의 과반 찬성으로 통과됐다
. 민주당 의원 222명은 전원 찬성표를 던졌다. 공화당에서는 197명 중 10명이 탄핵소추에 찬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단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하원은 소추안에서 지난 1월6일 의회 난동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내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난입 사태 직전 시위대를 상대로 한 연설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맹렬히 싸우지 않으면 더는 나라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선동해 군중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위대는 의회에 불법 침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당시 의회 안에 있던 당국자와 의원들, 경찰 등에게 위해를 가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하원에서 가결된 후 “오늘 하원은 초당적 방식으로 누구도, 미국의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는 우리나라에 분명하고도 현존하는 위협”이라면서 “나는 슬프고 비통한 마음으로 서명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최대한 빨리 상원으로의 송부를 끝내겠다는 입장이다. 단 바이든 행정부가 국정 운영의 기틀을 다질 시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국정 운영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정권 초기에 탄핵을 둘러싼 정치 공방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 뒤에 탄핵안을 상원에 송부하는 방안이다.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인 제임스 클라이번 의원은 “바이든 당선인에게 그의 의제들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100일을 주자”며 “그 뒤에 탄핵소추안을 상원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권력 이양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 전에 상원이 결론을 낼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1월13일 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서명하고 난 뒤 이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 연합
칼자루 잡은 공화당의 복잡한 속내
트럼프 대통령을 태운 탄핵 열차의 최종 관문은 상원에서의 심판이다. 그중에서도 공화당 의원들의 표심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려면 100석 가운데 3분의 2 이상인 67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상원 의석은 민주당과 공화당 각각 50석 동수다. 공화당에서 17명 이상의 이탈표가 나오면 탄핵안이 가결되는 상황이다.
키를 쥔 공화당의 분위기는 복잡미묘하다. 유례없는 선거 불복으로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의회 난입 사태까지 촉발한 트럼프 대통령을 안고 가느냐, 하루빨리 ‘손절’하느냐를 두고 양론이 충돌하면서다. 두 선택 모두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공화당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자니 공화당 적극 지지자들의 반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7400만 표(47%)를 득표하며 역대 공화당 대선후보 중 최다 득표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권위가 추락했다고 하나, 다음 선거에서 그가 미칠 영향력을 배제할 순 없는 실정이다.
다만 미국 내 여론이 이미 트럼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만큼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마냥 감싸주진 못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ABC와 입소스가 지난 1월8~9일 미국인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 전에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이 56%로 나타났다.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에 상·하원 과반의석을 모두 빼앗겨 체면을 구긴 공화당으로서는 출구전략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의식한 공화당 지도부는 당초 탄핵에 반대하는 기류를 보이다가 점차 의중을 바꾸기 시작했다. 하원 투표에서 탄핵 대열에 합류한 공화당 의원 중에는 리즈 체니 의원이 있다. 그는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로, 공화당 내 서열 3위로 꼽힌다.
당 지도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등을 돌린 첫 사례다. 공화당 서열 1위인 케빈 매카시 원내대표는 반대표를 던졌으나, 의원들에게 자유투표를 당부했다. 당론을 정하지 않은 것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이다.
상원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언론의 추측 보도가 넘쳐나지만 나는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매코널 원내대표가 지난 4년간 트럼프 대통령을 적극 엄호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결정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조차도 이례적인 일로 풀이된다. ‘마의 장벽’으로 여겨졌던 상원에서의 탄핵안 통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하원 투표에서 공화당 이탈표가 10표나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당초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한 공화당 하원의원은 4명뿐이었다. 나머지 6명은 예상을 깨고 투표 당일에 반란표를 던진 것이다. 2019년 말 하원 탄핵 당시에는 공화당 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지며 단일대오를 유지했다.
공고하던 공화당 진영에 균열이 생긴 데는 유례없는 의회 난입 사태의 중대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역사상 처음으로 재임 중 하원에서 두 번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대통령이 됐다.
