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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oz, Roméo et Juliette
베를리오즈 ‘로미오와 줄리엣’
Hector Berlioz
1803-1869
Géraldine Chauvet, soprano
Andrew Staples, tenor
Thomas Oliemans, bass
Groot Omroepkoor
Radio Filharmonisch Orkest
James Gaffigan, conductor
Vredenburg Leidsche Rijn Utrecht, Netherlands
2012.03.23
셰익스피어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에 기초한 음악작품으로는 구노의 오페라, 프로코피예프의 발레음악, 차이콥스키의 환상 서곡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에 비하면 베를리오즈의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소 ‘마이너’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 텐데, 그 제목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을지라도 정작 제대로 들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심히 부당한 일이다.
작곡자 자신이 ‘극적 교향곡’(symphonie dramatique)으로 명명한 이 이례적인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다룬 음악작품들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고전 교향곡의 틀을 차용하되 그것을 발전적으로 변용하고 독창과 합창까지 활용하여 오페라와 멜로드라마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원작의 스토리를 순차적으로 따르는 듯하면서도 보다 자유로운 환상을 쫓고 있다.
자신을 '베토벤의 계승자'라 추켜세운 후원자 파가니니에게 헌정
이 ‘극적 교향곡’이 작곡된 것은 1839년이지만, 그 기원은 18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 파리의 오데옹 극장에서 영국 셰익스피어 극단의 공연이 열렸는데, 그것은 베를리오즈에게 불시에 떨어진 청천벽력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그에게 예술의 하늘을 열어젖히면서 그 가장 깊은 곳을 비춰주었고, 그는 비로소 연극의 진정한 위대함과 아름다움과 진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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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당시 그가 <햄릿>의 오필리어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으로 분한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고, 그것이 그의 대표작 <환상 교향곡>의 작곡 동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아울러 그는 10년 내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탕으로 대작 교향곡을 쓰겠다는 구상도 품었다. 실제로 그는 작가인 에밀 데샹과 상의하여 대본까지 준비했지만, 이런저런 사정들로 인해 작곡은 무한정 연기되고 말았다. ▶<햄릿>의 오필리어 역을 맡은 해리엇 스미드슨을 그린 그림.
그 후 그는 <환상 교향곡>을 먼저 완성했고, 로마 대상의 수상자로서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왔으며, 파가니니의 의뢰로 두 번째 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럴드>도 썼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들, 특히 로마 대상을 위해서 쓴 칸타타, 이탈리아에서 접한 벨리니의 오페라 <카풀레티 가와 몬태키 가> 등이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작품의 완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이올린의 명수’ 니콜로 파가니니였다. 파가니니는 1838년 12월에 <이탈리아의 해럴드>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베를리오즈를 ‘베토벤의 계승자’로 추켜세웠고, 나아가 그에게 2만 프랑의 후원금까지 보내주었던 것이다. 존경하는 선배의 호의로 경제적 곤궁에서 탈출한 베를리오즈는 마침내 오랫동안 별러왔던 <로미오와 줄리엣>에 착수할 수 있었고, 단 9개월 만에 작품을 완성시켰다. 완성된 작품은 당연히 파가니니에게 헌정되었지만, 안타깝게도 파가니니는 작품의 총보도 받아보지 못한 채 1840년 5월에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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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이고 독창적인 ‘극적 교향곡’
이 작품은 베를리오즈가 <환상 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럴드>에 이어 완성한 그의 세 번째 교향곡이다. 그런데 과연 이 작품을 ‘교향곡’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물론 작곡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따른 극적 교향곡’이라고 불렀지만, 고전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거의 교향곡이 아니다. 수법 면에서 보자면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 빚을 지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보다 한결 자유롭게 확장되어 있고 드라마적 속성도 더 강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화, 발레, 오페라 등 다양한 형태로 리메이크되었다. 올리비아 하세와 레너드 위팅이 주연한 영화의 유명한 발코니 장면.
일단 전체 4부로 나뉜 구성은 교향곡과 유사하지만, 각 부는 다시 몇 개의 하위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그 각 부분마다 표제가 붙어 있다. 또 오케스트라에 더하여 독창자 세 명과 합창단이 동원되어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순수 관현악곡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페라나 오라토리오라고 부르자면 또 어색하다. 독창자들 중에서 테너가 머큐시오를, 베이스가 로렌스 수사를 맡고 있지만, 두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에게는 독창이 주어지지 않는다. 알토는 두 젊은이의 이미지를 아우르는 시를 노래할 따름이고, 그들이 겪는 사랑의 감정과 여정은 더욱 세밀하고 풍요로운 관현악을 통해서 표현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극적 교향곡’ 이외의 개념으로 규정하기가 불가능한 이례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이제부터 작품을 따라가며 내용을 살펴볼 텐데, 한 가지 유념할 부분이 있다. 베를리오즈가 사용한 대본은 프랑스어 번역본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통용되던 번역본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이 아니라 18세기에 영국 배우 데이비드 개릭이 각색한 판본에 의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원작과는 다른 부분들이 있는데, 일례로 로미오가 죽기 전에 줄리엣이 깨어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베를리오즈는 현명하게도 그런 한계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작품을 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재구성했던 듯하다.
Sir Colin Davis/LSO - Berlioz, Roméo et Juliette Op.17
Patricia Kern, alto
Robert Tear, tenor
John Shirley-Quirk, bass
John Alldis Choir
London Symphony Orchestra
Sir Colin Davis, conductor
Phillips, 1968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