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
Upon the instruments of death
The sunlight brightly gleams
When every man is torn apart
With nightmares and with dreams
Will no one lay the laurel wreath
When silence drowns the screams
예언자들의 말이 새겨진 벽의 이음새들이 갈라지고 있어요
죽음을 위한 도구들 위에 햇빛은 밝게 빛납니다
모든 사람이 악몽과 꿈으로 갈가리 찢길 때
아무도 월계관을 씌워 주지 못하죠
적막이 비명을 삼켜버릴 때 말입니다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As I crawl a cracked and broken path
If we make it we can all sit back and laugh
But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내 묘비엔 혼란이란 말이 새겨질 거예요
갈라지고 깨진 길을 기어가
길을 다 가면 편히 앉아 웃을 수 있겠죠
하지만 두려워요 내일 난 울게 되지 않을까 하고
정말 두려워요 내일 난 울게 되지 않을까 하고
정말 두려워요 내일 난 울게 되지 않을까 하고
Between the iron gates of fate
The seeds of time were sown
And watered by the deeds of those
Who know and who are known
Knowledges are deadly friends
If no one sets the rules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s of fools
운명의 철문들 사이에
식자와 명사의 하는 짓들
시간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어 길렀습니다
아무도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지식은 죽음을 불러오는 친구
내가 보는 인간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아귀에 있어요
묵시론적 이미지로 가득 찬 노래
이 음악은, 인간의 어리석고도 오만한 지식이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경고를 담고 있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밴드인 킹 크림슨(King Crimson)이, 1969년 발표한 데뷔 앨범인‘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 에 수록된 곡이다.
킹 크림슨, 그 중에서도 특히 킹 크림슨의 이 첫 앨범은 프로그레시브 락의 역사에 대해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명반이다.
Epitaph은, 훗날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를 결성하는 그렉 레이크(Greg Lake)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노래가 의외의 인기를 얻으며 번안되어 불리기도 했었다.
노래방 곡목에도 빠짐없이 들어 있고, 킹 크림슨의 음악 성향과 가사의 내용으로 볼 때 특이한 일이다.
Epitaph ; 묘비에 죽은 자를 추모하여 새기는 글.
묘비명(墓碑銘) ; 노래하는 이는 자기 묘비명을 ‘ 혼란 ’ 이라고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말에는, 그것이 인류 전체의 묘비명이 될 수도 있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
클래시컬 록으로의 초대, 프로그레시브 시대의 개막
우드스탁 제전으로 절정을 치달았던 록의 응집력은, 70년대 개막과 함께 급격히 해체되면서 여러 다양한 ‘ 혼합형의 록 ’ 으로 가지를 치며 뻗어갔었다. 저항정신의 음악적 총체라는 록의 정신은 70년대가 지나가면서 점차 소멸되었고, 개인적인 일상사나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 록이 미국 시장을 사로잡고 있었다.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시각마저도 많이 달라져버린 당시의 록 청취자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록이 요구되고 있었다.
게다가 달갑지 않은 월남의 전쟁터에 끌려가, 켄트 주립대학의 참상에 좌절하며, 알타몬타의 비극에 위축된 그들은,
실업률의 증가(69년 3.5%에서 70년 6.2%로)로 달러시세의 폭락 · 연방정부의 공공지출 삭감 및 신용대출 제한 등으로 나타난 또 한 차례의 시련을 맞아야만 했었다.
암담한 사회현실과 경기침체의 공포가, 그들을 엄습하면서 그들이 듣는 음악 스타일 역시도 갑자기 바뀌어 버렸었다.
헌데 그들의 가라앉은 기분과, 그에 따른 ‘ 보수적 정서 ’ 를 반영한 음악 가운데 하나가
클래시컬 록(classical rock)이었었다.
포크 · 컨트리 록 · 재즈 록 · 글램 록 등과 함께, 록의 핵분열로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클래시컬 록은, 그런 보수화의
분위기를 업고 각광받기 시작했었다.
클래시컬 록은, 말 그대로 록과 클래식을 합친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 양식을 본격 선보인 록 그룹은,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이 이끈 영국 그룹 킹 크림슨
(King Crimson)이었었다.
로버트 프립은, 60년대의 불꽃이 꺼져가던 69년 말 클래식 기타의 테크닉과 록 사운드를 결합한 매우 실험적인 앨범
‘ 크림슨 왕의 궁전에서 ’ 를 발표했었다.
그와, 그렉 레이크(베이스) · 마이크 가일즈(드럼) · 이언 맥도널드(키보드) · 피트 신필드(신서사이저)는,
이 앨범으로 록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클래식이 무난히 서로 용해될 수 있음을 알리며 클래시컬 록의 패턴을 제시했었다.
65만명의 관객이 운집한 런던 하이드 파크 공연에서, 롤링 스톤스를 백업하며 음악계에 등장한 그들의 이 데뷔 앨범은
신선한 충격을 야기시켰었다.
클래식과 록의 절충이라는 단순한 묘사를 뛰어넘어, 거기에는 명암 · 고저 · 깊이 · 시적인 가사에 의한 ‘ 색채 ’ 가 존재했었다. 청취자들은 그것이 컬러풀한 음악임을 느끼며 가장 앞서 있는, 즉 진보된 사운드라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그것이, 이른바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이란 거였었다.
묘비명(Epitaph) · 난 바람에게 말한다(I talk to the wind) 그리고 타이틀 곡인 크림슨 왕의 궁전에서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는, 록 팬들의 진보적 사운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었다.
특히 묘비명은, 심오한 가사와 웅장한 연주로 우리의 팝송 시대를 밝힌 다운타운의 음악다방을 강타했었다.
당시 음악의 주요 전달자였던, 디스크 자키들은 쇄도하는 이 긴 곡의 신청에 짜증을 낼 정도였었다.
아무도 규칙을 마련해 놓지 않을 때, 지식은 치명적인 벗 · 내가 본 인류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아귀에 있지 · 내가 깨어지고 부서진 길을 따라 기어갈 때 혼란이 묘비명이 될 거야. 킹 크림슨은, 여기서 미래의 정신적 타락에 대한 우려를 표출했었다. 그 엄숙한 비관은 동시에, 그들이 60년대를 깡그리 잊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싱글로 발표해 고전이 된 곡 ‘ 21세기, 정진분열증 환자(21th, Century schizoid man) ’ 에서도
미래의 불안과 파괴를 비관적으로 묘사했었다.
이 곡에서는, 60년대 말 미국을 강타한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영향이 엿보이고 있지만 그들은 록의 정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60년대 정서에 매달려 있었다. 두 발을 60년대의 땅에 박고, 두 손은 70년대를 향해 치켜 올린 거였었다.
그 70년대는, 킹 크림슨의 시야처럼 외형적 진보와 부피 팽창 뒤에 갈등과 혼란이 숨어 있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선구자인 킹 크림슨은, 다가올 70년대가 진보의 시대이면서 한편으론 긴장의 시대임을 간파하고 있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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