1월20일 조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미 워싱턴DC에 주방위군이 투입됐다. ⓒEPA 연합
수습 타이밍 잘못 잡은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안 통과가 가시화하자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는 하원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의회 난입 사태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1월13일 백악관 계정 트위터에 동영상을 올리고 “나는 우리가 지난주 목도한 (시위대) 폭력을 명백하게 비난해 왔다”면서 “폭력은 우리 국가, 그리고 우리의 활동에 결코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또 “미 의회 습격은 공화국의 심장을 때린 것이며 모든 미국인을 분노하게 했다”고 성토했다. 아울러 자신은 법치주의를 수호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내란 선동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루 전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 앞에서 한 말과 정반대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12일 의회 난입 사태 이후 엿새 만에 모습을 드러내 텍사스주 앨라모의 멕시코 국경장벽을 방문했다.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던 ‘반(反)이민’ 정책의 상징 앞에서 지지자들의 결집을 호소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탄핵 사기는 가장 크고 가장 악랄한 마녀사냥의 연속”이라며 “탄핵 움직임이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자신의 연설이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를 부추겼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내 연설은 완전히 적절했다”며 선동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알라모에 있는 멕시코 국경장벽을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2021.01.13./사진=[알라모=AP/뉴시스]
민주당 조 바이든의 제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을 인정하는 6일 선거인단 인증을 앞두고 이에 반대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워싱턴에 모여 '미국을 구하자'라는 정치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 2021. 1. 6./사진=[워싱턴=AP/뉴시스]
백악관 영접도, 인사도, 편지도 없다"…바이든 모욕하는 트럼프
미국 CNN방송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모욕의 역사'를 정리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퇴임하는 오는 20일 바이든 당선인을 백악관 안으로 초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선 전임 대통령이 백악관 북측 현관 노스포티코(North Portico)에서 차기 대통령과 환영의 인사를 나누고 함께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것이 전통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겐 또 하나의 모욕거리일 뿐이다.
CNN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 대통령이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아닌 백악관 수석 안내인 티모시 할레스의 영접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할레스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의 수석 매니저로 일했던 인물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에게 편지를 남길지 고심하고 있다고 CNN방송은 썼다. 지난 2주 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멜라니아 여사 또한 바이든 당선인을 축하할 것이란 기대를 떨쳐버리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한 고위 관계자는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가 처음 백악관에 도착한 지난 1992년과 그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로라 여사를 초청했던 지난 2000년을 기억한다"며 "둘 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선거 이후였지만, 두 번의 만남은 모두 더 없이 친절하고 반가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전통은 유지되고 있다고 CNN방송은 덧붙였다. 일례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 14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과 처음으로 통화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차기 행정부 사이 최고위급 접촉이었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 셰일라 크레이그헤드가 지난 주말 바이든 당선인의 전속 사진사로 일할 아담 슐츠와 챈들러 웨스터에게 백악관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이 CNN방송에 의해 포착되기도 했다.
[밸도스타=AP/뉴시스] 미국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2020년 12월 5일(현지시간) 조지아주 밸도스타를 방문해 발언 중인 모습. /사진=뉴시스
백악관 떠나는 멜라니아 최저 호감도..그래도 트럼프보단 높았다
[파이낸셜뉴스] 임기 종료를 만 하루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영부인 재임 중 가장 낮은 호감도를 기록한 채 백악관을 떠난다. CNN 방송은 17일(현지시각) 여론조사기관 SSRS에 의뢰해 지난 9일부터 14일까지 성인 1003명에게 조사한 결과, 멜라니아 여사의 호감도는 42%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6년 2월 멜라니아 여사가 영부인이 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멜라니아 여사에 대한 호감도는 전임자들이 백악관을 떠날 때보다 훨씬 낮았다.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은 CNN과 여론조사기관 ORC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 퇴임 직전인 2017년 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9%의 높은 호감도를 기록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로라 여사는 임기 말 남편의 낮은 인기(호감도 33%)에도 불구하고 67%의 호감도를 보였다. 힐러리 클린턴 역시 백악관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호감도 56%를 기록했다.
2018년 5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바버라 여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호감도 57%를 기록했던 멜라니아 여사에 대한 호감도는 같은 해 10월 아프리카 단독 순방을 다녀온 뒤 43%로 급락했다. 당시 멜라니아 여사는 케냐 사파리 공원에 아프리카 식민지배를 상징하는 모자를 쓰고 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호감도는 33%로 나타났다.
jo@fnnews.com 조윤진 인턴기자
멕시코 국경장벽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알라모의 멕시코 국경장벽을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바이든 취임 D-1] '셀프 환송'에 유산은 지워지고…트럼프 '쓸쓸한 퇴장
(워싱턴=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루 뒤면 백악관을 떠난다. 조 바이든 당선인이 20일(현지시간) 정오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그는 재선에 실패한 전직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에 새겨진다. 4년 만에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도 흔치 않지만 대선 불복을 거치면서 의회 난동을 선동, 하원 탄핵까지 당한 '주홍글씨'는 평생 따라다니게 됐다.
대선 두 달여 만에 승복한 대통령, 선거 결과 뒤집기를 위해 주 정부와 의회를 압박하며 소송을 남발한 대통령, 의회에 폭도들을 난입하게 한 대통령, 두 번의 하원 탄핵을 받은 대통령…. 이 모두가 트럼프가 세운 첫 기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폭도 선동자로 몰리면서 어쩔 수 없이 승복했지만, 실상은 여전한 불복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대신 바이든이 취임하기 직전에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원을 타고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가서 '셀프 송별 행사'를 갖는다. 21발의 예포와 레드카펫, 군악대 연주 등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친 외국 정상의 공항 출발과 같은 행사가 예상된다. 그러고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플로리다로 날아간다. 바이든이 취임하면 전용기 탑승 허락을 받아야 해 그 전에 한다는 게 미국 언론 보도다.
트럼프는 시위대의 난동을 선동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이후 자신의 메시지 통로였던 트위터를 비롯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계정을 줄줄이 정지당했다. 한 소셜미디어 분석그룹에 따르면 트럼프 트위터 계정이 정지된 이후 소셜미디어상의 허위정보가 73%나 급감했다는, 그에겐 부끄러울 법한 분석도 나왔다.
트럼프 "대선 불복 포기하지 않을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2020년 대선 결과 인증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무엇보다 굴욕은 바이든 신행정부의 '트럼프 유산 지우기'다.
바이든은 취임 직후 수십 건의 행정명령과 각서, 지시를 내놓겠다고 했고, 상당수가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 등 트럼프 정책을 뒤집는 내용이다. 트럼프는 임기 말임에도 대(對)이란 무더기 제재를 쏟아내는 식으로 자신이 파기한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재가동하려는 바이든의 앞길에 장애물을 쌓는 등 끝까지 훼방하고 있다는 게 바이든 측 인식이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의회 폭동 이후 29%까지 떨어져 미국 대통령의 역대 지지율 최저치를 갈아치웠다는 조사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치자 전직 대통령에게 예우 차원에서 해왔던 기밀정보 브리핑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가고 있다.
전직 고위 정보 당국자는 물론 상원과 하원에서도 트럼프가 기밀을 유출해 국가안보가 위험해질 수 있다며 정보 차단을 공론화하고 있다. 론 클레인 바이든 백악관 비서실장도 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처럼 자초한 상황으로 퇴임 직전에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트럼프이지만 퇴임 이후는 더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의회 난동 조장, 대선 패배 뒤집기를 위한 협박과 회유, 각종 금융 및 부동산 사기와 탈세 의혹, 성추문 입막음 등에 대한 수사를 사법 당국이 잔뜩 벼르고 있다.
트럼프가 '셀프 사면'을 할 것이란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물론 스스로 사면해도 연방 검찰이 아닌 지방검찰의 기소를 막지 못하는 한계는 있다. 그는 대선 패배 뒤 측근 범죄자들에 대한 대규모 사면을 단행했으며, 퇴임 직전에 100명 안팎의 추가 무더기 사면을 할 것으로 미국 언론은 보고 있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이면엔 4년 뒤 재기를 위한 노림수가 있었지만, 의회 난동을 계기로 공화당 의원들도 등 돌리기 시작했고 이제 상원의 탄핵 및 공직 차단 절차까지 앞두고 있어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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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4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세실 공항에서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는 미국 국내는 물론 국제 정치에서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로이터=연합뉴스
100년 미국' 산산조각 냈다, 트럼프 탄핵 위기는 자업자득
미국, 1차대전부터 현대 대테러전까지 60만 이상 목숨 잃으며 전쟁 치러 전비 7400조원 쓰며 국제사회 영향력 군국주의·나치즘·파시즘·공산주의 눌러
유럽 동맹 만들려 마셜 플랜 143조원 북미·유럽 묶어 가치동맹 나토 체제로 냉전에서도 승리하며 유일 강국으로 트럼프, 희생·비용·과정을 물거품으로
눈앞 당파성·팬덤에 매몰, 역사 무시 연방의회 난입만큼 국제사회 악영향 CNN, 유럽신뢰 회복에 수십 년 예상 바이든, 유럽 신뢰 복구 외교에 총력
드디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1월 20일이 되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나고 조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한다. 임기가 딱 하루가 남았지만, 미국과 전 세계는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눈을 떼려야 뗄 수 없다.
그 막강한 권력으로 무슨 일을 벌이고 무엇을 파괴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능력이나 가치관을 짐작할 수 없는 건 트럼프가 임기 내내 보여준 특징이다. 이는 결코 지도자의 덕목은 아니다.
오는 20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릴 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의 서측 계단에서 18일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지금까지 없었던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내에 남긴 상처는 끝이 없다. 트럼프는 ‘지금까지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분열과 분노, 증오를 부추기고 헌법과 법체계에 도전한 것으로도 모자라 명백한 선거 결과를 거부하고 음모론을 들이댔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를 훼손하는 자해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세계적 브랜드인 ‘미국’과 ‘민주주의 체제’가 트럼프에게 도전받고 조롱당했다. 지난 6일 지지자들의 연방의사당 난입을 선동한 혐의로 13일 연방하원의 탄핵안 가결에 이어 연방상원의 탄핵 심리를 남겨둔 건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다.
지난 2017년 5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 정상들을 세워둔 채 군사비 지출을 늘리지 않는다고 대놓고 비난했다. AP=연합뉴스
국내 물론 국제질서와 미국 가치도 훼손
트럼프가 무너뜨린 건 미국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는 미국이 20세기에 만든 국제질서도 붕괴시키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은 트럼프의 말과 행동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라는 국제정치의 메가 브랜드를 추락 위기로 몰아갔다. 트럼프가 떠나도 그의 임기 중 국제사회가 겪은 고통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이는 쉽게 복원되기도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CNN은 “(트럼프가) 쓰레기통에 처박은 유럽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릴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했다. 트럼프가 대부분 유럽국가인 나토 동맹국들을 채무자로 모욕하고, 유럽과 함께했던 이란 핵 합의(JCPOA), 세계와 손잡았던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후폭풍이다.
이제 트럼프가 벌인 행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청구서가 날아올 차례다. 트럼프가 임기 중 추락 직전까지 몰아간 ‘미국’ 브랜드의 가치가 어떤지는 측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지난 한 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 그 브랜드를 구축하고 글로벌 일극 패권 국가로 부상하는 데 어떤 비용을 들였는지를 살피면서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트럼프가 흔들어놓은 미국의 패권과 국제질서는 도대체 어떻게 형성됐는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결정하면서 19세기 이래 전통적으로 취해왔던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미국을 국제질서의 추죽국가로 바꾼 우드로 윌슨 대통령. 사진=미 의회 도서관
1차대전 계기 고립주의->국제질서 주축
실제로 미국은 20세기 초까지 사실상 고립 국가였다. 제임스 먼로 대통령(1758~1831년, 재임 1817~25년) 시절인 1823년 ‘미국은 유럽의 일에 개입하지 않고 유럽도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지 말라’는 먼로주의 외교를 제창한 이래 미국은 오랫동안 고립주의 외교를 펼쳤다. 당시는 영국이 글로벌 패권 국가였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 100년 남짓한 기간에 국력을 키우고 전 세계의 일에 개입을 늘리고 늘리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결국 글로벌 유일 패권 국가가 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특히 유럽을 민주주의 동맹으로 이끄는 데 공을 들였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독일 제국과 그 동맹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라는 다민족 전제군주 국가를 무너뜨렸다. 1917년 미국의 참전을 결정하고 전후 베르사유 회담에 참여했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1856~1924년, 재임 1913년~1921년)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내세웠다.
승전한 연합군은 다민족 국가였던 이 두 제국을 해체하고 ‘개념적’ 민족 개념에 맞춰 갈기갈기 찢고 분할했다. 그렇게 만든 국경선이 현재 발칸을 포함한 중유럽·동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 남아있다. 1차대전 참전으로 미국은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행위자로 나섰다.
제2차 대전에서 군국주의와 나치즘, 파시즘을 격파한 미국은 영국, 소련과 함께 전후 질서의 새 판을 짰다. 사진은 얄타회담에 모인 연합국 지도자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지도자.. 사진=미국 국립 문서보관소
2차대전서 군국주의·나치즘·파시즘 격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1941년 3월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1882~1945년, 재임 1933~1945년)이 서명한 렌드·리스법(무기대여법)에 따라 1945년 종전 때까지 무기·식량·연료·물자를 연합국에 제공했다. 당시 가격으로 영국에 314억 달러, 소련에 113억 달러, 자유 프랑스에 32억 달러, 중화민국에 16억 달러, 다른 연합국에 26억 달러 등 모두 501억 달러를 제공했다.
2019년 가치로 5750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이다. 미국이 2차대전에서 지출한 전체 전비의 17%에 이른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뒤 선전포고 문서에 서명하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사진=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미국은 1937년 3월 루스벨트의 이른바 ‘격리 연설’을 통해 “미국은 세계의 무법적 상황의 유행에 맞서 자가격리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1941년 9월 11일 미 해군 구축함 그리어 함이 대서양에서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는 일이 발생하자 ‘보이는 즉시 사격하라’는 명령을 내려 실질적인 교전에 들어갔다.
이어 그해 12월 7일 일본 해군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일본과 동맹인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11일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자 몇 시간 뒤 미국도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공식적인 전쟁에 들어갔다. 2차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1611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전쟁의 핵심이 됐다. 미국은 2차대전에 참전한 결과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그리고 군국주의 무너뜨리고 전후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마셜 플랜 143조원 쏟아 유럽을 동맹으로
미국은 전후에 소련 중심의 공산권에 맞서며 냉전을 치렀다. 미국은 2차대전 종전 뒤인 1948년 4월 3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1884~1972, 재임 1945~1953년)이 서명해 발효한 해외원조법으로 마셜 플랜을 가동했다. 4년 동안 서유럽에 130억 달러(2016년 가격으로 1300억 달러(약 143조원)를 쏟았다.
마셜 플랜은 대규모 경제원조로 서유럽의 전후복구와 부흥을 돕는 프로젝트다. 서유럽은 이를 바탕으로 공산권보다 경제적 우위를 유지하며 냉전에서 소련 몰락을 이끌 수 있었다. 미국이 서유럽을 동맹으로 삼기 위해 들어간 초기 비용으로 볼 수 있다.
2018년 11월 1일 나토 훈련에 참가한 노르웨이군의 전차. EPA=연합뉴스
나토 창설, 소련에 대응해 냉전 승리
1949년 4월 4일 트루먼 대통령의 제창으로 공산권으로부터 북미와 유럽의 자유 세계를 지키는 집단방위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창설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소련권과 군비경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냉전은 차갑지만은 않았다. 열전으로도 진행돼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한국전쟁(1950~1953년)과 베트남전(1955~1975년)이 그것이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지켰지만, 베트남에선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냉전은 1991년 12월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렸다.
냉전에서 승리하고 소련을 무너뜨린 미국은 글로벌 유일 패권 국가로 자리 잡았다. 적을 잃어버린 나토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가치 동맹으로 존속했다. 나토 체제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유용한 역할을 했다.
오는 20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릴 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의 서측 계단에서 18일 미국 육군 군악대가 팡파레 리허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0년간 미국 군인 희생 60만 이상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미국이 치른 대가는 엄청났다. 군사적 희생, 전비 지출, 경제원조, 소프트파워 유지와 수출 등에 막대한 희생과 자원을 투입했다. 대략 계산해도 패권확보 과정서 전사자 60만 명 이상, 전비 6조7249억 달러 이상, 마셜 플랜 1300억 달러를 비롯한 숱한 원조와 지원 자금이 들었다.
미국 보훈부(VA)와 미 의회 조사국(CRS)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이 패권을 확보하고 미국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을 계산해봤다. 먼저 인적 손실이다.
미국 보훈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전사자는 1차대전(미국 참전 기간 1917~1918년)에서 11만 6516명, 2차대전(1941~1946년)에서 40만 5399명, 한국전쟁(1950~1953년)에서 3만 6574명, 베트남전(1964~1973년)에서 5만 8220명, 걸프전(1990~1991년)에서 2586명, 아프가니스탄전(2001~2014)에서 2349명, 이라크전(2003~2010년)에서 4418명 등으로 합치면 60만 명에 이른다. 2차대전 중 소련이나 중국처럼 1000만 명 이상의 희생을 본 국가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진주만 공격을 제외하면 한결같이 미국 영토가 직접 공격받지 많은 상태에서 참전한 전쟁이다. 미국은 국토방위가 아닌 전제군주정·나치즘·파시즘·군국주의·공산주의·테러세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60만 명의 군인이 희생된 셈이다.
지난 18일 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 위로 경찰 헬기가 날고 있다. 연방의회는 미국의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동안 전비와 국제원조 자금을 풍부하게 제공했다. AP=연합뉴스
미, 유일 패권국 되기까지 전비 7400조 원
미국이 이들 전쟁에 들인 전비도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미 의회 조사국(CRS) 자료에 따르면 당시 가격으로 1차대전에서 200억 달러(2011년 가격 기준 3340억 달러), 2차대전에서 2960억 달러(4조1040억 달러), 한국전쟁에서 300억 달러(3410억 달러), 베트남전에서 1100억 달러(7380억 달러)를 들였다.
걸프전에선 610억 달러(1020억 달러), 이라크전에선 7150억 달러(7840억 달러), 아프가니스탄에선 2970억 달러(3210억 달러)를 각각 전비로 지출했다. 미국은 1차대전 이후 참전한 전쟁에서 2011년 가치 기준 6조 7240억 달러(약 7400조원)의 전비를 쏟아부었다.
2020년 명목 금액 기준 국제통화기금(IMF) 추정 국내총생산(GDP)을 보면 미국이 20조8072억 달러, 중국이 14조8607억 달러, 일본이 4조9105억 달러, 독일이 3조7805억 달러, 영국이 2조6382억 달러다.
가치 추산 시기가 조금 다르지만, 이 통계와 비교하면 미국이 패권 국가가 되기까지 지출한 전쟁 비용이 얼마나 큰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2020년 GDP는 1조5867억 달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3월 8일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철강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의 고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관세 부과 대상에는 미국의 동맹국인 캐나다와 유럽국가들이 포함됐다. UPI=연합뉴스
역사 맥락 대신 지지자 살핀 트럼프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역사적 맥락과 희생·비용을 무시하고 당장 자신을 찍어주는 유권자들의 불평에만 귀를 기울였다. 일련의 나토정상회의서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군사비로 지출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지키라고 회원국 겁박하며 집단안보 약속의 재확인을 거부했다. 그런 트럼프는 더는 글로벌 리더가 아닌 채권 추심자의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남겼다. 서유럽은 물론 전 세계와 공동으로 약속한 파리기후협정을 비과학적인 기후변화 음모론을 앞세워 탈퇴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협정이라 그랬다는 일부의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렸다. 글로벌 패권 국가 대통령의 입에서 ‘기후변화가 거짓말’이라는 황당한 말이 나오면서 글로벌 과학기술을 선도해온 미국의 이미지는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전임 오바마 시절에 서유럽이 주도하고 러시아·중국까지 함께 약속한 이란핵협정(JCPOA)도 갖가지 이유를 달아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국익보다 감정에 치우친 일부 지지자들의 시각과 요구를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이 협정에서 탈퇴하며 트럼프는 동맹인 서유럽과 더욱 멀어져갔다.
2017s년 5월 26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다른 정상들의 화기 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이날 트럼프는 혼자 골프 카트를 타고 별도로 이동했다. 사진=마크롱 대통령 트위터
G7 볼멘 트럼프 때문에 '고난의 행군'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1926~2020년, 재임 1974~1981년)의 제안으로 1975년 G6로 시작한 주요 7개국(G7)도 트럼프가 뒤흔들었다. 2017년 이탈리아 시칠리아 정상회의에선 기후협약에 대한 반대로 혼자 골프 카트를 타고 다녔다. 2018년에는 다른 회원국 정상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에 관한 입장을 담은 공동성명을 거부하고 혼자 회담장을 떠났다.
국제사회에서 트럼프는 줄곧 혼자였고, 그런 트럼프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한없이 떨어뜨렸다. 트럼프 시대 G&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이 시대 국제관계는 ‘난맥’이란 표현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G7이 이렇게 되면서 서방의 견제를 받아온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만 웃게 됐다.
20일 취임식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 뒤 트럼프 시대에 소원해진 유럽과의 관계 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AFP=연합뉴스
유럽과 관계 회복이 바이든의 책무
20일이 되면 이제 공은 조 바이든 신임 대통령에게 넘어간다.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인 바이든은 미국의 가장 큰 동맹이었다가 트럼프에 절망했던 서유럽을 다시 미국의 친구로 복원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바이든은 그 가치를 누구보다 절감할 인물이다.
바이든의 외교는 트럼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브랜드·역할·신뢰를 재설정하는 데 무게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 CNN은 트럼프 집권 시절 유럽을 ‘쓰레기통에 처박혔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간은 유럽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길’ 걸을 기회이기도 했다. 미국과의 동맹 체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관계를 설정할 모티브가 될 수 있었다.
이를 막고 유럽을 미국의 동맹으로 묶어두는 일이 바이든의 책무가 됐다. 자칫 트럼프가 전임 오바마의 정책을 폐기하는 ABO(Anything But Obama·오바마 빼고 무엇이든) 정책을 펴며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했듯이, 바이든은 트럼프 정책을 되돌리는 ABT(Anything But Trump·트럼프 빼고 무엇이든) 전략을 선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과정에서 유럽과의 관계 재설정이 바이든 외교의 1순위로 부상할 수 있다. 한국·일본·인도·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이스라엘·이란 등 중동에 대해서도 고루 신경을 쓰려 하겠지만, 자칫 최우선 순위에서 밀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CNN의 전망처럼 중요한 동맹인 유럽과의 관계 회복에 수십 년이 걸리는 건 바이든에게 악몽이기 때문이다.
채인택 구재전문기자
오는 20일(현지시간) 정오를 기점으로 임기가 종료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오른쪽). /AFPBBNews=뉴스1 [출처: 중앙일보] '
포퓰리즘 넘어선 마이웨이 독선" 떠나는 트럼프가 남긴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 오는 20일 정오를 기점으로 임기가 끝나면서다. 지난 4년간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 외교무대와 미국 경제, 미국 정치판에서 각종 진기록을 쏟아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세계에 '마이웨이' 불어넣은 트럼프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약속과도 같았던 '세계화'의 종말을 불러왔다.
트럼프 당선 이후 이탈리아, 브라질, 영국, 헝가리 등 각국에서는 그를 표방하는 '포퓰리즘' 지도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했던 2016년은 국제 정치학에서 포퓰리즘이 정점에 달했던 때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취임 첫해부터 '마이웨이'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2017년 6월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같은해 8월엔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심각하다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 카드도 꺼냈다. 유럽과 캐나다를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 오랜 동맹국들도 관세 위협에 예외는 아니었다. 이듬해 5월에는 이란 핵합의도 일방적인 탈퇴를 통보하기도 했다.
2018년 6월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이를 바라보는 세계 지도자들의 태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자리이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팔짱을 끼고 딴청을 피우는 듯한 모습으로 앙겔라 메르킬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동맹국 지도자들의 항의를 받는 모습이 사진에 담기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에는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열었고, 2019년에는 2차 회담을 가졌다. 또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깜짝 만남을 갖기도 했다. '사상 최초'라고 불릴만한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북미 관계는 제자리인 상황이다.
코로나19만 아니었어도...트럼프의 경제성적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BBNews=뉴스1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3년간 미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5%였다. 영국 가디언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엔 평균 2.25%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출난 성과는 아니지만 견실한 성적표라고 평가했다.
고용지표도 좋았다.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치기 이전인 지난 2월까지만 하더라도 미국내 실업률은 1969년 이후 최저치인 3.5% 기록했다. 실업자가 적다는 건 그만큼 기업들이 채용을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고, 검토하는 인력풀도 넓어짐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숱한 인종차별 논란을 샀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낮은 실업률 덕분에 흑인 실업률은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6% 미만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트럼프 취임 후 첫 3년간 미국의 실질 가구 중간고득도 6000달러나 상승했다. 그 이전 15년여간 상승액은 250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같은 경제 지표가 막대한 재정 적자를 바탕으로해 단기적인 성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트럼프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미국 경제는 관료들이 한때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재정 적자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았고, 실업률도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CNN도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미 뉴욕증시 S&P500지수는 연평균 14.34% 상승률을 보이며 오바마 전 대통령의 12.43% 기록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의 코로나19 부실 대응은 지난 3년간의 성과를 무너뜨리게 했다. 한때 미국의 실업률은 14.7%라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지금도 6.7%를 유지하며 팬데믹 이전보다 2배 가량 높은 상황이다.
가디언은 "경제만 놓고 보면 트럼프는 나쁜 패배자라기 보다는 불운한 대통령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2024년 재출마 꿈도 물거품될라…트럼프의 '트럼피즘'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트럼피즘'은 승리했다는 평가가를 받기도 했다. 역대 대선에 두번째로 많은 표를 얻은 데다가, 최다 득표 패배자라는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신들은 2016년 그의 당선이 단순히 운이 좋았음이 아님을 증명했다고 전했다. 2024년 재출마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피즘은 결국 막판 트럼프 대통령의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6일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서 바이든 당선인의 최종 당선 인증 절차가 진행됐는데, 트럼프 지지 시위대가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의사당 인근에서 지지자들에게 "의사당을 향해 행진하자"고 말했고, 시위대 난입 이후에도 이들을 옹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 역사상 처음으로 두번이나 하원에서 탄핵당하는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로 이어졌다. 민주당은 '반란 선동' 혐의로 트럼프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지난 13일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됐다. 최종 탄핵여부는 앞으로 상원을 거쳐야 결정된다.
현실적으로 오는 20일 정오면 퇴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임기내 탄핵하기는 어려운 상황. 하지만 민주당은 퇴임 후 탄핵을 추진해 2024년 재출마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피즘'을 버려둔채 백악관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